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듀 Adieu /저자 엠마뉘엘/출판 오래된미래/발매 2009.03.30.
인간의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가난은 사랑의 능력이다. 가난의 의미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소박한 것이다. 사랑은 우리의 일상 속에 소박한 삶 속에 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사랑이 무언가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고 귀를 기울여주고 마음을 써주는 고마움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떠한 삶도 실패한 삶은 없으며 어떠한 삶도 그 자체만으로 승리한 삶은 없다. 사랑에는 한계가 없고 사랑은 결코 획득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사랑은 결코 완전히 순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엠마뉘엘 수녀는 행동과 사랑을 한데 섞었다. 평온한 은퇴의 삶이 예비되었던 예순셋의 나이에,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묵주만을 무기 삼아 그녀는 카이로의 빈민촌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그곳에 정착하여 학교와 집과 보건소를 세우는 일을 하며 23년간 넝마주의들과 함께 생활한다.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회색빛 수녀복에 흰색의 베일, 검은 농구화 그리고 두꺼운 테의 안경은 겸손과 청빈의 상징이었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옹호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포기하는 태도의 표시였다. 그리고 주름진 얼굴은 지혜를 말해주고 있었다. 반항적인 눈길은 비겁함에 맞서는 저항을 이야기하고, 심각하기보다는 장난기 가득한 성품을 느끼게 한다. 엠마뉘엘 수녀는 구변과 유쾌함과 서정성이 넘쳐나는 여인이었다.
기장 비참한 자들과 함께 또 그들을 위해 끈질기게 열심히 일했던 엠마뉘엘 수녀는 빈민촌의 자매들로 인해 진정한 기쁨과 '낙원'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빈민촌 여인들 안에서 발견되는 기쁨을, 덧없고 기만적인 물질적 쾌락 위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서구 여성들의 고통에 비교하길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빈민촌에 이르렀을 때 나의 평생소원은 실현되었다. 가난한 자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절정이었고, 그 위에는 더 올라갈 아무것도 없었다." 삶의 소리를 듣기 위한 내면적인 것에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 할 때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역량을 모아 해결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저 하루를 연명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툭툭 털고 일어나 떨치면서 새로운 길을 걸을 시점이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아듀(엠마뉘엘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입니다.
|
|
한국에서는 엠마뉘엘 수녀보다 카이로의 쓰레기 마을의 콥트 교회가 더 유명한 듯한데, 엠마뉴엘 수녀는 카이로의 쓰레기 마을의 콥트 교회를 외부 사람들이 찾아 갈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게 만든 사람이다.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인데 수녀가 되었기에 그리 사고를 치지 않았지, 수녀가 되지 않았다면 정말 큰 사고를 쳤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책에 저자의 사생활?에 대해 - 수녀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 과하게? 솔직하게 쓰여져 있다. 성정체성? 문제나 지배욕 문제 등등....읽어보면, 100살이 거의 다 되어서 썼기에 가능한 내용이 꽤 있다......
그리스도교인, 특히 가톨릭 신자라면 한 번쯤 읽어 볼만 한데, 좀 웃기는? 것은, 저자가 모범으로 삼은 수녀가 '아빌라의 데레사'라는 점이다.
그 '십자가의 성 요한'과 짝을 이루는 그 '아빌라의 데레사'!
거의 끝이 되어서야 자신이 모범으로 삼은 수녀가 '아빌라의 데레사'라는 사실을 밝히는데 저자가 정말 엉뚱?한 사람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자신과 모든 면에서 거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평생의 모범으로 삼다니.......
어쨌거나 내용이 매우 솔직하다는 점을 크게 보아서 내용 별이 4개인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가 아니거나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읽기에는 이해가 힘들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