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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고갱은 고흐보다는 조금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타히티의 여인들이 생각나고, 우리 딸이 너무나 좋아하는 <황색의 그리스도>를 그린 사람이기도 하다. 몇해전엔 고갱이 고흐의 귀를 잘랐을수도 있다는 설을 뉴스에서 듣기도 했지만, 그건 아닐듯 하다. 그런 고갱을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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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은 프랑스의 화가, 도자기, 조각, 목판화로도 유명하다. 고개의 그림의 특징은 장식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넓고 평평한 느낌이 나게 색칠한 면을 굵은 테두리선으로 감싸서 자연의 모습을 일부러 일그러뜨렸다고 한다. 고갱의 이러한 화풍의 영향을 받아 화가들의 표현 방법이 아주 다양해져 20세기 초기에 야수파 화가들 중 프랑스 화가 앙리마티스와 독일의 표현주위 화가 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폴고갱은 파리에서 태어나서 17세에 상선의 선원이 되었다. 그러나 중도에 그 일을 그만두고 은행에 취직해 금융자로 성공을 하고, 1873년 결혼을 한 뒤에 그림을 그리고 수집하기 시작하여 1883년 금융게가 파산하자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프랑스 화가 카미유 코로나 카미유 피사로와 비슷한 화풍으로 그렸다고 한다. 화가로서 자리를 잡자 고갱은 그림을 더 밝고 다채로운 색채를 사용하고 입체형상 대신 납작한 형태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림 한 점을 제대로 팔지도 못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돈문제로 인해 잦은 싸움으로 인해 이혼하고 그 뒤 프랑스 브르타뉴로 옮겨서 화가 에밀 베르나르를 만나서 미술 철학자이자 미술 양식인 종합주의를 주창 했다고 한다. 고갱의 후기 그림에 잘 나타나와 있는데 단순한 형태 , 격렬한 색채, 장식 효과를 강조 했다.
사람들의 순진함과 솔직함을 좋아했던 그는 현대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발견을 원해 그런 사람들을 찾아 간 곳이 타히티로 가게 되었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 온뒤 마지막까지는 남태평양으로 계속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고갱의 그림에서 보듯이 남태평 제도에 사는 원주민들을 그리면서 꿈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온화하고 수동적인 모습으로 묘사 했으며 많은 그림에 나오듯이 열대지방의 풍경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이다. 고갱은 말년에 운둔 생활을 자처했으며 그 당시 집필한 [이전 그리고 이후]에는 그의 고독과 동료 비평가들의 몰이해가 잘 드러나 있다 고갱은 중병에 걸려 마르키즈제도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원시인처럼 살고자 했던 유럽인의 이중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19세기 말 가장 매력적인 화가 중 한사람이며 그는 일생에서 삶은 그리 평탄지 못했지만 고갱은 모든것을 버리고 다른 세상이 있는 곳으로 가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추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것이다. 고갱의 많은 그림들의 특징에서 나와 있듯이 장식적인 무늬와 단순화도니 형태 그리고 강렬한 색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시를 향한 순수한 열망... 그는 독창적이고 영감이 풍부하고 용감하며 불안한 반순응주의자..라고 불리운다.
이 책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읽어도 무척 도움이 되는것 같다. 그 동안 잘 접해 보지 못했던 고갱의 그림들과 그의 모든것을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었다는것이다. 그 인물의 일생과 더불어 그의 모든 작품들과 특징을 잘 담아 두어서 많은 도움을 준다는것이다. 그 동안 자화상, 해변에서 등 소수의 그림들만 알았으나 이젠 그의 많은 작품을 알게 되었다는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이유다. 쉽게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든지 읽을 수 있어서 바쁜 가운데 틈틈히 읽을수있었다는 것이 제일 매력이 되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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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고갱은 정열적인 타이티의 색체들을 제대로 표현한 작가라는게 다이다. 물론 그림은 더더욱이나 문외한이다. 이런내가 외 이책을 읽었냐면 솔직하게 말하자면 고상해 지고 싶어서이다. 잔잔한 음악이 들리는 가운데 그림을 감사하는 여인이 나오는 장면을 볼때마다 나는외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걸까 물론 전시회도 거의 가본적이 없다. 단지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들의 이력을 조금알뿐이다. 이런 단편적인 내 지식과 그림을 모르는 나의 무지를 이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었다. 고갱의 그림중 타이티에서 그린 그림이 내게는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난 그림을 잘 모른다. 단지 내 느낌만으로 말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난 고갱이 다른 화가들 같이 어릴때부터 그림을 그린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고갱은 늦은나이에 그것도 직장을 다니면서 만난 직장동료와 그림에관한 관심을 나누다가 그림을 배우게 된다. 이때만해도 취미정도의 활동을 하였던 고갱이 결혼후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된다. 그러다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그림에 심취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부인은 고갱의 화가로의 재능을 알아보기 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때문에 화가가 되는걸 반대한다. 두사람은 결국 이혼을하고 고갱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만 본인의 열정의 산물인 그림은 유럽사회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화가들이 사후에 그 작품성을 인정받게 되듯이 고갱또한 그런 경우에 속한다. 고갱은 타이티에서 본인이 열망하는 그림과 색감과 이국적인 정취속에서 그의 생에 가장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게되고 불후의 명작들을 그리게된다. 고갱이 생계를 위해 그렇게 팔고자하던 그림들을 외면하던 그들이 그의 죽음뒤에는 서로 그의 작품을 구입하고자 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많은 화가들이 그의 창작활동의 무대였던 타이티를 찾아가는걸 봐도 그렇다. 화가로서의 부침이 많았던 그의 인생이이야기가 영화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한사람의 고통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건 무얼까 예술가의 혼 그건 남은자의 죽은자를 포장하는 겉치례는 아닐까 고갱은 단지 그림을 좋아했고 그가 좋아했던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화가이자 생활인이었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오늘 내가만난 고갱은 단지 그림을 너무 좋아한 화가였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그림을 못그린다. 학교다닐때 방학숙제중 그림숙제는 꼭 한장씩 있어 그때마다 언니가 그려준 그림을 제출할 정도였다. 나와 다르게 그림을 잘 그렸던 언니 덕문에 언니가 그려준 그림으로 상까지 타게 되었다. 내가 못하는걸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질투가 나는데 고갱의 그림은 그런 생각이 들세가 없다. 단지 그림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같다. 그림에 무지한 내가 고갱을 첫걸음으로 그림을 좀더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 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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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한 화가 외젠 알리 폴 고갱(1848~1903)은 생애가 작품만큼 관심을 갖게 하는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고갱은 신문 정치부 기자였던 아버지와 스페인 귀족 가문 출신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고갱은 중학시절 언어문제로 고생을 했으며 성적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10대 후반에는 선원이 되어 배를 타기도 했으나 군복무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서는 증권 거래소에 취직한다. 증권 거래소는 고갱에게 그림의 관심을 갖게한 하나의 전기를 마련해준다. 이곳에서 동료 에밀 쉬프네케르와 그림에 대한 관심을 공유한 고갱은 그림 전시장과 미술관을 찾아 다니는가 하면 미술에 관해 토론하고, 세잔, 모네, 마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을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갱이 어려서부터 그림을 배웠다거나, 어린시절에 그림에 대한 소질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유있는 직장생활이 그림에 눈을 돌리게 했고 습작삼아 그린 정물화와 풍경화를 통해 그의 천부적인 재능이 드러난 것이다. 초기의 습작 중 <예나 다리가 보이는 센 강>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은 작품으로 인공미 보다는 자연스럽고 즉각적인 방법으로 자연에 접근해 개인적인 감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작품이다.
인상주의 전시회에 초청을 받아 조각작품 하나를 전시하고 피사로의 가르침을 받아 시골 풍경화를 능숙하게 그리게 된 고갱은 인상주의 전시회에 그림과 흉상을 출품하며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사람받는 주제였던 눈을 주제로 그들의 수준에 도달하기 바라며 그린 <눈이 쌓인 정원>과 아내와 아이들을 화폭에 담은 <보지라르의 정원>은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어서 시선을 오래 붙잡았다. 고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작업에 임하는 동안 그의 아내 메테는 그림이 남편의 소일거리에서 남편을 완전히 사로잡은 열정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점점 불안을 느낀다. 그러나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갱은 전업화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부부는 점차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진다.
사람들은 고갱의 혁신적인 미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외면한다. 무일푼인데다가 병까지 겹친 그는 전던지 붙이는 일당일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브르타뉴로 향한다. 그가 퐁타방으로 간 것은 영감을 주는 새로운 모티브를 찾을 수 있고 민중의 전통이 살아있는 장소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이 시기에 그려진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춤추는 네 명의 브르타뉴 여인들>은 혁신적인 양식과 특이한 구성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그림자와 명암법이 사용되지 않고 윤곽선이 강조된 이 그림의 기법은 차차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고갱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순수하고 신비로움을 간직한 브르타뉴와 그곳 여인들의 소박하고 투박한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고갱은 원시적인 삶을 경험하고 그림 작업을 하러 섬으로 떠났다가 풍토병과 가난에 시달려 수개월만에 프랑스로 돌아온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자신을 연결하는 탯줄을 완전히 잘라버리고 처음으로 원시주의에 다가가게 한다. 고갱의 창조성이 강렬하게 드러난 곳인 타히티 섬으로 향한 것은 마흔일곱 살이다.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타히티로 떠난 그는 원주민의 생활과 섬의 풍경을 많이 그린다. 원주민의 건강함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는 그의 그림을 완성시켜주며 많은 대작이 타히티에서 창조된다. 고갱은 이 섬에서 심장마비로 눈을 감는다.
고갱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것은 가난과 병이었다. 이는 고갱의 자유로운 기질과 문란한 생활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증권 브로커로 일하다가 35세에 화가가 된 고갱은 인상주의를 벗어나려는 젊은 화가들의 리더 격이다. 숙련된 소묘 화가인 앵그르와 드가를 좋아했던 고갱을 만나는 동안 고갱이 싫어했던 밀레를 좋아한 화가 고흐가 떠올랐다. 동시대를 산 두 화가는 작품만큼이나 생애도 관심을 갖게 한다. 고흐도 고갱처럼 가난했으며 창녀와 동거한 전력, 병으로 고통 당하는 화가여서, 또 브르타뉴에서 알게 된 인연 때문에 고흐가 머릿속을 맴도는 것 같다. 두 사람은 두달간 함께 지내다 격렬한 언쟁으로 헤어지고, 이 언쟁으로 인해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른다. 면도칼로 귓불을 자른 일은 고흐의 첫 번째 발작을 촉발하는데, 얼마 전 신문에서 고흐의 귀를 자른 것은 고흐 자신이 아니라 동료화가 고갱이었다는 주장이 실렸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고갱과 그의 작품을 풍요롭게 만나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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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한 사람의 생애 중 그와 많은 영향을 주고받고 생각을 나누고 함께 보낸 시간을 가졌다면 그것은 물론 그 생의 일부 중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은 틀림없다. 고갱하면 항상 고흐가 함께 떠올랐고 그와 더불어 이야기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고흐와 관련된 이야기도 물론 들어있기는 했지만 그와 독립적인 온전한 고갱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그 인물됨에 대해 순수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노란색의 삶과 작품, 파란색의 배경, 분홍색의 명작 띠지의 구분을 고마워하며 그의 출생 이전 집안의 배경과 그 부모님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붓을 잡기 이전의 생활과 결혼, 첫 부인에게서 낳은 다섯 아이들, 그리고 화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과정과 당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 그가 받은 대접과 테오, 고흐와의 인연, 타히티에서 열 셋의 어린 신부를 맞고 살아가는 삶과 그 삶이 녹아들어간 그의 그림을 마주 대하게 되었다. 그 어느 누구가 단순히 유명한 화가이기에, 그의 그림이 명화라 일컬어지기에 들여다본 책일지라도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읽게끔, 그의 그림을 보는 것이 즐거워지도록 만드는 책이다. 그의 전 생애와 그가 살아 숨쉬던 시대와 그가 살았던 곳의 배경과 그의 삶의 흔적들을 모두 끌어안아 화가로서의 고갱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고갱을 볼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의 변화 과정과 그림에 대해 부분 부분 따로 확대하여 설명하여 주는 글이 쉽고 재미있어 다른 곳에서 그의 그림을 보게 된다면 읽은 글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화가의 이야기와 그림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았지만 여자이기에 그의 여인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기도 했다. 타히티에서의 생활이 고갱에게는 가장 평화로운 삶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섬 주민들에 대한 고갱의 구체적인 관심이 주민들의 일원이 되기 위한 그의 노력이었다는 글을 읽고 다시 그의 마지막 오두막 '쾌락의 집' 당시의 고갱에 대한 원주민과 행정당국의 다른 시각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신문작가의 아들 고갱이 증권사업소에서 일하던 고갱이 어떻게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의 그림이 어떻게 빛을 발하게 되었는지, 그의 여러 여인들과 아이들, 가난하고 질기게 병치레를 앓으면서도 그림에 대한 꺼지지 않는 열망을, 인상주의에서 상징주의로, 나비 화파 등 그가 영향을 주고 받았던 화파와 그와 인연이 닿았던 인물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그가 살았던 시대를 한 번에 모두 볼 수 있는 책이 이 책이었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하나 하나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고, 그의 그림에만 관심이 가 있었는데 그의 다른 작품들-조각 등-을 보며 그의 그림 외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행운이었다. 책을 읽고 영화 속 고갱도 만나보고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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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은 색채를 통한 개념적인 표현을 추구한 후기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자연을 사랑한 불멸의 화가 반 고흐, 그리고 "나는 위대한 화가다.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한 천재적인 화가 폴 고갱은 인상파와 결별한 뒤 고갱의 그림은 관념적인 형상과 암시적인 색채로 채워져 갔는데, 특히 고갱은 쉽게 분명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원시주의에 몰두했다. 그의 모든 의도는 관념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상징주의 운동을 주도한 화가로 인정받았다. 과거 내가 처음으로 고갱의 작품을 보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중의 하나가 그의 예술에 배경이 되는 그의 삶의 발자취를 전혀 몰랐었다는 점이었다. 그 후 그의 동료화가들과의 관계 등을 읽어보고 고갱의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일예로 세계 미술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이 한 공간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다는점은 그의 작품을 이해할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정신병이 걸렸을때의 행동들에 대한 분석으로 고흐가 왜그랬는지, 반 고흐와 미술에 대한 견해 차이로 불화를 일으킨 뒤 마르티니크로 다시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과 같은 부분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고갱은 열대지방의 풍경에서 찬란한 색채와 관능적인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였고, 그곳에서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윈시공동체의 매력을 경험하였다. 마침내 고갱은 인상파에 반발하고 원시미술로 복귀하였다는 부분이나 고갱은 아내 메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묘사한 내용을 볼때 예술가, 고독한 영웅은 남편, 가장과 공존하고 있었다. 단순히 고집 센 천재로만 알려진 고갱의 삶의자취로 그의 삶의 어두운 부분과 좌절의 시간을 잘 알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Art Book’ 시리즈의 일곱번째 책으로 각 화가의 삶과 예술을 당대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문맥 속에서 살펴보고 있는 장점이 있는 책이다. 책의 본문은 화가의 삶과 작품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 역사적.문화적 배경, 주요 작품들에 대한 분석으로 나뉘어 있는데, 생의 주기와 작품을 종적으로 배열해 예술가의 삶속에서 각기 단계별로 어떤 작품들이 만들어 졌는지를 쉽게 비교해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삶과 작품, 배경, 그리고 작품해설로 구분하여 각각 노란색, 하늘색, 분홍색의 띠로 표시되어 있어 찾아보기 쉽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비슷한 시대에 활동하던 다른 주변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어 작가의 작품성향이나 시대적인 특징과 사조등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될거란 기대감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멋진 그림과 고갱의 개인적 생활까지 볼수 있는 멋지 책으로 미술도록만 보아서는 알수 없는 예술가의 생애를 시작으로 그들의 작품이 만들어진 경로와 자취를 따라가며 수록한 그림들은 한마디로 화가의 특징을 더욱 이해하기 쉽게 해준다. 생생하게 펼쳐지는 거장들의 삶과 예술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하겠다. 보통 미술사에 관한 책들은 상당한 두께의 전문서적이 대부분으로 가격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 책은 비교적 얇은 두께의 책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임에도 작품과 그 해설이 함축적으로 수록되어 있어 부담없이 한 작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책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빛나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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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인상과 색채의 마법, 고갱
고갱의 그림을 알게 된 것은 고흐를 알고 나서이다. 고흐의 친구, 9개월 동안 함께 살면서 수많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던 것으로 더 유명하였다. 고흐의 그림이 너무 유명하여서 오히려 그의 품에서 묻힌 감이 있지만, 고갱은 분명 천재적인 열정과 실력을 보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보게 된 책이 마로니에북스의 아트북 시리즈 <고갱.원시를 향한 순수한 열망> 이다.
이 책 시리즈는 참 마음에 든다. 내가 만나는 세 번째 책인데, 화가의 생애를 꼼꼼하게 짚어주기도 하지만, 그들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다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시리즈의 책을 모으고 싶을 만큼의 욕심이 생긴다. 욕심처럼 꼼꼼하게 보려고 노력해봤다. 화가들의 세계, 화가들의 삶에 대해 더 진지하게 다가간다면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 쉬우리라 생각했다.
폴 고갱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 증권 중개소에 일하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그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직장 동료 에밀 쉬프네케르가 그림을 좋아해서 함께 미술관을 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한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주를 부렸던 다른 천재 예술가들과는 참 다른 시작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더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그의 초기작품인 ‘예나 다리가 보이는 센 강’은 아주 기묘하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 푸르른 색채에서 배들의 모습이 차갑지만 불쌍하게 다가온다. 자연스럽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자연에 접근했던 고갱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변화의 길을 맞이한다.
하지만 고갱의 그림들은 이때의 작품들이 유명한 것이 아니다. 강렬한 색채와 독특한 시선의 사람 형태의 모습을 그린 <춤추는 네 명의 브르타뉴 여인들> <오고가는 길> <설교 후의 환영> 등에서 고갱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명작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의 오른쪽 상단에 화가의 연대에 따라 명작 (분홍색), 배경 (파란색), 삶과 작품 (노란색) 으로 금새 찾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책의 그런 점이 참 마음에 든다. 이런 미술관련 책들은 의외로 그림만으로는 화가나 작품들을 찾아보기 어려우니 말이다. 이 책도 고갱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소개와 그들의 작품들이 함께 담겨 있어서 그것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역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고흐와의 시대에서의 그림이다. 물론 나중엔 결별을 하고 고흐는 짧은 생애를 자살로 마감했지만, 정말 많은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 그의 작품은 점점 변화를 거듭하고 문명 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남태평양의 타히니섬으로 떠났다. 거기서의 원주민의 건강한 인간성과 색채에 푹 빠져서 그만의 완벽한 미술 세계를 맞이한다. 이 책은 그때의 그림들이 아주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즐거움을 한껏 더해준다. 그가 없었다면 20세기의 새로운 미술을 맞이하기 힘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유명한 화가들을 하나씩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화가들의 아트북에도 손이 갈 정도이다. 인상주의 그림에만 길들어진 우리의 눈을 남태평양의 붉은 세계로 인도해줄 만한 멋진 책이니 만큼 다른 이들도 고갱을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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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알리 폴 고갱은 1848년 6월 7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메리카 정복기에 페루로 이주했던 스페인 귀족 가문 출신이고 아버지는 신문 정치부 기자였다. 폴의 아버지가 지지했던 공화파 세력이 힘을 잃자 가족들은 페루행 배에 오른다. 아버지는 배에서 죽고 어머니는 고갱와 마리(딸)를 데리고 페루에 머문다. 페루는 잉카문명의 발상지이다. 고갱은 자신의 태생을 자랑스러워했으며 자신에게 잉카의 피가 흐른다고 확신했단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 치하였다. 고갱은 베르탱의 증권중개소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덴마크 출신의 연인 메테 소피 가드를 만나 결혼했고 4명의 아이들을 낳는다. 그러나 그녀는 젊고 유망한 젊은 회사원인 고갱을 사랑했지 그림을 그리는 고갱을 사랑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고갱이 그림에 빠져들수록 그녀와 아이들은 그와 멀어져갔다. 인상주의 화가였던 카미유 피사로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그림을 만들어간다. 이 때 함께했던 젊은 작가들은 우리가 잘 아는 모네, 마네, 드가, 르누아르 등이 있다. 그의 그림은 분명 독특하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인상주의 화풍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찬사 받던 시기에 고갱의 그림은 이미 인상주의와는 다른 화풍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의 혁신적인 그림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고갱은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파리를 증오했으며 야생이 살아 있는 시골을 사랑하게 된다. 민중의 전통이 살아있는 브르타뉴에서의 삶은 그에게 많은 영감과 모티브를 제공한다. 브르타뉴의 여인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림자와 명암법을 사용하지 않아 얼굴에는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이런 방식으로 그린 인물들은 현실적인 의미를 잃어버리고 순수한 장식적 요소로 변한다. 이런 그림은 훗날 아르누보의 우아하고 복잡한 그림의 기반이 된다. 고갱은 세련된 파리의 모델과 다른 브르타뉴 여인의 소박하고 다소 거친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그는 결국 1887년 프랑스를 떠나 파나마만에 위치한 섬 타보가로 떠난다. 온갖 풍토병과 가난에 시달리지만 그는 그 곳의 삶에 매우 만족하며 그곳의 삶 속에 들어가 그림을 그린다. 인종주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곳의 여자와 동거한다. 이때 그린 그림들은 테오 반 고흐에게 고갱과의 인연을 만들어준다. 테오 반 고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으로 미술상이었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종합주의와 클루아조니슴’양식을 완성하는데 종합주의란 사실이 아니라 상상력을 기반으로 그리면서 현실을 단순화 시키는 것이고 클루아조니슴은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채를 둘러싼 윤곽선에서 유래된 말이다. 1888년 고갱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추구하던 자연주의와는 반대로 “사물을 앞에 놓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인 상상력에서 추출하여 그리기를”원한다. 브르타뉴를 여행하면서 빈센트 반 고흐를 알게된 고갱은 나중에 고흐의 요청에 의해 서로 동거하면서 서로의 미술세계에 대해 밤새 토론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성이 강했던 두 화가는 결국 성격차이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진다. 친구를 잃은 고흐는 절망감에 자신의 왼쪽 귓불을 잘라 자주 만나던 창녀 라셀에게 주기도 한다. 공포에 떨던 고갱은 결국 파리로 돌아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준 자화상은 매우 인상 깊다. 원시세계를 동경하던 고갱은 마타이에아에 도착한다. 고갱은 단순히 그리는 자가 아니라 그들과의 삶을 원했다. 몇 차례에 걸친 동거. 파리는 그에게 잠시 머무는 곳이었다. 그는 빈털터리였고 심장병, 피부발진, 과음, 매독 등 이미 인생의 밑바닥에 있었지만 뉴질랜드의 타히티에서 새로운 미술세계를 펼친다. 그의 대작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창조된다. 고갱은 인생의 마지막을 원주민의 삶을 살면서 190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 머문다. 그의 그림은 다음 세대의 화가인 앙리 마티스와 같은 야수파와 피카소, 미로, 칸딘스키 등의 그림에 영향을 미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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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의 그림을 본적은 있지만 고갱이라는 화가의 삶에 관심을 가진적은 별로 없었다. 그림을 잘 모르기도 했고 사실 그의 그림은 학교때 미술책에서 자주보거나 간혹 텔레비젼에 스쳐가는 화면으로 보곤 했다. 볼때마다 아 저런 그림이 있구나 고갱이라는 화가가 그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그 그림만이 뇌리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투박한듯 하면서도 화려하고 화려한듯 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이 담겨 있는 그의 그림은 볼때마다 나에게 많은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러다 이번에 화가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았다. 내가 느끼는 그의 그림에 대한 감정에 조금 더 무게를 실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고 과연 이런 그림을 그린 고갱이라는 화가가 어떤 사람인가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학교때 배우기는 했지만 그때는 교과목에 있으니까 시험을 보니까 하는 생각에 의무적으로 읽고 보았을뿐 내가 먼저 궁금증이 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좀더 알고자 하는 생각이 들어 그에 대하여 알려주는 책을 접해보게 되었다. 다른 화가들처럼 어릴때부터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거나 뛰어났다기보다는 일반적인 회사생활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으면서 나중에 자신이 가야할길을 알게되어 화가가 된 그의 이력은 특이한듯하다. 그의 이력을 보며 왠지 모르게 내자신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되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가가 들어 결혼도 있고 아이도 있고 그런데 나는 내가 가야할길을 보았는가 그리고 그 가야할길이 보였을때 고갱처럼 편안한 기존의 삶을 버린채 그 길로 들어설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한 삶을 버린 고갱의 선택에 놀라웠고 그리고 그 길에 들어서서 부귀영화를 누린것도 아닌데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유지한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의 이력을 알고 다시 고갱의 작품을 보니 왠지 다가오는 느낌이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든다. 깊이가 생겼다고나 할까 그림을 잘 모르기에 그를 평할수는 없지만 고갱이라는 한 인간의 삶이 담겨 있고 그가 살아온 길이 보이는거 같아 다시한번 찬찬히 살펴볼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 나도 그처럼 내가 가야할길이 보일까 하는 생각도 부수적으로 들었다. 아이와 함께 그의 원시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때론 강렬하기도 한 그림을 보며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 책을 다시한번 찬찬히 보고 그의 그림을 책속뿐만 아니라 실제로 보며 느껴보았으면 한다. 일상속에 묻혀 있어바로 그럴수는 없겟지만 시간을 내어 책속사진이 아닌 실제 그의 그림을 바로 앞에서 볼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림이란 언제나 보면 볼수록 새로운 느낌과 함께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거 같다. 그래서 매번볼때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 다른색으로 다가오는거 같다. 고갱이라는 화가에 대하여 본후에 내가 다가오는 그의 그림은 또다시 새로운 느낌을 더한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