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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 속에 여성이 들어갈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근대성 속에 여성이 들어갈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용보기
리타 펠스키의 책은 남성중심적 또는 여성이 배제된 기존의 근대성 논의와는 달리 여성을 근대성 경험의 한가운데로 끄집어 들인다는 점에서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그녀는 근대성에 대한 대표적 논의 중의 하나인 자유주의자 마샬 버먼의 허무주의적이지만 역동성과 내적 모순 그리고 변화에의 의지로 이해되는 근대성과 "에로스와 인공물의 역설적인 조합"으로서의 근대
"근대성 속에 여성이 들어갈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용보기
리타 펠스키의 책은 남성중심적 또는 여성이 배제된 기존의 근대성 논의와는 달리 여성을 근대성 경험의 한가운데로 끄집어 들인다는 점에서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그녀는 근대성에 대한 대표적 논의 중의 하나인 자유주의자 마샬 버먼의 허무주의적이지만 역동성과 내적 모순 그리고 변화에의 의지로 이해되는 근대성과 "에로스와 인공물의 역설적인 조합"으로서의 근대적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피니(G. Finney)에서 논의를 시작한다―근대성의 젠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어려움을 미리 선취하는 시작의 어려움. 그녀의 비판 대상을 하나씩 살펴보자면, 근대적 합리성 비판의 대표자격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문예출판사, 1995)은 "사회적 주체들의 해석적 행위와 문화 텍스트의 다(多)의미적 풍부성을 무시함으로써", 수동적이고 동질적인, 소외된 개인이라는 울타리만을 재생산하는 한계를 노정한다. 프로이트-맑스주의적인 합리성 비판은 여성을 단지 합리성의 부정적 존재로서만 파악함으로써 "여성적 동일성, 행위 또는 욕망에 대한 어떤 독립적인 개념화"를 제시해주지 못한다. 그리고 맑스주의적 입장에서의 근대성 논의 역시도 그녀의 비판의 과녁을 벗어나지 못한다. 맑스주의자들에게서 큰 관심을 모았던 역사성에 대한 근대적 경험―헤겔("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 보들레르("근대성,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덧없는 것, 우연한 것으로서 예술의 절반이다"), 맑스("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속에 녹아버린다")―은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주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공간적 구분"이라는 그러므로 소외되지 않은 과거의 상징으로서의 여성과 남성적 현재(새로운, 역동적인 변화와 발전으로서의 근대성)라는 시간적 구분에 집중될 뿐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상의 논의로부터 성급하게 그러므로 여성적인 욕망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진부한 주장을 늘어놓지 않는다. 펠스키는 "여성과 근대성에 대한 단성적(單聲) 의미"보다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여성의 관계의 다성성(多聲性)과 다양성"을 근대성과 연관시킬 것을 주장한다. 젠더 분석을 통해 근대성을 재독해하려는 그녀의 욕망은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것이다. 즉 근대성이라는 것을 여성에 의한, 여성에 관한 텍스트를 통해 추적한다면 어떤 변화가 가능한가라는 물음, 그리고 지금까지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지위를 가졌던 여성적 현상들에 근대성 분석의 중요성을 부여한다면 근대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분명 변할 것이라는 강한 주장. 리타 펠스키는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놓치고 있었던 그리고 여성을 근대성과 연관지우기 위해서 필수적인 여성의 일상적인 경험―정치적, 제도적인 권력관계뿐만 아니라 의미론적인 것까지 포괄하는―과 근대성의 갈등적 연관성을 강조한다. 19세기 문화에 침투해있는 상인이자 상품인 매춘부, 화장과 의상을 통해 성의 상품화를 표상하는 "공적 쾌락의 형상"으로서의 여배우, 어머니로서의 여성성 관념을 탈자연화하는 기술복제 시대의 기계로서의 여성이라는 환상은 근대 자본주의와 기술 발달이 여성성을 표상하는 방식이 양가적인 형상들로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19세기에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제도화된 사회학과 정신분석학은, 원초적 과거에 대한 향수 속에서 비차이로서의 의고적(archaic) 어머니의 형상을 만들어내었고 그 속에서 여성은 선험적으로 하나의 존재론적 전체성을 표상하는 것으로 형상화되었다. 또한 19세기 자본주의의 발달이 만들어낸 새로운 공간―백화점과 문학의 공간 속에서 여성은 친밀하고 사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상품 소비자로서 미학적 창조의 행위자로 등장하지만, 또한 그 과정 속에서 상품과 글을 소비하는 여성은 환상적으로 비합리적인 충동의 대표자로서, (비판적)거리를 취하지 못하는 독자로서 젠더 동일성이 만들어졌다. 저자의 기본적인 목적은 근대성에 대한 그리고 여성성에 메타-이론을 세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말해 여성이 보고,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그녀들의 (삶의)경험의 역사(들)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역사적 텍스트들에 대한 해석과 분석은 분명히 선택적인 것이다. 통일적이고 단성적인 시간성에 대해서 역사적 시간의 비동시대성을 강조하는 펠스키의 입장에서 여성적인 근대 경험의 다차원성과 이질성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러한 글쓰기를 실천(경험)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또는 여성적 글쓰기(문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너무 적게 말한 것이 아닌가라고 묻고 싶다. 그녀가 근대의 역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다시금 씌여져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 출발점(Arkhe)을 어디에다 놓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여성의 경험은 여성 자신에게서도(남성에게 있어서도) 순수하지 않은 것이다. 역사성에 대한 근대적 경험에 대해 맑스주의자들이 보인 관심, 예컨대 벤야민의 <지금-시간Jetztzeit>은, 페미니스트 이론이 하나의 (여성적)동일성이나 (여성의)역사를 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계산해야(고려해야) 할 경험일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이 자신의 경험과 만난다는 것은 오직 이러한 시간의 경험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c******k 2000.03.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