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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위안페이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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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評傳)이라 함은 비평(批評)을 겸(兼)한 전기(傳記)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정치가나 기업인의 평전은 몇번 읽어 봤지만 교육자 그것도 중국 교육자의 평전은 처음이라 사뭇 흥미롭게 이 책을 읽어 내려 갔다.   이 책의 주인공 차이위안페이 [蔡元培(채원배), 1868~1940]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자. 그는 시대보다 먼저 ‘현대 중국’을 준비한 위대한 지식혁명가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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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評傳)이라 함은 비평(批評)을 겸(兼)한 전기(傳記)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정치가나 기업인의 평전은 몇번 읽어 봤지만 교육자 그것도 중국 교육자의 평전은 처음이라 사뭇 흥미롭게 이 책을 읽어 내려 갔다.

 

이 책의 주인공 차이위안페이 [蔡元培(채원배), 1868~1940]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자. 그는 시대보다 먼저 ‘현대 중국’을 준비한 위대한 지식혁명가였으며  중국의 윤리학자이자 교육자이다. 중국 교육회와 급진적인 혁명결사 광복회(光復會)를 조직하였고《소보》 발간에 참여하였다. 중화민국 성립 후, 초대 교육청장이 되어 근대 중국 학제의 기초를 세우고 베이징대학 학장을 역임하면서 5·4운동의 아버지라 불렸다.

 

현재까지도 중국인들은 그를 20세기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요, 걸출한 학자로 여기고 있다.

 

중국 근대사를 거쳐간 인물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차이위안페이는 지식인의 전형이요 선구자라고 칭할 만하다. 그는 민족혁명과 인권보장 투쟁에 일생을 바쳤을 뿐 아니라, 중국 근대교육과 과학발전의 기초를 닦은 개척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어린시절은 전통적인 중국 지식인의 성장과정이었다. 그는 26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원의 관리가 되면서, 전형적인 중국 관료로 탄탄대로를 열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1894년 갑오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크게 패하면서 차이위안페이의 사상도 크게 변화하게 된다. 그는 중국이 낙후해진 것은 선진적인 사상을 가진 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1905년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사오싱, 상하이, 항저우 등에서 학교를 운영하며 애국사상과 민권, 진보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한편으로는 정치조직인 광복회를 설립하는 등 쑨원과 같은 여러 혁명가들과 함께 봉건왕조를 대신하는 새로운 정치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1907년에는 유럽의 발전된 교육제도를 배우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이 성공하자, 차이위안페이는 교육부장관을 맡아 자신의 교육 이상을 실현할 바탕을 얻게 되었다. 차이위안페이는 우선 낡은 교육체계를 개혁했다. 경전강독만 중시하는 구교육을 배척하고 남녀의 교육평등, 근대식 학제 등을 실시했다. 이는 차이위안페이가 중국교육사에 남긴 가장 커다란 업적이다.


그는 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의 총통이 된 후에도 교육부장관으로 재직했으나, 그가 쑨원 등 혁명파와 약속한 바를 지키지 않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보이자 곧 사직하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일하며 공부하는 ‘근공검학勤功儉學운동’을 주도했다. 이때 2000여 명의 중국 학생과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며 학업에 정진했다. 훗날 중국의 지도자가 된 많은 유학생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 마오쩌둥毛澤東과 함께 중국 공산혁명을 주도한 저우언라이周恩來, 덩샤오핑鄧小平도 그 중 한 사람이다.

 

1927년에는 중앙연구원을 설립하고, 중국 근대과학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1937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70여 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제반침략대회 중국분회 주석으로 추대되어 활동했고, 상하이가 함락되자 홍콩으로 이주했다가 향년 7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이 책의 역자는 차이위안페이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20년 가까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원작자인 81세 백발의 후궈수 선생을 직접 만나 나이를 초월하는 우의도 다지고 그리고 수많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이 한권의 평전이 나왔다고 하니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c******g 2009.05.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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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위안페이 평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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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인물 중에 네가 아는 사람을 대봐!"   역사 전공자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에게 중국 근·현대사의 위인을 아는대로 말하라고 하면 누구를 말할까?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운 쑨원, 마오쩌둥....음.. 루쉰,천두슈? 나는 솔직히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차이위안페이를 접해보지 못했다. 문득 『차이위안페이 평전』이 출판되자 도대체 중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친 인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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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인물 중에 네가 아는 사람을 대봐!"

 

역사 전공자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에게 중국 근·현대사의 위인을 아는대로 말하라고 하면 누구를 말할까?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운 쑨원, 마오쩌둥....음.. 루쉰,천두슈?

나는 솔직히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차이위안페이를 접해보지 못했다.

문득 『차이위안페이 평전』이 출판되자 도대체 중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에

'평전'까지 출판될 정도인가.. 이런 생각까지 미쳤다.

 

그러나 차이위안페이는 내가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해야 할 인물이 아니였다.

마오쩌둥은 그를 "학계 태두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평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마오쩌둥이 그를 이렇게 칭송한 것일까?

 

이 책은 다른 평전과 같이 차이위안페이의 어린 시절을 시작으로 그를 그려나간다.

그는 어린시절 부터 과거 공부를 시작하였고, 그 후에 계속해서 시험에 응시해

26세떄는 최종적으로 복시에 응시하여 진사로 선발되었다.

그가 이렇게 진사로 선발되어 한림원에서 일할때에는 중국이 변법자강 운동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는 무술변법과 캉유웨이, 량치차오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다.

중국의 가장 격동스러운 근대 시기에 한 위인의 시각을 엿보는 것은 이 책이 주는 소중한 기회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차이위안페이의 행보를 보았을때 근대 혼란기의 중국 지식인들의 행보를 관찰할 수 있다.

과거의 합격자인 '진사' 차이위안페이가 근대화의 선구자가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롭지 않겠는가?

 

그의 근대사에 선물한 가장 큰 업적은 중국의 기둥같은 인물들이 양성될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신해혁명 후에 난징 임시정부의 초대 교육부장관을 지낼 정도로 이미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혼란적인 정국 사태에 사임하여 프랑스에서 근공검학운동을 전개한다.

그는 프랑스를 거울삼아 중국 근대교육제도를 개혁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런 근공검학 운동으로 프랑스에 오게 된 인물로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저우언라이','덩샤오핑'등이 있다.

위안페이의 노력으로 이러한 인물들이 교육을 받고 중국을 짊어 질 인재들로 배출 된 것이다.

그가 중국에 미친 영향력은 근대를 넘어 현대 중국에 까지 미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아직 그의 인생의 전반기 밖에 다루지 않았는데도 그가 중국 역사에 미친 영향력은 엄청나다.

간략하게 다뤄도 그의 업적은 이 작은 공간에 담아내기에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앞숴 다룬 업적 이외에도 5·4운동 전개에 결정적 역할을 하여 중국에서 '5·4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또한 신문화 운동을 주도하였고 중국 근대 교육, 과학 기반에 엄청난 기여를 하였다.

 

이 차이위안페이라는 중국의 거목을 나는 대체 왜 이때까지 알지 못하였던 것일까?

다른 이들에게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추천한다. 특히 근대 중국사를 알고자 하는 이에겐

이 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근대 중국과 위안페이는 물과 물고기 같이 떨어뜨려 이해할 수 없는 관계이다.

나 처럼 뒤늦게 위안페이를 깨닫고 부끄러워 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b******t 2009.05.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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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선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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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의 어수선함에 대한 정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이루어가는 가장 기본이 되는 그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의 시기를 둘러싸고 평가와 재평가, 인식과 재인식이란 제목의 책들이 서로 뒤엉켜서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것이 오늘날 우리사학계의 현실이다. 해방공간은 우리나라 역사중 가장 사료가 풍부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 시기에 대한 입장차이가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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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의 어수선함에 대한 정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이루어가는 가장 기본이 되는 그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의 시기를 둘러싸고 평가와 재평가, 인식과 재인식이란 제목의 책들이 서로 뒤엉켜서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것이 오늘날 우리사학계의 현실이다. 해방공간은 우리나라 역사중 가장 사료가 풍부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 시기에 대한 입장차이가 이렇게 극명한 것이다.

 

물론 100년전 대한제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그 시절에 우리가 어떤 대처를 하였어야 옳았느냐에 관한 올바른 역사적 인식 또한 세워져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시절에 대한 연구를 회피하는 경향마저 있고, 그 시절에 대한 기본적인 사료의 발굴과 정리 또한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바로 우리의 국운이 흔들리고, 마침내 식민지를 경험하게 되던 그 기간을 중국을 살아가던 사람이 있었다. 차이위안페이라는 낮선 이름의 사람이다.

 

우리에게는 손문같은 사람밖에 알려져 있지 않은 그 당시의 중국. 그러나 그 수많은 인구를 품고 있는 중국에 뛰어난 인물이 어찌 한사람 밖에 없었겠는가. 중국에서는 차이라는 한단어만 대도 바로 차이위안페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대단한 유명세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 사람이 긴 세월을 넘어서 이제야 우리에게 그 삶의 족적이 알려지게 되었다.

 

차이위안페이는 진사로 급제한 사람이다. 청조 말기에 관료의 말단으로 입문하였으나, 변하는 시대를 간파하고 변혁운동의 중심에 스스로를 세운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은 사람이다. 새로운 학문과 새로운 사상을 공부하고, 국제정제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알맞은 학문을 전파하기 위한 교육기관을 세운 교육가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가 혁명을 위해 실제로 변혁운동의 중심이 선 실천가이기도 하다.

 

그의 모습들에서 비슷한 시대를 살아간 우리의 애국선열들의 모습을 본다. 변혁을 준비하고, 교육을 외치고 학교를 세우고, 일제의 모진 탄압속에서도 자신의 열정과 긍지를 잃지 않았던 우리의 선조들. 같은 시기를 살다간 그에게서도 같은 모습을 본다. 단지 더 큰 무대에서 더 복잡한 상황을 맞이하여 더욱 힘든 고민을 하면서 살아왔었고, 부럽게도 이렇게 두터운 평전이 발간될만큼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후세의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고 있다. 이제는 이름만 알려지고 희마한 행적만 남은 우리의 애국선조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s***g 2009.05.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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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위안페이 평전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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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차이위안페이낯설은 이름이다. 이 책을 받기 전까지는 한 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는 인물, 차이위안페이. 그는 어떤 사람인가?그에 대한 요약된 설명 글에서, 그를 20세기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 걸출한 학자라 부르고 있으며, 민족혁명과 민권보장투쟁에 일생을 바치고, 중국 근대교육과 과학발전의 기초를 닦은 개척자라 설명하고 있다.평전과 자서전류의 책을 선택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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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차이위안페이

낯설은 이름이다. 이 책을 받기 전까지는 한 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는 인물, 차이위안페이.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에 대한 요약된 설명 글에서, 그를 20세기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 걸출한 학자라 부르고 있으며, 민족혁명과 민권보장투쟁에 일생을 바치고, 중국 근대교육과 과학발전의 기초를 닦은 개척자라 설명하고 있다.

평전과 자서전류의 책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인물의 매력이다. 인물의 인생이 어떠했으며, 얼마나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글이 얼마나 잘 쓰여졌는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 글은 부차적인 문제로 인물의 매력을 보고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인물의 매력이 글을 압도해 버리는 경우이다. 예전에 읽었던 체게바라와 같은 평전이 그러한 경우이다. 책은 재미없지만, 체게바라라는 인물에게 관심이 있어 책을 읽었던 경우이다.

이와 반대로 글 솜씨만으로 평전류의 책에 생명을 불어넣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한 자리 좀 했다 싶으면 너도 나도 대필 작가를 불러 써대는 자서전을 보노라면, 글솜씨가 있는가는 차치하고 과연 누가 저 사람들 인생을 읽어보려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그의 이해관계자들이 억지로 책을 구입해 책을 뿌려, 책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 책을 출판하기 위해 벤 나무에게 미안한 일이다.

자고로 평전이라 함은, 인물의 매력에 글솜씨까지 더해 문학적 성취까지 달성함을 목표로 해야 한다. E.H.카의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이나 우리 시대의 필독서가 된 《전태일 평전》, 김구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와 같은 책이 바로 그러한 책들이다.

차이위안페이는 그러한 면에서 인물에 대한 매력은 중간 정도에, 글 솜씨는 평균보다 아래에 둘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아마 이는 나의 개인적인 관심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렸을 때 60권짜리 위인전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 유일하게 읽다 만 것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바로, 차이위안페이와 동시대를 살다 간 쑨원이었다. 책이 재미없었던건지, 쑨원의 인생에 관심이 가지 않았던 건지, 그 두가지 모두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다분할 것이다. 그후로도 내가 중국의 근대사에 대해 알게 될 계기는 거의 없었다. 청말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해, 쑨원 이후 덩샤오핑과 마오쩌둥으로 이어지는 역사에 대해서 무지했고, 차이위안페이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러한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차이위안페이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할 것이고, 관심이 없다면 읽어도 흥미를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j****7 2009.05.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