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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으스스한 기운에 온몸이 떨렸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냥 우중충한 기분이 들었을 따름이다. 읽고 있는 책 때문이었으려나. 책 제목을 보고 어렴풋이 나이 사십대를 떠올렸다. 십대 땐 스무 살이 되어 누릴 수 있을 자유를 찬양하기 바빴다. 이십 대가 되어서는 삼십 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더는 젊지 않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난 책을 읽으면서 추천의 글이나 작품 해제 등은 건너뛰는 편이다. 마치 시험을 치른 후 정답지를 확인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싫다. 항상 내가 책을 옳게 읽었는지 여부가 미심쩍으나 나름 즐겼으므로 충분하다고 여기려 노력한다. 친구 중 하나는 어여 나이가 들어 사십 대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그 연령대가 되면 웬만한 건 다 결정이 돼 더는 흔들릴 이유가 없을 거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항상 현재만을 살 수밖에 없는 우리에겐 하루하루가 선택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하나를 결정했다고 모든 의문이 사라지는 건 아님을 잘 알아서 난 그녀의 말에 동조하지 못했다. 다만 지금보다는 더 삶이라는 놈에 익숙해지지 않을까 막연히 짐작한다. 사십 대에는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지루함보다 안정감을 발견하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선택을 했다. 작품 속 사십 대 인생들로부터 우중충함이 엿보였다. 안정감에 안주하기에 그들의 흥미를 탐하는 마음은 컸다. 나이는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했다. 결국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일탈’이라는 결과가 탄생했다. 그 연령대가 원래 그런 것이려나. 내 주변 사람들은 그래도 다들 잘 사는 걸 보면 마냥 부정적으로 그릴 필요는 없을 것도 같은데. 아직은 모르겠다. 젊게 살고픈 마음과 남들과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늙어가야겠다는 마음이 수시로 내 안에서 부닥친다. 그렇게 인 불꽃이 내 전부를 훨훨 태우지 말란 법은 없다. 인생은 흐름이었다. 과거와 결별을 선언한다 하여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전혀 다른 인물이 될 순 없었다. 딱히 내세울 것도 없고, 굴곡 또한 없어 보이는 인물에게서 어둔 면모가 드러난 건 우연한 만남 탓이었다. 최근 들어 더욱 강렬해지고 있는 학교 폭력. 그는 언제나 된통 당하는 쪽이었고, 폭력이 덜하다 싶은 순간이면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힘들지만 가해자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비열한 삶은 언젠가는 심판 받으리라는 권선징악 논리를 기대하며 버티었지만, 그의 눈앞에 나타난 인물은 선하디 선해 보이는 탈을 쓴 상태였다. 더 이상은 육체적 폭력이 용납되지 않을 세계에서 그의 눈동자는 다시 한 번 떨린다. 아무도 그를 해할 수 없으리라는 믿음이 무너지고 다시금 어린 아이가 되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형태만 조금 달랐을 뿐 모든 곳에서 적용되는 힘의 논리를 축소해놓은 것이었다. 온몸으로 부정해온 바를 인정할 수밖에 없단 사실이야말로 어른이 된 주인공의 전부를 뒤흔든 폭력이었다. 어른이라 하여 폭력에 꼭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건 아니다. 작품 ‘흰 개와 함께하는 아침’에서는 이 또한 사랑이려나 싶은 감정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혼란스러웠다. 주인공은 여성 등장인물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음에도 아무것도 결정짓지 못한 채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인다. 그와 한때 함께였던 현수가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나게 만든 것은 그의 결단이 아니었다. 이제는 떨궈내고픈 존재가 돼 버린 수옥에 대해서도 속으로는 분노를 표출할지 몰라도 겉으로는 강하게 내치질 못한다. 그런 그가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내던진 게 개였고, 그 개의 이름이 ‘김수영’이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했다. 지인들의 웅성거림 앞에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정리치 못하던 그가 하필이면 김수영을 내던지다니. 제 안에 깃든 일말의 저항정신을 그렇게라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려나 싶어서 씁쓸했다. 그 순간에 김수영은 말 못하는 강아지가 아니라 주인공의 표출되지 못한 진심을 담아낸 올곧은 존재였다. 내쳐짐을 당함과 동시에 부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아니다. 사십 대에 대해 나는 이제껏 환상을 강하게 품어왔던 모양이다. ‘흉몽’의 주인공은 IMF를 겪으며 시장경제 밖으로 밀려난 우리네 부모 세대와 닮은꼴을 하고 있었다. 한때 능력자가 아니었던 인물은 없다. 주인공은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해도 별다른 화를 입지 않는 실세 중의 실세와도 같았다. 입술을 잃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떵떵거리며 회사를 지배했을 것이다. 입술이 없으면, 일단 얼굴이 볼품없어질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발음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게 힘들 것이고, 음식물을 먹는 일 역시도 고행으로 돌변할 듯하다. 생각은 많으나 입 밖으로 아무것도 낼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작아진다. 주인공에게 날개를 달아줬던 게 편집 실력만은 아니었음을, 저자는 주인공에게 사회적 죽음을 선사함으로써 일깨운다. 그는 이제 삼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숲을, 그것도 깜깜한 밤에만 바라보아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이는 그러고 보면 숫자에 불과한 게 결코 아니다. 마흔이 넘었다고 모든 게 구차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떼어낼 수 없을지라도 과거와 결별해야 하는 나이란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미 어느 정도는 인생의 쓴맛을 느껴본 나이, 순수함에 기대기엔 현실을 너무도 정확히 이해하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건 새로운 사랑이지 지나간 사랑은 아니었다. 근데 사십 대는 ‘안다’는 사실에만 의존해 무쏘의 뿔처럼 나아가서는 안 되는 나이이자, 알아야만 하는 것을 모른 채 성공을 도모하는 것 또한 용납이 안 되는 나이기도 했다. 당신은 이단을 처단하겠다며 무모하게 돌계단을 기어오르는 이경섭과 닮은꼴을 하고 있진 않은가. 결과적으론 옳았으나 사회로부터는 버림 받은 유경배가 되어가고 있진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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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보면 사십사가 나이 44세를 뜻하겠구나 생각을 하게 된다. 책에서는 어쩌다 어른이 돼버린 40대 사람들의 내용을 소설로 만든 책인데, 마치 작가가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세대의 연민으로 극대화 시킨기분이 든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40대들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한번 쯤 우리들의 젊은시절부터 함께 해온 친구와 같은 이야기를 읽고 공감하며 추억에 잠시 빠져도 좋을것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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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사십사는 숫자 44이다. 이 숫자는 등장인물의 나이를 의미하기도 하고 단편 『四十四』에서 여주인공 제민이 입는 옷 사이즈를 의미하기도 한다. 중년(中年)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작가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 중년의 의미를 여러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우선 소설집 내 모든 작품의 주인공들은 중년이다. 소설집의 제목처럼 44세의 주인공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정확한 나이가 명시돼 있지 않지만 40대 중반이거나 50쯤 되는 중년이 나오기도 한다. 작가는 중년은 대개 무기력하고, 졸렬하며, 비겁하다고 말한다. 『흉몽』은 어느 순간 갑자기 입술이 잘려나간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문예사의 편집자로, 유능했으나 남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이였다. 입술이 잘려나간 후 그의 삶은 온통 엉망이 된다. 자살도 실패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대상을 찾지 못한 분노를 투사할 대상이다. 이렇게 삶은 예고 없이 일그러질 수 있고, 그때 우리가 행한 무례들은 그대로 우리에게 돌아온다. 『사라진 이웃』에서는 실직 후 술만 마시다 이혼 한 무기력한 가장이 나온다. 용역 일을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가 않고 창피만 당한 뒤 용역 일을 잃는다. 이 가장은 무력하게 껍질 안으로만 들어가는 달팽이 같다. 무력하게 침잠한 중년은 딸의 삶도 알지 못한다. 『더 송 The song』에서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중년의 교수가 나온다. 그는 요즘 흔히 말하는 '개저씨'에 가까운 인물이다. 졸렬하고, 무례한 그의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끝내 남 탓만 한다. 『흰 개와 함께하는 아침』에서도 중년의 교수가 나온다. 지금 살고 있는 젊은 애인과 동거를 시작할 때 이전의 애인을 졸렬하게 내친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애인에게 짜증과 분노가 치밀지만, 그는 "사랑이 어딨나.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중얼거리며 차 밖으로 그녀의 애완견을 던져 버릴 뿐이다. 만약 곱게 늙는 법을 곱게 전달했으면 참 재미없는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이 망가지고, 피와 살점이 튀는 이야기로 뻔한 교훈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한편 무기력한 인생은 뜻하지 않게 변곡점을 찍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아내의 시는 차차차』에선 은행을 다니다 조기 퇴직하고 치킨집을 말아먹은 후 백수로 지내는 중년 남성이 나온다. 그는 교사 아내에게 용돈을 받고 지내던 중 우연히 백화점 문화센터의 교양 시 강좌에 참여하게 된다. 그곳에서 기발한 방법으로 '술집 시 선생'으로 거듭나고 6년 전 만났던 여성을 다시 품게 된다. 그의 아내에겐 새로운 남자가 생긴 듯하지만, 상관없다. 그의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인생의 희비를 함수 그래프로 그릴 수 있다면 어떻게 그려질까. 이 소설집에 의하면 그래프 전체 모양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중년은 변곡점에 해당할 것이다. 오르기만 했던 삶이 갑자기 내려가고, 반대로 내려가기만 했던 삶은 사소한 일을 발판 삼아 다시 올라가기도 한다. 또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되살아난 기억이 행하는 폭력에 대한 서술이다. 『한 박자 쉬고』에선 주인공이 과거 자신을 심하게 괴롭히고 끔찍한 기억을 안기던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본능적으로 분노가 치밀고, 거부감을 느끼지만 끝까지 그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 이전의 관계를 다시 강요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명확해 보이지만 공포를 기억하는 몸은 생각과 다르게 반응한다. 그는 잊고 싶었던 기억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중년은 그렇게 무기력하다. 『四十四』에선 마흔네 살의 미혼여교수가 나온다. 그녀는 우연히 오래전의 연인이었던 윤 교수를 만난다. 윤 교수는 젊었을 적 그녀가 갖지 못한 걸 가지고 있고, 세련된 외모를 가졌었다. 하지만 지금 중년의 그녀보다 더 늙어버린 윤 교수는 머리도 벗어지고 이전의 용모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녀는 교수에게 품었던 연정이 모두 사라지는 걸 느끼지만, 윤 교수는 그녀에게 추근 댄다. 지금은 원하지 않는 이전의 관계를 강요당할 때 기억은 폭력으로 작용한다. 『네 친구』는 『四十四』의 여주인공 제민의 친구 혜진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그녀는 대학교 친구 세 명과 이태원의 한 식당에서 만난다. 그곳에는 이전에 처음으로 원 나이트 한 남자가 셰프로 일하고 있다. 이 짓궂은 우연과 친구들의 몽니는 혜진에게 수치심을 준다. 한편 병치되는 혜진의 회상에서 교회에서 만난 한 여자는 도저히 기억나지 않지만 혜진에게 오래전 자신이 고통받았다는 듯한 뉘앙스의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네 친구에서 나머지 한 명은 원 나이트 한 셰프일까, 교회에서 만난 여자일까. 어쨌든 셰프와의 기억은 수치를 주는 폭력으로 작용한다. 교회 여자는 정말 자신이 기억 못 하는 것일지도, 아니면 교회 여자가 미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인지하지 못하던 망각을 인지할 때 그것이 폭력으로 작용함을 말한다. 참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선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이걸 다 읽고 나면 중년의 삶이란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탄식을 내뱉게 된다. 이 적나라한 중년의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소아가 작은 성인이 아니듯, 중년도 나이만 먹은 청년이 아니다. 작가는 아마도 염치없는 중년들의 이야기로 하여금 독자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피할 수 없는 나이 듦이지만, 우리가 피해야 할 것들은 모조리 이 이야기 속에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중년이 채 십 년도 남지 않았구나. 어쨌든 나는 다시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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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잘 쓰여진 소설집이다. 읽고 난 후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인터넷을 더 뒤져봤었더랬다.
일단 첫 단편을 보고,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 공부를 잘 했던터라, 누구한테 얻어터지지도 않았고 삥뜯기는 일없이 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책속의 주인공처럼 20년이 넘어도 꼴보기 싫은 인간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고향에 내려 갈 때에는, 특히 고향에 가서 이마트를 들릴 때에는 제일 좋은 명품 브랜드를 걸치고 장을 보러 간다. 왜냐면, 아무래도 마트에서 어릴적 알던 사람들과 마주칠일이 많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런 내 마음과 똑같게, 더한 나쁘고 더러운 기억을 갖고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되는 그 부분의 묘사 부분이 나는 좋았다. 아마, 나 였다면...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았을테지만.
세번재 단편에서 어린 김수영(개)을 차 밖으로 던져 버리는 장면은 임팩트가 있었고, 소설집의 제목과도 같은 '사십사'의 사십네살의 여주인공의 공황장애 역시 일정 부분 많은 공감이 되었다.
아쉬운 부분은 분륜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건데, 바람을 피우는 사람이 과연 그렇게 많을까 싶다. 요즘은 경기가 어려워서 바람피우기도 녹록치 않을텐데.
여하튼, 이 소설집을 따라 읽다보면...꼭 머리위에서 인간의 삶을 하나 하나 넘겨보는 듯한, 특히 사십대의 삶을...그 생각을 관통하는 듯한 시선을 갖고 있는듯하여...앞으로 사십대를 살아가야하는 나는 헛으로 읽을 수가 없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할텐데.
읽으면서 생각한건데..사십대는 젊음과 늙음의 중간이 아닐가 싶다 아니,,,물리적으로..육체적으로 발악하면 가장 마지막으로 그 아름다움을 다 할 수 있는 나이일 것 같기도하고. 그래서, 오십이 되기전에..더 바쁘게 살고... 오십이 되면...지나온 내 사람을 예쁘게 보듬어 보리라.
그의 다른 작품들도 조만간 다 읽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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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와 함께하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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