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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동 술타령이 뭔가? 오동동 술타령은 <동동주 술타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노래의 매력은 톡톡 튀는 언어감각이다.
오동동의 동동과 동동주의 동동을 잇는 솜씨를 보라. 앞의 동동(桐動)과 뒤의 동동은 전혀 다른 말이다. 동동주의 동동은 술의 표면에 밥 알갱이가 동동 뜨는 것을 가리키는 동동이다. 동동주가 어떤 술인가? 마실 땐 달콤 쌉싸름하지만 그 맛을 믿고 많이 마시다가는 어김없이 대취하고 마는 유혹의 술이다.
사랑이 그런 것 아니던가? 처음엔 달콤한 기분에 호기심반 장난반으로 뛰어들었다가 이윽고 만취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운명의 장난, 아니 장난의 운명이 아니던가? 그런 동동주에 대책없이 취하여 부르는 노래이니 어찌 달콤한 사랑의 사연 한자락쯤 그 취중의 가슴 속에 솟아나오지 않겠는가? 외로운 귀에는 그 노래 역시, 자신의 한숨처럼 오동나무를 뒤흔드는, 우레와 같은 그리움이 아니겠는가? 이제 보니 오동나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일렁임이 바로 오동동이로구나. 그런데 이쯤에서 갑자기 가객은 생뚱한 소리를 한다. <아니오 아니오 궂은 비 오는 밤 낙숫물 소리 오동동 오동동 그침이 없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요> 앞의 두 문장을 되돌아가 자세히 살펴보니 의문문이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단정지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달빛이든 노랫소리든 오동나무를 흔드는 게 아니란 얘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까 말한 것은 사실 지금 말해야 할 것을 위한 들러리였다. 갑자기 말투가 달라지는 것도 눈길을 끈다.
위의 의문문은 반말로 하다가 갑자기 존대어로 바뀌는 이유는 뭘까? 위의 말은 스스로에게 자문하듯 말한 것이리라. 그런데 <아니오>문장의 이 얘기들은 누군가에게 호소하기 위하여 말을 건네고 있다. '실은 이렇답니다. 그런 고백' 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누군가는 세상사람들 일까? 혹은 님일까? 어쨌든 이 엉뚱스러워 보이는 국면전환은, 일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분위기를 풍긴다. 한참 달빛 속의 외로움을 잘 노래하다가 갑자기 궂은 비 오는 밤은 왜 나온담? 이런 것이 이 시를 민간의 유행가로 남아있게 하는 약간의 무리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런 기상 이변(?)이 별로 무리한 것도 아니다.
이 노래는 하룻밤의 풍경이 아니라 여러 날의 외롭고 괴로운 날들이 중첩되어 있는 밤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날이야 궂든 개든 심상의 이동에는 전혀 무리함이 없다. 달 밝은 밤이든 혹은 비오는 밤이든 그것이 그리움을 한없이 자극하는, 지루하고 속타는 밤인 점에는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이 노래의 강점은 뛰어난 차음(借音)이다. 오동잎이 흔들리는 소리라는 <오동동>을..... 동동주의 의태어인 동동으로 풀어내더니 이번엔 낙숫물 소리의 의성어로 엮어 올린다. 처음의 그윽한 소리는 술잔의 밥 알갱이로 바뀌다가 마침내 리듬도 빨라진 물소리로 변한다. 이 활발하고 익살스러운 언어치환은 가히 발군이다. 이 노래가 내용은 답답하고 막막한 외로움을 토로하는 것이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활달하고 명랑한 이유는 이 낙천적인 말 꿰어 맞추기의 해학에 숨어있다.
그러나 그 유쾌한 와중에서도 곰곰히 짚어 생각해보라. 홀로 수심하여 빈방을 지키는 외로운 여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면 그 놈의 낙숫물 소리가 <오동동 오동동>으로 들린다는 사실까지 발견했겠는가? 혹시 님이 오는 발자국 소리라도 들을까 하여 쫑긋 세운 귀에 들려온 그 쓸쓸한 빗소리의 오동동은 차라리 처음의 오동잎 지는 소리나, 동동주 취한 노랫가락보다 더욱 사람을 못 견디게 하는 오동동이 아니었으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냐>는 말은 의미상으로는 아리송한 마무리다. 앞 구절들의 댓귀를 생각한다면 의미없이 붙인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동동>을 이어붙이는 절묘한 언어감각의 소유자가 마지막엔 싱겁게도 그냥 <오동동이냐>를 붙였다는 건 이해가 잘 안 간다. 빗소리를 듣고 있는 여인의 마음이 얼마나 타올랐기에 그 마음이 오동나무를 움직였을까?
이렇게 해석 못해줄 것도 없긴 하다.
달빛이나 노랫가락이 오동나무를 흔든다면 왜 이 여인의 사무친 마음인들 오동나무를 흔들지 못하겠는가? 결국 오동잎은 바람도 없는데 저절로 흔들리는 것이니 그 이유를 굳이 외물에만 연결시킬 것도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마지막 구절은 비오는 밤이니 빗방울에 오동나무가 이미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여인의 타는 간장이 흔든다고 강변하기에는 좀 말빨이 덜 먹히는 점이 있다. 이 여인의 마음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자. 지루한 낙수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여인의 방 속을 엿보자. 빈방에 이불이 깔려있고 두동달이 베개의 한쪽이 비어있다. 혹시 저 빗속에 님이 오시지 않을까 기다리는 마음에 자꾸만 문고리 쪽에 눈이 간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밤을 적신다.
저 비 그치면 그가 올까? 그렇다면 저 낙숫물 소리는 그리운 해후를 위한 빗방울 전주곡인지도 모른다. 오동잎이 흔들린다는 것이 봉황이 그 나무에 깃드는 것이 아닌가? 오동잎 소리는 바로 님이 오시는 소리다. 그러니 독수공방 타는 간장은 오동동(梧桐動)과 빗소리의 발자국소리의 오동동에 함께 귀를 열어두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엉뚱한 생각을 한다. 이 뛰어난 언어감각의 노랫꾼은 그리 섣부르게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의 오동동은 <내 (吾心)가 흔들리고 흔들린다>는 뜻의 오동동(吾動動)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오동동은 하염없이 푸푸 내리쉬는 한숨 소리와 외로움이 사무쳐 가슴이 벌떡이는 동계(動悸)의 형상화가 아니냔 말이다. 그렇게 풀어놓으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냐>는 쉽게 풀린다.
외로운 마음에 내 가슴이 벌떡이고 있단 얘기다. 물론 오동잎 지는 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노래의 주조음(主調音)이다. 달빛과 노랫소리와 낙숫물소리와 가슴뛰는 소리의 오동동은 그 주조음의 현란한 변주이며 여인의 상심한 마음의 이동이기도 하다. 경박스럽고 경망스럽고 촐랑거리는 듯이 부르는 이 노래, 오동동타령에도 얼마나 사무친 별리의 아픔과 외로운 밤의 고독과 수없는 밤이 중첩된 그리움들이 푸르게 배어있는지 보라. 노래란 수천 수만의 마음이 지나간 정서의 궤적이다. 조금도 닳지 않고 바래지 않은 푸른 마음이 살아있는 궤적을 따라가노라면 어느덧 목이 쉰다.
이 그윽하고 외로운 가슴으로 불러보라. 오동동타령을..... 술 한잔 묵고 불러 보면 더 좋으리라.....하하하 날 생각하고 있을 그 고운 여인을 그려보면서 불러보면.... 아무리 대취했어도 술이 확! 깨면서 눈물도 나리라.......
좋은 가을날의 시간 지내시고 한주간도 열씨미 살아갑시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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