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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에 스크레치가 난듯한 그녀의 음색은 역시 듣는 중에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허스키보이스다. 높은 음에서의 턱턱 걸리는 그녀의 끊어질듯 말듯한 그녀의 노래는 듣는 중에도 긴장감과 함께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독특한 마력이 있다. 그녀의 노래를 처음 만난 음반은 짙은 눈화장에 웨이브진 촉촉한 헝크러진 머리카락에 도톰한 입술선이 또렷한 그녀의 얼굴은 그야말로 퇴폐의 진수를 보여준 모노톤의 앨범이었다. 우수에 젖은 그녀의 짙은 눈동자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어울려 점점 더 그녀에게 빠지게 만든 매력적인 요소가 되어 십 몇년이 흐른 지금도 그녀의 앨범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의 사생활 또한 문란하고 퇴폐적인 것이 세간을 들썩거리게 했다는데 당시의 내가 만났던 그녀에 대한 첫 인상은 사생활에 대해선 전혀 몰랐던 터라 오히려 그런 그녀의 얼굴과 노래는 세상의 어두움에 짙은 반감과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의 암울함에 탈출구를 모색하는 반항적이고 도발적인 가수로 내겐 다가왔었다. 그러니 그녀의 매력적인 노래 So Sad가 그토록 나를 전율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그녀의 새 음반 Marianne Faithfull - Easy Come Easy Go를 만난 첫 인상은 과거의 불안함과 도발성을 동시에 내재한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CD표지의 사진의 모습은 안정된 중산층의 도회적인 모습의 그녀였다. 그녀의 나이 지금 63세. 충분히 그런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되지만... 내 가슴에 남아있던 그녀의 모습은 아니었음에 다소 실망감이 앞섰지만 노년의 길을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절제미와 완소미가 느껴지는 그녀의 다져진 모습은 과거에 꿰어맞추려 했던 나의 마음을 바로 잡아 준다. 예전과는 달리 허스키한 그녀의 매력적인 음색은 나이가 준 안정감일까? 안정된 허스키 보이스로 바뀐 듯하다. 다시 만난 그녀의 노래는 호소력짙은 울림의 중후함이 감돈다. 역시 그녀의 노래는 한 밤중 깊은 심야가 제격이다. 낮에도 들어보고 아침에도 들어봤지만 역시 그녀는 자정을 훌쩍 넘긴 지금 이시간과 너무 잘 어울린다. 그녀의 노래 음율 하나하나에 오감이 저절로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만난 그녀에게 아쉬운 것이 있다. 이젠 더 이상 예전의 그 짜릿한 전율이 느껴지지 않음이다. 컨트리 풍의 음악(굳이 음악적 장르를 컨트리라고 했지만 그녀의 이 음반에 도입된 음악적 풍을 사실 뭐라고 표현할지 모르겠다. 단지 부드럽게 몸을 단순하게 좌우로 흔들며 부를 듯한 영혼을 부르는 듯한 음악이 좀 거슬릴 뿐이다. 낮에 들을 땐 귀를 많이 거슬리게 하더니 심야에 들으니 다소 거부감이 덜 생긴다.)을 아직까지도 적응못하고 싫어하는 나의 극단적인 음악적 취향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안정된 컨트리 풍 음악은 그녀의 목소리와 절묘한 어울림이 있어 독특한 느낌도 들지만... 아직 나에겐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음반에서 왜 간혹 밥 딜런이 느껴지는지... ..... 역시 예상대로 그녀의 허스키보이스는 CD보다 LP가 더 잘 어울린다. 심야에 약간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촉촉한 비오는 날에 들으면 더 제격인 그녀의 노래. 지금 이 순간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녀의 영혼을 울리는 노래. 다시 만나 반갑다. 그동안 무심하게 생활했던, 음악과 다소 멀어졌던 나를 다시 기웃거리게 만든 마력적인 Marianne Faithfull 영원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