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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이 리뷰의 부제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처럼 스산하고 황량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그 남자의 인생만큼이나 쓸쓸하고 허허로운 사랑 이야기이다. Ethan Frome이라는 이름을 가진. 살면서 한 번도 삶의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했던, 어머니를 간호하러 왔던 여자와 결혼을 해서 부모나 조부모와 다를 바 없는 지리멸렬한 삶을 살던(글쎄, 김훈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비루하고 던적스럽던'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Ethan이 처음으로 느끼게 된 사랑 이야기이다. 사랑으로 설레고 사랑으로 질투하고 사랑으로 잠못 이루는. 그렇지만 그 사랑이 순탄할리가 없다. 등장인물들 간에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익숙해진 소설들과 비교해보자면 밋밋하다고 느껴질 만큼 갈등을 증폭시킬 만한 커다란 사건도 없고 인물들 간의 대립도 눈에 띄게 격하지 않다. 그러나 Ethan과 아내인 지나, 그리고 지나의 먼 친척이자 Ethan과 사랑하게 되는 매티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과 심리 묘사는 매우 세밀하고 촘촘하다.
나는 그가 자기 혼자 있다고 생각하고 지을 법한 그런 얼굴 표정을 보았습니다. “그래 저 사람이 백 살을 산다는 말입니까? 벌써 죽어서 지금은 지옥에나 있을 법한 사람처럼 보이는데요!” 하먼은 주머니에서 씹는담배 한 덩이를 꺼내 쐐기 모양으로 베어내어 가죽 주머니처럼 늘어진 한쪽 뺨 안에 밀어 넣었습니다. “ 저 사람은 스탁필드에서 너무 많은 겨울을 난 것 같아. 똑똑한 친구들은 대부분 다 떠나버리는데 말이지.” “그러면 왜 저 사람은 떠나지 않았나요?” “누군가 남아서 집안 식구들을 돌봐줘야 했지. 이선 말고는 아무도 그럴 사람이 없었거든. 맨 처음에는 아버지를…… 그다음에는 어머니를…… 또 그다음에는 자기 아내를 말이야.” “그러고 나서 그 충돌 사고가 일어났나요?” 하먼은 비웃듯 킥킥 웃었습니다. “그런 셈이지, 그러고는 그가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지.” “그렇군요. 그리고 그 뒤에는 집안 식구들이 그를 돌봐줘야 했단 말이군요?” 하먼은 생각에 잠긴 듯 담배를 다른 편 뺨에 옮겨 물었지요. “아, 그 문제로 말하자면, 보살펴준 쪽은 늘 이선이었을걸.”(pp.11-12)
"(전략) 말하자면 이선의 밥상에는 첫술을 뜰 때부터 질병과 걱정거리도 가득 차 있었던 거지.”(p.20)
Ethan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는 소설의 전반부에서 이미 소개된다. 그가 왜 그런 인물이 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도 소설의 전반부에 미리 다 이야기를 해준다. 결국 독자의 호기심을 끌 만한 핵심적인 사건은 '충돌사고'가 될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Ethan은 가족 모두의 삶을 짊어지며 살게 되었을까.
그러나 이 소설은 어떤 결정적 사건이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지는 않는다. 사건의 흐름을 좇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 상태, 그리고 그러한 심리 상태가 인물들간에 만드는 미묘한 긴장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누울 때 매티가 자기 방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 방에 켜놓은 촛불이 층계참을 가로질러 그 조그마한 광선을 내보내어 그의 방문 아래에 보일락 말락 한 줄기 선을 그어놓았다. 그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그는 불빛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p.68).
그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화제가 바뀔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마치 여름 미풍에 흔들리는 밀밭처럼 바뀌는 것에 놀랐다. 자신의 서투른 말솜씨에서 이런 매력을 발견한 것은 참으로 흥분할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사용할 새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p.103).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생각이 마치 독을 내뿜은 독사처럼 상대방을 향해 돌진하는 것 같았다. 이선은 이 장면의 공포감과 자기가 이에 가담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두 원수가 달라붙어 몸싸움을 벌이는 것처럼 무의미하고 야만적인 일이었다(p.125).
헤일 부인처럼 누군가가 자기에게 친절하게 말해주는 것을 들은 지도 오래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고생에 무관심하거나 그 또래의 젊은이라면 병자 세 사람은 아무 불평 없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p.157).
거기에서는 챙이 넓은 모자 아래 얼굴이 나무딸기처럼 반짝이는 매티가, 짓궂은 청년들한테 둘러싸여 모닥불 위에 커피를 끓이고 있는 중이었다. 초라한 옷을 입고 그녀한테 다가가면서 느끼던 수줍음, 그때 빛나던 그녀의 얼굴, 그리고 여러 사람들 틈을 뚫고 찻잔을 들고 자기한테 오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p.169).
개인적으로는 다음에서 보여주는 지나의 캐릭터가 이후 그녀의 감정 상태나 그녀의 행동 등을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게 이디스 워튼의 힘 같다.
그녀는 스탁필드를 얕잡아 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자기를 얕잡아 보는 곳에 가서는 살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베츠브리지나 섀즈폴스조차 그녀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선의 마음을 끄는 큰 도시에서라면 그녀는 완전히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게 될 게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p.83). 스탁필드에서 너무 많은 겨울을 날 수밖에 없었던, 아주 짧은 봄이 있긴 했지만, 그 짧은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더욱 가혹하고 혹독해진 겨울을 나야만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에 동화될 때 이 작품을 오롯이 감상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중독된 독자들이라면 무척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스토리이지만, 마음에 이는 파문은 작지만 힘있게 동심원을 그린다. Ethan의 사랑이 그러했던 것처럼. 겨울에 읽기에 좋을 만한 작품이자 이디스 워튼을 시작하기에 좋을 만한 작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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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 곳에 좀더 머물러 있으면서 수정같이 맑은 날씨가 지나가고 햇빛 한 점 볼 수 없는 추운 날씨가 오래 계속되는 것을 보았을 때, 2월의 폭풍이 그 운명의 마을 주위에 흰 천막을 둘러치고 3월의 강풍이 난폭한 기병대를 이끌고 이 폭풍을 지원하려고 돌진해 내려올 때, 나는 왜 스탁필드가 마치 굶주린 수비대가 살려달라는 애원도 하지 않고 항복하듯 여섯 달 동안의 포위에서 빠져나오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14쪽
이 문장을 작품 해설에서 발견하고 깜작 놀랐다. 읽는 도중에 접어두고 여러 번 다시 읽었던 문장이었던 까닭이다. 차갑고 길기만한 스탁필드의 겨울을 묘사한 이 문장은 내게 스탁필드가 어떤 곳인지, 마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짐작케 했다. 외롭고 쓸쓸한 시골 마을, 일년의 반을 흰 눈 속에 보내야하는, 외부와 단절된 고독한 그 곳에 학자가 되고 싶었던 이선 프롬이 산다. 그는 사고로 몸을 다쳐 불구의 몸과 얼굴을 가지고 새로을 것도 없고 즐거울 것도 없는 삶을 마지못해 이끌어 가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그는 도시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부모의 병으로 꿈을 접는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어머니를 간호하던 친척 누이 지노비어가 집을 떠나려 하자, 긴 겨울을 지낼 것이 두렵기만하던 이선은 충동적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 지나 역시 부모와 마찬가지로 병을 핑계로 이선을 괴롭히기만 한다. 그런 이선에게 삶의 한 줄기 희망이라면 집안 일을 도와주는 아내의 친척 매티뿐이다. 매티가 있으므로 그는 가난과 아내의 신경질이라는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집이라도 기쁘게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삶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꼼짝하지 못하던 이선은 결국은 소극적으로 저항을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고 그에게 남은 것은 온갖 추문과 불구의 몸과 역시나 불구가 되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만 살아가게 된 매티, 그리고 자신과 매티를 돌보는 지나였다.
이선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죽도록 일을 해도 아내의 약값을 충당하지 못하던 이선은 이제는 불편한 몸으로 아내와 매티까지도 부양하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오랜만에 읽어보는 이디스 워턴의 소설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섬세하고 떨리는 인물의 심리묘사는 나를 이선이 되게도 하고, 지나가 되게도 하며 책 속의 보이지 않는 서술자가 되게도 한다. 이상을 향한 평범한 사람의 몸부림과, 주위의 소문과 평판에 모든 것을 걸고 있던 당시의 풍습에 대한 서술들이 나를 충분히 그 시절, 예의와 인사를 중시하고, 품위와 도덕이 목숨이던 그 시절로 이끈다. 이미 <순수의 시대>에서 확인한 바 있는 고전을 읽는 이 즐거움을 다음 번에도 기약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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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턴의 작품은 처음인데 겨울이라는 제목에서 암시되듯 한적하면서도 을씨년스러운 겨울 날 어느 곳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다는 첫인상을 받았다.이 글이 20세기 초(1911년)에 나온 작품으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지만 아깝게 실패했다고 한다.작품성이 뛰어난 만큼 글의 구성이나 등장 인물 간의 자극적이지 않지만 표표하게 물 위에 떠있는 인물들의 미세한 움직임과 심리묘사가 매우 치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교통수단이 자동차와 전차 등이 발달되어 않았던 시대인지라 서부 활극에 나오는 카우보이마냥 말을 타고 등장하는 외지인 이선과 아내 지나 그리고 지나가 병이 깊어 집안 일을 거두어 줄 먼친척 매티가 한 지붕 아래에서 흑백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돌아 가듯 정중동이 이어지고 말과 행동도 격정적이지는 않지만 속앓이를 하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찌푸등한 표정의 얼개가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공간적 배경은 메사추세츠 스탁필드라는 외딴 마을이고 겨울날의 풍정이 파노라마와 같이 지나간다.아픈 아내를 위한 따뜻한 말 한마디,돌봄은 외려 집안 일을 돌보러 온 메티에게 가고 그 감정은 아내 지나로부터 불편한 심기가 싹트기 시작됨을 느끼게 한다.크게 요동치지도 않지만 아내 지나는 정신적 고립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외로움은 추운 겨울의 깊이와 맞물려 축적되어 간다.
매티는 지나의 제안에 의해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스트레스를 풀고 삶의 충전을 위해 무도회에도 나가면서 젊은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도 하고 함께 리듬에 맞춰 댄스를 추기도 한다.그러한 매티를 이선은 데리러 오면서 아내 지나에게 못느낀 풋풋한 연정의 싹이 트게 되면서 그 내면의 감정의 불씨는 점점 커져만 가고, 아내 지나도 남편이 매티에게 가까워지는 것이 시기와 질투를 느끼게 되면서 매티의 집안 일 솜씨가 서툴라는 것을 들춰 내어 불평을 늘어 놓고 환기를 준다.
아내 지나의 병이 완연하게 되면서 (그도 인간인지라)아내에 대한 연민의 정이 깊어만 가고 경제적인 이유로 수술을 주저한다.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내의 병마는 깊어만 가는데 매티가 이선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편지를 전하면서 매티에 대한 새로운 감정이 생기고 혼돈과 울분으로 교차되는 감정이 깊은 마음 속에서 폭풍처럼 휘몰아 치게 된다.이제 매티는 자기가 살던 고향으로 되돌아 갈 시간이 오면서 이선은 매티를 먼 길을 동행하면서 바래다 주는데 눈보라 속에 눈 속에 파묻혀 서로 죽을 뻔하다 기적적으로 살아 난 이선과 매티는 다시 이선의 집으로 돌아 오게 된다.
작가 이디스 워턴은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밖으로만 빙빙 도는 남편과 집안 일에 매달리면서 우울증,고독,혼돈,울분 등이 축적되어 갔다고 한다.이 겨울의 주인공 이선의 아내 지나가 작가가 처해 있는 정신적 고통,울분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20세기 초 여성이 남성보다 발언권이나 사회적 활동이 제약을 받던 시절이라 속으로 삼키고 인내하는 것이 극도로 힘들어 글로 나마 마음의 울분을 겨울이라는 시간적 공간을 삼아 각색했다는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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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변한다고 했던가, 하나라고 했던가.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 되기도 한다. 영원한 문학의 소재인 사랑, 19세기 고전 <겨울> 속 사랑은 암울하면서도 처절하다. <겨울>은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을 스탁필드가 배경인 액자 소설이다. 화자는 스탁필드 부근의 발전소에 파견 근무자로 역마차를 몰고 다니는 절름발이 이선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다. 폭설로 인해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선의 집에서 만난 두 여자, 24년 전 한 남자와 두 여자 사이에 일어난 끔찍한 사고는 무엇일까? 슬픈 운명을 짊어진 남자 이선은 화학자나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지만 병든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에 마을을 떠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질병을 잘 알며 간호해준 지나와 애정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매티의 등장은 새로운 삶의 목표가 된다. 애정없는 결혼 생활을 지속하며 아픈 자신을 떠날까 두려웠던 지나는 점점 더 괴팍해져 간다. 지나의 조카로 스탁필드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매티는 지나를 대신해 살림을 도와주며 자신에게 친절한 이선에게 사랑을 느낀다. 지나가 읍내로 치료를 받으러 집을 비운 하루 밤, 이선과 매티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황홀한 밤을 보낸다. 돌아온 지나는 둘 사이를 눈치채고 매티를 대신할 사람을 구해 매티를 집에서 내보려한다. 아내와 이혼하고 사랑하는 매티와 떠나고 싶은 이선은 현실을 벗어날 수 없어 괴로워한다. 같은 마음이었던 매티와 결국 이별이 아닌 영원한 삶, 죽음을 택한다. 매티와 썰매를 타고 언덕밑의 느릅나무에 부딪혀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운명은 매티에겐 척추가 부러져 평생 의자에서 살게 했고 이선은 절름발이가 되었다. 지나와 매티는 서로의 위치가 바뀌어 살게 되고 이선의 운명은 두 여자를 돌보는 것.
소설은 스탁필드의 겨울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하며 주인공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매티를 떠나보내야 하는 과정에서 이선의 마음에 대한 표현이다. 「이선은 자신의 가슴이 밧줄로 묶여 있고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시각각으로 그 밧줄을 바짝 조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p162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선의 슬픔이 서려 있다.
「작은 길은 오후의 햇빛아래 나무줄기가 붉은색으로 바뀌고 눈 위에 연푸른 그림자를 던지는 소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숲으로 들어갔을 때 산들바람이 그치고 따뜻한 정적이 땅에 떨어지는 솔잎과 함께 나뭇가지에서 내려앉는 듯했다. 눈이 하도 깨끗해서 숲에 사는 짐승들의 조그마한 발자취도 그 위에 복잡한 레이스 모양을 남겨놓고 있었으며, 그 표면에 붙어 있는 푸르스름한 솔방울들은 청동 장식품처럼 서 있었다. 」p 167~168 순백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자연, 그 속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볼 이선과 매티의 시선이 느껴진다.
순수한 마음이라고 강조해도 매티와 이선의 관계는 불륜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지나에 대한 사랑이 없었기에 매티에 대한 이선의 사랑은 이해받을 수 있는 것 일까? 죽음을 선택하게 한 사랑은 결국 그들에게 굴레로 남고 말았다. 각자의 봄을 꿈꾸었던 세 사람에게 더이상의 봄은 오지 않고 그 해 겨울만이 지속된다. 남편을 곁에 두었지만 매티를 돌보게 된 지나, 평생 사랑하는 매티와 함께 할 수 있게 된 이선 둘 중 어느 하나도 행복한 삶은 아니리라. 혼자만의 마음으로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인가 보다. 부질없는 욕망임을 진작 알았더라면 누구 하나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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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을 해야 할까? 이 책에 대해서는....
우선 <겨울>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쓸쓸함.... 그리고 도입부에 발견되는 기괴한 이선 프롬의 모습과 그 가족을 두고 하는 사람들의 수군거림.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었던 이유는 이야기의 구성이 액자식이었다는 데 있다. 화자가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구성하거나, 혹은 스스로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것. 이 책의 경우는 후자였고 굉장히 고전적인 느낌이 났다.
현대인의 시각으로만 봤을 때는 대체 이 뭐하는 시츄에이숑임미?! 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지만......나로서는...... 이선과 매티의 감정교류가 내가 어렸을 때....초등학생과 중학생 즈음? 그 시절의 감정 변화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마냥 신나게 읽어내려갔다.
좋아하던 오빠가 내 옆에 앉느냐 앉지 않느냐, 오빠가 무슨 이야기로 우리들을 웃겼는지, 오빠와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숨바꼭질하며 함께 둘이서 좁은 공간에 숨었던 일, 우리가 주고받았던 아주 사소한 대화들, 전기게임이라도 하면 손을 잡고 있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던 일,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게 된 일, 대문 앞에 앉아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던 일....
이 모든 일들이 상세하게 기록된 나의 일기장과 너무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오빠와 나의 결말은 <겨울>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그 분 아리따운 여성분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신다)
순수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그들의 감정은...그만큼 겨울의 막 쌓인 눈처럼....하얗고 순수했던 것. 물론 눈도 오래 쌓여 있기만 하면 때를 타듯....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감정들은 왜곡되고 순수의 빛을 잃기 마련이지만. 기괴한 이선 프롬의 모습처럼 변해버리기 마련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순수하던 모습이 있음을...
무엇보다 나의 어처구니 없으리만큼 순진했던 시절에 대해 떠올리게 해준,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 이디스 워턴에게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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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그대로 읽으면 ≪이선 프롬≫, 나는 ≪겨울≫이란 이름으로 번역 된 소설을 읽었다. 내가 읽은 이 소설엔 슬픔과 절망이 이분법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또한 작가의 내면 풍경으로 소설 속은 온통 겨울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색하기 좋아하는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대학 다닐 때, 작가에 대해 이미 여러 번 작가의 이름과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선배에게서 들었었다. 그리고 몇 해 전 그녀의 작품을 우연히 원서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책 선물을 받았는데, 원서였고 그녀가 바로 ‘이디스 워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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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 지나고, 봄도 도망가는 날에 읽기에는 너무 구슬픈 책이다. 이백쪽이 채 안되는 짧은 이야기와 사십쪽에 달하는 자상한 해설이 묶여 있는 이 책을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이미 오십대의 말없는 그 사나이, 이선 프롬이다. 그에게 겨울은 기구한 인생 만큼이나 겹겹이 그를 둘러싼 세월의 감옥이다. 그의 연애 이야기를 비극적 사랑이라고 불러주고 싶지만 그 결말이 더없이 춥고 스산하다.
다행히 시인이었던 저자 이디스 워턴은 이 감옥에도 여기 저기 찬란하고, 하지만 냉담하고 잔인한 겨울의 이미지를 깔아 놓았다. 그덕에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랑이야기가 (드라마'사랑과 전쟁'이 생각났다면, 내가 너무 통속적인걸까?) 그나마 잔잔한 생기를 띠었다.
흥미롭게도 이 비극에서 탈선남 이선은 '죄의식'을 동반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애인과 도망갈 궁리를 하면서 혼자 남겨질 지나를 약간 걱정은 하지만 곧, 자기가 남을 챙겨줄 처지도 못된다는 것에 절망한다. 그에게는 기독교적인 죄의식은 아예 없다. 신이 자신을 어떻게 벌하실까 하는 것으로 고민하지 않는다. '교회'는 피크닉을 열거나 '댄스파티'(물론 건전한)의 장소로만 언급될 뿐이고, 이선은 그 행사들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고 밖에서 들여다 보기만 한다. 다행히 교회윤리는 그의 감옥이 아니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것도 관심 밖이다. 그가 제일 저어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처 받는 일 뿐이다. 그의 자존심도 윤리적 명예가 아니라 경제적 궁핍함을 들켜 돌려 받게 될 동정어린 눈길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진짜 무서운 감옥은 연상의 마누라 지나다. 이 여자는 깊은 주름, 툭 불거진 광대뼈, 그리고 납작한 가슴으로 만들어진 할머니로 묘사된다. 눈보라가 일어서 도시의 활기와 격리되고, 금전적인 편리와도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이선에게 부인은 진짜 감옥이다.
이런 저런 감옥들 속에서, 젊은 이선은 이십대 후반임에도 더 용기내서 일을 '저지르지' 못한다. 서부행 운임 10불이 문제가 아니다. 매티와 이선이 서로의 갈등과 욕망 (이 단어는 이 소설에는 안 어울린다. 이선은 차라리 너무 선비 타입이다.)을 확인하는 순간, 절망적인 가난한 급속 연인들은 아, 차라리, 우리 죽자!로 결론을 내버린다. 하지만, 이 극단적인 선택도 이선이 아니라 매티가 내린 것이다.
인생은 너무 슬프다. 이렇게 어쩔줄 모르던 이선은 영감이 되어 버렸고, 그의 옆에는 두 가지 버전의 지나만 남는다. 그의 감옥은 벽이 더 높아지고 더 두터워 졌다.
철저하게 할머니(아마 이선은 마녀라고 부르고 싶었을거다) 취급을 당하고 자기의 온갖 병에 싸여 있던 지나도 결국 감옥 같은 시골의 칠년여의 결혼 생활을 푸념하고 있었다. 하지만,그녀는 그녀 대로의 결단을 내렸고 매티를 내 보낸다. 그리고 사고후, 용감하게 매티를 거두어 준다. 그녀가 복수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복수를 당하는 것일까. 한치의 애정도 없이 작가의 펜아래에서 냉혈인으로 그려지는 지나는 해설을 쓴 김욱동 교수 말을 빌자면 작가의 이해심없던 남편의 분신일 수도 있겠다.
김교수는 불행한 이선이 작가를 대변하고 있다고 봤지만, 나는 차라리 이선의 사고를 이야기해주는 헤일부인이 작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깡촌 스탁필드에서, 그나마 교육받고, 그나마 좀 있게 사는 헤일부인은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나' 화자에게 이야기의 처음을 (그 비밀스러움에 대한 호기심), 또 결말을 (진짜 이야기를 확인시켜주는) 책임지고 있다. 헤일 부인은 "고색창연한 저택에 걸맞게 희미하게나마 어느 정도 세련함을 지키고 있었"(15)고, "다른 사람들보다 우연히 감수성이 좀더 섬세하다는 것과 교육을 좀더 많이 받았다는 사실"(16)로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다. 이런 부인이 어떻게 매티와 허물없는 친구가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통념을 깨는 작가라 하더라도 이디스 워턴은 소설 속에서 이선이라는 촌부 속에, 혹은 그의 연인 매티 속에, 바로 동화되기는 싫었나보다. 좀 클래식한 감정의 묘사 (고양이를 통한 지나의 존재감이나, 사물을 통한 떨림을 전하는 식) 만큼이나 이런 안전장치가 19세기와 지금 나의 시간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요즘 작가들은 이런 점에선 더 용감하지 않은가. 그래서, 19세기의 여류 소설가, 이혼의 경력과 퓰리처상 수상 이라는 여러 수식어들이 이 소설을 읽는데에 크게 도움은 되지않았다.
말없고 돈없고 결단력 까지 없던 이선과 냉정하고 늙은 부인 지나, 또 너무나 발랄하고 대책없는 매티. 그들의 이 슬픈 사랑 이야기, 또 인생과 운명이야기는 그렇지만 참 낯익다. 어쩔 것인가. 어느 날, 삶에 치여 힘들 때, 가까이서 싱그러운 젊음의 웃음을 던져주는 그녀가 (혹은 그가) 다가 온다면. 내옆의 늙은 그 할망구(혹은 할아범)과는 너무나 다른 그 사람이 손을 내민다면, 나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하지만, 사는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라고, 이디스 워턴은 담담히 보여준다. 그 싱그러운 미소도 결국 나를 잡아 끄는 족쇄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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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중 오자가 보인다: 220쪽. <겨울>이 자연주의 전통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에서 자연주의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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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머물던 처음 얼마 동안은 생명력 넘치는 기후와 그 마을의 죽은 듯한 무기력 사이의 대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발전소에 파견 근무를 하고 있던 화자는 스탁필드라는 곳의 무기력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리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그곳의 이선이라는 인물에 집중을 하게 된다. 누구도 명확하게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이선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더 궁금해진다. 그런 기회에 이선의 마차를 이용하게 되고, 폭설로 인해 그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선의 과거의 시간들이 또 다른 이야기로 진행되어 진다. 잔인한 삶, 이 책에 등장하는 이선의 삶이 어쩌면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사랑과 욕망은 그에게 행복과 자유로움이 아닌 구속과 스스로를 더욱 자신 안에 가두어 놓게 만들어 버린다. 이선, 사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 또한 그는 지나라는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며, 그곳에 머무르게 되지만, 그는 사랑이라는 것을 찾지 못했고, 단지 그곳에 머무를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매티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아내의 조카로서 그들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함께 지내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 조금씩 그의 마음도 설레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과 감정은 현실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선과 매티는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되지만, 그 선택은 결국 이선을, 그리고 지나와 매티를 불행이라는 혹은 감정의 상실이라는, 혹독하고 잔인한 결과 속에 남겨지게 된다. “지금 살아가는 모습으로 봐서는 지금 농장 위에서 살아가는 이선네 식구들이나 무덤 속에 묻혀 있는 이선네 식구들이나 이렇다 할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이선의 무기력함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어서, 책을 읽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며, 그 감성들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아직 이해가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분간은 다시 읽게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번은 더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