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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은 우리 시대 가장 기대할 만한 동화작가다. 권정생 선생님을 이어갈 만한 동화작가가 뚜렷하게 없는 상황에서 박기범은 동화와 점점 멀어져가는 게 아닌가 싶고, 김기정은 작품의 질이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최근에는 잠시 주춤한 반면, 김남중은 근육질의 동화작가답게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2009년에 동화책 2권(『살아 있었니』,『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발표했고, 2010년에 세 권의 동화책(『미소의 여왕』,『멋져 부러, 세발자전거』,『바람처럼 달렸다』)과 역사책 1권(『고조선 소년 우지기, 철기 공방을 지켜라』)을 냈으니 바야흐로 정점에 선 작가 같다. 왕성하게 작품을 쓰면서도 밥벌이의 중압에 눌려 서둘러 양산한 작품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게 하니 김남중은 정말 가장 기대하는 작가다.
작가가 이번 작품집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표제작이자 작품집 제일 앞에 실려 있는「살아 있었니」는 인간의 탐욕과 개발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북금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배경은 봄과 가을이 사라진 2058년의 서울. 얼음은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할 만큼 귀하고, 약수터 물은 엄청난 부자만 먹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지성이와 설아가 사는 동네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쓰는 냉동창고가 발견된다. 알고 보니 ‘냄새할아버지’가 멸종되어 가는 북극곰을 돌보고 있었던 것. 그렇지만 북극곰은 쇠창살에 갇혀 지내 괴물처럼 바뀌었다. 사람들은 북극곰의 멸종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다른 존재와 어울려 살려고 하지 않는 인간도 괴물이 아닐까.
두 번째 작품 「최후의 만찬」은 가정 폭력에 관해 다루고 있다. 폭력 아비와 매 맞는 어미, 그리고 숨죽이는 아이들. 얼핏 1970년대와 80년대 소설에 많이 등장한 진부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의외로 이 작품은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잘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탄탄한 구성에 정교한 인물 창조로부터 비롯한 것일 텐데 아버지 대접을 받기만 바라는 아버지, 묵묵히 일만 하면서 일탈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게 만드는 답답한 엄마, 음식점 전단지에 집착하는 동생, 그리고 폭력의 세월을 거치며 어느새 소년가장 같은 마음으로 훌쩍 자라는 나(정희)를 공감가게 그렸다.
「멈춰 버린 시계」는 쿠테타 세력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군인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아저씨’와 그때 비겁하게 행동한 아버지를 다루고 있다. 당시 주인공은 ‘사람을 때리는 군인, 개처럼 끌려가는 사람, 무릎 꿇은 아버지, 아버지의 눈물, 아버지의 거짓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비겁함을 용서받고 싶어 한 주인공은 38살의 아버지가 되어 부디 자식 세대에서는 시간이 정상적으로 가는 세계가 되기를 바란다.
「검정 고무신」은 명동에 있는 신발 가게 점원이 주인공이다. 가장 바쁘다는 새 학기 주말에 있었던 일을 다루고 있다. 중학생부터 대학생이 손님의 대부분인 가게에서 ‘나’는 최대한 빠르게 신발을 팔고 싶지만 그날의 손님은 그럴 수가 없다. 할아버지가 초등학생 여자애와 남자애를 데리고 왔으니 그럴 수밖에. 주인공은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적으로 대하지만 나중에 할아버지가 고맙다는 말을 한 뒤에 할아버지를 다시 생각한다. 그러면서 비로소 할아버지에게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주인공은 자본주의의 소비문화가 가하는 폭력에 갇혀 지낸 자신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성큼찔끔 성큼찔끔」은 애완견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고 있다. 애완견이 ‘작은 자전거만 한 맬러뮤트’인데다 다리를 저는 세탁소 아저씨가 골목에서 그 개를 운동시키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개를 운동시키지 못하게 하고, 세탁소 아저씨는 악착같이 개를 운동시킨다. 집단과 개인의 싸움이다 보니 세탁소 아저씨가 질 수밖에 없지만 완전 항복하지 않는 세탁소 아저씨 모습이 약자의 마지막 자존심만 같다.
「검은 뱀」은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폭력을 다루고 있다. 표제작과 일맥상통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뱀을 무서워하는 주인공 ‘나’(광현)와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 건우는 정미소에 사는 검은 뱀을 죽여 버린다. 그런데 죽인 줄 알았던 검은 뱀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때부터 광현은 악몽에 시달린다. 마치 내가 어려서 실제 겪은 듯 실감나게 그린 이 작품은 주인공이 작은 뱀을 살려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징그러운 뱀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것을,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와 같이 사건을 통해 한결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고 있으니 인물의 성숙이라는 측면에서는 「최후의 만찬」과 같은 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사건을 통해 성숙해지는 인물을 다룬 두 작품에 유독 공감이 많이 간다.
맨 앞 작품과 맨 뒤 작품 모두 동물에게 가하는 인간의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집은 에너지 문제, 가정 폭력 문제, 국가 폭력 문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 집단과 개인 사이의 싸움 문제, 생명경시사상 등 폭력의 여러 얼굴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지만 봄과 가을이 사라진 2058년의 서울을 그리고 있는「살아 있었니」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앞선 작품이고, 그러한 경향은 ‘작가의 말’이라고 할 수 있는 ‘입장 바꿔 생각해 봐요’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동화에서의 계몽성을 작품 속에 조금 더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할 수는 없을까. 우리 시대 가장 기대할 만한 동화작가라 더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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