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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리뷰를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찾아온 허무라고 할까? 잔뜩 기대를 하고, 줄거리며 갖가지 리뷰 또한 어렵게 외면하고 읽은 책. 예전부터 좋아했던 이응준이란 타이틀에, 나름 쌈박한 제목까지... 문득 책읽는 낭만푸우 님의 댓글이 생각났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타격이 클 것 같다는...
책을 열자마자 떠오른 또 하나의 소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시간적 차이가 있고, 주객체가 바뀐 정도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가슴이 슬며시 뛰기 시작하며 책장을 넘겼다. 2016년 남한의 북한 흡수 통일. 통일 원년이 등장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이북 조폭, 서울 한복판 그들의 아지트인 은좌 요정, 그외 조폭 계보에 따라 등장하는 2인자, 3인자, 조무래기, 그리고 반대파.
중간중간 통일 전 이북의 참상이 그려진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그들의 삶. 체제의 붕괴 뒤에 찾아오는 이북 사람들의 후유증, 그것을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의 적대감 내지 불편함(남한 사람들의 얘기는 별로 거론되지 않는다. 이선우라는 약간은 상징적인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또한 별로 와닿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는 건 등장 인물의 면면을 제대로 담지 않아서, 캐릭터에 잘 집중할 수 없었던 점이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딸인 일화가 은좌 요정의 에이스로 활동하고, 김일성대학의 철학과 교수인 남기정 박사가 조폭 조직의 고문으로 일한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보인다. 그들의 뒤바뀐 삶이나 행동들이. 허나 조직의 보스인 괴물 오남철, 무당인 10대의 장군도령, 북한에서 수재였던 동철. 남한 조폭의 의붓딸이자 첩으로 등장하는 윤상희.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리강과 의문의 죽음을 당한 림병모, 마지막으로 배신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3인자 조명도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명쾌한 캐릭터가 없었다.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부족한 듯 보였다.(좀 위험한 발언이긴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누와르와 스릴러, 역사와 추리, 블랙코미디와 멜로, 신화와 우화 등 다양한 장르가 이합교배하여 탄생한 이 소설. 서사의 내러티브보다 영상에 의존한 영화적 서술이 눈에 거슬렸다. 또한 우연과 비약이 난무한다.
주인공 이강이 석연치 않은 동료의 죽음을 캐다가, 우연히 백도라지(마약류)를 살상용 화학물질이라고 깨닫는 점. 은좌 지하2층에서 조직 부하들이 월드컵 축구를 보다가 우발적으로 서로에게 총격을 가해 모두 사망한 점. (물론 급작스럽게 김덕곤과 최영환의 에피소드가 등장하긴 하지만) 윤상희가 느닷없이 등장해 리강을 구하고 죽는 장면.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쉽게 이미지를 떠올릴 지 모르겠으나, 좀체 점핑을 거듭하는 글을 따라가다보면, 이응준 작가가 얘기하고자 한 국가의 사생활은 오간데 없다. B급 영화의 허무한 결말이라고 할까? 중간중간 주체사상과 유물론이 시시한 농담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아마도 국가의 사생활이란 통일과는 관계없이 결국엔 자본주의라는 욕망의 바벨탑(은좌) 속에서 펼쳐지는 '어두운 신세계'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별로 엿보고 싶지 않던, 남의 사생활을 훔쳐본 것 같아 민망하면서도 뒷맛이 개운치 않아 씁쓸함이 남는다.
PS) 미안합니다. 이응준 작가님. 뒤에 나오는 도움 받은 책들을 보면서 문학 이전에 문학에 대한 과학을 잃진 않았다고 하셨던... 그 창작의 고통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독자들의 성향 또한 다양한 지라 무례한 리뷰에 심심한 사과를 드리며 재미있게 읽어주길 바란다는 작가님의 당부를 받아들이지 못해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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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누가 이응준의 소설을 가리켜 "눈이 썩어버릴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래도 아무려면 문예지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나름 꽤 괜찮은 제목을 뽑아내는(솔직히 <국가의 사생활>도 제목은 멋있지 않은가), 등단까지 한, 70년생 작가가 눈이 썩어버릴 정도의 소설을, 설마 쓰겠냐,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가능하더라.
읽으면서 "내가 발로 써도 이것보단 잘 쓰겠다"란 생각이 드는 일은 흔치 않은데, 이 소설이 오랜만에 그런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박청호의 <갱스터스 파라다이스>와 윤고은이 <무중력 증후군>과 함께 '근래의 최악의 장편소설' 부문의 강력한 후보이다.
"흡인력? 그게 뭐임? 먹는 거임?" 수준의 문장도 안타깝지만, 정말 웃긴 건 그게 나름대로 '누아르'라는 티를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문장만 짧으면 다 건조한 묘사고. 피나오는 장면 묘사하면 그게 다 누아르냐.
나름 "통일한국 이후를 묘사한 누아르"라는 단어에 낚여서 통일 이후 급변한 한국 사회의 타락한 모습에 대한 묘사와 그 타락한 사회에서 진행되는 강력한 음모와 그 음모에 원치않는 방식으로 엮여져 버린 힘없는 개인의 저항 같은, 나름 "더쉴 해미트"나 "레이먼드 챈들러" 식의 소설을 바랬었다. 그리고 나름대로는 작가도 그런 걸 원했던 것 같다.
근데 정작 써놓은 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도 짐작이 안 가는 독가스(였던가?) 테러리즘 타령이다.
기사 보니까 나름 3년 동안 자료조사하고 열심히 쓴 모양인데, 이 정도 결과물이 나오는 거 보면, 이건 그냥 재능부족이라는 소리밖에 안 나온다. 그렇다고 통일 후의 사회가 나름 현실감 있게 그려지는 것도 아니고, 이북 사투리 하는 갱단 몇 개를 이상하게 그려놓더니, 사건이 스릴러처럼 짜맞춰지지도 않고, 등장인물은 미국 B급 영화에서나 보던 행동을 좀 하고, 별다른 추리과정도 없이 범인은 쓱- 밝혀지고, 마지막엔 이상한 독가스(였던가?) 테러리즘이 튀어나오고. 그래놓고는 '누아르'라고 우긴다.
아, 그리고 읽다가 생각난 건데, 심지어 누아르는 소설 장르가 아니라 영화장르다. 보통 '하드보일드' 소설을 영화화 할 때 '누아르'라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주로 내용보다는 5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조명 등의 영상 기법에 따라 '누아르' 장르로 판별하는 기준이 되므로, 소설에 '누아르'라는 장르를 갖다 붙이는 건 씨발 마케팅 외엔 별다른 이유가 없어 보인다.
나름 황인종 갱단 나온다고 <영웅본색>같은 '홍콩 누아르'를 생각한 건 아니길 바라고.
또 나름 '한국식 누아르'같은 걸 만들고 싶었어요, 라고 변명하려거든, 그건 이미 이창동 선배가 했다. <초록물고기>라는 걸작 영화 데뷔작으로.
정말이지, 나름대로 노력해서 쓴 소설이라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지만, 이응준 씨, 님은 좀 재능이 부족하신 것 같아요. 아님 소설에 대한 감각이 약간 떨어지시는 것 같아요. 이것보다 훨씬 시시한 얘기로도, 이것보다 훨씬 잘 쓰시는 다른 분들이 너무 많네요. 그러니 취미삼아 소설을 쓰셔도 좋고, 책을 내셔도 좋고, 다른 건 다 좋은데, 이상한 마케팅으로 저처럼 돈없고 불쌍한 독자들을 낚진 마세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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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남한에 흡수통일된 지 5년이 지난 가상의 설정 위에 이 소설은 전개된다. 63년 동안 남과 북은 통일을 염원하고, 통일 이후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설계를 해 왔지만, 현실은 다르다. 엄청난 통일비용과 함께 반세기 넘게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왔던 남과 북의 사람들은 서로 동화되지 못한다. 북한 영토는 남한의 기업에 의해 부동산 투기와 개발의 대상으로 전락했으며 인민군 복장과 북한식 말투는 비웃음 어린 유행으로 전락한다.
비밀을 지키듯 상상하던 풍요로운 낙원 그 서울이 아니라, 아귀 같은 인파 속에서 헛되게 청춘을 소비하면서 느끼는 화려한 지옥. 진짜 서울이었다. (34쪽)
전국에는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북한 출신자들의 빈민촌이 수십 개씩 생겨나고 서울의 사창가와 술집은 북한 여성들이 없으면 유지가 안될 정도이다. 북한 여성들은 남한의 고관대작들에게 몸을 팔고, 7~13년간 군생활을 했던 북한 남성들은 범죄조직에 흡수되어간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설정이다. 대한민국의 기업가나 정치가들이 통일 이후에 북한 영토와 여성들을 어떻게 취급할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부동산이 중심이 된 거품성장의 단물을 빨아먹다가 한계에 부딪혀서 경제위기에 직면한 그들이 북한 영토를 어떻게 다룰지는 뻔하다. 게다가 북한 여성들의 고운 미모와 순진함은 통일 이후 환락문화를 팽창시킬 주동력으로 작용하리라.
북조선과 남조선의 강력한 공통점은 고위층의 속물근성이었다. (38쪽) 120만이 넘는 정규군을 가진 북한군의 해체 과정에서 대량의 무기가 시중에 흘러들게 되고, 급작스럽게 군대에서 내몰린 북한의 청년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여 먹고 살 방안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다. 소설은 이북출신자들이 만든 범죄조직 "대동강" 내에서의 권력암투를 통해 전개된다. "대동강"의 구성원들은 다양하다. 교수, 의사, 학생, 정치범, 전직 군인과 고위권력자 등 남한에 흡수되어 사라진 북한의 거의 모든 계층들이 고루 섞여 있다. 게다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 중 대다수는 통일정부의 주민등록화에서 누락되고 이들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대포인간'으로 살아간다.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삶은, 음지의 삶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시종일관 다음과 같은 양비론과 허무를 내뱉는다.
"자본주의란 게 결국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바다야. 어디에도 육지가 없는 바다. 사내들은 제 손바닥만 한 배에 돛을 올리고 조만간 어딘가에 도착할 수 있다고 믿지. 어리석은 짓이야. 정박할 땅이 없는 배가 바다를 이길 순 없다." "...... 그럼 사회주의는 뭡니까? 육지가 보이는 바답니까?" "뻥이지. 뭐. 들통 났잖아?" (80~81쪽) "대동강"의 단장인 오남철은 두 명의 심복을 두고 있다. 혁명 1세대인 리장곤 대좌의 후손인 북한 특수부대 출신인 리강과 북한에서는 평범한 계층이었지만 통일 후 남한식 자본주의에 빠르게 적응하는 조명도. 리강과 조명도는 서로를 견제하는 축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면한 이북의 두 얼굴로 읽혀진다. 혁명원로였던 할아버지가 지키려고 했던 사회주의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 의해 독재로 변질되었다. 통일 이후 북한군 특수부대 장교였던 리강은 사라진 조국과 적응이 되지 않는 남한식 자본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허무를 내면화하면서 기계처럼 살아간다.
이제는 변화시키고 싶은 간절한 모든 것들이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71쪽)
남한에 적응하며 조직 내에서 반란을 모색하는 조명도와 리강은 동료지만 화합하지 못한다. 단장 오남철은 리강에게 조용히 충고한다. "리 부장. 자본주의는 화내는 게 아니야. 못 본 척하는 거지. 그럼 남조선에서 즐거울 수 있어." (81쪽) 단장 오남철은 남한 사회에 대해 극도의 불만을 지니는 동시에, 남한에 흡수되어 빈민화 되어가는 이북동포들에게도 경멸을 품고 있다. 오남철은 남한 정부가 빈민이 된 이북민들에게 제공하는 무료급식에 페스트균을 넣어 폭동을 야기할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다. 그런 오남철의 계획에서 방해가 되는 것은 리강이다. 단원을 교육하거나 일처리를 하는데 있어서 리강만큼 신뢰할 존재는 없지만 혁명 원로의 자손으로서의 자긍심이 통일 이후에 철저하게 붕괴된 채 허무에 젖어 있던 그에게 거사의 당위성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결국 일의 처리는 리강의 친구 림병만에게 돌아가고 오남철은 리강을 평양으로 파견보낸다.
소설의 시작은 오남철의 거사에 불만을 품었던 림병만이 살해되고, 평양에 파견갔다가 돌아온 리강이 림병만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리강은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부패경찰과 "대동강"에서 관리하는 룸살롱 "은좌"의 마담들을 탐문하면서, 조명도와 오남철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조직 보스의 정부인 윤상희를 구해주면서, 수십년 동안 북한군대와 통일한국의 조직에서 '살인기계'로만 살아왔던 리강은 서서히 감정의 기복과 떨림을 경험하게 된다.
리강이 친구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스쳐가는 통일한국의 모습들은 통일 이후 닥칠 현실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게 묘사해 나가고 있다. 북한 사회체제에 익숙한 수천만의 동포들은 타자화될 것이고, 오직 자본의 논리와 잉여가 된 폭력성이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 이 전망을 과연 우리는 부정할 수 있을까.
"이 사회는 괴상한 정의감이 있어. 큰 정의에 대해서는 솔깃해하지만 신체 장애인이나 정신 장애인은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폭력이지. 폭력. 만일 누가 내일 당장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면 반대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 것 같아? 제2의 박정희가 등장해 주기를 이남 사람들은 학수고대하고 있어. 이북 사람들은 제2의 김일성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럼 이남과 이북의 동상이몽이 바라는 바는 베트남의 호치민이 아니야. 위대한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거든. 소심한 신을 기다리고 있는 거거든." (156쪽)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자주케 하는 것이라고? 맞아. 그런데 이북 사람들과 이남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하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어. 저 끔찍한 시점에 거의 다다른 것 같다." (183쪽)
이 소설에 희망의 전언이나 풍경은 뚜렷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일이라는 맹목적인 당위를 논하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에 충분하다. 행정, 치안, 국방, 윤리,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통일국가는 허술하기 짝이 없으며 국가는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이응준은"통일을 준비하라"는, 국가를 향한 메세지를 작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동강" 내에서의 다양한 인물군상을 통하여 통일이 된 이후에는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의 욕망이며, 개인의 구원과 윤리를 국가가 해결할 수 없다는 시선을 견지한다. 국가는, 정부는, 민족은, 어설픈 동정은, 개인을 긍정할 수 없다. 인간은 이기적인 욕망덩어리이며 신뢰와 우정, 사랑과 같은 관념도 사회적인 자장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지 않은가. 통일이 된 이후에도 각기 다른 체제 아래서 오랜 시간을 보낸 남과 북은 분명히 갈등을 일으키리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피해와 상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이응준이 주목하는 것은 통일에 대한 메세지나, 대비책과 같은 '제도의 정비'가 아니다. 맹목적이며 근시안적인 동포애와 사랑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환란의 풍경을 단지 보여줌으로서 환란이 어떻게 성찰로 이어질 수 있는가, 라는 화두가 아닐까.
<느릎나무 아래 숨긴 천국>,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약혼>, <무정한 짐승의 연애> 등 전작을 살펴볼 때 이응준은 주로 청춘의 결핍과 방황, 그리고 출구 없는 현실에 대한 허무를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그리고 시적인 문체(실제로는 그는 뛰어난 시인이기도 하다) 를 통해서 아포리즘과 몽환이 뒤섞인 감각적인 문체를 통해서 아름다움과 슬픔의 정서를 그려왔다.
따라서 이 소설을 접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변화"에 놀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전작주의자인 나는 그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적(詩的)인 소설을 쓰던 자가 하드보일드 스릴러물과 같은 차갑고 냉정하며 빠른 속도의 소설을 썼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히 변화이다. 그러나 나는 이응준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문체와 속도만이 바뀌었을 뿐. 그가 던지는 화두와 응시하는 것은 늘 비슷하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과 수없는 무의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이 새로운 소설의 말미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서 나는 확인했다.
환란은 그래서 때로 필요하다.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변화해 치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가 슬프면 마음이 열리고 몸이 아프면 시가 잘 써진다. ('작가의 말' 중)
인간의 삶에서 확연한 해결책과 구원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행복을 꿈꾸지만 끝내 완전히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어느 순간 죽는 존재에 불과하다. 어떤 거대한 정치적인 수사로도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분단이나 통일과 같은 환경의 변화도 그것을 바꿀 수 없으리라. 노래가 슬프면 마음이 열리고 몸이 아프면 시가 잘 써진다는 이응준의 말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노래와 시는 제도와 행정을 바꾸는 현실적인 힘을 지니지 못한다. 다만 노래와 시가 움직이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아닌 개인의 '마음'이다.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지옥을 노래할 때, 그것은 개인에게 어떤 성찰과 경각심을 선사하며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한 성찰의 과정이 비로소 정치와 예술을, 국가와 개인을 이어주는 작은 계기가 아닐까. <국가의 사생활>은 그런 의미로서 하나의 화두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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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다 썼던 리뷰를 날렸다. 너무 혹평을 해서 그런가? 다시 쓰려니 참... 기운 빠진다. 대충만 요약해보자.
1. 예고편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오히려 본편이 빛을 바랜 영화같다.
책소개만 보고는 도저히 감당을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참혹한 내용을 담은 책을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그러나 너무 담담하게 읽었다. 작가가 그려내는 미래의 현실이 참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책소개에서 보여준 것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예고편이 너무 '셌다'.
2. 왜 진부한 그릇에 담았을까?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들어야 읽을 맛이 있는데 첫 부분을 읽는 순간 결말 부분까지 예측이 가능해진다. 이런 건 너무 많이 봐서 '데자뷰'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다. 너무 많은 조폭 영화에서, 심지어 뮤직 비디오에서도 흔하게 써먹던 스토리가 아니던가? 너무나 전형적인 캐릭터들에 너무나 진부한 스토리. 진지한 문제제기와 참혹한 진실을 왜 굳이 진부한 형식에 가뒀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잔인한 보스에 배신하는 3인자에 고뇌하는 2인자. 거기에다 '꽃'같이 양념처럼 등장하는 여성들.
대한민국은 조폭 세계와 같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위한 설정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내용이나 캐릭터는 좀 참신할 수 없었을까?
3. 북한의 참상은 고통스럽다
통일 이후 대한민국의 모습이 이렇듯 지옥같다면 통일의 정당성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굳이 통일이라는 걸 해야 하는 걸까? 통일을 한다고 해도 북한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참 고통스럽다.
4. 영화로 만들기에 알맞다
실제로 조만간 영화화된단다. 사실은 '리강' 역에 어울리는 배우를 설문조사하는 걸 보고 갑자기 호기심이 동해 이 책을 읽게 됐다.
책을 읽으면서 내린 나의 결정
리강: 김남길 이선우: 김인권
김남길은 내가 참 아끼는 보석같은 배우다. 이 친구의 눈에는 선과 악, 쓸쓸함과 고독 등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눈빛만으로도 모든 것을 말한다. 최근에 [선덕여왕]에서 이 친구를 봤는데 살을 빼니 이목구비가 뚜렷해져서 훨씬 집중력이 생겼다. 연기가 훨씬 명료하고 선명하게 보인다. (역시 사람은 살을 빼야 해. ^^;)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가 '이선우'이다. 마음에 들었다는 건... 어쩌면 나랑 닮은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실은 그래서 '리강'보다 더 고심고심했다. 만약 영화로 만든다면 이 배역의 캐스팅을 가장 신중하게 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고른 배우는 김인권. 얼마 전에 [해운대]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이 배우에 대한 평가를 빼먹었는데, 솔직히 [해운대]는 설경구나 하지원, 박중훈이나 엄정화의 영화가 아니라 김인권의 영화였다. 이 배우만 유일하게 살아 있는 생선처럼 펄떡거리고 있었다.
5. 리뷰가 80개가 넘는다
솔직히 나는 '이응준'이라는 작가가 생소하다. 한국 작가들도 정말 많구나 싶었다. 그러니깐 80개가 넘는 리뷰들이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썼다고는 하기 어렵겠구... 결국은 이 작품의 설정이나 내용이 많은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고 어필했다고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통일 이후 대한민국이 무간지옥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2009년의 대한민국은 '조폭 공화국'의 상징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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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 처음 봤을 때, 오래 전에 읽었던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비명을 찾아서]는 우리가 일본에 해방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정 하에 쓰여진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가의 사생활]은 가정된 역사에 대한 소설이라는 것은 같지만, 과거에 묶인 모양새라기 보다는 앞으로 만들어질 미래에 대한 끔찍한 예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 한다는 가정.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수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힘들일이려나?
읽기 전에 소설의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지 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국가의 사생활이라니, 그러나 읽다보면 이 곳에 과연 국가가 있나 싶다. 리강이 평양에 다녀온 일을 기준으로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통일 직전 북한의 현실과 통일 후의 통일 한국의 어정쩡한 상황들이 그대로 비친다. 정치 통합은 모르겠으나 무너저버린 행정으로 국민의 민생도 함께 무너지는 이야기는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통일이 아주 오래 미뤄졌으면 하는 바램까지 들게했다. 대포인간과 제대로 치유할 시간 없이 만나버린 북한과 남한 사람들의 비뚤어진 욕망에 불이 붙으면서 다 같이 저물어 간다. 겉모습은 인간이나 속은 짐승이나 괴물인 사람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있는게 편하지도 않고 깊이 있다고도 말 못하겠지만, 재미없다고도 말 못하겠다. 소설의 끝이 좀 흐지부지 마무리 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좀더 길고 치밀하게 썼다면 몹시 흥분하면서 읽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묘사나 서술 보다 대사가 많은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의 호흡을 따라잡지 못할때가 있다. 이 소설이 꼭 그랬는데, 분량이 많지 않으니 몇일에 걸쳐 읽는 것 보다는 한 호흡에 읽는게 좋겠다는 생각했다. 내용의 무게보다 소설의 무게가 무겁지 않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책갈피끈이 있는 것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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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통일이 된다면..' 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흡수통일 이후 5년뒤인 2016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흡수통일 후의 모습은 끔찍했다. 일반인이 아닌, 인민군 출신 폭력조직배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통일후 이렇게 된다면 계속 분단된채로 지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우리보다 경제력이 훨씬 뛰어났던 독일도 흡수통일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휘청거린다.
이 책을 읽고 통일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통일이란 거대한 주제를 가진 소설인 만큼 스토리가 더 길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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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 리포트에 가깝다. 40%가 북한에 대한 보고서이고(혹은 설명문), 40%가 작가 개인의 주장이다. 그 주장도 극화시킬 능력이 없어서 아예 대놓고 전부 대사로 말하고 있다. 연설문이냐고. 그리고 남은 20%가 이야기이다. 말하자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소설을 쓴 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말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조금 가져다 붙인 것 같았다. 소설이 작가에게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통 설명뿐이다. 제대로 된 묘사가 있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의 골격은 있으되, 디테일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기 때문에 묘사란 게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묘사와 이야기가 없는 소설이라니. 대사와 설명만 가득할 뿐이니, 소설로서 엉성하기 이를데 없었다. 시나리오도 아니고. 비유하자면 이렇다. 사물을 빚기 위해 철사로 골격을 만들었다. 그 골격은 훌륭했다. 참신했고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그 골격 위에 입혀질 살, 그러니까 디테일이어야 할 것이었다. 섬세하게 다듬으며 빚을수록 더욱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탄생하겠지. 그러나 이 작품은 엉성했다. 살이 있긴 하되 너덜너덜 엉성하게 입혀져 있었다. 당연한 결과다. 설명과 자기 주장을 내세우느라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만들 지면이 없었을테니까. 아니면 장편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메울 능력이 없어서 설명과 주장을 넣은 것인지도 모르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게, 대사와 대사 사이도 묘사로 메우지 못했다. 할말이 너무 많아서 대사 사이의 묘사도 아까웠던 것인지 온통, "......" 투성이다. 가히 인터넷 소설에서나 보던 수준의 수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본 프로 작가의 소설중에서 가장 많은 말줄임표가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그냥 할 말없으면 "......" 로 때우고, 한 사람의 대사가 너무 길다 싶어도 "......." 이걸로 때워서 대사를 이어나가고. 이거 정말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내가 이제까지 본, 내 생각으로의 좋은 소설들을 돌이켜보면 이야기가 풍부했다. 골격뿐 아니라 디테일도 풍부해서 구석구석까지 이야기가 스며있는 느낌이었다. 어떤 작품은 치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를 장면으로 보여준다는 특징을 지닌다. 독자가 상상할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당연히 묘사가 많을 수밖에 없고, 때론 기가막힌 묘사들만으로도 굉장한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혹, 작가가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주장이 있다 하더라도 마치 가르치듯이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 역시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서 보여주고, 생각은 독자가 직접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작품들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자기 주장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마치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를 기울이며 늘어놓는 주장 같았다. 그나마도 앞서 말했듯 아예 대사처리로 대놓고 말하는 형편이고. 소설이 아니라 시나리오도 그렇게 길게는 말 안할거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주장 자체도 작가의 소견일 뿐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100이라면 그중 일부의 시각일 뿐인 작가의 소견을 마치,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 사회가 이 모양이라고 말하는 듯 단언적으로 주장해서 때론 눈살이 찌푸려 지기도 했다. 작가의 나이가 어린가 싶어서 프로필을 봤더니 자실만큼 자셨다. 단언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어린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기 보다는, 정제되지 않은 주장이라서 그랬다. 은유와 묘사가 풍부하지 않아서 마치 개인적인 불만을 투덜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제 아무리 통일된 미래 한국의 디스토피아적인 설정이라지만, 이것이 지금의 사회를 풍자하려는 의도였다는 걸 모를리 없을만큼 빈약한 극의 구성이었다. 그러니까, 이 편협한 시각의 주장을 누구에게 하고 싶었나.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아니면 젊은 독자를 겨냥해서? 그렇다면 청소년용이라는 딱지를 붙이시던가. 무엇보다 작가가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게 문제였다. 연설문이냐고. 게다가 그 내용도 보이스카웃이나 고개를 끄덕일법한 뻔한 것들이었음에도 마치 독자들이 모르는 걸 작가 자신은 안다는 듯 얘기해서 입맛이 더 썼다. 미스테리적인 재미를 주기 위한 장르의 성격을 띠고 싶었다면 그 범주에 충실했어야 했다. 어줍잖은 주장과 도배된 설명 때문에 좋은 소재와 이야기의 골격이 후퇴하고 말았다. 골격은 가히, 베스트 셀러 작가의 스릴러 소설 수준이었는데 말이지. 결론적으로 들고나온 무기는 좋았는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사용법을 모른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쓰여있었지, 나레이션이 딸린 시나리오라는 말은 없었으므로 좋은 리뷰를 써주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아무 내용없이 사념으로 가득한 수많은 한국소설들보다는 나았다. 몸을 비틀 정도는 아니었다. 소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북한에 대한 정보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본다면 제법 흥미로웠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아, 그리고 곳곳에 등장했던 세련된 문장. 인정할 건 인정해야 겠다. 이 작품의 문장은 여타 다른 이야기 소설, 소위 장르 문학의 일부 작가들보다는 훨씬 좋았다. 김진명이라든가, 이정명이라든가 기타등등 이야기의 힘을 지닌 작가들에 비해서는. 그러므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만 제대로 갖추면(설명으로 말고) 기대해볼 만한 작품이 나올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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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6년 가까운 미래의 통일대한민국을 배경으로한 소설이다. 책 소개에서는 선 굵은 누와르 장편소설이라는데...그러나 정확히 무슨 소설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누와르(Noir)라는 것은 프랑스어로 검다 즉 'Black' 이라는 뜻으로 보통 사악하고 우울한 비극적인 갱 영화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이런 누와르 영화는 1940년대 발전한 미국영화의 한 유형으로 어둡고 칙칙한 범죄/스릴러 B급 영화에 대해 어두운 영화라는 블랙 필름(Black Film) 즉, 필름 누아르라고 신조어를 붙여주며 미학적인 완성도에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 영화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원작이 주로 하드보일드 소설인데 레이먼드 챈들러의 [The long Goodbye], [The Big Sleep]이나 대실 헤미트의 [The Maltese Falcon]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누와르 영화나 소설의 특징은 범죄와 폭력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읖조림으로 허무하고 퇴폐적인 인생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국가의 사생활]이라는 이 책은 과연 누와르 소설에 들어갈까?
스릴도 없고 액션도 없고 긴장감도 없다. 조금 있는 복선도 추리나 미스터리에 축에도 못 낀다. 그렇다고 하드보일드냐? 그도 아니다. 냉장고에 자른 목이나 심장을 넣어두고 꺼내 먹는다고 하드보일드냐? 후후...눈물이 다 난다. 작가도 그리 생각하고 쓴 건 절대 아닐 것이다. 즉, 스릴러도 아니고 추리/미스테리도 아니고 하드보일드나 공포도 아니며 그렇다고 팩션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닌 즉 죽도 밥도 아니다.
단지, 리강이라는 북한 엘리트 군인 출신 깡패와 서일화라는 북한 최고위층 딸이 텐프로 아니 대한민국 일프로(?) 아가씨로 나오고 그 외에 폭력조직, 부패경찰에 살인, 추적, 총질(이건 정말 싸움도 아니고 총질이다), 음모 등 비스므리 갖추어야 할 형식은 챙겨다 놓았다. 후후...그러나 거기 까지다.
상기 작품들과 물론 작품성이나 완성도 면에서 단순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체계적인 구도나 긴장감을 유도하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건만...이 책은 어설프게 억지로 짜낸듯한, 아니 그냥 짜집기해서 나열하기에 바쁜듯한 느낌이다.
이응준이라는 이 작가는 박사에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시나리오 작가에 영화감독까지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는 지식도 많고 여기저기서 수집한 데이타도 무척 많은 것 같다.(뭐 몇 백권을 참고했다고 하니...)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의 지식이나 데이타에 불과할 뿐 스토리가 되지는 못한다. 그 많은 데이타를 자기 생각 또는 주제에 맞게 이야기로 꾸미고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전 세계에서 딱 한 나라, 바로 우리나라에서나 있을 아주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도 이를 잘 버무릴 줄 모르고 나열하기 급급한 느낌이다. 이런 건 인터넷 연재소설에서나 흥미롭고 유용하지 장편소설로는 영 아니다.
더욱 더 실망스럽고 짜증나기까지 한 것은 별 쓸데 없는 넘들이 갑자기 나와서 한마디로 개고생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특징이나 개성, 행동에 대한 심리나 배경 등을 탄탄하게 구축해 놓고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풀어나가야 하는데...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에 대해 그러한 고민과 연구가 없다.
특히, 북한 최고 수재소년 김동철...왜 수재인지 알리는 말도 없이 수재라니??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나중엔 갑자기 미친 넘처럼 느닷없이 전부 쏴죽이고...ㅡ.ㅡ 통일 대한민국의 체재상 천재소년이 갑자기 미쳐가는, 인간성 상실이라도 그리려 했던가? 종종 나오는 장군도령도 그렇다...얘를 통해서 무슨 암시나 복선을 주려한다마는...아~~~증말...ㅡ.ㅡ
거기에 이선우라는 마약상...도대체 넌 누구냐? 고독한 지식인? 의식있는 민중? 내가 보기엔 단지 이선우라는 마약상을 통해 작가가 술자리에서나 할 법한 (실제 책에서도 술 먹고 한 얘기다...ㅡ.ㅡ) 자기 논리를 떠드는 것일뿐...살아있는 개성있는 인물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도 좀 흥미로웠던 것은 진짜 2011년에 통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왔듯이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이 찾아든 평화통일'로 대혼란을 겪는다. 후후...이거 정말 이렇게 되는 거 아냐? 지금부터 2년 후면 아직도 2MB 정권인데...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다. 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