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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중 한명이 버지니아 울픈 19세기말부터 2차세계대전 직전까지의 생애에서 "등대로" "올라도" "야콥의 방"등 여러 편의 소설을 남겼고 수많은 단편과 에세이를 남겨 21세기 현대의 독자들에게 유럽의 여성상과 그 여성상을 둘러싼 많은 이슈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 작가이다. 사실 "나만의 방"은 논픽션, 즉 소설이 아닌 실화, 또는 연설문, 강연문등 여섯편의 글을 모아놓으면서 제목을 멋진 픽션처럼 지었다. 2편의 글은 캠브릿지대학의 2개 칼리지에서 초청받아 강연을 한 내용을 실은 것이었다. 무엇보다다 울프의 대표작중 하나인 "나만의 방"의 한글번역판엣 아무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은 소개말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이의 '추천의 말'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8페이지에 달하는 본문 앞 이 소개글을 다 읽고나서 소설 본문을 읽고나서 드는 느낌은 바로 이 소개글을 굳이 읽지 말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바로 버지니아 울프를 공부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필자들은 일종의 습관처럼 울프에 대해 알게 된 지식을 통해(자서전적 지식, 학술서의 평론글, 스승들의 강의 등등) 알게된 내용을 붕어빵틀처럼 사용해 문학이나 예술작품을 재단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독서는 '픽션'인 "나만의 방"을 과도하게 수학 미적분처럼 '풀이'나 '해설'의 대상으로 삼아버리고, 때로는 자신의 주의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유명한 사람 이름 대기'정도로 귀결되버리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본문으로 들어가 울프가 말하는 방의 세계를 직접 체험해 보기를! 어찌보면 이 논픽션을 읽으며 직접 논픽션으로 연설하고 있는 연설자 울프를 직접 만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청취방식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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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성이지만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자부합니다. 어느 책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녀 우리 모두를 위해서요. 그래서 페미니스트의 고전이라 꼽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남자들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겠죠? 페미니즘의 소설을 통해 조금이라도 빨리 성평등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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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나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어제 주문을 하고 오늘 책을 받아보았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책에 대한 첫 인상(?) 정도만 말해보자면... 일단 표지 디자인이 독특해서 다른 버전보다 끌렸다. 나는 웬만하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본 뒤에 마음에 들면 구입해서 소장하는 편인데, 이 책을 바로 구입한 것에는 디자인도 한몫을 한 셈이다. 물론 페미니즘에 대해 더 알고싶다는 마음에서 구입한 것이기도 하다. 아참, '자기만의 방'이라는 제목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서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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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과 픽션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저자는 역사 안에서 이 주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다 절망하고 만다 픽션 안에서의 여성은 여러가지 모습과 나름의 중요성을 가지고 등장하지만 실제의 여성과 픽션, 특히 시에서는 별 접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린 나이부터 공동 거실에서 하찮고도 굴욕적인 노동을 담당하고 출산과 육아를 거듭하면서 여성은 픽션과 인연을 맺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와중에 기적적으로 천부의 재능을 타고난 여류 작가라 할지라도 이미 세상의 손가락질에 신경이 쇠약해진 그녀들은 본래의 반짝임이 퇴색되고 비뚤어진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제인 오스틴과 샬롯 브론테에 대한 저자의 의견에 나는 동의할 수는 없지만! ^^ - 실제로 저자 또한 여성 혼자서는 대학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다거나 잔디밭에서 사색에 잠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 헐! 도대체 알 수 없는 여러 금기를 일상에서 접하고 있었다 저자는 100년 후라면 상당히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100년이 거의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가? 페미니즘의 ㅍ만 나와도 서로 물고 뜯는 이 이상한 세태가 저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버지니아 울프의 유머감각이 곳곳에 돋보이는 글이었고 핸디한 사이즈를 지향하는 쏜살문고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여백이 너무 없어 읽기가 좀 불편했다 ㅜ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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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가 '여성과 픽션'이란 주제로 한 대학 강연을 에세이로 재구성한 책이다. 버지니아 이전 시대 여성 작가의 작품을 완성도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완성도의 미흡함의 원인을 남성에 비해 여성들의 창작 환경이 턱없이 열악함과 그로 인한 창작 유산의 빈곤에서 찾고 있다. 책 전반을 통해 실제 또는 가상 여성 창작자들의 유무형의 창작 환경을 장면장면 눈으로 보듯이 얘기 속으로 이끌가는데, 작품 비평과 시대를 통찰하는 시선은 날카롭고 예리해, 재능을 가진 여성이 연 500파운드로 상징되는 경제적 독립과 주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까지 확보됐을 때 어떤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한 환경적 제약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살펴보는 일은 여성의 인권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들이 자기 실현을 하는 데 아무 제약이 없을 만큼 시대는 변화했는가?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이 완벽하게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울프가 말했던 경제적 독립과 자기만의 방은 이제 단지 여성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인간 보편에게 해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여성으로서 이제 환갑을 맞고 있는 나 자신의 개인적 입장에서 보면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가 부족해서이지 환경을 핑계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동시대 남여를 아울러 생각해 보면 색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무게의 장벽이 있었다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어쩌면 본격 레이스에 뛰어들지 않은 자의 무지에서 오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책을 마무리하며 울프는 여성들에게 환경을 핑계하지 말고 경제적 독립과 자신만의 방을 위해 노력해서 세상의 틀에 갇히지 말고 세상의 진실된 모습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라고 독려한다. 문화적 유산을 축적하고 물려 주는 일 그것이 잠재된 여성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미래의 기반을 마련하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동시대 여성들에게 독려했던 바로 그 일을 버지니아 울프 자신이 훌륭히 해냈고, 오늘날 여성들의 성과는 눈부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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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이 있나요? 저는 혼자 살던 시기를 제외하면, 저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독립하기 전에는 여동생과 방을 나눠 썼고,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사용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자기만의 방'이 꼭 필요할까 싶었어요. 그러나 결혼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 필요를 점점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조용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더라고요.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숨 쉴 틈에 가까웠으니까요. 다행히 거실에 가족 수만큼의 책상을 두었어요. 완전히 분리된 방은 아니지만, 그 작은 책상 앞에서만큼은 혼자가 돼요. 지금은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문을 닫을 수 있는, 진짜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이 궁금해졌어요.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요.
책을 읽을 때 저자가 처한 삶의 조건을 함께 떠올리면, 문장이 훨씬 또렷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 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찾아보게 되었어요.
<자기만의 방>의 출발점이 된 강연, 「여성과 픽션」을 요청받았을 때 버지니아 울프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단 두 가지였어요. 자기만의 방과 일 년에 500파운드. 이 단순한 조건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런던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사전 편찬자였고, 집에는 늘 작가와 지식인들이 드나들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지적 자산이 풍부한 환경이었죠. 그러나 그 공간은 철저히 남성의 방이었어요. 남자 형제들은 정규 교육을 받았지만, 버지니아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어요.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집 안에 가득한 책들을, 마치 허락 없이 훔쳐 읽듯 탐독하는 것이었죠. 같은 집에 있었지만, 교육의 기회와 사유의 권리는 분명히 구분되어 있었어요. 이 경험은 훗날 그녀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방'과 '돈'을 이야기했는지를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가 돼요.
그랬던 그녀는 상속과 결혼, 그리고 남편 레너드 울프와 함께 운영한 호가스 프레스를 통해 비로소 글을 쓰기 위한 물리적·정신적 공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돼요. 그 과정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요. 여성들은 늘 누군가와 공간을 나눠 써야 했고, 그 공간은 언제나 분주하고 시끄러웠다는 것이죠. 나이팅게일이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채 삼십 분도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듯, 여성의 시간과 공간은 늘 타인의 필요에 잘게 쪼개져 왔어요. 그래서 문을 닫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사유가 중단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돼요.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타인의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 성별 이전의 존재로,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나'가 될 수 있는 장소예요. 그녀가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그런데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해서는 결국 경제력이 전제되어야 해요. 버지니아 울프가 연간 500파운드를 반복해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비교적 중산층 이상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버지니아 개인의 명의로 된 소득은 없었어요. 그 말은 곧,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설계할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녀는 생계를 위해 글을 써야 했고, 글은 자연스럽게 시장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도 마감과 원고료는 늘 그녀를 붙잡고 있었어요. 생각의 속도는 자신의 리듬이 아니라, 타인의 일정과 요구에 맞춰 조정되어야 했죠. 사유보다 생존이 앞서는 상태였어요. 그러나 상속받은 이후, 삶의 조건은 분명히 달라져요. 시장이 아니라 사유를 기준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당장의 수입을 위해 원치 않는 일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돈은 그녀에게 풍요를 안겨주었다기보다, 생각을 지킬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돌려주었어요. 그래서 <자기만의 방>에서 말하는 연 500파운드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에요. 그것은 여성이 자기 생각을 타인의 리듬에서 분리해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건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강연을 준비하며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던 울프는 한 가지 의문에 부딪혔죠. 18세기 이전의 여성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 역사서는 여성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여성의 이름으로 남겨진 희곡이나 시 한 편 찾기조차 어려웠죠. 이는 여성이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가 여성을 독립된 개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차별이 질문조차 되지 않던 시대, 그것이 '상식'이던 시대였으니까요. 울프는 이 지점에서 유명한 질문을 던져요. "셰익스피어에게 재능이 똑같은 여동생이 있었다면?" 재능은 있었지만, 교육받을 권리도, 경제적 기반도, 문을 닫을 수 있는 방도 허락되지 않았던 여성. 그녀는 결국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고, 설령 썼다 해도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졌을 거예요. 울프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지워진 수많은 목소리였어요. <자기만의 방>은 바로 그 침묵의 이유를 추적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울프는 그래서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라요. 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식적인 편향을 품은 채 쓰인 글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으며, 창조적 예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마음속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여성이 역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가난했고, 지적 자유를 허락받지 못했기에 버지니아 울프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했다고 말해요. 그것은 특권의 요구가 아니라, 창작이 가능해지는 최소 조건에 대한 진술이어요. 울프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이 주장이 얼마나 절실한 체험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게 돼요.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연속적인 상실을 겪었어요. 열세 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이후 이복언니와 아버지까지 차례로 세상을 떠났어요. 더불어 어린 시절 이복오빠들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 역시 뒤늦게 드러났어요. 이러한 사건들은 그녀에게 심각한 우울증과 조울증 증세를 남겼고, 울프는 평생 여러 차례 정신 붕괴를 겪어요. 그러나 울프는 이 고통을 개인적인 불행으로만 해석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여성의 정신적 고통이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보았어요. 평생 지속된 정신 질환에 전쟁이라는 외부의 압력이 겹치면서, 결국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울프는 코트 주머니에 돌을 넣고 우즈 강으로 걸어 들어가요. 이 선택을 단순한 비극으로만 읽을 수는 없을 거예요. 그것은 어쩌면 자기 삶의 통제권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르니까요. 자기만의 방을 확보했기에 말할 수 있었고, 더 이상 그 방을 지켜낼 수 없다고 느꼈기에 스스로 문을 닫았던 것은 아니었겠느냐는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은 처음부터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어요. 문단의 구분이 적고, 문장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어 집중이 쉽게 흐트러지기도 했어요. 아마도 요즘 책들의 친절한 구성에 익숙해진 탓일 테죠. 저자 역시 책에서 말하듯, 이 글은 치밀하게 정리된 논증이라기보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이어지는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그런데도,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게 전달돼요.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에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 여성에게도 경제적 기반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울프는 단호하게 짚어내요. 어쩌면 이런 글은 버지니아 울프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몰라요. 다른 사람들처럼 눈에 띄지 않게, 불만 없이 살아갈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삶을, 그리고 여성의 삶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사유했어요. <자기만의 방>은 그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며, 그래서 이 책은 한 시대의 문제의식을 넘어 지금까지 읽히고 읽는 거겠죠.
세상은 분명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차별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어요. 그것은 성별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해 왔다는 사실일 거예요. 그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왔어요. 이 책을 덮으며, 저 역시 그 변화의 가장자리에라도 발을 담그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마음을 갖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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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방. 이 방은 물리적인 공간인것일까. 물리적 공간 없이 내게 자리가 주어지는 것일까. 버지니아 울프가 , 먼저 그 길을 걸었다.한참도 전에. 그리고 너무나도 차분히 그 상황을 이야기했다. 소설이 아니다. 현실이다. 그러니 에세이다. 그렇지만 주장.문이다. 설명.문이다. 울프의 글을 눈과 마음 그리고 내 손끝에 꼭꼭 눌러가며 읽게 된다. 자기만의 방. 그 방을 찾기위해서. 구하기 위해서. |
| 그 유명한 자기만의 방.... 버전이 여러 개 있는데 이게 민음사에서 나온 거기도 하고 표지도 예뻐서 샀습니다. 그리 굵지는 않지만, 문장이 그리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닌지라 한 권 읽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은 아마 각오하고 읽어야 할 것 같아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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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대한 리뷰입니다. “각자가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그때에 기회가 도래하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이 종종 스스로 내던졌던 육체를 걸치게 될 것입니다.” 용기와 의지가 생기게 해주는 책입니다. 내집마련을 위해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