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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독자와 만나면서 상호작용하는 신비한 데가 있어서 시간 차를 두고 다시 읽게 되면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이해되기도 한다. 이번에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다시 읽으며 다시 읽어보길 정말 잘했다고 느꼈다. 지난번 처음 읽었을 때는 '불구자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담은 비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며 그건 피상적인 이해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대략 5개월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그 사이 융 심리학자 이부영 교수의 <그림자>를 다시 읽어본 것이 이 아름다운 단편소설이 지극히 섬세한 심리소설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왜 곱추인 프리데만 씨가 친절한 척하면서도 자신을 경멸하는 오만한 여자 폰 린링엔 부인에게 이끌리고 사랑하게 되었는지 어린 시절부터 경험하는 프리데만의 심리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이 바라는 대로 태어나는 특권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출생이란 사건 자체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것인가 정상으로 태어날 것인가도 그렇다. 또 정상인으로 태어나더라도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장애인으로 살게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알콜 중독인 보모의 실수로 의자에서 떨어져 성장이 제한돼 곱추로 살아가는 요하네스 프리데만은 태어나기 한 달 전 영사인 부친이 갑자기 병사하는 바람에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의 운명이 순조롭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는 발단이다.
열여섯 살의 프리데만은 한 여학생에게 연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소녀가 키가 크고 잘생긴 남학생과 데이트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뒤 마음을 접는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사랑의 행복과 기쁨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고 자신과는 인연이 없다며 단절하기로 다짐한다. 그 후 스무 살 무렵 어머니가 병고로 죽자 끓어오르는 슬픔과 고통을 느끼지만 오히려 그 고통을 탐닉하며 승화시킨다. 하지만 감정은 죽지 않는 법이다.
교양으로 문학과 바이올린, 연극 관람을 취미 삼아 살아가는 멋쟁이 목재상인 프리데만은 어느덧 서른 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해 마침내 그의 운명이 다가왔다. 폰 린링엔 부인이다. 그녀는 교구에 새로 부임한 장군의 아내로 스물넷의 오만한 여성이다. 프리데만의 열등감을 한눈에 꿰뚫어보듯 우월감이 넘치는 그녀는 경멸적인 시선으로 프리데만의 시선을 번번이 꺾어버린다. 귀여운 데가 있지만 내면도 외면도 특별히 아름답지 않은 린링엔 부인에게 프리데만은 끌리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마침내 린링엔 가의 조촐한 파티에 초대받은 날 정원의 물가에서 그녀와 단 둘이 있게 되자 그는 자신의 격렬한 사랑을 고백한 다음 비참하게 패대기쳐지고 만다.
융 심리학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남성성과 여성성의 원형인 아니마/아니무스의 투사로 인해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프리데만은 사랑에 빠진 모든 남성들처럼 자신의 무의식을 건드린 아니마상인 린링엔 부인에게 이끌린 것이다. 특히 린링엔 부인은 우월감에 넘치는 오만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프리데만처럼 깊은 열등 콤플렉스를 감추고 있는 남성에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보상해줄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다가오게 된 듯하다. 그가 그동안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가슴 깊이 억압한 것에 비례해 그녀의 우월감을 통한 무의식적 보상심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그녀는 그를 구원해줄 여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결과가 비극임을 알면서도 그는 이미 자신의 무의식적 충동을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프리데만은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을 억압하고 살아온 대가를 비참하게 치뤄야 했다. 그를 죽음으로 이끈 배경은 린링엔 부인으로부터 호되게 거절당한 감정적 충격과 더불어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들어온 '아버지가 기다리는 하늘나라'에 대한 무의식적 동경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융에 의하면 사람에겐 누구나 그림자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그림자는 언제고 살아나 의식에 동화되길 기다린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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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토마스 만(1875-1955년)은 북독일의 뤼베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이 몰락한 후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 시민과 예술가, 정신과 삶이라는 이원성의 문제에 파고든 그는 <마의 산>(1924년)으로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양심'으로 불렸다. 1929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소설, 평론, 수필 분야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 이 책 속에는 만의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과 작가로서의 싹을 엿볼 수 있는 19세 청년 토마스 만의 첫 단편이자 여성해방 사상이 들어있는 [타락], 그리고 작가의 역량을 드러낸 두 번째 단편으로 신체불구자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키 작은 프리데만 씨]가 들어있다.
[키 작은 프리데만 씨]의 요하네스 프리데만은 명문가의 유복자로 태어나 생후 한 달 만에 사고를 당해 키 작은 곱사등이가 된다. 열일곱 살에 학교를 떠난 그는 목재상의 견습생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책과 음악, 연극을 사랑한 그는 예민하고 교양있는 청년이다. 열여섯 살에 학교 친구의 누이에게 연정을 느꼈다 단념한 후로 바이올린과 책에서 위로를 받는다. 프리데만이 서른 살이 되어 자기 상점을 연 해에 관구 사령관의 경질로 폰 린링엔 육군 중령이 새로 부임해왔는데 젊고 오만한 폰 린링엔 부인에게 그는 운명적으로 끌린다. 폰 린링엔 씨 댁에 초대 받은 어느날 정원의 물가에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그는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녀가 자신의 시선으로 그의 시선을 꺽곤 할 때마다 그가 느껴온 것은 아마도 육욕적인 증오였던 것 같았다. 이 증오는 그가 그녀에 의해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땅바닥에 누워 있는 이 순간 미칠듯한 분노로 변했으며, 그는 이 분노를 이제 비록 자기 자신에게일지라도 해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프리데만이 자신의 사랑에 좌절당하고 죽음을 택하는 장면에 이르면 문득 이전부터 그의 운명이 어떤 빛깔을 띠고 예정돼 있었다는 걸 깨닫고 운명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한다. 토마스 만의 소설이 지닌 깊이와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단편소설이다.
[타락]은 액자소설이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가 있는데 그 중 여성해방운동의 절대적 정당성을 설파하는 라우베는, "여자의 굴욕적인 사회적 지위의 원인은 어리석은 사회적 편견에 있"다고 주장한다. 남녀가 연애하고 사랑하다 헤어지면 남자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데 비해 여자는 '타락한 여자'라는 지탄을 받는데, 대체 이러한 관점에 도덕적 근거가 어디 있는가 하고 라우베는 묻는다. 이에 대해 젤텐 박사는 한 청년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름다운 여배우를 사랑하게 된 한 대학생은 속앓이를 하다가 친구의 부추김으로 용기를 얻어 꽃다발을 여배우의 집으로 보내고 마침내 찾아가 사랑을 고백한다. 청년의 사랑이 받아들여지고 달콤한 꿈을 키워가던 어느날 그녀를 찾아간 집에서 식사 중인 낯선 노인과 마주친 그는 말다툼 끝에 노인을 내쫓는다. 그녀의 침실로 들어간 그는 탁자 위에 놓여있는 지페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갖다 주는데 그때 바라본 그녀의 눈빛에서 모든 진실을 파악한다.
그가 지폐들을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그를 향해 두 눈을 부릅떴었다. 그는 그녀의 두 눈을 보았던 것이다. 그의 내부에서 그 어떤 몸서리쳐지는 것이 앙상한 회색의 손가락처럼 치받치더니 그의 목을 안쪽에서부터 꽉 잡아누르는 것 같았다.
첫사랑에 실패한 청년의 이야기는 여성해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친구에 대한 반박으로 나온 이야기다. 남자가 떠나서 여자가 타락하게 된 게 아니라, 타락한 여자여서 오히려 남자가 떠났다는 거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여성해방의 정당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해방의 문제가 이중삼중으로 얼마나 복잡한지를 드러내는 단초이자 한걸음 나아간 문제제기로 볼 수 있다. 이 단편을 통해 19세기 말, 20세기 초 독일 사회에 불고 있던 여성해방 사상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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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토마스 만이 작가 생활을 시작하던 초기에 쓴 ‘타락’과 ‘키 작은 프리데만 씨’ 등
두 개의 작품이 실려있다.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바와 같이 둘 다 내용의 큰 흐름은 진부하다. 물론 세부의 묘사 등에서는 다른 표현을 쓸 수 있겠고 결론적으로 진부하다고는 해도 소설을 읽을 때에는 다음
얘기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하는 맛이 있다.
‘타락’은 틀 소설(=액자 소설)의
형태인데 그 틀 자체가 기실 본 내용이라 나머지 본문은 거들 뿐 또 하나의 소설의 형태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약점이 눈에 보인다.
‘키 작은 프리데만
씨’는 나중에 나오는 토마스 만의 작품인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하니 참조해둘 사항이다.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첫사랑을 경험하고 좌절하는 두 남성이 등장한다.
둘째, 그 남성들이 사랑하는 여성들은 소위 femme fatale이다. 악녀 등 비하의 의미로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작품
속 남성들이 첫눈에 반하게 되는, 문자 그대로의 치명적 매력을 품고 있는 여성들이다.
셋째, 철저하게 남성의 시각에서 내용을 전개하며 여성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시작도 자신 위주로 하고 끝도 자기 중심으로 낸다. 남성 주인공들은
자신의 마음만 헤아린다.
그리하여 두 작품에서 남성 주인공들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은 작품 속에서 희생양이 된다. 토마스
만의 글 투와 전개 방식이 그 여성들을 악인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남성들을 사랑에 좌절하게 하는 절대적 이유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실제의 문제는
상대방의 상황이나 생각을 제대로 살펴서 대응하고 행동하지 않은 남성들에게서 비롯된다.
이쯤 되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사랑한 대상은 누구이고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이상화한, 자기 혼자서 애 닳고 부대껴서 그려낸 환상을 사랑하지 않았던가? 하고.
P.S.
이 책에 대한 얘기와는 별도로 하나.
아직 삼중당 문고로
문학 작품을 대하던 시절에 토마스 만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책 제목이 아마도 선택된 인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막 가톨릭 신앙에 빠져들던 시점이라 근친상간
등이 나오는 내용이 매우 충격으로 다가왔다. 토마스 만이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는 나름대로 이해했지만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이런 내용을 담아야 했던가 하는 혼돈을 겪었다.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 검색해봤지만
어느 출판사에서도 나온 게 없다. 절판된 것만 보이는데 멀지 않은 시점에 발매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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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프리데만은 명문가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여기까지만 보면 부러운 금수저인데, 태어나자마자 한 달 만에 사고를 당한다. 십대 후반에 학교를 떠나고 목재상의 견습생으로 일하던 그는, 예술을 사랑하기도 하는 청년이 되었다. 한때 학교 친구의 누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단념하고, 음악과 책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다. 문득, 프리데만은 인연이 되지 못할 여인에게 빠져드는 운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게, 그가 서른 살이 되어 자기 가게를 열었을 때, 새로 부임한 육군 중령의 부인에게 끌렸다는 점이다. 그 마음을 고백까지 했건만...
처음 그의 사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그의 운명을 예감하지 않았나 싶다. 보모의 실수로 사고가 생기고, 성장에 문제가 되어 곱추로 살아가게 되고, 그것도 그가 태어나기 한달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 유복자의 탄생이 그의 운명의 시작이었으니... 어느 정도 그의 삶의 색이 예상되지 않았던가. 뭔가 쎄~한 느낌. 결국 사랑의 감정을 고백한 대상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그에게는 그가 알지 못하는, 느끼지 못한 어떤 그림자가 내내 따라다녔던 건 아닐까 싶다. 그가 감정을 누르고 살아야만 했던, 그렇게 살아온 최후의 모습에서 그림자가 사라진 건 아닐까 하는 추측.
인생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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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와 「타락」, 이렇게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두 소설 모두 토마스 만의 첫 단편집 『키 작은 프리데만 씨』에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타락」은 토마스 만의 데뷔작으로, 열아홉 살에 쓴 소설이다.
두 작품 모두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쓰여진 것이다 보니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위대한 작가인 토마스 만의 이후 작품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미숙하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그렇거니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 남성들에게 있어 사랑하는 여성은 숭고한 성녀 같거나 치명적인 팜므파탈이고, '첫 사랑'은 실패로 끝나게 마련이다. 이 두 작품에도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지만, 사랑했던 여성에게 배신당하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여성혐오라고 판단될 만큼 여성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인데, 어쩌면 그 당시 토마스 만이 사랑에 실패를 많이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솔직히 말해 작품의 퀄러티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토마스 만이라는 이름에 누가 될 정도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젊은 남성들이 느끼는 사랑이라든지, 후에 대가가 된 소설가의 초기작이 궁금하다면 읽어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나저나 왜 소설은 늘 피해자들에 의해 쓰여지는 걸까? 돈 후앙 정도를 제외한다면 남녀를 막론하고 주인공 중 바람둥이는 없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항상 '사랑에 속고 운다.' 지고지순한 남자와 지고지순한 여자만 존재한다. 피해자는 소설을 쓰고 가해자는 그 시간에도 바람을 피고 있는 걸까? 세상은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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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작은 프리데만씨"를 읽는 도중 어디서 읽어본 듯한 내용이다 싶어서 찾아봤더니, 이미 구입해서 읽었던 민음사에서 출간한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수록되어 있던 작품이었다... 쏜살문고의 출간의도는 알고 구입했지만, 내가 이미 읽은 걸 모르고 또 구입을 하다니... 토마스 만의 작품을 처음 접하시거나 적은 분량의 작품집을 구입하실 거라면 참고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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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중 하나인 토마스 만의 두 단편소설인 "키 작은 프리테만씨"와 "타락" 2편의 단편소설작품과 7페이지에 달하는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 연설문'을 묶어놓은 문집이다. 사실 토마스 만의 대표적인 "마의 산"등이 다루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작품들의 밑그림을 살펴볼 수 있는 단편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한글 번역집을 편집하면서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에 '노벨상 연설문'을 넣은 것은 어느 예술가나 문인의 작품이 갖는 명성이나 아우리를 노벨상으로 갈음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겠으나, 이 짧은 연설문의 내용중에서 중간페이지즈음에 독일의 예술적 성과는 풍요성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고통과 고난, 고뇌와 빈곤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태어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사실 이러한 위기의 조건들에서 개인들, 인간들, 사회는 깊이있는 의식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그것은 또 다른 위협과 위기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첫 단편이 "키 작은 프리테만씨"는 바로 이런 인간의 삶의 부침에서 인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작품이다. 제목에서 키 작은 프리테만씨는 사실 키가 작다는 자연적 신체조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간호사의 잘못으로 태어날 때 부상을 입은 아기가 부상을 입어 키가 크지 못하게 된 상태에서 평생 극복할 수 없는 단신의 고통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음악등에 깊이있는 지식을 추구하며 나름대로 예술분야에 조예를 쌓고 살게된다. 그러나 우연히 마음속에 두게된 기혼여성인 본 링링겐부인에 대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그의 삶은 뿌리체 흔들리게 되는 위기로 치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