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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성城’은 내 독서에 있어서의 인내력 테스트를 치룬 작품이다. 대학생 시절 감히(?)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몇 페이지를 읽다가 포기한 이후 최대의 적(?)을 만났고, 며칠간의 졸음과 지루함을 이겨내어 이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독후감을 쓰고 있는 것이다. 2003년 8월 헬싱키에서의 MBA 과정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동유럽을 여행하던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나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준 ‘프라하’에서 카프카가 집필하던 골방이 투어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카프카의 사진과 책상, 친필 원고, 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카프카가 불후의 작품을 쓴 그곳에 대한 수 년 전의 추억이 독서기간 내내 내 머리에서 이미지화 되어 떠나지 않았다. ‘성’이란 소설은 사실 줄거리만 보면 간단한 내용이라 볼 수 있다. 한 토지측량사가 한 성의 부름(?)을 받고 오게 된 마을에서 겪게 되는 한 5일 정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소설의 첫 장면부터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소설의 주인공 K는 진짜 토지측량사일까? 미스터리한 장면에서 시작되어 종결되지 않는 미완성이 나를 무척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최근의 직업선호도검사에서 내 성격유형이 ES형 - 진취.사회형으로 경영/상담 분야에 적합한 직업 선호형으로 대표적인 직업으로 변호사, 상담사가 있다 - 으로 나온 것이 충분히 설명되는 것을 느끼게 한 작품이라 하겠다. 하지만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던가? 어렵게 읽은 보람이랄까 아니면 쾌감이랄까? 난해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카프카가 그리고자 한 내용에 다소 어렴풋한 전체 모습에 대한 윤곽이 잡혀가면서부터 독서에 대한 가속이 붙었고 그 여세로 완독할 수 있었다. 그가 그리고자 한 ‘성’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오웰의 ‘동물농장’이 많이 연상되었다. 권력, 그것이 조정하는 ‘visible/invisible control system', 그 핵심에 성이 위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클람’으로 대표되는 관리들, 그들에게 순종하고 지배받는 ‘성 사람들’, 그곳에서 K는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올가가 언급하고 있는 ‘허망한 희망’을 그도 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와 주변인 간의 지루한(?) 대화에서 답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어 ‘성’의 또 다른 뜻으로 ‘자물쇠’란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열쇠가 그 자물쇠를 열 수 있을지 한번 테스트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변신’은 기발한 발상으로 꾸며진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한 내 모습에 어찌 보면 묵묵히 그 변화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나 자신과 엄청난 충격으로 당황하는 가족의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하는 인식을 그린 것 같다. 주인공은 벌레로서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벌레가 된 오빠, 아들에 대한 가족의 적응은 한계를 보이고 있으며, 마침내 죽은 벌레의 모습에 환호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 인간의 존재에 아무리 가족이지만 이해관계가 얽혔을 때의 관계변화를 보면서 서글픔이 느껴지는 것은 중년의 나이가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니리라 본다. 그의 벌레로의 변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모습에 대한 비유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우리는 또한 벌레 같은 인간 -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한 인간 - 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흔히 하는 ‘벌레 같은 인간’ 또는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란 표현이 최소한 내 주변에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어렸을 때 여느 아이들과 같이 나는 많은 변신을 하였다. 의사도 되었다가, 선생님도 되었고 또 갑자기 우주선을 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였다.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다’ 라는... 아직도 나는 변신을 꾀하고 있다. 발전적인 내가 되기 위한 변신 말이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에서 발간한 고전총서 ‘성’의 역자 이유선 교수의 머리말에서 언급한 내용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 인용하면서 글을 맺는다. 교양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 중의 하나로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동서양의 고전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섭렵했던 세대였던 역자에게 <고전총서>란 낯설지 않은 목록 명칭이다. 무조건적이라 함은 연령에 비해 수준 높은 내용들로 채워진, 그것도 이질적인 서양문화적 배경의 장편 소설들을 아무런 저항 없이 오직 자기완성으로의 감동을 위해서 너무나 미리 읽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년이 지난 중년이 되어서야 그 소설의 의미를 이해했던 적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