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만에 신나게 책을 읽었다. 번역이 거북스러워서 읽기 힘든 책들을 종종만나 왔는데, 다행히 그런 불편함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다 지난 이야기를 하는 역사책보다 긴장된 글을 읽고 싶어서, 지금 우리 사는 이야기를 읽으려고 하면, 너무 식상한 이야기거나 너무 감정적이기만 해서 한 권의 책으로 사서 서가에 꽂아 놓기는 아까운 때가 많았다. 시류를 타고 그냥 흘러가 버리고 마는 내용이거나, 몇가지 단상만을 모아놓고 시사적인 문제제기라고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아룬다티 로이의 책은, 사실 글의 내용보다 그녀에 대한 관심에서 책을 고르게 되었다. 그녀는 젊었다. 그리고 낯선 나라의 지식인이었다.(사실 미국, 프랑스, 영국 아니면 우리에겐 모두 낯선 문화와 역사의 나라인 건 사실이다.) 감각적인 문학 작품이 아니라 현재 당면하고 있는 살아가는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쓰고 그것으로 유명해지고, 지금도 펜을 무기 삼아 싸운다는 그녀에 대한 소개는 그녀가 뭐라고 말했길래 사람들이 그랬는지 읽고 싶어졌다. 우선 책을 읽고난 지금, 그녀와 난 아주 잘 아는 사이가 된 기분이다. 어느 거리에서 부당한(사실 모든 댐 건설은 부당하다) 댐건설 공사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만나 반갑게 악수를 할 것 같다. 반전, 반핵 시위를 한다면 하늘 아래 어느 곳에서 그녀가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팔에 힘이 더 솟을 것 같다. 이런 기분이 든 이유는 그녀의 글과 말솜씨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너무 과격한 수식어만 늘어놓거나, 너무 냉정하게 사태를 지적하기 위해 골치아픈 수치와 연구 결과만을 늘어놓아서 읽는 이를 지루하게 하지도 않는다. 읽으면서 그녀의 솔직한 표현과 솔직한 감정, 어떨 때는 마음이 저려오는 비아냥, 비꼬기에 사뭇 진지해진다. 정말 우리가 직면한 사태가, 그리고 인도가 직면한 사태가 얼마나 현실적인 문제인가를 느끼게 했다. 그녀의 글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이 든다. 항상 들어온 진부한,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누군가의 현재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지금! 바로 지금의 문제 임을 깨닫게 하는 그녀의 호소에 어디서 책을 읽고 있든 이내 진지해 지게 된다. 그녀는 별로 어렵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비유는 사실, 우리가 평소에 우리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부조리할 때 항상 쓰고 있는 말들이다. 우리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때 쓰는 말들... 지식인의 글쓰기의 한 전형을 만난 것이 무척 기쁘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면, 누구나 듣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지식인의 글쓰기가 읽는 이를 주눅들게 하거나, 소외시키기 일쑤인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녀는 고맙기까지 하다. 인도의 역사와 인도의 상황으로 그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역사 속에서 만나게 되는 보편적 진실을 상기시키고, 우리 모두가 함께 직면하고 있는 현실임을 적나라하게 발견하게 해준다. 그래서 인도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이 겹쳐 보이고,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무책임하게 생각을 놓아버린 적은 없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바로 그점이 그녀의 글의 힘이다. 손에 잡히는 작은 크기에 두개의 주장글을 담고 있다. 댐을 짓는다는 것이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인지, 정체도 없는 다수를 위한 - 공익이라고 말하는 공사의 목적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이고, 실제로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잔인하게 파괴해 놓는 일인지를 너무 어렵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꼼꼼히 지적한다. 우리 자신이 마음으로는 동조해왔는지 몰라도 얼마나 모르고 있는 사실이 많았는지를 마음깊이 반성하게끔 해준다. 두번째 글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종교분쟁에 얽혀있는 핵무기 개발에 관한 반대의 글인데,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 읽고 있자니.. 결국 그들이 모두 같은 종류의 범죄자들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무기를 들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를....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다.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심각하거나 골치아프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너무 두꺼운 책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을 바르게 하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에.. 모두가 자기 하나 살 방법만 궁리하고 사는 요즘, 세상을 위해서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자신을 쓰는 삶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의미있는 책이다. 학생들이 공부를 도대체 왜하느냐 따져 물으며 무기력해질 때, 권해주고 싶다. 그녀의 글과 함께 그녀를 만나보고 나면, 공부해서 남주는 일이 얼마나 값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 산업화, 기계화 등. 인류는 자본주의 구조를 심화시키는 과정 속에서 원치않는 부속물들을 너무도 많이 얻어왔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린 진보의 획득을 위해 우리 생명을 담보로 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이들이 이러한 현실에 대해 고발을 하지만, 인간의 생산효율성에 대한 추구는 끊이지 않을 것만 같다. 단시일적인 시야만을 지니고 있는 현명치 못함 때문일까, 아니면 이기심 때문일까, 지금 이 순간 잘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우리 주위를 둘러싼 환경들이 너무도 심히 파탄 상태에 이른 듯 싶다. 조금 더 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 아닌가 생각한다. 아룬다티 로이의 강력한 어조는 문체로부터 비롯되는 듯 싶다. 코방귀를 끼는 듯한 논조, 그 안에는 단순한 비꼼 이상의 정서가 살아있었다. 그것은 경제발전 속에서 소외당하는 인도 민중의 삶에 대한 서글픔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국가는 결과적으로 특권지배층을 위할 수 밖에 없는 듯하다. 70-80년대 한국사회의 급속한 성장 이면에 지배계층을 위한 한없는 배려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도 사회 역시 좀더 첨예화된 모순이 현실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인도사회 특유의 카스트 제도는 지배층에 의해 장악된 언론, 정치 등과 어우러져 지금 이 순간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삶에 대한 외면을 가능케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인도가 보유하고 있는-끊임없이 산을 허물고 마을을 수장시키면서 만든-댐 그 자체였다. 댐 건설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에게는 일정액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더 나아가 댐으로 인해 충분한 양의 물이 공급될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라는 인도 정부의 논리는 그럴싸해 보였다. 하지만 복잡한 행정적 절차와, 그 절차 속에서 교육받지 못한 자로서 고스란히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대해 정부는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차라리 집이 물에 잠길지라도 떠나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가 정부의 이야기보다 더 마음 깊이 다가오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들은 댐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잃었고, 가족과 함께할 영역을 잃었고 더 나아가 지금까지 형성해온 마을 특유의 유대감을 상실했다. 지역 공동체에 대해 인도 정부는 아무것도 보상치 않았으며 겉만 번지르르한 논리를 펴나갈 뿐이었다. 그 속에서 파괴되는 울창한 수풀과 수많은 자원들, 문화재들에 대한 것들은, 그것들이 자본주의화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고려되지 않았다. 그저 오랜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언론과 환경단체들의 관심이 멀어지고, 그로 인해 주민들이 상처받고 스스로 지쳐가길 기다리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배려 아닌 배려였던 듯 싶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파키스탄과의 국방력 대결 역시도 아룬다티 로이에게는 전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이미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핵폭탄이 지닌 괴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폭탄을 소유함으로써 세계 사회에서 무시당하지 않는 하나의 위치를 점하려 하는 각국의 노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하나의 핵폭탄이 일으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위력에 대해 충분히 알면서도, 오히려 그것들을 통해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려 하는 정부의 모습은 ‘말 안 들으면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식의 논리로 밖에 안 보이는게 사실이다. 댐을 건설하는 것, 핵폭탄을 개발하는 것은 생명이라는 고귀한 것을 지불하고 이루어지는 것임에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오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인류의 어리석음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사회는 패권경쟁만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을 듯 싶다. 그렇기에 아룬다티 로이는 끊임없이 외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
| 이미 여러 번 경고를 받았지만, 나는 독자를 잃을 각오를 하고 있다. ‘당신이 무엇을 안다고 관개에 대한 글을 쓰는가? 도대체 누가 관심이나 있다고 하던가?’ 하지만 나는 원더 대수로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대수로의 완공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이야기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겠다. 철의 삼각(정치가 ․ 관료 ․ 댐 건설회사 사이의 야합을 가리키는 은어)의 땀에 젖은 손아귀에서 당신의 미래를 구할 생각이 있다면, 부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댐을 많이 지은 나라가 되었다. 중앙수자원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는 대규모 댐으로 분류되는 큰 댐을 3,600개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 3,300개는 독립 이후에 건설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1,000개가 넘는 댐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의 5분의 1인 2억 명이 안전한 마실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고,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억 명이 기본적인 위생 시설도 없이 고생하고 있다. ‘인도행정학연구소가 실시한 54개의 큰 댐들에 대한 자세한 조사에 따르면 인도에서 큰 댐을 건설하면서 이주한 사람들의 숫자는 평균 44,182명이다.’라는 통계에 따라 아룬다티 로이는 한 개의 큰 댐 당 만 명이라고 치고 3,300 × 10,000 = 33,000,000명의 이주민이 발생한다는, 비공식 - 인도는 공식적으로 댐 때문에 생긴 홍수나 녹색 혁명으로부터의 이탈(수확의 감소, 경작지의 황폐화)과 같은 관개 시설과 관련된 재앙에 대한 불길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3,600개의 댐에 대한 사후 평가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댐이 처음 세웠던 목표를 성취했는지, 비용은 적당했는지(수박 겉 핥기식으로라도), 혹은 진짜로 얼마만큼의 비용이 들었는지에 대해, 단 1개의 댐의 경우도 조사하지 않았다. 그러니 인도의 댐에 관련된 문제에서 공식적인 통계나 자료는 없다고 봐야 한다. - 적인, 그러나 어마어마한 통계를 만들어낸다. 로이의 한탄과 자조 섞인 자문마냥, 이것이 진실일 리가 없다. 좀 더 엄밀히 계산하자면 5천만 명이 넘는 이주민이, 인도에서, 댐 때문에, 발생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호주 인구의 3배 가량, 팔레스타인 피난민 숫자의 10배, 코소보에서 도망쳐나온 피난민들의 50배라고, 로이는,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