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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세에서 좀 많이 지난, 23세이기는 하지만. 독서를 좋아하는 큰 이모와 책을 교환해 읽게 된 계기로 이 책 또한 읽게 되었다. 19세에도 본 적이 없었던 풋풋한 청소년 도서라 읽는데 상당히 재미났다. 이 책에서는 사춘기 고등학생 정수의 발칙하고도 귀여운 고민들을 그리고 있다.
막 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 정수는 또래보다 두 살 형인 승태로부터 성교육을 받곤 한다. 처음엔 나도 놀라서 '아니, 뭐 이런 얘기를 해?'하고 당황했었다. 1인칭 화자인 정수가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여서 고민이 상당히 솔직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귀엽기까지 하다. 학업과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사춘기 남자 청소년들에게 그리 드물지 않은 방황과 일탈들을 이 책에서는 보여준다.
정수와 승태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이 책의 아이들이 요즘 아이들에 비해서 순수한 편이니 흔하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평범한 사춘기 청소년으로, 청소년들이 읽고 공감하는 데도 좋겠지만 청소년에 대해 한층 이해할 필요가 있는 성인들이 읽는 것도 좋을거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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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안흥도서관에서 만나게 된 책이다. 이순원 작가는 개인적으로 친숙하게 여기는 저자 중에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인 『은비령』을 감동적으로 읽었고, 문학에 대한 자세를 쓴 그의 수필이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해서이다. 또한 은비령은 교단 시절에 내가 근무한 지역에 있으므로 작품에서 묘사한 곳을 일부러 찾기도 했던 인연이 있다. 그로 인해 작가의 작품을 몇 편 읽었는데 『19세』도 오래전에 읽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 책을 빌린 것은 내용이 거의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고, 분위기가 그리 험악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늘 느끼지만 나의 신통치 않은 기억력이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책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강릉 부근에서 성장한 ‘나’의 성장기라는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친구 누나에게 연정을 느끼고, 뜻한 바가 있어서 학교를 그만 두고 농사를 지었다는 것은 떠올랐지만, 더 자세한 내용은 전혀 깜깜했으니 새로운 작품을 읽는 기분이었다. 읽으면서 ‘아, 이런 내용이 있었지.’라는 대목도 있었지만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 독서에서만은 망각이 고마운 선물인 듯하다.
둘째, 작가는 1인칭 시점의 작품을 선호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은비령』을 비롯하여 『첫사랑』등이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1인칭시점의 작품들이다. 특히 그의 작품들에서는 주인공의 고향을 강릉으로 한 작품이 많아서 자전적인 경향이 강하다. 독자로서는 읽기에 편한 작품이라고 할까. 물론 1인칭시점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고, 어떤 한계는 있을 것이다.
셋째, 공중변소의 낙서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친구는 없고 누나 혼자 자고 있었다.’로 시작해서 여러 결말로 이어지는 화장실 낙서……. 주인공은 친구의 누나가 생각날 때는 이 낙서를 떠올리며 욕구를 해소하고 있다.
요즘은 볼 수 없지만, 80년대까지 대부분의 공중화장실(특히 터미널)마다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욕구가 그런 식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하필이면 왜 누나일까? 친구의 어머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친구의 동생에게도 차마 그럴 수 없을 테고. 예전에는 야설까지도 최소한의 금기는 지킨 듯하다. 이 이상의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의 청춘에 비해서 차라리 그 시대의 청춘이 행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넷째, 아름다운 그 시절, 19세 무렵이 그리웠다. 주인공의 고백을 들은 승희(친구 누나)는 이런 대답을 들려준다.
“감격스럽다. 내가 정수(주인공)의 그 말을 가슴 속에 간직할게. 정수도 오늘 내게 했던 말 영원히 잊지 말고. 우리는 거기까지야. 지금 정수가 한 말이 아름다운 건 정수가 지금 내게 한 말도 아름답지만, 그 말을 하는 정수의 나이가 아름답기 때문인 거야. 아마 스무 살만 지나가도 그 말이 스스로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몰라. 내 열여덟 살도 그랬거든. …중략… 그렇지만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 똑같은 생각도 어떤 것은 아름답지 않게 되어가는 것이 있어. …중략…내가 아니라도 앞으로 정말 정수 마음에 아름다워질 사람이 있을 거야.”-이순원 ‘19세’ 229쪽-
‘나’가 부끄럽지 않게, 먼저 한 ‘나’의 고백이 부끄럽지 않게 따뜻하게 내 마음을 만져주면서 달래주는 그런 누나를 만난 것이 주인공에게 행운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아름다운 연하의 청춘에게 곤란한 고백을 받았을 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남성 또는 여성이 되리라고 본다.
다섯째,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아버지의 말은 역시 감동적이다. 주인공이 대관령에서 농사를 짓기 위하여 상고를 자퇴하기로 결심하고 집을 떠나려 하자, 만류하던 아버지는 결국 포기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어쩌면 이게 니 학업의 마지막이 될지 몰라서 하는 얘기야. 나중에 커보면 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공부 많이 한 사람과 작게 한 사람의 차이는 그렇게 많이 나지 않는다.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의 차이도 그렇고.
그렇지만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적게 읽은 사람의 차이는 몇 마디 얘기만 나눠봐도 금방 눈에 보인다. 니가 대관령에 가서 농사를 짓든 뭘 하든 애비가 보내주는 책만 제대로 읽는다면 학교 공부 손을 놓는다 해도 어딜 가서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게다.”
“예, 명님(명심의 강릉사투리)할게요.”
“니두 이 다음 자식 키워봐라. 부모가 돼서 이렇게 하기가 쉬운지. 학교 다니기 싫다고 제 손으로 책에 불을 지르긴 했다만, 지금은 그렇다 해도 나중에라도 니가 니 갈 길을 잘 찾아갈 거라는 걸 애비가 믿기 때문에 보내는 거야. 학문이든 뭐든 세상 살며 한두 해 무얼 늦게 시작한다고 해서 마지막 서는 자리까지 뒤처지는 것도 아니고.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늘 생각하고….” -이순원 ‘19세’ 163쪽-
이 대목은 독서의 중요성을 가장 인상적으로 설명한 명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아름다운 시기인 19세를 바라보는 청소년들에게는 성인식의 안내서가 될 것이고, 그 시기가 지난 성인들에게는 향수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 중학생은 좀 이를까? 고교생 이상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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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지방으로 통하는 구비구비 고갯길인 대관령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년의 갈망이 녹아있는 곳일 줄은 정말 몰랐다. 고랭지 농업이란것을 지리 시간에 지식으로만 배웠지, 소설 속 소년처럼 고등학교를 작파하고 돈버는 어른이 되어보고자 선택하는 업이 될 수 있음도 몰랐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소년이 막 중학생이 된 13세부터 이 년 동안의 농사일을 접고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는 19세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성장통을 겪지 않는 사춘기가 있겠는가? 소년도 성에 눈뜨고, 더 넓은 세상을 그리워하며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어보고자 몸부림치는 격렬한 성장통을 겪는다. 교과서와 교복을 불태우고, 장발에 오토바이를 폼나게 몰고 다니기도 하고, 돈을 벌어 술집 작부들에게 호기롭게 지전을 찔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어른의 자유를 사기 위해 어깨에 피고름이 흐르도록 물지게를 지며 대관령에서 농사에 몰두한다. 왜냐하면 일로써 자기 경제권을 가진 사람일라야 진짜 어른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해본 끝에 찾아오는 허망함 - 자신이 어른 놀이를 하느라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다 하는 어떤 것을 정작 하지 못하고 있다는 깨달음에 소년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된다.
많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뭉클한 대목은 마지막으로 넘은 어른의 선인 성관계를 술집 여자와 하고 난 다음의 심리 묘사였다. 소년은 그것을 '그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그 뒤끝은 허망하고도 허망한 어른의 선이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오토바이를 몰고 경포대로 달려가 무가치하게 던져버린 자신의 순수에 눈물을 흘린다. 그토록 안간힘을 써가며 가 닿은 어른의 세계가 실상은 한번 건너가면 다시 오지않을 아이의 세계, 순수의 세계와의 결별일 뿐이었다.
'그것은 그렇게 함부로 허망하게 던져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참 나빴다. 열입곱살의 나쁜 아이였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의 불기둥을 껴안고 씨름하며 성장하는 한 소년의 모습이 이 소설엔 생생하다. 1970년대 초에 10대를 보낸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이 소설이 되었다지 않는가? 시대를 감안해보면 당시로서는 참으로 파격적인 10대였다는 생각이 든다. 성에 눈뜨는 대목이 빈번하고 그래서 민망하다는 리뷰에 대해서는 다소 이의가 있다. 아들 둘을 키워 본 경험으로는 이 정도(?) 묘사는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는 1319 청소년들이 자신만 성욕 과잉이 아님을 깨닫고 안도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소설 속 소년과는 조금 다르지만 대관령은 나에게도 어른으로 진입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이다. 고 3겨울 방학에 반 친구와 함께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다. 대학에 붙었다곤 하나, 아직은 엄연한 여고생 둘이 겨울 바다도 보고 여행도 한다고 길을 떠났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찔하긴하다. 그 때 대관령 넘는 길에 흰 눈이 펑펑 쏟아졌다. 차창에 쌓이는 눈을 보다 못해 기사 아저씨는 안내양더러(그 때는 예쁜 고속버스 안내양이 함께 타던 시절이었다!) 눈 좀 치우고 들어오라고 했고, 얇은 옷의 안내양은 바들바들 떨며 눈을 쓸었다. 그렇듯 눈길에 설설 기는 버스를 탔는데도 위험을 느끼긴 커녕 보호자 없이 떠나는 첫 여행에 진정 어른의 자유를 누리는양 설레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작가를 내가 사는 도시의 문학 강연회에서 보았다. 말씀도 어찌나 차분하고 진지하게 잘 하시던지~ 그런 인연에 이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오십대 중반인 현재의 작가 모습을 보아서인가, 소설에서 소년을 말리며 안타까워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작가 모습에 겹쳐졌다. 세월이란 그렇게 새파랗던 아들을 자식 걱정에 애타는 아버지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가 보다. 몸 속에 다량의 인화물질이라도 있는 양 보이던 거친 호흡의 청춘들은 어디로 갔는가? 정녕 세월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는 일인 것 같다.
문이당에서 시리즈로 펴낸 '청소년 문학선,으로 이 책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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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딸아이를 위한 책을 찾던중 이 제목을 발견하고 아이에게 읽혀주려고 내가 먼저 읽게 되었다. 성장소설은 언제나 읽어도 재미있다.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게 해주고 '내 그 나이 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하고 생각하다보면 늘 미소가 지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예전의 내 모습과 주인공들의 행동들을 보면 그때는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인듯 하다. 중학교에 들어가는 나이인 13살부터 19살의 소년소녀들에게 바친다는 저자의 말에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책에서처럼 그 시절의 청소년기와 지금의 청소년 아이들이 생각하는게 틀리긴 하지만 기본은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정수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2년을 농사를 짓지만 자신이 했던 농사짓는 일들이 어른 노릇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른 놀이였다는 걸 알게 되는 정수는 그러고 보면 빨리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다 때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만, 사춘기의 방황을 지내보는것도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보는 것도 다 때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물론 공부가 더 그러하다는 것. 나이 먹어서 공부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공부였지만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 학교 그만두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의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믿었던 정수에 대한 믿음. 어찌보면 열린 아버지가 아닌가. 나 같으면 갖은 방법으로 회유하고 윽박도 질러보고 했을 것이다. 얇기도 하고, 내용도 그리 무겁지 않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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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일기장을 보는 느낌으로 읽어진다. 정수가 13세부터 19세까지 있었던 굵직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평범하지만 너무 까지지도 않은 착한 아이다.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버티고 있는 잘난 형이 있고, 반항하기 미안할 만큼 제대로된 부모가 있으며 형편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형만큼은 안되지만 성적도 괜찮은 그런 남학생. 근데 생각이 너무 많았나? 여튼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컸고, 빨간지붕 집을 향한 그 욕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만큼 강단있었던 주인공의 사춘기 이야기다.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이 자신이 꿈꿨던 것들을 어쩌면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19세에 학교로 돌아가는 정수를 보니 뭔가 김이 새면서도 정수 아버지의 말들이 떠올랐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 딱 사춘기들이 읽어볼만할 것 같다. 물론 사춘기가 언제였지 조차 가물가물한 중년의 내게도 재미있었다.
p49 "사람이 늘 그렇게 살 것도 아닌데 편한 걸 알면 꾀가 나게 된다. 편한 걸 알게 되면 지 사는 데가 싫어지고 며칠 살아본 편한 곳만 자꾸 생각하게 돼. 니 거기 가서 공부 잘했다니 애비도 좋긴 하다만, 불편하게 사는 사람은 불편한 게 무엇인지도 알고 또 참고 커야 한다. 지금 그게 그렇게 돼 있는 니 몫이면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아나?" "알아요." "이제 앞으로도 이번만큼 성적이 안 나오고 그러면 니가 노력하지 않는 건 생각하지 않고 그런데서 공부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다." "안 그래요." "그걸 알면서도 니를 보낸 건 그 아이 성적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 아버지 얘기 때문에 그랬다. 나야 내버려두듯 놔둬도 느들이 잘 커줘서 그런 걱정은 않고 키웠다만, 그 아이는 중학교도 두 번이나 떨어졌다면서 그런 아들을 둔 아버지 심정이 오죽했기에 여기 찾아왔을까 싶어서. 무슨 말인지 아나?" "알아요."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대충은 알 것 같았다. "거기 가서 편했던 건 이제 잊어버려라. 니는 그집 아들이 아니라 이 집 아들이니까." . . 나는 아버지가 어떤 일은 허락하고 어떤 일은 허락하지 않는지 알고 있었다. . . "앞으로도 공부는 저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놔둘 겁니다. 즈들이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고 억지로 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나중에 대학 갈 때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즈들이 하고 싶은 쪽 공부를 하게 놔둘 거구요. 지금까지 즈들이 하기 실허도 억지로라도 시키는 건 농사일뿐이지요. 공부를 못하게 하면서까지야 시키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즈들이 밥 먹고 크는 집안 환경을 알아야겠기에 쉬운 일 궂은 일 가릴 것 없이 틈틈이 데리고 부리는 거지요. 밭에 쟁기대고 논에 쟁기 대는 일이야 아직 힘에 부치고 기술이 모자라 못한다 하더라도 봄에 논밭에 거름을 펼 때 에미 애비가 손에 똥을 만지면 즈들도 만질 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않는다고 에미 애비를 천하게야 보겠습니까만은 그걸로 즈들 키우는 에미 애비가 하는 일도 천한 것이 아닌 줄 알아야지요."
; 나는 정수 아버지가 좋더라는....웅...내가 꼰댄가. 여튼 정직하고 바른...아마 그래서 정수도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고 싶어하던 정수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같은 어른이 아니었을까...
p94 "아니. 니는 아직 모른다. 그렇지만 그걸 알면서도 아버지가 니 뜻을 허락하는 건 두 가지 생각 때문이다." . . "하나는 아직 어린 지금의 니를 못 믿어서이고, 또 하나는 나중에 다 자라게 되었을 때의 니를 애비가 미리 믿는다는 얘기다." . ." 지금이라도 때리고 달래서 니 생각을 달리하게 하고 싶다만, 그렇게 해서 강고를 간다 해도 이미 니 마음에서 떠난 공부가 돌아올 것 같지가 않다. 이제까지는 그런대로 했다만, 지금 에미 애비가 니 장래를 위한다고 억지로 니 뜻을 꺾으면 그나마 그렇게 하던 공부도 아예 손을 놓고 엉뚱한 생각이나 할까 봐 걱정이고. 지금이라도 애비가 널 믿으면 바로 잡아 보겠지만 널 믿지 못하니 니가 하고 싶어하는 대로 놔둔다는 뜻이다." "두 번재는 아직 알아듣기 어려운 얘기겠다만, 이제부터 니가 어떤 공부를 하고 또 어떤 길로 가든 나중에 좀 더 나이가 든 다음 언젠가는 니가 꼭 가야 할 길로 제대로 갈 거라는 걸 믿는다는 얘기다."
; 성적은 되는데 인문계를 안가겠다는 정수를 설득하다 안되니 아버지가 하는 말. 그냥 농사짓는 분이 아니었어. 요즘 부모들도 본받아야...물론 자기 자식들이 정수가 아니라는 문제점이....
p142 " 그 나이에 농사를 짓는 일에 어떤 매력을 느꼈다기보다는 물론 매력을 느끼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나는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때 내게는 농사만이 나를 그렇게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게 그때로선 유일한 길이었다." 나는 거기에 어른으로서의 조건을 한 가지 더 추가했다. 어른은 아이와 상관없이 일로써 자기 경제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 원래 청소년기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인듯. 그런데 정수가 대단한 것은 그것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해보았다는 것이다.
p144 아버지는 두 가지 약속을 하라고 했다. 첫 약속은 만약 내가 대관령에 올라가 짓는 농사가 첫해로 실패하고 말면 다음 해 군소리 없이 다시 학교로 갈 것.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약속은 대관령에 가 있는 동안 학교 공부는 하지 않더라도 아버지가 보내주는 책들을 다 읽을 것. 그것도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대답은 쉽게 한다만은 첫해 농사를 성공한다 하더라도 두번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도 군소리 없이 너는 집으로 내려와야 한다. " 예" "어쩌면 이게 니 학업의 마지막 이 될지 몰라서 하는 얘기야. 나중에 커보면 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적게 한 사람의 차이는 그렇게 나지 않는다. 잘한 사람과 적게 읽은 사람의 차이는 몇 마디 얘기만 나눠봐도 금방 눈에 보인다. 니가 대관령에 가서 농사를 짓든 뭘 하든 애비가 보내주는 책만 제대로 읽는다면 학교 공부 손을 놓는다 해도 어디 가서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게다. " 예, 명님(명념) 할게요." " 니두 이다음 자식 키워봐라. 부모가 돼서 이렇게 하기가 쉬운지. 학교 다니기 싫다고 제 손으로 책에 불을 지르긴 했다만 지금은 그렇다 해도 나중에라도 니가 니 갈 길을 찾아갈 거라는 걸 애비가 믿기 때문에 보내는 게야. 학문이든 뭐든 세상 살며 한두 해 무얼 늦게 시작한다고 해서 마지막 서는 자리까지 뒤처지는 것도 아니고. 이 말이 무슨 말인졷 느 생각하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고랭지 농사 지을러 간다는 아들에게 허락을 하는 장면. 믿는다는 것이 뭔지, 진짜 믿어주는게 뭔지를 알려준다.
p177 신선같지요. 에 붙은 주에 보면 그늘 밑에서 매미 소리 들으며 바둑을 두어야만 신선 노름인 것이 아니라 공부하기 싫은 사람한텐 지게질도 신선 노름인 것이다. 세상일이라는 게 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는가. ; 고등학생이...참 생각이 깊은 듯. 아버지 닮아 그런가?
p218 .... 그 수확을 마치고, 제일 처음 한 것이 강릉에 내려와 시내에서부터 경포대까지 최고 속도로 달려보고 다시 시내로 들어와 오토바이를 팔아치운 것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다음 해에 대한 내 뜻을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그러길 바라서가 아니라 나중에라도 다시 농사를 짓더라도 어떤 일에도 다 때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난 시간에 두려움처럼 두 번째 여름과 가을 사이에 했던 것이었다. 지난 초여름 내 오토바이 뒤에 타고 함께 대관령에 갔던 승태 누나도 나의 그런 생각을 도왔고, 그동안 아버지한테 받은 숙제처럼, 그리고 나중엔 거기에 내가 더 깊이 빠져 한 권 두 권 읽기 시작해 커다란 서가 하나를 채우고 남을 정도에 이른 책들도 나의 그런 생각을 도와주었을 것이다. 형도 제대해 집에 와 있었다. 그러나 그 제갈 무후도 내가 그렇게 해주길 바라기는 했겠지만 이제는 지난번처럼 함부로 내 삶에 대해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그 무렵 무엇보다 나를 우울하게 했던 것은 지난 이태 동안의 내 삶에 대한 내 스스로의 생각이었다. 왠지 그 기간 동안 내가 했던 것은 어른 노릇이엇던 것이 아니라 어른 놀이였다는 생각이 자꾸만 내 가슴을 무겁게 하던 것이었다. 이런 상태로 다시 한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 스무살이 된다고 해도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된다 해도 그 일에 대해 어떤 후회거나 미련 같은 것이 남는다면 그때에도 내가 하는 짓은 여전히 어른 노릇이 아니라 어른 놀이일 것 같은 생각이 들던 것이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 돈을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이 하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를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이 다하고 있는 어떤 것을 나만 하지 못화고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야 어떤 후회거나 소외감처럼 조금씩 내 가슴에 스며 들어 오던 것이었다. . . "그래. 그동안 니간 지은 건 농사가 아니다. 운이 좋아 남이 만지지 못한 돈을 만지긴 했어도 그거야 농사랄 것도 없이 노름이고 장난인 건지. 너는 그걸로 무얼 벌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만 더 크게 잃은 것도 있을 게다. 하지만 그냥 허송세월을 한 시간만은 아닐 게다. 그건 앞으로 니가 하기 나름인 게지."
. . 그래, 그런 것이 궁금한 것이 열여덟이거나 열아홉인 것이다. 어릴 때 성급하게 꿈꾸어왔던 어른들의 세계에서 다시 차곡차곡 그런 것들까지 하나하나 밟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아이들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태지만 참 먼 길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 훌쩍 어른이 되는 것 같지만, 하나씩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는 것이고,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없어지는 것이 제대로된 어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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