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 입어도 괴로워도, 결코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리라. 팔을 벌려 세계를 끌어안자. 세계도 너를 마주 안아주리라, 라고. 상신의 비 종장에 있는 글입니다. 이두 줄에 츠모리 토키오의 '사상'이랄까 하는 게 다 나와 버렸지요. 요즘엔 천하무적의 주인공이 방약무인으로 설쳐대며 손짓 하나로 십만 대군을 쳐부수고 미녀를 모아 할렘을 짓는 게 유행입니다만, 저는 자기가 가진 작지만 소중한 것을 잃지 않으려고 바르작대는 쪽이 훨씬 취향입니다. 그쪽이 사람 냄새도 나고, 감정적인 몰입도 할 수 있거든요. 사실, 생각할 줄 아는 머리와 느낄 줄 아는 가슴이 있는 이상, 주먹보다는 마음이 강한 쪽이 훨씬 더 인간다운 거지요(본능이 시키는 대로 다 죽이고 다 부수고 살면 그게 짐승이지 어디 인간인가요=_=) 그리고 기왕이면 그렇게 고생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은, 와츠키 노부히로(유랑의 켄신 작가;)의 말처럼 웃는 얼굴과 해피엔딩이 엔터테인먼트의 기본이라고 믿는 제게는 단 비와도 같은 거라서요. 그런 점에서 츠모리 토키오는 제게 갈라진 논바닥에 내리는 몬수운이랄까, 조울증의 특효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엔딩은 언제나 일말의 불길한 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어느 의미론 꽤 위태로운 해피엔딩이지만, 비가 개이면 땅은 더 단단해지는 법. 힘을 내면 얼마든지 타고 넘을 수 있다는 암시 또한 주고 있지요(실제로 츠모리 토키오 역시 서글픈 엔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주인공의 시점을 따르거나(1인칭 서술은 아닙니다만) 혹은 완전히 3인칭 전지적 서술을 사용하고 있는 츠모리의 다른 작품과는 틀리게, 상신의 비는 로브 조나단이라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주인공인 마릴리어드 리리엔슬의 삶을 바라보며, 때로 전지적 서술법을 취한다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세계관을 하나부터 설명해야 하는 SF나 팬터지의 경우 이 방법은 굉장히 유효한 것으로서, 서술자의 정신적인 성장과 지식의 습득에 따라 독자의 이해범위도 점점 넓어져 갑니다. 보이지 않던 부분이나 드러나 있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을 점점 깨달아 가게 되는 이 방법을 사용한 상신의 비의 연출이나 카메라워크는 의외로 영화와 닮아 있더군요. 그리고 언제나 강조하는 츠모리 토키오의 강점이지만, 상신의 비는 시리어스와 개그의 밸런스가 황금비율에 가깝게 조합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츠모리의 작품중 최고의 균형이라고 꼽고 있지요. 새끼손가락을 세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우아하게 오호호호- 하고 중저음으로 웃는 건장한 남자가 실은 불치병으로 오늘내일 하면서도 자신이 할 일을 다하려고 필사적이라던지, 테러리스트가 된 동생에게 납치된 여자가 동생의 돈으로 적이 운영하는 회사의 최고급 화장품을 몽땅 사들인다던지,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을 설정이지만 실제로 무리없이 조합하려면 꽤 능숙한 테크닉이 필요하죠. 아예 개그 전담을 따로 설정해서 분위기를 띄우는 걸 맡겨 버리는 대부분의 소설과는 달리, 츠모리 토키오는 모든 캐릭터에게 독자를 울리고 웃기고 화내게 할 임무를 부여합니다. 그게 더더욱 리얼함을 살려주죠. 남자의 색기와 미모, 여자의 배짱과 완력을 추구한다고 태연하게 말해버리는 그녀는, 히어로는 바람에 나부끼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호언해 버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팬입니다(...) 조금 뻔뻔(;)한 필체지만 중요한 장면은 확실하게 또박또박 써놓고, 중간중간 농담을 던져서 자칫 무겁다 못해 붕괴해 버릴 것 같은 설정을 가볍게 휘둘러 버리고, 아무렇지 않은척 독자들에게 삶은 이렇게 사는 거다-라고 말해주는 그녀의 마수에서, 저는 아마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