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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준환의 작품 7편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서준환이
내는 책은 빠짐없이 구입하고 있지만 그의 책 한 권-그의 번역 작품을 제외한 창작 작품 중에서-을 글자 한 자 빼지 않고 오롯이 다 읽어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글쓰기를 한다면 앞으로의 길을 더 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변명을 하자면 그가
보여주는 독특함 때문에 그의 책을 구입하지만 그 독특함 탓에 껄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다 읽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는 서준환의 음악에 대한 지식과 기계에 대한 지식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여 더 잘 읽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집에서 서준환은 결코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있으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엄청난 허구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마치
한바탕의 걸쭉한 난장판을 벌이듯 소설은 전개되고 이어진다. 기계음이 끽끽거리면서 달려드는 그런 난장판.
작품집의 처음인 ‘리핑’에 나오는 세상은 기계는 우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숨는 방향으로 진화(p. 11)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은 작품을 거듭해가면서 반복적으로 보여진다. 이 작품에 나오는 난민과 프랑신이라는
등장 인물(?)-사실 인물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은
뒤에 나오는 작품들에서도 이름을 그대로 둔 채 존재를 변주해서 나타난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CD를 PC에 집어넣고 리핑해서 PC
본체에 저장해두거나 USB에 복사하던,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음악듣기를 좋아하는 작가의 일상이 작품 내용에 투사되어있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런 투사 역시 뒤에 나오는 작품들에서 읽힌다.
두 번째로 보여지는
‘파라노이드 안드로이드’는 30여쪽에 달하는 전체 내용이 하나의 문단으로 이루어져있다. 무슨 의미이지? 읽기에 이상하지는 않지만 작은 불편함이 살짝 스며드는데 하나의 모놀로그라는 전제를 글 전체에 투사한 결과라고
여기기로 한다.
작품집의 중간에
등장하는 ‘다음 세기 그루브’에는 난민도 프랑신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치 이 작품의 주인공이 난민인 듯한, 난민이라고
지칭할 만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마지막 장면이 서늘하다.
또 ‘전자인간 장본인’에서는 존재함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존재가 먼저인가, 말이 먼저인가 하고. 이 질문이 묘하게 내 뇌의 시냅시스를 건드린다.
마지막 작품인 ‘모조 노벨레 이어 가기’에서 미스 프랑신과의 이상한 인연을 풀어놓은 난민M의 이야기를 망상이거나 허구-누군가가 실재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인터넷 검색 엔진에는 뜨지 않는 대상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다(p. 273).-라고 서준환은 정의한다. 노벨레는 가짜 현실을 다룬 이야기의 원형을 가리키며 모조 노벨레란 가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진짜로 굳게 믿고 이어 쓴 가짜 이야기의 원형을 지칭한다. 결국 서준환은 마지막 작품의 제목을 통해 이 작품집에 늘어놓은 이야기가 모두 허상이라고 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의 허구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작품은 어느 것을 먼저 읽어도 상관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급적 수록된 순서대로 읽는 게 전체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더 낫다고 본다.
서준환은 은연 중에 독자들에게 매우 꼼꼼하게 읽기를 강요한다. 문장 하나 하나를 잘 이해해서 머릿속에 넣어두어야 다음 문장과 문단을 잘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그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리하여 그런 읽기가 흥미로워지기도 한다.
서준환의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더 널리 읽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대한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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