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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바람만이 알고 있습니다.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바람만이 알고 있습니다." 내용보기
낙서를 하다가 뭔가를 그릴 때 집 모양을 그리고 그곳에 꼭 그려넣는게 창이다. 네모난 창문틀을 세우고 네모낳게 창문을 그려넣는다. 밖에서 보이는 창문안의 사물들을 상상하는게 좋다. 창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제목만 보고서는 이 책의 진가를 감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책 속의 글, 그림들을 보고 반하게 되었다.보통의 창과는 다른 다양한 창문들.그 창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바람만이 알고 있습니다." 내용보기

낙서를 하다가 뭔가를 그릴 때 집 모양을 그리고 그곳에 꼭 그려넣는게 창이다.

네모난 창문틀을 세우고 네모낳게 창문을 그려넣는다.

밖에서 보이는 창문안의 사물들을 상상하는게 좋다. 창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제목만 보고서는 이 책의 진가를 감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책 속의 글, 그림들을 보고 반하게 되었다.

보통의 창과는 다른 다양한 창문들.

그 창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모양이 다른 창문들에도 다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창문 안의 아주 작은 창문.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건네듯 그렇게 말을 걸고 있었다.

 

창 속의 작은 창을 볼 때면 내 안의 다른 나,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를 만나게 된다. 창에 달린 작은 창은 이데아에 대한 순수한 동경을 꿈꾸게 하는 예술적인 오브제이다. 어느 순간 낯설게 다가온 예술적 오브제로서의 창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게 한다. 인간의 내면에는 제 마음의 섬으로 향하는 예술이 산다. 창에 난 작은 창은 그 섬으로 향하는 구멍이다. (54페이지)

 

마르크 샤갈의 그림 속에 그려진 고향의 창문들.

그림들을 바라보며 창이란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

창문안의 연인들.

 

다양한 사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한 장에 깃든 다양한 창문안 혹은 창문밖의 세상들이 달리 보였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들도 달라진다는 점.

소중한 책을 만났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8.01.22. 신고 공감 10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2016 결산]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2016 결산]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내용보기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파란 표지였다.읽고 보니 오랜 시간의 흔적만이 자리하는 이발소의 창문.그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창이 천장에 비친 모습이다.제목마저도 낭만과 철학이 심오함으로 다가오더라는. <이책은>리뷰어클럽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민병일 ---발췌하다 閔丙一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팝송 '딜라일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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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파란 표지였다.

읽고 보니 오랜 시간의 흔적만이 자리하는 이발소의 창문.

그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창이 천장에 비친 모습이다.

제목마저도 낭만과 철학이 심오함으로 다가오더라는.

 

<이책은>

리뷰어클럽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민병일 ---발췌하다

 閔丙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팝송 '딜라일라'를 잘 부르던 그는 열 일곱에 노래 3곡을 작곡한 낭만주의자이다.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출판사에서 편집주간으로 활동하였다. 예술에 대한 동경과 역마에 이끌려 독일로 늦은 유학을 떠났다...

 

유학시절 해인사의 '고려대장경'을 학술적으로 집필하고 새로운 시각의 예술사진에 담아, 독일 및 국제적으로 상을 받은 함부르크 Material 출판사의 책 시리즈 "Zum Buch"에서 여러 번 인용되며 「Tripitaka- Koreana」로 출간 되었다. 이 책은 마인츠시의 구텐베르크 무제움에서도 전시가 있었다...

 

독일에서 "유럽의 독자들에게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각을 선사했으며, 민병일 씨는 두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데, 훌륭한 기획력과 좋은 주제 선택으로 나타나는 내용적, 개념적 재능과 섬세한 사진들로 감흥 되는 예술적인 재능이 있다"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 '한국의 아름다운 책100' 선정위원장으로 일했으며, ...

 

소설가 박완서 선생과 함께 티베트, 네팔을 여행하고 출간한 기행산문집 「모독」의 사진을 찍었다. 동덕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및 대학원 겸임교수,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교양학부, 광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를 거쳐 학생들에게 문화, 예술, 미술, 디자인을 강의하고 있다. 열림원의 문학을 총괄하는 편집인으로 책예술을 문화와 접목시키고 있다.

<책읽고 느낀 바>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첫 만남이 되는 저자, 출판사와 인연이 닿았는고. 비선호 장르에  과감히 응모한 건 낭만적 느낌과 심오한 철학이 접목된 듯한 제목 때문였다. 파란 표지의 부피 방대한 책을 검색해 보곤 미칠듯 끌렸다 꼭 읽어보고 싶다는 선망은 들어맞았다. 휘리릭 넘겨 본 후 강렬한 흡인력으로 빠져들었다. 많이 접하지 않았던 것들을 저자의 시각과 관점 나아가  지식으로 만나는 시간이었다.

 

  사진들 크기도  만족스러웠고 같은 장소 여러 포즈를 통해 같은 느낌과 다른 느낌도 공존함을 보았다. 시간차를 두고서 같은 물체를 찍어낸 것으로 같은 듯 다른 모습도 보여줬다. 저자가 매우 섬세한 사람이구나, 무엇보다 놀랐던 건  해박한 지식이다. 막힘없이 술술 넘어가는데  어떤 걸 이야기하면서  화가나 음악가 또는 시인이나 소설가를 같이 등장시킨다. 보여지는 형상에다 어울림이 되는 것들을 끌어와 듣다보면 그렇구나가 된다.

 

  

창문에 작은 창이 하나 더 있는 스타일.

흰색 테두리를 한 창문은 공통적이다. 

보기가 처음인데  저 작은 창으로 황야의 이리는 들고 났으리라.

샤갈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비텝스크의 집도 창문 속에 여지없이 작은 창이 나 있으며 흰색 테두리였다.

 

희미한 무지개가 있고, 하얀 물체는 게르다.  

척박함과 광활함 그 자체인 고원은 텅 빈 고요함이자 무한 안정감이다.

가보지 않았어도 '러브 인 아시아' 를  통해 약간의 동경이 있었다.

몽골 상세묘사는 김형수 작가의 연재글 '조드' 에서 읽었었다.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면 다녀간 줄도 모르겠는 황량한 아름다움이 펼쳐지겠다.

 

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파란 하늘.

메마르다 못해 삭막해 보이는 고원에 낙타가 있다.

하나는 좋은데 혼자가 아니라서 참 다행인 두 마리.

척박한 환경에 맞게 진화한 몽골 고원을 가장 잘 아는 생명체리니.

 

이런 저런 책 속에서 언급되던 바이칼 호수가 거기 있었다.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자작나무나 은사시나무는 어쩜 한 번 들어도 잊히지 않는지.

 

홋카이도는 눈 많이 내리는 곳으로 기억된다.

여러 읽은 책들에서 흰눈을 만났었다.

빈 집의 낡은 창문으로 내다뵈는 바깥 설경은 겨울날의 진수다.

고목과 흰눈의 조화는 설경의 최고봉이다.

 

남해의 줄배 타는 모습이란다.

노를 젓는게 아닌 매어놓은 줄을 당겨야 배가 움직이는 것.

잊혀진 삶이자 알지 못하는 삶이 한 장의 사진에서 생명력을 낳는다.

추억이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그리운 풍경일런지.

 

뒷간의 창으로 내다뵈는 풍경은 산수유 핀 모습이다.

노오란 산수유가 구접스런 창과 맞물려 고향 같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던 말이 맞았다.

봄에는 어디나 꽃들이 만발해 허름함을 희석시킨다.

 

고인인 작가가 그토록 좋아했다는 와온 바다.

고 박완서 작가와 저자는 친분이 깊었던 것 같다.

박 작가가 아끼던 카페, 그네 타는 모습, 해당화밭에서 소녀 웃음을 머금은 컷 등.

외로움이 절절히 밴 작가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추억이 있었다.

 

법정 스님의 방 창문이다.

내 어릴 적에 저런 문살의 방문을 사용했었다.

창호지 바른 문에는 저런 문고리가 달렸었다.

추운 겨울날 마당 우물가에서 세수하고 문고리를 잡으면 찰싹 달라붙던 경험이 있다. 데운 따듯한 물에 씻은 손이 찬 기운인 쇠와 만나 떨어지기 싫었겠지.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을 읽으며 그 제목이 시사하는 지점을 더듬기도 했었다. '오두막 편지'를 읽었었고...

창호지 정갈하게 바른 창문 하나 있고 앉은뱅이 책상만 있는 아무것도 없는 방 하나 갖고픈 소망을 가졌었드랬다.

 

동시대를 산 사람만이 같이 할 수 있는 추억이나 기억은 그래서 눈물겹고 그래서 애틋하다. 아궁이에 불때야 난방이 되던 시절. 그런 시절이 있었나니. 물질적으론 결핍했어도 정서적 풍요는 지금까지도 충만한 것을.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들은 하늘에서도 필요한 모양.

무소유의 삶은  갖지 마라 보다는 필요없는 걸 소유하지 마라 라는 의미라지.

 

 

 

 

엘리자베스 키스. 원산

 

목판화가인 엘리자베스 키스는 원산/의 아름다움을 극찬했다는데 보여지는 모습만 아름답지 예측되는 속사정 아림까지 헤아릴 수 없었나보다...

 

그림으로만 보자면 집안에 걸고 싶은 만치 매력적이다. 전체적으론 무채색으로 보이는단순한 그림이건만 화려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별들과 물에 비친 별빛은 얼마나 기막힌 조화로움인지.

 

하지만,

어둑한 저녁에 아낙네는 나뭇단을 이고 내달리는 포즈다. 다급한 모습에서 저녁에 쓸 땔감인 모양이다. 나뭇단을 만들기 위해 들였을 힘겨움이 전해온다. 가슴이 싸하다. 땔감은 남자들몫인데 아마도 아낙이 가장인 모양이다.

 

 

 

 

 

목화꽃은 어릴 적 봤었을텐데 처음 본 듯 기억에 없다.

목화솜은 기억이 난다.

일상에서는 보기가 드문 목화꽃의 진화 과정이 오롯이 한 페이지에 담겼다.

 

꼭 창이 아녀도 소통되는 것들이 실린 책은 알차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질좋은 종이에 오탈자는 단 한 개만을 발견했다.  664쪽의  행복함을 이렇게 밖에 알릴 수 없음이라. 실력이 없으면 정성이라도 들이자는 마음으로 포토리뷰를 썼다. 저자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곧 숨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숨통은 숙명일지라도 그 안에서 순응하며 사는 삶, 현명하게 사는 삶은 저마다의 몫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k******5 2016.12.23. 신고 공감 9 댓글 31
리뷰 총점 종이책
[2016년 결산]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주는 길 위의 선물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발견하다.(파블 11기 12-6)
"[2016년 결산]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주는 길 위의 선물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발견하다.(파블 11기 12-6)" 내용보기
무한 경쟁시대에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야만 잘 살고 있는 것이라 여기며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사이 영혼은 피폐해져 가고 마음은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말라만 간다. 가보지 않은 곳을 찾는 일들을 즐기는 자신과 맞닥뜨릴 때면 채울 수 없는 방랑벽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고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미답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
"[2016년 결산]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주는 길 위의 선물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발견하다.(파블 11기 12-6)" 내용보기

  무한 경쟁시대에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야만 잘 살고 있는 것이라 여기며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사이 영혼은 피폐해져 가고 마음은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말라만 간다. 가보지 않은 곳을 찾는 일들을 즐기는 자신과 맞닥뜨릴 때면 채울 수 없는 방랑벽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고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미답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고, 세상의 빛을 삼켜버리기라도 하듯 사위가 깜깜할 때 어디선가 새어나오는 불빛에 안도하듯 창을 매개로 사유하는 인문학적 성찰은 그림과 선율 속에 녹아 있다.


  숨 가쁘게 살아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방전은 가속화되어 충전을 필요로 할 때면 조계산이 품은 송광사로 향한다. 순천 터미널에서 내려 11번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1시간 남짓 달리면 송광사 입구에 다다른다. 초입부터 개울물 흐르는 소리는 묵은 때를 씻어주며 세속에서의 번뇌와 근심은 내려놓고 지난시간 애썼다고 달래준다. 송광사 경내로 들어가기 전 갈림길에서 불일암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오른다. 열반에 드시기 전 법정 스님은 지독한 수행자로 살면서 영혼을 울리는 법음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 장학생을 후원하는 등 사회를 맑고 향기롭게 바꾸어가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관심 갖지 않는 밑바닥 인생들의 삶에 관심을 보인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그림은 따스한 눈길로 세상을 보는 창이다.


  창에 비친 사물의 본질과 나의 내면이 융해되어 가보지 않은 곳에 가 있는 듯 착각 하게 만드는 진기한 경험은 심미안을 길러준다. 시인이 쓴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말에 부합하는 비유와 심연 속 공명은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한다. 균질의 시간을 거슬러 자기만의 방식으로 선택한 길 위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일상은 시공간을 초월한 공명을 선물하여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길을 걸으면서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고, 부는 바람에 애틋한 그리움을 담아 사연을 적어 보내던 시절로 회귀하였다. 고독한 방랑자로 걷는 고요한 여정은 다양한 창에 깃든 우주를 발견하고 나에게로 가는 여로다.


   바이칼 호숫가 리스트뱐카 마을의 창, 초원의 방랑자자로 잃어버린 야성을 찾던 몽골 초원, 희망의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사북 탄광촌, 모차르트 왕국인 잘츠부르크의 콘서트홀의 창에서 행복은 가까이에 있음을 발견했다. 풍요로운 호수 바이칼 호숫가 마을에서 본 창 속의 작은 창은 인간의 영혼을 비치는 은유의 창으로 원시의 생명력을 담고 있는 태고의 우주를 만나게 해준다. 지붕 위를 나는 남자나 연인들을 화폭에 담은 마르크 샤갈 그림 속 창문의 다양성은 창을 통해 드나드는 영혼을 배려한 관습을 따른 것이라니 러시아인들의 영혼설을 알게 한다. 홋카이도 산골 빈집을 에워싸는 설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창은 적막함 속에 깃든 우주의 영혼이 바람 타고 내려오는 소리를 들려준다.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창가를 수놓은 알람브라 궁전의 아지메세스의 방은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전통의 면면을 떠올리게 한다.


   순천만의 동쪽 끄트머리인 순천시 해룡면 상내리에 위치한 와온 해변을 찾아 다시는 못 올 세상으로 떠난 선배 고 박완서 작가를 애틋하게 그리는 모습은 생전의 두터운 정을 가늠케 한다. 꽃 피는 봄에 다시 오자던 약속은 물거품처럼 스러져 갔고 살아있는 자는 그곳을 다시 찾아 떠난 이들을 불러내어 한자리에 앉히는 카를로스의 시간으로 회귀하며 사는 인생의 헛헛함을 위무하는 일몰이 아름다운 해변이다. 구례군 토지면의 운조루는 2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대를 이어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며 편리함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기계문명 시대와는 거리를 두고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주는 공간이다. 뒤란에 있는 장독대에 담긴 된장, 고추장, 동김치 등을 정성스레 담던 어머니의 손길을 저장하는 곳간 같은 곳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잘 되던 일이 돌연한 길로 들어서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는 사람들에게 말해봤자 소용없는 일임을 깨달았을 때는 말없이 객체를 맞아 주는 자연이 있어 고마운 일이라 여길 때가 있다. 도둑맞은 시간에 헛헛하여 길 위에 섰을 때 우연히 만나는 이들과 몇 마디 나눈 게 힘이 될 때가 있음을 발견한다. 여행은 일상에서 일깨우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보물을 담고 있는 우주이다.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처럼........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n*****9 2016.12.18. 신고 공감 7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12-12. 창과 미술이 있는 인문학 산책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12-12. 창과 미술이 있는 인문학 산책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내용보기
창과 미술이 있는 인문학 산책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책이 무척 아름답다.책을 보고 감탄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단단하고 무게감 있는 푸른 빛의 책은몇 장 들추어보자마자 곧바로 내 책장의 한가운데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진중한 빛을 뿜어낸다. 낯선 저자의 낯선 언어에 잠시 주눅들었지만 몇 장 넘기지 않아 만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라는 곡에 눈길이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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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과 미술이 있는 인문학 산책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책이 무척 아름답다.

책을 보고 감탄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단단하고 무게감 있는 푸른 빛의 책은

몇 장 들추어보자마자 곧바로 내 책장의 한가운데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진중한 빛을 뿜어낸다.

낯선 저자의 낯선 언어에 잠시 주눅들었지만 몇 장 넘기지 않아 만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라는 곡에 눈길이 머물렀다.

곡을 찾아 들으며 책장을 넘기니 책이 발산하던 시크한 매력이 금세 누그러지며 겨울눈 덮인 나무 한 그루를 떠올리게 한다.

 책의 곳곳에 소개되는 곡들을 배경음악 삼아 읽으리라 다짐하게 된다.

 

 

 

 

돌연히 창이 저절로 열린다. 나는 커다란 공포 속에서 창 앞의 호두나무 곁에 앉아 있는 하얀 늑대 여러 마리를 응시한다. 거기에 예닐곱 마리의 늑대가 있다.-자크 랑시에르의 <창을 통한 진리> 중에서, 6

 

매체미학에서 기술은 예술의 확장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다루어지는 것처럼, 창을 하나의 매개물로 하여, 내 안의 이리를 만나는 것을 예술로 상정했다. 자기의 심연에 사는 낯선 이리를 만나는 것만큼 신나는 예술이 어디 있으랴.-7

 

심미적으로 "무형의 빛"을 간직한 창, 심미적인 메타포를 간직한 창을 찾는 과정이 이 책에 실려 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창의 미학을 함께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뜻밖에도 잔잔한 기쁨을 선사한다.

열린 창, 닫힌 창, 안팎을 연결시키고 때론 단절시키는 창.

각각의 장소에서 맞닥뜨린 창은 대부분 신선한 기운을 소통시키고 많은 것을 불러 일으킨다.

시인의 시구, 화가의 그림, 음악의 선율...

이 모든 것이 이 책 안에서 자연스레 어우러져 황홀한 조화로움을 맛보게 한다.

 

 

 

저자는 많은 곳을 여행하였다.

바이칼 호숫가 리스트뱐카 마을,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생가, 몽골 초원, 꽃분홍 스카프를 머리에 한 시베리아 할머니의 집, 지리산 자락의 240년 된 집 운조루, 그리움 물들면 찾아가는 집 최순우 옛집...

그 곳은 우리에게 창의 이미지로 변환되어 기억되며 동시에 시인의 시구, 화가의 그림, 음악의 선율과 함께 갈무리된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아무 것도 남는 것 없이 소멸되고 마는 기억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내가 다녀온 곳이 아니지만 이렇게 선명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읽고 또 읽을 수 있다.

기쁜 마음으로 책 속 한 줄 한 줄을 음미하고 또 곱씹으리라.

 

 

 

저자는 리스트반캬에 와서야 샤갈의 그림에 나오는 집과 나무 창의 아름다움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가 그림을 통해 꾼 꿈의 실체가 현실을 초월하려는 게 아니라, 현실의 이면에 존재하던 또 다른 현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이 곳에서의 창을 보는 순간 체호프의 단편<우수>도,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도, 샤갈의 화집도 모조리  소환되어 줄줄이 늘어선다. 러시아 민요 <마마>, 러시아 가곡 <붉은 사라판> 등등 러시아에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리스트반캬의 창을 통해 되살아난다.

무릇 여행이란 이렇게 오감을 자극하면서 마음 속 새로운 지평을 열어 신세계를 맛볼 수 있을 때

그 묘미가 발현되는 게 아닐까.

 

 

부엌에서 뒤란으로 통하는 창문.

깨진 유리창에 덧바른 창호지 조각은 삶을 수선하는 헝겊 같다. 창 너머 뒤란에서 어머니는 겨울을 뚫고 쑥쑥 올라온 머위 대를 따고 계실 것이다. -423

 

저자가 류 씨 댁 한옥에서 80년 전에 지어진 모습 그대로의 부엌을 보고 느낀 소회도 또한 옛추억을 고스란히 되살려낸다.

21세기에도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와 똑같이 부엌을 보존해 둔 남정네가 있었다며 저자는 놀람을 표한다. 작은 뒤주 안에 콩이나 팥 대신 <소월시집>이나 <괴에테 시선집>등이 들어 있는 집.

부엌 뒤주 위에 난 창. 창의 한지를 통과한 햇빛은 발이 가늘고 촘촘한 체로 걸러낸 고운 가루처럼 은은한 빛을 띠고 있었다며 부엌 주인은 한복을 차려입은 대갓집 마나님이나 부스스한 파마머리에 조금은 촌스러운 몸뻬를 입은 아줌마가 아니라,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에 나오는 조선 여인을 닮았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놀라운 심미안을 가진 저자가 마음 속 이리를 찾아나서는 길에 동행하게 된 것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마음의 눈이 함께 밝아지는 느낌이다.

음악과 차가 있는 조용한 카페에서 심신을 편안하게 놓아둔 채 읽고 또 읽어대고 싶은 책이다.

문득 눈 돌리면 만나게 되는 바로 그 곳의 창이 저자가 소개하는 곳으로의 여행을 도와줄 것만 같다.

그 창으로 손을 뻗기만 하면...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s*******e 2016.12.1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천천히 아껴 읽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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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첫눈에 반해 3만8천원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단숨에 질러버린 책이다.이 책은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예전에 박완서가 쓴 <모독>의 사진을 이 작가가 찍었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그 책도 사진이 참 깊었던 듯하다. 천천히 읽기에 좋은 책이다. 이르쿠츠크, 잘즈부르크,로텐부르크를 지나 훗가이도, 그리고 우리 나라 곰소, 와온 바닷가까지. 종횡무진 누비
"천천히 아껴 읽고 싶은 책" 내용보기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첫눈에 반해 3만8천원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단숨에 질러버린 책이다.

이 책은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예전에 박완서가 쓴 <모독>의 사진을 이 작가가 찍었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그 책도 사진이 참 깊었던 듯하다.


 천천히 읽기에 좋은 책이다. 이르쿠츠크, 잘즈부르크,로텐부르크를 지나 훗가이도, 그리고 우리 나라 곰소, 와온 바닷가까지. 종횡무진 누비는 그의 여행에는 여백이 있다. 글 속에 시와 사진이 담겨서 그 깊이를 더한다.


 아껴서 천천히 읽고 싶은 책이다.

r****n 2016.1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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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으로 떠나는 나와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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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자아를 찾아 떠나는 이리의 여행"황야의 이리"라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서 제목을 차용한 것 같다.자아의 내면으로 형상화 되는 황야에서 진정한 야성을 잃지 않는 이리처럼 저자는 그렇게 예술을 지키고 싶었나 보다.저자는 국내외 여행길에서 만났던 창을 소재로 한 사진과 사유의 흔적들을 모아 놓았다.사진 또한 저자가 여행길에서 직접 찍었다고 한다. 읽는 내내 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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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자아를 찾아 떠나는 이리의 여행
"황야의 이리"라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서 제목을 차용한 것 같다.
자아의 내면으로 형상화 되는 황야에서 진정한 야성을 잃지 않는 이리처럼 저자는 그렇게 예술을 지키고 싶었나 보다.
저자는 국내외 여행길에서 만났던 창을 소재로 한 사진과 사유의 흔적들을 모아 놓았다.
사진 또한 저자가 여행길에서 직접 찍었다고 한다. 읽는 내내 나는 그 풍경 속,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곂에 두고 싶은 맘에 맞는 친구를 만난 듯 하다.
한번 읽고 던져 놓을 친구가 아니다.
늘 가까이 두고 한단어 한단어 곱씹어 꿀꺽 꿀꺽 삼겨낼 사유의 소재이다.
663쪽의 책을 단숨에 읽을 수 없을 뿐더러 그림과 만나는 글들이 자꾸 시선을 잡아 끈다.
익숙한 풍경, 낯선 풍경, 유화속 풍경, CD자켓속 풍경으로 평상시 같으면 무심코 지나쳐 버릴 묘한 감정들이 일어남을 알아차린다. 여행길에 무심코 지나쳤던 그 창들이 문득 떠오른다. 일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다시한번 두드린다. 수많은 생각들을 일어나게 한다. 무엇으로 사는지 무엇때문에 여기에 서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책의 목차를 가만히 바라보니 또 다른 버전의 목우십도송이다.
소를 발자욱을 찾고, 소를 발견하고, 소를 길들이고, 소를 놓아 두고, 종국에 이르러 소도 없고 나도 없는 그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현실로 돌아와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수도승의 모습을 본다.

 

- 나를 두드리는 문장들
p14
" 어느 날 이리가 나타났다. 나귀를 타고 무중력 공간을 걸어가듯 방랑을 하는데 잿빛 털을 반짝이는 황야의 이리가 은사시나무 숲을 지나오고 있었다. 창에 사는 이리는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했다. 이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순간이라는 황야를 질주했다. 아, 눈부신 이리의 출현! 한 줄기 빛에 의지해 캄캄한  우주를 지나온 고독한 시간이 모습을 잘 드러내는 찰나는 아름답다."
p97
"몽골초원의 창은 초원이다."
p148
"몽골 초원에는 신이 내려와 산다. 신의 이름은 무지개이다.
초원에 내려온 신을 만나기 위하여 언덕을 넘어 달려갔다. 무지개를 보기 위하여 심장이 터지도록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초원에서만 가능한 경이였다."
p165
"지구에서 4600광년 떨어진 백조자리 근처에 위치한 코호텍 4-55 별은 태양과 거의 같은 질량과 에너지를 가졌다고 한다. 이 별은 현재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사라져가는 중이다. 언젠가는 우리가 매일 보는 태양 역시 고온의 핵을 드러낸 채 마지막 에너지를 뿜으며 사라져갈 것이고, 그즈음이면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맏은 별들이 불타는 태양에 의해 녹아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적어도 50만 년 후에는 일어날 일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50만 년이라는 시간은 우주의 역사에서 먼지만도 못한 흔적이다."
p200
"여행이란 삶의 멜랑콜리를 찾아가는 길임을 여행자는 알고 있다.
운명, 사랑, 절망, 회한 같은 것들이 낯선 그리움의 집을 짓고, 타레가의 <눈물>이 기타 선율에 묻어나 슬픈 눈동자를 끔벅이게 할때, 여행자는 삶의 멜랑콜리를 찾아 방랑을 한다. 우수를 느끼지 못하는 삶과 애수를 추억하지 못하는 여행이 어디 있으랴."
p463
"햇빛에 반사된 유리창이 천장에 또 하나의 창을 냈다. 천장에 난 창은 우리 마음속의 유토피아이다."
p480
"문門이 창窓이다."
p507
"그해 봄 5월 스무날, 선생님은 와온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있다. 선생님은 "내가 없을 때"란 먼 미래의 일로 여겼다."
p523
"스님의 빈방에서 '잠자는 집시' 여인을 보았다. 스님이 집시인지 집시가 스님인지 알 수 없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 뜬 사막을 맨발로 여행하던 집시 여인은 곤하게 잠이 들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흙으로 빚은 물병과 만돌린, 입고 있는 옷 한벌, 잠들면서도 한손으로 꼭 움켜쥔 나무 지팡이가 전부이다. 맨발의 빈자이면서도 잠든 집시 여인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p644
"이 책은 독자에게 다채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사진에 담긴 창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창에 비친 사물의 내면과 나의 내면이 하나의 풍경 속으로 녹아드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울러 창의 영상을 통해 자유연상처럼 펼쳐지는 심미적 자유를 접하면서 우리는 고흐에서 요제프 보이스에 이르는 현대미술의 중유한 이정표를 따라 저자와 함께 산책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섬세한 필치로 아우르는 에세이는 루카치가 에세이의 본질이라 일컬었던 영혼과 헝식의 합일에 이른다. 요컨대 이 책은 일찍이 바그너가 꿈꾸었던 현편의 종합 예술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e****o 2016.12.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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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낭만에 대하여 -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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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라는 단어를 언제 들어봤든가? 아주 오래전에는 간혹 사람들이 이리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듣기 쉽지 않은 표현 같다. 그래서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는 제목 안에 담긴 작가의 예스러움이 야생처럼 느껴졌으며 그리 책이 내게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   작가는 세상에 흩어진 창을 찾아다닌다. 바이칼 호숫가에서, 잘츠부르크에서 그리고 몽골의 초원에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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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라는 단어를 언제 들어봤든가? 아주 오래전에는 간혹 사람들이 이리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듣기 쉽지 않은 표현 같다. 그래서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는 제목 안에 담긴 작가의 예스러움이 야생처럼 느껴졌으며 그리 책이 내게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작가는 세상에 흩어진 창을 찾아다닌다. 바이칼 호숫가에서, 잘츠부르크에서 그리고 몽골의 초원에서 시베리아와 설국의 땅 홋카이도를 넘어 한국의 여러 곳에서도 창을 마주 본다. 그리고 작가는 창을 통해 만나게 되는 세상에서 많은 예술 작품들을 떠올린다. 샤갈을 떠올리기도 하고 달리, 고흐의 그림들이 펼지고, 무수한 클래시컬한 음악들이 떠올랐다 앉곤 한다.

   660여 페이지가 넘는 두터운 책 속에 사진과 글들 ... 작가 민병일에 대해서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책이 던져주는 이미지들은 확고하게 다가오는 책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문장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라 사진을 통해 문장이 가진 이미지를 하나로 완성시키기 때문에 한결 작가의 의식과도 같은 문장들이, 쉽지만은 않은 문장들이 그나마 쉽게 다가오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그의 글은 나에게는 그리 쉬운 글만은 분명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무척이나 나를 설레게 하는 구석이 많은 글이다. 7~80년대 교과서에서 봤음직한, 수식어들이 화려하고 은유의 골짜기에서 노니는 듯한 그래서 마치 십 대 시절을 떠올리며 차라리 아득하여 그때가 좋았었다고 느낄 법도 한, 그런 문장들이 아니었나 싶다. 사치를 너무 부리고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지식(?) 자랑을 자주 보태며 세상의 모양새를 자신의 틀 안에 묶어버리는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그의 글이 싫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낭만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인지 모르겠다. 구례 운조루에서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를 흥얼거리는 작가는 이 많은 것들을 하나로 그리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운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바로 낭만이 아닐까?

   낭만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똑같은 사물을 봄에도 그 안에서 무엇을 끌어올리느냐에 따라 그것이 달리 보이는 것. 간혹 전혀 예기치 못 했던 것을 보면서 어떤 그리움의 사연들을 담아 감성적으로 공감하게 만드는 것. 그런 것들도 낭만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어쩌면 오로지 작가 감성적인 문장들과 사진으로 이루어진 작가 민병일 자신의 낭만에 관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구례 운조루에 닿아서야 나는 작가 민병일의 화려한 수식어들에 가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앞까지만 해도 너무나 먼 세상의 그래서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을 다녀온 사람을 향한 부러움으로만 글을 봐왔었는지 모르겠다.

   쉽지 않은 수식어들이 화려하게 자리 잡은 책이다. 그리하여 사북의 탄광촌을 다녀온 작가는 바흐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광부들에게 헌정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물론 작가가 헌정하고 싶다고 헌정이 될 수 있는 곡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굳이 한국의 광부들에게 무반주 첼로 곡을 헌정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생각 안 해보려야 안 해 볼 수가 없다. 그것은 바로 작가의 낭만이 깃들은 곡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광부 중에 바흐의 곡을 달가워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면 과연 이 책의 화려한 수식들과 화려한 외국의 예술가들의 이름 나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c****1 2016.1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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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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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히 창이 저절로 열린다.나는 커다란 동포 속에서 창 앞의 호두나무 곁에 앉아 있는 하얀 늑대 여러 마리를 응시한다. 거기에 예닐곱 마리의 늑대가 있다.- 자크 랑시에르의 「창을 통한 진리」중에서 - 시인으로 등단해 활동하고 있는 저자 민병일의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문학단 출간)는 저자가 그 동안  탄광촌, 일본의 설국, 몽골 초원, 잘츠부르크 등 세상 곳곳을 여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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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히 창이 저절로 열린다.

나는 커다란 동포 속에서 창 앞의 호두나무 곁에 앉아 있는 하얀 늑대 여러 마리를 응시한다. 거기에 예닐곱 마리의 늑대가 있다.

- 자크 랑시에르의 「창을 통한 진리」중에서 -

 

시인으로 등단해 활동하고 있는 저자 민병일의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문학단 출간)는 저자가 그 동안  탄광촌, 일본의 설국, 몽골 초원, 잘츠부르크 등 세상 곳곳을 여행하며 사색한 내용 등을 단순한 시야가 아닌 창을 통해 마주하는 다양한 풍경 들을 담아 인문학 산책을 이어간다. 우리는 누구나 한번쯤 홀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고 나만의 시간을 통해 지금의 나를 되돌아 보고자 꿈꾸는 것 같다. 혼자만의 여행, 아니 계획되지 않은 낯선곳에서의 시간은 휴식을 안겨주는 그 이상을 넘어 좀 더 풍요로운 마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이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람이 데려간 여행길에서 내가 본 것은 창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바람은 내게 방랑자가 되라고 했다. 때로는 보헤미안처럼, 때로는 집시처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즐기라고 했다. 바람이 부는 대로 길을 걸었다. 코카서스인의 피가 흐르는 집시처럼 유랑에 올라 시베리아 바이칼에서 몽골 초원으로, 함부르크 초가집과 홋카이도 산골, 그리고 동해에서 남녘 끝까지, 바다 건너 제주 섬까지 바람이 되어 떠돌았다. 길 속에 길이 열리고 길 위로 날이 저물어 별이 뜨고, 어느 날은 초승달이 뜨고, 눈이 내렸다. 길 위에 창이 있었다. 창이라는 사물에 숨겨진 삶과 허무, 삶이 창에 남긴 질감, 창이라는 형태가 말하고 있는 예술적인 것을 인문적으로 사유하고 싶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

 

어떤 장면에서는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는 장면의 사진을 접하게 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미술작품을 만나기도 하는 여행, 그 길위에서는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하지만 소소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이 함께 합니다. 들에 핀 꽃도 볼 수 있지만 세상 풍파를 오랜 세월동안 이고 살아온 할머니도 만나게 된다.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그리고 나아닌 그 누구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현대인 모습을 벗어나 오래된, 변하지 않는 때 묻은 곳으로부터 얻는 위안은 어쩌면 덤이 아닐까 합니다.

 

「부안 곰소 마을 인근 이발소에는 20년 넘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이발소 주인이 세상을 뜨자 그의 아내는 가게 문을 닫은 뒤 소식이 끊겼다. 이발소에 넘쳐나던 동네 사람들 이야기는 봉인되고, 먼지만 켜켜이 쌓인 건물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다. 이발소 명물인 1960년대식 의자는 등받이가 뒤로 젖혀진 채 누워 있다. 엿장수한테 거저 가져가라고 해도 손사래를 칠 이 의자는 긴 잠에 빠진 거인 같다. 잠든 거인의 몸은 뻘건 녹의 더께로 덮여 건드려도 꿈쩍하지 않았다. 옛날 이발소 의자는 의자의 왕 같아 보였다. 궁둥이가 닿는 데는 누런 소가죽이 덮여 있다. 케케묵은 이 구닥다리 의자가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이발소 문이 20년째 잠겨 있던 덕에 잠든 박물관 역할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

 

이 책의 제목인 '황야의 이리'는 헤르만 헤세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창들을 순례하던 중 '눈 덮인 황야에서 노루를 꿈꾸며 홀로 울부짖는' 이리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합니다.


책을 보는 사람의 내면에는 '황야의 이리'가 살고 있다. 내면이라는 황야를 달리는 이리는 갈기를 휘날리며 꿈을 찾는다. 눈 덮인 떡갈나무 숲을 지나면 오롯한 꿈이 모습을 드러낼까, 해거름 이는 강물에 닿으면 꿈을 찾을까. 이리는 오늘도 활자가 새겨진 책 속의 황야를 질주한다. (...) 눈 덮인 황야를 달리는 여자는 고독한 활자의 숲에서 무엇을 찾고 있을까. 책의 행간을 순례하는 여자의 눈빛은 설원에서 본 이리의 눈망울을 닮았다. 노루를 찾아 토끼를 찾아 들판을 달리는 이리처럼, 여자는 활자 냄새를 맡으며 무엇인가 찾고 있다. 』- 본문 중에서 -

마음이 있는 곳에 발길을 옮기는 여정을 따라 사색을 즐기는 여유, 그 시간속에는 나와 또다른 이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다만 그곳에는 욕망이나 사심이 없는 온전히 따뜻한 생각만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저자의 한줄 한줄 문장을 곱씹어 볼 수록 내 마음에 담아보고 싶은 심정이다. 글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한장한장의 사진이나 그림은 어쩌면 보너스가 아닐까 한다. 왜 나는 저런 사진한장 남겨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똑같은 풍경을 그저 지나치고 만 것일까? 그래서 더욱 안타깝지만 고마운 풍경이 아닐수 없다.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창가에 앉아 커피향 가득한 차 한잔을 두고 마음으로 읽으면 좋을 듯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l***4 2016.12.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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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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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열정이 가득한 책이다. 철학과 친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친분을 쌓지 못한 탓에 난해하다. 나에게만 난해한지 모르겠지만 철학에 정답이 어디 있으랴 용감하게 책 속으로 들어가 공감도 해보고 의문도 가져 보고 비판도 해본다.  철학이란 philosophy(필로소피)로 지혜를 사랑한다는 그리스어에서 유래 되었다. 지혜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좀더 나은 생활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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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열정이 가득한 책이다. 철학과 친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친분을 쌓지 못한 탓에 난해하다. 나에게만 난해한지 모르겠지만 철학에 정답이 어디 있으랴 용감하게 책 속으로 들어가 공감도 해보고 의문도 가져 보고 비판도 해본다.

 

철학이란 philosophy(필로소피)로 지혜를 사랑한다는 그리스어에서 유래 되었다. 지혜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좀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인생관이나 세계관, 우주관 등 삶의 본질에 대한 것을 고민하고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 보니 철학의 본질은 수 천 년이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지만, 관념에 따라 철학의 대상은 바뀔 수 있다. 때문에 어떤 사람은 걷는 것에 의미를 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종교에 의미를 두기도 하지만, 저자는 창에 의미를 두고 삶을 조율하려는 것 같다.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 황야, 이리의 조합은 다분히 철학적으로 보인다. 제목부터 해석해 보기로 했다.

창문은 용도에 따라 모양도 형태도 구조도 다양한데, 창이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의 심리 상태? 아님 창을 통한 소통?

어쩌면 창을 통해 바라본 세계에서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를 비교 분석하여 성장하라는 것일 수도 있다.  

황야는 정제되지 않는 들판을 말하는 것이니까 우리의 삶을 말하는 것일 듯 하다.

많고 많은 동물 중에 왜 이리라는 낯선 동물을 선택했을까? 이리는 늑대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던데, 이리가 가진 의미는 뭐지? 늑대가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인가? 아님 고독한 늑대라는 말이 있듯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도도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자아를 찾으라는 것일까? 혹시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라는 소설에서 얻은 영감일까? 잘 모르겠다.

창에 사는 이리는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창에 사는 황야의 이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라는 작가의 말에 의하면 굳이 심오하게 파고 들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다.

 

저자에게 서운한 부분은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아무나 쉽게 읽을 수 있게 썼더라면 저자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을 텐데 어려운 낱말과 잘 모르는 부분 때문에 공감하지 못해 오랜 시간 여행에서 얻은 사진과 지혜를, 저자의 의도대로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는 듯 하여 속상하다. 이 책을 읽고 나를 제외한 독자들이 저자와의 교감이 많다면 나의 무지를 탓하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천상병 시인이 하는 지청구를 들어야 할 것이다.

 

바이칼 호숫가 리스트뱐카 마을의 창문 사진과 마르크 샤갈 그림의 창문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창의 형태를 가졌고, 창문이 크기와 모양도 각기 다르다.

유리창 위쪽 구석에 작은 창이 하나 더 나 있고, 여닫이 문이 하나 더 설치되어 있다. 추운 지방이라 외풍을 막기 위함일 것 같은데, 저자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창 속의 작은 창은 내 안의 나, 인간의 영혼을 비치는 은유의 창이고, 영혼이 드나드는 문이며, 넋이 머무는 자리이고, 산 자가 죽은 자를 맞이 하는 경계이기도 하기 때문에 러시아의 작은 창은 애환과 장구한 영혼이 숨어 있다고 하였다.

작은 창에 이러한 의미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감히 누가 할 수 있을까?

창이 집집 마다 다른 이유는 러시아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창문을 보고 집을 찾아 온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창문이 같으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제 집을 찾지 못한다는 믿는 러시아인의 발상에 오리엔탈리즘이 숨어 있는 듯 하다.

 

모차르트의 고향 찰츠부르크에서의 창은 음악의 신이 드나들었으며, 창을 통해 공기와 바람, 햇빛과 우주가 드나들며, 신비한 음악이라는 나무가 자랐다고 표현하였다. 표현이 형이상학적인 시구처럼 들린다. 예술가의 방은 자아가 표류하는 섬이란다. ㅋㅋ

모차르트가 표현한 음악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것이며, 모차르트를 모르더라도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행복에 빠질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음악은 철학이며, 행복이라는 표현 같다.

 

빈의 나무 벤치에서 책을 보던 여자는 눈 덮인 황야를 달리는 이리였다. 드디어 제목에 대항 궁금증이 풀렸다.

‘, 황야의 이리는 달리고 달린다. 세상은 눈으로 뒤덮여 있다. 자작나무에서는 까마귀가 날개 짓을 한다. 그러나 토끼 한 마리 노루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정말 나는 노루가 좋아, 한 마리만 찾을 수 있다면! 이빨로 앞발로 붙잡을 수가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리. 내가 진정 행운아라면, 그 부드러운 뒷다리를 깊숙이 물어 뜯을 수 있고, 그 분홍빛 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면 그러면 온방을 홀로 울부짖을 수 있을 거야. ……나는 달리며, 노루를 꿈꾸지, 달리며 토끼를 꿈꾸지, 겨울 밤 부는 바람 소리를 듣고, 불타는 듯한 목으로 눈을 마시지, 내 가엾은 영혼을 악마에게 가져가지.’헤르만 헤시의 시 황야의 이리중에서 ……

벤치에서 책을 보는 여자는 고독한 활자의 숲에서 노루나 토끼를 찾는 중이고, 우리는 창문을 통해 노루나 토끼를 찾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심오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볍기도 했지만, 황야의 이리가 되어 노루나 토끼 찾아야 한다는 명제를 재 확인 하게 되었고, 그것을 못 찾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눈을 마시며 재 도약해야 할 것이다.

m******0 2016.12.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