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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1501년-1570년)은 율곡 이이와 더불어 조선성리학의 대부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대표적인 사상인 이기호발설은 영남학파라는 학맥을 탄생시키면서 이이의 기호학파와 양대산맥을 형성하여 조선시대 학문번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물론 이런 학파가 단순한 학문정진을 넘어서 정치에 관여함으로서 당쟁이라는 돌이킬수 없는 부정적인 면도 보였지만 중국보다 더 깊은 학문적 성과를 발휘했던 것은 사실이다. 후대에 와서도 이황과 이이는 화폐에 등재될 만큼 우리에게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이다. 이러한 면들로 인해서 우리에게 이황은 고지식하고 원리 원칙적인 학자의 이미지로 비쳐지기도 한다. 대부분 이황을 접하게 되는것은 그의 학문적인 이론이나 정치적인 담론에 급급하다보니 한 개인의 인간성에 대한 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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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원짜리 지폐를 볼 때마다, 매번 만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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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바탕을 가지고도 오히려 어렵네, 뉘우침과 화 없이 하기란,,,,]이는 우리가 퇴계라고 부르는 이황 선생님의 <동재에서 일을 느끼다>라는 한시의 일부이다. 아무리 훌륭한 바탕을 가지고도 뉘우침없이는 삶을 살기가 어렵운데, 하물며 하찮은 자신은 벼랑 끝에 선 듯 살얼음을 밟듯이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퇴계 이황 선생님, 벼슬을 물리치고 토계라는 마을에 정착하면서 자신의 호를 퇴계라고 지었는데, 이 책은 이황 선생님이 토계마을에서 지은 시들을 모아 이장우. 장세후 씨가 함께 번역하고 주석과 해설을 담은 것으로 <퇴계잡영>이란 제목으로 출판사 연암서가에서 내어놓았다.
사실, 우리의 선조들이 적은 시나 글들을 자주 접해보지 않았다. 우선은 어렵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시대적인 정서적 코드가 다르지 않나 싶어, 와닿는 감성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남의 나라의 고전 시나 글들은 꼭 읽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우리네 글과 시는 등한시해왔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은 아닌데~' 하는 반성의 시간을 갖던 중에 퇴계 선생님이 적으신 시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의 책이 나왔다하여,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내뻗게 된 것이다.
<퇴계잡영>이란 제목에서의 잡영이란 "생겨나는 일에 따라 읊조리는 것" 이라고 한다. 비슷한 말로 잡시라는 것도 있는데, "이러저라한 흥취가 생겨날 때, 특정한 내용이나 체제에 구애를 받지 않고, 어떤 일이나 사물을 즉흥적으로 지어내는 시"를 말한다고 머릿말에서 밝히고 있다. 즉, 이 책은 퇴계 선생님이 벼슬을 내어놓고 토계[퇴계]마을로 와서 그날 그날이 안겨주는 풍경과 일상들 속에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시들을 적은 책인 것이다. 하여, 강가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그 편안함으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시들인 것이다.
역시 문장가였음을 알 수 있듯이 즉흥시임에도 그 싯귀 하나 하나가 참으로 멋스럽다. 이 책은 퇴계 선생님의 한시 원문과 그 번역본 및 해설과 주석까지 현대의 독자들이 이황 선생님을 만나는 일을 어렵지 않게 소개시켜주고 있다. 너무나 오랜 옛 분이라 만나기 부담스러웠을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이황 선생님의 좀 더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만 들어오고, 화폐 속의 그림으로만 만나오던 이황 선생님, 그분의 글을 맘껏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뜻깊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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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일생을 들여다 보다
처음엔 너무 어려운거 아닌가 싶어서 다시 책을 읽다가 덮었습니다. ㅎㅎ 한자에 약한 제가 과연 이 시를 읽을수가 있을까? 아니 해석을 할수가 있을까 하고 지레 겁을 먹었던 게지요.ㅎㅎ 어리석게도 말입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궁금해진 내용을 보기 위해서 다시 살짝이 책장을 펼쳐보게 되었지요.. 그제사 제대로 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직접지은 한시라서 그런지 그분의 일상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시에서 고향 생각이 절로 납니다. 저도 어릴적에는 작은 뒷산을 등지고 계곡물소리 졸졸 나는 그런 산골 작은 마을에서 자랐기에 더 그리워 지는 고향 생각들... 그리고 참 이상하지요 . 이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책을 읽고 있었지만 제 마음속에서 이미 작은 그림들을 한장씩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시가 너무나 생생한 그림을 그리도록 이끌어 주고 있더라구요. ㅎㅎㅎ 제가 그 시절 함께 한것처럼 말입니다 조용히 앉아 계신 선비님이 시를 한편 읊어주는 것 처럼 느껴지는건 참 이상하지요 그만큼 마음이 자꾸만 편안해 지더라구요. 어려워 보이던 책이 눈에 들어오면서 따스한 차 한잔 곁에 두고 읽고 있노라니 몸도 마음도 편하고 짧은시에 이어 한자풀이와 시의 해석이 차례대로 나열이 되어 있어서 전혀 무리없이 내용을 이해하고 속속들이 제 머릿속에 기억창고에 저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너무 놀랐습니다 재미없고 어렵고 지루한 책일거란 처음 생각과 너무나 달라진 제 모습에 저도 놀랐습니다 퇴계이황이 지은 한시 중에서 가려서 뽑았다고 하나 하나같이 다 그분의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지 참 대단한거 같았습니다 한번 읽고 내용이 마음에 더 와 닿는 부분은 다시 한번 더 읽고 갑니다. 이 책은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잡한 일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제가 책에서 위로를 받는 느낌은 처음입니다. 멋진 책 너무 고마운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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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선생님의 시를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 유명하신 분이지만 사실 그의 호 퇴계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퇴계 선생님 고향에 토계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이름을 살짝 고쳐서 퇴계라고 호를 정하셨다고 한다. 그 분의 시를 보면서 자연을 사랑한 선조들의 멋과 풍치와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요즘 시를 안 읽은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보통 소설이나 일반 글들을 많이 읽었다. 시다운 시를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옛날 시이지만 오랜만에 시를 대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실 옛 시들은 이해하기가 좀 난해하고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 책은 그런 점에 착안해서 해설도 상세하게 해주고 더욱이 좋았던 것은 따로 산문으로 번역하여 준 것에 있다. 시로 읽을 때는 나름 시적인 표현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고, 산문은 이해하기가 쉬워서 좋았다. 이 시들을 읽으면서 참으로 우리 조상들은 멋진 분들이다라고 감탄하면서 보았다. 달, 매화 등 자연과 벗하며 그것들을 시로 옮겨놓았다는 것이 멋졌다. 매난국죽이 사군자라고 하더니, 역시나 그것들은 시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것들 같다. 특히나 퇴계 선생님의 글에는 매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기나긴 겨울의 인고의 세월을 겪고 피어난 흰 매화는 선비들이 보기에 참 좋았었나 보다. 지금의 우리들도 매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선조들이 좋아하는것에 비기지는 못할 것 같다. 또한 퇴계 선생님의 시에는 도연명의 시에 화답하는 시가 많다. 전원 시인으로 유명한 도잠 도연명의 삶을 동경하고 또한 닮아가는 삶을 사셨다고 하는게 과연 그에 화답하는 시도 많이 쓰셔서 두분의 시풍이 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전원에 은거하는 삶을 사시는 모습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나도 노후에 전원에 살면서 꽃도 심고 채소도 가꾸고 하면서 자연과 벗하는 삶을 살면서 시를 쓰고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종환 시인처럼 말이다. 자연과 벗하는 삶이야 말로 가장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ㅅ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위자연.. 도가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지만... 자연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곳이고 또 돌아가야 할 곳이 아닌가... 현재의 자연을 생각하면 마음 아픈 생각도 많이 든다. 환경 파괴가 너무나 많이 된 까닭이다.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퇴계 선생님이 아들에게 쓴 글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책도 꼭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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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갑 속에서도 늘 ‘이황’님은 우리의 곁에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분에 관해 짧게 설명하라고 하여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머리가 멍해진다. 많은 책을 쓰시고, 제자를 가르치시고 관직에 계셨던 그분의 삶을 줄줄 꿰지는 못하지만, ‘퇴계 잡영’을 통해 이황의 인간의 한 면들을 알아갈 수 있는 좋은 독서였다. 우선 이 책은 40대 중반 이후에 토계(지금의 도산면 토계동)에 정착하여 살면서, 호를 퇴계라고 고치고 그 토계마을에서만 지은 시를 모아 놓은 책이다. 한문 원시도 실려있지만, 한문을 모르는 나에게는, 한글 번역, 그리고 산문으로 풀이된 3가지로 읽을 수 있어서 다행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퇴계가 ‘호’를 말하는 것이라면, 잡영이란 ‘흥이 돋을 때 즉흥적으로 지어내는 시를 말하는 것이다. 퇴계 이황의 시를 읽어 내려가노라면, 개울이 흐르고, 꽃이 만발하고 사람의 왕래가 없는 깊은 산속에 지어진 작은 초가집에 앉아 있는 편안한 기분이 든다. 그는 늘그막에 겨우 작은 집 한 칸을 마련하고 작은 텃밭에 채소를 키우며 자급자족한다. 그에게, 기름진 음식은 ‘육류’가 아닌, 선인들의 말씀이 담긴, 책이며, 디저트는 흥에 겨워 읊는 시 였을 것이다. 사계절을 노래하고, 평범한 자연환경에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며 황홀한 문장을 만들어 낸다. 16세기에 태어난 그의 시를 처음 읽게 되면, 현란한 영상에 노출되어 있던 버릇이 있어서, 조금 심심하고 재미없다라고 느낄수 있는데 집중해서 읽다보니, 이것이 바로 풍류의 멋이고, 사색의 멋이 아닐까 싶었다. 삼림욕을 하며 정신을 맑게 하는 기분이 든다. 깊은 산속에 살아, 벗들과 제자들이 자주 왕래하지 못해서 쓸쓸함과 적막함을 느끼는 하나의 인간이지만, 그 적막함과 자연에 둘러쌓인 편안함을 즐기는 신선같기도 한 모습이 보인다.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 어감에 따라, 몸이 약해지고, 눈이 나빠져서, 자신이 학문을 게을리 하고 있다고 자책과 경고의 시들도 자주 보인다. 이황에게는 평생에 놓을 수 없는 것이 책이 아닐까 싶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과, 학자들의 시에 화답을 하는 시들을 보며 지금처럼 쉽게 말이 오가는 세상이 아닌, 정성껏 시를 지어 화답하고 여러 번 생각하고, 쓰고 또 써서 답하는 그의 삶이야 말로 세상 이치를 거스를리 없고, 진실로서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보다 앞서 살다간 문인들에 대한 애정이, 그에게 책을 놓지 못하는 힘이 되어준 모양이다. 그러한 그에게 인간적인 면이란, 달을 벗삼아, 벗을 그리워 하며 술도 마시고, 순박한 농사꾼처럼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였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따랐던 모습을 보니 역시 요즘 우리 세상에 녹을 먹는 사람들과는 다르구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러번 읽을 수록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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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잡영 이황 | 연암서가 도학자 퇴계의 한가할 때 흥이 나서 쓴 시를 만나다. 이황이라고 하면 근엄한 선비 유학자라는 선입감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이황(李滉, 1501∼70)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부터 풀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런지... 자는 경호이며, 호는 퇴계. 연산군 때 경상북도 안동 도산에서 진사 이식의 여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하며 순탄한 관료 생활을 보내던 퇴계는 종 3품인 성균관 대사성에 이른 43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뜻을 품는다. 이후 세 차례나 귀향과 소환을 반복하면서 고향에서 연구, 강의, 저술에 전념한 퇴계는 50세 이후에는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과 계상서당 및 도산서당을 세우고, 그의 학덕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문인들을 가르치며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물러난 후에도 조정에서는 계속하여 높은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거듭 사직 상소를 올려 받지 않았으며 마지못해 잠시 나갔다가도 곧 사퇴하여 귀향하기를 반복하다 70세 되던 1570년 12월 8일 세상을 떠났다. 이황하면 먼저 떠오르는 학자와 선비의 이름으로 이기일원론이니 이기이원론이니 사단칠정론이니 하는 딱딱한 학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잡영’(雜詠)이라고 특정한 내용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일이나 사물을 보고 즉흥적으로 지어낸 시를 통해 접하게 되는 기회가 된 듯하다. 근엄한 유학자의 틀에 박힌 학문에 대한 딱딱한 이야기보다 한가할 때 흥이 나서 지은시라면 이황의 내면에 담긴 이야기라 선비적 이미지는 물론 인간적인 내면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 유학자로서 당대 높은 관직생활에서 막대한 지위를 누렸을 이황의 진면목은 학문의 뜻을 바로 펴고자 했던 선비의 마음과 자연으로 돌아가 그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누리고자 했던 모습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맑은 시냇물과 푸른 산,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 저녁에 뜨는 달, 철따라 바뀌어 피는 꽃, 마음속 그리운 벗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소재로 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누런 책 속에서 성현들을 마주하고서 텅 비어 밝은 방에 초연히 앉아 있네 매화 핀 창으로 또 봄소식을 보나니 구슬 장식한 거문고 보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말게나 [퇴계 이황] 자연과 더불어 살며 학문에 뜻을 둔 학자로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속세의 번잡함을 뒤로한 채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의 소박하고 운치 있는 일상과 나이 들어가며 다 하지 못한 학문의 뜻에 대한 기대가 보인다. 시를 짓던 당시 풍경이 그리지는 듯 한 해석을 반복해서 읽으며 느껴지는 글의 맛이 있고 익숙하지는 않지만 원문 띄엄띄엄 읽으며 찾아볼 수 있는 각주까지 달려있어 더 친근하게 다가서는 책이다. 이 책 [퇴계잡영]과 자매편이라고 하는 [도산잡영]까지 읽어볼 기회가 함께 한다면 퇴계이황의 후반기 학문의 성과와 인간적인 풍모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뜻을 같이하는 벗과 어울리며 그 벗들에 대한 그리움, 선후배 할 것 없이 마음 나누는 이야기에 가슴 따스함이 베어 나는 것은 왜일까? 이 책은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힌 생활과 현실에 메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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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시를 좋아하면서도 한시를 제대로 읽어보긴 처음이다. 한시는 제대로 배워서 좀 아는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싶었던 마음에 그동안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지만 이번에 퇴계잡영은 이황선생의 한시를 읽기 쉽게 한문 원시의 한글 번역과 또 그 내용을 다시 산문으로 풀어 설명해놓은 책이라 딱딱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읽어봐야겠다 마음먹고 집어든 책이다. 잡영의 사전적 의미는 생겨나는 일에 따라 읊조리는 것인데 시의 제목으로 상용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말로 잡시라는 것도 있는데 이러저러한 흥취가 생겨날 때, 특정한 내용이나 체제에 구애를 받지 않고, 어떤 일이나 사물을 만나면 즉흥적으로 지어내는 시를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퇴계잡영의 시들은 퇴계 선생이 벼슬에 대한 생각을 미련없이 버리고 퇴계마을에 머무르면서 언제나 마주하는 맑은 시냇물과, 푸른 산, 조용히 음미하며 읽었던 책이나 철따라 바뀌어 피는 꽃들을 소재로 저절로 흥이 나서 쓴 즉흥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퇴계잡영에 담겨져 있는 한시들은 모두 이황선생이 40대 이후에 토계라는 마을에 정착하면서 자신의 호를 퇴계라 고치고, 그 토계마을에서만 지은 시를 모아 해설과 함께 엮어낸 시집이기도 하다. 한시란 한문학중에서도 운문으로 이루어진 시를 말한다. 어려기만 했던 한문 고전을 이번에는 꼭 도전해보리라 마음먹게 만들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어렵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저자들이 모두 쉬운 말로 다시 바꿔 옮겼기 때문에 읽는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이것만큼 반가운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안동의 토계동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조그만 실개천이 있는데 이 실개천의 원래 이름은 토계였다. 이퇴계 선생이 이 토계를 퇴계로 고쳐 부르면서 자신의 호로 삼으셨는데, 퇴계라는 시를 읽어보며 퇴계선생의 됨됨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된다. 속세를 벗어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은 채,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던 그 분의 성품을 다시 보면서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 깊은 뜻을 배우고 따라야 할 점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 속의 시들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퇴계 선생이 한가롭고 조용하게 자연 만물을 보고 느끼며, 대자연과 자신이 하나됨을 느껴 흥에 겨워 적어내려갔던 시들이란 인상을 받게 되는데 퇴계 선생은 잡영이야말로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원문만 보았다면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테지만 시에 대해 얽힌 일화나 구체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해설, 그리고 어려운 단어에 대한 설명으로 인해 한시를 처음 접한 내가 봐도 결코 어렵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퇴계잡영을 통해 학문을 닦아 성현의 길에 이르고자 했던 퇴계 선생의 전원 생활이나 향토에서 삶을 이해하고자 했던 마음을 되새겨 볼 수 있었다. 퇴계 선생이 후세에 남긴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 전혀 후회되지 않았고, 그동안 한시라면 별 관심이 없었던 나였지만 앞으로는 한시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될 것만 같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크게 올린 수확이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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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은 중년 이후에 토계(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동)라는 마을에 정착해 살았다. 이때 호를 퇴계로 고쳤다. 이 책 <퇴계잡영>은 이 시절에 쓴 시들을 묶은 책으로 한문 원시와 함께 한글 번역본을 싣고 있다. 그 번역본에 이어 산문 형식의 풀이 글까지 싣고 있는데, 그 풀이가 무척 유익하다. 내게는 한시의 번역문보다 그 풀이가 훨씬 더 와 닿았다. 원문에 충실한 것은 물론이고 그 시절의 풍취가 낯선 현대 독자들에게 친절하고 유익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아래의 글을 보자. 어쩌다 흥이 나면 짐짓 마셔보네. 도취했을 때는 종적조차 잊었거늘, 하물며 다시금 세속의 굴레에 걸려든단 말인가! 술을 마시고 있는 퇴계 선생의 흥취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런데 풀이 글을 보니 내 짐작보다는 훨씬 깊은 뜻이 있다. “이렇듯 자연에 취하고 술에 취해 흥이 잔뜩 올랐을 때는 이 육신의 자취마저 잊을 정도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다시 이 몸을 선경에서 빼내어 나를 옥죄고 옭아매는 세속의 굴레를 다시 뒤집어 쓰려고 하겠는가!” 내 짐작처럼 퇴계 선생은 단순히 술의 흥취에 젖어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분은 ‘선경’에 가 있었다. 시들을 주제별로 분류하거나, 시대 순으로 분류하거나 하는 편집을 시도해봄직도 한데, 이 책은 머리말의 몇 장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퇴계 선생의 시들을 별다른 규칙없이 싣고 있다. 그 점이 우직해 보인다. 오며가며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열어 시 한수를 음미하는 식의 독서가 가능한 책이다. 많은 시들이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벼슬에서 물러난 선생은 토계 가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흥취가 생겨날 때, 특정한 내용이나 체제에 구애를 받지 않고, 어떤 일이나 사물을 만나면 즉흥적으로” 시를 지었다. 주룩주룩 밤새 비오는 소리 들리더니, 아침에 일어나 보니 푸른 산 물기에 젖어 있네. 밤새 끼어 있던 구름 반쯤 개어 엷어졌지만 골짜기 물 흐름은 더욱 빨라졌네. 비온 뒤의 아침 풍경이 눈에 선하다. 이분께서 만나는 ‘사물’은 자연이며 이분께서 만나는 ‘어떤 일’은 이곳을 찾아온 지인들과의 담소이다. 그리고 혼자가 되었을 때 이분은 학문을 생각하고 도를 생각한다. 앞선 현인들의 덕을 찬미하고, 도연명이나 두보 같은 시인들과 시로써 대화를 나눈다. 반성이나 회한도 없지 않다. “걸출한 인물들 우뚝하게 났는데, 나만 홀로 이것과는 다르네.”하고 읊고 계신다. 내가 보기엔 선생 역시 ‘걸출한 인물’임에 분명한데 말이다. 이런 대목에선 이분도 끊임없이 삶을 고민하셨던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친근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불가나 도가의 사상가들을 어리석다 여기며 오로지 유교만이 세계의 진리임을 믿고 계신 대목에서는 공감이 어렵다. 유가의 성인을 향한 애끓는 존경을 표현하고 있는 시구들이 나로서는 낯설기만 하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시공간을 초월해 사고하고 자신이 속한 당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이란 얼마나 드문가. 천년 만년 후대인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붓다와 예수처럼 인간의 경계를 넘어버려야만 그것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이 저절로 드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의 가치관, 나의 삶이 얼마나 편협된 것인지가 자명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