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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쓸 때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경우 참 난감하다. 더욱이 내가 크게 관심을 가지고 읽은 책에 대해서 또 아무런 사심도 없는 상황에서 본의 아닌 적의를 고생 꽤나 했을 저작자와 출판사에 드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러한 불편한 할 말을 속으로 삭히고 세월과 함께 잊혀지길 바라는 경우가 나에게는 많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말이 굳이 꺼내서 할 필요할 때가 있다. 라틴 소울이 바로 그런 작품이 아닌가 싶다. 라틴 음악의 작은 관심으로 앨범에 소개된 앨범을 들으면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 말미에는 김혜리, 윤상, 김동률, 성기완 등의 추천사가 한 페이지씩 담겨 있다. 단순히 추천사 수준이 아니라 놀라운 수준의 극찬이 가득 담겨있다. 윤상의 말을 빌면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 최초의 라틴 입문서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과연 그럴까? 윤상에게 다른 어떤 책을 읽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본 라틴 음악 서적 중에는 제법 좋은 책이 많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형태에서 우석균의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와 심명보의 월드 뮤직은 상당히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석균의 책은 기행의 형식으로 개인의 감정을 적절하게 토로하고 있으며, 심명보의 책은 개인적인 사견을 최소화하면서 폭넓게 라틴음악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 소울에 대한 기대는 이 책의 머리말부터 시작한다. 저자인 박창학은 이 책이 좋은 음악에 대해서 편안하게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그말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좋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모르고 있던 새로운 음악과 만나게 된다면, (중략)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어디에서부터건 마음 가는 대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중략)”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책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첫 장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음악 여행에서 저자는 이미 이 책을 쓰는 본인의 의도를 망각하는 것 같다. 3세계 음악이나, 월드뮤직이라는 말이 가지는 사전적 의미와 포괄적 의미, 그리고 정치적인 의미까지 따져드는 저자가 과연 음악에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아는 것을 내세우고 싶은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논리와 논지는 책 전체를 관통한다. 저자는 특히 ‘탱고’ 또는 ‘탕고’와 같은 발음을 문제 삼아, 음악을 듣는 것을 방해하고, 피아졸라의 반도네온과 아코디온을 갖고 문제를 삼는다. 이뿐 아니라 개인의 사견과 객관적인 자료를 혼란스럽게 혼용한다. 개인적 주장을 객관적인 사실인양 떠들다가 갑자기 독자에게 고백을 하거나 구차하게 설득하려 한다. 책의 어느 한구석에도 저자의 의도가 드러난 곳이 없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도대체 음악을 아는 것을 내세울 것이라면 그와 같은 의도에 충실한 아니면 개인의 감성에 기댄 그런 형식을 바랬으면 그러한 느낌이 충실한 책을 출간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가 가지는 고민은 사실 모두가 가지는 고민이기는 하다. 낙후한 한국의 음악시장에서 그와 같은 형식이 월드 뮤직을 널리 알리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언짢다. 나는 이와 같은 같은 책의 출간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실망도 컸지만 비슷한 책이 나온다면 나는 또 그 책들을 눈여겨 볼 것이다.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고 세상의 많은 음악에 대해서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기회가 온다면 박창학이 더 좋은 책을 내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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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사게 된 이유는 저자 박창학님의 해박한 음악지식 때문이다. 오래전 어느 라디오 음악프로에서 수많은 라디오프로들처럼 잘 알려진 음악이 아닌 다소 생소한 노래들을 듣고심장이 뛴적이 있었다. 가끔 어려운 노래(?)들을 선곡해주는 프로들이 있었는데 나는 관심도 없고 왜 굳이 찾아들어야 하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듣게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월드뮤직.. 내가 알던 소위 잘 모르는 관심밖 노래들관 달랐다. 어느 누가 들어도 왠만해선 나름의 매력을 한 번에 느낄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현실에 스며드는 곡들.. 거기다 단정한 곡소개와 알기쉬운 해석까지.. 어린 마음에 세상을 구원하러..날 구하러 온 천사같았다. 힘든 세상살이도 그런 음악들과 함께라면 버겁지 않을것 같았다. 그리고나서 한참을 시간에 쫒겨지내다 만나게 된 라틴소울은 그야말로 내겐 선물보따리였다. 역시 알기쉬운 설명과 찾아보기 쉬운 적합한 정보까지.. 오래전 내가느낀 잘은몰라도 친절함과 감동은 여전하였다. 아름다운 노래에 가사까지..거기다 단순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표현들 역시 좋고도 남았다. 월드뮤직 좋은건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시간과 노력으로 원하던걸 찾아서 구하기까지 평탄치만은 않은데 이 책 하나로 세상에 모든 음악들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않더라도 저자의 말로는 표현 못할 수고와 배려를 감히평하기 부끄러울 정도이다. 그냥 내가 아는 것을 나란히 읊는 개념이 아니라 더 좋은음악들과 정보를 더 쉬우면서 빠르고 간결하게 전해준다. 마치 내가 원래 알고있었던 내용인 것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이책을 표현하자면 몇 십년을 공들여 알아낸 정보를 몇초만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통채로 전달시켜 주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말이 사실인지는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린다. 가끔씩 삶의 의미가 궁금해질때 내 주위에 진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알고싶어질때 다시 한 번 이 책을 더 천천히 그리고 느리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보고 듣고 경험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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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천천히 음미해 가면서 읽었다. 그렇게 읽지 않으면 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였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라틴 즉 지구 저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그리고 쿠바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책은 천천히 읽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소개되는 음악들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고 들어보고 해야만 이 책과 진정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 희귀성으로 인해 소개되는 모든 음악을 들어볼 수는 없었지만 평소에 많이 들었던 음악이 이 나라 음악이었구나..아르헨티나에는 탕고(탱고)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삼바니 룸바니 하는 것들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직접 느끼면서 책 읽기를 하다보니 평소보다 3배 이상의 기간이 걸렸지만 뿌듯한 마음에 마냥 즐겁기만 했다.
저자 박창학씨는 유명한 음악 프로듀서이다. 그가 무조건적으로 중남미 음악에 빠지게 된 이야기는, 나 또한 특정 장르 음악에 미쳐본 적이 있는 터라 절대 공감가는 이야기였다. 단 나는 그 열정을 오래 가질 수 없었지만 말이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음악 듣기가 힘들어진다. 나는 책을 읽을 때에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음악을 들을 때에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온전히 음악만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좋아하는터라 한동안 음악이라는 것에서 손을 놓게 되었던 것이다.
조앙 질베르토는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그가 보사노바라는 음악을 탄생시킨 장본이란 것과 그의 기이한 행동 등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해보았다. 피아솔라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 중 한 사람인지라 익숙했지만 그 이외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본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아직도 그들의 이름을 발음하기가 쉽지는 않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아도 중남미 음악에 대한 자료가 그다지 많지 않은 걸 보면 박창학씨가 정말 대단한 작업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윤상씨가 <라틴소울>은 한국인을 위한 유일한 남미 음악 안내서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은 중남미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으며 얼마 전 구입한 mp3를 그들의 음악으로 채워보려는 작은 욕심이 생기게 한 장본인인 것이다.
특히 수많은 앨범 중에서 추천할만한 앨범을 자세하게 소개해놓은 부분과 본인이 직접 번역한 가사모음집은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사실 새로 어떤 것을 배워보겠다는 나같은 초보자로서는 그러한 정보가 정말 필요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배운다는 표현이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어떤 음악을 진정으로 느끼고 좋아하기 위해서는 그 음악에 대해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동안은 브라질의 보사노바와 삼바, 아르헨티나의 탕고, 쿠바의 손을 듣기 위해 분주해질 것 같은 예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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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루 쿠쿠 팔로마~"
몇 년 전 영화 <그녀에게>에서 들었던 저 새소리 같은 멜로디. 그리고 <부에타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들었던 남미 음악. 내게 남미 음악과의 인연은 그 정도였다. 그런데 스쳐가듯 짧은 인연이었지만, 꽤나 인상적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팝 또는 클래식에서 느껴본 적 없는 감동과 호기심이 일었다. 라틴 음악은 내 안에서 화학 반응을 일으켰다. 남미에 가본 적은 없지만, TV 프로그램이나 여행기 등을 통해 접하는 남미인의 모습이 있지 않나. 그 인상들이 겹쳐지고 조응된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이 들려주는 무시할 수 없는 끌림이 와닿는다. 그게 바로 '라틴 소울'이리라.
윤상의 작사가였던 박창학을 알고 있었고, 그만의 감성을 좋아했다. 박창학의 관심이 남미음악으로 옮아가면서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겼지만 띄엄띄엄 들은 탓에 늘 남미 음악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남미음악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박창학의 이 책이 무척 반갑다. 글을 통해 먼저 음악을 접하고 상상만 하던 음악을 찾아 듣는 순간의 기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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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학이라는 사람은 대단한 수집가라는 생각이 든다. 남미 음악에 관해 어떻게 이렇게나 많은 음악을 들었을까 싶다. 자신이 믿고 애정을 쏟는 것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열변을 토해 치장하지 않는, 그래서 무언가 정제된 감수성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읽는 동안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감상과 정보(지식)가 적당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근 몇 년 동안 나는 "다양성의 향유"라는 측면에서 영미 유럽어권 문화 이외에 동아시아나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문학, 영화, 음악을 가능한 한 많이 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노력한다" "애쓴다"라는 것은 그만큼 그동안 영미 유럽어권 문화에 관습적으로 반응한 탓, 그리고 좀 더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물적 토대가 상대적으로 빈곤한 탓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 이 책은 좀 더 넓은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가지고 있는 조앙 질베르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피아솔라, 밀톤 나시멘토 등의 앨범을 들어 보았다. 봄의 계절에 마음이 더욱더 살랑인다. "재즈가 힘의 의지라면, 보사노바는 행복의 약속이다." 본문 중에 있는 글귀다. 참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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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리>를 보고 난 뒤 드는 생각은 '좋은' 음악이란 특정한 장르적 구분을 조롱하거나 심지어 무색케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에 관한 거였다. 그와 동시에, 유독 영미팝 음악에 대한 편식이 심한 한국적 상황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쏠림과 편식은 음악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이에 관해 얘기할라치면 입이 부르트고 타는 목마름에 힘겨워질 게 뻔하므로 패쓰!)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도 우리를 위로해줄 수 있는 음악은 뭘까? 그런 음악은 적어도 생각하는 행위 자체가 자연스럽게 거부되는 이런 상황 속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말하자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듣는 음악은 따로 있는 법이다.) 기승전결을, 그속에 담긴 이야기를 주목할 겨를이 현재의 우리에겐 없는 것이다.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구조의 소박함과 단순성이야말로 이런 여름밤에 적절한 음악이 아닐까. 본격 청취가 아니라 절반의 BGM을 의도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무슨 음악을 어떻게 듣느냐는 '스마트'한 디바이스가 해결해줄 것이므로, 조금 더 공을 들여 새로운 음악를 접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한 권의 책을 추천하는 것으로 말머리를 꺼낸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사람에 따라 온도차는 분명 있겠지만, 라틴 아메리카 음악의 성좌들을 찬찬히 접하다보면 이 여름밤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다소 말랑말랑하게 느껴질 것이다.(안느껴지면? 이런 종류의 글 속에서 설마 자연과학의 결정적 증거를 바란 건 아니죠?^^) <라틴 소울>은 그런 음악들과의 교감을 강화시키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글의 저자인 박창학은 윤상의 음반에 외부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했던 작사가이고, 최근에는 외산 뮤지컬의 한글 번안 작업(예컨대, "노틀담의 곱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윤상의 음악적 순례가 일렉트로니카로 대변되는 음의 해체와 재배열을 통한 '분석'과 월드뮤직으로 대변되는, 다양한 민족 및 인종의 음악에 대한 '종합'으로 구분된다고 했을 때, 우리에게 후자를 접하는 일은 음악적 감수성의 확장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창학은 그런 윤상에게 스승 같은 동료로서 남아있다. 국내외적으로 존경받는 뮤지션임에 분명한 윤상이 칭찬해마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책을 사볼 만한 가치는 충분해진 것이 아닐까. 다만, 생경한 음악의 숲에 난 길을 너무 낯설어하지 않기를, 혹은 수많은 방향으로 뻗어나간 그 길 위에서 황홀함에 방향감각을 잃지 않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