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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라는 주제는 예나 지금이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 8권과 제 9권에 담긴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 원칙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유용성에서 나온 우정, 쾌락에서 나온 우정, 덕성에서 나온 우정을 구분합니다.
쉽게 설명해 '꼼수'가 있는 목적의 우정, 섹스관계, 진정으로 심오한 우정으로 풀이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한 사람과의 우정을 그만두어야 하는지 묻습니다. 유용성과 쾌락의 우정이라면 당연히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덕성의 우정'이었을지라 하더라도 )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의 종말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친구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변한 사람을 되돌릴 수도 없다면 포기하는 것이 옳다"
라이너 에를링거 [세상의 모든 질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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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독일의 의학박사이자 법학박사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수 많은 질문이 쏟아집니다. 그 중 한 사람이 "가치관이 급속히 변한 친구와 대화가 더 이상 안통하는데, 우정이 계속 지속될 수 있느냐?" 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우정의 종말이 타당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역경도 이겨내야 함이 우정의 본성이지만, 미래에도 공통분모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면 그를 향한 감정은 애정이 아니라 감상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관계를 형성하고 또 없앱니다. 그런 마당에 진정한 친구가 내게 누구냐고 한다면 생각해 볼만한 주제입니다.
대부분 목적관계로, 혹은 성적 접근을 위해 우정을 포장하곤 하지요. 지금 그 사람에게 더 이상 물질적으로 얻어낼 것이 없더라도, 지금 그 사람과 더 이상 잠자리를 같이 하지 못하더라도, 그와의 관계가 계속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덕성의 우정 (상대방의 가치관이 좋고 삶의 자세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 빛이 나겠지요.
혹시 지금 이 순간, 변한 친구 때문에 우정이 지속될 수 있나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여러분이 변하는 것 처럼, 자기하고 맞지 않으면서 연식만 오래되었다고 진정한 친구는 아닌 셈이죠. 대부분 서로의 모습까지 감싸 주어야 진정한 친구가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더 엄밀히 말하면 그 감싸 안는 범위까지조차 자신의 가치관 안에서 허용되는 수준 안에서만 포함시켜주는 것 뿐이니깐요. (그래서 양적인 우세를 자랑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목적을 확장시키면 친구라고 라벨링되는 존재도 많아지는 건 당연하니깐요.)
단 친구와의 우정에 대한 고민 이전에, 내가 먼저 어떤 식으로 상대방을 대하는지 고민하고 행동한다면, 조금 더 실천적인 우정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하루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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