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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항변 " 후대의 사가들이나 사람들이 우리 조선왕조의 역대왕 중에서 나를 가장 못난 사람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내치와 외치에 실패했고 민생을 도탄의 길로 빠트렸고 하다못해 혈육인 아들과 손자 그리고 며느리까지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았다는 점을 들어 나를 가장 못난 군주라고 평하는 것을 모를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나로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숙부인 광해를 권자에서 끌어내리고 보위에 오른 것은 다름 아닌 대의명분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연산을 내치고 보위에 오르신 중종과는 그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분은 신하들에 의해 반강제로 보위에 오르셨지만 난 적극적으로 보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영창대군의 사사나 인목대비의 폐모는 단지 하나의 작은 구실에 불과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름아닌 이나라 조선의 근간을 뒤흔든 오랑케 청국과의 외교적 문제였기 때문이다. 태조께서 조선을 창업하시면서 존명사대와 성리학을 조선의 근간으로 삼으셨고 그 전통은 유구히 흘러왔다. 지난 임진년 혈맹으로서 우리를 도운 명을 배신한다는 것은 조선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록 아들이자 세자인 소현과 강빈의 행동은 정말 적절치 못했다. 소현은 볼모시절부터 몸이 좋지못했다. 비록 독살설등이 나돌지만 나와는 전혀 무관하다. 또한 봉림에게 보위를 잇기 위해선 나로선 태종의 심정으로 며느리를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봉림은 내가 겪은 수모를 털어낼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소현세자빈 강빈의 변 " 내 남편이자 세자이신 소현이 정상적으로 보위를 잇어다면 이나라 조선의 운명은 180도로 바뀌었을거라고 후대의 사람들은 말한다. 물론 긍정적인 발전쪽으로 변했을 것이다는 말이다. 이점만은 누구보다 내가 자신한다. 난 세자와 함께 저들이 적대시 하는 청나라에서 8년동안 볼모생활을 했다. 말이 볼모생활이지 일종의 분조역활을 했던 것이다. 시아버지를 비롯한 조정이 대신들은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런 상태에세 나라경영은 파탄에 빠졌고 백성들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잊고 산지가 오래되었다. 손자병법에 나오듯이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유일하게 세자께서 그 점을 터득하고 청나라에 대한 연구를 하셨다. 비록 처음 세자께서도 꺼렸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결과이기도 하다. 세상은 도움도 안되는 한줌의 성리학이론에 좌지우지되는 시절이 지났다. 이제 국제적인 정세는 실리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청나라가 있었다. 이런 점을 모르고 시아버지와 조정대신들은 죽어가는 자식 불알잡기식으로 명에 의존하고 있었으니 나라꼴이 이렇게 되지 않는게 이상할 것이다. 세자께서 비록 평소에 몸이 허약하긴 하였어도 그리 허망하게 가실줄은 몰랐다. 또한 원손이 버젓이 있는 상황에서 차남이 대군을 세자로 앉힌 처사는 정말 법도에도 어긋나면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나를 자신을 독살할려고 했다는 말도 안돼는 죄명으로 사사한것 자체도 넌센스이다. 아마도 시아버지는 강박증에 시달렸을 것이다. 청에서 몇번 세자에게 보위를 양위해야 한다는 말이 그 자신을 그토록 매정한 사람으로 몰고 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야박한 것은 바로 봉림의 행동이다. 내가 사사되고 난뒤 그의 행동은 마치 자신에게 용상의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어찌 그리 매정하게 대할 수 있는가. 비록 세자와 정치적인 노선을 달리했더라도 혈육인 조카들을 죽음을 방관하고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권력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세자의 죽음, 나의 아들들의 죽음 그리고 나의 죽음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몇일밤낮을 지새워도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후대에까지 독살설들의 소문이 가라앉지 않는 것에 대해서 내가 여기서 가타부타할 수는 없다. 난 이나라 조선의 세자빈으로서 당당하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었고 그렇게 했다. 누굴 원망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우리 일가의 죽음으로 나의 조국인 조선이 반석에 올라가길 바랬을 뿐이다."
역사에 가정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가정에 매달리게 된다. 왜? 그 만큼 안타까움이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조선사을 통틀어 이러한 가정에 가장 오르내리는 인물이 정조와 소현세자일 것이다. <별궁의 노래>는 바로 그 중 한사람인 소현세자와 관련된 역사소설이다. 소현세자가 정상적으로 보위를 이었다면 조선은 분명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획기적인 변화는 없더라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개혁이 이루어 졌을 것이다. 일부 시각에서는 서인들이 대다수 집권하고 있는 정국에서 그 영향은 미비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성리학에 대한 절대적인 맹신에 충격을 주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별궁의 노래>는 이러한 조선의 격변기 시절에 몸소 볼모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은 소현세자의 입장인 아닌 세자빈인 강빈의 입장에서 풀어가는 소설이다. 바로 이점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역사는 군주와 사대부중심의 역사이었기에 여성에 대한 역사적 배려나 그 자취가 남아있지 않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들의 삶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태부족하다보니 수많은 억측을 낳게 마련이다. 물론 이 작품 역시 소설이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 되어 있는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동안 소현세자나 인조등의 시각에 초점을 마추었던 방식에서 탈피하여 과감히 여성인 강빈의 시작에서 그 시대상을 연출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또다른 특징은 강빈이 바라본 인조와 소현세자를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의 생각을 묘사하는 부분이 실감나고 더 재미있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여성이라는 관찰자가 바라보는 것이라 세밀하고 감정적인 표현들이 솔직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것 같다. 또한 당시 민초들의 삶과 청국에서 농업이나 무역에 관한 서술들이 흥미롭다.
분명 이 작품은 팩션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였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 되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통해서 역사적인 판단을 하겠다면 그 오산이다. 물론 독자들의 역사적인 판단은 별개의 것이지만 서두에 인조와 강비의 인터뷰에서 보았듯이 역사는 정반합이라는 절차에 의거하여 흘러가는 것이다. 역사를 재단할 때 항상 균형이 시각을 잃어서는 올바른 역사판단은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감정적인 대응은 더욱더 금물일 것이다. 우리가 소현세자나 인조에 대한 그동안의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오류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감정적인 시각일 것이다. 작가는 그래서 소설의 말미에서 밣혔듯이 강빈은 조선의 세자빈이었고 그런 세자빈의 위치에서 당당히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우리의 감정적인 시각에 대한 반론을 던져주는 것은 아닐까 한다.
그동안 인조나 소현세자 그리고 봉림대군(효종)에게 초점이 집중되었던 당시의 시대상을 여성 강빈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가치는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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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의 노래上에 이어 下를 연달아 읽어 갔다. 심양에서의 생활 7년째! 청에서 준 농토에 농사를 짓고 상업을 하며 살림살이를 꾸려 나갔고, 어렵게 번돈으로 백성들을 환속시켰다. 청과 명의 전쟁이 청의 승리로 끝나며 청은 북경으로 수도를 이전했기에 그것을 따라 가야했다. 농사 짓는 농민들과 관리자를 남겨 둔채로~ 자금성의 본전 태화전에 들어가려면 성문인 정양문에서 태청문, 천안문, 단문, 오봉문, 태화문을등 모두 다섯개의 중문을 거쳐야 한다. (p.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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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의 노래 -하-비극의 역사 최근세의 조선왕조 최대의 비극을 흔히들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사건인 임오화변이라고 한다. 물론 그 말도 맞지만 숨어있었던 또 하나의 비극은 바로 인조와 소현세자 일가 사이에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이지 않을까? 흥미진진하게 읽은 별궁의 노래의 말미에는 소현세자와 세자빈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뒷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결론으로는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다하고, 세자빈은 역모를 도모했다 해서 사사당하고 그 주변 인물들 역시 죽음을 당하고, 소현세자의 세 아들들은 인조의 손자이고 적통 왕위계승자들임에도 원인모를 죽음을 당했다. 대신해 왕위에 오른 봉림대군은 효종으로 평생 북벌만 준비하다 속절없이 죽었다. 효종 스스로의 정통성 문제가 얽혀 있기에 당대에는 그 언급조차 금지되었고, 비명에 간 세자빈과 그 아들들에 대한 신원은 후대로 넘겨질 수밖에 없었다(소현세자의 막내아들 경안군 석견은 현종 6년까지 살아있었기 때문에 신원이 이루어졌을 때 효종과 그 뒤 임금들의 정통성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조선후대 유명한 예송논쟁은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불거진 것이다.). 소현세자 빈의 위호를 회복한 것은 사약을 마시고 숨을 거둔지 이른 두해만인 숙종 44년 무술년이었다. 이 슬픈 비극의 가족사는 조선 후기의 정치사를 파란으로 몰고 갔었고 결국엔 우리 민족의 역사의 방향을 크게 왜곡되게 만들었다. 역사에 정말 ‘만약에’이라는 게 없지만, 이런 비극의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더 이른 시기에 서양과 문물교류를 했을 것이고 여장부 강빈을 통해서 여권신장도 선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까 하는 바람이다. 이 바람이 크면 클수록 가슴의 여백은 더 커져 버린다. 집권욕에만 눈에 멀어 대세를 망쳐버린 임금과 그를 둘러싼 신료들의 냉대와 의심에 시달린 끝에 험한 이역만리에서 볼모생활을 마치고 귀국한지 두 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소현세자. 이 부분을 소설에서는 상당부분을 할애하면서 한서리고 피 맺힌 음성으로 들려주고 있다. 이것은 뒤에 민회빈 자신이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장면과 배치해 보면 좋을 거 같다.(“문득 좀 엉뚱하긴 하지만 이 아름다운 날 죽게 돼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255쪽 봄꽃을 바라보면서 사약을 앞에든 민회빈 강씨의 소회부분) 이어 벌어지는 소현세자빈 일가의 비극은 조선 최초의 여성 외교관이자 시대를 앞서 준비하고 있던 개혁가 민회빈 강씨의 꿈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꿈이 너무도 찬연하였고 선홍빛 핏빛처럼 눈앞에 선연했기에 서릿발 칼날 같은 운명의 장난은 너무나 가슴 저리게 좌절의 아픈 역사를 빚어내고 말았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은 대강의 내용을 알기 때문에 그 결말은 크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창작하여도 그 결말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결말은 비슷하기에. 중요한 것은 그 과정과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안겨 주는 교훈과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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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의 노래 上'을 읽고 곧장 下권을 읽기 시작하였다. 은근히 상권에서 이야기하던 조 소용과 세자빈 강씨의 갈등의 내막이 드러날테고, 북경 생활과 영구 귀국하면서 소현세자가 두 달만에 숨지게 되는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감에 들떴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소현세자의 죽음과 그 후의 세자빈 강씨의 죽음)들에 대해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갈지 궁금증에 단숨에 읽어버렸다.
첫 차례로 '조 소용'과 인조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그 속에서 조 소용과 세자빈 강씨가 사소한 계기로 깊어진 갈등의 원인을 이야기하면서 점점 옹골져 가는 그들의 갈등 양상이 전개된다. 조 소용의 간계로 인조의 무자비함과 무능함이 두각되면서 계속 인조를 머리 속으로 그려보았다. 나에게 인조의 모습은 '남한산성(김훈)'을 통해 형성되었다. 남한산성 안에서 무기력한 임금의 모습과 함께 근엄하게 자리했던 그 후덕(?)한 모습은 사라지고, 여자의 치마폭 속에서 늙고 추레한 모습의 인조가 그려져서 당혹스러웠다. 그러면서 별궁의 노래 속 세자빈 강씨의 이야기에 인조는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이야기할까? 혼자서 상상하며 그려보았다. 어디선가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귀기울여도 보았다.
세자빈 강씨와 소현세자의 짧은 북경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북경에서의 생활과 그리고 서양 신부 '아담 샬'과의 교우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소현세자가 청이 북경을 삽 시간에 무혈입성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서양 신부와의 교우를 통해 좀 더 개방적이고 진취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세자빈 강씨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8여 년의 볼모생활이 끝나고, 영구 귀국하게 되는 과정과 함께 냉랭한 인조의 태도에 걱정하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귀국 과정의 냉랭함, 귀국 후의 생활이 처참하다 싶게 그려진다. 구성 전개에 있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소현세자가 죽었다. 물론 귀국 후 2달의 시간 자체도 책의 구성상에서도 짧을 테지만, 갑작스런 죽음을 알면서도 새삼스레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어차피 세자빈 강씨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녀의 그 후의 삶의 이야기가 있기에 당연한 전개였지만 '허망한 그의 죽음'이 정말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불운한 삶이 전개되면서도 명성황후의 '나는 조선의 국모다'처럼 '난 조선의 세자빈이다!' 외치는 당당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이 불거지고 왠지 모르게 내 속에서도 무언가가 샘솟는 듯하였다.
또한 환황녀의 또다른 삶, 수진에 의해 무사가 된 '정이'와 '보성댁'의 이야기, 그리고 귀국 과정에서 옥에 갇힌 '김상헌'과 '최명길'의 만남이 흥미로웠다.
개혁을 꿈꿨던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의 삶이 담담하면서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 속에서 인조와 조 소용, 사대부(서인세력 김자점, 김류 등)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그들의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며 적극적인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다. 자기가 어쩔 수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 나의 옹졸함과 비겁함을 반성하면서 그녀의 당차고 용기있는 모습을 내 삶 속으로 가져오고 싶다.
또다른 세자빈 강씨와 소현세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언제가 '세자빈 강씨'를 소재로 한 책을 본 기억이 있는데 한 번 찾아보았다. 그 중에 '강빈(박정애)'과 '소현세자(이정근)'란 책이 궁금해진다. 또 어떤 이야기,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은근히 그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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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상 역사소설 / 생각의 나무 刊 조선 왕조에서 왕이 되지못한 세자 중에서도 제일 안된 경우에 해당하는 소현세자빈 조선조 최악의 임금이며 무능하고 정쟁에만 뛰어난 냉혹한 군주를 시아버지로 모신 그 당시의 천하관의 구심점인 청 제국의 복판에서 시장적응과 농사를 경영하며 이익 비록 소설의 영역에 머물겠지만 철저한 고증에 의한 역사적 사실과 픽션의 세계를 잘 직관과 의지의 여인, 강빈이 나약과 순종을 미덕으로 강요 당하는 시대에 더구나 여염 다음 수순은 사약으로 명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결말이다 소설이지만 역사적 사실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