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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대단한 작가이다. 학부시절 [분노의 포도]를 배웠는데, 솔직히 난 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지않는다. 읽으면 내가 너무 무력한데 마음은 아프기 때문에.
원래는 요나스 요나슨의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를 읽고있었다. 서문에 오스카 와일드와, 오스카를 운운하는 클라라 아줌마 (뒷페이지 주에 [생쥐와 인간]에 나옴이라 쓰여있었음) 부분을 보고 궁금해서, 또 학부출신에도 이 기본적인 작품을 안읽었다는 생각에 책을 잡았다. 서문의 오스카..운운은 [생쥐와 인간]에 없는 것이며, 그냥 클라라아줌마.만을 이용한 농담댓구였다는 것을 알았고, 난 [생쥐와 인간]을 읽고 또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예전 영화 [파 앤 어웨이 Far and Awary]에 아일랜드 지주의 딸 니콜 키드먼과 아일랜드 청년이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때 미국으로 와서 서부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달리고 달리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렇게 아메리칸 드림이 시작되었지만, 거기에 늦어버린 조지와 레니. 둘은 같은 마을에서 자라났고 작고 잽싼 조지는 머리회전이 둔하고 덩치만 큰 레니를 놀리면서 그게 재미있지 않다는 것을 꺠닫고 레니의 클라라아줌마 사망후 레니를 데리고 다닌다.
아무리 조지가 레니를 단속해도, 새로운 농장은 잃어버린 아메리칸 드림의 무대였다. 사람의 사정은 알것없이 늦게나타난 이유에 걱정도 하지않고 그저 일에 차질이 있을까만 신경쓰며, 형식적인 잠자리를 내놓는 농장주인, 작은 몸집에 컴플렉스를 느끼는 주제에 그저 만만하면 다 싸움을 걸어보는 농장주인 아들 컬리, 그저 지나가는 이들의 부추김에 헐리우드를 꿈꾸다가 결혼이 진정한 독립도 아닌데 처음만난 컬리랑 결혼한 어린 신부. 이 여자는 이 남자 저남자를 보면서 자신의 젊은과 미모가 불러일으키는 동요를 그저 즐길뿐이지만, 컬리와 같이 있는 남자들에게는 유치장으로 가는 지름길 티켓으로 보인다. 평생 성실하게 일했지만 사고로 한쪽 손을 잃은것에 대한 보상을 몇푼으로 집어준 농장에 남아있는 캔디. 어릴적부터 양치기개로 키웠던 늙은 개의 냄새를 견디지못하겠다며 총을 집어드는, 공감력없는 칼슨, 가장 실력이 있고 머리가 있으나 자신의 개가 낳은 강아지들을 다 감당못한다며 바로 몇마리 강에 던져버린 슬림, 독립적인 농장에서 자라났으나 유색인으로 어떤 시련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알 것 같은 흑인 마구간지기 크룩스. 자본을 가지고 너그럽지않고 인간을 그저 일하는 기계로 보고, 또 물질적으로 자신보다 낮다며 일과 보수의 거래외에 굴욕마저 쾌락으로 즐기려는 자본가의 2세, 헐리우드와 독립된 땅을 꿈꾸는 이들과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것에서부터 뒤쳐져버린 늙은이들.
아, 해설엔 아직 희망이 있다고 했지만, 글쎄. 난 가슴이 너무나도 아프다. 아메리칸 드림에는 자기가 차지한 땅에 대한 열망만 있을뿐, 그것을 차지하지 못한 자들이 사다리를 오르는데 도움의 손길은 없다. 우리가 살 농장은 어떨것이라며 구체적으로 묘사를 하는 조지, 이에 대해 신난 레니, 거기에 늙은 개처럼 자신도 버려질 것을 두려워한 캔디가 손을 얹고 서로 꿈꾸는 장면이 너무나도 행복해보여서. 그렇게 작은 꿈도 꾸기가 힘든 그 상황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퍼서. 나라도 손을 내밀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없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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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연한 형태로 평온한 삶에 돌을 던져댄다. 그리고 그런 일은 왜, 하필,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 같다. 가끔은 삶이 악의를 가지고 장난을 걸어오는 것 같다고도 느낀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탓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엔 아무런 의도가 없다는 것을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음에도 예측하려 하고 꿈을 꾼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훼방에 절망하기도, 포기하기도, 아니면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보기도 한다. 이 책은 시나리오 없는 삶의 전개에 대한 이야기다.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은 레니는 이야기의 진행 내내 불안한 외줄타기를 반복한다. 이미 한 차례 사고를 친 전적이 있고그 사건에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 조지는 레니에게 수없이 으름장을 놓고 약속을 받아낸다. 레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시한폭탄과도 같다. 조심하려 노력했지만 새끼 강아지는 레니의 손에 죽게 되고, 방어하려 했던 것 뿐이지만 컬리의 주먹을 으깨버리고 만다. 여기에도 역시나 ‘그럴 의도’는 없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이야기는 어째 그렇게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생쥐야, 앞날을 예측해 봐야 소용없는 건 너만이 아니란다. 생쥐와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 일이 제멋대로 어그러져,고대했던 기쁨은 고사하고 슬픔과 고통만 맛보는 일이 허다하잖니!”
존 스타인벡은 <새앙쥐에게>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단순히 청소를 하려던 인간이 실수로생쥐의 집을 부순 것이 생쥐에게는 예상치 못한 재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를 외치지 않았을까? 인간은 생쥐에게 어떤 원한도 없었다. 그건 순전히 우연이었을 뿐이다.
내 삶을 이뤄온 몇 가지 좋지 않은 경험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안다. 마찬가지로 좋은 일에도 아무런 뜻이 없다는 것또한 알고있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건 이야기가 결말지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슬픔과 고통을 맛보겠지만 그게 어떤 의미가 될지도 알 수 없다. 의미와 의도의 부재에서 오히려 희망을 읽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움이 되는 것"
삶의 불규칙한 사건들이 어떻게 꿰어져 결론지어질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좋고 나쁜 경험 속에서 우리가 건져낼 수 있는 확실한 사실은 삶에는 그 어떠한 의도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극으로 마무리된 이 이야기에서 덤덤한 위안을느낀다. 왜냐면 조지의 삶은 이어질 것이고 그 결말은 지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50달러를 벌어서 탕진하고, 벌어서 탕진하고를 반복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는 거니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비로소 영화의 모든 의미를 알게 되듯, 그럼에도 삶을 끝까지 살아내야 할 이유를 의미의 부재에서 찾았다. 삶을 살아가며 겪을 숱한 경험에 쉽게 이름붙이지 않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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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 하면,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 두 편을 읽었을 뿐입니다만, 이 책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했습니다. 체격은 왜소하나 영리한 조지와 체격만큼은 비할 바 없지만, 정신 지체가 있는 레니는 절친한 친구입니다. 이 둘은 자신들의 농장을 구입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땡전 한푼 없는 거지일 뿐이지요. 돈을 모으기 위해 날품을 팔며 이 농장 저 농장을 전전하지만, 레니는 항상 사고를 치고, 그 결과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쫓겨나기만 합니다. 레니는 말하지요. "나때문에 미안해. 내가 그냥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살께" 하지만, 조지는 그런 레니를 떠나 보낼 수 없습니다. 가뜩이나 힘겨운 삶인데, 레니조차 없으면 더욱 힘들어질 뿐이니까요. 둘은 다시금 힘을 내서, 새로운 농장에 잡일꾼으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날품팔이 노동자들이 모여있으면 항상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새로운 신참에 대한 기존 일꾼들의 텃세는 그 싸움의 강도를 높일 뿐이지요. 레니는 며칠도 되지 않아서, 농장주의 아들과 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의 괴력으로 텃세를 부리는 망나니 아들의 주먹을 뭉게버립니다. 조지의 기지를 통해, 겨우 겨우 싸움은 진정이 되고, 그 와중에 조지는 늙은 날품팔이꾼인 캔디와 말을 트게 됩니다. 팔 하나를 쓰지 못하는 늙은 일꾼인 캔디는 농장에서 퇴물 취급을 받고 있지만, 약간의 돈을 모아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돈을 합치면, 레니, 조지, 그리고 캔디는 그들의 오랜 꿈인, 자신들만의 농장을 운영하는 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들은, 이 달콤한 꿈을 꾸면서, 하루 하루 힘든 노동을 견뎌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레니가 또 사고를 치고야 맙니다. 이전에는 고작 생쥐나 강아지를 만지작 거리다가 힘조절을 못해 죽여버렸던 것이라면, 이번에는 농장주의 아들의 아내를 죽여버리고 맙니다. 억한 심정으로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고, 과실 치사였지만, 가뜩이나 화가 나 있던 농장주의 아들에게 그런 사정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어올리가 없었습니다. 농장사람들은 곧 수색대를 조직해 레니의 뒤를 쫓고, 그 수색대에는 조지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친한 소중한 친구 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눈앞에 보였던 꿈을 손에 쥐기 위해서는 그 레니를 떠나보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렇게 조지는 레니를 향해 권총을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조지는 캔디와 함께 새로운 농장을 구입해서 자신의 꿈을 이뤘을까요? 글쎄요. 책은 그것까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설령, 그 꿈을 이뤘다고 해도,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레니의 유령이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우리 모두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항상 얽히게 됩니다. 새로 얽혀드는 삶이 있다면, 기존의 삶은 다시금 떨어져나가기도 하지요. 하지만, 새로운 삶이 추가되었다고, 기존의 삶이 빠져 나갔다고 해서, 나의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은 그 자신의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는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어떤 삶이 자신의 앞에 끼어 들 것인지, 어떤 삶을 떠나 보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도 없습니다. 다만,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지요. 생쥐를 죽인 레니와는 함께 할 수 있었지만, 인간을 죽인 레니와는 함께 할 수 없음을 선택한 조지의 남은 삶은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요? 아니, 그 전에 조지에게는 그 두가지 선택지 밖에 없었던 것이었을까요? 레니가 떠돌이 날품팔이가 아니었다면, 레니가 이미 자신의 농장을 갖고 있었다면, 어쩌면 레니는 사람을, 심지어 생쥐라도 죽일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하지만, 결국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의 수가 정해지는 것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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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처럼 우직하지만 다소 우둔한 레니와, 작지만 민첩하고 현명한 조지는 정반대의 성향과 외모임에도 서로 의지하며 척박한 현실을 이겨낸다. 서로에게 익숙해질만큼 오랜 우정을 유지하던 그들은 경제대공황의 혼란에 부딪혀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책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도 모두 허망하기 그지없다. 각자의 외로움과 척박한 현실은 아메리칸 드림과 대조되며 한층 우울하게만 보인다.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과 여성에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차별, 서민들이 겪는 소외감은 켜켜이 쌓여 아메리칸 드림이 “꿈”에 지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각자의 소박한 꿈을 가지고 모였지만 그 누구의 꿈도 이뤄지지 않은 세상이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까? 현실에 투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빠른 호흡과 뛰어난 흡입력. <분노의 포도>만큼 존스타인 벡의 개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여성 인물들의 설정에 아쉬움이 있었고, 가끔 거슬리는 표현이나 단어 선택들이 있었다. 오래된 작품임을 감안하더라도, 더 성숙한 성인지감수성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이겠지 우리 같은 놈들은 친척이라곤 없어, 우리 같은 놈들은 돈을 조금 벌어선 다 날려버리고 만다. 우리 같은 놈들을 걱정해 주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어.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지, 왜냐하면 내겐 자네가 있고, 자네에게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201p “우리처럼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야. 가족도 없지, 어디에 속한 것도 아니지. 그냥 농장에서 일을 하고 돈이 좀 모이면 읍내에 가서 다 날려버려 그리고 또 다른 농장에 가서 죽자고 일을 해 도대체 앞날이라는 게 없지." 물론 다들 원하지! 모두가 조그만 땅덩어리를 원해. 큰 건 바라지도 않아. 그냥 내 거라고 할 수 있는 땅 말이야.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고 아무도 쫓아내지 않을 곳 말이야. 난 그런 걸 가져본 적이 없어. 나는 염병, 이 주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을 위해서 씨를 뿌렸지만 곡식은 내 것이 아니었어. 추수할 때는 내 것이 아니었단 말일세. 하지만 이제는 내 것이 될 거야.. 우리는 달라. 우리한테는 미래가 있어. 우리한테는 말을 할 사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있어.?우리는 달리 갈 데가 없다는 이유로 술집에 앉아 쩐을 날릴 필요가 없어.?다른 사람들은 감옥에 가면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냥 거기서 썩지. 하지만 우리는 달라"?레니가 끼어들었다.?"우리는 달라! 왜냐? 왜냐하면,,, 나에게는 나를 돌봐줄 네가 있고, 너에게는 너를 돌봐 줄 내가 있기때문이지. 그래서지"?레니는 기뻐서 웃음 을 터뜨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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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재독하면서, 안타까운 결말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초반에 레니와 조지가 대화하는 게(레니는 쩔쩔매고 조지는 틱틱거리는 게) 너무 웃겨서 '온도차가 나는군' 생각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별난 조합이구나 생각없이 넘겼는데 말이다. 전반적인 플롯은 간단하다. 진행되는 모든 과정은 뻔한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어서 빠르게 후루룩 읽을 수 있었다. 분노의 포도를 미리 읽어서 배경 이해가 높았던 점이 좋았는데, 이 책만 읽고 오히려 분노의 포도를 찾아 읽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대체 그 땅은, 땅이 뭐길래 이토록 사람을 힘겹게 하나. 땅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괴로운 현실을 잊게 해주는 꿈과 희망 그리고 끝끝내 이룰 수 없는 이상향인 것 같다. 조지가 레니말고 다른 이와 짝을 이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딴생각도 슬쩍 해본다. 그랬더라면 이야기는 성립이 안 됐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노동 끝에 자기 땅을 가진 사람이 생겼으면 좋았겠다라는 뜻에서 말이다. - "아, 그래, 조지. 이제 기억나." 레니의 두 손이 잽싸게 상의의 양쪽 주머니로 들어갔다. 레니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조지, 내 건 없는데. 잃어버렸나 봐." 레니가 절망감에 사로잡혀 눈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너한텐 원래 없었어, 이자식아. 내가 둘 다 갖고 있어. 내가 너한테 취업 카드를 들고 다니게 할 것 같냐?" - "우린 우리 땅에서 우리 힘으로 먹고살 수 있어." - "우린 작은 땅을 가질 거야. 우린 집하고 밭을 가질 거고 알팔파도 심을 거야. 알팔파는 토끼한테 먹일 거야. 나는 자루에 알팔파를 잔뜩 담아서 토끼한테 갖다 줄 거야." -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절대 그 땅을 가질 수 없다는 걸 말이에요. 녀석이 그 이야기를 듣는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 나도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되었나 봅니다." - "하지만 우리는 달라." "왜?" "왜냐면 나한테는 네가 있고..." 이어서 레니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나한테는 네가 있기 때문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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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와 인간, 책 제목을 보고 무슨내용이지 궁금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고 생쥐는 전혀 안나오는데! 왜 생쥐지? 했었다. 알고보니, 원래 제목은 somthing that happend 인데, 작가가 시 한편을 보고 제목을 저렇게 지었다고 하는걸 읽고,, 그제서야 책의 내용이 더 감명깊게 다가왔다. 물질, 사람이 사는데 최소한의 물질은 어느정도는 정말 필요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야, 정신적 풍요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좋았던 책이다. 꼭 읽어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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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의 책을 추천할때 늘 시대적 여성혐오를 흐린눈하고 읽어주라고 부탁한다. 조지는 검은 살빛의 작고 날카로운 사나이이고, 레니는 지능은 떨어지는 거한으로 조지에게 지극히 헌신적이며 언제나 조지에게 의존한다. 그날 밤 캠핑을 하면서 두 사람은 함께 농장을 차리는 꿈을 꾼다. -"우리는 달라. 우리한테는 미래가 있어. 우리한테는 말을 할 사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있어. 책의 시작은 레니가 조지에게 이야기를 해달라하며 시작된다. 둘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데 새로운 곳으로 가는 이유는 기존에 있던 곳에서 레니가 기존 마을에서 이미 한번의 사고를 쳤고 그래서 새로운곳으로 도망을 왔다. 이책은 미국의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과 현실에 대해서 잘 보여준다. 에덴의 동쪽 : http://www.yes24.com/Product/Goods/3016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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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와 인간>
책소개에 있는 것까지만 말하려고 책소개 읽으면서 썼는데... 책소개가 거의 줄거리 다 말해버리는 느낌이네요...? 스포많은 후기입니다. 스타인벡의 소설은 이 <생쥐와 인간>이 처음이다. 읽기 전의 이미지로는 상당히 난해하고 어려운 작가이자 작품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읽혔고 재미도 있었다.
스타인벡은 떠돌이 농장 일꾼 레니와 조지의 희망과 삶을 통해, 경제 공황기 미국인의 삶이 어떤 식으로 파괴되고 망가졌는지를 보여준다. 레니와 조지와 같은 떠돌이 농장 일꾼들에게는 머물 곳, 머물 사람이 없다. 장소에도, 사람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홀로 이곳저곳 떠돌며 평생을 보내다 보면 속이 ‘꼬이기 마련’이다. 먼지 같은 존재감으로, 왔다 가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노바디로 평생을 살아간다면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들은 소박한 꿈을 꾼다. 어딘가의, 어떤 마을에 정착해서 마을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레니와 조지의 이 소박하고도 소박한 꿈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떠돌이 농장 일꾼들의 꿈처럼 산산조각나고 만다. 그리고 조지는 자신이 유일하게 머물 수 있는 사람마저도 잃고 만다. 이들 주인공들이 누구와도, 어떤 곳과도 의미 있게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에서(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희망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처절하게 외롭고 고독해지는 소설이었다. 희망을 줬다가 산산히 부숴버려서 더 처절했달까... 스타인벡 희망고문 잘하네...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다. 빈곤층은 머물 곳을 포기하고, 다시금 떠돌기 시작했다. 미국의 ‘노마드’ 노동자들은 평생동안 쉴 새 없이 노동하고, 그러고도 집 한 채를 가지는 소박한 꿈조차 이루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차가 집이 되어서, 홀로 떠돌며 차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또 노동을 한다. 레니와 조지, 그리고 현재의 노마드 노동자들과 같은 소외 현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장소건, 다른 인간이건 간에, 다른 존재와의 의미 있는 연결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런 당연한 것이 꿈이 되고 희망이 된다는 것도 참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이제 싫은 부분. (기대도 안 했지만) 성인지 감수성이 괜찮은 작가는 아닌 것 같다. 시대보정 들어가도 거슬릴 정도였다. 어톤먼트처럼 설정 자체에 은은하게 여혐이 깔려 있는 느낌? 어톤먼트도 그렇고 그놈의 강간 무고... 어휴...순진하고!!! 착한!!! 남자인데 이상한 여자랑 얽혀서 인생 좆되는 이야기 왤케 좋아하는 거? 위드 농장에서 있었던 일도 똑같다. 순진하고!!! 착한!!!! 우리 레니가 성추행 좀 했을 뿐인데^^ 강간으로 신고를 해버려서!! 마을을 뜨게 되었다!! 컬리 아내의 캐릭터가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더라면 어땠을까? 배우가 될 거라는 허영이나 헛꿈에 빠져 있다가 결혼해서는 남자들에게 추파나 던지고 다니는 이상한 여자, 결국 레니와 조지의 꿈을 박살내버리는 주 계기가 되어버리는 여자로 설명이 끝나버린 게 참... 타자화의 끝이라고 해야 할까? 컬리 아내가 레니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말하는 장면부터, 오 드디어 컬리 아내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컬리 아내도 외로운 사람이었구나 더 이야기해 봐 싶었는데 응 그게 유언 ^^
+개 좀 그만 죽여라 이놈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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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와 인간은 드라마 '로스트'에서 소이어가 읽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트웨인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전직 사기꾼이 스타인벡의 소설을 읽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장면 때문에 기억이 많이 남았다..
배경은 미국의 어느 때인가.. 아마도 거대한 모래 폭풍이 미국의 중서부를 휩쓸고 간 그때쯤이 아닌가 한다..
소박한 꿈을 꾸는 두명의 주인공과 그들 앞에 펼쳐지게 되는 결말...
가난한 농장 일꾼들의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 스타인벡의 소설은...
21세기가 어느새 꽤나 흐른 지금도....
읽는 이의 머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사실.. 분량상으로는 중편이나.. 단편 정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