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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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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아도 교회와 성도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20~30년 전에 미국 교회에서 심리학과 긍정적인 사고를 주입하는 설교와 가르침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지금 한국 교회에도 그런 미국 교회의 흐름을 쫓아서 그리스도와 복음이 없는 듣기에 좋은 권면의 말, 기분이 좋아지고 힘을 얻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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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아도 교회와 성도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20~30년 전에 미국 교회에서 심리학과 긍정적인 사고를 주입하는 설교와 가르침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지금 한국 교회에도 그런 미국 교회의 흐름을 쫓아서 그리스도와 복음이 없는 듣기에 좋은 권면의 말, 기분이 좋아지고 힘을 얻는 말이 교회 강단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내가 죽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십자가의 복음은 귀에 거슬리는 말이기 때문에 강단에서 더 이상 듣기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마이클 호튼은 펠라기우스주의적 경향이 미국 교회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감리교 목사이기 때문에 펠라기우스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요한 웨슬리의 전통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펠라기우스주의는 교단의 이념을 떠나서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불합리한 요소와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새로운 탈출구로 펠라기우스주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 교회에서는 펠라기우스주의의 영향에 의해서 점점 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퍼뜨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 교회의 움직임이 무엇이 잘못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긍정적인 사고와 지금의 불합리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은 철저하게 그리스도 없이도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출판된 ‘시크릿’이라는 책에도 몇몇의 크리스천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그 책에 영향을 준 사람들의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머리에서 꿈을 꾸면 그 생각이 좋은 것들을 실제로 끌어 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서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것은 그리스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미국 교회의 그리스도 없는 세속적인 논리와 긍정적인 사고를 복음의 메시지에 근거해서 비판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것은 받아들여서 예배와 설교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것까지 들여와서 따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세속적인 가르침과 율법주의가 교회를 병들게 하고 성도들을 지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사랑과 복음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야기 해야 할 때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한국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고 복음이 전파되어 다시 한 번 새로운 각성과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s*****k 2009.04.18. 신고 공감 3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진정한 그리스도 회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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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이론적인 이야기이다. 너는 그렇게 사냐고 물어보면 할 말 없다. 그래도 어쨌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 삶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 가고 있다. 마치 무당에게 찾아가서 성공을 위한 부적을 사듯이 교회에 가서 성공을 갈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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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 이론적인 이야기이다. 너는 그렇게 사냐고 물어보면 할 말 없다. 그래도 어쨌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 삶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 가고 있다. 마치 무당에게 찾아가서 성공을 위한 부적을 사듯이 교회에 가서 성공을 갈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하듯이 감사헌금 봉투를 헌금함에 넣는다

많은 목사들이 돈 많고 힘 있는 장로의 눈치를 보며 쩔쩔맨다. 교회의 흥망이 그 장로의 헌금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교회에 계시지만 장로의 헌금은 자칫하면 끊길 수 있기 때문인지, 목사에게 그리스도는 뒷전이고 이번 달 헌금 액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긴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사역을 하려면 錢이 필요할 테니 인간적으로 어쩔 수는 없겠지만 ...
목사들이 가정이나 새로 영업을 시작하는 가게를 방문할 때 반드시 하는 기도가 있다. 바로 '물질의 축복을 주옵시고'이다. 물질의 축복 ... 물론 중요하다. 성경에도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차고 넘치는 물질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만약 물질의 축복을 너무 많이 받아 일요일에 교회 가는 것도 멀리하고 물질의 축복을 즐긴다면 목사님이 책임 지실는지?

한 장로가 자신의 성공은 자신의 힘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셨으면 나의 성공은 없었다'라는 말을 하려나보다 하고 기대하고 있는데 그 장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반은 내가 했지만 반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내 인생의 주관자가 되어야 할 하나님이 순식간에 동업자로 변하는 순간이다. 그나마 반이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안수집사는 자신은 일요일에 양복에 넥타이 말끔하게 차려 입고 교회에 앉아있으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의 직원들에게는 바쁘다는 핑계로 일요일에도 일을 시키며 교회에 갈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교회에서 많은 복을 받아 자신의 직원들에게 나눠주려는 모양이다.
이런 모습들에서 우리 교회의 현실을 너무나도 잘 볼 수 있다. 우리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신을 '이용'하고 있다. 나의 평안을 위해서, 나의 성공을 위해서, 내 개인적인 믿음을 위해서 ...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리스도가 우리의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조엘 오스틴은 그의 저서에서 많은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사람들을 격려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진다. 하지만 그의 책들은 영적(spiritual)이긴 하지만 종교적(religious)이지는 않다. 종교적인 것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포장에 열광한다. 우리나라 많은 목사님들이 자주 하는 '달콤한'설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래, 달콤해야 돈을 내지 쓴 맛을 위해 돈을 쓸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사랑의 교회가 2100억 규모의 신'사옥社屋'을 짓는다고 한다. 땅값 1200억을 빼더라도 건축비용만 900억이다. 그런데 내 집이라도 한 채 지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실제 건축비용은 대부분 최초의 예산을 초과하니 실제 비용은 900억을 훨씬 웃돌 것이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전 담임목사(내가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던 몇 안 되는 목사님 중 한 분'이셨다')께서는 새 성전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지켜봐 달라고 한다. 이번 일을 통해 개신교에 더 큰 반감을 갖게 된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저 사탄의 목소리로 치부하면 되는 모양이다. 교회건축비를 줄이고 남은 돈을 전부 구제활동에 사용하는 것이 기독교정신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제자훈련에 힘 써온 사랑의 교회가 제자들을 세상에 내 보낼 생각은 하지 않고 몸집만 불리고 있으니 '일구이언'을 몸소 실천하는 교회라 아니할 수 없다. 제 발로 찾아오는 사람을 어떻게 돌려보내느냐고 하면 할말은 없다만 사랑의 교회에서 섬기는 하나님은 다른 교회의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인가? 적어도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지역의 다른 교회를 다닐 수 있도록 안내할 수는 없을까?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개신교는 철저한 '개교회個敎會주의'니 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어쨌든 부자동네에 부자교회를 짓는 일은 사랑의 교회 성도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모양이다. 새 교회건물이 완공되면 이 교회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봉헌예배를 드릴 것이다. 뭐 말은 쉽다. 이 명박 전 서울시장께서도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연설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예배당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가 어디일는지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총 건축비의 1/10 90억이라도 될라나?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예수는 말씀하셨다. 그래도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좋겠다. 그리 크고 비싼 바늘귀를 타고 앉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사랑의 교회나 다른 메가처치 성도들을 싸잡아 비난할 생각은 절대로 없다. 그 중에서는 정말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그들 중 누군가는 분명히 그 바늘귀를 통과해서 천국에 갈 테니 말이다.

사실 이 책에서 주로 하는 얘기는 한국 교회의 이런 단면들이 아닌 (당연하다. 미국교회를 상대로 쓴 책이니까) 점점 변화되어 가는 기독교 정신(조엘 오스틴의 형통복음이나 이머징 운동 등)에 대한 걱정과 경고, 해결 방안 등이다. 그들이 하는 말에서 기독교를 빼버려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애매한 기독교가 되어버린 현대의 기독교에 대한 진심 어린 충고의 내용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본 뼈대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가는 '그리스도'에 대한 '회복'이다. 이 리뷰에서 나도 한국 교회의 몇 가지 단편들을 비판하기만 했는데 원래의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그 바닥에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나는 순도 100%의 기독교인은 아니다. 성경은 순도 24K의 믿음을 요구하지만 나의 믿음은 14K나 될는지 모르겠으니 XX교회 교인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기독교인이라고는 할 수 없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항상 진정한 믿음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기독교 정신으로 정직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얼마 전 정말 웃기는 뉴스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성경 보다는 이런 종류의 비판서적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란다.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들일수록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삐딱한 사람들은 비판적이고 목사 말 잘 듣는 사람들은 순종적이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요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인지 목사에 대한 순종인지는 그런 사람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목사를 신처럼 떠 받드는 사람들이고 목사 말 잘 듣는게 좋은 믿음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사실 개신교에 대해 진정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정신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현대 교회의 물질성, 허영성 같은 비본질적인 모습을 비판할 뿐이다. 그런데 요런 기사를 쓰는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가 보다.

책 내용은 생각보다는 조금 딱딱한 게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번역도 절대 매끄럽지 않아 여기 저기 튀어나오는 비문 때문에 더더욱 읽기 힘들었고. 하지만 좋게만 포장되어 있던 이머징 운동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내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줬으니 나름 읽은 보람은 있다고 하겠다 ^^

YES마니아 : 로얄 j******m 2010.03.18. 신고 공감 3 댓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