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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은 종영되어도 책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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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주말을 “역사저널 그날‘ 시청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갑자기 서둘러 끝내는 느낌이 들더니 지금까지 시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단다. KBS는 예고 없이 프로그램을 끝내는 것이 무슨 특기인가? “장영실쇼”도 엉뚱하게 포맷을 바꾸더니 막을 내려버려 어이없어 했는데, 몇 안 되게 챙겨보는 KBS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을 종영한다니 황당했다.아이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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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주말을 “역사저널 그날‘ 시청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서둘러 끝내는 느낌이 들더니 지금까지 시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단다. KBS는 예고 없이 프로그램을 끝내는 것이 무슨 특기인가? “장영실쇼”도 엉뚱하게 포맷을 바꾸더니 막을 내려버려 어이없어 했는데, 몇 안 되게 챙겨보는 KBS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을 종영한다니 황당했다.

아이들과 함께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종영 소식은 찾을 수가 없었다. 조선사를 전체적으로 짚어봤고, 그 다음엔 고대사부터 근대사까지 살펴봤지만 솔직히 조선사에 비해 역사적 사료가 많지 않아서인지 흥미가 덜 했던 것은 사실. 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고려사를 끝낸 후 조선사 중에서 빠진 부분을 되짚어보고, 근대사를 좀 더 상세하게 다루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는데... 어디 가서 저 팀워크를 또 볼 수 있겠는가. 신병주 교수, 최원정 아나운서, 류근 시인, 최태성 선생, 이해영 감독까지... 너무너무 아쉬운 마음이었다.

 

지난 주 <역사저널 그날 7권>을 사서 재미있게 읽고 있던 터라 아쉬운 마음은 더 컸다. 이제 8권 정도면 이 책도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 책까지 끝나면 정말정말 이 프로그램과 작별이구나 싶다.

 

역사저널 그날 7권에서는 영조에서 순조까지, 조선의 중흥기 영정조 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제일 많이 안다고 하는 조선사가 이쪽 아니겠는가. 워낙 드라마나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었고, 특히 최근 많이 조명받은 인물이 정조이기도 했다. 이 책에 정조의 실제모습과 가장 닮은 그림도 들어 있는데 상당히 실망스럽다. 뭐 현빈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무예에 뛰어난 날렵한 몸일거라 생각했건만.....

 

이번 책에서도 여덟 개의 주제로 영조, 정조, 순조의 시대를 정리해본다.

영조 시대의 이야기로는 탕평책, 어사 박문수,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정조대의 이야기로는 정조의 즉위, 금난전권, 정조의 죽음에 따른 미스터리를,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맞이한 순조대의 홍경래난까지 다룬다.

 

많은 업적을 남긴 성군이면서 52년이라는 재위기간을 자랑하는 영조. 영조는 사치를 방지하고 국가 재정을 절감하려는 다양한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백성과 국가를 위한 사명감으로 뭉친 박문수와 같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경제 관료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박문수를 그저 “암행어사”의 대명사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영조가 가장 아끼는 신하이면서, 영조의 정책을 앞장서서 펼쳤던 사람이었다. 백성들의 삶이 먹을 것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박문수는 “소금을 구워 구제하자”라고 제의했다. 소금은 당시 왕실의 일원인 궁방이 독점했는데, 이 이익을 나라가 관리해 진휼 재원으로 쓰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런 제안은 왕실의 기득권과도 연결된 것이라 위험할 수 있었으나 왕이 받아들였고, 박문수는 소금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많은 동료 대신들은 그를 “소금 장수”라고 비아냥댔다고 한다.

가마솥에서 열 시간 가까이 끓이는 고된 작업을 거쳐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귀중한 물건이었던 소금을 박문수는 6개월 만에 3만 석이 넘게 만들어냈고, 그것은 쌀 7만 석과 바꿀 수 있는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암행어사로의 활동이 길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암행어사로서의 명성을 독점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 그의 애민정신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조대로 넘어와보자.

정조의 능행 횟수가 잦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그런데 그 능행에는 또 다른 행사가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왕이 직접 백성의 의견을 듣고 처리하는 과정이 숨어있었던 것. 조선시대, 백성의 억울한 일을 하소연 하는 통로로 우리는 보통 “신문고”를 떠올리지만, 신문고는 상징적 의미에 불과했다고 한다. 김문식 교수의 말을 들어 보자.

 

먼저 신문고의 위치를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아요. 신문고는 창덕궁의 진선문 안에 있었습니다. 궁의 정문으로 들어가서 또 하나의 문을 더 통과해야 북 앞에 다다를 수가 있죠. 그러니까 신문고는 일반 백성이 치라고 달아 놓았지만, 실제로는 접근하기 쉽지 않았죠. 그런데 상언이나 격쟁은 왕이 행차했을 때, 예를 들면 주로 능행인데, 왕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접수하기 시작하죠. 왕이 오늘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상언과 격쟁을 접수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럼 지나가면서 접수합니다. 그리고 궁에 가져가서 왕이 바로 처리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사흘 만에 처리하는거죠.

 

연간 3회 정도의 능행을 했던 정조. 다른 왕에 비해 왕에게 직접 민원을 올릴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왕에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접수관리에게 글을 올렸지만, 징을 치면서 자신이 뭔가 할 말이 있다고 알리면 접수관리가 글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직접 듣고 정리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격쟁이라고. 왕은 이 내용들을 궁으로 들어가 2~3일 안에 바로 처리했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민주정치가 아닌가 싶다.

 

드라마 <이산>에도 등장했던 시전상인의 특권에 대한 이야기는 “신해통공”으로 마무리된다. 금난전권의 폐단이 공론화되자 과감히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기존 시전이 가졌던 특권을 몰수하여 모든 상인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기득권세력의 반발과 국가재정 등을 생각해본다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조에겐 더욱 더 적이 많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맞이한 순조 대에는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홍경래의 난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웠다. 홍경래의 난은 유명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있다. 나도 평안도 사람들이 그렇게 차별받는지 몰랐다. 그 차별은 구한말까지 이어졌다고 하니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뭘 그리 지역차별을 하며 사람을 무시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무시하면서도 18세기 중엽부터 중앙의 재정이 부족해지니 평안도의 재정을 계속 끌어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조 때부터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평안도의 재원을 끌어다 쓴다고. 그러다보니 풍족했던 평안도조차 필요한 재원이 부족해졌다고 한다. 대우해주지는 않으면서 풍족한 재원은 끌어다쓰는 후안무치함. 그래서 홍경래는 “지역차별의 철폐와 세도정치의 척결”을 주창하며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조선의 마지막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니 마음이 갑갑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래위 할 것 없이 부패하고, 백성은 살기 어렵고, 국가의 기조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이 어제의 일인지 오늘의 일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잘못된 길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조선말로 치닫는 역사에서 지금의 어려움을 돌파할 방법을 모색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프로그램 종영이 너무 아쉬운 <역사저널 그날 7권>이다.

YES마니아 : 골드 s****b 2016.12.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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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록장 천이백칠십구번째.- 역사저널 그날 7
"도서기록장 천이백칠십구번째.- 역사저널 그날 7" 내용보기
당시 조선은 (성리학 때문이지만) 여성이 시집을 못 갈 경우 오래 생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혼은 복지였다. 그러나 요새는 하다못해 여성이 노가다라도 하면 혼자는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시대이다. 도리어 남자 잘못 만났다가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여성이 많은 요즘 시대다. 설마 여성들에게 결혼하라 강요하는 인간들은 자신이 박문수나 혹은 영조라고 생각하는 건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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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은 (성리학 때문이지만) 여성이 시집을 못 갈 경우 오래 생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혼은 복지였다. 그러나 요새는 하다못해 여성이 노가다라도 하면 혼자는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시대이다. 도리어 남자 잘못 만났다가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여성이 많은 요즘 시대다. 설마 여성들에게 결혼하라 강요하는 인간들은 자신이 박문수나 혹은 영조라고 생각하는 건가? ㅋ 그러나 유명했던 다문화가족 프로젝트 중 하나의 이름은 '농촌총각 장가보내기'였으며, 전혀 농촌의 결혼 못 한 여성들을 배려해주지 않았다. 이미 여성차별하는 농촌따위 진작에 떠났을 여성들이 많았겠지마는 ㅋㅋ


철학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왠지 기하급수적으로 다른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지더라; 어려운 책 읽을 땐 가독성이 떨어지나보다. 읽을 때는 잘 모르겠더라. 아무튼 역사적으로 가장 흥미있어하는 시기이기도 해서 스피디하게 읽을 수 있었다. 영정조 이야기니까 ㅎㅎ 여기서는 정조가 독살된 게 아니라 홧병 때문이라는 결론이 난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평상시에도 한 30% 정도는 화가 차 있는 것 같다. 물론 취미로 풀어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불만이 있음 가끔가다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면 홧병에 걸릴 염려는 없지 않을까.

 

심재우: 기록에 의하면 출또가 많이 나옵니다. 한자로는 출도, 길에서 나왔다는 뜻인데 출두라는 말도 간혹 씁니다. 그래서 출두와 출또 다 쓸 수 있죠.

그날: 근데 "출또야." 보다는 "출두야."라고 해야지 모음조화로 말하기가 편하잖아요.

류근: (...) 제가 어렸을 때 어린이 잡지에 박문수가 소년 어사로 나왔거든요. 왕의 특명을 받고 어른들의 허구를 통렬히 꾸짖는 내용인데 정말 선풍적 인기였죠. 그래서 제게 박문수는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의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이윤석: 저는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인형극을 본 적이 있어요. 빠지지 않고 봤기 때문에 지금도 노래 가사가 기억나요. "나는 새도 떨어지네. 산천초목도 벌벌 떠네. 탐관오리 쥐구멍 찾고 떨어진 백성 춤을 추네." 



 

 

솔직히 출도 쓸 수 있는 거 지금 알았다(...)

 

최원정: 사도세자가 뒤주에 갖혀 죽은 사건은 워낙 유명해서 드라마와 영화 등 많은 매체를 통해서 접하셨을 텐데요.

(...) 신병주: 저는 한중록이라는 드라마를 본 기억이 있어요. 그때 혜경궁 홍씨 역을 지금은 돌아가신 김자옥 씨가 맡았었고요. 저도 이 드라마를 보고 난 뒤에는 영조 역을 맡은 배우가 다른 드라마에 다른 역할로 나와도 항상 무섭더라고요. 이치우 씨라는 분이었는데, 그분만 보면 무서운 거죠. 



 

배우나 성우란 직업의 단점은, 한 번 쎄거나 유명한 역할로 명성이 날 경우 평생 그 특징을 가진 캐릭터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단 점 같다. 그걸 극복해도 다양한 연기가 소화 가능하다는 장점이 생길 뿐 꼭 유명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이윤석: 격쟁이나 상언을 하면서 왕에게 가까이 갈 수도 있잖아요. 중국 영화를 보면 왕에게 무언가를 올리는 척하고 다가가서 무기를 꺼내는 장면이 자주 나오거든요.

김문식: 그래서 경호를 담당하는 포도대장이 "백성들이 너무 가까이 오니까 경호에 문제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구경하러 나오는 것을 금지하십시오."라고 요구해요. 그런데 정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저들은 나의 적자다." 여기서 적자는 갓난아이라는 뜻입니다.



 

 

 

왕정시대라서 아무래도 현재 시대와는 맞지 않겠지만, 이런 세심한 배려는 정치인들이 닮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v*******5 2020.02.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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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박문수의 콤비플레이, 세종과 김종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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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로 더 잘 알려진 '박문수'와 '영조'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재위 내내 경종독살설로 역모의 공격을 받았던 영조는 무신년 역모 진압에 앞장섰던 박문수를 당색을 떠나 탕평책의 일환으로 그를 측근으로 기용한다. 영조가 세자 시절부터 보필했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영조의 개혁 정책의 중심에는 박문수가 있었다. 정조에게 정약용이 있었던 것처럼.   박문수의 리더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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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로 더 잘 알려진 '박문수'와 '영조'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재위 내내 경종독살설로 역모의 공격을 받았던 영조는 무신년 역모 진압에 앞장섰던 박문수를 당색을 떠나 탕평책의 일환으로 그를 측근으로 기용한다. 영조가 세자 시절부터 보필했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영조의 개혁 정책의 중심에는 박문수가 있었다. 정조에게 정약용이 있었던 것처럼.

 

박문수의 리더십에 관해 후대의 학자들은 이렇게 평가한다. "용장이나 지장, 덕장보다는 현장이다" 무슨 말인가? 역사 속 인물을 보면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가 항상 드러난다. 암행어사 박문수는 백성들에게 정의의 사도였다. 나쁜 사람을 벌하고 좋은 사람을 도와주는 영웅이자 우상이었다.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백성 편이 되어준 사람이 '박문수'였다.

 

박문수의 오로지 백성을 위해 영조에게 건의한 정책 중의 하나가 왕실 재원 공급원이었던 소금을 백성들의 이익을 위해 쓰자는 것이었다. 기득권을 내려놓자는 제의를 영조는 받아들인다. 사가에서 10년 지내면서 백성의 삶을 알았던 영조와 고난을 겪으며 어렵게 살았던 박문수는 백성을 위한 정책을 이렇게 펼 수 있었다. 4군 6진을 개척한 세종과 김종서의 콤피플레이가 있었다면 균역법을 시행한 영조와 박문수의 복식조를 그려볼 수 있다.

 

영조의 손자 정조는 학문을 정말 좋아했고, 책에 미친, 책에 빠진 사람이었다. 많은 책을 읽은 덕택에 문예 중흥을 이끌 수 있었다. 영조도 마찬가지다. 영조나 정조 때 출판과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영조와 정조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c*******9 2017.04.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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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7 : 영조에서 순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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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7번째 이야기 '영조에서 순조까지'입니다..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영조'와 '정조'시대'영조'와 '정조'가 아니였다면 '조선'은 그전에 망했을꺼란 말을 하시던데요..그리고 두 사람이 가까스로 심폐호흡끝에 되살린 '조선'의 명줄을 끊는 '순조'..'순조'의 시대가 시작되며 '정조'가 만들었던 모든 것들을 옛날로 되돌리고..'세도정치'가 시작되고 '조선'은 내리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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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7번째 이야기 '영조에서 순조까지'입니다..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영조'와 '정조'시대

'영조'와 '정조'가 아니였다면 '조선'은 그전에 망했을꺼란 말을 하시던데요..


그리고 두 사람이 가까스로 심폐호흡끝에 되살린 '조선'의 명줄을 끊는 '순조'..

'순조'의 시대가 시작되며 '정조'가 만들었던 모든 것들을 옛날로 되돌리고..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조선'은 내리막길로 치닫게 되는데요...


그래서 역사저널 그날의 '조선'의 스토리도 이제는 끝나가는구나 새삼 느꼈습니다.ㅠ.ㅠ


'영조'는 평생 '열등감'과 '죄책감'에 시달린 사람입니다..

'천민태생'의 어머니를 두었다는 '열등감'과..

형인 '경종'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소문에 시달리고 살았지요..


그래서 왕이 되자말자 거센 저항에 부딪힙니다.

'경종'의 편이였던 '소론'과 '노론'의 경쟁세력인 '남인'들은 '경종독살설'을 퍼뜨리고..

'이인좌'는 급진소론들과 손을 잡고 대대적으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는데요..


재미있는것은..보통 이럴경우 '소론'과 '노론'을 전멸시킬텐데..

'영조'는 도리어 반란의 잘못을 '당쟁'때문이라고 말하며

이 '반란'을 이유로 '탕평책'을 쓰기 시작하는데요.


실제로 반란군 진압에 '소론'에게 맡겼으며..

'정미환국'을 일으켜 '소론'세력이 집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반란의 명분은 없어지고..곧 반란은 진압되게 되지요.


그리고 '숙종'의 '환국'과 달리...무조건 상대방을 죽이는것보다

서로의 '온건파'만을 남게 하는 방법을 쓰는데..

이런것보면 참 '영조'가 지혜로운 왕인데..말입니다..


그리고 '영조'시대의 주요인물이 나오는데요..

'암행어사'하면 떠오르는 인물 '박문수'입니다..

그리고 그의 행적과..우리가 어사에 대해 착각하는 이야기들이 나왔는데요


이분의 행적 역시 대단한데 말이지요..왕앞에서도 꿀리지 않고..

왕을 노려보는 바람에...벌을 주라고 신하들에게 상소가 올라왔지만..

'영조'는 끝까지 신뢰했고, 그가 죽은후 정말 슬퍼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읽으면서 그 왕에 그 신하단 생각만...(대단한 콤비셨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왕이지만, '숙종'하면 그의 업적보다 '장희빈'이 먼저 떠오르듯이

'영조'하면 아들을 죽인 왕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니 말입니다.

신하들이나 백성들에겐 자비로우면서 이상하게 가족들에겐 엄격했는데요..


그리고 '정조'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정조'는 실제로 조선의 마지막 성군이라고 할수 있지요..

'선조'와 '인조'가 다 죽여놓은 '조선'의 명을 살려놓았건만..말입니다.


그는 즉위하자말자 무수한 암살 시도에 맞이하고..

아버지가 죽은 트라우마가 있음에도 많은 업적을 만들어내는데요..

'규장각'설치부터 '수원 화성'건축까지..

거기에다 세련된 '탕평책'을 이용 정치를 안정시키고

소상인들을 지켜주며..여러가지 개혁을 통해조선의 '전성기'를 이룩합니다..


그러나 '정조'는 갑자기 죽게되고..

그의죽음은 많은 미스터리가 있는데요..일명 '독살설'이지요..

만일 정말 '독살'이 맞다면...'노론'들은 모를것입니다.

왕을 죽인게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를 죽인것이라는것을...


서얼을 등용하고, 공노비제도를 폐지하고

경제를 개혁하고 사회제도를 확립했던...

24년간의 정조의 개혁은...ㅠㅠ

그 뒤를 이은 '순조'가...자신의 아버지가 이룬것을 모두 제자리로 돌려버립니다.


읽으면서 얼마나 화가 나던지..ㅠㅠ

세도정치와 무능한 정치...결국 일어난 백성들의 저항..

그리고 '홍경래의 난'


비록 '홍경래의 난'은 실패했지만...농민들이 더이상 전과 같지 않으며..

'홍경래의 난'은 '동학농민운동'의 시초가 되었다는 말을 하는데요..

읽으면서 성공했으면 했던 아쉬운 난이였습니다.


역시 재미있게 읽었던 '역사저널 그날'이였는데요..

다음편은 '순조에서 순종까지'인데..

문득 얼마나 그 사이 왕들의 업적이 없길래....떨이취급을...

(보통 세명의 왕을 소개했는데...다음편은 다섯명이네요...)


우야동동..다음 작품도 기대해봅니다...

s*****o 2017.0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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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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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에서 홍경래의 난까지조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 사건들출간과 동시에 역사 분야 1위에 올랐던 『역사저널 그날』의 일곱 번째 권이 출간되었다. 『역사저널 그날』은 매주 주말 저녁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교양 역사 토크쇼 「역사저널 그날」의 재미를 온전히 책으로 담았다. 7권에서는 영조와 정조가 이끈 조선 후기의 부흥과 함께 세도정치로 대표되는 쇠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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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에서 홍경래의 난까지
조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 사건들

출간과 동시에 역사 분야 1위에 올랐던 『역사저널 그날』의 일곱 번째 권이 출간되었다. 『역사저널 그날』은 매주 주말 저녁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교양 역사 토크쇼 「역사저널 그날」의 재미를 온전히 책으로 담았다.

7권에서는 영조와 정조가 이끈 조선 후기의 부흥과 함께 세도정치로 대표되는 쇠퇴의 시작을 다룬다. 노론의 지원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오른 영조는 소론과 남인의 강경파가 일으킨 반란에 맞서 탕평 정치를 내세운다. 소론 출신인 박문수가 민생을 위한 정책을 펼치며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영조가 지원한 덕택이었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규장각과 장용영의 설치, 수원 화성의 건설, 신해통공의 시행 등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개혁 정책을 펼쳐 나갔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했다. 영조와 정조의 치세는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운 가운데 성리학적 세계관에 의존하는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의문에 휩싸인 정조의 사망 이후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민란이 일어나면서 조선은 쇠락하는 길에 접어들었다.

이 책은 지난한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함으로써 재미와 깊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토크와 드라마, 사료와 도표로 이어지는 이 책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이 시대를 조망하는 너른 안목과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전하는 재미와 감동을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소개 중-

YES마니아 : 골드 a*****5 2016.12.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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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역사저널 그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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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티비로 재미나게 보고 있습니다그래도 역시 책으로 읽는게 기억에 오래 남네요~~ 그림도 좋구요 글자도 적당합니다.이제 드디어 조선의 마지막 왕 순조까지 이야기입니다 영조 정조의 이야기가 재미있어 술술 읽었습니다. 이거 보고 다시 티비 프로그램을 보니 더더 재미있습니다. 1~7권까지 다 읽었는데 다음에는 고려사가 나올려나 기대합니다.  모두모두 많이 읽고 보고 즐기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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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티비로 재미나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책으로 읽는게 기억에 오래 남네요~~ 그림도 좋구요 글자도 적당합니다.


이제 드디어 조선의 마지막 왕 순조까지 이야기입니다 영조 정조의 이야기가 재미있어 술술 읽었습니다. 


이거 보고 다시 티비 프로그램을 보니 더더 재미있습니다. 


1~7권까지 다 읽었는데 다음에는 고려사가 나올려나 기대합니다.  모두모두 많이 읽고 보고 즐기세여~~~

c****0 2016.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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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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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역사 프로그램이 재미와 함께 지식전달을 효과적으로 한다고 생각했던 <역사저널>. 아이들이 싫어하는 역사 시간을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있다. 매번 시간대 별로 진행되지는 않고 시기나 계절 화제 사건을 주제로 아주 깊은 전문지식부터 얇디얇은 우스개까지 세련되게 구성하는 고급 프로그램이었다. 아쉽게도 막을 내린다는 소식에 시청률이 발목을 잡았구나 안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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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역사 프로그램이 재미와 함께 지식전달을 효과적으로 한다고 생각했던 <역사저널>. 아이들이 싫어하는 역사 시간을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있다. 매번 시간대 별로 진행되지는 않고 시기나 계절 화제 사건을 주제로 아주 깊은 전문지식부터 얇디얇은 우스개까지 세련되게 구성하는 고급 프로그램이었다.

아쉽게도 막을 내린다는 소식에 시청률이 발목을 잡았구나 안타까웠다. 이런 프로그램은 시청률과 무관하게 시청자의 지식교양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긍정적 효과를 높이 사줘야 하는데.

책은 그날의 방송 대본을 보듯, 각각 패널의 주고 받았던 대화들을 지문형식으로 그대로 살렸다. 영상물과 다르게 인쇄 책자로 다시 보니, 생각보다 얇은 지식이었구나 탄식하기도 했다.

조선사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는 영조부터 순조까지의 시대, 조선후기 부흥의 르네상스부터 쇠퇴까지의 결정적 사건들을 다뤄 시리즈 중에서도 흥미롭게 읽었다.   

l*****0 2017.05.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저널 그날 7: 중흥에서 몰락의 서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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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곱 번째 책은 영조에서 시작하여 순조로 막을 내립니다. 이번 내용의 경우도 사극에서 자주 만나던 이들이 많이 등장해서 완전히 새로운 발견을 하는 느낌은 덜했지만, 그만큼 스타성 있는(?) 이들의 등장이다 보니 반복되어도 여전히 놀랍기는 합니다. 왕권에 관련되어서는 서슬이 시퍼런 왕실 내의 일이기는 해도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 사도세자의 죽음이나, 암행어사 하면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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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곱 번째 책은 영조에서 시작하여 순조로 막을 내립니다. 이번 내용의 경우도 사극에서 자주 만나던 이들이 많이 등장해서 완전히 새로운 발견을 하는 느낌은 덜했지만, 그만큼 스타성 있는(?) 이들의 등장이다 보니 반복되어도 여전히 놀랍기는 합니다. 왕권에 관련되어서는 서슬이 시퍼런 왕실 내의 일이기는 해도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 사도세자의 죽음이나, 암행어사 하면 떠오르는 그 이름 박문수, 그리고 사도세자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 정조의 즉위로부터 죽음까지... 하나같이 읽고 또 읽어도 흥미진진한 인물들이죠.

책에서 표현한대로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할만한 시대가 끝나자마자 세도정치로 국운이 기울어짐을 보면서 리더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도 되고요.

이제 순조부터 순종까지의 마지막 한 권만 남겨두고 있는데, 몰락하는 조선의 역사를 읽는 게 그다지 신나지는 않지만,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기 위해서라도 역사는 꾸준히 들여다봐야겠지요.

YES마니아 : 로얄 h******e 2018.03.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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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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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7권에서는 조선 후기 르네상스르라고도 불리는 영 정조시대를 다루고있다 영조가 추진했던 탕평책그리고 조선최고의 비극인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임오화변죄인의 자식이라는 컴플렉스를 딛고 성군이 된 정조정조가 한 여러 개혁정책들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지만 정조의 이른 죽음으로 도로아미타불이 되고어린 순조의 즉위로 시작된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어지는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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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7권에서는 조선 후기 르네상스르라고도 불리는 영 정조시대를 다루고있다 
영조가 추진했던 탕평책
그리고 조선최고의 비극인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임오화변
죄인의 자식이라는 컴플렉스를 딛고 성군이 된 정조
정조가 한 여러 개혁정책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지만 정조의 이른 죽음으로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어린 순조의 즉위로 시작된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이어지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서북지역의 차별에 대해 반발하며 일어났던 홍경래의 난을 다루고있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영화나 드라마로도 알려졌지만 
진짜 비극적인 사건이다
원래 아버지와 아들이 잘 안맞고 부딪칠수있다지만 정말 양극단을 달리다가 비극으로 끝났달까
예민하고 꼼꼼했던 영조와 그에반해 공부보다 무예를 좋아했으며
무인의 기질을 더 가지고있었던 사도세자
과도한 영조의 지적과 대놓고 사도세자를 무시하며 윽박지르기만 하다보니
사도세자는 더더욱 영조앞에서 움츠러들고 기를 펴지못한다 
광증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쥐잡듯 잡아대면 누가 견뎌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정조라는 대안이 있었기에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것같기도 해서
비정하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 권력은 비정하다 ;;;;;;;
정조 역시 독살설이 많이 떠도는데 그것은 그의 급작스러운 죽음때문에 더 그런것같다
게다가 많은 그의 정책들이 사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더 아쉬움이 큰데
정조는 워낙 책을 좋아하고 과중한 업무를 하다보니 건강이 좋지않았다고 한다
조선왕들의 고질병인 종기로 정조 역시 고생한다 
게다가 정조는 세손시절부터 끊임없이 암살에 시달려서인지 독살설이 더 주목받는것같다
아버지를 죽게한 노론벽파들과 대립해왔으니말이다 
그렇긴하지만 노론벽파들을 무조건 내치기만 한건 아니었다
노론인 심환지와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단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우리의 생각처럼 노론과 무조건 대립은 아니었던것같다
그리고 정조의 여러정책중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던 신해통공
중소상인을 보호하기도 하고 노론의 자금줄을 어느정도 막는 효과가 있었으리라 본다 
그리고 성공하지못했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는 홍경래의 난까지
정조까지 다 나와버리고 세도정치가 나오니 답답해진다 
그 이후로는 이제 암울한 역사가 계속하서 나올텐데ㅠㅠ

 

YES마니아 : 플래티넘 b**********1 2016.12.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