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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에 꽤 많은 영화들을 봤는데 몇몇 영화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Griffin And Phoenix], [Broken English] 이 두 영화는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섹스 앤 더 시티]의 뉴욕과는 다른 분위기다.
[Paris] 이 역시 파리를 배경으로 하지만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파리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 영화들에 등장하는 뉴욕이나 파리는 등장 인물들이 숨쉬고, 먹고, 살고, 자고, 사랑하는 그런 일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서울 역시 그런 일상의 공간이다.
사랑하던 사람(애인이든 선배이든)에게 배신을 당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이상과 다른 현실에 좌절하거나 치를 떠는 공간이기도 하며, 하루하루 똑같은 현실에 무덤덤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상은 늘 그렇게 비루한 법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만 보면 서울은 그저 그런 일상의 공간이 되고 만다. 매일 봐서 덤덤한 조강지처같은.
그러나 그 곳을 떠나 보면 알게 된다.
그 무덤덤했던 공간이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작년 가을 쯤에 요시토모 나라의 [Traveling With Yoshitomo Nara] 을 봤다.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은 그 영화(혹은 다큐) 속에서 서울을 보게 됐다.
갑자기 숨이 탁 막혔다.
너무나 익숙한 그곳, 너무 익숙해서 소중한지 몰랐던 그곳, 그곳이... 손에 잡힐 듯 내 눈 앞에 있었다.
아! 그리고 한동안 몸살을 앓았던 것 같다.
그리운 서울. 보고 싶은 서울. 가고 싶은 서울.
늘 떠나고 싶었던 서울이 그렇게 사무치게 그리워질 줄이야... 낯선 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됐던 기억이 있다.
서울은 그런 곳이다.
내게도. 아홉 명의 여성 작가들에게도.
조강지처같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획 소설이 가질 수 있는 단점을 보여준다는 것. 그리고 한국 여성 작가들의 소설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
그렇지만 테마 자체는 좋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남성 작가들이 바라보는 서울은 어떤지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2권도 나오면 좋겠다.
덜 관념적이고 좀더 땀냄새나고 뭉클한 소재와 이야기를 가지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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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어느날소설이되다 : 테마소설집 여성작가 9인
이제까지 읽어왔던 소설들과는 다르게 '서울'이라는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요새 가장 주목 받고 있다 9명의 여성 작가들이 써내려간 이야기들을 모은 단편집이었다. 제목의 글씨체도 알콩달콩하고~ 표지 그림의 일러스트들도 약간 쓸쓸한 겨울 분위기가 나지만 아랫부분에 벚꽃들로 하여금 서울에도 봄이 오고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음에~ '서울'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지 않을까? 지금 계절과 딱 어울리는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하지만 이런 내생각을 비웃듯 첫번째 이야기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북촌>은 친구에게 자신의 돈을 사기당한 주인공이 나온다. 그 주인공은 살집마져 자유롭지 않아 1년동안 외국에 나가있는 다른 친구 대신 그집을 돌봐주며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한 여자가 나타나면서 그의 생활은 점점 변하게 된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에게 뭐든지 해줄수 있는 남자를 바랬고, 주인공은 친구집에 얹쳐 살 수 밖에없는 처지라 그들의 관계는 멀듯가깝게, 가깝지만멀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여자에게 부자였던 전남자 친구가 재등장하면서 여자는 남자를 떠나려한다. 주인공의 집주인인 친구도 돌아올날이 얼마남지않았다. 주인공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느끼며, 여자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쓸쓸히 그집을 떠날 수 밖에 없다.
<내 비밀스런 이웃들>에서는 요새같은 세상에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 같았다. 개인주의가 점점 커짐에 따라 옆집에 어떤사람이 살고 있는지 알기란 싶지가 않다. 그런 사실을 풍자하듯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스터리하게 진행 된다. 다읽고 나서도 사실, 도대체 이야기에서 주고자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인 <벌레들>에서는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시골도 아니고 서울이라는 곳에 그렇게 많은 온갖 종류의 벌레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벌레에 큰 피해를 당하고 있는 주인공을 임산부로 설정하였다는 자체 그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고, 끔찍하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작가의 존재가 여성 9인으로 알려지지않고 남자도 껴있었다면, 그리고 각각 자신의 성별에 해당되는 이야기를 써내려면갔다면, 정말 있었던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서울'이라는 테마의 이이야기 들이 서울에 산다면 한번쯤을 가봤을만한 곳들을 배경으로 쓰여짐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디테일들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그리고 주위에 공사 덕에 들려오는 소음이라던지, 서울 곳곳을 사진찍으러 다녀봤다던지,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해봤다던지..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일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정말 서울 어디에선가 심지어 옆집이나 나에게차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일 수 도있다는 느낌을 들게한다.
작가 9인은 각각 서울토박이도 있고,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도 있고, 놀러만 왔던 사람도 있고.. 등등 다양한
시각에서 '서울'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 9가지 이야기 거의 모두 어둡고 쓸쓸한 '서울'의 단편적인 모습들만 보여주었던 것 같아 책을 읽는내내 답답하고 힘들었다는 느낌이 너무 크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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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다룬 책은 참 매혹적이다. 그리고 매력적인 도시를 품은 책은 나를 감상에 젖게 한다. 나에게 서울은 매력적인 도시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서울에 있는 강이나 작은 물줄기들은 언제나 마음을 두기에 편안하다. (권여선씨의 말을 빌리자면..) 한강, 청계천, 중랑천, 양재천...
아홉 명의 여류 작가의 아홉 개의 단편들로 묶인 이 소설집은 각각의 내용이 모두 매혹적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 안에도 작가의 시선을 한 번 거친 서울은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서울이 고향인 주인공, 서울에 오래살아 고향처럼 생각하는 주인공, 또 서울 근교에 살면서 신나게 노는 장소로 제격으로 여기는 주인공. 난 서울 살이 3년째. 결혼하여 서울에 입성하여 한 번 이사는 하였지만 계속 같은 동네에 산다. 남편 직장이 서울이라 큰 이변이 없는 한 적어도 두 아이들 대학 입학까지는 서울살이를 할 예정이므로 서울을 고향처럼 여기고 살아갈 터이다.
얼마 전 아마츄어 작가의 소설집을 읽고 약간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았었다. 그 사이 또 여러 책을 탐독하였지만 이 소설집에서는 세련된 문체의 편안함을 맘껏 누렸다. (아~ 현대 소설은 이런 점이 좋단 말이야...라고 스스로 흥겨워 하면서..) 단편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가볍지는 않았다. 그래서 단편 사이사이마다 약간의 휴식 시간을 두면서 나름대로의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읽었다. 퓰리처 상을 받은 작가 줌파 라히리의 소설집은 꽤 무거워서 한 편을 읽고 나면 맥이 풀리는 느낌이였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기 전에 그 도시나 나라의 관광 정보나 간략한 소개따위를 읽는 것도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도시가 녹아있는 책을 읽고 떠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파리의 택시 운전사]나 피렌체의 두우모가 인상깊게 나온 [냉정과 열정 사이], [연을 쫓는 아이] 등등 ..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번역이 되어 서울을 찾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서울을 남겼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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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달]을 기억하는가? 15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로 시골에서 상경한 두 청년의 사랑과 애환을 잘 표현했다. 드라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던 내가 끝까지 봤던 이유는 드라마 속 생경한 도시 풍경 때문이었다. 바로 '서울'이라는 이름의 도시 말이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며 자랐던 내게 그곳은 참으로 낯설고 이상해보였다. 사람 사는 곳에서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서 결국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은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학적으로 뛰어나 교과서에 실린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는 1960년대 개발의 열풍에 떠밀려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의 애환을 '비둘기'에 빗대어 그려냈다. 정글속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골 여자를 그린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자본과 정치가 합작해 만들어낸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힘없는 '난장이'를 그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에서 무대가 된 '서울'의 모습은 그저 생경하기만 했다. 개연성의 법칙에 따르면 분명 없는 얘기를 지어내지는 않았겠지만 직접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런 내게 서울로 입성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당시 내 심정은 말 그대로 '기대반 두려움반'이었다. 부모님은 걱정돼서인지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셨는데 귀에 들어온 것은 단 두 가지, 물 조심과 사람 조심이었다. 어른들 말씀에는 다 일리가 있다고 했지만 반은 맞고 반은 아직 체험 중 이다. 물 좋고 공기 맑은 곳에서 살던 내게 서울 환경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물은 항시 끓여 마셔야 했고 주말에 시간이 나면 공기 좋은 교외로 나가서 일주일 간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고 맑은 공기를 몸 안 가득 채워야했다. 눈 뜨고도 코 베어간다는 서울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지만 그것보다 특유의 '말투'에 적응하기가 더 힘들었다. 밤이 되면 도심을 장악하는 화려한 네온사인에 '나'라는 존재는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고 어둠과 함께 온갖 유혹이 찾아왔다. 속으로는 딴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겉으로 웃으며 다른 말을 내뱉어야만 하는 생활을 할 때도 있었다. 드라마 [서울의 달] 주제가 노랫말처럼 '화려한 유혹속에 웃고 있지만 내겐 너무 낯설기만 해'였다. 그 때는 이곳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만큼 이곳은 나를 힘들게 했다.
김애란 작가와 같이 서울을 만나고 다섯 번 거주지를 옮긴 지금은 과연 어떨까?
소설 속 서울은 해외 유명 작품속에 묘사된 파리, 도쿄, 프라하 등과는 달랐다. 명소를 찾아가 걷고 싶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좋은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신다거나 꽃나무 아래서 화려하게 핀 꽃을 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등 좋은 모습으로 한번 꼭 찾아가봐야지, 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 보다 저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할까, 라는 생각을 먼저 들게 한다. 읽다보면 작가들이 서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긴 한 걸까, 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기에. 아홉 작가들에게 서울은 정감있고 애틋한 도시가 아닌 삭막함을 품고 있는 도시였던 것일까. 씁쓸하지만 사실이다. 분명 서울은 친구에게 사기당한 뒤 사랑에서까지 상처 입는 곳, 희망을 찾지 못해 자살을 기도하는 곳, 가족과 부부 간에도 대화가 단절되거나 소통이 되지 않는 곳, 심지어 신혼집에 벌레가 날아들고 '도와주세요'라고 외쳐도 재개발의 소음과 장막이 가로막고 있는 곳,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곳인데도 되려 가장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암울하기만 한 걸까. 서울은 그림자 도시라는 오명으로 사람들 기억에 남아있어야만 하는 걸까. 세상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필히 있는 법. 이 소설은 그렇게 그림자에 해당한다. 서울에 그림자만 있다면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 반대로 빛만 있어서도 사람은 살 수 없을 것이다. 너무 깨끗한 물에 고기가 살 수 없듯이 말이다. 그렇게 둘이 서로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며 서울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수많은 고통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듯 그들을 품은 서울도 같은 경험을 고스란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친 그들의 한몸 뉘일 공간을 마련하려고 지금도 아둥바둥하며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을지라도. 게다가 힘들게 했다면 위로하는 역할도 맡고 있지 않은가. 봄이면 꽃을 피워 겨우내 지친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고, 여름이면 크게 흐르는 한강과 시원한 청계천이 더위를 식힐 장소를 제공해주고, 가을이면 울긋불긋하게 물든 이파리가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추억에 빠지도록 하는 등 서울은 따스함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뿐인가. 홍대 거리는 젊음으로 넘쳐나고 있고 수많은 창작정신의 실험으로 매일같이 불타고 있다.
분명 테마 소설집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는 서울의 그림자를 생생히 보여준다. 작가 은희경은 이 세련된 소설집으로인해 서울에 대한 소설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녀의 말처럼 소설 속 파리, 이스탄불, 바르셀로나처럼 주인공이 되어 꼭 찾고 싶은 서울을 그린, 그런 멋진 소설을 보고 싶다. 바로 빛의 도시 서울을 보고 싶다. 그러니 누군가가 서울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런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제 해보자. 서울은 내게 살만한 곳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런 게 아니겠는가. 배경이 꼭 서울이 아니어도 이런 소설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서울, 그곳은 달이 지고 해가 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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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이끌어 가는 9명의 인기 여류작가가 서울을 테마로 소설을 썼다. 물론 9명의 작가 모두 서울 태생이거나 온전하게 서울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인 서울. 내 이름 그대로 서울에 살게 될 줄 꺼라 믿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피식 실소가 터진다. 9명의 작가가 그려낸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순서대로, 좋아하는 작가대로 읽어도 좋다. 서울을 꿈꾸는 사람들, 서울을 추억하는 사람들, 서울에 갇혀 사는 사람들. 서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잠시 접어두고 그녀들에 의해 새로이 탄생된 서울을 만나볼까?
먼저 이혜경의 <북촌>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옥 마을로 나를 이끈다. 전재산을 사기당하고 외국 나간 친구의 집을 돌봐주며 삶을 이어가는 남자에게 나비처럼 한 여자가 날아온다.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남자와 모든 것을 원하는 여자의 만남. 마루에 앉아 햇볕에 머리를 말리는 여자를 상상한다. 춘몽같은 사랑은 금세 사라진다. 친구의 집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나비같던 여자도 날아가버린다. 그도 이제 서울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적금을 들고 집을 마련해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서울. 그러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곳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 흐를지 않을 것 같은 북촌. 제발 그곳만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게도 옹달샘처럼 계속 남아주기를 바라는 곳이니 서울에 터를 내린 모든 이에게는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권여선의 <빈 찻잔 놓기>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가득 채운 인간의 욕망을 노래한다. 서울에서 명예를 얻기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일인가? 인맥을 위해 적당한 아부와 적당한 가식이 필요한지 시나리오 보조 작가인 주인공만 몰랐던 것이다. 함께 작업하고 마음을 나눈다고 믿었지만 사람들의 관계는 이익을 위한 허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서울은 그녀를 옭아맨 올무가 된다. 아니, 그녀만이 서울의 실체를 몰랐는지 모른다. 여전하게 서울에 적응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강영숙의 <죽음의 도로>는 쓸쓸하다. 벌어먹고 살기 힘든 서울 살이, 빚을 정리하고 애인이 떠나고 나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어디에서 죽어야 좋을까. 주인공은 서울을 탐색한다. 사고 발생률이 가장 높은 구간을 발견하고 실전에 옮기려 시도한다. 그러나 첫 번째, 두 번 째 모두 실패한다. 모든 것에 화가 난다. 마침내 죽음을 실행하는 날, 그녀가 안착한 곳은 바로 집. 결국, 서울은 죽음보다 삶이 더 강한 도시인가? 살기 위해 온 곳,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 서울이라는 것을 알기에 너무도 쓸쓸하다.
편혜영의 <크림색 소파의 방>은 제목처럼 달콤하지 않다. 오히려 처절하고 끔찍하다. 오랜 시간 지역 근무를 마치고 수더분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얻었다. 이제 마지막 행복을 찾아 서울로 향하는 부부. 새로 산 살림이 꾸려질 서울의 보금자리,그들에겐 포근한 크림색 소파같은 서울이 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는 함수의 그래프 같은 것.폭우 한가운데 멈춰버린 차, 온다는 보험회사 직원은 오지 않고, 크림색 소파는 아파트 어느 자리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삿짐 센터 직원의 전화만이 계속된다. 국도 낡은 주유소에서 만난 청년들과 실랑이가 벌어진다. 과연, 그들이 꿈꾸는 서울에 안착할 수 있을까?
그 외에 타인의 삶에 차단거리를 두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김숨의 <내 비밀스런 이웃들>, 이민간 동창의 할머니를 위해 지난 시절 그들이 함께 했던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 변화된 서울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독특한 소설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도 흥미롭다.
서울, 화려한 빌딩 숲 사이에 북촌이 존재하는 곳. 누군가에게는 행복으로,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기억되는 곳. 9명의 작가가 그려낸 서울은 서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서울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읽는 동안 나는 한때, 정기적으로 서울을 향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상기되었던 나, 지인을 만날 설렘과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하던 나. 서울이라는 도시에 삶을 뿌리내린 사람들도 작은 에피소드 심어둔 사람도 나처럼 이렇게 서울을 생각할까. 그렇게 잠시 스쳐 지나간 서울, 내게는 한 장의 추억으로 남은 곳. 이제 서울이 그리워질 때마다 이 책을 펼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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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가 City of soul을 불렀을 때, 나는 그 도시가 Seoul을 노래한다고 생각했었다. 지고지순한 사랑은 명품 앞에서 무너지며, 이웃들은 나를 위협하거나 내 것을 훔쳐간다. 깊이 잠들어있는 연금대상자인 아버지는 그저 목숨을 부지해주면 그만이므로 부러 깨우지 않는다. 어린시절의 꿈은 꿈으로라도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적어둔 꿈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작가들은 서울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가치 있어 보이지만 함게 보임으로써 조악해진 물건들 틈에, 하지만, 우리는 크림색소파처럼 정갈하고 단단한 세계를 꿈꾼다(p.230)
도시에서의 삶이 무겁고 외로워 지치는 날 펼쳐들면, 내 마음을 읽어주는 문장들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특별한 배경지식이 필요없는 우리의 일상이므로 가독성도 뛰어나다. 작가들은 각자가 읽은 서울의 엑기스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은 시끄러운 경적소리라기 보다는 다양한 소리가 어우러진 오케스트라에 가깝다. 빌딩 숲 사이에서도 기죽지않고 스스로 빛나는 고궁이 있고, 한들거리며 봄바람과 함께 걷기 좋은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도 있고, 서울을 가로지르는 서울의 혈관 한강이 있으며, 다정한 마음으로 서울을 내려다보기 좋은 남산이 있고, 무한경쟁에서 죽어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피땀 흘리는 사람들이 모인 시장들도있고,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키워가는 홍대도 있다. 서울은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은 많은 미덕을 간직한 도시이다. 그 도시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서 외로움과 고독을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운다고 해서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다. 서울에 살면서 느끼는 잔잔한 삶의 기쁨도 분 명 있다.
소설이 된 서울은 이제 새로운 변형된 모습을 하나 더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집의 시도는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하다 평가해도 좋다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는 서울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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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서울이란 공간을 7명의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을까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신간에 이 책이 올라왔을 때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하면서 느끼게 된 가장 큰 것은
<같은 듯 다른 듯> 이란 단어였습니다.
서울이란 공간에 대한 대표적인 상징이랄 수 있는
한강, 북촌의 한옥들, 철거촌 등등등
을 통해서 이야기의 배경이 서울이란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지만,
그 속의 인물들은 외롭고 고독하고 답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가 알고있는 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이야기.
인상적인 주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어느 곳에서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하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같은 소재로 여러 작가들이 어떻게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지를
소설 한편한편을 읽어나가면서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한,
소설집의 재미를 한 껏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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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며칠 있지 않아 마침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 여기는 KTX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도시라 버스를 타고 대구에 가서 KTX로 다시 갈아타야 한다. 곧장 가려면 비행기도 있지만 시간은 많지만 돈은 없는 나로선 좋은 선택이 아니다.
"KTX안에서 이책을 읽으면 되겠구나,,"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기차를 타고 나니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여자들의 수다와 아이들의 장난질하는 소리, 그리고 졸음,,, 기차안에선 오며가며 3편 정도의 글을 읽었던것 같다.
그리고 내가 본 서울과 소설속의 서울은 괴리가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클림트의 전시회를 다녀왔고 강남의 신축 아파트에 다녀온 내가 본 서울은 문화와 풍요를 누리는 서울이다.
서울에 살지않는 나는 소설속의 아픔들을 서울에서 느끼지 못한다. 차라리 소설속의 서울은 내가 사는 도시다.
도시의 삶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누구나 외롭다. 소통의 문제다. 도시인들은 자기가 하고싶은 말만 한다. 다른 이들을 말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
좋았던 작품은 권여선의 "빈찻잔 놓기", 김숨의 "내 비밀스런 이웃들", 강영숙의 "죽음의 도로"등 이었다. 타인으로 부터 상처받으면서도 견디어 나가야 하는 삶, 가장 가까운 부부끼리도 소통하지 못하는 삶, 타인에게 부담이 되는 줄 알면서도 도움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삶, 도시는 냉혹하다. 곧 서울은 냉혹하다.
하지만 냉혹함 속에도 온기는 있으리라. 그 온기를 찾기위해 노력하는 게 삶이 아닐까??
소설을 읽으면서 서울이 썩 다가오지는 않았다. "서울"하면 떠오를만한 진짜 서울에 대한 소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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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작가 아홉명이 서울을 그렸습니다. 여성작가들이 한 주제를 가지고 각기 다른 그들의 눈으로 서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혜경, 하성란, 권여선, 김숨, 강영숙, 이신조, 윤성희, 편혜영, 김애란이 바로 그녀들이다. 서울은 나의 고향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번도 다른곳은 가본적이 없다. 아니 태어난 동네를 벗어나지 않고 그 주위에 계속 살고 있다. 작가들은 모두 서울 태성은 아니지만 그녀들이 바라보는 서울 속으로 들어가본다.
아홉명의 작가중 편혜영의 소설 「크림색 소파의 방」이 나의 마음을 제일 움직였던것 같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갓난아이는 남편이 서울 본사로 발령을 받게 되어 이삿짐 차를 뒤쫓아 서울로 가는 중이다. 날은 엄청 습했고 갑자기 국도에서 노루가 뛰어들고 비늘 내리고, 와이퍼는 고장이 나고 알수 없는 청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드은 과연 서울의 집으로 도착할수 있을까?
짧은면서도 재미있는 내용들이 였습니다. 아홈명의 작가들이 서울에 관한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을때마다 새로운 서울을 접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간혹 서울 떠났지만 매번 곧 돌아왔다. 도시 전체가 옛 시대의 유산인 곳이나 빼어난 절경을 가진 곳에서도 나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내 서울이 그리워졌고 돌아오면 안도했다. 서울이 전적으로 태평하고 무사한 도시여서가 아니였따. 대개는 삶이 그렇듯, 그러 날은 일부에 불과했다. 안도감이나 그리움은 서울응 벗어나 있을때 가능했다. 서울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어수선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도시를 영영 떠날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 서울은 나와 가장 닮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편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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