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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현세자의 빈인 강빈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연이어 쏟아지고 있다. 왜? 그만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구중궁궐이 아닌 8년간의 청나라 볼모생활을 겪어낸 것만 해도 강빈은 그 어느 세자빈이나 왕비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밖에서 살아보고 넓은 세상을 보고 겪은 유일한 왕실여인이었다. 거기에 피도 눈물도 없었던 시아버지 인조에게 본인과 자식 죽고, 친정은 멸문지화를 당하는, 그 비극적인 삶은 그녀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아우라가 돋보인 것은 청나라 시절에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갖고, 자립심을 겸비한 인물이라는 점일 것이다. 매번 궁궐 안에서 왕이나 세자 뒤에서 권력다툼하고 친정가문을 끌어들이는 세자빈이나 중전, 후궁들 이야기만 보다가, 참신했다. 청나라에서 직접 사업을 벌일 정도로 이재에 밝고 수완도 좋고, 청나라와와 신경전에도 대처하며 정치력을 발휘한 것은 가문을 등에 업은 여인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온 여인. 일찍이 왕실에서는 볼 수 없는 자립적인 여인상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독보적이었던 것이다.
강빈은 백성과 멀 수 밖에 없었던 주자학, 공리공론을 일삼는 성리학의 모순을 지적하며,백성의 배를 채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용적인 정신에 능력을 갖췄기에 세자빈의 존재는 조선에 돌아와서 화근이 됐다. 청에 굴욕적으로 패배했음에도 여전히 소중화를 고집하고 있는 조선에서는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왕과 대신들은 강빈이 조선에 몰고올 변화의 바람을 두려워했고,청나라를 등에 업고 인조의 권좌를 노리지 않을까 경계하게 되는 존재로 낙인찍히고 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극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귀국한지 불과 석달만에 소현세자는 학질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 강빈과 그 자식들, 그리고 강빈의 친가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힘겹게 됐다. 인조는 강빈과 그 혈육들에게 비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조에게는 며느리와 손자가 아니라 정적으로 비춰진 것이었다. 인조는 며느리의 수완을 눈엣 가시처럼 여겼고, 효자였던 아들을 오랑캐 청나라를 높이 보게 꼬드긴 꼬리 아홉달린 여우쯤으로 취급했다. 인조의 눈에는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며느리였던 것이다.
'별궁의 노래'는 강빈이 주인공이 돼 서술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분위기가 격앙 혹은 고조됐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 예상을 뒤엎고 아주 차분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끝을 알고 있어서 내려놓은 것인지. 청나라에서 8년간의 볼모 생활 중 청나라에 시달려야 했고, 그곳에서 고생하는 백성들이 겪는 고초에 눈물을 삼키며 마음고생했던 소현세자와 강빈, 그런데 청나라에서의 고생은 어디까지나 새발의 피였다. 청나라 오랑캐보다도 강빈을 더욱 잔인하게 대했던 것은 꿈에서도 그리워했던 조선, 그리고 군주이자 사적으로는 시아버지인 인조였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 것인지. 오히려 조선이 그녀에게 지옥이 돼버리다니.
인조의 압박은 상상을 초월했다. 조소용을 저주한 배후라고 몰아가는가 하면, 수랏상에 오르는 전복에 독이 들어갔다고 며느리를 의심했다. 강빈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며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듯 하루하루 견뎌야 했고, 자신의 목숨보다도 자식과 어머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별궁의 노래' 후반부에 이르면 강빈은 인조를 능양군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백성을 버리고 세번이나 피난을 갔던 임금, 백성을 구하기는 커녕 늘 자신의 안위와 보좌에 애면글면 집착했던 정말 형편없은 임금이었으니. 그런 시아버지를 군주로 인정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백성의 처참한 삶을 직접 보고 들었던 강빈에게는 백성따윈 안중에도 없는 임금은 임금이라고 부를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이때쯤에는 더 이상 시아버지라 할 수 없을만큼 적대적인 관계로 돼버린 뒤였고, 더이상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왕실에서 비나 빈이 죽는 비극이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시아버지의 명에 죽음을 당하게 된 강빈은 그 존재 자체가 왕에게, 수구적인 조정에게는 제거해야 할 정적으로 인식됐다. 훗날 대원군과 민비처럼 치열하게 벌어졌던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혈투가 벌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왕이 세자빈을 증오하고 권좌를 지키는 데 급급해서 며느리 세자빈과 어린 세손까지 사사하고 유배를 보낸 일은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
내가 인조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데에는 그의 무능력, 무책임, 그리고 권력에 대한 집착에도 이유가 있지만 이렇게 자신의 혈육까지 추호의 망설임없이 제거하는 그 냉혈함과 비인간성에 질려서였다. 시아버지, 할아버지로서 어찌 그럴 수 있는건지. 사후 세계가 있다면 인조는 저 세상에서 아들내외와 손주들에게 고개나 들 수 있었을까. 입이 열 개라도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반정으로 왕이 된 이후 권력에 대한 집착은 상상 이상이었고,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여겨졌다. 아무리 봐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왕자리란 게 종신집권이니, 저렇게 돼먹지 않은 임금 만나면 백성만 죽어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가까운 혈육조차도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었으니..그는 자신의 권좌를 위협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별궁의 노래'는 청나라 시절 소현세자와 강빈의 생활, 또 당시 청나라 상황을 자세하게 담고 있어서, 청에서의 생활을 촘촘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포로로 잡혀온 조선 백성들을 돈을 지불하고 구출하는 것에서 백성에 대한 애정이나 경제적 능력을 읽을 수 있었다. 소현세자 부부가 청의 인물과 교류하고, 선교사들을 만나 실용적인 면을 배우려들면서 형제 간에는 갈등이 빚어졌다. 여전히 반청(反淸)에 사로잡혀 있던 봉림대군과 실용성과 반청, 중화주의로 노선이 갈리면ㄴ서 형제의 우애가 균열된 것은 물론이고, 소현세자 부부의 비극, 나아가 조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그 암울한 조짐이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던 셈이다.
강빈의 비극은 그녀 가족사의 비극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은 변화를 거부하며 우물안 개구리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것은 곧 조선이 세계사의 흐름과 동떨어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즉 조선의 어두운 미래와 운명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별궁의 노래'는 앞서 언급한 대로 비교적 차분하게 서술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 고사에 대한 인용이 과해서 굳이 이렇게 넣어야 했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중국 고사나 군더더기 내용을 정리하면 굳이 상,하 두권으로 할 필요가 없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도 그점을 인식했나 보다. 지금보니 상하 두권이 아닌 한 권으로 된 개정판이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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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항변 " 후대의 사가들이나 사람들이 우리 조선왕조의 역대왕 중에서 나를 가장 못난 사람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내치와 외치에 실패했고 민생을 도탄의 길로 빠트렸고 하다못해 혈육인 아들과 손자 그리고 며느리까지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았다는 점을 들어 나를 가장 못난 군주라고 평하는 것을 모를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나로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숙부인 광해를 권자에서 끌어내리고 보위에 오른 것은 다름 아닌 대의명분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연산을 내치고 보위에 오르신 중종과는 그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분은 신하들에 의해 반강제로 보위에 오르셨지만 난 적극적으로 보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영창대군의 사사나 인목대비의 폐모는 단지 하나의 작은 구실에 불과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름아닌 이나라 조선의 근간을 뒤흔든 오랑케 청국과의 외교적 문제였기 때문이다. 태조께서 조선을 창업하시면서 존명사대와 성리학을 조선의 근간으로 삼으셨고 그 전통은 유구히 흘러왔다. 지난 임진년 혈맹으로서 우리를 도운 명을 배신한다는 것은 조선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록 아들이자 세자인 소현과 강빈의 행동은 정말 적절치 못했다. 소현은 볼모시절부터 몸이 좋지못했다. 비록 독살설등이 나돌지만 나와는 전혀 무관하다. 또한 봉림에게 보위를 잇기 위해선 나로선 태종의 심정으로 며느리를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봉림은 내가 겪은 수모를 털어낼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소현세자빈 강빈의 변 " 내 남편이자 세자이신 소현이 정상적으로 보위를 잇어다면 이나라 조선의 운명은 180도로 바뀌었을거라고 후대의 사람들은 말한다. 물론 긍정적인 발전쪽으로 변했을 것이다는 말이다. 이점만은 누구보다 내가 자신한다. 난 세자와 함께 저들이 적대시 하는 청나라에서 8년동안 볼모생활을 했다. 말이 볼모생활이지 일종의 분조역활을 했던 것이다. 시아버지를 비롯한 조정이 대신들은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런 상태에세 나라경영은 파탄에 빠졌고 백성들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잊고 산지가 오래되었다. 손자병법에 나오듯이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유일하게 세자께서 그 점을 터득하고 청나라에 대한 연구를 하셨다. 비록 처음 세자께서도 꺼렸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결과이기도 하다. 세상은 도움도 안되는 한줌의 성리학이론에 좌지우지되는 시절이 지났다. 이제 국제적인 정세는 실리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청나라가 있었다. 이런 점을 모르고 시아버지와 조정대신들은 죽어가는 자식 불알잡기식으로 명에 의존하고 있었으니 나라꼴이 이렇게 되지 않는게 이상할 것이다. 세자께서 비록 평소에 몸이 허약하긴 하였어도 그리 허망하게 가실줄은 몰랐다. 또한 원손이 버젓이 있는 상황에서 차남이 대군을 세자로 앉힌 처사는 정말 법도에도 어긋나면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나를 자신을 독살할려고 했다는 말도 안돼는 죄명으로 사사한것 자체도 넌센스이다. 아마도 시아버지는 강박증에 시달렸을 것이다. 청에서 몇번 세자에게 보위를 양위해야 한다는 말이 그 자신을 그토록 매정한 사람으로 몰고 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야박한 것은 바로 봉림의 행동이다. 내가 사사되고 난뒤 그의 행동은 마치 자신에게 용상의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어찌 그리 매정하게 대할 수 있는가. 비록 세자와 정치적인 노선을 달리했더라도 혈육인 조카들을 죽음을 방관하고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권력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세자의 죽음, 나의 아들들의 죽음 그리고 나의 죽음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몇일밤낮을 지새워도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후대에까지 독살설들의 소문이 가라앉지 않는 것에 대해서 내가 여기서 가타부타할 수는 없다. 난 이나라 조선의 세자빈으로서 당당하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었고 그렇게 했다. 누굴 원망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우리 일가의 죽음으로 나의 조국인 조선이 반석에 올라가길 바랬을 뿐이다."
역사에 가정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가정에 매달리게 된다. 왜? 그 만큼 안타까움이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조선사을 통틀어 이러한 가정에 가장 오르내리는 인물이 정조와 소현세자일 것이다. <별궁의 노래>는 바로 그 중 한사람인 소현세자와 관련된 역사소설이다. 소현세자가 정상적으로 보위를 이었다면 조선은 분명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획기적인 변화는 없더라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개혁이 이루어 졌을 것이다. 일부 시각에서는 서인들이 대다수 집권하고 있는 정국에서 그 영향은 미비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성리학에 대한 절대적인 맹신에 충격을 주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별궁의 노래>는 이러한 조선의 격변기 시절에 몸소 볼모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은 소현세자의 입장인 아닌 세자빈인 강빈의 입장에서 풀어가는 소설이다. 바로 이점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역사는 군주와 사대부중심의 역사이었기에 여성에 대한 역사적 배려나 그 자취가 남아있지 않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들의 삶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태부족하다보니 수많은 억측을 낳게 마련이다. 물론 이 작품 역시 소설이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 되어 있는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동안 소현세자나 인조등의 시각에 초점을 마추었던 방식에서 탈피하여 과감히 여성인 강빈의 시작에서 그 시대상을 연출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또다른 특징은 강빈이 바라본 인조와 소현세자를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의 생각을 묘사하는 부분이 실감나고 더 재미있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여성이라는 관찰자가 바라보는 것이라 세밀하고 감정적인 표현들이 솔직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것 같다. 또한 당시 민초들의 삶과 청국에서 농업이나 무역에 관한 서술들이 흥미롭다.
분명 이 작품은 팩션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였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 되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통해서 역사적인 판단을 하겠다면 그 오산이다. 물론 독자들의 역사적인 판단은 별개의 것이지만 서두에 인조와 강비의 인터뷰에서 보았듯이 역사는 정반합이라는 절차에 의거하여 흘러가는 것이다. 역사를 재단할 때 항상 균형이 시각을 잃어서는 올바른 역사판단은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감정적인 대응은 더욱더 금물일 것이다. 우리가 소현세자나 인조에 대한 그동안의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오류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감정적인 시각일 것이다. 작가는 그래서 소설의 말미에서 밣혔듯이 강빈은 조선의 세자빈이었고 그런 세자빈의 위치에서 당당히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우리의 감정적인 시각에 대한 반론을 던져주는 것은 아닐까 한다.
그동안 인조나 소현세자 그리고 봉림대군(효종)에게 초점이 집중되었던 당시의 시대상을 여성 강빈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가치는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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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소현세자를 만나본적이 있다. 어쩌면 역사상 제일 불운을 타고 난 세자인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었다. 청의 침입에 의해 남한산성으로, 볼모가 되어 중국 심양에서 8년이란 세월을 타국에서 힘들게 지내야 했지만 그런 댓가도 없이 아버지인 인종의 멸시에 의해 사사되었다는 말이 있는 소현세자 그동안 역사속의 내용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임금이나 주로 역사를 이꿀어 가는 남성위주로 이야기가 되어 있는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남성들 뒤에는 항상 어떤 여성들이 지탱하고 있느냐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음을 볼수 있다. 그래서 난 여인열전을 좋아 한다.
심적으로 많은 고통이 따랐을 소현세자의 뒤에도 강단하게 버티고 있는 세자빈 강씨를 볼수 있다. 병약하기만 한 뒤에 버티고 있는 세자빈 강씨의 눈으로 보는 세상 이야기는 남자들의 잇속과는 다른 섬세한 진행상황들을 볼수 있다. 궁궐의 안에 있으면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편안한 생활만 누렸을 여느 비와는 다른 현실 때문에 알아가는 정치와 경제문제들을 여인이지만 현명하고 지혜롭게 처리해 나감으로써 소현 세자가 당당하게 볼모로 간 타국생활을 지탱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어느누가 궁중의 여인으로서 상단을 꾸리고 농사를 짓고 하는 일을 했었을까? 하지만 세자빈 강씨에게는 그런일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청에 복수를 하기위해 자신들의 힘을 기르고 그들에게 방조하게 만드는 것 또한 하나의 전술인것을..... 여인이지만 누구보다 여걸로 우러러 보게 만든다.
우린 보통 자신의 잘못됐다는것을 쉬 인정하지 못한다.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의 신하들 또한 그런 잘못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와 다른, 자신의 잇속을 위해서만 생활을 강구했다. 서로의 배워야 할부분은 아무리 오랑캐라고 치부하더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하지만 그렇지 못한 조선의 양반들은 언제나 분통터트리게 한다. 만약 세자빈 같은 분이 우리의 국모가 되어 소현세자와 함께 이끌어 나갔더라면 우리역사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무능한 임금인 인종때문에 나라의 안밖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광해군이 천륜을 어기고 영창대군을 사사하고 인목대비를 폐위했다는 것으로 인조반종의 대의 명분을 찾지만 그런 인종이야 말로 더 지독한 천륜을 방해하는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아픈 아머니와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 또한 못찾아보게 한 인종 나라의 성쇄는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좌우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의 삶이 안타깝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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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의 노래 上,下
인조반정
볼모의 생활
비익연리
왕의 여자
부강한 나라의 꿈
조선의 세자빈
별궁의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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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의 노래 上 글의 시작은 사하보로부터 이었다. 세자빈 강 씨가 비가 그친 봄에 둔전을 하는 사하보를 둘러보는 장면에서 시작하였다. 봄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고, 희망의 상징 언어이다. 막막했던 오래 버려두었던 땅을 일구었다. 모두 육백일 갈이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하루갈이는 소를 데리고 한나절 동안 갈 수 있는 경지를 말하고 약 1천 5백 평에서 2천 평이 백오십일갈이로 보면 이십오만 평 안팎이나 되는 농장 규모다. 여기서 나는 소출로 조선에 새로운 희망을 일궈나갔던 민회빈 강 씨의 이야기를 담은 별궁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서기로 보면 17세기, 우리 민족은 큰 시련에 직면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대별되는 이 시기 조선은 격변을 맞이하였고 동아시아는 새로운 변혁의 기운으로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혁신의 바람으로 격동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 태풍의 눈에 조선 제 16대 임금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와 그 빈 민 회빈 강 씨가 있었다. 그들의 슬펐고 아쉬웠던 이야기가 김용상님의 붓끝에서 두 권의 아담한 소설로 엮여졌고 이것을 읽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우리 민족사 최대의 전란으로 이 중 승리로 평가하는 임진왜란은 많은 조명을 받았던 반면, 치욕적인 항복을 했던 병자호란은 의도적인지 잘 연구되지 않았다. 최근에야 소현세자의 개혁의 꿈을 다룬 여러 서적들이 나왔을 따름이다. 실패했기에 좌절되었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외면되었다고 생각하기엔, 지나가 버린 일이라고 해 버리기엔 그 꿈이 너무 컸고 그 좌절 또한 너무 깊지 않았을까? 다행히 소설의 첫 부분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처음 책을 읽기위해 넘겼을 때 병자호란의 그 치욕적인 사건부터 시작되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환국(還國)했을 때 처절한 통한의 사적事跡부터 시작하는 건 아닐 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삼전도의 굴욕 후 청나라 수도 심양으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 봉림대군 내외와 여러 신하들은 처음에 굉장히 많은 고생을 했다.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왕세자를 따뜻하게 대해줄 청도 아니었고,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치렀던 조선으로서는 왕세자 일행을 지원해주기엔 여력도 의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심양 밖 황무지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개간하기 시작하면서 세자빈 강 씨의 진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상권에서는 병자호란의 여러 모습들이 스치듯 지나갔고, 강화도가 점령되는 모습도 세자빈의 눈으로 그려주었다. 더불어 청나라 내부 사정과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조선 조정, 더 정확히는 인조와의 갈등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비극의 씨앗들의 소설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상권은 명나라의 멸망과 세자빈 강씨의 고뇌에 찬 독백으로 마무리 지었다. 동아시아 격동의 현장에서 고뇌하고 행동했던 세자빈 강씨의 다음 행보는 하권을 통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는 수밖에는 없을 거 같다. 치밀한 고증과 재미난 소설적 상상력으로 상권을 흥민 진진하게 읽었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정말 그랬을 거야 맞아 맞아 하는 고갯짓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어서 하권을 읽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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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 속 사건을 보면서 그 안에서의 교훈을 얻고자 '만약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하곤한다. 예를 들자면,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하지않고 서양문물을 개방하여 개혁했더라면 우리는 일제 식민지 통치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 또 조선후기에 실학의 발달과 더불어 개혁군주였던 정조가 조금 더 오랫동안 살아서 나라안의 개혁의 했더라면...등등으로 가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하겠다라는 교훈을 얻는다. 이 책은 역사소설인데, 앞의 '만약 ...했더라면'의 가정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별궁이라 함은 궁궐안의 어떤 조그맣게 딸린 궁으로 주로 왕실의 여인들이 머무는 곳 정도로 생각이 되는데, 어떤 한이 담긴 여인의 노래일까? 우리는 역사 속에서 희미한 소현세자라는 분을 기억할 것이다. 제 아버지가 내던진 벼루에 사망하신 분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단지 그 뿐이다. 왜냐하면 이 분은 왕위에 오르시지 못하여 자신이 이루고자 한 나라를 건설하지 못하시고 일찍 운명하신 비운의 왕자였기 때문이다. 그 비운의 왕자의 부인...민회빈...우리에게 세자빈강씨로 익숙한 이 한 많은 여인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 분은 철저히 승자 위주의 기록인 역사 속에서 세자빈이었다가 역적으로 몰려 역강(逆姜)이라고도 불리고 나중엔 다시 복위되시어 민회빈이라고 불리셨다. 인조반정 이후 사대부들의 파를 나누어 정치를 하는 파벌정치가 성행하였고 특히 서인이라는 파벌이 우세를 보이면서 성리학적인 질서를 더욱 공고히 다져나갔다. 민생안정과는 거리가 먼 사상이 나라이념이었던 지라 성리학이라는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고리타분한 사상때문에 조선은 자신보다 아래인, 오랑캐 취급을 하는 일본과 청나라의 발전 앞에서 점점 도태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날로 발전해가는 그들을 우습게 여겼다. '친명배금'.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백성들의 삶을 외면하던 기득권층은 청나라라는 중원의 새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재조지은'이라고 여기는 즉 망해가는 명나라만을 섬기며 우월의식을 뽐내다 청나라에게 크게 된통 당한 사건이 '병자호란, 정묘호란'이다. 이 두차례의 호란으로 소현세자, 봉림대군 내외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약 8년간 넓고 드넓은 이역만리 땅에서 생활을 한다. 조선이라는 우물안 개구리들이 타의든 자의든 우물 밖에 나와 드넓은 중원의 땅으로 왔다. 책에서도 그랬고 우리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듯이,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보아도 자기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각기 다른 관점들이있다. 이 차이로 좁게는 한 사람의 비극, 크게는 조선의 비극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사건의 연속들이다. 소현과 봉림..두 개구리는 똑같이 서양문물을보고 발전한 청나라를 보게된다. 한 사람은 민생안정과 부국강병을 하게끔 도와줄만한 과학기술과 서양사상들을 높이샀으며 또 한사람은 오랑캐라고 여기던 청인들의 문물을 우습게 보며 조선에게 수치를 준 그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고있다. 소현에게 힘을 실어주고 지지해준 사람이 바로 세자빈강씨다. 과거 왕실의 여인으로 조금 별나긴 했지만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현명한 남편을 내조하는 현명한 부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다른 개구리, 봉림과 우물 안 조선의 기득권층은 달리 반갑게 여기지 않았다. 나선다고 설친다고 그렇게만 보였다. 그들의 눈에는. 우물밖 청나라에서 그들은 어려운 생활을 하지만 결국 볼모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우물안으로 들어온다. 소현이 그동안 보고배운 것을 통해 이상을 향해 나아갔었어야하는데 하늘은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시련과 또 시련 그리고 죽음.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그들은 설 곳이 없었다. 이분들이 왕위에 올랐다면 조선이 앞서 발전하는 초석을 마련하셨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역사 이야기안에서 한번쯤 익히 들어봤던 이야기다. 세자빈강씨의 아픔이 잘 녹아져있다. 과거 조선의 성리학적으로 그분을 판단할것인가, 아니면 현대의 자유로운 시대에서 그분을 판단할 것인가...그건 우리의 몫이다. 하지만 그 답답한 사상보다는 지금의 열린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는게 그분에 대한 마지막 연민의 눈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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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초의 한반도 주변의 국제 정세를 보면 여진족이 일으킨 청나라에 의해 맹주였던 명나라가 기울어 가고 있는 형국이였다. 그런데 이 두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잘 펼치고 있던 광해군을 몰아내고 조선의 16대 왕이 된 인조는 이러한 변화 앞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친명사대의 명분을 내세우며 청나라를 배척하다 병자호란이라는 씻을 수 없는 화를 당하고 만다. 이 댓가로 한나라의 왕이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찧는 역사상 가장 수모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게 되고 소현세자와 세자빈인 강씨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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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리한 자의 이야기라는 말이 있듯이 그 동안 나에게 있어 역사란 권력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 너머에 숨어있는 비극적인 이야기들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쉽게 잊혀져 갔거나 아니면 아예 전달되지 못한채 쓸쓸히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가끔 역사소설 등을 통해 이처럼 잊혀져 간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매우 뜻깊고 값진 시간이다. 물론 소설이란 역사라는 fact 이외에 상당 부분을 허구적인 스토리에 기대고 있는 작품이지만 소설은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상상력과 시각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김용상의 역사소설 "별궁의 노래"는 저 멀리 청나라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고 다시 돌아온 조국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던 슬픈 왕세자 소현세자와 소현세자빈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책이다. 청나라로 끌려가 볼모라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혜를 발휘해 농사를 짓고 조선에서 들여온 물품으로 상거래를 하여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수하들을 먹여살리고 조선인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소현세자빈 ....... 그러나 고국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눈길은 곱지가 않고 오히려 칭찬이 아닌 비난이 쏟아진다. 오랑캐에 빌붙고 조국을 배신했다는 억울한 누명 앞에 소현세자와 세자빈의 인생은 풍전등화와도 같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를 이간질시키며 교묘하게 권력에 대한 야망을 불태우는 조소용, 그녀의 이간질 앞에서 임금의 분노는 더욱 커져가고 소현세자와 소현세자빈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 권력이 무엇이길래 부자 사이가 이리 멀어질 수도 있는지,...... 책을 읽는 내내 슬픈 마음이 떠날 길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시대를 앞서간 한 여성의, 그래서 더욱 슬펐던 삶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저자의 섬세한 필력과 마치 소현세자빈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주는 것 같은 서술에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으며,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을 품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당당하고 강인한 여성이었던 소현세자빈이 그 당시 사대부들에게나 임금에게 이해받지 못했기에 그녀의 노력과 희생은 결국 부정한 것을 치부되고 말았지만 시간이 흘러서도 그녀의 그 열정은 잊혀지지 않고 한 편의 작품으로 피어났다. 그녀가 원했던 조선의 개혁에 대한 의지는 스러지지 않고 후세에 전달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삶은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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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Alpha Girl)이 인기다. 공부나 운동, 혹은 모든 분야에서 리더십있고 남자를 능가하는 능력을 가진 여성들을 일컬어 알파걸이라 부른다. 이런 알파걸들의 활약이 우리 사회 전분야에 걸쳐 두드러진다. 피터 드러커와 함께 현대 경영학을 이끄는 톰 피터스는 오래전 이런 알파걸들의 활약을 예측하기도 했다. '리더십과 구매력을 보유한 여성의 힘은 인터넷보다도 강력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살아있는 파워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공무원 합격자수나 각종 국가고시에서 여성들의 합격률이 높아지고 사회 각분야에서 알파걸들의활약이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 역사속에서 찾을 수 있는 알파걸들은 누가 있을까? 몇년전 드라마로 만났던 [주몽]에서 고구려의 건국과 향후 백제의 건국에 커다란 공을 세웠던 여걸 소서노가 알파걸의 시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또 다른 드라마로 사랑받고 있는 고려의 천추태후 역시 여성 파워의 역사를 이어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조선시대로 넘어오면 알파걸의 계보를 잇는 바로 이 여성이 있다. 소현세자빈인 민회빈 강씨가 그 주인공이다. 17세기 가파르고 힘겨운 삶의 역경 속에서도 시대를 앞서나간 개혁가 민회빈 강씨의 삶을 이제 그려보자.
<별궁의 노래>는 알파걸의 계보를 잇는 소현세자빈 강씨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17세기 조선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게 굴욕적인 패배의 쓴잔을 들게되고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드는 시기였다. 전란의 와중에 백성과 궁을 버리고 도망쳤던 16대 임금 인조, 그의 장자이자 17대 왕인 효종의 형이었던 소현세자, 그리고 소현세자의 아내 민회빈 강씨의 보이지않는 암투가 그려진다. 호란의 결과로 인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게된 소현세자와 세자빈, 8년이란 시간동안 심양과 북경에서의 고단한 볼모생활은 새로운 문명과 만나는 시간으로 극복해낸다. 친정아버지의 죽음, 노예문제 해결, 농사를 짖고 무역을 하기도 했던 세자와 세자빈의 눈물겨운 고난의 길과 삶과의 사투가 책속 가득히 그려진다.
전란의 패배에 따른 굴욕적인 볼모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바로 실사구지(實事求是)의 실용정신이 아니었을까?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고 과학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해 어려움에 빠지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리고 굴욕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그들에게 있지 않았을까? 볼모생활에서 돌아온지 3개월만에 죽음을 맞이한 소현세자와 인조의 미움을 받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세자빈 강씨! 이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저자의 실증적 고증과 즐거운 상상력을 만나 행복한 재미를 선물한다.
산양자리님이라는 분의 이 책에 대한 짧은 평을 보게됐다. 저자인 김용상의 아내라고 자신을 밝히신 산양자리님은 저자의 곁에서, 저자가 조선왕조실록과 수많은 자료들을 정리하고 고증하고 다듬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창작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런 과정인지 다시한번 느꼈다고 한다. 이 붉은색과 파란색의 손에 잡히는 예쁜 두권의 책을 만들어내기까지 저자의 노력이 어떠했을지 산양자리님의 말이 아니고서도 책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저자의 그 기나긴 고통은 이제 독자들에게는 기나긴 여운과 즐거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격변의 시기, 굴욕적인 삶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의 여걸, 알파걸, 소현세자빈 강씨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숙부인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권을 잡은 인조이기에 어쩌면 자신의 주변인물들은 모두 그의 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성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세자빈 강씨의 이런 행보는 인조에게 충분히 적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었으리라. 힘겨운 볼모 생활속을 조국을 위한 기회로 만들려고 했던 개혁가 소현세자빈 강씨의 안타까운 삶이 펜끝의 촉촉함으로 되살아난다.
<별궁의 노래> 이 책이 조금더 빨리 나왔더라면 얼마전 확정된 오만원권 지폐의 주인공이 그녀가 되지 않았을까? 현모양처형의 전형이란 논란이 되기도 했던 신사임당 보다 조선의 개혁가이자 알파걸인 소현세자빈 강씨가 그 주인공이 되어도 좋았을것이란 생각도 든다. 창작이라는 고통스런 과정속에서 새롭게 재조명 되고 재탄생한 소현세자빈 강씨의 삶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알파걸의 멋진 발걸음을 느껴본다. 아직까지도 별궁에서 들려오는 안타깝고 구성진 한 여인의 노랫소리가 들리는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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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훈민정음의 비밀'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세자빈 봉씨 살인사건'이란 부제가 있는 그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별궁의 노래' 표지를 보면서 바로 그 기억이 떠오름과 함께 '세자빈 강씨'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세자빈 강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책은 살짝 부정적으로 강씨를 해석하고 있었다. 물론 인조와 서인측의 입장과 소현세자, 강씨의 입장에서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다 보니, 내 입장에선 기존의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가 부정적으로 묘사되었다는 느낌이 강했으리라~ 내가 세자빈 강씨를 접한 것은 가장 최근의 일이다. 그녀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있으면서 소극적이기보다는 '아녀자'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농업, 무역에서 어느정도 활약을 하면서 인조에게는 못된 며느리, 불충한 신하로 낙인 찍혔다는 정도였다.
이 책 '별궁의 노래'를 세자빈 강씨의 회고록 같은 느낌을 가졌다. '나는'이라는 주체가 바로 세자빈 강씨이면서 청나라 심양관의 생활, 조선으로의 일시 귀국, 무역업과 농사일, 소현세자와의 관계 등등에서 자기 스스로 자기의 입장을 대변하고, 주장하듯 전개되고 있다. 조선에 돌아와서, 소현세자가 귀국 후, 두 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으면서 세자빈 강씨에게 찾은 불운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더욱더 자신을 대변하듯 느껴진 것일까? 볼모생활의 어려움, 봉림대군과의 갈등 그리고 농사를 짓게 된 과정, 무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 수진과의 만남, 정부인 이윤선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들의 이야기와 함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일시 귀국의 과정,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가 '별궁의 노래 上'에 펼쳐진다. '친명배청'의 주류 속에서 당면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갖은 노력들이 책 속에 녹아있다. 강씨의 어린 시절 성품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내재되어 있던 본성을 깨닫고, 진취적인 삶, 개방적이고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속에서 아내, 엄마로서의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다. '조선 최초의 여성외교관'이란 타이틀이 무색하지가 않다. 세자빈 강씨와 소현세자가 볼모로 생활하였다지만 한편으로 오늘날의 '대사관'과 같은 역할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이후의 일반 백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환황녀'라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도 노예가 된 조선인의 삶 그리고 그들을 구하기 위한 '속환' 문제는 예상하지도 못했다. 가장 기억에 나는 것 중에 하나가 압록강을 건너 인삼을 훔치다 잡힌 조선인 서른여섯 명을 구출하는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면서 전체적인 심양생활의 모습이 그려졌다.
조소용과의 갈등이 살짝 엿보이는데, 下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조소용과의 사소한 일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미워하고 대립하게 되는지 그리고 북경에서의 생활, 그리고 귀국 후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자뭇 기대되고 설렌다.
역사에 '만약?'을 얘기하는 것자체가 모순이지만 끊임없이 재해석하면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역사서, 역사소설를 읽는 남다른 재미가 아닐까 한다. 17세기 조선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더 소현세자의 죽음이 아쉬움만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리고 책을 통해, 세자빈 강씨의 강인함과 함께 인조와 사대부와 맞서 싸우는 그녀의 모습, 그러면서도 한계를 느끼면 울부짓는 모습이 생생하다.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며 움츠리기보다는 거침없이 적극적인 자세로 상황을 살피고 지혜를 짜내는 그녀의 용기있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