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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의 경계 밖에서 독립적인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채를 30년간 유지해온 영화감독이자 연출가이고, 시나리오 작가이면서 편집자인‘조엘 코언’과‘이선 코언’, 두 형제에 대한 궁금증은 물론, 그들의 작품세계, 제작의도에 대한 호기심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으스스하고 냉혹하며, 괴짜스럽고 잔혹한, 그리고 유머와 개그, 조롱과 뒤틀린 기이한 에피소드를 떠오르게 하는 이들의 수월치 않은 영화에 대한 코언형제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들이 대중에 발표한 최초의 독립영화인 <블러드 심플;Blood Simple>은 소위‘필름 누아르’형식의 전설적인 작품으로 거론된다. 이 작품에서 시작하여 2008년 발표작품인 <번 애프터 리딩;Burn After Reading>까지 30편에 이르는 인터뷰 모음을 담고 있다. 이들 인터뷰를 읽다보면 인터뷰 기자 또는 작가들이 이들에게 두려움과 경외, 울화와 불쾌감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적인 호기심을 위한 질문이나 그들의 영화관에 어긋나는 질문에 냉소적이거나 무응답으로 대응하는 형제의 모습 때문 인 것 같다. 그러나 이들에게 해당 영화에 대한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인터뷰에서는 솔직하고 적극적인 표현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무튼 흥미로운 인물들임에는 분명하다.
![]() <블러드 심플>이 발표되었을 당시“근래 가장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스릴러이며 심술궂은 게 흥미진진한 살인사건 스토리”라는 평가처럼, 이 영화는 심술궂다. 형제들은 이 작품이 왜 이렇게 비치는지, 그리고 캐릭터, 플롯, 내러티브 등이 어디에서 차용되었는지, 혹은 발상의 원천이었는지 알려준다. 특히, 미국 누아르의 선구자인‘제임스M.케인’의 소설이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밝히고 있으며, “온갖 영화 스타일과 레퍼런스들로 그득한 복주머니”로서, 히치콕, 베르톨루치, 피로 물들이는 영화들, 프리츠 랭, 그리고 오슨 웰스의 절충적 혼합물로서, “다른 영화들의 영화”로서의 특성을 발견케 된다. 또한,‘윌리엄 포크너’나 ‘플래너리 오코너’ 같은 작가들을 연상시키는‘니콜라스 케이지’주연의 <레이징 애리조나;Raising Arizona> 거친 코미디에서, “아슬아슬한 몰취미와 피로 얼룩진 슬랩스틱의 신(Scene), 이는 스티븐 킹과 사뮈엘 베케트의 감성을 조합한 결과”라고 그 캐릭터의 독특한 창조와, ‘톰슨지터버그(Thompson jitterbug;기관총)’를 난사하는 장면, 모자가 뒹구는 장면에 대한 그 수많은 분석과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밀러스 크로싱;Miller's Crossing>의 인터뷰들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리고, <바톤 핑크;Barton Pink>에서는 왜 색을 그렇게 푸른빛과 노란빛을 사용하였는지, <파고;Fargo>에서는 여주인공인 건더슨 경위를 영화 중반까지 왜 등장시키지 않았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해결하게 된다. 이들은 유독‘납치’를 재료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 또한, 대다수의 작품이 시대극이고, 특히나 1940년대를 전후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독특한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형제는 “실존적 두려움 같은 요소들이 50년대 영화를 보면 드러나는데, 묘하게 지금 시점에 들어맞는 것 같다”는 것이고, 납치는 일종의 급박감을 플롯에 가미하기에 좋은 장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코언형제의 발표된 전 영화에 대한 그네들의 의도가 진지하게 소개되고 있어, 코언형제의 작품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이 저술은 보물이상이 되어 줄 정도이다. ‘조지 클루니’ 주연의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 O Brother, Where are Thou?>에 대한 제목의 거창함에 대해 “아주 거창하고 중요한 영화인 척 하는 거죠. 그 장엄함은 분명히 조크예요.”라고 답변한다. 코언형제의 냉소적이고 비틀린 유머가 돋보인다. 더구나 “우리영화는 보다 의도적으로 ‘스타일리스틱한 뒤범벅’을 추구하죠.”라든가, 칸영화제나 아카데미상 수상, 그리고 그러한 영화들의 출품에 대해 “상은 작품성과는 관계가 없어요. 경쟁부문에 나가는 건 그렇게 하면 영화가 더욱 주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중략) 광고예산이, 말하자면 <진주만큼>넉넉하지 않으니까요.”와 같은 사실 그 자체의 담백한 솔직함이 묻어난다. 그들의 영화 창작에 대한 지론 또한 도처에서 발견 할 수 있는데, ‘레이먼 챈들러’의 이야기를 통해 “모든 훌륭한 예술은 엔터테인먼트다. 누군가 다르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젠체하는 사람이거나 삶의 기술에 있어서 미숙아다.”라고 영화의 재미를 이야기하는가하면, 그들 작품의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서는 “이런 잡동사니 문화 환경 속에서 지식인이 된다는 게 뭔가 부조리하게 느껴진다.”고 피력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평론가들의 자의적 비평에서 그들의 작품을 “오마주나 패러디”라고 규정하는데 대해서, “우린 우리가 하는 작업을 오마주나 패러디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 거고, 저는 왜 그렇게 부르는 걸까 늘 궁금해 하죠.”라고 답한다. 영화를 영화 그자체로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 강박적인 해석이나 허위의식에 대한 일갈이 미소를 자아내게도 한다. 최근 헐리웃경계를 허물고 제작한 일부 영화들로 인해 코언형제의 작품색이 변질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존재하지만, 이 저작을 통해 상업적으로 통하는 복고풍 누아르의 전범을 제공한 이들의 독특한 창작의 세계는 당분간은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 예고를 감지할 수 있다. 이미 제작 중에 있는 “1967년 중서부 지방의 유대인 커뮤니티를 다룬 영화, <시리어스 맨;Serious Man> 이나, 시나리오 및 배역구상까지 마친 냉전 코미디, <62 스키두>는 그래서 그 어느 때 보다 그들의 작품을 기대케 한다. 코언 형제의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저술은 귀중한 참고가 될 것이다. 또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영화에 대한 폭 넓은 감성과 관점을 제공하여 줄 것으로 믿는다. 이들 형제에 대한 탐험의 시간은 흥미롭고 유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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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좀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 코맥 매카시에 환장한 사람이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미친놈이다. 코언 형제는 이 소설을 영화화한 감독이다. 원작보다 훌륭한 영화는 없다.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영화 역사상 딱 두 번 틀렸던 적이 있다. 한 번은 <빌리 엘리엇>의 스티븐 달드리가 마이클 커닝햄의 동명 소설 <The Hours>를 연출했을 때고 한 번은 저 코언 형제가 <No Country for Old Men>을 만들었을 때다. 적어도 내 경험상 지구상에서 이 형제보다 훌륭한 스릴러를 만드는 감독은 존재하지 않는다. <블러드 심플>이라는 저예산 영화로(지인들을 통해 제작비를 확보했다) 커리어를 시작한 형제는 황금 종려상을 거머쥐고 박스 오피스 성적으로 전투력을 인정 받은 후에도 여전히 저예산 영화를 만든다. 저예산 이라면 지루한 에술 영화거나 이해할 수 없는 컬트 무비라는 편견을 갖는 사람이라면 오해마시라. 코언 형제는 재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간섭하는 게 두려워 저예산을 택한다. 형제는 적은 돈으로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춘 재주꾼이다. 비록 모든 시도가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형제는 영화로 대단한 예술을 하려는 미학적 야심이 없다. 주어지는 상은 흥행에 좋은 영향을 끼치거나 다음 영화의 투자금을 끌어오는데 도움을 줄 때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있다. 이들은 그저 이야기가 하고 싶을 뿐이고 영화가 눈에 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형제의 영화에 끊임없이 예술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이유는 뭔가 할 얘기를 숨긴듯이 보이는 모호한 이미지들이 숏들을 채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이미지들이 숨긴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상징을 읽으려 한다. 그러나 형제의 말에 따르면 이미지 속엔 어떠한 의미도 숨겨져 있지 않다. 이미지는 그저 이미지일 뿐이다. 형제는 그 상황 그 순간에 그 이미지의 등장이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장면을 찍는다. 이미지는 순수하게 이야기의 일부라는 얘기다(<No Country for Old Men>은 예외다. 이 영화는 이미 문학적 상징이 풍부한 원작을 각색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영화화 했기 때문이다). 물론 형제의 블랙 코미디를 종종 이해하지 못할 수는 있다. 사실 그들은 좀 꼬인 사람들이고 때문에 그들의 유머 또한 스트레이트하지 않다. 형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개그 콘서트>류의 유머를 구사하지 않는다. 이 말은 당신이 무표정으로 장면을 넘긴 순간 "아니 이게 안 웃겨?"하며 돌아보는 재수 없는 친구의 얼굴을 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다. 모음집 특성상 동일 내용이 되풀이 되는 건 있지만 많지 않다. 형제는 헐리웃에서 인터뷰하기 어려운 감독으로 악명이 높고 자기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걸 끔찍이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글을 읽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할 얘긴 다 해 준다. 알아야 할 건 충분히 담겨 있다. 아쉬운 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대한 내용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유독 이 영화를 찍고 난 뒤엔 인터뷰 혐오증이 극심해져 인터뷰를 하지 않은 건지 단순히 편집자의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코언 식으로 하자면 아마도, "닥치고 영화나 보라"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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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코언형제도 딱 이에 걸맞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반어법적으로) 미국에서 제일 친절한 답변을 하는 인터뷰어는 아니지만, 자신의 영화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조차 코언의 영화들 답다.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하나의 스타일 안에서 완벽하게 창조되는 그들의 세계.
고교시절 <밀러스크로싱>을 보고 반한 이후, 그들의 전작을 찾아 봤었고, 이후 그들의 작품 여정 역시 내 청년기와 정확히 맞물려있다. 전작인 <블러드심플>과 <레이징 아리조나>를 보고 미치도록 좋아하던 중 <바톤핑크>로 그들이 칸을 휩쓸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치 <올드보이>로 영화면허증을 획득한 박찬욱 감독처럼 이후 그들은 자기들 영화를 좀 더 쉽게 많이 비싸게 만들 수 있었지. 군 입대 전에 본 <허드서커 대리인> 역시 인상적이었고, 제대 후인지, 휴가 중인지에 본 <파고>는 더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즉 영화라는 매체는 코언형제를 위한 것이다. 난 그들을 따라할 엄두도 못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른 뒤, 뒤늦게 <빅 레보스키>를 보았다. 보는 행위 자체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영화 <빅 레보스키>. 대학을 졸업한 후 코언을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오 형제여 어디있는가?><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참을 수 없는 잔혹함>을 찾아보았다. <레이디킬러스>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에 대해 둔감해있던 찰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턱하니 떨어졌다. 작년이었다. 영화를 다시 붙잡고 안달하던 시간이었다. 이제 코언들의 나라가 내게 가까이 있다.
생각해보면, 코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게 많지 않다. <허드서커 대리인><파고><오 형제여 어디있는가?><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전부다. 앞으로 개봉될 그들의 영화는 모두 극장에서 볼것을 다짐해본다. 그것이 천재들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예의다. 이들의 왕국에 현재형으로 거하는 방법이다.
책은 '코언의 영화' '코언과 나' 그리고 '영화라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었다. 시간을 내어 그들의 영화를 다시 봐아하겠다. 너무도 선연한 기억들. 가령, <블러드 심플>의 시작. '텍사스에서는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해야한다'라는 독백과 함께 퉁탕대는 정유기를 바라보는 경험, <밀러스 크로싱>에서 대니보이를 들으며 '톰슨 지터버그'를 목격하는 순간, 화이트 러시안을 마시는 <빅 레보스키> 듀드와의 만남. 내게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이 책을 내준 마음산 책에 감사를!
<블러드 심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영화가 코미디와 스릴러 두 장르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코언 형제가 히치콕으로부터 배운 건 -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엔 히치콕의 영향이 드리워져 있다 - 살인이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코믹할 수 있다는 것이다.
Q 아무래도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의차이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A(Joel Coen) 전 그 차이라는 걸 정말 이해 못하겠어요. 만일 누군가 영화를 만드는데, 그 영화가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면, 저는 대체 그 사람들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해를 할 수 없어요. 제겐 논리에 맞지 않아요. 레이먼드 챈들러가 한 말이 뭐였죠? "모든 훌륭한 예술은 엔터테인먼트다. 누군가 다르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젠체하는 사람이거나, 삶의 기술에 있어서 미숙아다."
Q 조엘이 감독을 하고, 이선이 프로듀싱을 하는 건 어떻게 결정을 내린 건가요? E(Ethan Coen) 동전을 던져서 결정했죠. J(Joel Coen) 물론 제가 덩치가 더 커서죠. 동생을 때려눕히고 메가폰을 쥐는 거죠. E 팔 길이가 3인치 긴 게 아주 결정적이죠. J 솔직히 말하면, 영화의 처음과 끝에 뜨는 그 크레딧은 별 의미가 없어요. 저는 프로덕션 쪽에 많이 관여하고, 이선 역시 연출 쪽에 많이 관여해요. 선이 명확하게 그어져 있는 게 아니죠. 실제로 우리의 작업 방식은 무척이나 유동적이에요. 영화의 모든 부분에 우리 두 사람은 동등하게 책임을 진다고 봐요.
J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에 갈 때마다 늘 생각하는 게 있는데, 거기 석상 기둥에 아리스토텔레스, 헤로도토스, 베르길리우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우린 네 번째에 케인의 이름이 새겨져야 한다고 믿죠. E 케인은 자신의 작품에서 보통 세 가지 주요 테마를 다뤘어요. 오페라, 그리스 음식점 비즈니스, 보험 비즈니스가 그것들이죠. J 우린 이 세가지를 20세기 문학의 3대 주요 테마라고 생각해요.
이제 나는 샘 레이미가 제시한 견해에 대해 그들에게 질문을 던져보려 했다. <허드서커 대리인>의 공동 작가인 그는 뉴욕 대학을 막 졸업한 조엘에게 자신의 영화 <이블 데드>의 편집 보조 임무를 맡긴 바 있다. 또한 그는 형제와 절친한 친구 사이다. 레이미는 코언 형제에게는 몇 가지 테마적 규칙이 있다고 언급했다. 첫째, 무고한 사람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 둘째, 죄를 지은 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셋째, 남자가 되기 위해선 피를 맛봐야 한다. "그리고 조엘과 이선은 추가로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죠." 그가 덧붙였다. "죽은 자가 살아나 걸어야 한다."
Q 두 분의 영화에 가해진 비평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작품들이 모두 테크닉으로 가득하고 마음은 담겨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E 글쎄요,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과 캐릭터가 어떻게 행동하고, 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하는 건 다른 문제죠. J <빅 레보스키>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영화의 스토리는, 만일 줄거리 정도로 요약해놓으면, 아무래도 어리석고 무료해 보일 거예요. 챈들러의 많은 작품들도 그렇죠. 플롯은 캐릭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존재해요.
세상은 불평해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세상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로마의 교황이든, 미국의 대통령이든, 올해의 인물로 뽑힌 사람이든 상관없다. 뭔가 일이 잘못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니 실컷 불평하라. 이웃에게 당신의 문제를 털어놓으며 도움을 청해보라. 바로 내빼는 그를 볼 수 있을 테니. 러시아에선 조직을 잘 짜놓아서, 모두가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물론 그건 이론일 뿐이다. 아무튼 내가 좀 안다고 할 수 있는 건 여기 텍사스다. 여기선, 당신 앞가림은 당신 스스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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