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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시대의 천황은 정치 외적인 영역을 기초로한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소극적 권위였다. 그러다 막부말기 메이지유신으로 가는 근대화과정에서 제도와 결합하여 '천황제'라는 군주제를 성립하게 된다. 봉건귀족의 고유한 지배권력을 수탈해서 그것을 계획적, 합리적으로 절대군주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국가'가 생겼다. 그 과정에서 절대왕정이 교황(교회)와의 격렬한 투쟁을 거쳐 종교적 '권위'로부터 왕의 정치적 '권력'이 분리 독립함으로써 유럽의 근대화는 성립되었다. 이와달리 일본의 경우 지방의 번에 의한 자발적 권력반환(막부의 정권반환-판적봉환-폐번치현)으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보니 분파주의라는 약점이 생겼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대외적 공동태 관념이 필요하여 침략전쟁(정한론, 정대론)을 추진하게 된다. 더불어 이로 인한 내부적 폭발을 막기 위해 전통질서인 '덕'을 표방한 '천황'을 필요로 하게된다.
1. 이념 천황제를 받치고있는 이데올로기는 가족국가관이다. 가족국가관은 서유럽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인 사회유기체설과 전통적인 유교정치론 사상이 결합한것으로
봉건적인 가부장제적 세계를 국가적 규모로 통합하여 가족과 국가를 이어주어 인위적, 제도적인 위계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대립을 미풍양속으로 중화하고 자본주의의 물화에 의한 소외를 정신의 효소 즉, "정"으로써 극복하게 된다 권력국가(헌법제정)와 공동체국가(향당사회 유지)의 이질적인 두원리의 구성으로 인해 정치권력이 일상에 '내재'하게 되는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는 덕의에 의한 결합(= 도덕공동체가) 되어 내부적으로는 이해대립이 존재하지 않는(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대립이 생기면 공동체에서 제외시킴) 평화롭고 소극적인 사회가 되고 외부적으로는 일본이 도덕을 독점함으로써 일본 이외는 비도덕세계가 되어 타국가에 대한 말살이 합리화된다.
2. 구성 추상적인 절대권력을 현실사회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수긍할수 있도록 보편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것을 국가의 개별성 체계에 대한 공공성이라 하는데, 일본의 향당사회에서는 교육칙어(국가주의와 유교주의를 섞어놓은 "충신효제"를 주된 이념으로 삼아 국민에게 주입하여)를 통해 부여했다. 이로써 국민은 도덕적 통일체가 되고, 관료기구의 수직적 계층성이 인격적으로 구성되었다.
3. 특징 일본사회는 체제자신에 의해서 유지되는'향당사회'였으므로 유럽의 자본주의가 도시에서 발달한것과 달리 일본의 자본주의는 전근대적인 농업생산관계 위에 행해지는 특수한 형태를 띄게되었다. 따라서 사회경제적인 매개고리를 촌락의 공동체형태로 이끌어가게 된다. 인민과 국가를 연결해주는 도구인 관료기구를 호적편제로 결정하는 것이다.
위로부터 생겨난 권력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전통질서를 이용한, 다시말해 관료기구에 인격성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타협, 자발적인 특성으로 정치사회의 수평화 를 가져왔다. 소위 '알아서 기게 되는' 구조가 되는것이다. 더불어 근대국가의 구성조건인 '영토', '국민'이라는 개념이 확보되었다 일본은 나치처럼 개인을 결집의 단위로 하는것이 아니라 이러한 공동체를 결집의 단위로 하는 파시즘의 천황제적 형태속에서 도덕과 경제는 일치하도록 되고 충효관념만으로 생명을 바치는 '관념국가'가 형성되었다 3. 천황제와 파시즘 나치스와 파쇼는 파시즘을 국내에서 만들어 냈고, 같은 부정 원리를 세계로 확대시켜 전쟁을 일으켰지만 일본은 향토에의 정착을 전제로 하여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사적인 심정을 공동체로 구조화 하고 나아가 그것을 공적인 국가관념과 결합시키기 위해 국가의 '비상시'(전쟁)로 도출해낸 것이다.
정치는 그 논리는 추상적 보편적인 '무인격적 진리'이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영원히 인간에 의한 인간의 조직화이므로 기계적인 합칙성으로 사회관계를 규제하려 하더라도 인간적 결단이 들어가지 않을수없다. 그 결단이 유럽에서는 '계몽'으로 불렸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사유공영의 원리'가 된다 여기에 마르크스의 전체주의적 사유구조가 영향을 미쳐 파시즘으로 확장되었다. =>칼포퍼가 지적한 플라톤에서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전체주의로 이해해도 될지 모르겠다. (불완전한 개인은 완전한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것)
사유공영의 원리가 적용되는 구조에서 추상적 권리에 대한 자각은 자살로 드러난다. 태평양전쟁에서 카미카제는 체제에의 수긍이 아니라 체제에의 비판과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