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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진정한 삶을 향하는 길, 우리 앞에 열려있는 길에 대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진정한 삶을 향하는 길, 우리 앞에 열려있는 길에 대한 이야기" 내용보기
알레산드로 바리코라는 작가의 글을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난 작가의 글은 아무래도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을 내 마음속에 들여오기 위해서, 내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에 대해 아는 일은 먼저 작가 소개를 읽는 일이다. 작품으로 만난 작가의 경우도 작가소개란을 두세 번 읽는데, 처음 만난 작가의 작가소개란은 대여섯 번은 읽
"『이런 이야기』진정한 삶을 향하는 길, 우리 앞에 열려있는 길에 대한 이야기" 내용보기

알레산드로 바리코라는 작가의 글을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난 작가의 글은 아무래도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을 내 마음속에 들여오기 위해서, 내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에 대해 아는 일은 먼저 작가 소개를 읽는 일이다. 작품으로 만난 작가의 경우도 작가소개란을 두세 번 읽는데, 처음 만난 작가의 작가소개란은 대여섯 번은 읽어야 한다. 책을 읽다가도 책 내용이 언뜻 들어오지 않을때 다시 작가소개란을 읽을 정도로 작가에 대한 이해가 작품을 읽는 일이기도 하다.

 

길에 대한 이야기를 만났다.

우리 앞에 놓여진 진정한 삶에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다른 길도 아닌 내 삶에 주어진 길을 걷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완성되어 있지 않다. 늘 생소한 길임에 틀림없다. 이 길이 아닌가 싶어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길이란 것이 '인생의 길'이 아닐까 한다.

 

요즘엔 경제발달로 인해 흙길, 작은 돌들이 있는 길이 거의 없다. 자동차가 다니기 쉽게 포장된 도로가 많고, 사람이 갈수도 없는 길이 있을 정도다. 우리는 그 길을 자동차전용도로 라고 부른다.

 

자동차가 막 나오기 시작한 1903년의 이탈리아, 파리에서부터 자동차 경주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수많은 자동차를 구경하기 위해 달려나왔다. 자동차에 치인 사람도 있고, 자동차에 탔던 사람이 사고로 죽은 경우도 있었다.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 소를 팔아 자동차 정비소를 연 리베로 파르리가 있었고, 그에게는 아들 울티모가 있었다. 아들 울티모에게 자동차 정비를 가르켜 주려 했지만 그는 자동차가 다닐 길, 서킷을 만드는게 꿈이었다.

 

 

 

 

그는 자동차 경주로를 건설하고 싶어 한다. 그 길은 오로지 경주용 자동차들만 달리는 길, 아무 데로도 통하지 않고 닫혀 있는 길, 돌고 또 돌지만 어디에도 이르지 않는 길이라고 한다.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265페이지)

울티모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러 갈래의 사람들이다.

어렸을때 아버지와 함께 여행했던 곳에서 담브로시오 백작을 만난 인연, 제1차 세계대전이 열린 카포레토의 회상, 피아노 레슨을 하기 위한 엘리자베타를 따라 다녔던 일들. 울티모는 길에서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사람들과의 인연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상대방 쪽에서, 혹은 자신 쪽에서 먼저 떠나기도 했다. 같이 이어지는 길을 걸었으면 했지만, 어느새 엇갈린 길목에 서 있었다. 엇갈린 길과 엇갈린 인생이었다. 평생 길을 찾아 헤맸고, 그가 시간 날때마다 그렸던 길, 그 길은 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길이었다.

 

그 여자는 하나의 길과 같았어요. 생뚱맞은 굽이가 자꾸자꾸 나오는 길, 돌아올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광막한 벌판으로 내닫는 길,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달리고 또 달리는 길이었죠.  (405페이지)

 『이런 이야기』에서는 여러 화자의 이야기로 쓰여져 있다.

한 챕터마다 1인칭의 '나'가 나오는데 그가 정확히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곰곰 생각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작가를 만났다는 게 즐거운 경험이었다. 왜 제목이 이런 이야기인가, 이런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인가. 서막이 시작되기 전에 작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쓴 말이 인상적이다.

 

이야기는 양탄자 같은 것이고, 그것을 직조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이는 작가다. 결국 글쓰기란 서사의 한 올 한 올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완벽히 제어하는 작업이다.

 

멋지다.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직조해 낸 생명력이 있는 글을 읽었다. 이런 작가론을 가지고 있는 알레산드로 바리코란 작가를 알게 된 즐거움도 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4.05.08.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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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 잃어버린 꿈을 더듬으며...
"[이런 이야기] - 잃어버린 꿈을 더듬으며..." 내용보기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자동차가 없었다. 지금처럼 대부분의 가정에 차를 한 대 또는 두 대를 소유하던 시절은 아니었는데도, 우리 가족이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살고 있어서 그랬는지, 우리 반에는 집에 차 없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어느 날 수업중 선생님이 혹시 집에 차가 없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쭈뼛쭈뼛 대며 손을 들었다.
"[이런 이야기] - 잃어버린 꿈을 더듬으며..." 내용보기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자동차가 없었다. 지금처럼 대부분의 가정에 차를 한 대 또는 두 대를 소유하던 시절은 아니었는데도, 우리 가족이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살고 있어서 그랬는지, 우리 반에는 집에 차 없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어느 날 수업중 선생님이 혹시 집에 차가 없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쭈뼛쭈뼛 대며 손을 들었다.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게 자동차에 관한 모든 것들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이. 그 후 시간이 흘러 집에 차가 생긴 다음에도 자동차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자동차와 레이싱, 서킷을 소재로 삼은 《이런 이야기》가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바리코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 스페인 마드리드로 이어지는 코스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경주 묘사로 소설을 시작한다. 자동차 경주 묘사는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 압도적인 도입부는 자동차 경주용 서킷을 만들게 되는 울티모의 인생을 위해 터뜨린 축포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조금 어리둥절 하여 이 이야기가 소설 전체에서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할지 가늠할 수 없다. 그래도 읽어 나가자. 이것은 대가의 소설이니까. 그가 인도하는 데로 즐기면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자동차가 생소하던 시절 자동차 정비원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이탈리아인 리베로 파르리의 아들로 태어난 울티모. 이 자동차 레이싱이 울티모의 삶에 어떤 빛이 될 것 같았지만, 아버지와 후원자였던 백작의 사고로 그 꿈은 좌절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울리모의 삶의 여정을 어떤 부분은 확대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지나치기도 하면서 전개 된다. 소설의 무대는 여러 화자의 입을 통해 제1차세계대전의 전장, 미국, 영국 등으로 옮겨 간다. 그리고 내 호기심을 가장 강력하게 끈 매력적인 여자 엘리자베타가 있다.

 

마녀라 할 만한 이 몰락한 러시아 귀족의 딸 엘리자베타의 등장은 소설에 대단한 활력을 주고 있다. 울티모와 피아노를 판매하러 미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엘리자베타는 들르는 가정을 파멸시킨다는 마녀적 환상을 일기장에 펼쳐낸다. 엘리자베타는 마음에 지옥을 품고 있는 여자다. 자기 안에 타오르는 불길이 너무나도 뜨거워서 울티모와 함께 있으면 그를 삼켜 버릴 것 같아 두려웠던 것일까? 자신이 들고 있는 시한폭탄이 울티모와 함께 있으면 터져 버리기라도 할 것 같다고 느꼈던 걸까? 엘리자베타는 울티모가 떠나버렸다고 일기에 적고, 그 일기를 읽은 울티모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음에도 그녀를 떠난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 울티모는 사랑하는 여인이 떠나란다고 그냥 떠나버리는 바보 같은 남자인가. 그렇지 않다. 그전에 울티모는 그의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 제1차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군의 포로수용소에서 노역을 할 때, 그는 그의 눈앞에 펼쳐진 활주로를 통해 자신의 인생길 굽이굽이를 새겨둘 서킷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게 된다. 그것은 어렸을 적 그를 꿈꾸게 했던 길, 바로 자동차가 달리던 길이었다. 그는 벌써 포기할 수 없는 광채를 보았기에 그저 그 길로 묵묵히 걸어가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실제로 그 서킷을 건설해 낸다. 그리고 한때 울티모를 떠나보냈던 엘리자베타는 울티모가 꾸었던 꿈의 자취를 따라 서킷을 찾아내어 그것을 복원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자신이 울티모를 사랑했다는 것을.

 

그렇다. 우리의 주인공 울티모는 자신의 말에 들어주는 이들에게 오래 전 꿈을 처음 꾸었을 때의 설렘을 되찾아주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울티모는 어떤 사람이던가.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를 찾으려 돌아서는 군인, 동생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는 형, 속 깊은 아들, 한 여자를 평생 동안 사랑하는 연인, 막막한 삶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여인 옆에 있어주는 남자, 울고 있는 소녀를 위로해 주는 사람 좋은 아저씨... 울티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가능한가?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읽은 소설 가운데 친구로 삼고 싶은 이를 한 사람만 고르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울티모를 택하겠다.

 

울티모가 아버지와 백작의 사고로 인생길을 마주 대하지 못하고, 참담한 전쟁터에서 길을 한때 잃어 버렸듯이 우리들 각자의 삶도 녹록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것을 어른이 돼서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막막한 삶 앞에서 그 꿈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고 잃어버린다. 잊었기 때문에 잃게 되고, 잃었기 때문에 잊게 된다. 바리코는 아름답고 순수한 것은 자신이 어릴 적 꿈꾸었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그 단서를 보여주는 멋진 구절이 있으니, 여기 인용하기로 한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걸음을 더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 부자가 거기에서 하고 있는 것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었다. 주기적으로 자신들을 원점으로 되돌려놓는 정확한 뺄셈이었다. 주기적으로 자신들을 원점으로 되돌려놓는 정확한 뺄셈이었다. 아이는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그 도정의 순수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비록 어렴풋하게 직감한 것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깨달았다. 모든 운동은 부동성을 지향한다는 것, 그리고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이끄는 여정만이 아름답다는 것을.(p. 94)

 

바리코는 울티모가 만들어낸 서킷이 후대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었다는 식의 거창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울티모의 서킷은 그저 자신과 자신의 동생, 그가 사랑한 여인 엘리자베타에게 의미 있는 것이었을 따름이다. 더 꼽아 보자면 조사 대행업자 스트라우스와 토목기사 블룸 정도를 거기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울티모는 남아메리카 어느 곳에 "살고 있었기에 거기에서 숨을 거두"(p. 421)고, 엘리자베타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는지 고통을 주는지 정녕 아무도 알 수 없는"(p. 452) 스위스 어느 호숫가에서 죽었다고 소설은 무심한 듯 전해준다. 그렇다.《이런 이야기》는 위대한 인물에 관한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어딘가에 있었을지 모르는 또 다른 나의 이야기다. 오히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 따위가 아니라 바리코가 한 것처럼 꿈을 품고 살아간 한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이 좋은 소설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첫째는 최대한 느리게 읽는 것이고, 둘째는 되풀이해서 읽는 것이다. 그래야 글쓰기를 "서사의 한 올 한 올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제어하는 작업"으로 여기는 바리코 월드에 제대로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읽은 이 소설을 덮은 나는 내가 마음을 특히 주었던 곳들을 되짚고 있다. 이 소설이 내게 준 영감을 복기하며 어릴 적 걷던 길을 더듬고 있다. 울티모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자기만의 길을 만들었듯이, 나도 나만의 길을 떠올려 본다. 포로수용소에서 활주로를 보고 자신이 잊고 있던 '길'을 떠올리고 감시병들에게 뭇매를 맞으면서도 그 '길'이 주는 환상을 따라 달렸듯이 나도 절박한 마음으로 그 '길'을 되찾고 싶다. 엘리자베타의 의뢰로 서킷을 복구한 "토목기사 블룸은 서킷을 만드는 여섯 달 동안 딴사람처럼 달라져 있었다."(p. 452)는 대목은 자못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나는 바리코에게 말해주고 싶다, 블룸 같은 이가 여기에도 있다고.


바리코는 소설 도입부에서 레이서 옆자리에 타고 있던 정비사가 주행 도중 레이서의 팔에 마비가 와 나무에 부딪쳐 죽는 순간에도 "그는 별로 슬프지 않았다"(p. 29)고 말한다. "레이스에 참가하는 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p. 29)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가? 어떤 이는 꿈보다는 삶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따질지 모른다. 삶이 있어야 꿈도 있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면 나는 바리코의 말을 빌려 이렇게 대답하리라.

 

내가 보기엔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 같아도 사실은 안 그래.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는 시간은 그 긴 세월의 작은 부분일 뿐이야. 다시 말해서 자기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시기에만 진정으로 살았다 할 수 있어. 그런 시기에 사람들은 행복해. 나머지 세월은 기다리거나 추억하는 시간이야. 기다리거나 추억하는 때에는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않아. 슬퍼 보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건 그저 기다리고 있거나 추억하고 있기 때문이야. 기다리는 사람들은 슬프지 않아. 추억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그냥 멀리 있는 것 뿐이야. 나는 기다리고 있어.(p. 264)

 

 

n*****k 2014.10.1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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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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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작품을 잘 접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 쉽게 접하는 소설은 희노애락을 쉽게 표현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나 쉽게 읽고 다가오지만 고전은 몇 겹의 옷을 걸치고 있는 문장으로 인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놓치기 십상이다. 물론, 100% 지루한 것은 아니다 이 분야는 한 권의 책을 통해 토론을 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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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작품을 잘 접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 쉽게 접하는 소설은 희노애락을 쉽게 표현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나 쉽게 읽고 다가오지만 고전은 몇 겹의 옷을 걸치고 있는 문장으로 인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놓치기 십상이다. 물론, 100% 지루한 것은 아니다 이 분야는 한 권의 책을 통해 토론을 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 더불어 그러한 문장을 써야 했는지에 대해 두뇌를 활동하게 해줌으로 인해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는 나와는 처음 만나는 작가일 뿐더러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은 뭘까? 가벼운 느낌일까 전혀 그렇지 않는데 하는 갈림길에서 잠시 헤매었던 소설이다. 또한 이야기의 시작은 자동차가 흔하지 않았던 시대의 배경으로 자동차 경주의 시작점을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경기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 정부에서는 이 경기는 중지하려는 태도로 보이지만 이 안에 있는 자동차에 대한 열정은 쉽게 수그러뜨리지 못한다.

배경이 된 이곳은 이탈리아 여기에 소를 팔아 정비소를 차린 한 소년의 아버지가 있다. 아들에게 정비기술을 가르쳐 주려 하지만 아들은 기계를 만지는 대신 자동차가 다니는 길 '서킷'을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소년에겐 '길'이 무엇이고 독자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소설의 이야기는 쉽지가 않았다. 단순하면서도 왠지 묵직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는데 간간히 등장하는 소년의 아버지와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도 '길'은 무엇일까. 현재 잘 찾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이 들기도 했을 뿐더러 소년이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을 때 이제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었다.  ​'길'은 한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속에 상처와 치유를 겪고 또 다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전쟁터에서 만난 동료들 이어 피아노 레슨을 받기 위해 만났던 여인과 떠남 그리고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해 만나게 된 백작 등 이들은 모두 길 위에서 만나게 되었고 마지막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서킷' 역시 길 위에서 찾았음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길은 삶이고 현재 내가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보여주는 스크린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 삶..소년에게 있어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엇갈린 시간은 안타깝기만 하다.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 같아도 사실은 안 그래.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는 시간은 그 긴 세월의 작은 부분일 뿐이야. 다시 말해서 자기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곳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시기에만 진정으로 살았다 할 수 있어. 그런 시기에 사람들은 행복해. " - 본문중-

의연하면서도 고요하고 그러면서 강한 이미지를 남겨주는 <이런 이야기>를 읽는 동안 느껴지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소년과 소년의 길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것..인생의 한 부분이면서 반면에 전체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 소설 <이런 이야기>.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타인의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이런 이야기>이다. 

g*****3 2014.05.08.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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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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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문학의 거장이란 평을 듣고 있는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책을 처음으로 만났다. '이런 이야기' 제목부터 무척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시작하는 곳에서 끝나는 길로의 여행'이라는 글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1903년 파리의 베르사유 정원에 224대의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무겁고 가장 유명한 차들이 모여 있다. 이 차들이 모인 이유는 자동차 레이스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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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문학의 거장이란 평을 듣고 있는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책을 처음으로 만났다. '이런 이야기' 제목부터 무척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시작하는 곳에서 끝나는 길로의 여행'이라는 글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1903년 파리의 베르사유 정원에 224대의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무겁고 가장 유명한 차들이 모여 있다. 이 차들이 모인 이유는 자동차 레이스를 위해서다.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자동차들과 이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허나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는 차로 인해 생각지도 못하게 차에 치이는 사람, 레이스에 참가한 사람, 자식과 목숨을 끊으려고 자동차에 뛰어든 사람, 자동차 왕국을 세운 형제 중 한 등등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된다.  자동차 경주로 인해서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벌어지자 급기야는 레이스를 중단시키기에 이른다.

 

스토리의 시작은 1903년 자동차 경주지만 주인공 '울티모'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자동차도 없는 마을에 살면서 자동차 정비소를 차린 리베로 파르리...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들 울티모와 함께 정비소를 이끌어 갈 생각이다. 어느 날 담브로시오 백작이 자동차를 가지고 나타나고 이 만남은 부자는 물론이고 그들의 아내이자 어머니 플로랑스와도 깊은 인연을 맺는 결과를 가져온다.

 

리베로 파르리가 스물여섯 마리의 소를 팔아서 자동차 정비소를 차리는데 결정적 이야기를 한 남자를 찾아간다. 그는 리베로가 빠진 자동차 '이탈리'를 만든 남자다. 울티모와 함께 남자의 회사를 찾고 그 곳에서 울티모는 의족을 한 남자의 비서와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와 비서와의 만남은 오래도록 울티모의 마음에 남는다.  울티모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한다. 경주용 자동차가 달리는 길인 자신만의 길... '서킷' 을 만들고 싶다.

 

마을에 처음으로 영화가 상영된 날... 울티모가 어린 시절과 마감하는 날이기도 하다. 영화를 관람 중 자신을 찾는 소리를 듣게 된다. 집으로부터의 급한 전갈... 아버지가 자동차 사고로 생명이 위험하고 아버지를 비롯 가족 모두의 친구였던 담브로시오 백작은 죽었다.

 

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전선 카포레토에서 독일군과 오스트리아군의 연합작전으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그 속에서도 울티모의 전우인 남자의 예상치 못한 파렴치한 행동, 탈영병이란 누명을 쓴 아들의 오명을 벗기 위해 직접 나선 아버지, 피아노를 팔고 피아노 레슨을 해주며 함께 지낸 울티모와 엘리자베타란 여인과의 미묘하고 관계,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울티모의 그림자를 쫓는 엘리자베타를 통해서 울티모의 본 모습을 만나게 된다.

 

세련된 문장이 돋보이는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런 이야기'..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만나게 되는 한 인간이 꿈이 어떤 식으로 완성되고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보면서 인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된다. 주인공이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지만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꿈을 이루고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진정 사랑한 한 여인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 장면은 마치 영화에서 많이 보아왔던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자동차하면 남자들이 많이 좋아하고 자동차와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라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색깔의 책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처음 만난 작가의 작품이지만 빠져 들었기에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다음 작품 기다려진다.

 



q******5 2014.05.08.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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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꿈을 향해 달려가는 뭉클한 삶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꿈을 향해 달려가는 뭉클한 삶에 대하여," 내용보기
"네가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절대로 그의 꿈을 망가뜨리지 말아야 해" 꿈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싶어도 좀처럼 그럴만한 여유를 내어주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특별히 우리의 능력이 뒤떨어지거나,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거라는 걸 다들 알 것이다.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누군가의 꿈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며,
"《이런 이야기》꿈을 향해 달려가는 뭉클한 삶에 대하여," 내용보기

"네가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절대로 그의 꿈을 망가뜨리지 말아야 해"

꿈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싶어도 좀처럼 그럴만한 여유를 내어주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특별히 우리의 능력이 뒤떨어지거나,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거라는 걸 다들 알 것이다.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누군가의 꿈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며, 그들 인생에는 대부분 고통과 좌절, 비난과 조롱이 가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소중한 꿈을 결국 포기하고 만다. 왜냐하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혼자 미친 놈 소리 듣는 게 상관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족, 친구들을 힘들게 만들면서까지 얻어내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말을 꺼내는 누군가가 사실 내 꿈은 이런 거야. 나는 언젠가 이런 일을 해 볼 거야. 라고 자신의 꿈을 내보이면, 주변 사람들은 건성으로 열심히 해보라고 대꾸는 하지만, 대부분 아직도 저런 허황된 생각을 하다니 언제 철이 들래나 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물론 그런 주변 사람들이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다. 현실에서 벗어난 꿈이란 의심스러운 게 당연한 것이고, 그들 또한 매일매일 열심히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무모해 보이더라도 그것을 시간 낭비라고 탓하지 않고, 그리는 꿈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변함없이 격려해주는 사람 말이다.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꿈은 이어지니까 말이다.

 

몇 해 동안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죠. 무엇을 보든 내 눈에는 그것이 길로, 자동차가 달리는 길로 보였어요. 그건 내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었고 오로지 우리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었어요...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길을 보았고 상상 속에서 그 길들을 달렸습니다. 믿기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나는 소년 시절에 머릿속에 숱한 길을 그리고 그 길들 위로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었어요. 그 시절에 나는 이런 식으로 미래를 그렸어요. 세상엔 수많은 길들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엔진의 힘을 이용해서, 그리고 우리의 상상력과 용기를 또 다른 동력으로 삼아 그 길들을 주파하게 되리라고 말이에요.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런 이야기'에서 바로 그렇게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도달하려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자동차로 상징되는 물질문명을 처음으로 맞이한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자동차 정비소를 차린 아버지 리베로와 그의 곁에서 자동차가 질주하는 길에 매혹을 느끼게 되는 어린 소년. 그리고 자동차 경주에 열광하는 담브로시오 백작이 울티모네 가족과 만나게 되면서 리베로와 담브로시오는 랠리 경기에서 엄청난 스타가 되기도 한다. 울티모가 꿈꾸는 길은 아무도 상상해본 적 없는 길, 시작하는 곳에서 끝나는 길, 세상 어디로도 통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로 통하는 길, 지상의 모든 길을 하나로 아우르는 길, 길 떠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다르고 싶은 자동차 서킷이다. 모두가 자동차에 열광하고 랠리에 빠져들던 그 시절, 울티모는 자동차가 아니라 ''에 매혹된 것이다. 그런 그의 눈에 몇 해 동안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길을 보았고, 상상 속에서 그 길들을 달린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던 울티모는 세상엔 수많은 길들이 있을 거라고 믿고, 엔진의 힘과 더불어 상상력과 용기를 또 다른 동력으로 삼아 그 길들을 주파하게 될 거라고 꿈을 꾼다.

이 작품은 여러 화자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서사 기법을 보여주는데, 이는 형식적인 면에서 독특한 것은 물론 아니다. 예를 들어 오쿠다 히데오의 '소문의 여자' 혹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단편집처럼 제 각각의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각각 스토리의 화자 혹은 주요 인물이 매번 바뀌면서 전개되는 형식이다. 물론 주인공은 매번 스토리에 등장하며, 어떤 때는 주요 사건의 키로, 어디서는 배경으로, 다른 곳에서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종종 이야기를 함께 꾸려나가는 것이다.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야기에서는 울티모가 아버지 리베로와 함께 자동차와 길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스토리에 이어, 울티모가 전쟁터에서 만난 두 전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엘리자베타와 함께 피아노가 실린 유개트럭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시절, 활주로를 함께 걷던 울티모 형제, 고향마을 술집의 여주인과의 만남 등등으로 전개된다. 언어로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평을 듣는 바리코의 작품답게 언어는 매우 아름답고, 스토리는 유기적으로 짜여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삶을 펼쳐낸다.

 

내가 보기엔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 같아도 사실은 안 그래.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는 시간은 그 긴 세월의 작은 부분일 뿐이야. 다시 말해서 자기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시기에만 진정으로 살았다 할 수 있어. 그런 시기에 사람들은 행복해. 나머지 세월은 기다리거나 추억하는 시간이야. 기다리거나 추억하는 때에는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않아. 슬퍼 보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건 그저 기다리고 있거나 추억하고 있기 때문이야. 기다리는 사람들은 슬프지 않아. 추억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그냥 멀리 있는 것뿐이야. 나는 기다리고 있어.

 

울티모는 자신이 하나의 서킷을 건설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경주용 자동차들만 달리는 길 말이다. 아무데로도 통하지 않고 닫혀 있는 길, 돌고 또 돌지만 어디에도 이르지 않는 길.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의 꿈이다.

"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 일을 하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울티모가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사고와 인간성을 말살하는 전쟁 통에 겪은 친구의 배신, 그리고 어설프고 어긋났던 사랑은 그의 인생에 굽이굽이 길을 만들어낸다. 아버지 리베로와 아들 울티모는 2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엘리자베타에게 똑같은 말을 하는 걸 보면 그들 부자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 두 부자는 어떤 계기를 통해 자기가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를 깨닫고 그 운명을 끝까지 밀고 가려는 사람들 인 것이다. 아주 먼 세월이 흐른 뒤 엘리자베타는 울티모가 만든 서킷을 찾아낸다. 수 십 년의 시간에 걸쳐 그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울티모가 서킷을 만들어내려는 것이 어느 젊은이의 덧없는 꿈이 아니라 한 어른의 차분한 결심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 또한 그처럼 인내심을 잃지 않고 해마다 계절의 어김없는 순환을 믿는 사람들처럼, 터무니없는 상상을 실제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만들어낸 것이다. 오로지 하나만 바라보고, 그것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눈부신 이야기는 누구라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주게 하기에 충분하다. 어디선가 꿈꾸는 자가 나타나면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비웃는 자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꿈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굉장히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의심하지 말자.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만 있어도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r*******n 2014.05.1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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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서킷을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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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순간을 기억한다. 찰나였지만 내 몸의 모든 세포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 앞에서, 어떤 그림 앞에서, 어떤 문장 앞에서. 감히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 그런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불어오는 모래 폭풍을 함께 헤쳐나가는 것. 죽음과 삶이라는 경계를 떠올리면 우리네 인생이란 참 단순하다. 그 단순함을 인정하는 과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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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순간을 기억한다. 찰나였지만 내 몸의 모든 세포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 앞에서, 어떤 그림 앞에서, 어떤 문장 앞에서. 감히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 그런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불어오는 모래 폭풍을 함께 헤쳐나가는 것. 죽음과 삶이라는 경계를 떠올리면 우리네 인생이란 참 단순하다. 그 단순함을 인정하는 과정이 복잡할 뿐이다. 교차하는 곡선과 엉클어진 실을 풀면 결국 하나의 선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생의 마지막은 어떤 선이 될까, 궁금해진다.

 

 소설은 요란한 자동차 경주로 시작한다. 자동차가 낯선 존재였던 시절, 그것은 기이한 풍경이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어떤 순간이 되고 삶의 목표가 된다. 소를 팔아 정비소를 만든 울티모의 아버지 리베로 파르리가 그랬다. 그리고 그것은 아들에게 전해진다. 아버지는 자동차를, 울티모는 자동차가 달리는 길이라는 운명과 마주한 것이다. 어린 시절 잠깐의 꿈이 아니라 생의 목적이다. 아름다운 서킷을 만들겠다는 울티모의 꿈은 한 번도 변모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곧게 뻗은 길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워. 이 직선에서 온각 곡선과 위험한 굽이들이 갈려나가지. 그러면서 관대하고도 올바른 질서가 만들어지는 거야. 길들은 그런 것을 할 수 있지만, 인생에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아. 사람들의 마음은 곧게 나아가지 않아. 마음의 행로에는 질서가 없어. 115쪽

 

 꿈이 존재하므로 울티모는 삶을 견딜 수 있었다. 자동차 사고로 불구가 된 아버지, 자동차 경주를 함께 관람했던 백작의 아이를 낳은 어머니를 피해 참전한 전쟁에서도 그는 길을 믿고 의지한다. 이제 그의 길은 확장된다. 단수한 서킷이 아니라 그 길에 함께 달리 사람들, 그 길에서 바라볼 풍경들로 채워진다. 전쟁이 끝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버지와 함께 만났던 길을 가슴에 품었지만 미국을 택한다.

 

 청년이라 불리기에도 어린 울티모가 전장에서 어떤 생을 살았는지 우리는 다른 목소리를 통해 듣는다. 그에게 드린 금빛 그늘이 얼마나 눈부셨는지, 우정을 배신한 전우를 어떻게 그의 길에서 제외했는지 말이다. 그렇다. 소설은 주인공 울티모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사랑을 만난다. 발랄하고 도도한 러시아 아가씨 엘리자베타와 함께 피아노를 판매한다. 엘리자베타가 피아노 레슨을 하면 울티모는 피아노를 조립한다. 둘은 함께 지냈지만 엘리자베타는 거짓 일기로 울티모에게 사랑을 고백할 뿐이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의 내밀한 부분을 공유할 수 있었다. 전쟁, 가난, 그리고 둘 사이에 피아노와 길이 더해진다. 단 한 장의 편지도 남기지 않고 울티모는 떠나고 엘리자베타는 약혼자였던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다.

 

‘오래전, 안개가 자욱하던 어느 날 밤에 내 아버지 옆에서 이런 것을 배웠어요. 인생살이의 핵심과 시간의 숨결로 우리를 이끄는 길,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길이라는 것을요.’ 229쪽

 

 중년이 된 엘리자베타가 그의 고향을 찾아 아버지를 만났지만 둘은 그저 자동차, 자동차 경주,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이탈리어로 ‘마지막 사람’이라는 뜻이 온전했던 울티모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던 길에서 엘리자베타는 그를 그리워한다. 그녀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울티모를 그곳에서 느낀다. 울티모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전히 서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모든 길은 순환적이고 어딘가로 통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부에 이르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를 휘감고 있는 공포의 안개가 너무나 짙어서, 길들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 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265쪽

 

 어쩌면 울티모와 엘리자베타의 길이 만나는 교차점은 단 한 번뿐이었는지 모른다. 다시 만나기 위해 누군가 그 길을 되돌아가거나 찾아야만 했다. 엘리자베타의 사랑이 더 컸던 걸까. 그녀가 그 길을 찾아 나선다. 울티모의 서킷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엘리자베타의 지나온 길이 결국엔 내부에 이르는 길이라는 걸 발견한 것이다. 신열과 방황으로 가득 차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삶의 파편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아름다운 존재인가를.

 

‘모든 삶은 무한한 혼돈이며 그것을 단 하나의 완전한 형상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은 더없이 정교한 예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책들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눈매나 들판에 홀로 선 나무들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에 감동하는지. 450쪽

 

 고백하자면, 나는 이 아름답고 슬픈 소설이 무척 마음에 든다.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의 전개, 숨바꼭질하듯 곳곳에 숨겨둔 감정의 문장들, 눈을 감고 소설 속 서킷을 그려본다. 아름답고 황홀한 서킷과 하나가 되어 달리는 그들을 말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나의 길, 그 위에서 만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갈 선이 얼마나 유려할지. 상상만으로도 찬란한 기쁨을 안겨준다. 그러니 설사 그것이 완벽한 서킷이 아닐지라도 나는 이미 충만하다.

r*********s 2014.06.16.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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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정교한 예술이며 하나의 길이다. 올해 최고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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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이세욱 번역    2013년 2월쯤이었다. 새벽에 눈이 떠져 <롤리타>를 마저 읽고나니 햇볕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작고 졸린 눈을 비비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 작품을 내가 언제 다시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읽었던 시시한 작품들을 '피식' 비웃어버렸다.  ​ 2014년 5월 6일 아
"인간의 삶은 정교한 예술이며 하나의 길이다. 올해 최고의 소설!" 내용보기

_이세욱 번역 

 

2013년 2월쯤이었다. 새벽에 눈이 떠져 <롤리타>를 마저 읽고나니 햇볕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작고 졸린 눈을 비비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 작품을 내가 언제 다시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읽었던 시시한 작품들을 '피식' 비웃어버렸다. 

2014년 5월 6일 아침 9시. <이런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을 읽다 소름이 돋았다. 정확히 말하면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순간 작년에 읽었던 <롤리타>가 떠올랐다. 두 작품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새벽부터 읽기 시작해서 아침에 다 읽었다는 점과 책을 덮자마자 올해 최고의 소설 베스트로 꼽았다는 점. 정말이지...대단하다고 할 수밖에는 없는 작품이다.

<이런 이야기>를 어떤 이야기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1903년 파리. 10만 명의 사람들이 무언가 홀린 듯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224대의 자동차들이 모여 있었다. 마치 며칠 굶은 호랑이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으르렁 그르렁 거리며....곧 자동차들은 일제히 레이스를 시작한다. 비로소 자동차 경주가 펼쳐지고 장대하고 아름다운 이 소설의 이야기는 시동을 건다. 자동차에 매료된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소를 세우게 된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열정은 고스란히 아들 울티모(주인공)에게 전해지게 된다. 아버지나 기타 남자들이 자동차에 관심을 쏟는데 반해 울티모는 달리는 자동차가 아닌 자동차가 달리는 '길'에 매료된다. 시끄러운 자동차들이 달리는 그 길고 긴 '길'.

울티모는 순간 운명을 직감한다. 주인공인 자동차가 아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길'(서킷)이 바로 자신이 만들어야 할 꿈이라는 사실을...하지만 울티모가 꿈을 꾸는 순간부터 불운이 시작된다. 레이스에 참가한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고 곧 울티모는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울티모는 과연 꿈꾸던 서킷을 만들 수 있을까? 단순히 자동차가 달리는 '길'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이런 이야기>는 단순한 내용이 절대 아니다. 대략적인 초반 줄거리를 썼는데 조금 걱정된다. 혹시나 이 책의 방향이 오도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줄거리를 아예 뺄까 생각해봤지만 너무 막연할 것 같아 일단 초입 부분만 간략하게 썼다. 이 소설에 대해 해석이 다양하게 나온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내용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보는 입장, 즉 독자가 직접 읽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옳은 것이겠다. 그래서 줄거리나 중심 내용은 일단 배제하고 내 느낌 위주로 써보고자 한다.

 

'모든 삶은 무한한 혼돈이며 그것을 단 하나의 완전한 형상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은 더없이 정교한 예술이라는 것을.'

 

​이탈리아의 작가 알레산드로 바리코. 처음 듣는 작가의 처음 읽는 작품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욱 감흥이 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놀라웠다. 이런 작가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

비로소 마지막 장을 읽고 나자 작은 강들이 모여 하나의 큰 바다를 이루는 기분이었다. 작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이야기는 양탄자 같은 것이고, 그것을 직조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이는 작가다. 결국 글쓰기란 서사의 한 올 한 올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완벽히 제어하는 작업이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내 상상의 틀을 뛰어넘어 미지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한 올 한 올이 살아 꿈틀거릴 수 있도록 완벽하게 배치 또는 조합하는 작업. 소설의 마지막을 위해 모든 이야기들은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황홀했다.

​이야기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아낌없이, 진지하게 추천해본다.

 



d*****1 2014.05.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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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운명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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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여름휴가를 떠나면서 세 권의 책을 챙겨 갔다. 그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이 책을 읽었다. 혼자 간 여행이라면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책을 읽을 수 있겠지만 동행이 있어 한 번에 긴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예전에 혼자 갔을 때도 사실 책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았다. 일종의 변명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에게 큰 화상을 안겨줬다. 호텔 수영장에서 한두 시간 열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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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여름휴가를 떠나면서 세 권의 책을 챙겨 갔다. 그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이 책을 읽었다. 혼자 간 여행이라면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책을 읽을 수 있겠지만 동행이 있어 한 번에 긴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예전에 혼자 갔을 때도 사실 책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았다. 일종의 변명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에게 큰 화상을 안겨줬다. 호텔 수영장에서 한두 시간 열중하다 드러난 신체 곳곳이 빨갛게 익은 것이다. 이날 이전까지 햇볕을 잘 피했는데 말이다. 울티모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심하게 몰입한 모양이다.

 

책을 읽기 전과 다 읽은 후 그냥 표지를 보았을 때 이 사람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하나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장년이 된 울티모의 한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표지를 보면서 바로 그 장면이 생각나지 않은 것은 이 소설의 구성과 이야기 방식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만 몇 사람의 화자를 등장시켜 울티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울티모를 직접 보여준다기보다 그들의 삶과 울티모가 교차한 순간을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단순한 해프닝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관통하는 주요한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 도입부가 자동차 경주라면 다음 역사는 제1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 그중에서 카포레토 전투다.

 

울티모. 마지막 아이란 뜻이다. 이 아이는 신의 가호 속에 성장한다. 특별한 아이다. 그가 나타나면 금빛 그늘 때문에 사람들이 금방 알게 된다. 울티모의 아버지는 아직 자동차가 귀족들의 놀이기구였던 시절에 가축들을 팔아서 자동차 수리점을 열었다. 이 일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토리노의 안개 낀 밤길을 헤매는 것이다. 이 경험은 울티모에게 자신만의 서킷을 만들도록 한다. 이후 울티모 삶의 목표는 바로 이 서킷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킷이 완성된 후 삶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그가 만든 서킷을 엘리자베타가 달리면서 인생을 느낄 때 묘한 감동이 전해진다.

 

울티모가 주인공이지만 그가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않는다. 그와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 울리모의 삶을 흘려보낸다. 바로 역사와 사람이 중심에 있고, 그 주변에서 살짝 울티모가 등장하는 방식이다. 이 전개 방식은 어느 순간에는 집중력을 떨어트리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특히 카포레토 전투는 그 역사의 현장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울티모의 미래를 결정짓는 역할을 맡는다. 엄마의 외도와 아버지의 자동차 사고로 인한 미래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넘어 운명과 꿈에 대한 자각으로 연결된다. 자신이 계획한 자동차 서킷을 건설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미국으로 넘어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그의 삶을 알려주는 역할은 러시아 혁명 당시 몰락한 귀족의 딸 엘리자베타다. 그녀의 일기를 통해 그녀가 바라는 삶과 살고 있는 삶을 보여주고, 그 사이에 울티모를 등장시킨다. 울티모가 주인공이라기보다 오히려 조연이다. 그런데 점점 나이 든 엘리자베타가 등장하면서 울티모의 존재감 커진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이어져 있던 감정, 바로 사랑이 점점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사랑의 환상을 보여주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을 조용히 그려낼 뿐이다. 이 교차하는 순간들 속에 앞에 나온 거짓말들이 하나씩 밝혀진다. 이 설정은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 이야기를 다시 되짚어 보게 만든다.

 

울티모는 사람들이 길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길이 사람을 길들인다고 말한다. 맞다. 사람들이 길을 내지만 기본적으로 자동차는 길을 달려갈 뿐이다. 만들어진 길을 달리는 것이 경주인데 이것은 사람들의 운명이나 삶과도 이어진다. 정해진 길을 가야하고, 길 어딘가에서 언제 멈춰 설 줄 모른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차들이 이 길을 벗어나면 바로 죽음이 기다린다. 그런 점에서 이 길은 아주 중의적이다. 에필로그에서 울티모가 만든 서킷을 찾아서 재건한 후 엘리자베타가 달릴 때 그 서킷에서 울티모의 인생을 경험한다. 그가 남긴 그림의 비밀에 도달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아주 매혹적인 장면이다. 여기서 엘리자베타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갖고자 간절히 욕망한다. 그 욕망의 끝에는 울티모가 있다.

이달의 사락 f***2 2014.08.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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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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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의 작가인 알렉산드로 바리코라는 작가는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되어 만나게 된 작가일 뿐더러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은 왠지 가벼우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느낌과 깊은 향기를 풍기는 그런 이미지와 표지에서 보이는 것이 정말 뭔가 사연이 있는 그런 작품일 것 같은 생각에 의심 반 기대 반이라는 갈림길에서 잠시 헤매이다가 읽게 된 소설입니다. 또한 이야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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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의 작가인 알렉산드로 바리코라는 작가는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되어 만나게 된 작가일 뿐더러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은 왠지 가벼우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느낌과 깊은 향기를 풍기는 그런 이미지와 표지에서 보이는 것이 정말 뭔가 사연이 있는 그런 작품일 것 같은 생각에 의심 반 기대 반이라는 갈림길에서 잠시 헤매이다가 읽게 된 소설입니다. 또한 이야기의 시작은 자동차가 흔하지 않았던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20세기 초 정도의 시대를 배경으로 막 자동차라는 장남감이 생겨나서 자동차 경주의 시작점으로 그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경기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 정부에서는 이 경기는 중지하려는 태도로 보이지만 이 안에 있는 자동차에 대한 열정은 쉽게 수그러 뜨리지 못하죠.

 

단순하면서도 왠지 묵직한 느낌을 주는 이 소설은 소를 팔아 정비소를 차린 소년의 아버지와 정비기술보다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만드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읽는 이에게 반문을 하죠. 과연 나에게 '길'이란 무엇인지, 처음 인생이란 엄청난 관문인 문을 열고 걸어가면서 현재 잘 찾아가고 올바로 걸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고 뒤돌아보게도 합니다. 소년이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을 때 이제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있게 되면서 ​길은 한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상처와 치유를 겪고 또 다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과 길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을 모두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게 되고 마지막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것 역시 길 위에서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 삶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소년에게 있어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엇갈린 시간은 안타깝고 슬프고 허무함을 느끼게 하죠.

 

“모든 삶은 무한한 혼돈이며 그것을 단 하나의 완전한 형상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은 더없이 정교한 예술이라는 것을.”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소년과 소년의 길을 통해 보여주면서 인생의 한 부분이면서 반면에 전체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 소설 <이런 이야기>.

 

마지막에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야기는 양탄자 같은 것이고, 그것을 직조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이는 작가다. 결국 글쓰기란 서사의 한 올 한 올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완벽히 제어하는 작업이다.”

 

마치 할아버지나 그 나이데의 어르신이 나의 걸어온 길을 젊은이나 손자에게 잔잔하면서도 조용히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들려주면서 주인공이 타인의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듯 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나의 이야기인 <이런 이야기>는 정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엄청난 대박이었던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b******2 2014.05.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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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같은, 그러나 죽더라도 꼭 가볼만한 길 _ 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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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직선과 곡선을 가리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나있다. 온갖 차들이 온갖 방식으로 길을 지난다. 그러나 길 위에서 사람은 두 종류다. 달리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 명예나 돈, 권력, 재미를 위해 누군가는 전속력으로 차를 달린다. 경쟁하던 차들이 뒤엉켜 처참하게 구겨지고 사람이 죽는다. 그러나 사람이 죽는다고 레이스는 끝나지 않는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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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직선과 곡선을 가리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나있다. 온갖 차들이 온갖 방식으로 길을 지난다. 그러나 길 위에서 사람은 두 종류다. 달리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 명예나 돈, 권력, 재미를 위해 누군가는 전속력으로 차를 달린다. 경쟁하던 차들이 뒤엉켜 처참하게 구겨지고 사람이 죽는다. 그러나 사람이 죽는다고 레이스는 끝나지 않는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레이스가 레이스다워졌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레이스를 구경만 할뿐이다. 마치 전쟁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희생될 때, 멀찍이 서서 그것을 구경하듯이. 전쟁을 안타까이 여기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 군인의 상처는 외면하듯.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방관하게 될까. 달리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 모두 길 위에 있지만 과연 달리는 사람의 길과 구경하는 사람의 길은 같은 길일까.

 

 

[이런 이야기]는 열여덟 굽이의 길을 전속력으로 레이스한 사람의 이야기다. 아니 사실은 사람들이 달음박질하는 모든 길,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열여덟 개의 굽이가 있는 레이스 서킷을 구상하고 짓고 그 길을 질주한 주인공은 울티모인데, 울티모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흐르는 부분은 많지 않다. 이야기는 시종 다른 사람의 눈으로 울티모를 보여준다. 저자는 어린 울티모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소 수상하고 불친절하게 안내한다. 울티모를 찾아다니며 독자가 더듬는 것은 길이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더해서 결국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완벽한 뺄셈이자 노인의 주름처럼 한 굽이 한 굽이 고스란히 생애의 시간들을 담고 있는, . 울티모는 일찍이 길의 이치 곧 생애의 이치를 깨우치고는 자신의 인생을 담아낸 완전한 서킷을 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런 이야기]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울티모가 인생의 목표인 서킷을 완성하고 그 길을 질주하고 난 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은 길이니까. 길은 언제나 끝난 곳에서 다시 시작되기 마련이고 레이스는 길이 있는 한 계속된다. 중요한 것은 길은 구경하는 사람이 아닌 달리는 사람에게만 온전한 길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길은 변덕스럽고 심술궂고 엉망진창으로 꼬여있다. 그러나 길은 진실하다. 길은 오직 그 길을 질주한 사람만을 기억한다. 울티모가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엘리자베타에게 자기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시기에만 진정으로 살았다 할 수 있다고 말한 부분은 그래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어달리기의 주자가 바뀌는 바통터치의 순간이었으므로.

 

 

 

울티모는 엘리자베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는 미치광이 같았죠. 하지만 진실했죠. 하나의 길과 같았어요. 생뚱맞은 굽이가 자꾸자꾸 나오는 길, 돌아올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광막한 벌판으로 내닫는 길,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달리고 또 달리는 길이었죠.” 그가 엘리자베타 더러 가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가볼만한 길이라고 한 말의 의미는 책을 덮어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구경꾼이 아니었다. 도전적이었고 당돌했다. 심지어 그녀는 울티모를 그녀가 만든 길 가운데로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곡선의 미학에 일찌감치 매혹된 울티모가 온갖 변주로 휘어져있는 서킷 같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생의 황혼에서 잠시 마주쳤다 덤덤하게 헤어져 끝내 각자 홀로 죽음을 맞은 연인은 비극적이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진정으로 살아낸 인생이 있는 그들에게 기다림과 추억이라는 것은 슬픈 것이 아니었다. 길 위에서 벌어진 그런 저런, 이런 이야기일 뿐.

 

 

 

 알렉산드로 바리코가 이야기 속으로 낸 길은 무척 아름답다. 울티모의 여정은 담백하고 그의 소식을 전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온화하다. 돌이켜보면 울티모의 이야기를 전해준 모든 사람들 중 구경꾼은 없었다.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낸 사람들, 진정으로 살았던 순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죽음과 이별, 비극이 벌어지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화자들의 목소리는 슬프지 않다. 엘리자베타가 젊었을 적에 썼던 일기를 중년이 되었을 때 또 노인이 되었을 때 펼쳐보며 그녀가 달려온 길을 회고하듯, 내가 달려갈 길에서도 이따금씩 이 책을 펼쳐보며 과연 내가 해내야 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지, 나는 누군가에게 가다가 죽더라도 가볼 만한 길이 되고 있는지 비춰 보고 싶다.

 

 

 

o********e 2014.06.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