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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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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상고해 보면 한 왕조가 200년이상 지속되면 서서히 문제점들이 나타나게 되는 법이다. 고려 또한 예외일 수 는 없었다.태조가 통일 왕조를 개창하고 자주국임을 선포하면서 시작된 고려는 그동안 왕조의 가장 암적인 존재였던 호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 강화라는 지상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피의 숙청등을 단행하면서 서서히 틀을 잡아 왔다. 드디어 문종대에 와서는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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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상고해 보면 한 왕조가 200년이상 지속되면 서서히 문제점들이 나타나게 되는 법이다. 고려 또한 예외일 수 는 없었다.
태조가 통일 왕조를 개창하고 자주국임을 선포하면서 시작된 고려는 그동안 왕조의 가장 암적인 존재였던 호족들의 세력을 약화
시키고 왕권 강화라는 지상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피의 숙청등을 단행하면서 서서히 틀을 잡아 왔다. 드디어 문종대에 와서는 고려
사중 가장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민생의 안정을 이룩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듯이 위협은 외부의 요소가 아니 내부로부터 그 불행의 씨앗을 키우게 마련이다.


고려는 그동안 정신적인 요소인 불교와 정치원리였던 유교의 적절한 융합 정책으로 정권을 유지하다 보니 문(文)에 치우친 인사정책을 하게 되고 무관들의 위치가 갈수록 낮아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거란의 침공을 무사히 막아낸 이후 극심히 문으로 치우치게 되면서 무관들이 불안요소로 남게 된다. 결국 인종대에 이르러 내부로 부터 곪고 곪았던 무관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게 되면서
고려는 그야말로 무신들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대략 몽고침입까지 100여년동안 무신들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제 입맛에 맞는 왕을 등극시키고 폐위나 살인까지 서슴치 않고 감행하게 된다. 그 동안 쌓였던 한풀이 치고는 그 댓가가
너무나 컸던 것이다. 결국 몽고의 침입으로 종식된 무신정권은 사실상 고려라는 왕조의 사형선고나 다름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시각에서는 무신정권이 대몽항쟁을 주도 했다는 그리고 최씨 집안의 통치가 시행되면서 정국이 안정되었다는 점을 들어 긍정적인 평가도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무신정권은 그야말로 하극상의 쿠테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준비되지 못한 쿠테다가 가져오는 폐단은 어마어마하다. 다름 아닌 민초들의 삶은 그야 말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상태에서 그 어떠한 명분도 정당성을 얻기는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무신정권의 출발로 인해 고려는 사실상 왕조로서의 그 역활을 끝맺음 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원나라와 관계는 그야말로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최악 그 자체였다. 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충목왕 5대에 걸친 충자돌림의 왕들은 한마디로 왕이라고 볼 수 없는 정도였다. 그저 원의 대리인자격으로 일시적으로 권력을 행사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런 권력도 놓치지 않고 싶어서 부자간에 이간질이 횡횡하는 등 아수라판 그 자체였다. 왕조를 건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항변할 수 도 있지만 크게 봐서는 고려라는 정체성은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태조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왕족 혈통이 유지 또한 여기에 와서 무너지게 된다. 비록 공민왕대에 이르러 개혁정치를 진두지휘하게 되지만 역사는 공민왕 편이 이미 아니였다. 고인물은 섞게 마련이다. 그 만큼 고려는 태조가 개창했던 당시의 정체성이 평화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그 의미가 퇴색하게 되었고 일신의 안녕을 바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고려왕조는 공양왕을 끝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고 그 뒤 벌어지는 왕씨들의 잔혹사는 두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지금도 고려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들이 많다. 기본적인 사초가 부족한 점이 가장 큰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사초들 역시 조선의 입장에서 서술되었기 때문에 왜곡이 가미된 승자의 기록일 수 밖에 없다. 특히 고려말 우왕과 창왕의 경우 폐왕으로 치부하는등 조선개국의 당위성을 내세우다 보니 정말 제대로 읽어야 한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영향으로 인해 고려와 불교는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엄연히 고려는 우리 한국사 최초의 통일왕조임에는 틀림없다. 더구나 역대 한국사를 통틀어 고구려, 발해와 더불어 자체 연호를 사용한 자주독립국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조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비록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와는 여러모로 그 사상적 배경이나 사회문화적인 면에서 상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잣대로 고려를 제단하면 제대로 된 역사를 볼 수 없는 것이다. 고려는 어찌 보면 한국사중에서 유일하게 여성들의 위치가 상당했던 유일한 왕조였다. 북방민족의 침략을 슬기롭게 견뎌낸 왕조이기 했다.


향후 고려를 인식하는 근저에 이러한 긍정적이고 자주적인 역사관을 적극 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조선의 눈으로 고려를 보는데 익숙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왕조의 역사를 조명할때 최대한 그 왕조의 입장에서 봐야지 현대적인 입장에서 보는 역사는 수많은 가정만을 낳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야기 고려왕조실록>은 고려사에 전반적인 이해력을 제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제목처럼 부담없이 이야기를 듣는 식으로 고려사를 한번 살펴보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l******e 2009.05.20.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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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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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책을 펴들었다. 17대왕 인종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인종을 표현한 문구는 상권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부정적인 문구였다. " 우유부단 했던 왕의 24년 치세"라니, 발전하는 고려의 모습이 아니라 문제가 일어나고 나라가 위태한 모습이나타나면 어쩌나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인종은 14세때 아버지인 예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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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책을 펴들었다. 17대왕 인종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인종을 표현한 문구는 상권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부정적인 문구였다. " 우유부단 했던 왕의 24년 치세"라니, 발전하는 고려의 모습이 아니라 문제가 일어나고 나라가 위태한 모습이나타나면 어쩌나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인종은 14세때 아버지인 예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예종은 동생들도 많았다. 나이어린 인종이 숙부들이 많은 상태에서 왕위를 보전하기가 불안했을 것 같다. 당시 조정은 이자겸파와 한안인파가 맞서며 힘을 나누어 갖고 있었다. 인종이 인종의 외할아버지인 이자겸을 의지하자 이자겸이 세력을 확대하며 한안인의 권력까지 빼앗았다. 이렇게 분쟁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권력을 빼앗긴 한안인을 중심으로 벌어진 왕보의 역모사건을 시작으로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등이 이어졌다. 외부적으로는 여진이 성장하여 거란도 멸망시켰고, 금나라를 만들었다. 고려는 금을 상국으로 받들게 되었다. 인종의 뒤를 이은 의종은 처음에는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왕권을 위협하는 문벌귀족을 멀리하고 친위세력을 만든다. 그런데 친위세력으로 환관과 내시들을 불러 모아 정사보다는 유흥과 오락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의종이 주로 문신들과 주색에 빠져있자,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무신정변은 무신정권시대로 계속이어지고 고려사회는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인종과 의종의 왕권약화는 고려사회를 흔들리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의종이 무신 이의민에게 죽임을 당한 후 무신들에 의해 명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이 때부터 왕은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다. 명종, 신종, 희종, 강종, 고종은 무신집권시기의 왕들이다. 이름뿐인 왕. 최충헌과 그의 자손들이 집권했던 무신집권시기는 고려사회가 극심한 혼란과 하극상의 풍조로 백성들은 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더우기 고종때는 몽고가 침입하여 고려의 나라기반이 흔들리게 되었다. 고종의 뒤를 이은 원종은 왕권강화를 위해 원에 복속하기로 한다. 원종의 아들 25대 충렬왕때는 왕이 먼저 변발과 복장을 따르고 원의 공주와 결혼하는 등 완전히 원에 복속되었다. 충선,충숙,충혜,충목,충정왕 이들은 고려의 왕이지만 무슨일이든 원의 결재를 받아야 하니 왕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들이 고려를 다스리는 일 보다는 사냥과 유흥과 오락에 빠지거나 원에 머물면서 무위도식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31대왕 공민왕은 위의 왕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몽고풍습을 버리고 고려식 복장을 하고 개혁을 시도한다. 그러나 왕비의 죽음은 공민왕을 실의에 빠트린다. 고려의 국운이 다했는지 홍건적과 왜구가 침입을 하고 고려의 혼란은 극심했다.

공민왕이 측근 최만생과 홍륜에게 시해당하고 어린 우왕이 등극했다. 중국대륙에는 명나라가 들어서 있어서 고려는 명과 북원에게 우왕의 등극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명을 섬기면서도 기울어가는 북원의 눈치를 봐야하는 고려의 처지가 너무 마음아팠다. 명이 철령이북을 달라고 하자 우왕은 최영과 함께 요동정벌 계획을 세운다. 요동정벌을 나갔던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된다. 이성계가 정권을 잡고 최영을 유배보내고 우왕은 폐위시킨 후 9살된 창왕을 즉위시킨다. 창왕이 즉위 한지 1년뒤 이성계는 우왕과 창왕은 왕씨가 아니고 신씨라는 죄목을 씌워 죽여버린다. 이성계는 34대왕으로 공양왕을 즉위시킨다. 공양왕 재위 3년동안 신진사대부들이 정치 ,교육,경제,문화분야등 사회 전반에 개혁을 일으킨다. 이것은 고려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진사대부들이 꿈꾸는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조치였다. 신진사대부들이 고려를 지키기 위한 온건파와 새나라를 세우기 위한 급진파가 대립하였다. 승리는 이성계중심의 급진파가 거머쥐었고 공양왕을 비롯한 왕씨들은 몰살되었다. 이렇게 되어 조선이 건국된 것이다.

 

고려가 기울어 가는 모습이 그려진 하권을 읽고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하권에서는 왕의 부정적인 모습이 너무 부각된 것 같았다.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지은 사관들이 조선초의 정인지와 김종서였기 때문에 조선건국의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a****5 2009.05.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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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에 저무는 500년 고려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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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에 저무는 500년 고려왕조   이야기 고려왕조 실록 하   하권은 상권에 이어서 고려 후기를 다루고 있다. 상권에서 태조왕건의 창업이후 혼란했던 시기를 거치면서 거란과 금과의 대립을 지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고려가 하권에서는 내부 모순에 의한 무신정변 100년 몽골과 전쟁 40년, 몽골 간섭 시기인 100년을 지나면서 서서히 그 왕조의 명운을 다하는 시간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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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에 저무는 500년 고려왕조

 

이야기 고려왕조 실록 하

 

하권은 상권에 이어서 고려 후기를 다루고 있다. 상권에서 태조왕건의 창업이후 혼란했던 시기를 거치면서 거란과 금과의 대립을 지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고려가 하권에서는 내부 모순에 의한 무신정변 100년 몽골과 전쟁 40년, 몽골 간섭 시기인 100년을 지나면서 서서히 그 왕조의 명운을 다하는 시간을 담고 있다.

하권의 시작은 우유부단했던 인종부터다. 이자겸의 난과 척준경의 진압, 금에 대한 굴욕으로 얻은 평화와 묘청의 난등이 일어났던 때다.

그 뒤를 이은 의종 때에는 무신들에 의한 정변이 일어났다. 이후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그리고 최충헌으로 이어지는 무신정권하에 고려의 임금들은 왕권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거나 그냥 숨죽여 살아야만 했다. 이어지는 전 세계적인 사건이 몽골의 흥기, 이에 맞선 최씨 정권의 선택과 고려인들의 대몽항전이야기는 땀을 지게 만드는 대사건이었다.

이어진 몽골과의 화친과 최씨 정권 수뇌였던 최의의 죽음은 고종의 뒤를 이은 원종에게 두 갈래 길을 선택하게 했다. 몽골의 복속국이 되더라도 그 힘을 빌려 무신들을 제압해 왕권을 완전회복하고 한 원종과 몽골에 맞서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하려는 무신들(책에서는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개경환도를 막고자 했다고 하지만, 그동안 보여준 무신들의 모습은 그렇게 볼 수 없는 면이 있었다. 사실 고려의 최정예군인 삼별초 등은 강화도만을 지키면서 무신정권을 유지하는 측면이 훨씬 강했고, 실제 항전은 일반 민중들과 각 지방의 하급관료나 승려들에 의한 측면이 더 강했다고 생각된다.)의 양립할 수 없는 길이었다. 몽골과 무신들 틈에서 원종은 폐위되고, 몽골에 의한 고려의 복속은 가속화 되었다. 이어지는 ‘충’자 시호의 왕들과 고려의 마지막 불꽃 공민왕의 개혁정치와 실패, 위화도 회군으로 해서 동아시아에서 뜨거운 열정으로 존속했던 고려는 500년의 역사 기록만 남기고 사라져 갔다.

이상이 하권의 중심내용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려의 역사는 뜨거웠다. 북방민족과 끊임없는 전쟁, 벽란도로 상징되는 무역과 상업의 발달, 황제국 지향의 독자적인 연호 사용과 체제, 개방적인 남녀관계와 수준 높은 고려청자로 대변하는 생활 문화. 물론 이런 모습이 짧은 지면에 상세하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우리들이 몰랐던 고려의 속살을 조금이나 살펴본 듯해서 만족스럽다.

이 책은 풍부한 부록이 너무 많다. 연표를 기본으로 해서 생소한 고려시대 관직명(조선시대와 달리 황제국 체제를 지향했던 고려의 관직명은 생소한 점이 많았고 그 위계도 조선과는 많이 달랐다. 최고 지휘관을 의미하는 원수라는 호칭을 지닌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지, 책 읽는데 가장 힘들었던 게 이 관직 명칭에 익숙해지는 거고 그들이 했던 일들에 대한 이해였다.) 지명 일람표, 연호, 고려왕들의 세계도(世系圖)와 능호, 위치 등은 이 책은 고려라고 하는 시대의 풍부한 해설서라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YES마니아 : 골드 i******s 2009.05.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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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고려왕조실록(하)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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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마지막 왕이었던 예종이 안팎으로 힘을 다했지만 고려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부의 적으로 그리고 후일에는 안과 밖의 적들에 의해 그러했다. 고려를 처음 위기에 몰리게 한 이들은 문벌귀족이었다. 고려의 여느 왕보다 유명한 이가 이자겸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종의 장인으로 왕을 능멸하고 국사를 좌지우지 하려했던 그는 이러한 문벌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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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마지막 왕이었던 예종이 안팎으로 힘을 다했지만 고려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부의 적으로 그리고 후일에는 안과 밖의 적들에 의해 그러했다. 고려를 처음 위기에 몰리게 한 이들은 문벌귀족이었다. 고려의 여느 왕보다 유명한 이가 이자겸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종의 장인으로 왕을 능멸하고 국사를 좌지우지 하려했던 그는 이러한 문벌귀족의 대표 격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때이니만큼 왕권은 약할 수밖에 없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자겸은 결국 제거되었지만 약화된 왕권은 다시 세우기가 어려운 것인지 또 다른 파란이 몰려온다. 서경천도 운동이 그것인데 국내적으로는 지역싸움이 국외적으로는 자주적 혹은 사대적 외교정책과도 맞물린다. 알다시피 실패한 운동의 결과는 개경파의 득세로 막을 내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러한 때였다. 인종의 시대에도 이랬지만 그의 아들 의종 시기에는 더욱 심란한 상황이 되었으니 이는 전대의 왕권약화가 그 원인이리라. 문벌귀족의 득세는 결국 한 세력의 권력집중을 보이고 그 외 세력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가져온다. 다만 불만 세력이 병권을 쥐고 있을 때에는 반란이 여지가 많음을 몇 차례의 역사적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이때에도 마찬가지여서 무신들은 문신들을 몰아내고 왕을 가두는 등 권력을 거머쥐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때부터 우리는 생경한 왕들을 만나볼 수 있다. 국사에서는 무신집권기의 권력자들의 변천만이 나올 정도로 왕들의 입지는 약한 것이었다. 의종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왕을 세우고 제거하는 것도 무신들이었으니 왕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명종, 신종이 그러했고 강종이 그랬다. 고종 때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최씨의 무인정권이 몰락하기는 하였지만 이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몽고의 침입 때문이다. 안의 적들을 밖의 적들이 처단한 것이니 이들의 간섭이 얼마나 심할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때로 몽고의 지배를 온전히 받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삼고는 하지만 직접지배와 마찬가지로 고려의 원 간섭기가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원의 세력을 등에 업고 왕을 또 다시 기만하는 세력이 권력을 잡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총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등의 시호만 보아도 짚이는 것이 있으리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원의 국력이 약화되었으므로 고려에도 새로운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이때에 왕위에 오른 인물은 또한 반원적 성향이 뚜렷한 인물이기도 하였으며 개혁적인 인물이기도 한 공민왕이다. 반원을 내세우며 개혁에 착수한 공민왕은 변발, 호복의 철폐를 시작으로 정동행성, 쌍성총관부 등을 폐지하여 자주적인 국권회복에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권문세족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더욱이 어려운 점은 외적들이었다. 원명교체기에 큰 세력으로 성장한 홍건적이나 왜구의 침입은 국가를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신돈이라는 카드를 내밀어보기도 하였으나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이 아직은 무리수 였던 듯 싶다. 왕비의 죽음 이후 기이한 행위들을 보이는 공민왕의 기록은 영화 쌍화점의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다. 호위무사격이었던 홍륜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어떤 학자는 영민하고 총명했던 공민왕의 이러한 기록이 조선왕조의 창건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음이라고 하였지만 말이다.


이러한 시각은 우왕에 있어 더욱 뚜렷하다. 이성계 세력에 의해 폐위 당했기에 고려사의 세가에도 오르지 못했고 기록도 인신공격의 성격을 지닐 정도다. 그의 아버지가 신돈이었다는 설로 일축하고 마는 것이 그것이다. 역사의 기록 또한 승자의 기록인 것을 입증하는 임금이 바로 우왕일 것이다. 폐위된 우왕의 아들 창왕을 왕위에 앉힌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다. 공민왕의 후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폐위되었다는데 그의 아들이 왕이 되다니.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잡았지만 처음부터 임금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정당성의 문제라든지 민심 문제 등 이씨가 임금이 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창왕이 일 년 만에 죽고 잠시 공양왕을 왕위에 올리기도 하였지만 마지막은 이씨왕조의 창건이었다. 이성계 혼자만의 욕심이었다면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허나 고려의 운은 이미 시간을 달리하고 있었다. 왕씨의 고려는 국가의 위기를 헤쳐 나갈 만한 힘이 없었다는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고려가 막을 내리자 조선이라는 새 왕조의 날이 밝았다.


이 책은 고려 전반의 역사를 담은 책이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고려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미 지적했듯이 뜻도 이유도 모르고 재미없어 보이는 국사에 대한 이미지도 개선 될 것이라는 생각도 보탠다. 문벌귀족들의 발호로 시작하여 무신정권 그리고 몽고의 간섭기 까지 어려운 시기였을 테지만, 그 대응에 있어 미흡했던 점들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이 많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대의를 저버린 당대의 지배층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책 두 권으로 고려사를 한 눈에 알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러한 관심에 힘입어 세부적인 고려의 역사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책읽기가 되었다.

k*********0 2009.05.11.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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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고려 역사를 만나다 <이야기 고려왕조실록 下>
"씁쓸한 고려 역사를 만나다 <이야기 고려왕조실록 下>" 내용보기
나는 진정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단순히 왕들의 실체만을 알고 싶었을까? 아니다. 왕이 중심이 되는 역사 속에서 그들의 긍정적인 면모를 아주 조금이라도 기대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좋을 텐데~. 하지만 <이야기 고려왕조실록 下>를 통해 만난 왕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무신 정권 속 유약한 왕들과 원간섭기의 무책임하고 방탕한 왕들만을 만나고 말았다. '정말 이 정도까지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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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정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단순히 왕들의 실체만을 알고 싶었을까? 아니다. 왕이 중심이 되는 역사 속에서 그들의 긍정적인 면모를 아주 조금이라도 기대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좋을 텐데~. 하지만 <이야기 고려왕조실록 下>를 통해 만난 왕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무신 정권 속 유약한 왕들과 원간섭기의 무책임하고 방탕한 왕들만을 만나고 말았다. '정말 이 정도까지였을까?' 싶은 정도로 너무도 몰랐던 왕들의 실체는 정말이지 알고 싶지 않은 것 일색이었다.

 

지금껏 무신정변기 고력의 역사는 무신들의 권력 투쟁이었다. 그런 반목 속에서 몽고의 침입 그리고 무참하게 폐허가 된 고려, 그리고 고단한 백성들의 삶이 전부였다. 이 책은 이런 역사 관점에서 살짝 고개를 돌리고, 왕 중심으로 왕의 입장에서 서술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물론 허수아비 신세의 왕들은 너무도 유약하였다. 그러면서 권력의 쓴맛을 맛보야했다. 인간의 끝없는 야욕이 빚는 잔혹함과도 마주해야 했다.

 

권력에 맞써 응징하려는 흐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신 집권기 속 끊임없는 전란과 어느 정도 개선의 노력을 보인 왕들의 모습도 보이기는 하지만, 그 힘은 너무도 약했기에 무력했던 인간의 모습만이 가득하다. 무신 경대승이 병으로 죽자, 천민 출신의 이의민이 집권하는데, 명종의 유약함이 작용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폐위와 죽음의 두려움이란 철창에 스스로 갇힌 채, 명종의 선택은 왕권 회복이 아닌 무신집권의 연장이었다. 반대로, 최충헌을 제거하려 했던 왕 희종과 승려들의 음모는 짧지만 긴박감이 느껴지면서 흥미로웠다.

 

내게 있어 기존의 충렬왕은 긍정적 이미지였다. 그런데 "원복속화의 길을 앞당기다"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충렬왕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영토회복의 의미가 축소되면서, 몽고 풍속을 강요하는 충렬왕의 언행, 그리고 호복을 입지 않는 대신을 회초리로 때리는 모습 등은 많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 이후의 왕들의 권력관계, 그리고 충선과 충렬의 갈등, 그리고 고려말을 하지 못하는 왕, 고려를 신하에게 일임하고 원에서 생활하는 왕들, 왕권을 둘러싼 갈등과 싸움 등은 아무것도 모르던 때가 좋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였다.

 

너무 적나라하게 왕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그럴 것이란 기대감에 기분 좋게 책을 들었지만, 그 진실은 너무도 잔혹하였다. 고려 후반의 왕들은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한 모습이었다. 물론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왕의 모습도 있지만, 전체적인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인간적 좌절, 절망에 빠져, 끊임없이 퇴행, 방탕, 무기력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겠다며, 그들을 안타까워해야할까? 몰랐던 역사의 진실은 아주 무자비하고 잔인하였다. 그 속에서 한 자락의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도 힘에 부쳤다.

 

d******3 2009.05.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