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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상고해 보면 한 왕조가 200년이상 지속되면 서서히 문제점들이 나타나게 되는 법이다. 고려 또한 예외일 수 는 없었다.
지금도 고려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들이 많다. 기본적인 사초가 부족한 점이 가장 큰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사초들 역시 조선의 입장에서 서술되었기 때문에 왜곡이 가미된 승자의 기록일 수 밖에 없다. 특히 고려말 우왕과 창왕의 경우 폐왕으로 치부하는등 조선개국의 당위성을 내세우다 보니 정말 제대로 읽어야 한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영향으로 인해 고려와 불교는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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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책을 펴들었다. 17대왕 인종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인종을 표현한 문구는 상권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부정적인 문구였다. " 우유부단 했던 왕의 24년 치세"라니, 발전하는 고려의 모습이 아니라 문제가 일어나고 나라가 위태한 모습이나타나면 어쩌나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인종은 14세때 아버지인 예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예종은 동생들도 많았다. 나이어린 인종이 숙부들이 많은 상태에서 왕위를 보전하기가 불안했을 것 같다. 당시 조정은 이자겸파와 한안인파가 맞서며 힘을 나누어 갖고 있었다. 인종이 인종의 외할아버지인 이자겸을 의지하자 이자겸이 세력을 확대하며 한안인의 권력까지 빼앗았다. 이렇게 분쟁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권력을 빼앗긴 한안인을 중심으로 벌어진 왕보의 역모사건을 시작으로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등이 이어졌다. 외부적으로는 여진이 성장하여 거란도 멸망시켰고, 금나라를 만들었다. 고려는 금을 상국으로 받들게 되었다. 인종의 뒤를 이은 의종은 처음에는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왕권을 위협하는 문벌귀족을 멀리하고 친위세력을 만든다. 그런데 친위세력으로 환관과 내시들을 불러 모아 정사보다는 유흥과 오락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의종이 주로 문신들과 주색에 빠져있자,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무신정변은 무신정권시대로 계속이어지고 고려사회는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인종과 의종의 왕권약화는 고려사회를 흔들리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의종이 무신 이의민에게 죽임을 당한 후 무신들에 의해 명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이 때부터 왕은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다. 명종, 신종, 희종, 강종, 고종은 무신집권시기의 왕들이다. 이름뿐인 왕. 최충헌과 그의 자손들이 집권했던 무신집권시기는 고려사회가 극심한 혼란과 하극상의 풍조로 백성들은 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더우기 고종때는 몽고가 침입하여 고려의 나라기반이 흔들리게 되었다. 고종의 뒤를 이은 원종은 왕권강화를 위해 원에 복속하기로 한다. 원종의 아들 25대 충렬왕때는 왕이 먼저 변발과 복장을 따르고 원의 공주와 결혼하는 등 완전히 원에 복속되었다. 충선,충숙,충혜,충목,충정왕 이들은 고려의 왕이지만 무슨일이든 원의 결재를 받아야 하니 왕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들이 고려를 다스리는 일 보다는 사냥과 유흥과 오락에 빠지거나 원에 머물면서 무위도식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31대왕 공민왕은 위의 왕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몽고풍습을 버리고 고려식 복장을 하고 개혁을 시도한다. 그러나 왕비의 죽음은 공민왕을 실의에 빠트린다. 고려의 국운이 다했는지 홍건적과 왜구가 침입을 하고 고려의 혼란은 극심했다. 공민왕이 측근 최만생과 홍륜에게 시해당하고 어린 우왕이 등극했다. 중국대륙에는 명나라가 들어서 있어서 고려는 명과 북원에게 우왕의 등극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명을 섬기면서도 기울어가는 북원의 눈치를 봐야하는 고려의 처지가 너무 마음아팠다. 명이 철령이북을 달라고 하자 우왕은 최영과 함께 요동정벌 계획을 세운다. 요동정벌을 나갔던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된다. 이성계가 정권을 잡고 최영을 유배보내고 우왕은 폐위시킨 후 9살된 창왕을 즉위시킨다. 창왕이 즉위 한지 1년뒤 이성계는 우왕과 창왕은 왕씨가 아니고 신씨라는 죄목을 씌워 죽여버린다. 이성계는 34대왕으로 공양왕을 즉위시킨다. 공양왕 재위 3년동안 신진사대부들이 정치 ,교육,경제,문화분야등 사회 전반에 개혁을 일으킨다. 이것은 고려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진사대부들이 꿈꾸는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조치였다. 신진사대부들이 고려를 지키기 위한 온건파와 새나라를 세우기 위한 급진파가 대립하였다. 승리는 이성계중심의 급진파가 거머쥐었고 공양왕을 비롯한 왕씨들은 몰살되었다. 이렇게 되어 조선이 건국된 것이다.
고려가 기울어 가는 모습이 그려진 하권을 읽고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하권에서는 왕의 부정적인 모습이 너무 부각된 것 같았다.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지은 사관들이 조선초의 정인지와 김종서였기 때문에 조선건국의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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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에 저무는 500년 고려왕조 이야기 고려왕조 실록 하 하권은 상권에 이어서 고려 후기를 다루고 있다. 상권에서 태조왕건의 창업이후 혼란했던 시기를 거치면서 거란과 금과의 대립을 지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고려가 하권에서는 내부 모순에 의한 무신정변 100년 몽골과 전쟁 40년, 몽골 간섭 시기인 100년을 지나면서 서서히 그 왕조의 명운을 다하는 시간을 담고 있다. 하권의 시작은 우유부단했던 인종부터다. 이자겸의 난과 척준경의 진압, 금에 대한 굴욕으로 얻은 평화와 묘청의 난등이 일어났던 때다. 그 뒤를 이은 의종 때에는 무신들에 의한 정변이 일어났다. 이후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그리고 최충헌으로 이어지는 무신정권하에 고려의 임금들은 왕권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거나 그냥 숨죽여 살아야만 했다. 이어지는 전 세계적인 사건이 몽골의 흥기, 이에 맞선 최씨 정권의 선택과 고려인들의 대몽항전이야기는 땀을 지게 만드는 대사건이었다. 이어진 몽골과의 화친과 최씨 정권 수뇌였던 최의의 죽음은 고종의 뒤를 이은 원종에게 두 갈래 길을 선택하게 했다. 몽골의 복속국이 되더라도 그 힘을 빌려 무신들을 제압해 왕권을 완전회복하고 한 원종과 몽골에 맞서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하려는 무신들(책에서는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개경환도를 막고자 했다고 하지만, 그동안 보여준 무신들의 모습은 그렇게 볼 수 없는 면이 있었다. 사실 고려의 최정예군인 삼별초 등은 강화도만을 지키면서 무신정권을 유지하는 측면이 훨씬 강했고, 실제 항전은 일반 민중들과 각 지방의 하급관료나 승려들에 의한 측면이 더 강했다고 생각된다.)의 양립할 수 없는 길이었다. 몽골과 무신들 틈에서 원종은 폐위되고, 몽골에 의한 고려의 복속은 가속화 되었다. 이어지는 ‘충’자 시호의 왕들과 고려의 마지막 불꽃 공민왕의 개혁정치와 실패, 위화도 회군으로 해서 동아시아에서 뜨거운 열정으로 존속했던 고려는 500년의 역사 기록만 남기고 사라져 갔다. 이상이 하권의 중심내용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려의 역사는 뜨거웠다. 북방민족과 끊임없는 전쟁, 벽란도로 상징되는 무역과 상업의 발달, 황제국 지향의 독자적인 연호 사용과 체제, 개방적인 남녀관계와 수준 높은 고려청자로 대변하는 생활 문화. 물론 이런 모습이 짧은 지면에 상세하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우리들이 몰랐던 고려의 속살을 조금이나 살펴본 듯해서 만족스럽다. 이 책은 풍부한 부록이 너무 많다. 연표를 기본으로 해서 생소한 고려시대 관직명(조선시대와 달리 황제국 체제를 지향했던 고려의 관직명은 생소한 점이 많았고 그 위계도 조선과는 많이 달랐다. 최고 지휘관을 의미하는 원수라는 호칭을 지닌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지, 책 읽는데 가장 힘들었던 게 이 관직 명칭에 익숙해지는 거고 그들이 했던 일들에 대한 이해였다.) 지명 일람표, 연호, 고려왕들의 세계도(世系圖)와 능호, 위치 등은 이 책은 고려라고 하는 시대의 풍부한 해설서라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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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정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단순히 왕들의 실체만을 알고 싶었을까? 아니다. 왕이 중심이 되는 역사 속에서 그들의 긍정적인 면모를 아주 조금이라도 기대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좋을 텐데~. 하지만 <이야기 고려왕조실록 下>를 통해 만난 왕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무신 정권 속 유약한 왕들과 원간섭기의 무책임하고 방탕한 왕들만을 만나고 말았다. '정말 이 정도까지였을까?' 싶은 정도로 너무도 몰랐던 왕들의 실체는 정말이지 알고 싶지 않은 것 일색이었다.
지금껏 무신정변기 고력의 역사는 무신들의 권력 투쟁이었다. 그런 반목 속에서 몽고의 침입 그리고 무참하게 폐허가 된 고려, 그리고 고단한 백성들의 삶이 전부였다. 이 책은 이런 역사 관점에서 살짝 고개를 돌리고, 왕 중심으로 왕의 입장에서 서술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물론 허수아비 신세의 왕들은 너무도 유약하였다. 그러면서 권력의 쓴맛을 맛보야했다. 인간의 끝없는 야욕이 빚는 잔혹함과도 마주해야 했다.
권력에 맞써 응징하려는 흐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신 집권기 속 끊임없는 전란과 어느 정도 개선의 노력을 보인 왕들의 모습도 보이기는 하지만, 그 힘은 너무도 약했기에 무력했던 인간의 모습만이 가득하다. 무신 경대승이 병으로 죽자, 천민 출신의 이의민이 집권하는데, 명종의 유약함이 작용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폐위와 죽음의 두려움이란 철창에 스스로 갇힌 채, 명종의 선택은 왕권 회복이 아닌 무신집권의 연장이었다. 반대로, 최충헌을 제거하려 했던 왕 희종과 승려들의 음모는 짧지만 긴박감이 느껴지면서 흥미로웠다.
내게 있어 기존의 충렬왕은 긍정적 이미지였다. 그런데 "원복속화의 길을 앞당기다"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충렬왕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영토회복의 의미가 축소되면서, 몽고 풍속을 강요하는 충렬왕의 언행, 그리고 호복을 입지 않는 대신을 회초리로 때리는 모습 등은 많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 이후의 왕들의 권력관계, 그리고 충선과 충렬의 갈등, 그리고 고려말을 하지 못하는 왕, 고려를 신하에게 일임하고 원에서 생활하는 왕들, 왕권을 둘러싼 갈등과 싸움 등은 아무것도 모르던 때가 좋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였다.
너무 적나라하게 왕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그럴 것이란 기대감에 기분 좋게 책을 들었지만, 그 진실은 너무도 잔혹하였다. 고려 후반의 왕들은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한 모습이었다. 물론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왕의 모습도 있지만, 전체적인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인간적 좌절, 절망에 빠져, 끊임없이 퇴행, 방탕, 무기력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겠다며, 그들을 안타까워해야할까? 몰랐던 역사의 진실은 아주 무자비하고 잔인하였다. 그 속에서 한 자락의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도 힘에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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