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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보석을 찾는 마음(이숙영, 2016, 문학의 숲)>을 읽고 우리 우정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행중회(杏中會),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그동안 소원(疏遠)해진 친구들도 있다. 다함께 모이지 못하고 친소(親疎) 관계에 따라 개별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했다. 인생사, 다 그런 것이 아닐까? 최근 황남규 씨가 보내준 수필집 <보석을 찾는 마음(이숙영, 2016, 문학의 숲)>을 받았다. 작가 이숙영 씨는 대학동기 황형 부인이다. 이 수필집을 단숨에 다 읽었다. 지난 18일(화) 설악산을 가고 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엄마 가슴에 묻힌 그 딸, 작가는 이 수필집을 돌아가신 아버님과 딸에게 바친다고 했다. 순간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황형 딸이 아프다가 좋은 곳으로 갔다는 소식을 접했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 사이 잊은 게 있었다. 영원히 청춘일 것만 같았던 우리, 염색을 해도 30여 년 세월은 속일 수 없었다. 작가의 딸에 대한 애틋한 감정에서 나를 보았다. 울 엄마께서는 지금도 울고 계실까? 50년 이상 됐지만. 내 둘째 여동생 ‘양자’는 ‘국민학교(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고 죽었다. 어머니께서 집안 행사에 참석하시느라 자리를 비우셨을 때였다. 삶은 고구마를 먹고 체해 벌벌 떨면서 죽어갔다. 어린 나로서는 파랗다 못해 검게 변해가도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조치도 강구하지 못한 채 울기만 했다. 동네 사람들은 말했다. 양자가 하도 똑똑해 하늘나라에서 일찍 데려갔다고. 당시 여수 신풍(여수공항 동네) 인근에서 ‘천재’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유아 시절부터 모르는 게 없을 정도여서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이곳저곳에서 칭찬이 쏟아졌다. 그런 양자가 너무나 일찍 이승을 떠났다. 여태 나는 내 아래 네 살 터울 여동생 ‘양자’를 한 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오빠! 사랑해!!!” “0 서방은 잘해주니?” 부부교사로 행복한 삶을 가꿔가는 공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꿈속에서 양자, 오빠와 언니 그리고 손아래 동생들을 끔찍이 생각했다. 나와 9, 12, 15살 터울 동생들은 양자 누나, 언니를 모른다. 그들이 태어나기 전이니까. 두 살 간격인 바로 아래 여동생은 양자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따라 양자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눈물이 날 정도로). 눈물 뒤에 웃음보, 한 바탕 웃음이 나를 힐링해줬다. <지옥훈련>, “어머니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수능 고사장에서).” <표정관리>, 예의상 문상이니 슬픈 표정 내지 심각한 표정이라도 지어야하나 <김장>, 손복이 많은 작가의 김장 노하우에 감탄했다. 가족을 위해 퇴근 후에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한식조리사 자격을 취득한 아내가 오버랩 됐다. <술국>, 술을 좋아하는 황형은 복 받은 사람이다. 그렇게도 많은 ‘북어국’ 종류에서 아내로서 남편을 위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스쳐가는 바람>, 아들 정호의 가출에서 ‘가리봉동’이 생각났다. 처 외사촌 오빠 딸(당시 명일여고생)이 가출했을 때 가리봉동을 샅샅이 뒤진 적이 있다. ‘관계’, 고 신영복 교수님께서는 사회의 본질을 인간관계의 지속성이라 하셨다. 도시는 자본주의 역사적 존재형식이라 하셨고.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사회라는 것이다. 그런 사회는 사회적 관계가 상품과 상품의 교환으로 구성돼 있는 사회라 하시면서. 당연히 인간관계가 상품의 틀 안에 담기는 것이라 하셨다. 즉, 사람은 교환가치로 표현되고 인간관계는 상품교환 형식으로 존재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부고>를 받고 작가는 한동안 ‘관계’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나 역시 친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청첩장이나 부고를 받았을 때 혼란스러웠다. 직접은 아니더라도 그들 친구들로부터 간접적인 연락을 접할 때는 서운하기도 했고. 청첩장이나 부고를 직접 받을 때보다 간접 연락을 접하고 참석할 때가 더 많았다. 인간관계, 사람 감정(감성)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감성은 길러지는 것으로 이 또한 사회적인 것이라 했다. <삶의 색깔>에서 작가는 강자들의 논리는 합리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잠실 영동일고 유동걸 국어교사 저서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강자는 토론하지 않는다(유동걸, 2015, 단비)>에서. 그 어느 때보다 ‘나눔’과 ‘배려’, ‘경청(傾聽)’의 자세가 필요할 때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희망이란>,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따뜻한 사랑이 작가를 ‘베풂’의 삶으로 인도했다. 평생 도박만 일삼다가 돌아가신(1989년) 아버님을 작년 추석 때야 겨우 용서했다.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한’과 ‘미움’을 간직한 채 어머니께서는 요양원 침상에 누워만 계신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꺼내려 하면 치를 떠시며 고개를 흔드신다. 막내 남동생은 “아버지는 자식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라고 말했다. 동생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지 않아 그들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휴가>를 대하면서 학창시절을 되돌아봤다. 대학시절 가회동 한옥을 자주 들락거렸다. 벌써 황형 누님께서 칠순을, 매형께서는 팔순을 넘겼다니 믿기지 않는다. 아이 때 보았던 황형 조카들도 이젠 장성했겠구먼. 치매를 앓고 있다는 정호 고모부님, 언제쯤 건강한 모습을 뵐 수 있을까? <잊지 않을게>,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눈물을 보고 내가 편집장으로 있는 ‘한국인권신문’에 칼럼을 올렸다. 그때는 그 눈물에 진정성이 들어 있기를 간원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보다 더 불통인 박근혜 독재를 우리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는데. 세월호 참사를 보고 눈물짓는 작가 정호 엄마는 언제까지나 잊지 않겠다고 했다. 작가의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위한 ‘애씀’에 박수를 보낸다. 국내외 각지를 찾는 문학여행이 부러웠다. 앞으로도 우리를 울게 하고 웃게 해줄 좋은 글을 계속 생산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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