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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알마 에서 발간한 SS[과학과 사회]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주제이다. 동물인 인간이 특별한 존재인 까닭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세 명의 학자가 그 본질적인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다분히 철학적인 성격의 두 학자와 – 고인류학자 및 신경생물학자 – 다분히 학술적인 성격의 한 철학자가 바로 그들이다. 먼저 무엇이 인간을 특수한 존재로 만드냐는 질문에 신경생물학자인 ‘장 디디에 뱅상’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은 타인, 타인들, 나아가 타인의 타인, 위대한 타자他者 즉, 신이 존재함으로써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들 사이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것은 감정 및 인식의 공유에서 일어나고, 감정교환능력은 군집의 크기와 관련되며, 영장류가 이루는 군집의 크기는 머리를 똑똑하게 해주는 전두피질의 부피에 비례한다고 한다. 영장류의 군집의 크기는 그루밍grooming 활동, 즉 이잡기, 핥기 등의 소소한 애정표현과 비례하지만 인간은 언어로써 유지되는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타인과 함께 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지만 역설적인 것은 인간은 전적으로 혼자라는 점이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고 한다. 도구를 사용하고, 관습에 의한 문화를 가지고, 타인의 행동을 체험하고, 일부일처제를 고수하는 것은 인간 이외의 동물들 에게 서도 발견되지만 인간만이 타자성他者性에 의해 사회를 이루고 살수 있는 질서를 도입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인간이 1500g 정도의 뇌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가능하다고 한다. 즉 뇌 속에서 만들어지는 뉴런의 진화의 역사가 인간을 타종과 구별하게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고인류학자인 ‘파스칼 피크’는 인간 고유의 특성은,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있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이렇게 얘기할 때 문제는 선사시대의 사람이라 불리던 이들은 과연 인류로 볼 수 있는지, 즉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가 또 하나의 문제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의 고인류학자들과 동물행동학자들은 동물과 사람, 또는 동물과 인간 사이의 연속성 및 비연속성의 문제를 다시금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의 사람의 위치는 계통학적으로 분류할 때 다른 동물들과 연속성을 가지나, 이 경우 인간의 경계가 – 동물인지, 사람인지, 인간인지 - 모호해짐을 깨닫고 사람에게 별도의 분류자리를 주기 위해 자연과학자들은 애써 왔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분자계통학과 계통발생학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이제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 자연속의 인간을 분류하지 않고 혈족관계에 의해 인간을 분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사람은 아프리카의 대형 유인원과 같은 과科로 분류되며, 우리의 기원이 아프리카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이들 대형 유인원, 특히 침팬지와 사람을 비교해 보면 어떻게 될까? 직립보행, 전쟁, 성적금기, 사회생활, 사냥 및 음식공유, 성性, 정치, 도덕, 거짓말, 공격과 화해, 상징적 의사소통, 자의식, 웃음과 울음 등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의 진화형제가 되며 그들과 우리가 공유한 이러한 특징들은 인류의 근간이 아프리카 어딘가에 살았던 우리의 – 사람과 대형유인원 - 마지막 공통 조상에게서 유래한 것 임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후 사람 종은 400만년 전부터 진화와 사라지기를 거듭하다가 10만년 전에서 5만년 전 사이 생물학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형태의 사람, 호모사피엔스와 호모네안데르탈렌시스가 인류를 구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빙하시대는 우리의 종인 호모사피엔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 종을 휩쓸어 우리가 사람 종 중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라고 한다. 그리고 호모사피엔스는 인간은 아니었으나 진화하여 결국 인간을 만들어 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진화의 힘을 사람들은 불완전하게나마 붙들었고, 사람들만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자연에서 인간이 그렇게 독보적인 존재는 아님을 깨닫고, 자연을 향한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철학자 ‘미셀세르’는 엄청나게 긴 특정시간, 즉 자연의 시간 속에서 차례로 나타난 우발적 정황들에 대한 언급을 거대담론이라고 칭하고, 자연이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출생, 즉 태어나는 것을 가르키고 있다고 말한다. 행성의 출현, 생명의 출현, 종의 출현, 인간의 출현 등으로 갈라지는 거대담론의 모든 갈래들을 우리는 알지도, 다스리지도 못하지만 자연이란 결국 거대담론에서 갈라진 모든 갈래들의 부정적분 이라고 할 수가 있고, 인간이란 자연의 갈래들로 한정된 부분집합 이라고 정의한단다. ‘미셀세르’는 이에 대하여 부연하길 “인간이란 극히 한정된 지역에서 살아가며, 최근에 와서야 고작 칠팔십 살의 기대수명을 채우는 존재이며, 고작 몇 천년 동안 지속된 공동의 문화권에 속한 존재다. 이 공동의 문화권은 몇 백만년 역사를 가진 호모사피엔스종의 진화에 속하고, 호모사피엔스종은 40억년 역사를 가진 생물계 전체의 체험시간에 속하며, 생물계 전체의 체험시간은 대략 150억년 전부터 우주의 탄생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원소로써 이루어진다. 요컨대 인간은 지각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파편들을 엄청난 체험시간에 연계시킨 존재다” 라고 말한다. 모든 생물의 몸은 변이와 선택 이라는 과정을 통해 진화하며, 변이와 선택으로 만들어진 유기체는 자신이 속한 환경의 현지자원을 최대한 이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관은 탈특화 되어 있으며 – 다른 동물들과 같이 특화되어 있지 않으며 – 이것은 곧 생태적 환경을 벗어나 포괄적 공간에 진입할 수 있음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진화와 생명탄생의 과정에 개입하고, 시간을 압축하고 조작하여 생물계 전체의 체험시간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인간이란, 시간을 뛰어넘고, 자가진화의 길을 걷는 생물이며, 인간의 역사란, 압축해 놓은 진화과정의 상대적 제어라고 저자는 말한다. 즉, 인간이란 체험시간을 조작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 학자중 ‘장 디디에 뱅상’과 ‘파스칼 피크’는 과학계의 학자답게 자연의 일부로써, 생물계의 한종으로써 사람을 선정하고 그들의 진화와 인간이 관련되어 있음을 얘기하고 있으며, ‘미셀세르’는 철학자답게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아를 우위에 두고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답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자연과학자이든, 인문학자든 간에 그들의 주장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결국 인간이란 사람이라는 종에서 진화되어 왔으며, 진화조건이 사람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을 뿐 생물학적으로는 생물계에서 그리 독특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의 시간을 압축하고, 거기에 관여함으로써 자가진화를 할 수 있고 타종의 진화에 관여하는 힘을 지닌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다소 어렵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이 자연계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세 학자들이 답해준 것을 떠나 나 자신 아니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되묻고 싶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리뷰를 쓴 것인지 어떤지 이 글을 쓰면서도 조금은 불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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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앞서 이 질문을 우리가 사유하여야 할 가치란 무엇인가? 가 외려 보다 근원적인 질문처럼 여겨진다. 생물학적, 고인류학적, 철학적 답변 등 이미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무수한 변주곡들이 존재 할 것이다. 이 난해한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이 인간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어떠한 효용이 있기는 한 것인가. 오늘의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의 내부에 깊숙이 들어가 그 근원을 조작하고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초래하는 우려할 만한 징후들에 불안과 공포가 섞인 경고와 자성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의 한 부분에 불과한 인간의 동물적 본성에 대한 인식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인간이 자연과 차별되는 무엇을 지닌 예외적 존재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질문이 되고,‘인간은 무엇인가?’하는 동일한 질문으로 회귀하게 된다. 그렇다. 이 질문은 인간 삶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의 과학적 오만과 사상적 기만이 과연 타당성이 있는가하는 검토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이 저작에 수록된 생물학자, 고인류학자, 철학자 3인이 이 본원적 질문에 가지는 답변은 그래서 인류의 행위에 대한 나름의 가치기준이 될 수 있고, 향후의 행보에 유용한 좌표로서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생물학자는 인간을 무엇이라고 정의할까? 신경생물학자인 ‘장디디에 뱅상’은 뜻밖의 답을 하고 있다. 독립영양생물과 종속영양생물로 분류되는 자연계에 ‘인류영양생물’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추가를 주장한다. 모든 자연계의 생물과 달리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양분을 얻고 산다.”는 의미에서 별도의 분류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일견 공감할 수 있지만, 이러한 세분을 하게 되면 여타 생물들의 독특한 특성을 전부 반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마 지금의 분류체계는 붕괴되고 말지 않을까. 왠지 인간의 차별성에만 시선을 맞춘 석연찮은 오만함만 느껴진다. 그리곤 인간의 성장 특성 중 대량의 뉴런 생산과 시냅스 생성을 통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예로부터 가장 견고한 기관인‘프시케(psyche;영혼)’를 가진 유일한 동물이란 결론을 내린다. 영혼?, 과학과는 거리가 먼 이 추상적 언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한편, 또 한사람의 자연과학자인, 고인류학자인‘파스칼 피크’는 인간의 기원에 관한 문제로부터 자연계에서의 인간의 지위를 성찰한다. 특히 신체적 측면의 진화인 '사람화(hominisation)'를 통한 인류기원에 대한 탐색을 진행하며, 700만 년 전 아프리카 어딘가에 살았던 우리 진화형제들의 마지막 공통조상에 대한 불확실성을 쫒고, ‘인간이 그렇게 독보적 존재는 아니다.’라고 결론짓는다. 인간만의 독특한 행동양식이라는 전쟁, 성적금지, 공격과 화해, 정치,도덕,거짓말, 자의식, 웃음과 울음...은 비교동물행동학의 연구결과 다른 영장류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인간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처럼 두 자연과학자의 인간의 독보적 존재성에 대한 상반된 견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다지 명쾌한 대답으로 다가오지 않으며,‘인간의 미래 지속성’에 대해 오늘의 우리들 태도를 결정하는데 여전히 부족하다.
그러나 이 저작물의 가치를 격상시키는 현대 인식론의 거두인‘미셸 세르’의 담론에 이르면 많은 비판적 여지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탁월한 통찰력에 기인하는 인간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이 난해한 질문의 근원에 접근하고 있음을 발견케 된다. 그는 두 자연과학자들의 접근과 같은 엄청나게 긴 특정 시간동안 차례로 나타난 우발적 정황들에 관해 언급하는 거대담론은 지양(止揚)한다. 실제 진행되어왔던, 그리고 진행되고 있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사람화에 주목한다. 그는 우선 “물질이란 무엇인가?”고 묻는다. 이에 대해 물질(원자에너지)의 발견, 대량살상무기, 인류를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는 인간 자신의 재능과 의지가 초래한 인류와 문명의 죽음이라는 위험에 빠진 지구에서 인간은 멸종했는가? 라는 반문으로 물질의 발견을 해낸 인간의 탁월성을 뚝뚝 떨어뜨린다. 이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보건 환경, 질병치료의 개선 등 죽음에의 종속성을 넘어 존재와 출생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고전적 의미의 진화처럼 자연계에 어떠한 힘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연의 변이를 제어하는 인간의 현 모습을 투영한다. 인간은 스스로 “특수한 생태적 환경을 벗어나 포괄적인 공간에 진입”하였다는 것이다. 즉, 끈질긴 진화와 길고긴 적응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인간은 적응의 시간을 단축하여 시간의 층위를 환상적으로 압축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히 이 저작의 꽃이랄 수 있는 기막힌 사례(事例)적 질문이 던져지는데, “인간은 왜 옷을 입을까?”하는 것이다. 수치심의 회피?, 약점의 커버? ... 등등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인간은 단지 “옷을 벗는 것의 기이한 이점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빨리 벗고 빨리 입기 위해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독보성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동물의 표피나 털과 같은 고집스런 해법이 아니라‘착용과 해체’의 재량권이라는 자연의 보수성을 초월하는 고도의 적응력이며, 동물들에게 지난한 시간을 요구하는‘기관의 변화’를 ‘도구’라는‘착탈식 기관’으로 변경한 것이다. 바로‘변화와 시간’에 주목한 인간은 도구라는 기술을 통해 죽음과 시간의 엄청난 절약을 이룩하였으며, 궁극에는 “자연의 시간을 사용하고 자연의 변화에 복종하면서‘탄생(nature)'을 지휘”하게 되는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급기야“인간은 수 십 억년 동안 인간과 무관하게 행해진 우발적 진화의 주요요소를 이성과 증가의 방식으로 다스리고”, 기술적 혁신이란 짧은 시간에 압축해내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제 인간은 “시간을 뛰어넘는 존재”가 되었으며, 자신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러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들의 기나긴 기억 속으로 들어가고, 자신들의 본성(nature)을 간파하곤, 자신들의 문화(culture)를 만들어 낸다. 그러니 “인간은 자가(스스로) 진화의 길을 가는 생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 묻는다. 인간은 셀 수 없이 많은 급격한 적응과정을 자신의 용도에 맞게 압축하였으며, 이런 “인간은 그 자신의 원인”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현재를 만들고, 자신의 변화에 맞서 싸워왔으며, 자연의 진화와 적응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자신들만의 독특한 진화를 지속하여 우주의 시간과 자신들의 역사를 공존시켜왔다. 겹겹이 집어넣은 시간의 압축은 기나긴 체험시간을 절약해 주었으며, “변이의 체험 시간을 영(Zero)”으로 만들어낸 인간은 자연과 슬기로운 계약을 해 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시간의 압축을 이해하고 착탈식 도구라는 독특한 진화방식으로 자신들의 몸을 해방시킨 생물이며, 이젠 그 자신이 자신의 원인이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옳다면 인류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의 지속성을 가능케 할 것만 같다. 그러나 과연 2500여년에 불과한 인간의 이성을 신뢰할 만한 충분한 시간의 탐색이라 할 수 있을까? 아무튼‘미셸 세르’의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연과 인간의‘시간’에 주목한 그의 통찰력은 새로운 상상력과 지성을 자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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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3명의 학자가 답한다. 신경생물학자, 인류학자, 철학자. 이들이 각각 자신의 학문의 입장에서 인간을 정의한다. 이 세 학자의 구성만으로도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힌트가 되겠다. 동물로서의 인간, 역사를 가지고 끊임없이 진화해온 인간, 그리고 철학을 하는 인간.
먼저, 생물학자가 말한다. 자신은 인간을 ‘'인류영양생물', 즉 인간으로부터 양분을 얻고 사는’ 생물로 분류하고 싶다는 것이다. 인간은 타인, 타인들, 나아가 타인의 타인, 위대한 타자, 즉 신이 존재함으로써만 인간이 될 수 있다. (p.20) 는 점을 사람과 다른 동물의 차이점으로 본다. 이렇게 시작하니 인간을 우위에 두고 긍정적으로 진행될 것 같았는데 이 생물학자는 영장류에 대한 이야기를 슬그머니 꺼낸다. 영장류 개체들 사이의 '그루밍'활동도 사회성을 만들어내는 애정표현이라는 것이다. 원숭이들 사이에도 사회 전수과정이 존재한다. 마모셋원숭이는 정조관념에서 나아가 성행위에서 감정과 옥시토신을 얻는 것이 인간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등장한다. 이쯤되면 '아! 인간도 어쩔 수 없는 영장류 속의 한가지 동물일 뿐이란 말인가? '하고 의아해진다. 그제서야 우리의 생물학자가 비장의 카드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2퍼센트만 다르느니, 1 퍼센트만 다르다느니 하는 것이 다 의미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왜냐고? 엄선된 0.5퍼센트로서 우리는 모든 것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유형성숙동물, 즉 장기 태아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유명한 발생 유전자이다. 인간은 미완의 존재다. 결코 그 형성이 끝나지 않는다. (...중략...) 뇌형성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약 16년이 필요하다. 16년 동안 인간은 대량의 뉴런생산과 시냅스 생성을 계속하여 자신의 세계 및 타인의 세계가 되는 이 세계를 구축한다. 원숭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p.30)
스스로가 생물학자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하면서도 영적인 차원인 '프시케 즉 영혼'을 이야기 한다. 나는 분명 영혼이 과도한 증오나 과도한 사랑도 견뎌내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가장 견고한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영원하진 않더라고 적어도 영혼은 타인의 기억 속에 일정 기간 살아남지 않는가.(p.32)
고인류학자는 먼저 인간 고유의 특성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제시하며 논지를 펴나간다. 인류학 강의에서 들을 수 있는 화석들이야기는 물론 당연히 언급된다. 비교동물행동학을 통해서 인간에 대해 언급할 때 늘 등장하는 유인원들이 인간다운 특징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그가 고른 목록들은 이렇다. 직립보행, 도구, 전쟁, 성적금기, 사회생활, 사냥 및 음식 공유, 성, 정치, 도덕, 거짓말, 공격과 화해, 상징적 의사소통, 자의식, 웃음과 울음. 이 모든 특징들을 우리의 이웃인 영장류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겸손해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체험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다. 엄청나게 긴 시간을 자신에게 굴복시킬 힘을 가진 존재다. (...) 우리는 현재를 만들고 우리 자신의 변화에 맞서 싸운다. 인간은 그 자신의 원인이다.(p.98)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까지 나는 인간이라는 단어에서 인간의 동물적 육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 속에 자리잡은 인간이라는 의식이 너무 오만했던 것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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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읽었던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책 제목은 What is man 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가물가물하다. 분명한것은 man(남자)을 중심에 놓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善과 惡의 충돌이다. 도화지에 그려내는 타블라자자는 위선이다. 天과地 사이에 자연스럽게 川하지 못하고 꽉막힌 구멍을 뚫어내야 하는 숙제는 자연의 반발력이 우리에게 대단한 실험을 요구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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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24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치면 동일한 제목을 가진 총 12종의 책이 나온다. 참 진부한 제목이지만 가장 근원적인 의문이기도 하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그 근원적 질문을 찾아 헤매는 일이 단순히 종족적 개념을 정의내리는 학문적인 행위만이 아니라 인간 개체가 스스로를 사유하고 인생에 대한 비전을 갖는데 쾌활한 충격을 준다는 사실도 새롭게 깨달았다.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다. 읽는 내내, 굉장한 만족감을 느꼈다. 이 책은 같은 시리즈로 나온 최근의 신작 [언어의 기원]과 함께 읽을 때 시너지 효과를 맛볼 수 있다. 본책 2장에 나오는 고대 인간종의 이동을 탐색해 가는 고인류학자의 작업과 [언어의 기원] 2장에서 '최초의 언어를 찾'는 작업을 한 베르나르 빅토리의 작업과 유사한 면이 많고 상통되는 부분이 있다. 뿐만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세계를 해석하고, 인생을 해석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작업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변별시키는 위대한 점이다. 하여간,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각 장이 논리적 총합체를 이루지는 않지만 장별로 환상적인 매력과 맛을 자랑한다. 특히 2장과 3장이 그러하다. 2장에서는 지금까지 학자들이 해온 인간이 동물들과 다르다고 규정지었던 면들이 사실은 여타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나타나는 점이라는 것을 밝힌다. 또한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유사현생인류가 별종하고, 하필 왜 우리가 이 지구를 차지했는지 고민하게 한다. 현생 인류와 비슷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인종이 한 가지 근원에서 진화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은 사람을 육체적인 면에서 생물학적으로 정의를 내리는 것 이상으로 정신적인 면에서의 '인간성'을 정의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책의 꽃은 3장이다. '프랑스 인식론 계의 거두로 평가받는다는' 띠지의 소개가 무색하지 않은 문장과 서술이었다. 읽는 동안 '에?' '에?' 할 정도로 불친절한 문장을 구사하지만, 거의 영적인 충격을 줄 정도로 황홀한 쾌감을 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도구를 창조하고 그 창조로 인해 진화를 가속할 수 있는 존재다. 전능하지도 않고, 죽음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도 없지만 전능의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 흠. 책읽는 즐거움을 제대로 맛보게 해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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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미셸 세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를 비롯한 3명의 공저자인 고인류학자와 신경생물학자, 그리고 철학자의 눈으로 살펴본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미셸 세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를 비롯한 3명의 공저자가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다룬다.다분히 철학적인 성격의 두학자와 과학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한명의 과학자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
철학에서 인간학이라는 주제가 생소한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중세의 소피스트들도 철학주제를 인간에게 관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상대적으로 희랍의 이데아 사상이나, 아르케 사상에 대한 상대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힘겨웠던 탓이지, 결국은 서양철학의 기반을 닦았다는 것에서는 인간에 대한 <앎>이라는 문제를 부각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수세기를 지나는 연대를 거쳐가는 과정은 있었지만 정착되어진 귀결은 결국 <인간학>이었던 것이고, 그것이 근대에 들어와 실존철학을 태동하게 된 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인간(humain)에 관한 문제의 역사는 겨우 2,500년이다. 고인류한자들이 사람과 인간의 문제를 논할 때 인용하는 '디오게네스'와 '플라톤'사이에 있었던 인간에 대한 논쟁이 시초이다. 자연과학과 철저히 인간적인 인문 과학 사이에서 인간의 개념을 다루기는 그리 녹록하지 않지만 인류학자들은 철학적 개념과 '종'과 '속'의 자연과학적 개념을 모두 동원하며 사람과 인간의 구분에 노력하고 있다.
인간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이며 존재란 무엇인가? 라는 인간 실존에 관한 앎을 다루는 학문이 철학이라면 철학은 바로 인간이 사는 삶에 대한 담론이라 할 것이다. 이 앎에 대한 방식을 나누는 갈래에 따라서 사유하는 논리형식이 다르고, 철학 하는 방법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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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이며 그 과정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듯이 진화의 끝이 인간은 아니라는 말이다.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자신을 길들여 좋든 싫든 자신의 존재 형성에 참여하는 다소 예외적인 종이 인간이다. 인간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 죽는 날 까지 스스로를 단련하며, 역설적이지만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개체로서의 자립성을 추구한다. 인간의 본성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자 자아의 완성에 필요한 조건인 언어, 문화, 지식에 적응해가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이 책은 2002년 파리과학산업관 개회식에서 발표한 '강연' 내용을 취합한 것이다. 신경생물학자인 장 디디에 뱅상과 고인류학자인 파스칼 피크 , 그리고 철학자 미셀 세르의 눈으로 살펴본 인간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넓은 교양과 폭과 깊이가 느껴지는 모두 3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된 질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탐구가 흔히 그렇듯 수많은 학자들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았으니 그중에 정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인간을 언어를 가지고 사고할 줄 알고 사회를 이루며 사는 지구상의 고등 동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말들로 인간을 정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로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생물학자가 볼 때 인간의 동물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철학자의 눈에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 이 차이는 생물계에서는 독립영양생물과 종속영양생물을 구분한다. 독립영양생물이란 광합성이나 화학합성으로 얻은 에너지와 무기물을 생성할 수 있는 식물을 가르키며, 종속영양생물이란 이미 형성된 유기물을 이용하는 동물이나 버섯류를 일컫는다.(p.19 ~ p.20)
'장 디디에 뱅상'은 영장류의 특징으로 '그루밍(groomming)'이라는 활동에 착안했다. '그루밍' 활동이란 이 잡기, 핥기 등의 '소소한 애정표현'을 말한다. 다른 개체를 돌보면서 이러한 사회성을 만들어내고 곧 평화를 만들어 낸다. 또한 인간은 말을할줄 아는 존재이다. 물건이 아닌 타인을 조작하는 탁월한 기능의 도구인 언어 덕분에 인간은 사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언어란 훌륭한 상징적 이 잡기 도구이자 사회조직의 버팀목으로인간사회는 언어로써 유지되는 관계에 기반을 두며 인간의 경우 발언권을 갖는 사람이 우두머리가 된다. 또한 인간은 '자아에 대한 타자'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를 이루고 살려면 질서의 도입이 꼭 필요하고, 이 질서가 없으면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간음할 것이란 주장을 편다. 언어를 주요 도구로 삼아 발전한 문화의 기원 가운데 하나가 성(性)이며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욕망을 중화해 나아간다.
고인류학자가 바라본 인간은 사람은 곧 도구라는 견해이다. 사람의 생물학적 진화를 연구하는 고인류학은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에 있음을 알게 된 순간 선사학에서 벗어난다. 즉, 문화적 진보보다 생물학적 진화가 앞선다는 견해이다. 인간 고유의 특징을 '인간은 무엇인가?'와 같은 의문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의 생물학적 진화, 즉 엄밀한 의미로 '사람화'를 받아 들일 때 또다른 개념인 '인간화'의 개념을 만들어 낸다. 대다수 고인류학자들은 오직 몇몇 크로마뇽인 개체군에서만 인간이 유래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인간이 일종의 우발적 진화로써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철학자 '미셀 세르'의 인간화 개념은 생물학적 진화와 정신적 진화과정을 구별하면서 신체적 측면의 진화를 사람화(hominisation), 정신적 측면의 진화를 인간화(humanisation)라 칭한다. 인간을 철학적으로 정의해보면 인간은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존재자이다. 인간을 다른 것들과 구별하는 것은 그가 이성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즉 인간은 근본적으로 본성으로서 이성적인 힘을 지니고 또한 유일하다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인간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구체적 현상들을 정세하게 기술하고 분석한 뒤에, 인간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 성과들을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근거로 삼고 체계화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올바른 정의를 위해서는 논리적인 분류가 필연적임을 인식하고 인간을 합리적인 동물로 분류 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추상과정을 통해 보편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들 보편개념으로부터 추론 규칙을 쫓아 삼단 논법에 의거해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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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아주 짧지만 답을 하기에는 너무나 힘들다. 한 점에서 출발하여도 어느 방향으로 풀어 나가느냐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생물학적으로 답을 구할 수도 있고 철학적으로 답할 수도 있으며 사회학적으로 탐구할 수도 있다. 외적인 면의 특성을 연구할 수도 있고 내적으로 인간 본연의 특성을 찾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답을 구한다 하더라도 유일한 답이 될 수 없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이고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하고도 여전히 생각할 여지를 남겨 놓는다. 이 책에서는 신경생물학자, 고인류학자, 철학자가 펼쳐내는 인간에 관한 강연을 만난다.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인간에 대하여 바라보고 풀어본다. 전문 분야의 견해를 넣어 정의해 나가면서도 매우 조심스럽다. 결코 그들의 영역 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전공한 학문의 경계를 벗어나 좀 더 넓고 자유롭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마당을 펼친다. 이러한 점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신경생물학자 장 디디에 뱅상은 먼저 동물의 관점에서 인간의 특성을 찾고 다른 동물들과 비교한다. 단순히 특성을 비교하여 그것에서 결론을 찾으려 하지 않고 새로운 관점에서 특성을 찾는다. 이에 따라 ‘인류영양생물’이라는 새로운 집단을 제안하고 ‘인간은 타인, 타인들, 나아가 타인의 타인, 위대한 타자 즉 신이 존재함으로써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한자로 인간을 풀이할 때 사이 간을 쓴다. 타인이 있을 때 인간의 존재 가치가 있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동서양의 차이가 없는 듯하다. 뱅상은 더 나아가 언어의 중요성을 말한다. 언어가 사회화를 만드는 도구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개인을 이야기한다. 사회화와 철저한 개인화는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양상을 보이면서 존재하기에 더욱 신비로운 존재이다. 뱅상은 마지막으로 영혼이라는 단어를 던지며 인간에 대한 의견을 마무리한다. 고인류학자 파스칼 피크는 유인원들의 행태와 진화 모습을 통하여 인간을 바라본다. 원숭이들의 행동 양태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성들을 증명하여 인간을 정의하는 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결과들이 더욱 인간을 정의하는 것을 어렵게 함을 보여 준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인간을 정의하기를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더 나아가 인간이 그렇게 독보적인 존재는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을 무참히 뭉그러뜨린다. 그는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라는 의견을 전하며 결론을 맺는다. 미셸 세르는 인문과학의 역할을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인간을 정의하고자 한 많은 연구가 있었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자연의 갈래들로 한정된 부분집합”으로 정의한다. 자연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중요하다. 새로운 출현이 나타나는 뿌리로써 자연을 생각한다. 자연의 거대함과 위대함 속에 인간의 위치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지각할 수 없을 만큼 작은 파편들을 엄청난 체험시간에 연계시킨 존재’로 말한다. 인간은 시간을 뛰어넘는 존재, 자기 진화의 길을 가는 생물이다. 자기 변화에 많은 의미를 둔다. 미셸은 체험 시간을 조직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 긴 시간을 자신에게 굴복시킬 힘을 가진 존재로 인간을 보며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변화에 대응하게 다시 변화하는 존재로 본다. ‘인간은 그 자신의 원인’이라는 말이 모든 것을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계속하는 존재인 인간의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과학자들과 철학자가 인간을 생각하고 정의해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서 말한 이론들과 생각들이 유일한 답이 아니기에 앞으로 또 다른 생각들이 나올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양한 학문의 견해를 만나고 의문을 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과정 중에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자연 속에서 변화해 가는 존재로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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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이다. 흔한 말로 동물과 다르다는 표현을 써서 우리가 인간이라는 특수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어떤 특별성을 부여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물과 다른지를 먼저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답은 ‘사유’라는 개념이었다. 즉, 인간은 생각할 줄 안다는 사실에서 동물과 다르고 그 차별성을 인정받는다. 이 외에 또 어떤 점이 인간과 동물을 다르게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인간이 왜 특별한 가에 대한 의문의 답을 구하려고 고민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알마의 '과학과 사회' 시리즈의 다섯 번째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본문에서는 세 명의 학자가 나와 자기분야의 지식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정의하는데 그 분야가 고인류학자, 신경생물학자, 철학자로 각기 독특하고도 중요한 학문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론을 펼쳐 그 내용들이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내가 동물과 다른 인간인 특별한 이유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복잡하고 체계적이라는 점이 또 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인간이 이렇게까지 스스로 발전하고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놀라울 뿐이다. 먼저, 신경생물학자인 장 디디에 뱅상은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동물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다만, 인간이 특별하고 진기한 동물이라는 점은 인정한다는 말이다. 즉 다른 동물들처럼 동물성을 지닌 인간이 다르게 분류되는 이유는 인간이 인간으로부터 양분을 얻고 사는 자아에 대한 타자이고, 언어를 이용해 말을 하며,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점이다. 이것이 그가 인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들이다. 다음으로 고인류학자인 파스칼 피크는 인류의 기원을 밝히면서 인간과 동물이 그렇게 완벽하게 분리되지는 않는다며 이를 증명하는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 삶의 내적 과정에 대한 믿음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포함되었다고 보든, 인간이라는 존재가 ‘기적’처럼 출현했다고 보든 인간은 분명한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가지는 것이라고 정의되어진 특징들이 모두 침팬지에게서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때(그들 역시 도구를 사용하고 사회적 행동을 하며 상징적인 의사소통을 한다) 우리가 이런 특징들 때문에 동물과 다르다고 여전히 주장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회의감이 들게 된다. 그에게 있어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은 많은 점에서 모순되는 일이며 우리 인간이 저지르는 비인간적인 행위들 앞에서만 동물성을 자각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즉, 인간은 그렇게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나볼 사람은 철학자인 미셸 세르이다. 그는 철학적인 사유를 통해 좀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시각으로 인간의 정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꽤 다양한 정의를 내린다. 즉,
인간은 자연의 갈래들로 한정된 부분집합이다. 인간은 자각할 수 없을 만큼 작은 파편들을 엄청난 체험시간에 연계시킨 존재다. 인간은 놀라우리만치 시간을 뛰어넘는 존재이고, 자가 진화의 길을 가는 생물이다.
이처럼 그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 문화적 관계 속에서 바라보며 그에 따른 다양한 인간의 정의를 내린다. 그가 말한 이론 중에서는 인간이 자가 진화의 길을 가는 생물이라는 부분이 내가 가장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우리 인간은 분명 자만하는 존재이지만 우리의 현 상황을 만들고 또 우리 자신의 변화에 맞서 싸우며 진화해가는 존재라는 점 때문이다.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한번 쯤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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