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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역사인물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자리매김되기 마련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유명한 역사인물에서 역사적인 면모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투영하기 마련이고, 그 이미지를 활용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비단 역사인물뿐만 아니라 역사적 예술품에 대해서도 매한가지였다. 같은 작품이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일은 종종 있었고, 같은 원작을 각색해도 각색시기나 각색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일이 많이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어떻게 소화하는지에 따라, 당대 시대문화의 특성까지도 짚어내고 있다. 너무나도 자주 변주된 작품은, 변주된 양상 자체로도 훌륭한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 정말 인상적이었던 대목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를 지나서는 한동안 옛날 연극으로 취급받았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수십 년 된 드라마를 다시 보는 사람은 많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어느새 새 연극에 밀려났다. 하지만 청교도 혁명으로 연극창작 및 상연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공백이 생겼고, 그 공백기가 끝난 후 한동안은 옛날 작품이 연극 무대에 올려졌다. 한동안 사라졌던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 때 다시 대중에게 선보였고, 그 이후 지금까지 살아있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꼭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개작한 버전을 설명한 것이었다. 일전에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라는 책에서, <리어 왕>이 18세기까지 코델리어와 에드거가 결혼하는 해피엔딩 버전으로 공연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쿡 웃었더랬다. 죄 없는 코델리어가 살해당하는 것을 관객이 불편해했기 때문이라지만, 극중에서는 만난 적도 없는 에드거와 결혼한다니 뜬금없이 느껴졌던 것이다. 뭐지, 리어 왕이 글로스터 백작에 대해 오해한 것을 풀고 용서하면서 에드거를 사위로 맞기라도 한 건가-이런 생각을 스치듯이 한 후, 난 곧 그 기억을 잊어버렸다.
이 책에서는 그 해피엔딩 버전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 해피엔딩 개작 버전을 본 사람은 아마 뒷목을 잡고 쓰러지거나 나처럼 배를 잡고 웃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맙소사, 결말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동기와 인물관계를 뒤바꾸어 버렸다. 원작에서 코델리아는 리어 왕에게 아첨을 하지 않아 리어 왕의 분노를 사고 쫓겨난다. 그리고 에드거는 이복동생의 모함에 휘말려 자신을 오해한 아버지를 피해 도망다니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이 해피엔딩 버전에서는 코델리아와 에드거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설정한 후, 이 사랑 때문에 각각 부친의 분노를 사 쫓겨났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에드먼드, 고너릴, 리건 등 반역자를 처벌한 후 두 명이 용서를 받아 결혼하는 엔딩으로 끝을 맺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개작하고 나니, 적어도 통속적인 측면에서는 보다 짜임새있고 그럴듯해 보이는 줄거리가 되었다. 아첨하지 않았다거나, 둘째아들의 허술한 속임수에 넘어가 첫째아들이 자길 죽이려 했다고 오해하는 것보다는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때문에 부모의 분노를 샀다는 쪽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더 쉬웠을 것이다. 그 유기성이 적절한 것이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원작보다 유기적인 연결이 강화되기는 했다. 난 이 버전으로 <리어 왕>을 먼저 접한 사람이 원작을 보면 원작이 허술하고 황당하다고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소 황당한 설정이, <리어 왕>의 비극성을 더한층 강화시킨다는 것을 알기 전에 당혹감부터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파우스트>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중학생 때 학급문고에 청소년 버전으로 <파우스트>가 있었는데, 1부와 2부를 합쳐놓았다. 많은 사건이 생략되기는 했지만 1부의 내용은 그럭저럭 원작을 따라갔는데, 2부에서는 실로 황당할 정도로 내용을 많이 바꿔 놓았다. 헬레네와 오이포리온 등의 이야기가 쏙 빠진 걸로도 모자라, 그레첸은 파우스트를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가 메피스토펠레스의 계략으로 마녀 누명을 써서 2부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화형당한다. 파우스트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절박하게 "시간아, 멈추어라!" 라는, 바로 그 대사를 한다. 나중에 원작을 접하면서 이 청소년용 버전이 얼마나 원작을 개작, 내지는 개악했는지 알고 황당했더랬다. 특히 그레첸이 2부가 시작되기도 전에 개인적인 죄목으로 화형당하는 장면을 보고 당혹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시간아, 멈추어라!" 라는 대사가 원래 어떤 상황에서 쓰였는지도 그런 점에서는 만만찮았고. 지금 생각하면 이런 차이를 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미 현재진행형인 이름이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재해석되고 재가공될 것이고, 우리들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 나름대로의 셰익스피어 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때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희빈과 인형왕후의 모습이 실제 역사인물과 다르고,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두 명의 묘사가 달라져왔던 것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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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문화의 탄생과 역사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그의 작품이나 생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백 년 전의 작품들로 우리가 엄청난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세계는 셰익스피어에 열광한다. 그의 설레는 문장력과 살아 숨 쉬는 생생한 단어들이 그 당시의 시대부터 시간을 오르고 또 올라 우리에게 넘나드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가 타고난 천재라는 것 이외에 그가 어떻게 해서 이토록 세기를 넘나드는 영웅이 되었던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완전 이해하기 어렵다는 그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책이 나왔다고 하기에 냉큼 읽게 되었다.
잭 린치 저자의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는 모두 총 8장으로 구성된 책이다. 모두 오로지 셰익스피어를 위한 셰익스피어를 말하기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살려내고, 공연하고, 연구하고, 개선하고, 제멋대로 바꾸고, 길들이고, 위조하고, 숭배한다. 그가 살아왔던 시대에서 그의 작품들이 극단에서 공연하게 되는 이야기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오래전에 본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여자는 연기자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봤는데, 실제로 그런 내용이 풍부하고 신랄하게 담겨있다. 그 당시의 모습이 상당히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놀라움이 가득했다. 예를 들어 연극계의 뉴턴이라 불리우던 게릭의 이야기라던가 ‘리어왕’에서 글로체스터 역할을 맡았던 에드먼드 킨 이야기들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앞장에서 그의 작품 연극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후반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다. 사실 셰익스피어처럼 칭찬과 비판이 극렬하게 반응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만큼 엄청난 관심과 환희를 불러일으키는 작가는 절대 없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수백차례에 걸쳐서 되풀이 되고 패러디되고 변형되어진다. 그의 작품들이 모두 경건하지만은 않다. 시대가 변할수록 그 독자들과 관객들을 만족시켜줄 만한 가치를 만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올바른 셰익스피어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듯하다.
글을 읽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생각보다 쉬운 문체로 되어 있어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저자가 속닥속닥 이야기하는 셰익스피어 세계를 따라갈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왕좌에 앉은 지배자들에 대한 비판까지 몰래 몰래 넣었다는 사실과 상스러운 색마와 같은 입버릇을 즐겨했다는 사실들을 이 책 말고 또 어디서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참신하고 자유분방하다. 그래서 세계사 책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문학책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잊고 있었는데 이 책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새롭게 자각될 것 이다. 천재에게도 어쩔 수 없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의 우수한 문학성을 더 깊이 알게 해준다. 셰익스피어는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작가이다. 여전히 주옥같은 작품들을 흠모하게 되었다. 또 다른 그와 같은 작가들이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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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이던가.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진 젊은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람한 적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책을 통해 내용을 알았고, 공연은 본 적이 없다. 젊은 창극은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창극의 형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작품이었다. 형식만 도입한 것이 아니라 내용도 우리 정서에 맞게 각색했다. 주인공의 이름도 로묘와 주리었다. 창극을 보는 것도 새로웠지만, 원작의 느낌을 어떻게 살렸을지 궁금해 하며 공연을 관람했던 기억이 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이렇게 새롭게 번안되어 소개되기도 하고, 원작의 묘미 그대로 공연되기도 한다.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만큼 많이 공연되고 있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도대체 어떠한 매력이 많은 이들로 하여금 찾게 만드는 것인가. 매년 많은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기를 끄는 비결은 무엇인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초연할 때부터 이렇게 많은 인기를 누린 작품이었을까.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추수밭, 2009년)는 이러한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주는 책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들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고 명성을 유지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 그의 작품들은 셰익스피어 생전에 그리 많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의 국내외 정세도 그리 썩 좋지 못했다. 기독교와 가톨릭의 대립이 심했고, 정치지형에 따라 연극에 관한 정책이 바뀌었다. 연극을 퇴폐적인 음란물이라고 판단한 청교도는 모든 극장을 폐쇄시키기도 했다. 전쟁도 끊임이 없었다. 연극의 명맥이 제대로 유지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연극을 보지 못하고 자란 세대가 생겨났다. 만약 이러한 사태가 지속되었다면 우리는 오늘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지금처럼 풍부히 접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사후 좋아지기 시작했다. 극장이 부활하고 인기리에 그의 작품들이 공연되었다. 희곡 작품집이 출간되고 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차차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명성이 높아진 만큼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 속에서 그의 작품들은 수정이 가해지고, 삭제되기도 했다. 그는 이제 긍정적인 평가를 받든, 부정적인 평가를 받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쉽게 멀어질 수 없는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이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그는 그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 읽어보지 못했다. 우리에게 그가 너무 익숙한 탓에 다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by 꽃다지, 2009년 5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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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1616년 따뜻했던 어느 봄날. 얼마 안 되는 조문객들과 비밀 가톨릭교도들이었던 셰익스피어의 친구들 몇 명만이 모여 비밀스럽고, 조용하게 셰익스피어의 장례식을 치뤘다. 셰익스피어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지만, 그 때 모여있던 사람들, 더 나아가 문학을 알고, 이해하며 사랑했던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 셰익스피어의 죽음으로 인해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1616년 4월 이후. 그의 죽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작가이자 연극인이었지만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였던 그의 죽음에 대해 현재 아무런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당시에는 그의 죽음을 대중들에게 알려야 할 가치조차 없었던 일로 치부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셰익스피어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는 이 책은 셰익스피어라는 한 인간, 또는 그가 남긴 여러 작품들에 대해, 그리고 그의 진위 여부를 파헤치는 내용의 책이 아니다. 어려서 우리가 처음 셰익스피어를 접했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우리가 알아왔던 셰익스피어가 아닌 그가 위대한 작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에 주목한 책이다. 지금은 모든 이들에게 칭송받으며 그의 작품이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셰익스피어는 다른 작가들의 공격을 견뎌내야만 했다. 여러 비평가들은 그를 영국 최악의 극작가로, 그가 쓴 오셀로를 최악의 희곡으로 꼽으며 갑자기 출세한 까마귀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여러가지 정황으로 봤을 때 셰익스피어는 생전에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시골의 이름없는 극작가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여러 작가, 배우, 편집자, 학자, 비평가들의 손을 거쳐오면서 셰익스피어만의 매력중에서도 장점은 극대화시키고, 자연스럽게 단점은 축소시키며 지금의 셰익스피어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좀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부분이다. 문화영웅은 그를 칭송하는 대중들이 있기에 탄생하고 존속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많은 사람들의 문화사회적 욕망때문에 문화영웅들도 재해석되고, 조작되어 생겨날 수도 있는데 이런 사실은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있다고 보여진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문명은 계속 진화하고, 문화는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처럼 사랑과 의심을 동시에 받는 작가가 있다는 현실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싶은 생각도 든다. 그처럼 위대한 극작가의 작품은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논문이나 비평, 연극이나 시집, 희곡으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많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음과 동시에 계속해서 연구되어졌고,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주제나 내용을 떠나 위대함에 대한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위대한 것은 무엇이든지 더 발전되어야만 하고, 인류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흘러야만 하는 것이다.
문학에도 정도는 있겠지만, 완벽한 정답이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우리가 셰익스피어에 열광하는 이유를 한 가지로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셰익스피어는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며, 세대와 시간을 초월한 인류 문명의 위대한 역사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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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는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꿀 수 없다, 고 말했고, 빅토르 위고는 셰익스피어가 곧 연극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낳은 전세계적인 대문호이며 영국이 자랑하는 천재 극작가이다. 중학교 마지막 방학을 무료하게 보내다 우연히 집어든 [베니스의 상인]이 셰익스피어와의 첫 대면이다. 셰익스피어의 책은 왠지 어려울 것 같은 선입견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는데 고등학생이 되면 그정도는 알아야할 것 같은 부담감이 셰익스피어에게 다가가게 했던 것 같다. 무역상인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끈끈한 우정 사이에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배치한 이 책은 내 선입견을 무너뜨리며 셰익스피어의 책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그를 정복(?)했다는 짜릿함을 맛보게 했다. 나는 그 기분을 이어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에도 눈을 돌렸으나 왜 그의 작품들이 찬사를 받는지, 왜 그의 작품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건지, 왜 그가 위대한 작가인지도 모르면서 읽어 나갔다. 아무도 지어주지 않는 책임의식과 과시욕에 사로잡혔던 시기의 독서였다.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는 셰익스피어는 만들어진 작가, 조작된 문화영웅이라는 전제하에 셰익스피어가 오늘날의 셰익스피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는 추론을 사후 400년이 흐르는 동안 그의 작품들이 어떤 개작 작업을 거쳤고, 시대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어떻게 위조 되고,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그 증거로 제시한다. 한마디로 매우 유능한 한 극작가가 인간을 꿰뚫어보는 신 같은 존재로 바뀌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가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라는 의문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1857년에 델리아 베이컨이라는 미국인 전직 교사에 의해서다. 델리아 베이컨은 [펼쳐진 셰익스피어의 희곡의 철학]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알려진 것들이 사실은 프랜시스 베이컨, 월터 롤리 경, 에드먼드 스펜서가 함께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셰익스피어 원작자 여부를 두고 유명 연극배우, 연출가 287명이 '합리적 의심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이유로 친필 원고가 없는 점과 생전에 그에 대한 기록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들었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작가 만들기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저자는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셰익스피어의 조용한 장례식에서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생전의 그와 사후의 그는 별개의 인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저자는 그의 작품에 관여해 자기 입맛대로 작품을 이용한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심리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은 극작가, 배우, 편집자, 비평가, 정치가 등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위조되고, 미화되고, 개작된다.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개선'하게 만든 불평의 이유는 대부분은 심미안적인 것에서 비롯되었다. 작품의 형편 없는 줄거리, 3일치의 무시, 희극과 비극을 막무가내로 섞어놓기, 외설적인 언어 등이 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꾸준히 개작되었다. 또한 사람들은 정책과 정당, 교육 프로그램, 전쟁의 의제로 진척시키는 데 그의 작품을 사용했다. 정치적 목적과 시대적 맥락, 영국 우월주의의 선전도구로 그의 작품이 차용된 이유는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가장 위대한 문학 천재가 자기편에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대중의 문화사회적, 정치적 욕망에 의해 재해석되고 조작된 문화영웅 중 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셰익스피어의 성취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였기 때문에 수 세기 동안 인류의 관심과 간섭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말하고, 역자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를 꿰뚫는 통찰력이야말로 그의 작품과 명성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고 평한다. 이 책은 나에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한 침침한 눈을 열어주고 문화영웅 만들기의 과정을 즐겁게 탐색하는 시간을 제공했다. 책을 덮는 데 뭔지 모를 뿌듯함과 묵직함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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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네스터와 같고, 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 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 바로 윌리엄 세익스피어(1564~1616.4.23)다. 이 구절은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 소재한 성 트리니티 교회에 있는 셰익스피어 반신상 밑에 새겨진 명문이다. 400여년이 지난 지금, 영국 시골마을의 셰익스피어는 전세계의 셰익스피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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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사랑한 작가는 바로 셰익스피어일 것이다. 누가 그의 이름을 모르겠는가? 너무나 친숙하고 재미있는 주제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 사람이 바로 셰익스피어이다. 영국 여왕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에 관한 무수히 많은 책들이 쏟아졌다. 나도 셰익스피어 인 러브란 영화를 통해서 셰익스피어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을 가질 정도였으니... 그에 대한 세상의 호기심은 가히 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 책은 제목부터가 매우 도발적이다. 역사가 낳은 단 한명의 거장을 부정하다니! 그러나 이 책을 조금만 읽어보면 셰익스피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란 사람을 만드는데 다른 사람들의 기여가 있었따는 점을 강조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일생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내심 이 부분도 궁금했었는데 전혀 언급이 안되어있어서 조금 아쉬운 면도 있었다. 이 책은 대부분 그의 사후에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어느 역사도 그의 죽음을 자세히 알고있지 못한다. 그의 죽음도 그저 추측인데 나의 죽음은? 놀라울 따름이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놀랐던 부분은 여자가 연극을 할 수 없었던 점이다. 영화에서는 여성이 연극을 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파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여성으로 연극배우로 이름을 떨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연극은 여성이 출연한다는 안내문구를 붙여야만 했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야했지만 말이다. 이처럼 이 책은 그 시대의 상황을 설명해주기도 해서 과거의 모습을 알아보는데도 좋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거나 그 시대의 상황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혹은 역사가 만들어지는 방법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읽어보시기를 ^^ |
![]() 지나치게 유명하다 보면 유명도 때문에 친근하게 느껴져 막상 접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 셰익스피어라는 이름과 그의 작품도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영국을 뛰어넘어 이미 세계 곳곳에서 찬사를 받는 그의 이름 뒤에는 풀리지 않은 의문 또한 넘쳐난다. 작가 셰익스피어의 개인적인 사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작품에 대한 해석과 관계는 아직도 연구 중이며 해마다 관련 책들이 꾸준히 나올 정도이다. 예전에 <셰익스피어는 없다>라는 책을 읽으며 셰익스피어가 베이컨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접했으며 항간의 떠도는 다른 의견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말, 또 에드워드 드 비어 백작이라는 말까지 다양한 견해도 접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아직도 가려지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는 셰익스피어가 셰익스피어가 아니라는 제목부터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책에서 말하는 것은 셰익스피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역설적인 의미로 작가 셰익스피어와 시대가 만들어 지금까지 추앙받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부제가 문화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베일에 가린 인물이기에 수많은 소문과 추측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셰익스피어. 책의 시작은 유명도와 비교하면 지극히 조촐한 작가의 장례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살아생전의 그를 알 수 없기에 죽은 후 만들어진 그에 대한 과정을 조목조목 들려준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화 되었는지 역사적 시공간을 따라가 보자. 우선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는 극작가들의 공동집필이 흔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지금까지도 누가 집필에 참여했는지 밝히려 애쓴다. 즉, 지금 우리가 읽는 작품은 순수하게 셰익스피어 혼자만이 쓴 것이 아님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셰익스피어가 혼자 썼건 아니건 간에 이후 그의 작품은 작가(ㅡ혹은 집필가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변화되고 각색되며 이용된다. 유명하지 않았던 셰익스피어의 화려한 부활을 1장과 2장에서 다루는 방식은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이다. 어떤 의견을 두서없이 내거나 주장하는 게 아니라 독자들에게 사전지식을 챙겨서 알려준다. 영국과 연극이란 조합이 서로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셰익스피어 시대의 서막을 듣게 된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영국 문학사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을 짧게나마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들 수 있다. 수필가 찰스 램부터 그의 누이 메리 램, 제인 오스틴이 좋아한 <베네치아의 상인>의 샤일록을 연기한 배우, 시인 바이런이 <리처드 3세>를 연기한 배우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는 사실. 이뿐 아니라 독일 괴테의 열광, 프랑스 빅토르 위고는 "셰익스피어가 곧 연극이다."(152쪽.)라는 말로 찬사를 할 정도였다. 이렇듯 순식간에 책의 처음 부분이 지나갔다. 본격적으로 3장부터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돕는다. 영문학을 공부하거나 셰익스피어의 마니아라면 점점 흥미로워진다. 자세한 내용은 넘어가지만(ㅡ직접 읽어보는 게 훨씬 유익하므로.) 하나 확실하게 부러웠던 사실이 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영국인의 진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비평가뿐 아니라 남녀를 막론하고 셰익스피어를 연구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이러니 실로 완벽한 위대한 작가로 지금까지 사랑받을만하다. 우리 작가들 중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작가는 몇 명이나 될 것이며 지속적인 관심으로 한국의 대표작가를 말하라면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이름은 누구일까. 어쩌면 중구난방으로 이름이 거론될지도 모른다. 너무도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만한 문학의 대가를 우리가 만들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번역의 어려움이나 기타 여건도 따라갈 수 없는 이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국민을 보면서 다시 느꼈지만 역시나 관심과 사랑이었다. 끊임없이 회자되며 거론된다는 것은 수많은 의심과 비판도 동반하지만 이 역시 관심 밖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셰익스피어의 위대함만을 이야기하는가. 그렇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단점인 희극과 비극을 섞어 쓰는 방식이나 제대로 배워서 알고 쓰지 않았다는 것, 욕설과 외설 등 다양한 단점도 말한다. 그래서 작품을 다듬고자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갔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나 손이 많이 가는 작가임에도 분명히 빈 수레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의 특징으로 간주하는 것 중 언어유희를 들 수 있다. 나 또한 그의 언어적 감각과 광대놀음 등에 사로잡혔다. <리어왕>이 많은 작가에 의해 광범위하게 개정된 작품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모르고 읽었을 때와 비교해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직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읽어볼 작품이 많은데 읽었던 작품을 다시 찾아 읽으며 느끼는 감동이 질리지 않게 좋다. 그리고 글을 읽다 가끔은 문맥과 맞지 않다거나 어색한 곳을 만났던 경험이 기억나는데 이유를 다시금 확실하게 알았다. 뜬금없다고 생각한 장면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건 이유가 있단다, 이유가 있단다 내 영혼아."라고 오셀로에서 말했듯이! 셰익스피어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시대적 배경과 상황이 그를 변화시켰다. 결과는 상당히 긍정적이어서 영국을 넘어 전 세계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가가 되었으며 그를 만든 수많은 사람이 함께 있었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순수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높게 평가하지 않을 텐가. 아마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로 판단된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셰익스피어에 대한 연구결과와 또한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의 유혹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말로 쉽게 쓴 흥미로운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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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린치, Jack Lynch 지음 | 송정은 옮김 | 추수밭 | 2009년 4월
이미지출처 : www.londonmet.ac.uk 셰익스피어하면 토마스 칼라일이 영웅숭배론 에서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말이 먼저 생각난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은 잘 알겠지만, 그래도 인더스 문명의 기원이자 영국의 10배가 넘는 영토에 인구를 가진 인도와도 바꾸지 않다는 말에 실소(失笑)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인도의 문화나 역사는 제쳐 두고서라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조차도 차분히 읽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토마스 칼라일의 말을 쉽게 부정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책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 문화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ecoming Shakespeare: The Unlikely Afterlife That Turned a Provincial Playwright into the Bard ’를 읽어 가면서, 토마스 칼라일은 과연 셰익스피어의 원작들을 제대로 읽어 봤을까 하는 의구심(疑懼心)이 들었다. 이 책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는 직접적인 셰익스피어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사후(死後)에 작품을 둘러 벌어진 이야기를 현대의 관점을 통해서 보고 이해한다. 이 첫 번째 작업은 권리청원을 비롯한 잉글랜그 내전을 둘러싼 영국의 정치 현황에 대해 이야기다. 연극을 죄악의 근원으로 여기고 도외시(度外視)한 청교도(淸敎徒)가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고, 연극을 탄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연극도 청교도가 정권을 잡은 동안은 다른 연극들과 마찬가지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던 것이, 찰스 2세가 왕정복고로 즉위하고 나서야 영국에서 연극은 다시 상연될 수 있었다. 이 때도 만약 당장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당시 감각에 맞는 대본이 있었다면, 셰익스피어는 잊혀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연극이 금지되었던 탓에 연기를 할 배우만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상연할 수 있는 대본도 부족했고, 그 덕분에 잊혀졌던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책의 서두(書頭)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배경에 대한 이야기는 17세기 후반의 공연장 모습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연극에 대한 청교도들의 시선은 사실 여전히 싸늘한 상태였다. 토머스 배터턴 Tomas Betterton을 비롯해 콜리 시버 Colley Cibber, 제임스 퀸James Quin, 데이비를 캐릭 David Carrick, 사라 시든스 Sarah Siddons, 존 필립 켐블 John Philp Kemble, 메리 로빈슨 Mary Robinson, 도로시 조던 Dorothy Jordan, 그리고 에드먼드 킨 Edmund Kean 같은 배우가 시대에 따라 등장했고, 셰익스피어 연극과 함께 세상에 스타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연극은 청교도들의 멸시(蔑視)에서 벗어나 사교의 장으로써 역할을 하게 된다. 사실 청교도 혁명 이후 펼쳐진 새로운 영국의 연극사는 보통 사람들의 관심을 갖는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특별히 영국 연극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부분은 Pass~! ![]()
셰익스피어는 벌써 오래 전부터 영국이 낳은 세계적 극작가로 칭송(稱頌) 받고 있다.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읽어야 할 고전의 반열(班列)에 올라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셰익스피어는 결코 자신의 대본을 읽을 거리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온전한 상태의 인쇄물은 커녕 친필 원고조차 없다. 그리고 전해지는 초기 대본 또한 천재적 극작가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아쉬움은 수많은 극작가, 배우, 비평가, 그리고 학자들에 의해서 보충되고 개작(改作)되었고, 그러한 변형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공연되고 출판되었다. 그러면서 셰익스피어가 갖는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극작가의 지위는 오히려 강화된다. 글의 서두에서 토마스 칼라일은 과연 셰익스피어의 원작들을 제대로 읽어 봤을까 의구심을 가졌다. 사실 토마스 칼라일 역시 셰익스피어에게서 보이는 아쉬운 점을 보충해 준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책의 저자인 잭 린치가 말처럼, 셰익스피어의 성취를 얕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조력자도, 바탕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장점은 부각시키고, 아쉬움은 축소하고 보충하는 역사의 힘을 간과(看過)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이 책의 포인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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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롯해서 많은 세계 사람들에게 그래도 아는 영국의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니 그보다는 더 간단하게 아는 고전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가장 많은 답으로 나오는 것이 셰익스피어일 것이다.
왜 그가 그렇게 대표적으로 유명할까? 사실 전문가가 아니라면 평가 하기 어려운 작품성을 떠나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사람들에게 유명하다
왜 그럴까??
그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인데.. 그의 작품이 그렇게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이여서 일까?
사실 나도 궁금했었다.
도대체 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작품성에 대한 판단이 얼마나 정당하단 말인가? 언론이 맞다고 하고 시대의 예술가들이 휼륭하다고 평하면 정말 다 그런것인가?
예술의 작품성 만큼 주관적이며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난 그림을 좋아한다 나의 경우에는 형이상학적인 그림보다는 정물적으로 잘 표현된 그림을 좋아한다. 내가 정말 작품을 평가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형이상학적인 작품의 경우 주관적으로 내 맘에 드느냐 아니냐에 따라 작품성이 인정되기도 아니기도 하다.
그런 예가 팝아트다. 20세기 미국에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얻은 팝아트의 경우
그 유명세에 따른 작품성이 인정되기보다 정말 그런가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미술사 강좌를 듣던중 그 의문이 풀렸다 팝아트는 물론 새로운 예술로 작품성을 인정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까지 대단할 이유는 없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환경이 팝아트를 미국의 대표적인 예술사조로 만들었다고 한다. (자세한건 직접 찾아보세용~~)
내가 교수님께 들은 내용은 미술에 관한것 뿐이 었지만 문학에서도 그럴것이고 문학부문도 궁금했는데 이 책을 만나고는 그 의문이 다시 들었다
그래~ 이거야 꼭 읽어봐야지~~!!
이 책은 그런 출발점에서 읽은 책이다 워낙 유명한 작가인 셰익스피어에 관한 내용이고 그의 작품은 평소 많이 접해봤기에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다소 읽기가 어렵기는 했지만 나처럼 의문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미 있는 책일것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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