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만에 머리 속이 상쾌해지는 좋은 글, 수준 높은 글을 읽었다. 아담, 이브, 뱀이라는 제목으로 '기독교탄생의 비밀'을 다룬 만만찮은 무게의 책이다. 처음엔 신문 북 코너에 소개된 것을 보고 사놓긴 했는데, 일반 학자들이 비판적으로 서술한 기독교 관련 책인줄 알고 한참 만에야 읽게 됐다. 하지만, 늦게 읽은게 너무 후회될 정도 멋진 책이다.
저자는 유명한 종교사학자였다. 전공도 아마 '영지주의'와 관련 된 것 같고, 특별히 서기 1-4세기 시기의 기독교 종파와 역사에 대해 너무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1-4세기 초기 기독교의 복음이 어떻게 성장했고, 그 성장 과정에서 로마의 정치적 변천과정과 종교 지도자들(특히 주요 교부들)의 논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가 특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담, 이브, 뱀'이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창1-3장에 대한 해석이 1-4세기 로마 사회를 어떻게 변혁시켰으며, 로마 사회의 정치지형의 변화가 어떻게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쳤는가이다.
1-4세기 유대 사회와 로마 제국은 성적으로 문란하고, 결혼과 이혼이 남성 중심으로 체계화된 사회였다. 그런 사회에서 초기 기독교의 복음, 즉 이혼을 금지하고 순결을 강조하며 가족과 결혼 제도를 신성시하는 시각은 가히 혁명적인 폭탄선언과도 같았다. 반면에 그만큼 당시 사회에 파급력이 큰 메시지였고,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의 변화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초기 기독교의 복음은 곧바로 로마 사회의 박해로 이어졌다. 자신들이 지금껏 누렸던 자유가 기독교의 복음에 의해 방종과 타락의 현상으로 질책받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러한 박해와 황제 숭배에 대한 강요를 '자유의지'에 대한 성경의 해석을 바탕으로 거부하며 기꺼이 순교의 대열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이 복음은 콘스탄틴 대제의 회심과 로마의 국교로 채택되며, 이제는 핍박받는 종교에서 국가의 보호와 혜택을 받는 종교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등장한 교부가 어거스틴이다.
어거스틴의 핵심적인 주장은 '원죄'설이다. 인류가 아담과 이브의 죄로 인해 자율성이 심각하게 파괴됐고, 죄의 본성으로 교회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이러한 '완전타락'에 대한 교리는 상대적으로 카톨릭 교회의 권위와 조직체계를 확고하게 해주는 교리적인 기초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오늘날까지 기독교의 핵심 교리가 된 원죄와 완전 타락에 관한 교리는 결국 당시 교리 논쟁의 승자인 어거스틴의 영향의 부산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어찌보면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에 대한 자성이기도 하다. 순수하고 진지한 신학전 논의의 결과가 아니라 황제권을 등에 업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한 정치세력을 규합하여 만들어낸 결론이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던 말이 맞단 말인가? 이 책을 통해 중립적이고 편견없는 역사 연구의 중요성과 성경해석이 사람들의 인식과 역사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교부들의 목숨을 건 토론과 진지한 학문적 태도도 본받을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