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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 그 붉은 동물이 되기 시작한 이후 인간의 언어를 점점 잊어가고 있다. 이게 인간의 언어로 쓰는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생각을 기록하는 데는 아직까지 별문제가 없다. 그동안 나는 내 정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성가시기 때문이다. 홍학을 좋아한다고만 해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질문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나는 홍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홍학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홍학일 뿐이다. (9쪽) 오한기의 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의 첫 시작이다. 화자는 스스로 홍학이라 말한다. 그러니까 그는 홍학인 것이다. 아니, 홍학일 뿐이다. 홍학이라 해서 특별한 게 아니라 그저 홍학일 뿐이라는 것. 흥미롭지 않는가. 과연 정말 화자는 홍학일까, 아니면 한낱 상상에 불과한 이야기일 뿐인가. 독특한 소설이다. 이야기의 전개도 흥미롭고 구성도 그러하다. 느닷없이 단어와 문장이 쏟아지기도 하고 소설에 접근할수록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쩌며 그것들은 화자의 주장처럼 인간의 말이 아닌 홍학의 말인지도 모른다. 인간과 홍학, 그들의 사랑은 가능할까. 그렇다고 홍학이 되어가는 남자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모든 걸 다 알려줄 수 없고 알려줄 능력도 내겐 없다. 그저 우선은 이렇게 놀라운 첫 느낌만 기억할 뿐. 우아한 외로움이란 이런 것이라고 몸으로 보여주는 홍학, 문득 홍학이 보고 싶다. 동물원에 가고 싶다. 그렇다. 홍학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