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퀴, 세계를 굴리다 The Wheel: Inventions & Reinventions』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몇 가지 생각이 스쳤다. 구례 운조루의 바퀴, 인도 산치대탑의 법륜... 그 찰나의 흥미로움이 뇌를 자극하자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충만해졌다...
1. 구례 운조루(雲鳥樓)는 여러 번 다녀왔다(몇 년 동안 왼쪽 위단에 자리잡은 블로그 대문 사진이 바로 운조루의 한 장면이다). 이 집터가 남한 3대 길지에 속한다거나 금환락지(金環洛地 선녀가 떨어뜨린 가락지가 있는 자리)니 하는 건 잘 모르겠지만, 그 집 사랑채 툇마루에서 기와 너머 오봉산을 바라보노라면 노장의 무위자연이 온몸을 감싸는 듯하였다. 그런데 그 큰 사랑채 아래 공간에, 나무로 만든 아주 큰 수레바퀴가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소 두 마리가 끌었다는 이 달구지 바퀴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더께가 예사롭지 않았다. 괜히 숙연해졌다.
![]() 2. 인도 산치대탑의 법륜은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본 화보집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탑에 바퀴 문양이 있다는 것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다르마 차크라(Dharma-cakra)라고 하는 법륜(法輪)은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행하신 첫 설법을 의미하며, 이것이 불상이 등장하기 이전엔 부처님을 뜻하는 상징이란 걸 그때 알았다. 법륜윤보(法輪輪寶)라 하여 고대 인도의 전차(戰車)와 같은 것으로 세계를 통솔한다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보기(寶器)였다. 이런 본연의 의미를 담아 불법으로 삿된 것을 물리치고 어느 한 곳에 머물지 말고 끊임없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러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비유이기도 하리라. ![]() 3. 바퀴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일 것이라는 생각이 상당히 근래에 나타났다는 것이 의아했다. 바퀴를 이용한 (수레, 우마차 등의) 운송기술은 고대인들에겐 탐탁지 않았던 모양으로, 저자는 바퀴가 '굉장한 발상'이란 기존 관념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아래 (우르의 깃발 Standard of Ur, BC2500~)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수메르의 전차나 이륜 전차도 전장에서 활약하기엔 (조그만 방해물이나 마름쇠로 무력화되는) 한계가 있었다는 거다. ![]()
그래서인가. 1850년대 이전까지 증기기관이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꼽혔고 1950년쯤에야 바퀴가 더 관심을 받게 되었다는 이 책의 출발이다. 그러면서 (축에 바퀴를 고정하여 바퀴와 축을 동시에 회전시키는) 윤축, 독립차륜, 캐스터를 소재로 하여 글을 풀어낸다. 14세기경엔 사륜차는 세계 어디에도 흔치 않았단다. 귀족들은 말을 타고 성직자는 노새를 타고 여성이나 노약자만 사륜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바퀴 달린 탈것에 대한 남성의 (남성성과 이동 수단을 연결하는) 태도 변화가 유럽 마차 혁명에 크게 공헌했다는데... 윤축이 있었기에 철도가, 사륜차가 있었기에 자동차가 있었을 거란 추측도 가능하다는 걸 넌지시 생각게 한다.
중국과 일본의 예를 들고 있는데, 중국은 기원전 1200년경에 유목민의 전차 사용법을 도입했으나 기원전 300년 이후 기병대가 전차를 빠르게 대체했다고 한다. 그러곤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이동 수단으로써의 전차는 사라졌다고 한다. 아니? 사륜은 몰라도 이륜마차는 계속하여 존재하지 않았나? 일본도 19세기 중엽까지 사람이 끄는 인력거는 있었지만 동물이 끄는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은 보기 어려웠단다. 저자의 주장을 얼른 받아들이기 쉽지 않으나, 저자는 고대인들이 바퀴를 알았지만 다른 운송 방법으로 충분하게 수요를 만족시켰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가정해 버린다. 운송 수단의 대혁신이라는 캐스터 부분이 좀 흥미로웠다. 캐스터란 대형할인점의 카트 바퀴를 생각하면 된다. 수평 회전과 수직 회전을 모두 할 수 있는 이 바퀴는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바퀴 달린 운송수단에 대혁신을 일으켰다는데 동의하게 되더라. 공항의 여행 가방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바퀴 달린 운송 수단 5,500년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를 이야기하자면, 오프닝은 '왜 바퀴를 발명했을까?'가 되겠고, 클로징은 '왜 캐스터를 발명했을까?'가 된다. 나는 그 시작과 끝의 경계에서 아직 정리가 잘 안 된다. 뭐~ 그냥 발명은 항상 필요가 있는 곳에서 이뤄진다는 정도에서 이해하고만다. 지금까지 생각지 못한 몇 가지 배움은 있었지만 참신하게 와 닿는 과학적 지식 이런 건 그닥 없었던 책읽기였다.. |
|
인류 문학의 기원이자, 방대한 규모의 그리스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읽다 보면 전차를 타고 전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고구려 벽화에도 바퀴를 이용했던 기록이 선명하게 남겨져 있다. 중세 시대를 지나오면서 서구의 전쟁터에서 전차는 쇠락했고 고려시대까지도 바퀴를 이용한 탈 것이 존재했던 기록이 남아있는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는 바퀴달린 마차 대신 가마가 사람들을 날랐다. 바퀴의 역사는 기원전 4천년에서 3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 역사상에 나타난 바퀴를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분류했는데, 양옆의 두 개의 바퀴가 차축 끝에 달려있어 차체가 회전할 때 함께 회전하는 장치인 윤축, 바퀴가 차축과는 독립적으로 제각각 굴러가는 독립차륜, 그리고 쇼핑카트나 가구 옮길 때 달린 바퀴인 캐스터가 그것이다. 바퀴가 처음 생겨난 이래, 인류가 발견해온 찬란한 문화유산들과 비교해볼 때 바퀴라는 것의 기술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된다. 바퀴의 마찰력은 주어진 동력을 훨씬 더 큰 힘을 부여한다. 그런데 왜 바퀴는 중국, 일본, 한국 등의 동양권에서는 역사상의 한 때 사라졌으며,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서구 문명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용되지 않았을까. 콜럼버스 이전의 미 대륙에 수레나 우마차가 없는 이유로 자주 설명되는 의견으로는 바퀴달린 이동수단을 끌만한 큰 짐승이 없었다는 의견이 있는데 제라드 다이아몬드가 이 관점의 지지자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불리엣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저자의 생각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이 역사상의 아주 긴 기간동안 바퀴달린 운송수단을 이용하지 않았던 이유와 비슷하다. 서양에서 각광받은 기술이 현재 지구촌을 지배하는 기술이 되었다고 해서, 그 기술의 근간이 되는 어떤 생활 양식이 다른 문화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유를 찾는 것은 서구적인 관점이다. 바퀴는 서구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먼 고대에서부터 사용되어왔고 발전되었었다. 기원전 1200년경 상왕조 시대에 유목민의 전차 사용법을 도입했던 중국의 전장에서 기원전 300년 이후에는 기병대가 전차를 빠르게 대치하였다. 바퀴를 사용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어떤 시대에 마차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콜롬버스가 신세계에 도착했을 때 바퀴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토착민들에게 바퀴가 유용하지 않아서였지 가축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바퀴달린 장난감을 만들었기 때문에 바퀴에 대해 알고 있었고 바퀴의 기술적 문제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 책에 의하면 사실은 바퀴가 전 역사를 통털어 늘 한결같이 유용했고 열성적으로 이용되었던 운송 수단은 아니었다. 말이 끄는 이륜 전차 암각화가 많이 남아 있는 사하라 남부지역의 여러 목축 사회에서도 거대한 가축 떼가 있었지만 바퀴는 없었다. 도자기 물레를 사용할 줄 알았던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도 또 일찍이 기원전 3천년부터 달구지와 전차를 사용했던 메소포타미아와 무역교류를 했던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 시대가 되었을 때에는 바퀴달린 이동수단은 부재했다. 기원전 3천년즈음 이륜수레와 사륜 전투용 우마차를 사용했던 중동에서도 기원후 첫 5세기 동안 바퀴달린 운송수단은 다 사라져버렸다. 서구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때(기원후 800년 이후 17세기 이전), 기사들에게도 마차는 천박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여성들의 이동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억압하는 수단으로 통하기도 했다. 프랑수아 1세(1515-1547)의 통치 무렵까지도 파리에는 마차가 세 채 뿐이었다. 하나는 왕비의 것이었고, 하나는 왕세자의 애첩의 것이었고, 또하나는 뚱뚱해서 말에 탈수 없던 귀족 남성의 것이었다. 바퀴에 깊게 패이고 진창인 비포장 도로에서 마차는 자주 전복되고 도시의 도로는 말의 배설물로 엉망진창이 되고, 사고가 잦았다. 이러한 별다른 기술적인 진보의 부재속에서도 17세기를 전후해 갑자기 마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그것은 이동수단을 바라보는 남성의 심리적 세계관의 변화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이 기사의 지위 기반을 향상시키고, 말탄 기사의 위상이 마차의 사용을 위축시켰다면,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군사적 위협과 군사적 명성은 사륜 수레를 원형으로 배치하여 포대로 사용하던 전법에 영향을 받아 마차에 대한 새로운 환상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마차의 인기가 급등한 17세기 거리의 교통과 배설물, 진흙 문제, 바퀴자국 등의 문제로 영국 의회에는 마차의 남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논의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기원전 1200년 무렵, 강력한 전차병을 보유했던 중국은 보병과 기마궁수의 진보로 이어졌고 전차 전투가 쇠퇴한다. 전차를 타고 이동하던 관습도 13세기 이전 몽골이 침략하기 이전에 사라졌다. 마차를 버린 중국이 대안으로 채택한 바퀴는 외바퀴 수레였다. 사륜 운송수단이 18세기까지 존재했으나, 영향은 미미했다. 책에 나와 있는 중국의 전통적 외바퀴 수레에 매료되어 사진을 조금 더 찾아봤는데, 방향을 가볍고 이동이 용이하고 방향 전환도 손쉬워서 농사일과 이동에 매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 대신 자동차가 동력을 대신하여 이제 바퀴달린 탈것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주요 운송수단이 되어버렸지만, 동력이 없이도, 우리는 여전히 바퀴달린 새로운 것들, 근대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수많은 바퀴달린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쇼핑카트, 여행용 트렁크, 휠체어, 유모차, 바퀴달린 의자 등등 수도 없이 많다. 자동차와 마차 사이에는 인간의 근력을 동력으로 이용하는 인력거가 아시아 권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인력거가 서구에서는 보이지 않고 동양에서만 보였던 이유는, 서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마차는 짐승이 끄는 것이고 따라서 인력거꾼의 지위가 짐승수준으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라는 건데. 인간을 사고 팔며 채찍질을 해대던 서구 제국주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식민지쯤 되는 미개발국가에 와서 이런 씨도 안먹히는 생각을 퍼뜨렸다는 건 개가 들어도 웃긴 일이긴 한데, 그들의 노예산업을 예외로 치더라도 인력거를 끄는 일은 공장일이나 광부일에 비해 건강에 덜 해로왔을테고, 말이 싸는 배설물과 각종 사회문제에 비교해봤을 때에도 친환경적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바퀴가 그 사회를 지적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서구인의 시각은 편견이다. |
|
바퀴를 인류 최고의 발명 중 하나로 꼽는 것은 아마도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 어떤 개념이나 물건 발명의 위대성을 가늠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것이 없다고 가정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바퀴는 정말로 대단한 발명품이다. 현재
인류 문명이 바퀴에 기대고 있는 것은 정말로 많다. 이동 수단의 대부분이 바퀴에 의한 것이니 말이다.
인류 문명 발달에서 바퀴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한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이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이 바퀴를 발명했음에도 그것을 이동 수단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단순한 장난감으로 이용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바퀴를 굴릴 대형 가축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인데, 바로
그런 지리적 한계가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 사회에 뒤처지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총, 균, 쇠』의 논리를 따라가면 그것은 굉장히 그럴 듯한 주장이다. 대형 가축의 부재가 늦은 문명 발달의 원인이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바퀴의 예를 든 것이었지만,
그것은 또한 바퀴를 운송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문명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바퀴는 언제, 어디에서 처음 발명되었으며,
어떤 발달 과정을 거쳤으며, 또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다른 학자들의 바퀴에 관한 가설들에는 오류가 없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리처드 불리엣의 『바퀴, 세계를 굴리다』이다(이 우리말 제목은 원제 『The
Wheel: Investions & Reinvestions』, 즉 “바퀴: 발명과 재발명”이라는 밋밋한 제목보다야 훨씬 독자를 끌어당긴다.
굴러가는 바퀴가 세계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이중적 의미를 잘 담고 있다).
저자는 바퀴가 동유럽 카르파티아 산맥 근처의 광산에서 광차를 굴리기 위해서 처음 발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 기원전
4,000년
전쯤 얘기다. 광부들은 광맥을 찾아 더 깊은 데로 들어갔고, 채굴한 구리를 옮기는 수단으로 바퀴를 발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의 바퀴는 차축 끝에 고정되어 축이 회전하면서 바퀴도 함께 굴러가는 윤축(wheelset)이었다. 이후 흑해 근방의 고분들에서 출토되는 마차들을 보면, 마차가 생활을 하는 장소, 즉 이동 가옥과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쓰고 있다. 이 때의 바퀴는 차축은 가만히 있으면서 양 끝에서 바퀴만 따로 굴러가는 것으로 바로 독립차륜(independently
rotating wheels)였다. 이 때까지의 바퀴는 통나무를 깎아서 만드는 것이었다면, 기원전 2,000년경부터는 바퀴살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는 이동수단을 만드는 이가 운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가벼운 바퀴를 고안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자는 그런 바퀴살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깎아서 바퀴를 만들만한 큰 나무가 드물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즉, 수요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공급에 따른 변화라는 것이다.
바퀴를 장착한 이동 수단이 곧바로 사람, 특히 남성이 탈 것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도 주목할 만하다. 사람이 타는 경우는 의식에 사용될 때였다는 증거가 여럿 남아 있는데, 말하자면 ‘과시용 바퀴’라는 것이다. 전차(戰車) 역시 일정 시기에 위력을 보였지만, 여러 지역에서 채택되지도 못했고, 그리 오랫동안 위력을 떨치지 못한 것도 흥미 있는 역사다.
16세기에 이르러 유럽에서는 이른바 ‘마차혁명’이라는 운송수단에 있어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는데,
이 원인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기존의 것과는 조금 차별적이다.
즉, 마차의 출현은 여러 기술적인 개선에 따른 것이 아니었고, 단지 유럽의 상류층 남성들이 이동수단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전쟁 등에 화포가 사용되면서 바퀴가 달린 이동수단의 효용성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시각이 유럽 중부에서 서부로 이동하면서 마차가 고급 이동수단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저자는 또한 중국 등 동아시아에도 관심을 둔다. 동아시아에서는 유럽과는 달리 사륜 이동수단, 즉 마차가 그리 널리 이용되지 않았다. 단지 군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륜 마차가 이용되었다는 것을 여러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을 주고 있지는 않다. 거기에 일본 등에서 인력거라는 게 발명, 혹은 처음 널리 이용되기 시작한 현상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사람이 바퀴 달린 이동수단을 ‘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인력거가 흥한 상황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만 한 것이다. 서양에서는 사람을 싣고, 사람이 ‘앞에서’ 끄는 것을 보고는 사람의 지위를 짐승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비방꾼들이 ‘모국에서 남녀 미숙련공을 낮은 임금으로 만족스럽게 고용해서 공장과 광산의 더럽고 위험한 일을 시켰고, 요강을 비우고 굴뚝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더러운 잡일을 거리낌 없이 맡겼던’ 것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며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인력거가 일본을 거쳐 동남아시아, 특히 인도 등지에서 성행하게 된 요인을 경제적 효율성, 도시 생활양식, 노동 인구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그곳에서는 그럴 만 하다는 얘기다. 반면 일본의 경우엔 사회적 지위와 연결하고 있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것은 바로 캐스터에 대한 것이다. 바퀴라면 모두 바퀴인 줄 알았는데, 바퀴는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두 개는 앞에서도 언급했던, 윤축과 독립차륜이고,
나머지가 바로 캐스터이다.
그런데 이게 낯선 것이 아니고, 가구 바닥이나 여행가방 등에 달려 있는 바퀴가 바로 캐스터이다.
차축을 중심으로 회전도 하고 위쪽에 달린 소켓이 수직 회전축을 중심으로도 회전하는 바퀴이다. 생각해보면,
이 새로운 개념의 바퀴인 캐스터가 얼마나 유용한 바퀴인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실제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저자는 당연히 왜 그런지도 분석하고 있다. 주로 가축이 이동수단을 움직이는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상황에서는 이 캐스터가 별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 바닥이 평평해야만 캐스터가 온전히 이동수단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이렇게 보면, 바퀴에 관한 역사는 거의 다 개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들 말고도 바퀴에 대해서 더 파고들게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정도면 바퀴가 무엇인지,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세부적인 데 치중하는 면이 없지 않고(그것도 특정 부분에서만), 논리가 분명하지 않은 부분도 없지 않은 점은 아쉬운 점이지만 그래도 바퀴 하나에 대해서 이처럼 관심을 갖고 대중적으로 풀어내기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바퀴는 세상 속에 굴러다니며, 세상을 굴렸다. |
|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비단 철만은 아니다. 철 보다는 좀 소음이 나겠지만, 바퀴 역시 철만큼 오늘 우리의 세상을 움직인다. 아마도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바퀴. 출퇴근 때도, 여행 갈 때도 그리고 마트에서도 우리의 바퀴의 힘을 빌린다. 그런 바퀴는 어떻게 세상에 태어나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만화나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것처럼 바퀴는 정말로 석기 시대부터 있었을까? 그런데 문득 우리나라 조선 시대 사극 드라마가 생각난다. 사극 하면 흔히 보게 되는 가마. 고관대작들도, 양반집 규수들도 모두 네 사람이 드는 가마를 타고 다닌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그 때 분명 소가 끄는 우마차가 있는 것을 보면 조선 시대에도 바퀴의 효용성을 충분히 알려진 것 같은데, 어찌하여 바퀴의 힘을 이용한 교통 기관이 발달하지 않고 계속 사람의 힘에만 의지한 것일까? 혹시 드마라를 보면서 이런 궁금증을 가져 본 적 없었는지? 나는 가졌다. 같은 시기, 유럽에선 말이 끄는 마차가 등장했다. 그런데 유럽보다 문명이 그리 떨어지지 않은, 아니 어떤 의미에선 더 발달했을지도 모를(오로지 과학적 잣대로만 문명의 발달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너무 협소한 시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조선에선 마차가 등장하지 않은 것일까? 그러고 보면 서양의 과학 기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뒤라 할 수 있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도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했던 것은 사람이 끄는 인력거였다. 인력거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을 감안한다면 동물을 사용한 교통 기관은 동아시아에서 자리 잡은 적이 별로 없다. 도대체 이것은 어찌된 연유일까? 바로 그 궁금증을 한 권의 책으로 모조리 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리처드 불리엣의 '바퀴, 세계를 굴리다'이다. ![]() 이 책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바퀴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아주 논쟁적이다. 왜냐하면 바퀴의 탄생과 흐름에 대한 기존의 학설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바퀴의 탄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학설은 고고학자 스튜어트 피곳의 것이었다. 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바퀴가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컬럼비아대에서 중동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리처드 불리엣은 그것이 틀렸다고 말한다. 바퀴를 사용했던 가장 초기 흔적은 원래 동시대 유럽과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모두 발견되고 있는데, 피곳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바퀴의 창세기로 삼은 것은 연대를 측정하는 '탄소-14 연대측정법'을 적용할 때, 비슷한 수명을 지닌 나무의 '탄소-14' 감소 수준을 측정해 비교하는, 흔히 말하는 '나이테 조정'도 함께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아 일으키게 된 착오라고 꼬집는다. 그리고 나이테 조정까지 감안하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아니라 유럽, 그것도 카르파티아 산맥의 구리 광산이 바퀴가 최초로 사용된 곳이라 주장한다. 그의 근거는 꽤나 설득력이 있는데, 그것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라고 여기서 비로소 그의 진짜 의문은 시작된다. 왜 하필이면 여기일까? 이 질문은 이 책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술과 환경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고정관념 비슷하게 가지고 있었던 생각에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술과 환경. 우리는 지금까지 기술이 환경을 이끌고 간다고 생각했다. 에디슨이나 벨의 허다한 발명 스토리처럼, 한 천재의 영감과 노력 속에 기술이 태어나고 그것이 우리의 환경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다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이 기술이 자연을 리드하고 환경은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퀴를 매개삼아 펼치는 리처드 불리엣은 그 생각과 반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환경이 기술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보았던 토인비처럼 환경이 인간에게 어떤 한계를 부여하고, 그 한계를 초월하려는 노력에서 자연스럽게 결실을 맺게 된 것이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구리 광산이 그렇다. 기원전 5,500년 전 당시 사람이 굳이 지하로 굴을 파고 구리를 캐냈던 이유는, 그런 구리라야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대의 기술로는 아주 적은 구리밖에 못 캐냈고 많은 인부를 이용하면 수지가 맞지 않았다. 결국 적은 인원으로 보다 많은 구리를 캐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이 등으로 져 날라야 하는 구리의 양이 또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소와 같은 짐승을 이용하면 되지 않ㅇ아 생각하실 것 같은데, 그 때의 기술로는 넓은 굴을 파는 게 어려웠기에 짐승은 굴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렇게 여기를 막으면 저기가, 저기를 막으면 또 여기가 터져 나오는 문제에 대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퀴를 이용하게 된 것이었다. 토인비 말대로 도전에 대한 응전의 결과였다. 이 때, 사용된 바퀴는 윤축이었다. 바퀴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윤축, 독립 차륜 그리고 캐스터다. 이런 말이 생소하게 다가오실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윤축은 바퀴와 양 바퀴를 연결하는 축이 일체라 바퀴와 축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바퀴의 가장 초창기 형태로, 구리 광산에서 쓰던 바퀴도 윤축이었다. 독립 차륜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축은 움직이지 않고 바퀴만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윤축에서 독립 차륜으로 발달되었다.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는 사륜 마차는 이런 독립 차륜이다. 캐스터는 차축과 바퀴가 모두 다르게 회전하는 것을 말한다. 마트에서 흔히 사용하는 카트의 바퀴가 이런 '캐스터'라 할 수 있다. 카트를 이용한 경험을 떠올려 보면 독립 차륜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금방 이해하실 수 있을 듯 하다. 카트는 우리가 방향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만 독립 차륜을 그렇게 할 수 없다. 서부 영화를 보면 마부가 마차의 방향을 급히 바꾸면 마차가 쓰러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독립 차륜이라 그렇다. 바퀴는 이렇게 크게 세 단계로 발달되어 왔다. 우리는 바퀴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라 생각하는데, 리처드 불리엣은 실은 그게 근대에 들어와 새로 생겨난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퀴의 역사는 비록 오래되었을망정 근대가 될 때까지 문명의 무대 변방으로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바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널리 사용 되지 못했다. 지형 때문이었다. 길은 좁고 험했다. 방향도 바꾸기 어렵고 옮기는 데 인간의 근력을 아주 많이 필요로 하는 바퀴 보다는 그냥 사람과 짐승이 옮기는 게 더 편했다. 사용이 별로 없으니 바퀴의 발달은 느렸고 그래서 독립 차륜이 생겨난 것은 그로부터 5백년이 지나,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 지방인 흑해 북부의 평야 지대였다.
이 때엔 짐승이 끄는 우마차가 많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무역이 성행했기 때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우마차에 싣고 다녔던 것이 바로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흑해 북구 평야 지대의 사람들은 마차 위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유목민이라서가 아니라 홍수의 공포 때문이었다. 기원전 5천년, 빙하기가 지나고 얼음들이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해 해수면이 올라갔다. 그래서 흑해 해안의 광대한 지역이 홍수로 물에 잠겼다. 더구나 그것은 한 번도 아니었고 시시때때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은 정주를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독립차륜으로 된 우마차에서 살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렇게 독립차륜 역시 환경의 역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바퀴는 그렇게 필요에 의해 우리 앞으로 도래했다.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마차 역시 근대에 들어와 더욱 발전하게 된 교통의 발달이 가져온 게 아니었다. 우리는 이것이 과학 기술이 가져온 수혜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리처드 불리엣에 따르면 심리적 효과가 더 크다고 한다. 더구나 마차가 발달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마가 발달하게 된 이유와 놀랍도록 흡사한데, 그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 억압과 관계가 있다. 당시 남성 중심 문화는 여성을 가급적 이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남성들은 그것으로 여성과 차이를 만들려 했고 또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남성은 말을 타고 멀리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여성은 가마나 마차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격리된 가운데 오직 짧은 거리만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는 마차가 처음부터 먼 거리를 이동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능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남성들은 마차 타는 것을 아주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란슬롯이 선언했듯, 남자라면 마차를 똥을 피하듯 해야했다. 그것은 오로지 미천한 신분과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16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남성들도 마차를 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것 같다. 분명 우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가 타는 태양 전차라든가, 영화 '벤허'에서의 경주 전차처럼, 남자들이 말이 아니라 바퀴 위를 타는 것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랬다. 사실 바퀴는 실용적인 면보다 과시적인 면에서 더 많이 사용되었다. 이를테면 왕과 여왕이 백성 앞에서 행진할 때처럼 말이다. 그럴 때 바퀴는 타고 있는 사람의 신분과 권위를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들과 확실히 구별하기 위해 크기도 더 커지고, 외양도 화려해졌다. 요컨대 '바퀴살'은 그런 용도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바퀴살이 하나의 나무에서 깍은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것은 여러 판자를 덧대어 만들어졌다. 꽤나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기에 장인만이 할 수 있었다. 그런 바퀴는 누구나 쉽게 구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므로 가지고 있는 자의 권위를 수월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바퀴엔 이런 점이 있었다. 우리는 실용성이 바퀴를 지금처럼 발달시켰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바로 이런 과시 효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 때문에 바퀴가 발달해 온 것이었다. 남자들이 16세기에 이르러 마차에 타게 된 이유도 거기 있었다. 당시 '후스파 전략'이란 게 있었다. 전차를 이용한 전략인데 곳곳에서 승리를 거둬 남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 원래 전차는 조그만 장애물에도 걸려 넘어지는 등 전쟁에서 별 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후스파 전략은 전차를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이제 전차는 용맹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용맹이야 말로 여성과 구별되려는 남성이 가장 바라마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성들이 마차를 타게 된 것이었다. 마차의 탑승이 자신의 남성성 과시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바퀴는 환경을 이끌기 보다 환경에 의해, 실용적인 면보다는 심리적인 면 때문에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한 생각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어떻게 보면 스티브 잡스는 이런 기술의 모습을 보다 일찍 알아차린 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애플의 매력을 구매자의 심미적인 면과 심리적인 면에 보다 호소하도록 하고, 아예 구매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매개체로 만든 것은 여러 면에서 16세기 이후 유럽 남성들이 마차를 타게 된 이유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인력거를 애용하게 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기술은 그 자체의 효용성 보다 환경이나 사용자의 욕구 혹은 욕망에 맞아 떨어졌을 때 더 많이 발달했다. 스티브 잡스도 강조했듯이, 우리가 과학만큼 인문학도 열심히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기술의 수명 또한 인간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를 더 많이 원할수록 우리가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진리를 이 책은 바퀴의 운명을 통해 충분히 납득시키고 있다. |
|
인류의 역사를 견인해온 것 중 하나가 바퀴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최고의 발명품 1위로 거론되는 바퀴의 중요성은 누구나 동의할 듯 싶다. 운송수단부터 생활용품, 장난감, 기계 속 어디에도 바퀴는 존재한다. 이 책은 그런 바퀴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기존의 통념과는 조금 다른 저자의 참신한 주장이 담긴 책이다. 기존의 단순한 통념에 맞서 실증적으로 증거를 제기한다. 사소한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저자는 진정한 바퀴 덕후가 아닐까 생각된다. 바퀴가 어떻게 발명되었고 발달해왔는지 이 책은 보여준다. 바퀴가 어떻게 문화적, 심리적으로 인류와 연결되어 왔는지, 그리고 어디에 수요가 존재했는지 밝혀준다. 저자의 주장을 보자면 이렇다. 먼저 바퀴의 탄생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의 주장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바퀴의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해보겠다. 그래야 아래 글들이 이해가 쉽다. 먼저 바퀴는 세번 발명되었다. 바퀴에는 윤축, 독립차륜, 캐스터 세 가지가 있다. 윤축은 바퀴 두개가 하나의 축에 고정되어 있는 바퀴이다. 열차나 광산에서 광차의 바퀴가 윤축이다. 독립차륜의 자동차같이 하나의 바퀴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바퀴이다. 캐스터는 우리가 마트 카트의 앞 바퀴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바퀴뿐만 아니라 바퀴의 축도 함께 회전한다. 방향전환이 360도로 자유롭다.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의 바퀴도 캐스터이다. 바퀴가 탄생한 세 지역은 각각 바퀴에 대한 세 가지 생각이 있다. 첫째,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광부들은 석조 터널을 따라서 사륜광차를 밀었다. 광차의 바퀴는 차축과 함께 회전했는데, 유럽에서는 철도시대의 서광이 비치기 전까지 5,000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윤축이 달린 광차를 만들었다. 둘째, 흑해 평야부터 동쪽으로 이어지는 지역에서는 소가 끄는 사륜수레가 유목민의 주거지를 싣고 스텝 지역을 천천히 횡단했다. 사륜수레의 바퀴는 속이 꽉 차고, 두꺼운 바퀴통이 있으며, 차축 양 끝에서 제각기 회전했다. 셋째, 수메르에서는 경외감에 젖은 신자들이 소가 끌고 가는 썰매 위의 사당을 구경했는데, 썰매에는 바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한편 지배층 전사들은 거창하지만 어설픈 전투용 사륜수레를 타고 행진했고, 사막을 아주 위험하게 질주하며 완전히 길들지 않은 야생당나귀와 씨름했다. -p137 다음은 바퀴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다. 1. 기원전 3000년에 사륜수레를 타고 가족이 이동하는 전통은 흑해 평야에서 유럽 북부로 퍼졌다. 2. 기원전 2000년 이후 이륜 이동수단은 대부분의 용도에서 사륜수레를 대신했다. 전차는 전장을 지배했지만 이후 들어서면서 시대에 뒤떨어져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소작농의 경제에서는 이륜수레가 만연했지만, 로마제국에서는 주로 상류층 승객이 사륜 이동수단을 사용하는 모습이 여전히 가끔씩 보였다. 3. 기원후 800년 이후 기사가 갑옷을 입고 전마에 탄 모습은 점점 더 유럽의 귀족 남성을 규정하기 시작했다. 승객용 사륜수레는 상류층 여성과 그녀의 여성 수행원을 나르는 용도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4. 16세기에 유럽의 귀족남성은 점차 바퀴 달린 운송수단을 무시했던 태도를 버리고 마차를 타기 시작했다. 5. 바퀴에 대한 귀족 남성 태도가 호감을 보이는 쪽으로 변하는 현상은 유럽 중부에서 서쪽으로 퍼져갔다. 이는 유럽 중부가 대륙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로 부상하는 현상에 기반했다. 6. 헝가리 단어 kosci와 화약 무기를 가리키는 체코 단어는 서쪽의 다른 유럽언어로 퍼져서 뿌리를 내렸다. 이 현상은 15세기 들어 약 30년 동안 이어진 후스 전쟁이야말로 상류층 남성의 사고에 방대한 변화를 가져온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p196 바퀴는 수레, 전차 등에 쓰였다. 짐과 사람을 실어나르는 운송수단에도 쓰이고 대포나 전사를 실어나르는 전쟁터에도 쓰였다. 바퀴에 대한 인식과 개념, 심리적 요인은 시대를 따라 점차 변화했다. 마지막은 이 책에 대한 요약글이다. 윤축과 독립차륜을 딱 한 번만 발명했을 리 없어 보이는 것처럼, 캐스터도 확인할 수 없는 영국의 어느 가구 공장에서 한 번만 발명했을 리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채택하지 않은 발명은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발명품을 채택하느냐의 문제는 우리도 보았다시피 많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경제성, 군사적 효용성, 사회 계급, 성별, 미학, 종교 등 광범위한 고려요소가 있는가 하면, 나무 이용 가능성과 지형의 험한 정도처럼 지엽적인 것도 있다. 다양한 고려요소들 사이의 여러 가지 상호연관성을 분명히 하면서, 바퀴의 이야기는 발명이 누가 무엇을 처음으로 생각했느냐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한다. -p260 바퀴가 오래 전에 발명되었으에도 불구하고 문화나 심리적 요소에 의해 지역별로 사용이 제한되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바퀴는 단독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 도로와 바닥같은 요소들과도 상호적으로 발전했다.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바퀴와 바퀴의 역사에 대해 폭넓게 알 수 있는 책이었다. |
|
바퀴의 탄생, 몰락, 그리고 부활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많다. 집에는 컬러 TV와 라디오는 당연히 있고, 침대와 소파, 의자, 집안에 부엌과 화장실이 있는 것, 도로에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고, 그 위로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가 다니고 있는 것,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지금 누리는 것들 중 대부분은 없던 물건들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살아오면서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에는 쉽게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
|
<바퀴, 세계를 굴리다> (원제 The Wheels: Inventions & Reinventions )
리처드 불리엣(Richard W. Bulliet) 지음 | 소슬기 옮김 | MiD출판사
“바퀴달린 이동수단의 가장 오래된 흔적은 기원전 4000년 경에 남겨졌다.” (148면) 실증적인 1차 증거물들에 매달리는 고고학자들과 역시 1차 사료에 기반하여 역사학자들은 이와같은 평가를 내린다. 리처드 불리엣은 역사가로서 바퀴라는 대상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추적해나가는 역사 탐정과 같은 인상을 준다. 독자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며 고고학자 내지는 역사 탐정이 된 것처럼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는데, 그 과정을 따라가는 일이 줄곧 흥미를 자극했다.
(바퀴를 바라보는 세 가지 형태) 저자가 정리한 세 가지 형태의 바퀴는 두 바퀴를 잇는 축과 두 바퀴가 일체형을 이루어 같이 돌아가는 바퀴 형태인 ‘윤축(wheelset)’, 두 바퀴가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독립차륜(independently rotating wheel)’, 그리고 ‘캐스터(caster)’라고 하는 수직축과 수평축을 통해 바퀴가 보다 더 큰 자유도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바퀴가 있다. 역사적으로 윤축을 적용한 사례는 광산에서 사용되어 무거운 석탄 등을 나르던 광차 및 기차가 그 한 예일 것이며, 독립차륜은 마차바퀴, 자동차 바퀴를 연상하면 된다. 이에 더하여 윤축 형태의 바퀴보다 다소 늦게 그러나 거의 비슷한 시기 동안 인기를 누린 바퀴의 형태는 바로 ‘독립차륜’ 방식의 바퀴로서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바퀴의 형태를 이루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 편 앞의 두 바퀴 형태와는 달리 ‘캐스터’는 가구 이동용 바퀴처럼 한 개의 수직회전축과 한 개의 수평회전축을 가진 바퀴의 형태로서 비교적 짧은 역사로서 1700년대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설명대로 바퀴의 형태를 크게 세 부류로 나누고 나니 길을 가다가도 무심히 ‘저 유모차는 독립차륜’이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11개의 장 중에서 ‘캐스터’에 관한 장은 마지막 11장에 간단히 언급되므로 사실상 이 책 <바퀴, 세계를 굴리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윤축’과 ‘독립차륜’ 이 두 형태의 바퀴와 관련한 사항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심리전의 중요한 요소로서의 이륜전차) 언젠가 이집트 파라오의 전차(Chariot)를 주제로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본 기억이 있다. 학자들과 과학자들이 현재 남아있는 유물과 기록들을 토대로 실제 파라오의 전차를 재구성하여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는데, 이 책에서 바퀴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히 두 마리 말이 이끄는 람세스2세의 이륜전차는 매우 놀라운 기술의 집약체였다. 이제 이 책을 통해 이집트 파라오의 전차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가 기원전 1600-1200년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 당시의 전차는 당시의 전술에서 실용적인 쓰임 뿐만 아니라 적에게 그리고 아군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고려한 심리적 전술의 하나로서 중요한 전쟁 무기였다는 점이었다. 사륜 마차 또는 수레와 달리 비교적 소형의 이륜 마차의 가장 큰 장점은 방향 전환이 보다 용이해짐으로 인하여 전시에 빠르게 적진에 침투하여 ‘치고 빠지는’ 전술이 가능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었다. 다만 저자는 어느 시점에서 전차가 무용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륜 전차가 조그만 장애물이 있어도 진행에 큰 지장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전차의 진행을 방해하고, 말의 발굽을 공격하는 장애물을 던져 설치함으로써 이륜전차의 실용성에 급격한 타격을 입히게 되었던 모양이다.
(바퀴와 인간 사회의 상호작용) 바퀴를 주제하는 연구자들은 인류역사에서 바퀴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바퀴 자체만으로 인류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했다고 바라보지는 않는 듯하다. 다만 인간의 삶 속에서 바퀴가 그 자체만으로 발전할 수 잇는 대상이라기 보다는 바퀴가 달린 수레나 마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의 인프라 구축 또한 병행해야한다는 점이 먼저 해결되어야 했다. 기원전 3000년 전에는 이미 장장 8000 km에 이르는 실크로드가 유럽과 중국을 이어주는 대륙 내의 통로로서 활발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기술이 발달해왔던 것은 아니다. 말이 끄는 수레가 주로 다니던 길에는 말발굽에 의해 길의 훼손되거나, 말 또는 기타 가축의 배설물이 쌓이는 문제가 있었으나 자동차가 발명되고, 좋아진 도로 포장으로 자동차가 더욱 빠르게 보급되자 동물의 배설물이 도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는 차량의 증가로 인하여 더 빠르고 편리한 수단을 얻었지만 교통수단이 점점 빨라지고 그 규모가 커짐에 따라 오히려 교통체증과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 사상가 이반 일리치가 지적한바대로 현대 사회는 ‘반생산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로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바퀴달린 운송수단이 사회에 준 간접적인 영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윤축을 기반으로하는 기차는 제한된 길인 선로를 따라 움직인다. 이 윤축을 사용하는 운송수단은 저자에 따르면 단위거리당 수직거리, 선회반지름의 제약이 따른다. 다시말하면 일정한 수평거리 당 수직거리의 변화는 곧 더 큰 동력이 필요한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윤축에 기반한 운송수단은 독립차륜을 사용하는 수단에 비해 회전이 용이하지 않으므로 더 긴 거리를 회전해 가야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윤축 운송수단의 제약이 현대의 풍경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달리 표현하면 기차의 동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낮은 언덕이나 산을 깎아 보다 평평하게 선로를 건설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독립차륜 방식에 바탕을 두는 자동차의 발달과 빠른 보급으로 도시 내의 풍경도 새롭게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가지 바퀴의 방식에 기반한 운송수단은 인간의 수직적 환경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평적 환경도 변화시켰다. 다시 말하면 철도는 선로를 중심으로 양쪽의 세계를 나누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저자는 ‘철도가 공동체를 둘로 갈라놓는 결과를 흔히 초래한다’(38면)라고 까지 언급하고 있다. 결국 바퀴에 의존한 운송수단은 도시를 비롯한 우리의 삶에 분열적 생태계를 구축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동물이나 사람의 왕래를 우선 방해하고, 철로를 중심으로 한 쪽은 부유자들이 사는 지역, 다른 한 쪽은 극빈자들이 모여사는 지역과 같이 우리의 삶을 분열시킨 사례를 보여주기도 한다.
(바퀴의 섹시즘 그리고 마차의 유니섹스화) 바퀴에 대한 역사를 더듬어 가면서 눈에 띄는 쟁점하나는 이 바퀴를 사용한 운송수단이 성에 따른 차별의 역사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도 끊임없이 조롱받는 기사계급의 시대는 어떤 시대보다도 더 두드러지게 성차별적 요소를 보여주는 것 같다. 기사계급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사실은 여성 특히 상류층 여성을 억압하는 핵심 계급이 되었던 시대가 중세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저자에 다르면 ‘독립차륜’ 방식이었던 마차는 진정한 남성(기사)이 말을 타고 이를 호위하는 동안 ‘여성들만의 탈 것’으로 인식되었고, 곧 마차는 ‘쇠퇴’하고 ‘비하’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5-17세기 중반을 통해 마차혁명이 일어남을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이는 남성들에 의해 비하의 대상이 되었던 마차가 이 시기 이후 남자 귀족들에 의해 이용되면서 마차가 그 위상을 회복한 계기로 파악해볼 수 있다. 다시말하면 마차가 더이상 ‘여성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고, 유니섹스화 되었던 계기로 이해해보면 어떨까.
하지만 이쯤에서 나의 놀라움이 끝나지 않는다. 중세 유럽의 여성들이 처한 상황에 비해, 비슷한 시기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여성’은 받지 않았던 구속으로서 여성이 유목 민족 사이에서 고유한 역할 – 곧 마을의 수레를 책임짐 – 을 수행하였다. 다시말하면 중세 유럽 여성들이 억압을 두드러지게 받게된 시기는 기사도의 흥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곧 중세 유럽 여성들(특히 귀족 여성들)은 기사도와 중세 기독교의 억압에 받기 시작했다면,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여성이 억압을 받게 되는 계기는 산업혁명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봐야할 것 같다. 나는 바퀴에 관한 마차혁명의 계기가 유럽의 흑사병 이후, 달라진 인본주의적 관념 또한 중세시대 여성들 만의 것으로 여겨지던 ‘마차’를 타는 남성의 등장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생각은 ‘로지스틱 곡선’으로 대변되는 혁신의 전파 그래프에서 저자가 전하듯, 중세가 끝나던 시키의 ‘마차의 출현’은 바퀴와 관련한 운송수단의 기술변화와 무관하다는 점을 재확인해준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보다 중요한 관점은 ‘유럽의 (상류층)남성이 바퀴달린 이동수단을 바라보는 태도/관점의 변화에 기인한다’(188면)고 하는 점이다. 이는 중세가 끝날 무렵 유럽에서 어떠한 종류의 세계관의 변화가 이루어 졌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저자 리처드 불리엣은 이러한 배경에 주요한 영향을 끼친 요소로서 다소 엉뚱하게 화약무기의 개발에 관여한 헝가리 기술자를 언급하고 있다.
사실 나는 흥미롭게 읽어나가다가 저자의 이 주장을 만나니 좀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자가 ‘1450-1650년 사이에 유럽에서의 세계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라고 물을 때, 나는 엉뚱하기는 하지만 좀더 포괄적인 역사를 떠올려보았다. 나의 엉뚱한 생각은 유럽의 흑역사, 곧 ‘흑사병의 출현’에 닿았다. 그 근거로 유럽에서는 1340년대 흑사병의 유행으로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500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고 한다. 이 하나의 사건은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던 신의 시대에 신의 권위에 대한 의혹을 조금이라도 품게 하지 않았을까? 한 마을이 흑사병으로 몰살당하고, 단 한명이 혼자 살아남았다고 가정해본다. 그럼 이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모두 빼앗아간 신을 원망하지 않을까. ‘흑사병’이 유럽에 미친 영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흑사병의 유행을 거쳐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좀더 많은 ‘확률적’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이는 ‘확률’을 기반으로하여 혁신의 전파 양상을 보여준다는 ‘로지스틱 곡선’의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보다 적은 생존자에게 보다 많은 기회와 빠른 사회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기가 바로 흑사병이 잦아든 이후의 유럽이 아닐까.
(바퀴와 오리엔탈리즘) 미국의 역사학자인 저자에게서 동양에 대한 편견을 읽어내었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오히려 중동역사를 전공한 저자가 바퀴에 얽힌 솔직한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재확인해본다. 중국의 외바퀴 수레 뿐 아니라 일본의 인력거에 대한 서양인의 반응은 ‘혐오감’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아시아인으로서 나는 오히려 ‘소가 끄는 수레를 주거지로 사용하며 마을을 구성하는’(168면) 알란족▪훈족 (169면), 그리고 몽고의 무자비한 침략을 받았던 유럽인들의 동방에 대한 뿌리깊은 두려움과 혐오의 연장선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시말하면 ‘유럽인이 인력거에 혐오감을 드러내었다’라기보다, 유럽인의 뿌리깊은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그 혐오의 대상을 인력거라는 사물을 통해 드러내었다라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이 책 <바퀴, 세계를 굴리다(원제: The Wheels: Inventions& Reinventions)>는 바퀴 달린 운송수단의 5500년의 역사를 독자에게 흥미롭게 보여준다. 책의 방점은 아마도 ‘윤축’과 ‘독립차륜’사이에 벌어진 운송수단의 경쟁과 인간의 삶에 준 영향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나 이 책에서 ‘마차혁명’이라는 개념은 가장 중요한 모티프일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 ‘마차혁명’을 주로 염두해 두며 다음과 같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고려요소들 사이의 여러 가지 상호 연관성을 분명히 하면서, 바퀴의 이야기는 발명이 누가 무엇을 처음으로 생각했느냐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한다.”(260면) 이와 관련하여 책의 부제가 ‘발명(inventions) 그리고 재발명(reinventions)’이라는 점에 다시 주목해본다. 이렇게 부제를 붙인 저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책을 다 읽고 보니, 기존의 것에 대해 새롭게 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싶다. 좀더 구체적으로 퍼즐을 맞추어보면 ‘바퀴의 재발명’ 이라는 것은 바퀴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마차혁명’의 심리적 성격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제시해주는 것으로 파악해도 될 것이다. 바퀴의 역사와 ‘흑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좀더 보편적으로 얻은 교훈은 우리 인류의 역사는 일종의 편견을 가진 지배자의 역사였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편견을 깨고 변화해간 도전자의 역사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
|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기차가 철로를 달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입을 반쯤 벌린 채로 바라보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