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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가 5명이나 되길래 무오성 논쟁에 대한 결정판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번 읽고 서평을 쓰려했었다. 그러나 한 번만 읽고 서평을 쓴다. 여러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독(一讀)을 권한다.]
(1) 이 책에서는 5명(알버트 몰러, 피터 엔즈, 마이클 버드, 케빈 밴후저, 존 프랭키)의 기고자가 등장한다.
(2) 이 책의 편집자들이 5명의 기고자들에게 성경 무오성에 관한 각자의 입장을 제시하여 줄 것을 요구했을 때, 편집자들이 염두에 두었던 것은, 성경 무오성의 반대 논거로 제시되고 있는 성경의 난제 3가지를 주고, 그것을 풀어내기 위한 대전제로서의 '성경 무오성'이라는 틀을 구성해 보라는 것이었다. 알버트 몰러와 피터 엔즈는 이 질문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했고, 그에 적절하게 답을 주면서, 동시에 자신이 성경 무오성 개념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을 했다. 그러나 나머지 3명 즉, 마이클 버드, 케빈 밴후저, 존 프랭키는 그러지 못했다. 그저 성경 무오성 개념에 대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과, 무오성이라는 말의 의미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그게 전부였다. 3개의 난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도 왜 이것들이 문제되고 있고, 그렇다면 자신이 제시한 무오성 개념을 가지고 그것들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어야 하는데, 결국엔 자신들이 앞에서 했던 말을 반복하고 말았다. 편집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일에 있어서 실패했다.
(3) 물론 마이클 버드와 케빈 밴후저, 존 프랭키가 무오성에 관하여 한 말들은 귀기울일만 했고, 그로부터 배우게 된 것도 많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사람은 이 논쟁의 본질적 부분에 참여하는 일에 실패했다.
(4) 이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했던 생각들이다.
(5) 성경 무오성이란, [① 시, ② 비유, ③ 환상에 대한 기술(description), ④ 메시지 전달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표현을 사용한 부분] 이외의 부분에서, 성경이 이야기하는 사실 대조가 가능한 모든 진술은, 사실과 일치한다는, 성경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되는 성질을 말한다. 이 개념을 이렇게 고정시키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이 개념을 이렇게 고정시키고 나서 성경 무오성 개념에 관한 논쟁을 하여야 한다.
(6) 나는 성경 무오성을, "성경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있어서 언제나 옳다"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 점에 있어서는, 사실 대조를 했을 때, 성경의 진술이 거짓(false)일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런데 이 개념에도 사실은 문제가 있다. 성경은 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 바에 대해서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즉, 틀린 진술에 기반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 문제다. 그러면 우리는 이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쓰여진 책이 아니다. (영감에 의해 쓰여졌다는 말은, 그 영감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성경 기자가 성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②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쓰여졌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자들이 갖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오류를 용인하셨다. ③ 성경은 하나님에 영감에 의하여 쓰여졌고, [시, 비유, 환상에 대한 기술,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표현을 사용한 부분] 이외의 부분이면서, 사실대조가 가능한 부분에 대한 성경의 기술과 반대되는 증거들에 대한 인간들의 해석이 틀렸다.
(7) 무오성 논의는 사실 이 문제에 대한 씨름이기 때문에 이 내용들을 다루는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본다.
(8) 그리고 나는 이 책에서 추상적인 논의를 펼치는 사람들 때문에 좀 짜증이 났다. ① 학자들은 항상 추상적으로 말한다. 그들의 논의가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논의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표현이 우리 머릿속에 촉발시키는 이미지들은 환상일 수도 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작업이 상상 속 판타지들의 연산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② 또 자신들이 여러 성경 구절들을 통해 귀납적으로 추출해 낸 추상적 개념에 취(醉)해서 그 개념이 자기 머릿속에서 유래한 것임을 망각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그래서 그 개념을 성경 전체에 대한 규제적(regulative)이고 규범적인(normative) 개념으로 사용한다.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③ 그리고 마지막으로 논의의 본질과 질문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신학자들, 그러면서도 현학적인 태도로 자신의 비논리성을 감추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싫다. ④ 신학자들이 좀 과학철학을 공부했으면 좋겠다. "결정적 실험" 개념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참이든지 거짓이든지 판명이 될 수 있는 진술만 했으면 좋겠다.
(9) 기본적으로 성경은 평민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성경에는 계시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즉,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이 이유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뿐이다.
(10)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각 사람은 무오성 문제에 관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점에서 이 책은, 그에 관한 제대로 된 관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점에서도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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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접해보았을 개념에 대해서 논쟁하는 책이 나와서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책 읽기를 다 마친 지금은 매우 실망이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일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우선, 이 논쟁에 참여한 기고자들의 대부분이 신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기 보다는 자신의 학문의 깊이를 뽐내는 관점에서 논쟁을 진행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용이 핵심을
다루기 보다는 서로의 논리에 대한 꼬투리를 잡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자기의 관점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른 지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관점의 문제들이 핵심 논점으로 부각되어야 하는데, 서로 논의 하는 관점의 대부분은 여리고 성에 대한 역사성과 사도 바울의 다메섹 사건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예를 들면, P.210에 등장하는 예레미아서의 가장 이른 사본이
정경의 예레미아보다 짧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머지 저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신구약 성경이 결정된 배경, 외경의 정경화 문제, 신약성경에 다시 추가되었거나 왜곡되게 변경되었던 역사적 사실들. 이러한
다양한 사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같이 토론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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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새물결플러스 스펙트럼 시리즈의 5번째 책 성경 무오성 논쟁이 나왔다. 이 책은 각각 5명의 신학자를 세워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 성찰한다. 저자로는 알버트 몰러, 피터 엔즈, 마이클 버드, 케빈 벤후저, 존 프랭키 등이 있다. 여기서는 각자의 주장을 간략하게 정리해보겠다. 알버트 몰러 : 알버트 몰러는 남침례신학교 총장으로서 성경이 무너지면 복음주의적 신앙도 무너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성경 무오성의 근거로 성경의 내적증거(벧후 1:21)와 교회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호해왔던 역사, 그리고 성경의 권위를 지켜야하는 교회의 필요를 든다. 알버트 몰러는 성경무오에 대한 의문이 굉장히 현대에 와서 불거진 논쟁임을 언급한다. 몰러는 지속적으로 ‘고전적 교리’를 자신만의 논지로 변호한다. 피터 엔즈 같은 경우는 몰러의 논지를 ‘성경을 철저하게 연구할 경우’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비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경이 말할 때 그것은 즉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자세를 취한다. 피터 엔즈 : 피터 엔즈는 성경 무오라는 하나의 교리가 오히려 성경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포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피터 엔즈는 성경 무오의 교리가 교조화 되어 성경이 2000여 년전 고대 중동의 텍스트가 가진 특수성과 그로 인한 비평 또는 해석적 가능성을 닫는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특별히 시카고 성경무오선언은 문자적 해석에 대한 무오가 아닌 과학을 포함함으로써 문자주의로 변질되었음을 지적한다. 피터 엔즈는 성육신 모델을 가지고 무오성에 대한 논지를 풀어나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셨던 것처럼 성경도 신의 책이며 동시에 인간의 책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인간의 책인 성경은 문학으로서 연구될 여지를 풍성하게 남긴다. 마이클 버드는 이런 피터 엔즈의 논지에 성경에 대한 성육신적 모델은 성경의 신성화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마이클 버드 : 마이클 버드의 중심 논지는 성경의 세부적인 오류들을 인정하더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진실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 마이클 버드는 미국 복음주의 시카고 성경무오성 선언에 대해 비판한다. 먼저 버드는 무오성(inerrancy)이 아닌 무류성(infallibility)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오성은 과학과 역사적인 입장들과 연관된 개념이며 적용대상이 넓을 수 밖에 없지만 무류성 같은 경우는 적용 범위가 적으며 신앙적인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버드는 시카고 성경무오선언이 미국에 한정된 이야기임을 밝힌다. 케빈 밴후저는 버드의 시카고 성경무오선언 비판에 대해 분명 동의할 지점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미국적 특수성과 동시에 기독교사의 보편성도 지니고 있다고 노평한다. 케빈 밴후저 : 밴후저는 성경의 권위를 믿음과 실천, 즉 종교적 영역에서 강조하는 무류성과 과학과 역사를 포함한 영역에서의 권위를 강조하는 무오성을 구분한다. 밴후저는 성경 무오에 대해서는 영국 복음주의 대표적 신학자인 제임스 패커의 논지를 가지고 온다. 성경은 결국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항목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밴후저는 무오를 통한 문자주의의 부작용과 동시에 무류성을 강조함으로써 성경의 권위가 종교에 국한 되는 것을 모두 지적한다. 더불어 밴후저는 성경이라는 문자가 무오하다기보다 성경이 가리키는 진리가 무오하다는 입장을 지닌다. 마이클 버드는 밴후저가 논지를 위해 사용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무오성 논지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가 읽었던 오역이 많았던 라틴어 성경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논평을 한다. 존 프랭키 : 프랭키는 성서무오에 대해 변호하면서도 무오주의자들이 지닌 ‘고전적 정초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고전적 정초주의는 시카고 성경무오선언의 전제인데 극단적으로 전체주의적인 이야기이다. 더불어 프랭키는 성경무오를 위해서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하나님과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하나님의 행동과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이를 이해하도록 촉구한다. 여기에 몰러는 철학적 정초주의가 더 이상 쇠퇴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스펙트럼 시리즈는 심히 매력적이다. 나는 본문에 각 학자들의 입장을 간략하게 다뤘고, 또한 반박 또한 간단하게 다루었지만 모든 저자의 입장에 대해 모든 저자들이 논평하는 부분이 이 책의 백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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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이 만들어지는 과정. 농민들이 감나무에서, 감을 수확한다. 껍질을 벗겨서, 실에 꿰맨 후 매단다. 일정 기간을 지나면, 쫀득하고 단맛이 풍부해진다. 촉촉함을 머금은, 유일한 단맛의 과일.(사견이다.) 손과 햇볕, 바람이 중요 요소. 하나님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인간. 그 중 방법이, 성경과 만나기. 많은 오류와 논쟁이,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흐린다.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성경과 이 책을 먼저 읽어보기를. 곶감처럼 촉촉한 단맛을 머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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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5가지 다른 관점들의 주장과, 그들 상호간의 비평을 담은 읽기에 쉽지 않은 책.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인간 저자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내게는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기독교 교리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겠지만, 무오성의 이해에 있어서, 철저한 무오성에서부터 여러 편집자들의 손을 거치게 되면서 남게 되는 성경의 많은 오류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관점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