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대단히 읽기 쉽다. 문장이 편하고 책장이 빠르게 넘어간다. 주를 달아야 하는, 외부에서 빌려 온 개념이 거의 보이지 않고 최대한 자기 자료 안에서 텍스트를 마무리 지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그다지 지적 밀도가 높지 않은 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충분한 자료를 찾아보고, 그 중 일부의 자료만을 나름의 원칙에 따라 선별하여 순서대로 열거하고, 이를 통하여 저자의 개인적인 주장까지를, 그것도 대단히 읽기 쉽게 제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공중파 방송의 다큐멘터리 프로 시나리오 정도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책 어디에서 이런 설득력이 나오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것은 이 책에 열거된 주장이 기반하고 있는 지적 기반이 충분히 중후하며, 또한 독자를 분명히 의식하고서 말을 건네는 저자의 진지함이 지나치지 않게 전체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자료들의 산더미가 물 흐르듯 매끄럽게 다듬어지고 정제되어 독자에게 이른다. 이런 글쓰기는 결코 쉽지 않다. 2) 군주제의 국가들과 오늘날의 민주국가 사이에서 이 책은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관련 맺고 있는가? 대통령은 결코 왕이 아니다. 그저 공무원일 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왕은 없으며, 만일 왕이라고 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국민 모두가 다함께 갖는 주권의 추상적 상징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참정권은 선거 때만 작동되는 한시적 권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개혁적 정치가들이 추구했던 이상, 또 이를 위한 노력은 이제 국민 각자의 관심사, 책임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국민이 곧 국가이다. 권력은 상호 동의 하에 작동된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해 준비된 국민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선비도, 학자도, 운동가도, 의사도 아닌, 그저 인간이다.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인간이 곧 나라의 주인이다. 인간이 각성되지 않은 나라는 주인 없는 나라이다. 분명히 적건대, 세상을 바꾸는 것은 교육과 문화이다. 충분한 현실 인식 없이 열정과 이상만으로 패배한 개혁은 예전 선비들의 문제가 아니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문제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준비한 만큼 온다. 3) 텍스트를 통제하는 저자의 역량이 강할수록 텍스트는 닫힌다. 반론, 열린 해석의 빌미를 주지 않는 글쓰기는 그래서 위험하다. 글을 쓰는 개인이 보편적 합리성 뒤에 숨을 때 이 위험은 더욱 크다. 차라리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며 자신의 개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솔직하고 당당한 글쓰기가 훨씬 좋다. 개인의 문제는 자기 개인에게 국한시키고, 다른 인간 모두를 모조리 제 한계 안으로 블랙홀처럼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저자의 문제의식과 저술 의도를 처음부터 분명히 하고 있어, 탁월한 글쓰기이면서도 세상사를 이해하는 ‘만능열쇠’ 혹은 ‘모범답안’의 강박을 벗어나고 있다. 우리가 개혁적 정치가들의 과제, 노력들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순간, 텍스트를 통제하는 저자의 권력은 우리의 닫힌 문 밖에서 순순히 발길을 돌린다. 이때 저자와 독자는 책이 주는 지적 무게 잡기의 독을 피해서, 오히려 책을 통해 벗이 될 수 있다. 비판? 없을 수는 없겠으나 지면으로는 남기고 싶지 않다. 벗이고자 하는 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
|
고전을 다루는 책이 좋은 이유는, |
|
사실 이 책을 접하게 된 건 우연한 검색 때문이었다. yes24에서 [난세에 답하다]라는 책을 검색하기 위해 '난세'라는 단어를 치면서 이 책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 책은 13인에 대한 인물의 선정부터 서술 양식까지 저자 임용한씨의 관점이 뚜렷하게 반영되었다.(그런면에서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이 충돌하는 재밌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우선 인물의 선정부터 보자. '의자왕, 궁예, 소현세자, 윤치호 '의 경우는 이런 책 종류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인물들이다.
책의 체계는, 1. 그들이 꿈꾼 세계/ 2. 닫힌 사회에 대한 도전 그리고 한계/ 이고 그 안에 또 다른 기준이 있다.
저자는 시작하는 글에서, 개혁에 관한 교훈을 '과거의 집착', '개혁에 대한 감성적 접근', '협소한 세계관'에서 찾았다. 그만큼 난세에 '개혁'에 관한 저자의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고 이 책 부분에서 가장 뛰어난 점을 꼽으라면 '전쟁'을 둘러싼 심층적인 이해다.
지은이의 저작을 살펴보니 역시 <전쟁과 역사>라는 책을 지었을 만큼, 전쟁에 대한 다각적인 면이 돋보였다.
한편, 이러한 책은 인물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상황을 바라볼 수 있기에 역사를 이해하고 접하기에 친근하다. 또한 인물의 의도, 성향, 목적 등을 통해 역사를 바라봄으로써 역사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다행히 이 책은 한 가지 오류에 빠지지는 않은 것 같다. 바로 현재라는 관점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오류. 저자가 역사전공자인만큼 당시의 상황과 맥락에서 행위를 이해하고 바라본다. 그럼에도 현재에 큰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렇지만 이 책은 마냥 인물에 대해서 변론하지는 않는다. 인물에 대한 한계와 추구하는 바를 분명히 구분함으로써 평가한다. (이런 점은 마지막 인물인 윤치호에게서 절정에 달한다.)
한 가지 우려스웠던 점은, <화랑세기>와 같이 학계에서 논란 중인 저작물도 거리낌없이 활용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짜임새있고, 저자의 통찰이 뛰어난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앞서나간다는 생각도 지을 수는 없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