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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이시의 책들을 보면 그의 눈이 일관되게 한 곳을 주시하고 있는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안정적이며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공동체 사회의 추구가 바로 그 것인데, 그렇다고 하면 그가 미국 민주당 지지의 좌파 인사라는 일반의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파는 안정을 좌파는 변화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파는 그들의 체제와 가치관을 지키는 것을 선호하고 좌파는 그 체제나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일" 이 후 라이시의 일관된 주장은 미국적 가치의 보존이었다.
가족을 중시하고 공동체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과 동일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둔 미국적 민주주의의 수성을 위해서 라이시는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것을 보면, 라이시는 당연히 우파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째서 좌파인사로 분류된 것일까? 그 이유는 기독교적 윤리에 입각한 전통적인 미국 사회의 변질에 있다. 현재 미국 사회는 강력한 보수주의자가 극렬한 진보적 인사로 분류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혼탁한 사회가 된 것이다.
그것은 우리사회를 보면 더욱 이해가 빠를듯하다. 윤리적, 사회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 수구세력이 보수 우파임을 자쳐하고, 어정쩡한 우파들이 진보 좌파 대접을 받는 우리 사회를 보면 라이시의 입장 역시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또 한가지 라이시가 그의 글에서 지키는 것은, 현재와 같은 윤리적 문제를 외면하는 글로벌화가 거침없이 진행된다면, 종국에는 파멸적인 사회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비극적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예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사회 경제 체제의 변화에 따른 급속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기인한 공동체의 불안정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만 강조할 뿐이다. 왜그럴까? 그 끝은 상상만하기에도 두려운 것이기 때문인가? 사실 역사적으로 봤을때, 사회적 양극화는 항상 폭동과 혁명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 이유로 라이시는 종말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면서 작은 희망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주장하는 사회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공적투자의 확대이다. 그러한 공적투자의 확대만이 붕괴직전의 사회가 안정적인 사회로 치유될 수 있음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이 책 역시 그의 그러한 미래를 위한 노력 중에 하나이다.
[인상깊은구절] P. 149 어떠한 사회든지 정말로 건강한 사회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안고 있는 핵심 문제들을 정면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의사가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즉 문제를 회피하거나 일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그들에게 떠넘기지 않고, 당면한 어려움으로 인해 핵심 문제에서 벗어나거나 희생과 인내를 요구할 때 쉽게 좌절하지 않으며, 핵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회가 바로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이다. |
| 미국이 국내, 국제 여론을 무시하고 이라크를 침공했다. 원숭이같은(?) 부시의 얼굴에 비친 피에 굶주린 이기주의를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죄도 없는 인간을 살육하는지, 도대체 미국에게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는 어디 갔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숨어있는 미국의 양심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노동부 장관 출신인 저자는 모두가 잘 사는 방법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성장보다는 분배의 균등을 위해 애쓰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취지를 밝혀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나의 감성을 깨웠는데 이 책을 보면서 내내 흥분하여 눈물이 앞을 가렸다. 문학 서적이 아닌 사회학 서적을 보며 울어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최고 상류층만을 위한 미국이 아니라 장애인, 소수 민족, 여성에게까지 모든 기회가 열려있는 참다운 세계의 지도자, 미국의 올바른 모습을 이제는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