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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때도 기쁠때도 흘리는 눈물... 눈물이 짠 이유는 그 안에 담긴 것이 이유도 모른 채 느닷없이 주어진 삶 때문은 아닐까?
'삶'이 무언가를 아주 조금이라도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시간'이라 규정한 것에 맞춰 살아내고 있다. 때론 무겁게 가끔 행복하게... 어찌 살아야 잘 사는 거고 무엇을 하며 사는 게 좋은 걸까? 영원한 잠에 빠져들 때까지 두고두고 물어야될 질문이 아닐까?
이 책은 함민복 시인의 에세이다. 여기엔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난 이 구절에서 묘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 가던 길이 좁아진다고 해서 살아가기에 대한 생각의 양이 적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p151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은 삼일이 되고 한달, 일년 그렇게 한해 한해를 보내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매순간하지 않는 날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도...
세상이 늘 밝고 좋을 수는 없듯이 누군가의 어둠에 잠식될 때도 있다. 그 어둠에서 겨우 빠져나올 즈음 깨닫는 건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안 한없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어찌할 수도 없이 감내해야하는 것도 있다는 것, 마음이 조각조각 나눠져 흩어지더라도 온전히 내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
어디서 한번쯤 들어봄직한 이름인데다 책제목이 왠지 끌려서 그대로 보게 되었는데 모인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묘하게 공감이 가면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성이 툭툭 묻어나는 문장이 꼭 시어 같았고 짠 물기가 짙게 느껴지기도 하는 시인의 삶과 맞물려 에세이인데도 마치 시집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눈물은 왜 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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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의 시집보다 먼저 이 산문집을 읽었다. 앞으로 차차 이 시인의 시도 읽어볼 테지만 <눈물은 왜="" 짠가="">에 실린 짧은 글 한편, 한편 역시 시였다.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댁으로 모시던 날, 차 시간을 앞두고 모자는 설렁탕을 먹으러 간다. 아들에게 국물 몇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자 하는 짠한 모정에 서러움을 느끼고 짠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렇게 슬픈 산문시 속에서 아들도 울고 독자도 운다.
강화도의 농가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시인의 일상과 시에 대한 반성, 시인이 만난 사람들 이야기와 슬프지만 빛나는 추억들이 아름답다. 왁자지껄하게 사람 사는 집에만 둥지를 튼다는 제비와 함께 살아보려고 혼자 사는 집에 티브이를 크게 틀어 여자와 아이들 목소리도 내고 빨래도 널면서 제비를 속이려고 노력하다가,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제비도 시도 찾아올 거라고 마음을 먹는 시인의 모습이 쓸쓸하지만 건강하다. "제발 분주하라 내 삶이여, 봄처럼"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지듯. 셋방을 전전하면서 어머니와 한방을 쓰느라 급하게 부탁하는 친구도 재워주지 못하는 심정도 가슴 저리고 아프다는 것도 전해지고, 사랑했던 여자의 사진을 강물에 띄워보내기 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함께 심란하다. 평생 스스로 번 돈 중에 가장 큰돈은 소설 원고료로 받은 200만원. 이 돈으로는 어머니를 편히 모실 정갈한 방 한칸 얻을 수 없다. 지하방과 구석방에서 보냈을 시인의 청춘이 안타깝지만 시인은 크게 절망하지 않고 형편껏 셋방을 구해 살면서 짠 눈물을 흘리고 시를 쓴다. 결코 궁상맞고 구차한 삶의 방식은 아니다. 책의 뒷표지에 실린 소설가 김훈의 글에 나오는 것처럼 "그의 가난은 '나는 왜 가난한가'를 묻지 않고, 이 가난이란 대체 무엇이며 어떤 내용으로 존재하는가를 묻는 가난이다. 삶과 자신의 내면을 동시에 들여다보아아만 대답할 수 있는 이 질문을 거듭하면서, 그는 다만 살아있다는 원초적 조건 속에서 돋아오는 희망과 기쁨을 말한다"
나 또한 이제 낯선 곳으로 떠나 아둥바둥 변변치 않게 살게 될 일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가난한가"에 매달리지 않고 가난했던 과거를, 현재를 묵묵히 살아가며 그 안에서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 함민복 시인의 삶을 엿보고 나니 왠지 앞으로 정말 먹고 싶은 걸 다 먹지는 못하고, 입고 싶은 옷도 다 입지는 못 하고, 음식이며 빨래며 청소에 손이 트면서 살게 될지라도 가난에 허덕인다고 괴로워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가난의 내면을 볼 줄 아는 시인의 삶을, 세상을 등지지 않고 사람과 자연과 짐승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을 든든한 '빽'삼아 되새기며 힘을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헤어지기 섭섭하다며 메리야스를 건네자 공장장은 미리 준비한 선물을 내게 건넸다. "이 기사하고 같이 만년필하고 연필을 샀어. 좋은 시 많이 써." 나는 공장장과 이 기사와 공장 건물을 뒤돌아보며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좋은 시는 당신들이 내 가슴에 이미 다 써놓았잖아요. 시인이야 종이에 시를 써 시집을 엮지만, 당신들은 시인의 가슴에 시를 쓰니 진정 시인은 당신들이 아닌가요. 당신들이 만든 착유기가 깨끗한 소젖을 짜 세상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 거예요. 상념에 젖어 있을 때 내가 가야 할 곳으로 나를 실어다줄 버스가 흐릿하게 다가오고 있었다.눈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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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부터 하는 SBS 라디오에에서 이숙영의 파워FM을 다른 요일은 잘 듣지 않아도 수요일만은 챙겨 듣는 편이다. 시인 원재훈씨의 책 골라 주는 남자라는 코너 때문이다. 매주 한 두권의 책을 소개해주는데 어느 매체에서나 볼 수 있는 책이 아니라 그만의 시각으로 건져 올려진 아주 다양한 책들을 소개해 주기 때문이다. 예스24에 가면 대게는 전면에서 밀어주는 책을 눈여겨 보게 되는데 원재훈 시인이 소개하는 책들은 거의 숨어있는 책이 많다. 지난번에 아사다 지로의 지하철을 그의 소개로 인해 알게 되면서 얼굴도 모르는 그의 목소리를 나는 신뢰하게 되었다. 원재훈 시인(일명 원시인)은 날 좋은 날이면 뒷산에 올라 몇 시간씩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공기 좋은 곳에서 책과 조용한 대화를 나누면 책을 고르는 눈이 밝아지나 보다. 그렇게 다듬어진 그의 소박하고 정직한 시선을 나누어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그가 소개해준 책을 읽는다. 오롯이 책에게만 좋은 시간과 공간을 투자하는 그 시인이 몸살나게 부러워서 가끔 도서관 주위의 벤치에서 책을 읽으며 그의 흉내를 내곤한다.
몇 달 전엔가 원재훈씨가 책을 소개하고 나서 시간이 좀 남아 보너스로 소개해 준 책이다. 너무나 가난한 시인의 착한 산문집이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관심이 가지 않았다. 너무 가난한 것이, 너무 착하다는 것이, 흐려진 내 맘을 힘들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살지 못한 죄스러움과 따라갈 수 없는 성자같은 삶과 반성만이 떠올랐기 때문에 읽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제목만은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밍밍한 마음의 샘이 농도가 짙어져 제목대로 간간해 질 것 같은 느낌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눈물은 왜 짠가... 생각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지난달 예스24의 베스트 디자인 코너에 가보니 이 책이 있었다. 가난과 불우가 느껴지는 제목과 달리 표지는 여유롭고 풍요롭게 느껴지는 이왈종의 그림이다. 잘 어울렸다. 시인과 화가 둘 다 소박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화가는 내가 외면한 시인을 다시 돌아보게 해 주었다.
술술 넘어가는 소설책 몇 권과 잡다한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은 나의 독서 순위에서 계속 밀렸다. 애써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잡았다 놓기를 반복한 끝에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을 잡고 책장을 펼쳤다. 아마도 가난한 시인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걸 보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좁고 가느다란 보잘 것 없는 내 마음이 부끄러워 견디기 힘들 것을 제목을 본 순간 간사하게도 알아차린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시인의 물리적 가난이 군데군데 눈에 띄긴 했지만 찌들지 않은 그의 마음과 삶이 빛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다음날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읽었다. 눈물은 왜 짠가와는 반대로 풍요로운 개인의 삶이 눈에 들었다. 예술에 대한 그녀의 지향을 담은 글도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절대 사치스럽지 않았건만 전날 읽은 시인의 팍팍한 생활이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생계를 위해 출판사와 소설을 쓰기로 계약을 맺은 시인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다시 한번 감동을 준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소설을 써본다면 나는 세상의 거대한 밝음을 읽지 못하고 나의 내부에서 희미하게 뻗어나오는 흐린 빛줄기로 가장 가까운 이웃집 담벼락을 비쳐보는 데 그치고 말리라. 아주 사적인 빛으로 나는 검은 활자를 어찌 찍어나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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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의 산문집. 우리세대는 참으로 찾지 않는 작가이다 사실 존경하는 작가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유사하고 그분을 만났을 때의 소감을 이야기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
문득 눈물이 들어간 이 제목의 산문집을 보고 싶어졌다. 가난하게 살았던 이 시인의 글 역시 남루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시는 쉬운 글로 쉽게 읽히지만 오랜 여운이 남아 다시 책을 들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스치는 사물도 그냥 지나치치 않는다.
전기스탠드를 보며 '늘 소녀처럼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저리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도 밝고 환하게만 살아갈 수는 없을까'라고 작가 자신이 그토록 겸손하지 않으면 이런 글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몸이 아팠던 밤에도 그는 글을 쓴다 산이 늘 정신을 기대주었고 태앙은 낙타가 되어 몸을 옮겨주고 흙은 갖은 음식을 차려주었다고, 달은 늘 가슴에 어미 피를 순환시켜주었다고 말이다
이 산문집 속에 '눈물은 왜 짠가'라는 글을 읽으며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시보다는 알기 쉽게 풀어놨고 소설보다는 압축해놓은 이것이 산문의 힘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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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슬픔으로 배가 부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눈물은 다른 사람보다 더 짠맛이 납니다. 울면서도 삶에서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글은 눈물을 닮았지만 동시에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함민복 시인을 알게 된 건 아는 분의 블로그의 「성선설」이란 시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에 하룻밤을 설친 다음날 서점으로 가서 시집을 찾았지만 그 서점에 함민복님의 책은 <눈물은 왜 짠가> 이 책 뿐이라는 말에 책을 들고 돌아온 날부터 책을 다 읽기 시작한 며칠동안 잠을 자다가도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강화도 외딴 곳에 혼자 사는 시인은 혼자 밥을 먹으니 소금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가 먹은 소금은 모두 눈물로 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눈물은 짠것은 아닐까란. 홀어머니를 경로당 옆방에 살게 할 수 밖에 없을만큼의 가난한 시인은 사는 동안 분명 밥을 배불리 먹은 날보다 슬픔을, 아픔을 배불리 먹은 날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책은 함민복 시인의 삶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해질녘까지 더덕을 캐던 어린날부터 시인을 꿈꾸며 기계 앞에 서있던 청소년 시절,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나아가 시를 좀 더 짭게 쓸 수 있기를 희망하며 강화도에서의 지금의 모습이 책에는 고스란히 시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만큼의 서정적인 글로 적혀있습니다. 시인은 산문이라고 책을 냈지만 읽는 독자는 하나하나가 시인 것 같아 빨리 읽어내려가는 눈길을 마음으로 잡아 천천히 읽으라고 말해주어야 했습니다.
삼십사 년을 살았음에도 가장 크게 만져본 돈이 이백만원인 시인. 그의 어머니는 눈이 침침하시다며 하얀 머리를 염색합니다. 행여나 자식이 밥을 먹다 흰 머리카락 나오면 목이라도 메이면 어떡하나 해서.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살 수도 없을만큼의 가난한 시인, 함민복. 그러나 그의 글 어디에서도 가난으로 인한 좌절도 분노도 원망도 없습니다. 다만 어머니께 죄송하고 자신 혼자 대학을 나온 것이 형제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가난을 밀어내기 보다 가난과 꿋꿋하게 살아온 시인은 지금도 가난할 것 같아 그의 책 한권의 값이 너무 싼 것 같아 미안해집니다.
이 책은 참 맛있는데도 눈물이 납니다. 마치 망둥이의 뽈따구니 살이 제일 맛있는 이유와 같다고 할까요? 망둥이는 살아있는 한 호흡을 해야 하니 계속 움직여야 하는 아가미 근육 살이 제일 쫄깃쫄깃하고 맛있다고 합니다. 먹다가도 망둥이가 몸부림쳤을 것을 생각하면 짠맛이 느껴집니다.
그 작은 몸으로 삼톤 배와 있는 힘을 다해 줄다리기를 했을 망둥이는 시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은 삼톤 배와는 상대도 되지 않는 삶을 향해, 세상을 향해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온 힘을 다해. 그래서 그의 세상을 향한 몸부림은 우리를 살게 합니다. 나약함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포구라는 시인의 말처럼 그가 우리의 아픔을 대신 말해주고 대신 울어줍니다. 나약한 저는 함민복이란 포구를 만나 꿋꿋하게 살고 싶어졌습니다.
---------------------------------------------------------------------------------- 좋았던 구절
1. 벽 밖에서 못 박을 위치를 잡기 위해 망치를 두드린다. 아니, 그쪽 말고 바다 쪽으로 한 뼘 더......기준을 바다로 삼는 이곳 사내들처럼, 나도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나아가 시를 좀더 짧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요즘 내가 살고 있는 강화도에서 들을 만한 소리는 기러기 소리다. 하늘에서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 나가보면 수십,수백 마리 기러기가 하늘에 글자를 쓰며 날아간다. 살아 우는 글자. 장관이다. -p.17
3. 멈춰 섰다. 등을 돌려 손바닥으로 바람벽을 만들고 담뱃불을 달렸다. 순간 나는 나무처럼 지구를 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 꽂혀 있는 나. 천팔백만 평, 여의도의 스무 배나 되는 개펄밭에 보이는 사람은 나와 승준 씨 둘뿐이다. 서쪽과 동쪽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다. 바닷바람이 못에 걸린 천 갈라지듯, 내 몸에 걸려 후르르륵 갈라진다. 바람이 내 몸을 읽는 소리를 이곳이 아니면 어디에서 순수하게 들을 수 있을까.나무처럼 서서 팔을 벌려본다. 바람에 ㅂ담배 불씨가 툭 튀어나간다. 담뱃불을 다시 붙이려다가 바람에 벗겨지는 모자를 움켜잡과 길을 재촉한다. -p.24-25
4.
그렇게 빨리 밥을 먹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비빔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얼굴과 손에 기름이 묻어 저리 동작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으리라. '가난하게 산 사람들은 밥을 빨리 먹는다. 왜냐하면 형제들에게 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빨리 먹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라는 최하림 시인의 산문 구절이 떠올랐다.
-p.57
5.
아마 시는 어지러운 마음속에, 분주한 마음에 깃들이기를 즐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를 배우기 우해 문창과에 다니고 있을 때보다 시에 대해 회의하고 삶이 막막할 때 시를 많이 썼던 것을 보면, 적어도 내게는 분주하고 힘든 삶 속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열망하고 있을 때 마음에 시가 잘 떠오르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제비가 사람살이 왁자지껄한 집에 찾아들어 새끼를 치는 것처럼. -p.46
6.
나는 바닷속 같은 풍경에 침잠되어 숨이 차오르고 손을 지느러미처럼 휘젓고 싶어지다. 저 넓은 바닷속으로 나는 유유히 유영해나가고 싶다. 사람들의 바닷속으로. 돈을 숨쉬며. 그러나 나는 매양 지느러미를 접고 부족한 경제에 시달려 수면으로 떠오르기 십상이다. 이것이 삼십사 년을 살아온 나의 현실인 것이다. 어머니에게 이백만 원을 송금한 현실인 것이다. 소설을 써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p.114
7.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좀처럼 풀리지 않는 물음을 품고 거리를 방황하다가 호출을 받고 전화기를 찾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 앞에서 전화를 걸던, 나와 면식이 없는 젊고 아리따운 보살에게서 커다란 깨우침을 받습니다.
"알았어. 전화 끊을게. 뒤에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
그렇다! 나는 사람인 것이다.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나도, 계절이 바뀌었으니 무엇인가 시작해야 한다고 마음 다지는 나도, 나는 누구인가 하루 종일 고민하며 거리를 헤매는 나도 분명 사람인 것이다. 끝없이 사색하는 나는 사람인 것이다. -p.136
8.
집 떠나는 날 어머니는 염색을 하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께 염색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야 자식들이 더 자주 찾아뵙지 않겠냐고 했다. 어머니는 묵묵부답 염색만 하시다가 선문답 같은 한마디를 던지셨다.
"눈이 점점 침침해져서 염색을 한다."
나는 단단히 맘먹었다. 이번 기회에 위장병도 고치고 심기일전하여 좋으 글도 많이 쓰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이곳 암자로 오기 위해 집을 떠나오던 날, 나는 밥 속에서 어머니가 빠뜨린 머리카락 한 올을 골라냈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차마 말씀하시지 않은 마음 한자락을 읽었따.
"네 밥그릇에서 내 흰 머리카락 나오면 네 목이 멜까봐......"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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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력이 특이하고 표지가 이뻐 잡았던 책이다. 함.민.복.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작가의 생활과는 조금 다른 생활을 하고있다. 머리 뜯으며 글쓸 작업실과 문하생은 커녕 당장 내일 밥값이 걱정되는 '가난'한 작가다.
그는 그 가난이 동무가 된 생활을 담백한 어조로 노래하고있다. 늙으신 어머니가 집구할 돈이없어 고향 회관에 딸린 방에 기거하신다는 말도 참 편안하게썼다. 그걸 편안한 마음으로 썼겠냐만은..
누구네 바다작업하는데 따라나갔던걸 쓰고 누이가 보내준 차비받아 어머니 만나러 간 걸 쓰고 그의 모든게 시가되고 글이된다. 그에게는 특별하게 주제가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자체가 글이되는 것이다. 그만큼 자기의 삶에 오롯이 마주하고 있는거고 솔직한거다.
흔한말로 지지리 궁상이겠다만은 그 생활을 하는 당사자 마음이 그렇지 않기에 글도 참~담담하지만 풍성하다.
요즘 세계 어디를 다녀왑네~~하며 쓰는 글들이 넘쳐난다 나도 그런 책들을 좋아라하고 많이도 읽고있다. 일상을 벗어나 낯선곳에서 느끼게 되는 생각과 관념을 말하는 그 부드러운 "철학책"을 읽고있노라면 (나는 여행서를 철학책이라 부르고싶다. 뭐 걔중에서는 나 어디어디~가봤다며 자랑질만 쳐대며 잘난척하는 재수탱이들도 많지만) 나도 이들처럼 지금있는 이곳을 떠나 어디론가가야만 할꺼같았다. 꼭 그래야만 그 깨달음이라는걸 얻을수 있을꺼 같았다. 하지만 이책은 어디도 가지않고 자기가 서있는 그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선 이자리에서도 보고 느낄께 많다는거다.
내가 이책이, 책보다 작가가 좋은건 가난이나 흔히 말하는 궁상에 대한 생각이 좋아서고, 내 생각의 끝자락과 맡닿아있어서다
딴길로 살짝 새어, 사람들은 돈이없어야만 가난이라고 한다. 잘배우고 돈잘벌는게 최고란다. 하지만 그게 사람을 판단하는 절대기준은 될수 없는거다. 그럼. 이세상 정말 살맛나지않지
다시 작가이야기로 돌아오면 작가는 가난이 뭐 별거아니란다. 아니 자기는 가난하지 않단다. 가난하면 뭐가 부족한거고 부족한걸 안다는건 뭔가 필요한게 있다는건데 자기는 필요한게 별로없단다. 그래서 자기는 가난하지않다는거다.
이는 삶을 똑바로 쳐다보고 깊이, 그리고 오~~래 들여다 봐야만 나올수 있는 말 아닐까? 모든것을 정확히 파악할수 있을때에야 부족도 알고, 부족하지않음도 아는 거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 작가가 너무 좋아졌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가난. 그 가난마저 맞서는 사람의 생각에따라 가난이 고난이 될수도 가난이 여유가 될수도 있는것이다. 비단 가난만이 아니다. 무엇을하든 생각의 차이가 현실을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튼실한 생각을 만들기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경험도 해봐야하는거다. 내가 특별한 혜안을 가지지않은 이상 경험하지않고도 모든걸 이해할만큼 현명하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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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갈 일이 있어 나가다가, 함민복 님의 산문집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이 먹먹해졌다.
삼십 사년을 살면서 사백만 원도 구하지 못하는 자신을
불가해하는 시인. 찬밥을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며 어머니도 찬밥을 보면 나를 떠올릴 거라고생각하는 시인.
가정을 이루지 않는 집엔 깃들지 않는 제비가 섭성하여
TV도 틀고, 옷도 널고 속여보려다 ''제비야 네가 옳다''하고 마는,
이제 사십이 다 된 이 사내.
''너만큼만 고생한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면 되지''
이렇게 말하시는 시인의 어머니.
거기서 바로 케이오패 당했다.
나는 울고 있었다.
처음 내가 책에서 맡은 건 가난의 냄새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시인은 태생적 가난을 털어버리려는 극악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부도로 삼천 개의 도장만 남긴 채
어머니를 맡기고 사라진 형을 얘기하면서도 분노하지않는다.
그렇다고 체념한 것이냐면, 그것도 아닌듯 싶다.
애시당초 당신에게 남겨진 붙박이 같은 가난,
그것을 그냥 겪어내고 있는 시인은
분노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천연기념물처럼 내겐 희귀한 존재로 보였다.
아니, 그것보다 더 불가해한 것은
보통 글쓰는 이들이 가지는 그 어떤 우월감.
정신에 대한 우월감으로 이 처지를 버텨내고 있오, 하는 식의
''가오''를 전혀 발견할 수 없어서였다.
그것을 두고 소설가 김훈 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가난은 나는 왜 가난한가를 묻지 않고, 이 가난이란 대체 무엇이며 어떤 내용으로 존재하는가를 묻는 가난이다. 삶과 자신의 내면을 동시에 들여다보아야만 대답할 수 있는 이 질문을 거듭하면서, 그는 다만 살아 있다는 원초적 조건 속에서 돋아나오는 희망과 기쁨을 말한다. 나는 이런 대목에 도달한 그의 산문들을 귀하게 여긴다. 여기에 이르면, 고통과 희망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고, 글과 삶 사이의 간격이 없어져서 글은 자연히 순하고
편해진다. 그의 순함이 그의 글의 힘이다''
거기엔 그가 강화도 서쪽 바닷가에 기거하고 있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도시의 가난과 시골의 가난은 많이 다르다.
도시에 절망한 채 시골로 내려가 다른 삶을 일구는 이들은 대개 자연을 겪어서인가. 순해진다. 내게도 그런 지인이 있어 안다.
달의 차고 일그러지는 리듬에 맞춰살며, 도시의 독을 비워낸 그들.
함민복 시인은 가난이라는 정체를 겪되 살아있다는 희망 쪽에 먼저 서서
거기에 딸려나오는 기쁨을 일상처럼 취한다. 그래서 시인의 내면과 외면
풍경은 완전히 일치된다. 시인이 곧 자연이 되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난 내 마음 속엔 두가지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하나는 그와 점심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
따끈한 술국이거나 올갱이국을 후루룩 먹으며 소주 한잔 마시며
사는 얘길 듣고싶다는,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시인을 만나기 불편한. 내 삶을 헤집는 젓가락질 같은 그의 시선 앞에
노출되기 싫은.
그리고 또 하나는 속상하고 속상하다는 생각.
왜 우리는
원고료 입금됐나 확인하러 은행 가는 게 은행 가는 일의 전부인
이 천연기념물 시인을 보호하기 위한
팬클럽이라도 결성하지 못하느냐 하는. [인상깊은구절] 올봄 나는 제비를 기다리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제비가 여성 호르몬 냄새를 맡는지 몰라 여자 후배에게 집에 한번 놀러 왔다 가라 했던 부탁도 취소해야 겠다. 내 집에 사람 살아가는 소리 시끌벅적하면 제비도, 시도, 우리 집에, 내 마음에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제발 분주하라, 내 삶이여, 봄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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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저 / 이레
<눈물은 왜 짠가>의 작가 함민복은 가난과 밥이라는 소재로 우리에게 감동적인 시를 쓰는 작가이다. 그는 가난했다. 그렇기에 밥은 그가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였다. 그런 숙제를 작가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시가 함축적으로 그의 시선을 풀어낸다면 산문집은 글로 좀 더 친절하게 그의 시선을 들어낸다.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려치는 번개여
누군가를 품에 안을때 우린 따뜻하지만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애틋함의 원천은 어쩌면 시인의 말대로 포갤수 없는 심장에 대한 우리가 가진 선천성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 우린 가까이 하면서도 더 가까운 사이를 꿈꾸는 사람이다.
"집이 있어야 장가를 가죠" "얘, 저 까치를 좀 봐라. 저렇게 둘이 같이 집을 짓고 있지 않냐, 너처럼 고행하며 산 여자 하나 만나면 되지." "그럼 - 나 까치하고 같이 살면 안 될까?"
내가 알기론 함민복 시인이 이 글을 쓸 당시만 해도 어머니와 자신 뿐이였지만 지금은 결혼해서 살고 있다고 알고 있다. 시인의 어머니가 말하던 까치를 만났을까. 궁금해진다. 그러나 서로 집을 짓고 집을 고쳐가면서 한평생을 기약하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나의 짝이며 나의 까치일것이다.
손가락이 열개인것은 어머님 배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손가락 열개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려는 작가의 마음에서 부모에 대한 자식의 애틋함과 존경이 묻어 난다. 이렇게 함민복 시인은 거창하지 않지만 우리가 보지 못한 곳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는다.
내 집에 사람 살아가는 소리 시끌벅적하면 제비도, 시도, 우리집에 내 마음에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제발 분주하라. 내 삶이여 봄처럼
이 구절을 보면서 내 집이 너무 적막하여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궁금하여 고개를 기울릴 만큼 호기심을 이끄는 우리집 내가 만들어야 할 우리집이며 그 곳에 사람을 들어 함께 집을 이루고 살아가야 할 집의 모습이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는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집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된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대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작가가 말하는 눈물나게 슬픈날 자신을 위해 형님네가 더 안좋은 환경을 가진 집으로 이사를 가고 아무것도 할수 없는 자신은 술을 먹고 술취에 시달리던 날
중국집에서 아이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작가는 세상에 대한 힘을 다시 내 본다. 사람이 이처럼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이유는 가족의 힘도 있지만 세상에서 얻는 사람이 힘이 더욱 크지도 모르겠다.
함민복 작가는 본문을 소개한 글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게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타인의 희망이 자신의 희망이 되는 어쩌면 희망을 옮기고 있는지도 모르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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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그의 삶이. 작가는 왜 글을 써야 하는가. 작가의 개인적 불운이 작품의 자양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삶이 너무 슬프다. 너무 슬프고 처량해 읽기 싫었는데, 잠조차 오지 않았다. 끊임없이 불운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작가의 몸부림을 보면서 불면을 더해갔고, 글쓰기를 놓지 못 하는 작가를 보면서, 나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비친 거울은 너무나 슬픈 거울이었다.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인 이 책에는 작가의 사십여년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왜 작가가 되었으며, 어떤 삶을 살았으며,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며. 재미있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불운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지만, 동시대를 사는 함민복의 불운(?)을 보면서는 처량함이 너무나 강하게 느껴졌다. 작가는 왜 계속 글을 써야하는 건지 생각했다. 정말,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행위인가. 쓰지 않으면 무병이라도 앓는 것인가. 작가는 노선버스를 보면서 하루의 처음과 끝이 정확하게 맺어지는 삶을 부러워 한다. 그러면서, 처음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고난과 같은 작가라는 직업을 슬프게 바라본다. 눈물은 왜 짠 걸까. 작가의 눈물은 왜 그리 짠 걸까. 우리의 삶은. 시적 문체로 이어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아름다운 시선이 시종일관 독자의 시선을 잡아 끈다. 모시수건의 결을 한 올 한 올 어루만지듯 작가의 문체를 어루만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자문하게 된다. 우리의 눈물은 왜 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