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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중국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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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인적으로 허수경 시인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녀가 내 고향 진주출신이라 그런지, 가난한 시인의 생활이 그러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혼자가는 먼 집을 읽고 한동안..그냥 너무 외롭고 가슴이 저려 .......... 결국엔 블로그 이름마저 혼자가는 먼 집으로 바꿀 정도로 마음이 쓰였다..   지금은 고고학을 배우느라 독일로, 이라크로 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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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인적으로 허수경 시인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녀가 내 고향 진주출신이라 그런지, 가난한 시인의 생활이 그러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혼자가는 먼 집을 읽고 한동안..그냥

너무 외롭고 가슴이 저려 .......... 결국엔 블로그 이름마저

혼자가는 먼 집으로 바꿀 정도로 마음이 쓰였다..

 

지금은 고고학을 배우느라 독일로, 이라크로 가 있지만...

여전히 작은 에세이집과 시집을 열심히 내고 있는

그녀를 책으로 그렇게 만난다..

언젠가 진주 박물관으로 돌아와 일하고 싶다는 그녀를 나도 꼭 만나고 싶다..

 

 

이책은 그녀를 알수 있는 아주 적절한 책이다.

진주 곳곳의 추억과 낭만과 아픔과.. 가난이 그려져 있고,

작가로서의 참담한 생활과 때로는 넘치는 지적 갈등도 읽을만 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짧은 글하나는 나에게 참 많은 생각을 해준것을 옮겨본다..

 

 

 

교양부족

서울에 들렀을때, 이름만 들어봤을 뿐 단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어느 프랑스 사회철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나누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떤 대학 근처에 있는 카페 안이다.
다들 맥주를 조금 마셨기에 그 철학자에 대한 토론은  안개속을
헤매는 듯하다

잘 모르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나누는 통에
나는 말을 잃고 가만히 듣기만 한다
아무리 들어도 잘 모르는 이야기이다.
교양 부족이라고 나를 탓한다.
다들 저렇게 잘 아는 사람인데 아직 나는 읽어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소외된 듯한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교양부족을 눈치챌까봐 소리를 죽이고 있다.
그 유명한 이도 모르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니, 다시 나를 책한다.


다음날 서점에 가서 그 사람이 쓴 책을 본다... 읽어도 잘 모른다.
아니 남의 글을 해독조차 못하다니,
이건 교양 부족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찐빵이다.



이 교양 부족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아니,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도 사무치게
그 철학자를 이해 할 수 있다니!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中에서

.

.

.

 

이 글은 참 그녀다운 글이다.. 나의  잘못된 모습도 보이고

혹은 저런 사람들을 본적도 있고.. 이 글을 있고, 얼마나 웃었든지..

가볍게 그녀을 알고 싶다면 꼭 필독하시길..

g******8 2010.11.22.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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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에서 외로움과 만나다
"길모퉁이에서 외로움과 만나다" 내용보기
사무치게 생이 간절해질 때, 아니 잃어버린 꿈에 연연해하며 서성거릴 때, 이 책을 만났다. 그 날은 온종일 집에서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날이었다. 하늘은 회색 빛으로 낮게 드리워져 있고, 금방이라도 흰 눈이 펑펑 내릴 것 같았지만, 하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아서 내 젖은 가슴만 조바심 치던 날, 난 시인 허수경의 외로움과 다시 만났다. 「슬픔 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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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치게 생이 간절해질 때, 아니 잃어버린 꿈에 연연해하며 서성거릴 때, 이 책을 만났다. 그 날은 온종일 집에서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날이었다. 하늘은 회색 빛으로 낮게 드리워져 있고, 금방이라도 흰 눈이 펑펑 내릴 것 같았지만, 하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아서 내 젖은 가슴만 조바심 치던 날, 난 시인 허수경의 외로움과 다시 만났다. 「슬픔 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로 처음 그녀를 만났고,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까지 오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먹어도 먹어도 늘 허기져 있는 외로움에 함께 동화되어 갔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땅에서, 낯선 공부를 하면서도 시를 쓰고 싶어하는 마음만이 간절한 세월이었다고 한 시인은, 적어도 시를 쓰거나 짧은 글이라도 쓰는 동안만큼은 한국어라는 바다에서 머물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난, 그녀의 시를 읽으며 이유 없이 아파했었다. 아픔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지금 그녀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땅 속에 파묻힌 고어들, 죽어간 유물들, 수천 년 전에 사라져간 것들을 복원하는 고대 근동 고고학 공부를 하고 있다. 시인의 삶을 잠시 접고, 낯선 이국의 땅에서 고고학을 공부한다는 그녀의 행보에 그녀의 시를 사랑하고, 그녀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당황해 했었다. 그러나 사막의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곳에서 발굴을 하면서도 그녀는 ‘아직도 아가인 사람의 마음 냄새’를 느끼는 시 한편에 행복해 하는 어쩔 수 없는 시인이다. 백 서른 아홉 개의 짧은 이야기와 아홉 개의 조금은 긴 편지가 실려 있는 이 책엔 시인의 고향인 진주의 이야기, 서울에서 생활했던 일과 독일 터키 시리아 등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자잘한 일상 등이 군더더기 없이, 그러면서도 아릿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소통의 부재를 겪어야 했던 사춘기 시절, 뚱뚱하다는 신체의 콤플렉스는 그녀를 골방으로 몰아 넣었고, 그 골방은 문학을 시작할 수 있는 모퉁이라고 했다. 그 외로움의 시간들은, 낯선 땅에서도 불쑥 불쑥 찾아온다. “함께 말을 나눌 사람이 없던 나날동안 그러니까, 내가 ‘이름 없는 나날’이라고 부르는 이 나날 동안 나는 혼자서 먼먼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난 지구 반대편에서 속삭이는 그녀의 말을 말없이 들어 주었다. 그녀는 또한 시시때때로 불안을 느낀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갑게 대해 주시는 한인교회 목사님이 “공부하시느랴 힘드시지요?”하고 묻는 말에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저를 위해서만 사니까..... 불안해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라고 대답한다. 그 불안은 단지 ‘저를 위해서만 사니까’도 아니고, 낯선 땅에 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인간은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깊이만 다를 뿐 누구나 고독하고 불안한 존재니까... 몸이 아픈 날이면 좀 호사를 누리고 싶어서, 있는 돈을 다 털어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찾는 그녀. 그 식당에서 마늘이 많이 들어간 중국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어느새 그녀의 상념은 대륙을 넘어 친근한 벗들이 있는 모국으로 향한다. 그런 추억들, 함께 정을 나눈 사람들과의 기억이 그녀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이겠지. 그 날... 낮게 내리 깔린 회색 하늘 탓일까? 내 마음도 그녀를 따라서 낯선 이국 땅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수 천년 동안 땅속에서 숨죽여 있던 유물들을 끄집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은... 아니, 그 처절한 고독 앞에 홀로 서 있고 싶었던 것은...
s****o 2005.02.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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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허수경조로 탄식해 보는 허한 산문들이라니...
"하, 허수경조로 탄식해 보는 허한 산문들이라니..." 내용보기
나는 허수경을, 허수경의 시를 좋아한다. 그녀의 시적 행보와 삶의 행보가 늘 궁금해지고, 멀리 독일로 날아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마냥 머물고 있는 것에 막연한 동경을 느낀다. 한 사람이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자리를, 지우와 선생과 모국어를 그토록 가까이 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두고 떠나기 어려울 터인데 그녀는 떠났고 지금도 떠나 있다. 그러니 그 먼 곳에서 전해온 전언들이
"하, 허수경조로 탄식해 보는 허한 산문들이라니..." 내용보기
나는 허수경을, 허수경의 시를 좋아한다. 그녀의 시적 행보와 삶의 행보가 늘 궁금해지고, 멀리 독일로 날아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마냥 머물고 있는 것에 막연한 동경을 느낀다. 한 사람이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자리를, 지우와 선생과 모국어를 그토록 가까이 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두고 떠나기 어려울 터인데 그녀는 떠났고 지금도 떠나 있다. 그러니 그 먼 곳에서 전해온 전언들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았겠는가. '길모퉁이...'는 그래서 내게 왔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결은 내게 닿았으나, 무릇 시집보다 더 공력을 들여야 하는 산문들일 터인데, 그녀의 글들은 내 마음결을 더이상 건드리지 못했다. 한편 한편 읽으면서 왜 이리 화가 나는가, 그녀에 대한 나의 기대와 믿음이 그리 컸던가 자꾸만 되집어 보게 되는 것을. 허수경에게 산문집은 다른 문학인들에 비해 뒤늦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시가 말해주는 것의 반에 반도 말 못하는 산문이라면, 시의 행간을 건너뛰기 일쑤인 독자들에게 마저 전해주지 못한 그 행간을 대신하는 것이 산문이라면, 그저 수십 편의 노트에 지나지 않는 이 산문집의 글들은 오히려 일부러 애쓴 듯이 태평하다. 허나 내용의 밀도가 이렇게 떨어지더라도 그녀의 시를 좋아하므로 애써 감싸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여백이 많은 편집, 그것이 산문의 행간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을 화나게 한다는 것, 간혹 등장하는 삽화가 참 유치하다는 것, 하나의 그림으로써의 의미를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글까지 망치고 있다는 점, 한 문장 안에 같은 부사와 지시대명사가 문법을 무시하고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 그녀는 왜 이리 급하게 다시 살펴보지 않고 무턱대고 글을 출판사에 넘겼을까. 출판사의 편집 방향을 책이 나오기 전에도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볼륨이 안 되는 원고를 왜 애써 그 먼 곳에서 이 먼 곳으로 보냈을까. 나는 아직도 이 책을 소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면서 이 글을 쓴다. 괜히 슬프고 안타깝고 화가 난다. 적어도 못다한 시인의 마음결을 어루만지고 싶어 이 책을 집은 독자라면 화가 나 마땅할 것이다.
i********t 2003.03.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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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되지 않는 외로움과 허기
"흡수되지 않는 외로움과 허기" 내용보기
이 책의 짧은(채 열줄이 넘지 않는 산문들도 있다) 글들에선 허수경 시인이 오랜 이국 생활을 하면서 삶의 일부분으로 끌어안았을 외로움과 향수와 마음의 허기가 묻어난다. 그러나 소설가의 산문보다 더 개성적으로 빛날 수도 있고, 또한 그러리라 기대하기 마련인 시인의 산문집으로서의 매력은 그다지 찾을 수 없다. 이 리뷰에 쓰려고 머릿속에 정리해두었던 대부분의 감상이 먼저 독
"흡수되지 않는 외로움과 허기" 내용보기
이 책의 짧은(채 열줄이 넘지 않는 산문들도 있다) 글들에선 허수경 시인이 오랜 이국 생활을 하면서 삶의 일부분으로 끌어안았을 외로움과 향수와 마음의 허기가 묻어난다. 그러나 소설가의 산문보다 더 개성적으로 빛날 수도 있고, 또한 그러리라 기대하기 마련인 시인의 산문집으로서의 매력은 그다지 찾을 수 없다. 이 리뷰에 쓰려고 머릿속에 정리해두었던 대부분의 감상이 먼저 독자리뷰를 올린 분이 이미 지적한 것과 일치하므로 반복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굳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의 편집인데, 단행본의 편집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은 없으나 그저 일독하면서 느끼기에도, 어떻게 적은 원고 분량으로 책 한권 뽑아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예를 들어 열줄 분량의 산문을 반으로 나누어 왼쪽 페이지에 제목과 다섯줄, 오른쪽 페이지에 다섯줄, 그리고 드문드문 뻘쭘하게 자리잡고 있는 삽화...산문이라기 보다는 노트에 흘겨쓰고 스스로 잊었을 법한 메모같은 글도 상당수 그대로 실려있고, 시인 자신도 다섯줄, 여섯줄짜리 산문(?)을 책에 올리기 민망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어쨌든 이 책은 너무 아깝다. 책값도 아깝고 시인의 글솜씨가 한껏 빛나지 않았다는 것이 아깝다. "백서른아홉 개의 짧은 이야기, 아홉 개의 조금은 긴 편지"라고 표지에 솔직하게 적어놓기는 했지만 수첩의 일부, 일기장의 몇 페이지를 옮겨놓은 듯한 이 책을, 그렇다고 결코 거부하고 싶지는 않은 시인의 깊고 진실한 목소리를 마음 속으로 흡수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YES마니아 : 로얄 t****7 2003.03.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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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한 허수경님의 글,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처음 접한 허수경님의 글,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내용보기
조금 못된 생각일테지만, 아니 조금 많이 못된 생각이지만 이상하게 내가 알지 못하는 분의 에세이집은 잘 찾지 않게 된다. 누군가가 선물을 해준다거나하는 것과 같은 우연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좀처럼 스스로 찾아보게 되는 경우가 없다. 여기에는 왠지 모르게 소소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랄까. 내가 알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하신분들의 에세이집이 아니면 좀
"처음 접한 허수경님의 글,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내용보기
 조금 못된 생각일테지만, 아니 조금 많이 못된 생각이지만 이상하게 내가 알지 못하는 분의 에세이집은 잘 찾지 않게 된다. 누군가가 선물을 해준다거나하는 것과 같은 우연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좀처럼 스스로 찾아보게 되는 경우가 없다. 여기에는 왠지 모르게 소소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랄까. 내가 알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하신분들의 에세이집이 아니면 좀처럼 읽지를 않게 되니..굳이 이유를 찾자면 소설에 푹 빠지기전에 읽었던 몇 권의 에세이에서 큰 감동과 재미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고, 그로 인해 거리를 좀 두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만 해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첫번째 이야기에서 그만 맥이 탁 풀려버렸다. 우박으로 망가져버린 채소들 앞에서 울어버렸다는 글을 읽고는 사전에 품고 있던 경계심이 탁 하고 무너져 버렸다.  비유를 하자면 소개팅 따위는 나와 맞지 않는다며 조금은 뚱한 마음으로 나간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느낌이랄까. 상대는 나를 잘 모르고 있겠지만 나는 상대방이 좋아지는, 덕분에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는 설레임을 ’마당 있는 집’이라는 짧은 글에서 느끼게 되었다. 

 허수경이라는 이름은 내게 참 낯선 이름이었다. 그렇지만 내게만 그럴 뿐 이분은 이미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셨고, 라디오의 작가로 활동을 하셨다 한다. 그렇게 많은 글들을 쓰시다가 본인이 세상에 내놓은 글들에게 갇혀버리면 어쩌나 싶어 작가로의 삶을 잠시 접어두시고 늙은 학생이 되셨다. 것도 고고학이라는 낯선 분야의. 

 잠깐일줄 알았던 늙은 학생의 생활이 길어지고, 그러면서 고향에 대한, 고국에 머물고 있는 지인들이 그리워 그들에게 쓰신 글들을 모아 엮은 이 책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자꾸보다보니 제목에서부터 왠지 ’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길모퉁이..길모퉁이..왠지 발음을 하면 할 수록 정이 가는 단어인 것 같다. 

  조금은 허전해 보이는 작고 얇은 책 속엔 허수경님의 많은 ’말’들이 담겨 있다. 정확히는 그녀의 삶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를. 

 우선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림움이 담겨 있었다. 섬처녀에서 뭍으로 시집와 검소한 생활을 하셨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와 함께 꽃밥을 먹던 이야기, 아버지의 임종을 홀로 지킨 동생에 대한 이야기..이상하게 가족이란 존재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당시에는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가도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 보면 마음 한 켠이 살짝 아파오는 것 같다. 아마 내가 효녀보다는 불효자에 더 가깝기 때문이겠지만. 

 그리고 그녀가 늙은 학생으로 머물렀던 독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녀가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배우면서, 발굴을 다니면서 만나게 되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발굴이라고 하면 단순히 땅속에 묻혀있는 유물들을 현재의 세상으로 드러내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읽다보니 그게 다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 단순한 줄 알았던 일에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금의 독일이  독일을 이끄는 문화의 깃발 아래 서야 한다는 어느 독일 정치인의 발언 때문에 독일의 정계와 문화계, 언론계가 시끌시끌해지는 것과 같은. 그리고 발굴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고, 경험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이기에 글로 접하는 그들의 생활이 조금은 신기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어디든 조금씩은 비슷비슷 하구나 싶었고. 

 한 번 무너진 경계심은 회복될  줄을 몰랐고, 좋았던 첫인상은 마지막까지 갔다. 
누구보다 조금은 외롭고 고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풍부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허수경님의 삶에 조금은 질투심이 일면서 소박하고 진실한 글들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w*******y 2011.01.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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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걸음걸음 풍요로운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걸음걸음 풍요로운 산문집" 내용보기
우르르 시인의 삶이 쏟아졌다. 나는 어느 것부터 정성들여 받아야 할지 몰라 한동안 우왕좌왕했다. 그러다가 노란 포스트잇이 붙은 종이와 안 붙은 종이로 시인의 이야기가 나뉘었다. 감동 받은 이야기. 아닌 이야기. 시인이 떠돌이 길에서 주웠던 많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쪼개졌다. 내 마음에 들어온 허수경 시인은 아마도 그녀 그 자체와는 조금 다른 사람일 것 같다. 내 속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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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르 시인의 삶이 쏟아졌다. 나는 어느 것부터 정성들여 받아야 할지 몰라 한동안 우왕좌왕했다. 그러다가 노란 포스트잇이 붙은 종이와 안 붙은 종이로 시인의 이야기가 나뉘었다. 감동 받은 이야기. 아닌 이야기. 시인이 떠돌이 길에서 주웠던 많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쪼개졌다. 내 마음에 들어온 허수경 시인은 아마도 그녀 그 자체와는 조금 다른 사람일 것 같다. 내 속에 있는 허수경 시인은 내가 공감한 이야기를 주워든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사람이다.

 

한 달 생활비(214쪽)
일단, 그녀는 부자다. 독일에서 한 달을 만 마르크가 넘는 돈으로 생활하는 학생이다.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는 세상의 참 많은 구석을 보았고 자기만의 세상을 축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 많은 생각보따리를 어떻게 지고 다녔을지. 이 산문집을 통해서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도 그녀는 지금까지 또 수많은 생각을 차곡차곡 쌓았으리라. 이번에 나오는 신간 시집에도 그녀의 나머지 시간이 아름답게 담겨 있을 것이다. 묵직한 보따리를 그녀는 대학 도서관에서도 쌓아갔다. 독일의 대학 도서관에는 한 달에 만 마르크가 넘는 금액으로 책을 구비한다고 하는데, 그녀의 삶에선 도서관이 자신을 대신에서 책을 사고 그녀는 책을 읽으면 된다. 그녀의 한 달 생활비는 오래도록 풍족할 것 같다.

 

우리 모두는(76쪽) 우린 모두 사실은 신화적인 존재지요.
그녀는 태몽을, 즉 우리의 탄생을 알려준 것이 아름다운 짐승이거나 풀이나 열매이거나 오래된 우물이라는,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모두 신화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어느 꿈으로부터 태어났다. 거기에 부모의 간절한 바람이 더하고 분명히 있을 누군가의 축복 속에 태어난 하나의 울음일 뿐이다. 허수경 시인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부터 태어났던 우리의 삶 자체를 곱게 서술했다. 덕분에 우리는 모두 고귀한 존재가 되었다.

 

하마 이야기(114쪽)
속삭이는 새들로부터 들었는지 그녀는 이따끔 자연세계에 놓인 이야기를 주워든다. 세상이 흘러가는 사이에 가끔씩 자연에 눈에 띄는 것처럼 갑작스런 그녀의 동물, 식물 등지의 이야기도 값지게 들린다. 대개 사람 사는 이야기보다 더 솔직하고 단선적인데 하마 이야기도 그랬다. 나도 하마는 헤엄을 무척 잘 치는 줄로 알았는데 아니란다. 먹이를 구하려고 깊은 물까지 들어가긴 하지만 하마는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걸어들어가고 걸어나온다고 했다. 즉, 물길보다는 땅길을 찾는 것이다. 그 뒤로 애처롭게 홍수가 났을 때 땅길을 찾지 못해 죽은 하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녀의 이야기는 하마에게까지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날틀(75쪽)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이야기까지 내 사유 주머니에 구멍이 났다. 구멍 너머에 있는 세상에 시인의 이야기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폭폭 쌓고 있었는데 그 세상이 생각보다 어마어마 했던 것.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은 다른 시인들의 산문집과 다르다. 간단하고 짧은 생각에도 오만가지 사건, 생각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무릎을 탁 치게 되는 한마디로 정리된다. 날틀의 마지막 구절이 와닿았다. 삶의 조건을 넓히는 일은 죽음의 조건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고.

 

죽음을 맞이하는 힘(119쪽)
그녀는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그녀가 이야기꾼이니 그녀에게로 세상의 이야기들이 찾아오는 것 같다. 죽음을 맞이하는 힘에서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한 편의 에피소드를 전해준다. 사는 힘도 힘이지만 죽음으로 가는 힘도 힘인 것을. 할머니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바라는대로 돌아가셨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연히 많은 시인들의 산문집 몇 권을 보게 되었다. 손이 갔던 것도 아니고 책이 내게로 찾아온 것이 계기였다. 대개의 산문집이 하나의 어휘로부터 연상되는 시인의 단편적인 사유가 담겨 있었다. 일상이 담겨있기도 했고 내가 보기엔 조금 특별한 작가로서의 삶도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너무 재미있었고 도리어 작가의 사유로부터 나의 생각까지 솔직하게 살필 수 있어 좋았다. 모든 산문집이 그렇기에 특별했고, 허수경 시인의 ’길 모퉁이의 중국식당’은 넓은 세계를 볼 수 있었고 더 넓은 작가의 생각과 깨달음을 배울 수 있었기에 더 값졌다. 허수경 시인의 시를 읽어보지 못하고 산문집부터 보게되어 도리어 편견없이 책을 읽게 되었다 좋아했었는데, 산문집을 읽고 허수경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 편견에 사로잡힐까 걱정이 들었다. 허수경 시인이 글이라면 무조건 반해버릴 것 같기 때문.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말은, 글 드문드문 유쾌했던

그래서 어쩔건데?
시인의 넓은 세계관이 너무 풍요로웠다.     


덧.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앞뒤로 이병률 시집 '찬란'(문학과지성사, 2010)을 읽었다. 본 시집에 대해 해설을 하였던 허수경 시인의 이름이 보이지 않다가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읽고 색다르게 읽히는 마법에 걸린 순간 나는 이 기막힌 우연에 껌뻑 놀라고 말았다. 너무 반가웠다.

a*******6 2011.01.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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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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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마음속에 등불을 간직한다는 것은 어쩌면 두 개의 같은 이름이 아닐까, 라는 생각해 봅니다. 외로운 사람은 마음속에 등불을 켤 수 있다. '마음속의 사진기'를 꺼낼 수 있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찾는 그이, 허수경 시인이 제게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함께 말을 나눌 사람이 없던 나날, 그이는 그 나날을 '이름 없는 나날'이라고 부릅니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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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마음속에 등불을 간직한다는 것은 어쩌면 두 개의 같은 이름이 아닐까, 라는 생각해 봅니다. 외로운 사람은 마음속에 등불을 켤 수 있다. '마음속의 사진기'를 꺼낼 수 있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찾는 그이, 허수경 시인이 제게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함께 말을 나눌 사람이 없던 나날, 그이는 그 나날을 '이름 없는 나날'이라고 부릅니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은 그 이름 없는 나날 동안 그이가 혼자서 말을 건, 짧은 또는 긴 이야기들을 담아 놓았다고 합니다. 이름 없는 나날에는 그이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녹아있습니다. 그이가 시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그럴까요, 이름 없는 나날은 때때로 마음을 편하게 하며 다독거리는 시가 됩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름 없는'에 마음이 몹시 쓸쓸해져 버렸습니다. 컴퓨터, 인터넷 시대에 너무 동떨어지지 않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써먹어야 하는 한 사람으로 새로운 이름을 찾기 일쑤였지요. 이미 길들여진 이름이 아니라 마음의 어떤 상태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을 갖고 싶은 것입니다. 모두가 그러하겠지요. 그런데 이름이란 누군가 불러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다면 또, 그 이름이 담고 있는 마음을 읽어주지 않는다면 그 이름은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없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름이 불려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순간 덧없는 생각들이 지나갑니다. 어쩌면 이름은 욕망이 아닐까하고 말이지요. 이름이 없다는 것은 욕망을 지운다는 것이 아닐까, 저도 모르게 쿡쿡거립니다. 욕망 없이 삶을 산다는 것은 아직 제겐 힘에 부치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시인인 그이는 마음 가득한 등불과 빛을 담은 집(책)을 지었고, 저는 어느 인터넷 동호회에 '이름없는날'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욕망을 지우는 것입니다.

[인상깊은구절]
어느 날 저녁, 시간이 없어서 저녁밥은 못 하고 당근 오이나 잘라 먹자, 하고 당근 껍질을 벗기다가 녀석들을 보았다. 나는 당근을 던져주었다. 오물오물 단방에 먹어치웠다. 그후로 자주 나타나서 내가 당근을 던져주면 오물오물 먹었다. 이제는 당근이 집에 없는 날에도 나타나서는 내 방 앞 잔디밭을 어슬렁거렸다. 따로 당근을 사들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기숙사로, 비록 당근 때문이지만 찾아오는 녀석들이 참 예뻐서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말았으니…… 녀석들 중 두 마리의 목에다 리본을 달아준 거다. 한 녀석에게는 푸른색을 한 녀석에게는 붉은색을. 여름 내내 우리는 참 친해졌다. 용하게도 녀석들은 언제나 리본을 달고 나에게로 왔다. 껑충거리면서도 잃어버리지 않았나 보다. 어느 날 나는 기숙사 주차장에서 차에 치인 토끼를 보았다. 그리고 푸른 리본도 보았다.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
s*****1 2003.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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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시인에게서 온 위로의 말들--- [산문-길모퉁이의 중국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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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자란 곳을 떠나 살고 있는 이들의 마음에는 어떤 아픔이 남아 있을까. 돌아가고 싶어도, 혹은 돌아갈 수 있어도 돌아가지 않는 그 숨겨진 의지에는 어떤 그리움이 병이 되어 있을까. 허수경의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 이건 그녀의 시집으로서의 또다른 모습이다 여기면서 그녀가 애써 숨기려 하는 깊은 병을 엿보았다. 어쩌면 그 병이 내게도 아주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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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자란 곳을 떠나 살고 있는 이들의 마음에는 어떤 아픔이 남아 있을까. 돌아가고 싶어도, 혹은 돌아갈 수 있어도 돌아가지 않는 그 숨겨진 의지에는 어떤 그리움이 병이 되어 있을까. 허수경의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 이건 그녀의 시집으로서의 또다른 모습이다 여기면서 그녀가 애써 숨기려 하는 깊은 병을 엿보았다. 어쩌면 그 병이 내게도 아주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면서. 작가는 지금 독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시인이 무슨 이유로 고고학을 공부하는 것일까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으나 그 공부로 인하여 나는 그녀가 더 넓고 더 깊은 시들을 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번 산문집만 보더라 해도 일상적인 삶 속에서는 건질 수 없을 것 같은 귀한 느낌들이 알알이 담겨 있었으므로.

길을 떠난 시인, 길을 나선 지는 오래라고 하는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시인. 마음은 어지럽고 사랑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지나간 어느 인연 하나에서도 놓여 나지 못하는 사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지만 가슴이 뜨거워서 마음이 여려서 끝내 눈 감고 돌아서지 못하는 사람. 나는 왜 자꾸만 그녀를 닮으려고 하는 나 자신을 나무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닮으라는 것인지, 닮지 말라는 것인지 그조차 모르겠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시처럼 편지처럼 시인의 마음이 펼쳐져 있다. 더러는 마음 반 쯤 가려 놓고 있기도 하다. 그것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시인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멀리, 내가 살고 있는 이 땅과 내가 지금 살아 있는 이 시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녀의 마음을 열고서야 읽을 수 있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03.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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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쯤 가고 있을까? -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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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어느 날 나는 기숙사 주차장에서 차에 치인 토끼를 보았다.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 ( '가소로운 욕심'에서 ) (45)  2008년, 2009년, 그리고 2010년 봄… 두 해 반을 달려오던 읽고 쓰기의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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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어느 날 나는 기숙사 주차장에서 차에 치인 토끼를 보았다.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 ( '가소로운 욕심'에서 ) (45)
 2008년, 2009년, 그리고 2010년 봄… 두 해 반을 달려오던 읽고 쓰기의 시간이 갑자기 멈춰 버렸다. 아마도 지친 탓이었을 것이다. 귀한 시간을 쪼개어 읽고 또 읽고 어쭙잖은 생각들을 떠버리던 그 시간. 하지만, 갑자기 이 모든 게 멈춰버렸다. 
 일은 바빠지고 계절은 빠르게 여름으로 달려가며 손에서 놓아버린 책은 다시 다가오지 않았고 서재에는 읽다가 만 이야기들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갑자기 쓰러지셨다. 7월의 수술 이후 8월부터 시작된 병상 생활이 여태 이어지고 계시니…. 다행히 가을의 위험한 고비도 넘기시고 다가오는 봄이면 퇴원하셔서 예전처럼 나랑 야구장에 다니실 수 있으리라. 
 하지만, 반 년 이상 이어진 아버지의 병상 생활만으로 무너진 책과의 애정(!)전선을 변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병원을 오가며 한 달에 두어권의 책들은 읽긴 했지만 그뿐.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었다.
 트위터, 라는 이상한 녀석을 만났다. 깊은 생각 없이 마치 한때 피우던 담배처럼, 불쑥 다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흩어지고, 다시 만나는 짬짬이 시간, 그 속에 가슴 속 쌓인 이야기들도 흐트러지며 스러져갔다. 
 생각하고 메모하고 되새기고 글로 말하는 절차가 필요없는 바로 묻고 답하는 이야기, 때론 가볍기도 하고 쓸모없어 보이기도 하겠지만 내겐 소중한 위안의 시간이었다. 

 

 

Ⅱ.
 처음에는 다들 잡초였다. 사람들이 잡초들을 제집에서 기르기 시작하면서 잡초와 잡초 아닌 것이 생겼다.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풀이 꽃을 피우는가. ( '잡초를 위하여'에서 )  (56)
 지난달, 트윗에서 이야기만 나누던 몇 분들을 처음 만났다. 늘 소극적이고 움직이기 싫어하던 내겐 큰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 만남이 계기가 되었을까? 조금씩 다시?!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였다.

 지난주에는 올해 중2가 되는 랑딸('사랑하는 딸'의 줄임말^^)과 함께 부산 보수동에 있는 "책방골목"을 다녀왔다. 딸과 함께한 나들이로는 거의 처음인데다, 책 이야기를 나누며 다녀올 수 있어 더욱 좋았던 시간이었다. ( http://j.mp/hqjGuM ) 

 

 

 지하철을 이용한 나들이였기에 각자 책 한 권씩을 들고 출발하였는데 랑딸의 손엔 <데미안>, 내 손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이 들려 있었다.

 

Ⅲ.
 마음의 무엇인가가 춤으로 가려는 내 몸을 막고 서 있다. 나는 어설프게 움직이며, 그러니까, 춤 비슷한 것을 추며 나에게 말한다. 몸이 자유로운 혹은 마음을 어느 축제에 온통 맡겨 놓을 수 있는 이 아이들을 보아라. 무엇이 가로막고 서서 저 축제로 가려는 나를 막고 있는가! ( '축제'에서 ) (35)
  허수경( http://j.mp/fBzE7S ),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에서 만난 매력적인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던 터라, 그의 산문이라면 부담 없이 만나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으리라. 그런데…
 독일에서 근대고고학을 연구 중인 우리말! 시인이라니, 옛 시집의 감성만 기억하고 있던 이에게서 만나는 풍경들에 처음엔 낯설다가 따스한 감성이 묻어나는 글들에서 어떤 향취를 느낀다.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아도 좋았을 무렵의 냄새…(136)'를 만나기도 하고….
  느긋하게 만난 이야기에서 적지 않은 어루만짐의 글을 만나며 이윽고 이야기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래, '있는 돈을 다 털어 길모퉁이에 있는 그 중국집에 가 앉'(126) 던 어느 날의 지은이처럼, 문득, 그런 날이 내게도 찾아온 것이리라. 부디, 이것이 '내 문학의' 새로운 '시작'(139)이기를….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나는 너와 다른 것이다. ( '베를린 시장'에서 ) (47)
2011. 1. 27.  새벽, 다시 시작합니다. 꾸벅 ^^;
들풀처럼
*2011-001-01-01
 가녀린 손가락을 가진 별 같은 독서의 시절은 왔다 세계를 읽다보면 이건 슬픔으로 가득 찬 배고픔으로 억울한 난민의 역사 같아서 빛 속에서 나던 냄새를 맡으며 세계를 여행하는 저 어린 새들~ (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슬픔의 난민'에서 ) (67)
w******e 2011.01.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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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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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만, 이 계절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잠시 미뤄두었을 책이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리워지는 날들, 소식이 끊긴 지인의 짤막한 소식이라도 들었으면 좋을 날들이다. 작가가 독일이라는 먼 타국에서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 기록했을 소소한 일상들, 가족이 있는 고국의 그리운 이들을 생각하며 썼을 편지글들은 지금,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혼자라는 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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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모퉁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만, 이 계절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잠시 미뤄두었을 책이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리워지는 날들, 소식이 끊긴 지인의 짤막한 소식이라도 들었으면 좋을 날들이다. 작가가 독일이라는 먼 타국에서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 기록했을 소소한 일상들, 가족이 있는 고국의 그리운 이들을 생각하며 썼을 편지글들은 지금,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혼자라는 외로움에 빠져들 때,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어진다. 어떤 이라도 좋으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막연하지만 무슨 이야기라도 다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왜 이 책에서 나는 그런 소리를 들었을까. 그것은 혹, 깊은 밤, 홀로 깨어 있었던 경험이 떠올라 그랬을까. 몇 줄 되지 않은 짤막한 글에서는 일부러 긴 호흡을 끊은게 아닌가 싶었다. 생각이 길어지면 정작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상념에 잠기게 되니까.

 

 문학이라는 공통 분모로 살아왔을 지인들에게 쓴 긴 장문의 편지글, 그네들이 보고 싶어 사무치게 그리우면서도 차마 그립다 말하지 못하는 그녀를 본다. 어찌 그립지 않으며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낯선 이방인들과의 점점 동화되어가는 삶, 아무리 타국 생활이 길다하여 내 고향 같을 리 없지 않은가.  한국에서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이런 저런 수다를 털어내는 모습, 그것은 먼 거리를 떠나지 않더라도 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곳으로 온지 4년을 채우는 동안, 지인을 만나러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적이 없다. 그저 녀석들과 길고 긴 목소리로의 만남 뿐.

 

 시인이라는 삶이 시작된 건 아마도 말로 세계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겠지만, 인위적으로 그 삶을 목 졸리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도 말에 대한 애증 때문은 아니었는지. 독일은 우리말을 쓰는 나라가 아니고, 난 그게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입을 자동적으로 다물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 무렵 나에게는 말을 멈출 수가 없는, 혹은 이대로 가다가는 말에 갇혀버리고 말 것 같은 ‘말 공포’같은 게 마음 깊숙한 어느 곳에 도사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말이 나를 부패시키고 말 것이라는 공포. 이런저런 이유로 근원을 알지 못하는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거지만, 그 시절 나는 그런 걸 잘 받아들일 수 없었다. 161쪽

 

 시인의 삶은, 고고학자의 삶은 어떠할까 라는 기대감도 많았지만, 막상 이런 글을 대하고 보니 가슴이 탁 막히는 기분이 듣다. 비단 말 공포뿐일까. 세상 공포, 사람 공포, 심지어는 그저 산다는 것에 대한 공포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그리하여 자분자분 이야기하는, 아니 꼭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시인의 말들은 이제 마음이 울적한 날, 햇살을 받아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날들에 간절한 글이 될 것이다. 눈이라도 온다면, 추적 추적 비라도 온다면 더 그리운 구절들이다. 이 계절을 잘 견뎌내고 씩씩한 움이 트는 봄 날이 면 시인의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로 시작하는 그녀의 또 다른 노래를 들어도 좋으리라.

r*********s 2008.12.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