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문만화를 그렸던 안석영은 산책자였다. 산책자는 외로웠다. 산책자는 관찰자였고 사회에 전적으로 포함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 속 근대화에 무분별하게 빠져들어서 유행의 최첨단인 모던의 옷을 입던 '모던껄', '모던-뽀이'들을 비판하려면 산책자는 그들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져 냉정한 시선을 보내는 관찰자일 수밖에 없었다. 근대화의 화려한 한 면에 경탄하면서도 그 이면의 그늘을 비판할 줄 알았던 그 산책자 역시도 한명의 '모던뽀이'였다. 책 제목의 '모던뽀이'는 결국 사회를 산책하며 바라보고 비판하는 안석영인 것이다. 모던뽀이는 경성을 거닐었다. 이 책에 담긴 만문만화들은 산책자로서의 모던뽀이가 일제 식민지 조선의 경성을 거닐면서 본 것들을 그리고 쓴 것이다. 안석영은 그림, 만화, 소설, 시, 영화에서 평론까지 다양한 예술분야에 손을 댄 사람이었다. 그만큼 아는 것도 많았고, 결국 친일으로 변절하기는 했지만 <백조>, 파스큘라, 카프를 거쳐간 우리나라 근대 예술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작사한 사람이 바로 안석영이라고 한다. 만화를 그리던 그가 만화를 버리고 만문만화라는 양식을 택한 것은 일제의 언론탄압에 따른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만문만화는 말풍선을 통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만화와는 달리 한 공간에 만화와 글이 독립적으로 공존하면서도 서로 밀접히 상호작용하는 특이한 구조의 예술양식이었고 주로 신문을 통해 발표되었다. 한국전쟁 때문에 우리나라 근대 예술작품들이 많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신문을 통해 발표된 만문만화의 가치는 크다. 일제, 자본주의, 모던걸, 모던보이들을 비판하는 글들과 그림 곳곳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어 있는 근대의 얼굴들을 찾아내며 일제의 검열을 피해가며 비꼬고 비판했던 안석영의 위트를 엿보게 된다. 모던보이도 그렇지만 모던걸에 대한 비판이 그녀들의 패션과 함께 비중있게 다루어져 있고 배보다 배꼽이 크게도 자유연애의 산물로서 '스위트홈'의 단꿈에 젖어 빚을 내어 서양식 주택을 지었다가 금방 빼앗기고 마는 허영심 많은 근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작가 자신의 사회주의적인 사상적 토대에 의해 자본가들을 맹렬히 비판하는 모습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가정 사정 때문에 돈 많은 사람의 첩으로 들어가는 '신여성'이나 교육을 받을만큼 받고도 구두를 닦거나 택시를 모는 지식인들의 모습에서 대학을 나오고도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하거나 결혼 또한 하나의 직업이 되어버린 현대를 사는 청년들의 모습을 본다. 이 책에서는 인용한 만문만화의 글을 근대 신문에 기록되었던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 읽기에는 근대의 맞춤법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오히려 그때의 공기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은 원문 그대로 인용한 글에 대해 현대의 맥락에 맞게 좀 더 깊이 있게 해석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안석영이 그 시대에 그런 글과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근대사에 관련된 책을 읽어갈 수록 책 한 권 한 권이 미시사적으로 하나의 작은 분야만을 다루었지만 퍼즐을 맞추어나가듯 근대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씩 분명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모던껄', '모던-뽀이'들이 일제 식민지 규율 권력하에서 카페에서 음성적으로 '딴스'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에는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 현대성의 형성"라는 책을 읽어야 할까? 근대 모습을 통해서 우리나라를 이해하고 현대의 모습까지도 조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백조> |
|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가 내 흥미를 끌었던 것은 경성을 거니는 것이 다름 아닌 ‘모던뽀이’이기 때문이었다.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경성스캔들’이 모던뽀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그렸었는데 ‘식민지시기’ 하면 떠오르는 암울한 시대상황, 핍박받는 백성들, 독립운동가, 친일파와 같은 이미지가 아닌 번화하고 화려한 근대화 과정 속의 경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책도 역시 1920~1930년대 식민지 시기의 근대화 되어가는 경성을 만문만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만문만화는 당시 신문에 실리던 짧은 줄글이 달린 그림으로 당시의 근대화된 경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러한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새로운 장르의 만화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경성이 근대화되어도 모든 사람들이 그 근대화의 혜택을 누릴 수는 없었다. 당시 경성은 화려한 근대도시의 모습을 한 남촌과 전근대적 요소들이 남아있는 북촌으로 나뉘어졌다. 사람들의 생활 역시 이중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근대의 모던걸이기를 원하는 동시에 시종을 데리고 다니며 과시하고 싶어하는 전근대적 가치관을 지닌 여성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경성에는 창경원과 한강인도교, 남산공원 등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의 유흥의 장소가 생겨났다. 2장에서는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등장을 그리고 있는데 이들은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시대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갖는 신여성, 혹은 지식 청년과 사치와 소비만을 즐기는 젊은이로 나뉜다. 만문만화는 특히 후자의 젊은이들의 사치와 향락적 소비, 그리고 모던걸의 기생성을 비판하고 풍자한다. 당대의 각종 유행을 다룬 3장은 영화, 댄스, 스포츠 등을 통해 유행을 보여준다. 당시에는 극장이 생기고 유성기로 듣는 일본 노래와 딴스 등이 유행하여 모던걸, 모던보이들이 즐겼음을 말해준다. 또한 만문만화는 ‘눈꼴 틀리는’ 양키문화라 하여 서구문화에 대한 반발심과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4장에서는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난 자유연애와 새로운 결혼문화, 가족문화를 다루고 있다. 새로운 결혼문화가 나타나면서 연애와 결혼의 상품화도 이루어졌는데 돈과 상품을 위해 연애와 결혼을 하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다. 만문만화는 이러한 연애, 결혼문화를 비판하였다. 또한 이 장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종적인 관계를 벗어나 비교적 횡적인 관계로 바뀌는 모습도 그리고 있다. 5장에서는 당시의 계급, 계층의 대립적 성격을 그린 만문만화를 다루었다. 이 장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부르주아의 신체비율을 3등신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살이 찌고 다리가 짧은 부르주아는 만문에 향락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묘사되며 비판의 대상이 된다. 마지막 6장에서는 산책자에 비유되는 만문만화 작가의 시대인식을 보여준다. 산책자는 근대화된 경성의 모습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때로는 비판적 시선을, 때로는 연민이 담긴 시선을 만문만화에 담아낸다. 이 책은 읽는 중간 중간 만문만화가 삽입되어있어 우스꽝스럽고 풍자적인 만문만화를 보는 재미가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다. 또한 지금과는 다른 글체 때문에 수월하게 읽히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책의 구성상 장마다 반복되거나 겹치는 내용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세분화시켜 분류한 각 장을 통해 지금까지는 단순하게 그저 ‘식민지 시대’ 라고만 알아왔던 당시의 생활상의 다양한 면모를 알 수 있었다. 책머리에 나온 바와 같이 근대의 물결이 밀려오던 당시의 경성은 어떤 면에서는 지금의 서울과 너무도 비슷한 모습이다. 남촌과 북촌이 나뉘는 것과 강남 강북이 나뉘는 것,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젊은이들의 모습,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층갈등 등을 보면 당시 근대의 모습이 오늘날 현대의 거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만문만화는 1920,30년대의 것이고 내용도 그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날카로운 비판정신만큼은 오늘날에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
근대의 얼굴 : "빈 약병에 꽂힌 한 떨기 꽃 처럼"
일제의 식민지배 아래에 있던 경성에 일금 오십 전에 키스를 파는 '키스껄'이 있었고, 엘리베이터마저 운행되는 화신 백화점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러한 조선 근대의 모습은 신문 속 그림과 산문을 결합한 만문만화에 "예리하고 풍자적이기는 하지만 심하게 불쾌하지 않고, 잔혹하지 않"게 묘사되어있다. 이처럼 만문만화를 통해 조선 근대의 모습을 해석하고 풍자한 책이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이다. 이 책은 총 6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구체적인 주제는 보이지 않지만 각각 다른 조선 근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부에서는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어지고, 근대와 전근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소비중심의 근대도시 '경성'에 대해서, 2부에서는 근대의 유행과 사상을 선도하던 모던걸과 모던보이에 대해서, 3부에서는 영화와 '딴스'에서 시작된 근대의 유행에 대해서, 4부에서는 근대에 나타난 연애결혼과 그를 방해하던 조혼제도에 대해서, 5부에서는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으로 양분된 근대의 계급사회에 대해서, 6부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근대를 바라보는 산책자(이 책에서는 만문만화를 처음 제작한 안석영을 뜻함)의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만문만화가 성행을 했던 1920~30년대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라고 알고 있다. 창씨개명과 일본어 수업을 의무로 하며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통치를 했었고, 일본과 우리는 하나라는 내선일체 사상으로 조선인들의 단물만 쏙 빨아먹으려 했었다고 안다. 물론 언론에 대한 압박도 사전 검열을 다 거칠 정도로 엄격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화라는 장르를 통해서 민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글을 조선인이 적었다는 사실이 뜻 깊었다. 이런 모습들이야 말로 진정한 언론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책에 나타난 근대의 모습들은 현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었고, 그 뿌리도 찾을 수 있었다. 현대의 서울이 강남과 강북으로 나누어져 있듯이, 근대의 경성은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어진 생활권이 있었다. 또 지금은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애결혼이 이 시기부터 나타난 것도 알 수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때에도 삶을 비관해 한강 위에서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물밀듯이 유입하는 자본주의의 유혹은 넘쳐나지만 그 욕구를 만족시키기는커녕 아내와 자식 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나오는 가장들이 그 부류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만문만화는 그림과 산문이 결합한 예술의 한 장르이다. 이 책에서는 만문만화의 기원을 일본에서 찾고 우리나라에서는 석영 안석주(1901~1949)에 의해 처음 시작되어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던 장르라고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만문만화는 민족들의 마음을 대변함과 동시에 글과 그림이 만날 수 있는 '그림이야기'라는 장르를 계속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모습도 이 책처럼 언젠가는 재조명해 볼 날이 올 것이다. 그 때에 후세의 사람들에게 비치는 현대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떨까. 정치계에서는 국민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지지만 국회의원끼리 서로의 부동산 뒷조사를 하고, 경제계에서는 고급의식주 뒤에 카드빚이 늘어가고, 사회계에서는 민주주의 속에 개인과 사회의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문화계에서는 진정한 예술인들 속에 예술을 상업으로 이용하려는 풍조가 생기는 모습들. 처지는 다르더라도 빈 약병에 꽂힌 뿌리를 잊어버린 한 떨기 꽃에 비유될 수 있는 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근대의 모습과 동시에 현대의 모습도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