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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줄거리나 내용은 인터넷 서점에 자세히 잘 나와있으니 저까지 아까운 지면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요. 책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만을 적는 것이 먼 미래에 제가 썼던 글을 보며 지금을 기억할 수 있겠다 싶은 것이 주된 요인이기도 합니다. <카타리나 케플러>는 보통 책의 두 배정도 되는 분량입니다. 오백 오십 페이지 정도 되니 한동안 책을 구해놓고 책상에 방치한 이유가 되기도 했지요. 분량에 기겁해서 선뜻 손에 잡지 못했는데, 드디어 주말에 잡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겉모양에 혹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외모만 보고 멀리했던 책이 저를 새벽 내내 잠도 못 자게 하더군요. 그만큼 재미나서 좋아하는 잠도 멀리하면서 읽었습니다. 주인공인 케플러가 루터 아인호른의 치졸한 복수심에 불타 마녀라는 끔찍한 죄상으로 몰릴 때는 인간의 사소한 복수심에 얼마나 무서운지 처절하게 느꼈습니다(중세 유럽의 허위와 비인간적인 면들을 보면서는 지금 현 세대에 태어나 각종 문명의 안락함을 누리는 것에 감사하면서). 물론 지금도 완벽한 세상은 아니지만, 자신을 감시하는 감시병의 인건비와 자신이 감옥에서 먹는 음식에 대한 사회적인 비용, 자신을 태울 화형식에 쓰이는 장작비용까지 죄인이 모조리 부담했다고 하니 그나마 지금은 많이 좋아진 세상이지요(이점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민주화되지 못했다는 것에 많은 불만을 느끼고 있지만요). 중세시대 일반인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보너스입니다. 이렇게 재미나게 읽은 책이 저에겐 몇 가지 눈에 거슬리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카타리나 케플러>가 소설인 만큼 옮긴이나 아니면 출판사의 편집하신 분이 당시의 상황을 적확하게 알려줄 내용을 삽입했으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소설과 현실을 비교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원서를 번역만 했지 그 흔한 옮긴이의 말도 없이 세상에 선을 보였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출판사의 불친절함이 아닐까 합니다. 더불어 양장본이면서도, 그것도 아주 두꺼운 양장본이면서도 가름 끈 없이 책을 만든 것은 책을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근본 없는 짓처럼 느껴집니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꼼꼼하게 배려한(내용과 형식 모두) 책을 만나는 것이 독자들에게는 커다란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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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말부터 17세기로 접어드는 시기를 열정적으로 살다간 여인 카타리나 케플러. 카타리나 케플러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시대를 우선 알아야 한다. 당시 이웃들에 의해 마녀로 지목된 여인은 자신인 마녀임을 수긍하기까지 온갖 고문과 재판을 받아야 했으며, 그에 드는 비용은 피고인인 당사자가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 그 당시 지배자들은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 마녀사냥을 이용했으며, 주로 돈많은 과부들이 그 사냥의 목표가 되었단다. 한번 목표로 지명되면 절대로 풀려날길이 없어 편안한 죽음을 누리기 위해 금품을 쓰는 일도 허다했다는 사실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