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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인 엄마와 독인인 아빠를 둔 화안(애칭 '안안')에 대한 성장스토리다.
엄마와 안안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내용이 무척 따뜻하고 포근했다.
제목부터가 '아이야, 천천히 오렴' 이니.. ^^
만약, 아이를 대만이나 중국등의 아시아권에서 키워야 하는 경우라면,
천천히 오라는 표현이 정말 정말 어려운 것이란 걸 알 것이다.
나는 그렇게 키우고 싶지만, 주위에서 그러지 않으니.
혹시나 우리아이가 뒤쳐져서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이라는 둥..
그렇게 열성적으로 공부를 시킨, 그리고 그걸 당한 아이는 커서 행복할까..? 라고 생각 해 본다.
30대가 넘어선 나에게도 어린시절이라고 하면,
공부했던 기억보다는 시골 할머니댁에서 뛰어 놀던 기억이 더 새록새록하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책을 읽다가 아기의 신비라고 표현을 해야 하나?
이 건 한달 후면 돌이 되는 우리 조카에게 시험 해 보고 싶기도 한 부분이다.
대만인 엄마는 안안에게 항상 중국어로 이야기한다.
독일인 아빠는 안안에게 항상 독일어로 이야기한다.
대만인 엄마와 독일인 아빠는 영어로 이야기한다.
안안이 말을 텄을 무렵.
엄마에게는 중국어로, 아빠에게는 독일어로 각각 이야기를 한단다.
두 사람에게 섞어 쓰지도 않는단다.
안안이 어릴 때에는 스위스에 살았었는데,
스위스에서 살았지만 독일어. 라기 보단 '스위스독일어'라는 말을 사용한단다.
그건 어찌보면 독일어와는 좀 다른 제 3의 외국어라 봐도 된단다.
마치 우리나라의 제주도 방언같은 느낌일수도..
안안이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모두가 '스위스독일어'를 사용했기에,
거기에서는 또 다른말을 아이가 사용했단다.
어릴 때 부터 한가지 물건에 여러 말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흡수하면서 이해능력이 발달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중엔 설마했던 엄마, 아빠의 대화인 영어까지도.. 허허허..
또 하나 신기한건,
일반적인 서양사람의 외모(하얀피부)를 가진 사람에겐 독일어를 사용한단다.
그러나 아직 아이라서 그런지.
적절한 시점을 확실하게는 구별짓지 못해 벌어진 에피소드도 있었다.
대만에 갔을 때 사촌형과의 장난감 다툼에서 안안은 사촌형에게 독일어를 사용했단다.
형은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받아치는 안안은 독일어로 이야기를 했단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가 생각해보니.
안안이 독일 유치원에 있을 때에는 어린아이들 모두가 독일어를 사용했기에.
어린아이들에게는 독일어를 사용해야 한다는게 무의식이 있었나 보다. 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들 아이에게 여러나라 말을 동시에 하게 되면 혼란스러울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백짓장인 아이들의 머리속에는 흡수되는 것들을 자기만의 분류법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안안은 엄마와 아빠에게 그리고 서양사람에게, 아이들에게 불편함없이 스위치 on/off 가 자연스레 이루어 진 것 이리라.
그래서!!
나는 내 조카에게 일본어로 이야기 하기로 했다.
일본어를 안쓴지 좀 되었지만, 이 참에 나도 다시 한 번 일본어를 공부하고 조카에게도 자연스레 흡수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라는건 자주 듣고 느껴야 하는데..
짧게는 일주일 길면 이주일이 넘어가서 가~~끔 보는 사람과 이야기한다면..
그건.. 좀.. 혼란스러운 일이 되는게 아닐까..? 걱정도 된다..
그래도 아이의 백짓장 흡수력을 믿어 보기로 한다.
안안이 네 살이 되었을 때 동생이 태어난다.
아기를 집에 데려온 후 사람들이 집을 방문하는데,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p.133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먼저 부모이면서 아이를 두 명 이상 키우는 이들이었는데,
이들은 에리카처럼 대부분 아기를 보러 올 때 첫째의 선물까지 하나 더 챙겨왔다.
나머지 한 종류는 부모가 되어보지 않았거나 혹은 아이가 하나밖에 없는 이들로, 이들은 선물을 하나만 가지고 왔다.
나도 아직 부모가 되어 보지 못한 입장이기에 전혀 이 부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 선물만 챙겨 주거나 했지..
첫째가 있는 집이라 하더라도 딱히.. 그런 생각까지 미처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런 행동들이 첫째에겐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 2살이 된 무렵.
아기를 보면서 항상 웃고 있는 엄마를 보고 첫째 아이는 외로움을 느낀다.
엄마는 나보다 동생을 더 좋아하고 있어.. 라며..
그 걸 알게 된 엄마가 첫째 안안에게 이야기 해 주는 부분에선 정말.. 나도 감동했다.
p.137
"엄마는 페이페이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
안안이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딱 잘라 말한다.
엄마는 계단참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아이를 마주 보고 있다.
"엄마가 페이페이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한 번 말해볼래?"
"페이페이는 이를 안 닦아도 되고, 밥을 안 먹어도 되고, 세수를 안해도 되고.... 페이페이는 뭐든 되는데, 나는 다 안되잖아!"
"안안," 엄마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한다.
"페이페이는 이제 겨우 두살이잖니. 너도 두 살 때는 페이페이랑 똑같았어."
첫째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엄마를 쳐다본다.
"나도 두 살 때 그렇게 못됐었어?"
"더 못됐었지."
엄마는 조금은 마음이 풀린 듯한 아이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힌다.
"네가 두 살 때 우리 집에는 아이가 너 하나밖에 없었어. 그래서 너는 왕처럼 굴었지.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었단다.
지금 페이페이는 뭐든 너한고 나눠야 하지만 네가 어렸을 때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이 전부 네 것이었었어.
그러니 그 때 네가 지금의 동생보다 훨씬 더 못됐었지."
"아..."
아이는 이해하는 듯했다. 동시에 그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듯도 했다.
"안안, 한번 물어볼까? 엄마가 새 옷은 누구만 사주니?"
언제 다가왔는지 곱슬머리 꼬맹이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있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빵빵' 소리를 내면서.
"나."
"그래! 동생은 네가 입었던 헌 옷만 입잖아. 그렇지?"
첫짼느 고개를 끄덕인다. 화는 이미 다 풀렸지만 아이는 엄마 무릎위에 앉아 잠시 엄마를 독점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중이었다.
"그래, 매주 금요일 오후에 엄마가 누구를 데리고 연극을 보러 가지?"
"나."
"그래, 맞아. 매일 저녁 <서유기>, <수호전>, 허우원용의 <개구쟁이 이야기>, 샤오야의 <푸른 나무 옆 게으름뱅이>는 누구에게 읽어주지?"
"나한테."
"겨울에 아빠가 누구를 데리고 알프스에 스키를 타러 가지?"
"나."
"천체망원경으로 달을 볼 수 있는 건 누구지?"
"나."
"안안." 엄마는 아들을 돌려 앉힌다. 네 개의 눈이 마주친다.
"여섯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두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거야. 그렇지?"
"응." 아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서운해 하는 아이에게 아이가 납득 할 수 있도록 아이의 눈을 맞춰 이야기 해 주는 부분에선 우와... 감탄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 저런 상황에선 저렇게 해야지! 라고 하지만,
실제 그 상황이 닥쳤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책에서 보면,
안안은 네 살어린 동생 페이페이와 함께 잠자리에 들기전에 숨바꼭질등과 활동력으로 엄마에게 몇차례나 주의를 당한다.
그건 어린아이들이 잠자기 보단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당연히 하는 행동들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에 어느덧 커버린 아이들이 회상하는 장면에선,
그 이유가 아련하고 애틋했다.
기억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건드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p188
엄마가 나가고 나면 우리는 곧장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 소란을 피웠다.
'숨바꼭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몰래 불을 켜고 레고를 가지고 놀거나, 큰 소리로 떠들어대며 이야기하거나, 옷장 안에 숨었다.
엄마에게 발각되기를, 어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엄마는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화가 난 척 나무라며 우리를 침대로 몰아넣은 다음 엄마는 불을 끄고 문을 닫은 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가 가자마자 우리는 다시 불을 켜고는 쥐고멍에서 쥐가 나오듯 살금살금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노래를 부르며, 웃고 떠들며....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에겐 이 역시도 하나의 놀이였다.
엄마의 입장에선 아이들이 잠을 자야지만 오는 고요함에,
유일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지낼 수 있는 시간들이기에..
그럴 땐 정말 환장할 노릇일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누군가가 자기를 꼭 찾을거라는 기대 그리고 희망들.
저 당시엔 엄마가 세상에서 전부일텐데.
그 믿음이 상당하다..
책이 출간이 되고 지나 온 시간을 가늠하면,
아마도 안안은 현재 30대를 향해 오거나 갓 지났을 것 같다.
어떻게 변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에게 그 때의 엄마는 어떻게 다가왔는지도 좀 더 세세하게 궁금해진다.
* 원문 출처 :
예스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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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엄마의 처음들에 관한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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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잉타이의 인생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으로 번역 출간된 책으로[눈으로 하는 작별], [사랑하는 안드레아]를 참 좋아했기 때문에 믿고 골랐다. 눈으로 하는 작별 http://blog.yes24.com/document/8704005 사랑하는 안드레아 http://blog.yes24.com/document/8374016 문득 내가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을 엄마에게 들었을 때 묘한 감동과 기쁨이 있다. 나의 이야기를 예로 들자면, 엄마가 그림 동화책을 읽어주면 그걸 기억해서 마치 글씨를 아는 것처럼 신나게 다른 아이들 앞에서 그림 동화책을 펼쳐놓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라는 이야기. 가요 제목을 물으면 그 노래를 부른 가수를 맞추는 놀이도 삼촌과 많이 했었다는 이야기. 플라스틱 칼을 허리에 척 차고 발차기를 연습하며 동네를 쏘다니더라는 이야기.. 등등 ... 나는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엄마는 나의 모습을 하나 하나 살펴보고 나를 지켜주고 계셨다는 것에 괜시리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거다. 엄마가 나의 육아일기를 썼다면 그런 것 외에 어떤 이야기들이 또 적혀있었을까? '큰 아이가 옹알이를 하는 작은 아이에게 고양이를 가르쳐주었다. 끈질지게 "고양이 해 봐~."라는 큰 아이의 말에 작은 아이는 '옹가지'라고 응답했고, 큰 아이는 작은 아이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고야 말았다.' 뭐 이런 거? -_-;
내 주변에는 한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들이 많은 터라 아이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를 하며 반짝이는 그들의 눈동자를 본다. (그 때 나는 육아에 관해 이야기를 할 컨텐츠가 전혀 없으므로 그냥 입을 다물고 흐뭇하게 웃으며 듣고 나오면 된다.) 그들이 아이 이야기에 얼굴빛에 생기가 돌고 눈이 반짝거리는 까닭은 그만큼 아이가 사랑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힘들지. 힘든데 그래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아이가 줘." 라고 말하는 아이 엄마들을 볼 때, 이게 엄마의 마음이고 부모의 마음이구나... 느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동과 행복을 이 책에서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줄곧 '나도 이렇게 컸을까?' '그 때 엄마의 마음이 이랬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아이를 키우는 아이엄마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머, 우리 애도 그러는데.' 혹은 '어쩜 내 얘기 같네.'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다문화가정(아빠는 독일인, 엄마는 중국인)이기에 언어와 문화차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은 우리에게 낯설 수도 있지만, 보편적인 엄마의 고민과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나와서 크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육아와 자기계발 사이의 고민, 유치원 등 교육에 관한 고민, 둘째가 생겼을 때 첫째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 엄마들의 고민은 어디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다. 무겁고 깊은 이야기보다는 작게 웃음이 배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더 많아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데, 다만 내 취향으로는 눈으로 하는 작별이나 사랑하는 안드레아와 같이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게 조금은 아쉽다. ------------------------------------------------------------------------ "안안, 너 대체 뭘 보고 있니?"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한 번 깜빡이지도 않고 엄마를 쳐다보며 손을 뻗더니 엄마의 눈동자를 만지려 했다. 깜짝 놀란 엄마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 뭐 하는 거야, 안안?" "엄마, 움직이지 마." 다급하게 외치며, 아이는 손가락 두 개로 엄마의 눈꺼풀을 벌리려 했다. "대체 너 뭘 보고 있는 거니?" "나 지금..." 안안은 뚫어질 듯 깊이 엄마의 눈을 응시하며,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목소리로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대답했다. "엄마, 엄마 눈 속에, 눈동자에 내가 있어, 안안이 있어.정말이야..." 아이는 감격한 듯 다시 손을 뻗어 엄마의 눈동자를 만지려 했다. "정말이야, 엄마, 두 눈 모두에 내가 있어...."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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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세상은 우주나 마찬가지다. 모든게 낯설고 신기하다. 그리고 모든 일에 서툴다. 아직도 아이의 영혼은 이 세상에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다. 그런 아이가 이 세상에 정착하도록 돕는 역할은 엄마의 몫이다. 아이를 돌보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인다. 그리고 아이가 궁금해하며 호기심을 드러내는 모든 일에 일일이 대답해주어야 한다. 어찌 보면 이런 일은 엄마에게 있어서 엄청난 헌신이다. 아이를 낳고 보살피기 위해 엄마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충분한 보상이 뒤 따른다. 매일 매일 아이와 함께 하며 행복과 기쁨을 맛보는 것이 바로 그 보상이다. 아이의 머리 안에 들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지식의 씨앗이 매일 매일 조금씩 자라나며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때 마다 엄마의 가슴속에는 무한한 경외심과 감동이 솟아오른다.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고 조그만 손으로 이것저것을 가리키며 ‘저건 뭐야?’라고 묻다가 어느날 엄마가 가르쳐준 것을 잊지 않고 흥분한 목소리로 사물들의 이름을 부를 때의 감격을 소중히 생각한다. 아이에게는 아이 나름대로 사물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체계가 있다. 엄마와 아이는 독일인 남편과 함께 스위스에서 살며 다양한 언어가 만나 충돌을 일으키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는 중국어와 스위스독일어 그리고 독일어와 영어를 쓰면서도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 엄마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게 할지 걱정이 많다. 신데렐라에서 수호지까지 아이가 좋아하는 책들에는 여러 가지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도 그 사람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가 넘쳐났다. 엄마는 그런 부분이 나올 때마다 이런 잔인한 부분을 아이가 읽어도 될지 고민을 거듭한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날 아침 아이들은 집 앞 큰길에서 지나가는 노인들을 가로막으며 “어이, 거기 행인! 통행료를 내야지. 우리 형제가 여비가 좀 필요하거든!”이라고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 산적들의 흉내를 내며 노인들에게서 초콜릿을 걷어 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엄마는 중국의 문화와 역사에 빗대어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노지심이 술에 취해 금강상을 산산조각 낸 것을 읽어주며 ‘어, 이거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4구타파를 주장한 것과 다를 게 없네’ 라는 식으로 말이다. 엄마가 스위스에서 살다가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와 유치원을 비교하는 장면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위스의 유치원에서 자유분방하게 놀이로 하루를 보내는 유치원을 다니다 타이완에서 유치원을 등록하려고 방문해보니 40명의 유아들을 선생님 한 분이 붙들어 놓고 읽기 쓰기와 영어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45분의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께서 아이들 40명을 한 줄로 세워 화장실로 데리고 간다. 결국 엄마는 스위스처럼 자유롭게 아이들을 돌봐주는 유치원을 몇 배나 비싼 원비를 내고 보내느냐 아니면 그냥 집에서 아이를 돌보느냐 갈등하게 된다. 엄마는 아이에게 단 한 번 밖에 없는 소중한 어린 시절을 공부와 규율에 억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즐기며 보내길 원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로 아이는 집에서건 길에서건 보이는 글자마다 더듬더듬 읽어가며 즐거워서 바닥을 뒹굴어 댄다. 읽기의 즐거움을 아이 스스로 느끼게 해준 것이 조금 느리지만 행복한 미래를 선물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엄마와 아이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간 뒤의 이야기에서 유럽 사람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넉넉한 태도와 이해심에 큰 감동을 받았다.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무조건 야단치기보다는 솔직한 태도로 아이를 향해 잘못의 결과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설명하고 마당의 낙엽을 쓴다든지 일주일동안 TV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 같은 합당한 벌을 준다. 결국 아이들은 정직하고 품성이 훌륭한 멋진 아이들로 자라났다. 아이들의 증언에 따른 엄마의 모습은 두 아이를 엄격하게 기르면서도 은근한 자유를 허락했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글을 쓰는데 몰두했다. 훗날 내 아이들이 자라서 나를 기억할 때 나는 그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져 있을지 기대와 걱정이 엇갈린다.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에게 삶의 의미와 자유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더 많이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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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아이를 가진 제자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아.. 동양권이라서 일까?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얘기하는 작가의 글이 이렇게까지 우리의 상황과 비슷할까 싶어 놀랍고 서글픈 맘이 들었다. 또 오랜 친구가 집으로 놀러왔을 때 작가가 하고 싶은 일을 나열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래요 맞아요 당신은 할 수 있을텐데.. 그 뒤 마지막에 친구가 후회하니? 하고 물었을 때 작가의 대답은 내 맘이기도 했는데 미쳐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싶어 안도했다. 또 위안이 됐다. 작가의 대답은 꼭 이 책을 통해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어떤 감정이나 상태에 대해 명확하게 말할 수 없어 아연스럽기만 한 상태에서 누군가의 한마디로 안개가 사라지고 내가 찾고 있던 바로 그것이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서양의 엄마가 쓴 글이라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한 부분도 많다. 우리와 육아를 하는 모습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 그런데 다문화가정에서 엄마가 어디에서 자라난 사람이며, 어떤 육아를 경험했는지에 따라 그 아이의 모습도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나는 우리아이를 키움에 있어서 어떤 기준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의 말에 <하지만 두 살 반짜리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결혼 역시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인류가 이해득실을 따진 다음 선택한 여러 사회제도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자유가 얼마쯤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아이에게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사회가 모성을 찬양하고 여성성을 드높이는 동시에 그들에게 꿈과 능력을 펼칠 만한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인생의 어두운 이면 때문에 엄마가 지금 얼마나 괴로운지. ... 안안은 지금 행복해. 안안이 행복하면 엄마도 행복하고, 엄마가 행복하면 아빠도 행복해.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끌어안고 한참을 그렇게 꼼짝 않고 앉아 있는다. 마치 그대로 잠이 들기라도 한 것처럼. > 이 대목은 정말 수없이 고민하던 부분이다. 내가 전업주부의 길을 걷다가 어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을 시작하면서 수없이 싸웠고, 지금과 같은 과도기에 접에 들기까지...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둘째를 낳아야 한다는 시댁의 은근한 압박에 경제적 이유와 내가 다시 임신과 출산을 하는 동안 나는 또 사회생활에서 경리되어야 하는 두려움과 불안,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이 사라지는 공포. 이미 결혼하면서 경험했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그래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 시간들에 대해 어떤 보상이나 안정장치 없이 다시 내게 강요하는 사회와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회. 많은 생각이 그리고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 아이가 잠투정하면서 엄마 나 크면 다른 집에 가서 살래, 엄마 나 마음이 깨질 것 같아. 엄마 미워 할거야. 이렇게 잠투정을 해오는데도 잠투정인지 알면서 같이 놀아달라는 신호라는 것을 알면서 일과 집안일에 지쳐서 엄마 좀 그냥 두라고 하는. 나를 때려주고 싶으면서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 내 몸과 마음이 답답하던 어제 저녁, 우리 아이는 말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엄마 나 엄마 사랑해 안 미워해.. 하면 안겨오더니 이내 스스륵 잠이 든다. 산책 가고 싶다고 졸랐는데 데려가 줄 것을.. 쌀쌀해진 날씨 탓을 하며, 또 피곤한 내 몸 핑계를 대면서 데려가지 못한 것이 내내 맘에 걸린다. 다른 집에 가서 산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빵 터져버려서 그래? 지금 데려다 줄게 누구집으로 갈까? 했더니 이내 아니야 안 갈거야 엄마랑 여기 있을 거야 하던 아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게 하는 협박치고 거창하지 않은가 말이다. 형과 아우라는 소제목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두 아이는 원래 모두 하늘 위의 아기 천사였는데, 엄마가 여자가 된 걸 축하하기 위해 하느님이 특별히 보낸 선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에 있는 그 꼬맹이가 나오는 순간 자신에게도 하늘에서 선물이 내려온다고 안안은 알고 있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페이페이는 정말로 형에게 선물을 안겨주었다. 공중제비를 넘으며 신나게 들판을 가로지르는 스포츠카가 그것이었다. 안안은 페이페이가 귀청이 떨어질 듯 시끄럽게 울어대긴 하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킬 줄 아는 녀석이라는 생각에 어느 정도 참아주곤 했다.> 동생이 태어난 집을 방문하는 이웃이 형의 선물을 챙겨와 형과 먼저 얘기 나누고 형에게 선물을 주고 동생을 보러 가도 괜찮을지 물어봐 주는 섬세함. 독일의 교육이 뛰어나다고 들었고, 이런 모습에서 독일 교육문화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둘째가 태어난 집에 가면서 어떠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 책에 흐르는 지금은 현실성 없어 보이는 모습들이 어쩌면 지극히 현실 속에 있는 모습일 수 있음을 그리고 나도 이제부터는 책을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읽어주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야기 들려주듯이 더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하도록 더 유도해야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덩달아 마음 따뜻해지고 어떤 육아서의 말하기 방법 가르침보다 더 마음으로 와 닿았다. 아이가 자라고 나면 나에 대해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내심 궁금하다. 또 작가의 아이들이 엄마를 회상하는 부분을 읽으며 나도 기대하게 되고, 또 우리 아이가 회고할 그때쯤엔 우리 서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더 성숙한 모습이기를 기대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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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천천히 오렴 이 책은 대만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룽잉타이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모든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며 쓴 에세이집입니다.
요즘 우리들에게는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사실 그 제도를 마음껏 제대로 사용하면 육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못한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 생명이 점차 엄마,아빠라는 말을 하게 되고 서서히 걷기 시작하는 모습을 온전히 곁에서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부모에게는 큰 기쁨이고 사랑인 지 모릅니다. 순수하기 짝이 없는 아이와의 공감과 사랑을 부모와 같이 공유함으로써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부모에게도 자신들의 못된 마음이나 헛된 욕심등을 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게 해주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진짜 그 말에 공감하게 되는 말이 바로 낳은 정은 결코 키운 정에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인것 같습니다. 아이의 모든 사소한 것을 같이 느끼고 알고 사랑을 키우는 것이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얼마나 큰 영향과 효과가 있는 지를...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든 현재지만 우리 모두 아이와 되도록이면 많은 것을 함께 공유하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함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마음깊이 느끼게 되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서로서로 바쁘게 사는 삶이라 힘들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이유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함임을 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 함께 공유하고 아이의 마음을 읽으며 아이들에게 가슴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며 사는 것이 최고로 좋은 것임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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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월 된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엄마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빠로서는 도
저히 흉내낼 수 없는 위대한 축복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로서 아이의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가르쳐 주는
모습은 아빠가 따라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인가를 [아이야, 천천히 오렴(룽
잉타이 지음, 이지희 옮김, 양철북]을 통해 알게 되었다. 대만 작가의 책은 처음으로 접했다. 중국
소설도 낯선데..대만 작가의 책이라..내심 기대를 하며 읽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과 엄마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순차적
으로 바꿔가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아이가 테어나서 걸음마를 하고 말을 배우고 유치원에 다니고 초등학
교에 입학하여 학교 생활을 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될 때 까지의 사소한 기록들이 엄마와의 교감
과 교류를 통해 전개되고 있다. 그렇지만 엄마에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바로 엄마는 독일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중국 국적을 가진 이방인...
이방인으로서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고뇌도 드러나고 있다.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엄마의 희생정
신..아이가 천천히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천천히 오라며] 길을 안내해주는 존재..그것이 엄마의 존재다.
책에서는 아빠의 비중이 크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엄마의 존재에 큰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오늘날 우리나라 어머니의 육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초등학교때 부터 입시에 성공하기 위
해 학원을 뺑뺑이 돌리는 부모,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며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돼
지엄마, 헬리콥터 맘 등..책에서 다루는 참된 엄마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동떨어진 육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어렸을 때 '어느집 아기는 말이 빠르더라!', '어느집 아기는 한글을 벌써 익혔다라!!' 등등 남들과 비교해
항상 먼저 배우고 빨리 습득해야 진정한 아이의 발달이 일어난 것 처럼 생각하는 조급증도..
책에서 다루는[ 천천히 오렴] 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씁씁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고있다. 나도 책을 읽으며
아이의 발달을 지켜보고 천천히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육아에 힘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 훗날
아이의 기억속에 나의 어린 시절이 행복하고 차분했으며 엄마의 육아에 대한 기억으로 아주 행복한 웃음을 띨
수 있도록.....아이가 커서 소중한 추억을 선물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자기고 인생을 살아가며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육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물한 좋은 책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마지막 페이지의 엄마가 아이를 자건거에 태우고 있는 장면에서 어머니의 희생정신을 다시 한번 느
끼게 된다. 행복한 아이의 인생을 위해 희생하시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서평을 마친다.
[이 서평은 예스 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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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양철북 출판사에서 출간된 육아서적을 아주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인 여성이 독일인 남자와 결혼해 여자 아이를 키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는데, 우리와 문화적으로 참 다를텐데도 그녀만의 한국적 모성이 빛을 발하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육에 있어서 균형을 잃지 않고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던 그녀의 이야기에 한동안 내 마음이 크게 술렁였다. 내 모습은 참 못난 어미의 모습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엄마의 시선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부러웠던 부분은 단연 아이의 '다중어' 사용이였다. 이 또한 사실 부끄러운 비교문화에서 비롯된게 아닌가 싶긴하지만, 어쩔수없는 부러움이라 스스로 인정하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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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해본 것 같다. <아이야, 천천히 오렴>은 대만의 대표 지식인 룽잉타이가 작가에서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언제가 어느 책에서 읽었듯 아이가 세상에 처음 태어나서 겪는 것들은 모두 새로운 것들이 당연한데, 처음 엄마가 되어 아이를 기르는 것도 마찬가지로 처음 겪는 일일 것이다. 서로가 처음이며 서로 서툴기 때문에 첫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참으로 각별한 일이다. 우왕좌왕 하기도 하고 실수 투성이에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는 일이지만 새로 태어난 생명체가, 그것도 엄마가 잉태하여 산고를 겪어 낳은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 보람되고 아름다운 일상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화안(안안)은 대만인 엄마와 독일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사내 아이다. 일종의 다문화 가정인 셈인데 엄마와는 중국어로 대화해야 했고 아버지와는 독일어로 대화해야만 했던 화안에게 이러한 환경은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문화의 한 습성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중국어와 독일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게 됨은 물론이거니와 엄마와 아빠가 대화할 때 사용하는 영어까지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화안이 8개월 때 부터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의 성장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사실 대만의 대표 지식인이 양육했다고 해서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다. 룽잉타이는 여느 엄마들과 같이 아이를 평범하게 양육했으며 아이또한 특별할 것 없이 여느 가정의 아이들과 같이 자랐다. 아이가 처음 언어를 인지하게 되고 그 언어와 세상을 맞추어가는 과정,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똘똘 뭉쳐 바라보는 세상과 그 세상을 연결해 주는 부모의 역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 생기는 부모와의 마찰 그리고 친구들… 이러한 것들이 그녀가 엄마가 되는 시간들을 채워주는 보통의 일상들이다. 하지만 보통의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고 또한 이 처음들의 기록은 우리가 붙잡아 둘 수 없는, 말 그대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일상의 기록들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함께 성장하는 엄마와 아이의 기록들은 아직 아이를 키워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소중한 순간들을 천천히 담아낼 수 있는 준비를, 이미 아이를 키워낸지 오랜 사람들에게는 다시금 그때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나의 경우 화안이 자라나는 거의 대부분의 기록들이 나의 최근 기억들과 맞닿아 있었다.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지 못한 딸이지만 젖먹이 때부터 기어다닐때,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 말문이 트였을 때 그리고 그 이후부터 폭팔적으로 늘어난 호기심과 질문들까지 많은 기억들이 이 책과 나란히 흘러갔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 둘째를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서 화안네 식구들에게 둘째가 생기고 나서부터 변화되는 일상들이었다. 둘째를 단순히 부모의 입장에서만 생각했었는데 실제 둘째가 생기고 나서 겪게되는 부모와 첫째의 심경과 환경의 변화들은 미쳐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들로 우리 가족의 가까운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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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가 둘인 엄마이다. 둘째가 9개월.. 애 둘 엄마 경력 9개월차. 두번째 겪는 육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툴고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매일매일 씨름하고 있다.
분명 나의 아이들은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마음과는 달리 버거웠다. 매일이 숨가쁘게 흘러가고 아이와 행복하다기보다는 하루하루 버텨내는 기분. 이렇게 육아에 지쳐가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룽잉타이라는 대만의 여성 지식인이 남자 형제 둘을 낳고 기르면서 쓴 짧은 글들이다. 거창한 내용이 아닌, 장난꾸러기 남자 아이를 기르면서 기록한 소박하고 평범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이를 읽으며 내 아이들을 떠올렸고 버겁게만 여겼던 나와 달리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문장들에게 위안을 얻었다.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이렇게 따뜻하고 행복한 추억들이였구나. 감사히 여기며 소중하게 되새길 수 있었다.
마지막에 두 아이들이 적은 글들도 감동을 더한다. 풋풋한 아이들의 글 속에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걸 느끼며 마음이 더없이 흐뭇해졌다. 어느새 이모의 마인드가 되어 나도 모르게 '잘 컸네~' 라고 생각했다.
육아에 지쳐 내 아이들이 어서 빨리 자라기만을 바랬었는데, 나의 아이들도 조금은 천천히 자라기를 바라는 여유가 생긴건... 룽잉타이가 내게 준 작은 선물인듯 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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