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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선의 역사를 상고해 보면 물론 역사 앞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몇몇 치세가 훌륭한 군주들이 좀더 개혁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그리고 못난 군주들을 보면서 보위 계승이 다른 이로 이어졌더라면 하는 가정을 하게 된다. 물론 이는 그 만큼 역사에 대한 아쉬움이 배여 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태조를 시작으로 순종까지 27명의 군주가 500여년을 다스린 세계사에 보기 드문 장수 왕조 중에 하나이다. 비록 중간에 2번의 반정과 독살의혹에 휩싸인 군주도 있지만 그래도 순항 했다고 볼 수 있는 왕조국가였다.
그럼 절대군주국가에서 왕은 어떤 존재인가? 일단 조선의 태생적으로 명과의 사대외교를 표방했기 때문에 명의 제후국으로서 일종의 권력을 담보받고 독자적인 정치를 해나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숭유억불정책과 역성혁명의 파트너인 신진 사대부들의 힘이 강대해져서 왕은 사대부중에 제일인자로 인식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흔희 서양이나 중국의 왕들처럼 조선의 왕에게는 절대적인 힘이 부족했다. 이는 조선이라는 국가가 갖고 있는 태생적인 원인 중에 하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마도 조선왕조를 통틀어 왕마음대로 정치를 펼친 군주는 태종이나 숙종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조선의 왕은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만인의 어버이 이자 한반도의 주인이었지만 그 내부는 많은 역학관계에 둘러 쌓여 있었다. 그래서 반봉건적인 시각에서 조선을 평가할 때 왕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역시 무리가 있는 것이다.
이번 책은 이러한 면에서 정말 왕을 위한 변명이라고 할 수 있다. 왕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고 그래서 고뇌하고 실수하고 혹은 이용당하고 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동안 역사적인 평가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판단 잣대로 조선의 군주들을 평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책은 그러한 판단기준 보다는 왕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왕의 심리상태나 성장배경 및 시대적 상황을 종합하여 그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라는 유추를 이끌어 내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해야 하겠다.
특히 조선사 연구에 단골 메뉴 격인 태종, 세종, 세조, 연산군, 중중, 광해군, 인조, 영조, 정조, 고종 10인의 군주를 통해서 그들의 심리적인 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조선왕조 최초로 피의 숙청을 통한 정권 확립과 치세기간내내 절대왕권강화에 힘을 쏟은 태종의 경우 이상과 원칙이라는 신념이 강했던 왕이었다. 태종은 조선왕 중 유일하게 과거 급제한 공식적인 엘리트였다. 그래서 그는 대단한 자부심과 원리원칙이 통하지 않는 정치에 환멸을 가지고 역성혁명에 가담하게 되는 것이고 이후 그의 행보는 이러한 심리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 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을 통틀어 광개토태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종의 경우 우리가 알고 있듯이 양녕의 폐세자로 인한 어부지리격으로 보위에 오른 것만은 아니다. 대군시절부터 착실하게 자기노력에 전념했기 때문에 왕좌에 올를수 있었고 이러한 그의 성격은 조선왕조 중에서 가장 훌륭한 군주라는 업적을 낳게 되는 원동력이었다. 비록 그 경쟁상대가 형인 양녕대군이었지만 올바른 치세를 통해서 자신이 왕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조의 경우는 좀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대군시절부터 아버지 세종과 형 문종을 보필하면서 불교에 심취했던 장본인이 결국 조카의 피를 통한 정권장악이라는 모순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내면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심을 억제하지 못했다. 조선왕중에 가장 많이 불교와 관련된 일화를 남기고 불교중흥에도 많은 노력을 했다. 아마도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 하고 보상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한다. 조선 최초로 반정이라는 쿠테라로 인해 폐위된 연산군과 중종의 경우 아마도 조선왕 중 가장 많은 정신적외상을 받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연산군은 생모인 폐비윤씨와 관련된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무너져 내렸고 중종의 경우 형인 연산군에게 언제라도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심이 빚어낸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유일하게 자기마음대로 모든것을 행한 왕으로 중종은 유일하게 자기 뜻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왕으로 회자되는 것으로 이 두 왕의 결말은 상극을 이루고 있다.
광해군과 인조의 경우는 저주와 원한이라는 심리상태가 평생을 지배하게 된다. 광해군의 경우 힘들게 보위에 오르다 보니 그에 따른 반대세력의 저주를 맹신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내내 그의 의사결정을 지배하게 되고 결국 인목대비의 유폐와 능양군 세력의 핍박으로 인해 반정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인조 역시 광해군으로 받은 핍박이 원한이라는 다른 방향으로 자라게 되고 결국 이러한 원한 앞에서는 인륜도 천륜도 없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정조와 고종의 경우 세종과 중종의 중간쯤의 심리상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렇게 살펴보면 준비된 왕인 세종과 정조 그리고 극도의 한이 지배했던 연산군과 인조, 공포감으로 평생을 살아갔던 중중과 고종의 치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극과 극을 보여주는 이들 왕의 심리적 상태는 왕이기 때문에 역사의 저편으로 묻혀질 수 도 있지만 왕이기 때문에 더욱더 중요한 것이었다. 왕은 개인이지만 결코 개인이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권력의 정점에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영향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심리상태를 극복한 왕은 현명한 군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그러지 못했던 왕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잊혀져 간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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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은 쓰여 지는 자에 의해 달라진다. 기록이나 약전을 바탕으로 기술되었다 할지라도 시대적 함의나 주관에 의해 덧씌워질 수밖에 없다. 분명 역사의 진실은 곡해되기도 와전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에 드리운 조각들 중 변하지 않는 진실의 본질은 세월의 파고를 깨트리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인식하고 바라보는 세상의 단상들이 모두 일정한 일련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나에게 있어 조선은 영욕과 번민으로 점철된 끝없는 도전의 역사라 본다. 반목과 대립의 지리멸렬한 갈등은 선혈로 얼룩진 고통의 시간으로 재생산 되었다. 이 책 <왕을 위한 변명>은 절대왕권을 거머쥔 조선의 왕, 영욕의 순간을 회고했다. 왕이 되기 위한 과정과 시대적 상황을 실록을 중심으로 객관성을 확보하고, 다양한 관점의 시각과 심리 분석을 통해 적절하게 얼버무렸다.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듯 긴장감을 부추기고 왕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던 그들의 삶을 연민하게 만든다.
책은 조선의 27대 왕들 중 10명만을 추슬러 갈무리했다. 어느 누구도 평탄한 운명을 걷지 못한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을 향한 열망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권력에 대한 집착과 야욕은 피로 맺은 천륜마저 짓밟고 공포, 의심, 질투로 물든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살기 위해 광인이 되기도 하며 모자란 척, 어미의 복수를 위해 황음무도의 광기를 보이는 행위들은 보통의 인간의 의지로서는 넘기 힘든 신산한 삶이었을 게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 반역의 칼날은 반복되었는지 모르겠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굴복과 권력찬탈을 위해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여 무참히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둘러 살육의 역사를 자행한 현장을 아들 태종이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반복의 역사를 잉태하고 재현하는 역사를 들여다보면 삶의 우연이 숙명처럼 퍼진 인과응보의 대명제를 연상치 않을 수 없다.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는 이어지는 대화란 누군가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절감하게 한다.
조선의 왕위세습은 적장자우선의 원칙이었다. 원칙은 예외를 낳기 마련이지만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을 정적으로 내모는 악의 축이었다. 앞서 본 태종이 왕자의 난을 2차례나 일으켜 이복동생을 제거한 사실을 보아도 그렇고, 훗날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것을 보아도 그렇고, 수양대군(세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좌를 끌어안은 것을 보아도 또한 그렇다. 결국은 왕권을 향한 치열한 열망이 토해 낸 인간의 허무한 욕망과 직결된다 하겠다.
왕은 드러난 화려한 외양과 다르게 고독이 난무한 자리다. 실존적 관념을 애써 덮씌우더라도 외롭고 고단하기 이를 때 없다. 반면, 강인한 의지와 바른 통찰력을 요구받고 위엄과 카리스마를 생산해 내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조선의 왕들은 갖은 원한과 저주의 구심점이었으며 동시에 판단력과 평정심을 방해받는 유혹에 쉽사리 경도되었다. ‘주초위왕’ 따위의 혹세무민으로 개혁의 기치를 올린 조광조와 사림을 제거한 중종과 훈구파. 어미 윤비의 죽음에 빙의된 연산군의 폭정. 저주를 혹신한 극단의 외줄타기를 한 광해군. 그들을 일러 우리는 무능과 광기 어린 일방의 시선으로, 폭군이라 재단할 수 있을까.
중국의 진나라 황제 진시황의 권력을 빗대어 무소불위(無所不爲) 즉,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통칭하여 무한권력으로 대변된다. 봉건주의사회에서 왕의 권력은 실로 막강하였다. 왕과 대치되는 시각과 의견은 반역으로 몰리기 십상이었고 정적으로 낙인 되었다. 이처럼 왕은 강력한 통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시도 긴장감의 고삐를 늦출 수가 없었다. 시시각각 위협하는 정적들의 틈바구니에서 견제와 균형의 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심리적 위협을 조선왕조 통틀어 가장 심하게 받은 왕은 바로 고종이 아니었을까? 공포와 긴장감으로 결빙된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을 뼈저리게 통감하였을 것이다. 무능함과 자주적 근대화의 선구자로 이중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처럼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봉건과 개혁의 경계를 부침을 겪으며 외로운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저자가 길어 올린 깊숙한 인간 내면의 고찰은 현재를 사는 우리, 저주와 같은 무자비한 내몰림에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대통령을 만들어 낸, 오늘날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시기에 조선왕조 500년 역사 속 부침과 궤를 같이 한 조선 군주들의 영욕의 삶을 회고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그들을 통해 청산하지 못한 갈등의 골을 청산하고 화합과 단결로 계층의 벽을 뛰어 넘는 것이 남겨진 자의 숙제가 아닐까? 차원이 다른 폭 넓은 시각을 제공하고 더불어 생각거리를 남겨 준 신선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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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그들도 인간이였다. 동북아 3국 즉 중국, 한국,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왕조국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 국가의 왕조 중 한국의 왕조만큼 오랜 기간을 이어온 왕조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이 특징은 전 세계사를 통틀어서도 마찬가지다. 천년의 신라역사, 고려 9백여 년, 조선왕조 5백년 등 실로 막강한 왕조의 나라였다. 하지만 이 세 나라의 왕조는 조금의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가 왕조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라고도 본다. 중국의 왕조는 삼국 중 가장 절대적 권력의 왕이였다. 천자(天子)라고 해서 그 권력은 백성과 신하 위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였다. 그러다 보니 역으로 반역을 키워 온 온상이기도 해 긴 역사의 왕조는 존재하지도 못햇다. 일본의 경우는 중국과는 반대로 왕권(王權)보다 신권(臣權)이 우위에 있어서 왕은 이름 뿐 이여서 신권에 의해 언제든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한국의 왕조들은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이 줄다리기 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명목상으로는 백성과 신하위에 엄밀하게 왕권(王權)이 존재했지만 조화로운 권력의 분배를 통해 서로의 권력을 유지 해 온 것이다. 때론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권력 불균형이 생겨 왕권(王權)이 무너지는 반역이 성공하기도 했고 권력의 한 축이였던 신하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왕권(王權)과 신권(臣權) 두 권력의 조화가 5백년에서 천년에 가까운 왕조를 유지 할 수 있었다.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조화는 결국 서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다면 그 속에 백성들의 안위는 그야말로 피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왕의 고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라기 보다 왕권(王權)과 신권(臣權) 사이의 줄다리기를 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왕이라면 어떤 마음이였을까? 이 책 [왕을 위한 변명]은 바로 그런 입장의 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왕이라는 권력의 상징으로써 그 권력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왕들의 인간적인 고뇌로 살펴본 시각이라 신선함이 있다. 조선시대 27명의 왕 중에서 10명, 태종, 세종, 세조, 연산군, 중종, 광해군, 인조, 영조, 정조, 고종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조선왕조 500년간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왕들이었다. 격동기의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아온 왕들이기에 그 인간적 고뇌가 얼마나 컷을런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기록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로 나타나고 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태종 / 형제인가 경쟁자인가, 세종 / 불교를 향한 염원에 담긴 뜻, 세조 / 한 세상 내 마음대로 원을 풀리라, 연산군 / 극도의 공포심이 빚어낸 이중성, 중종 / 저주를 혹신한 극단의 심리, 광해군 / 무엇이 천륜마저 저버리게 했을까, 인조 / 이복형 경종의 죽음 앞에서, 영조 / 만들어진 천재성, 정조 / 외롭고 고단한 황제, 고종 태종은 태상왕 이성계와 갈등을 겪으며 끊임없이 아버지의 애정과 신뢰를 얻고자 했다. 천운을 갖고 태어났다는 세종은 왕좌에 올랐으나 형제들에게는 경쟁자였다. 세조의 불교를 향한 염원은 원인 모를 병이 원인이었고,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빙의로 무병을 앓았다. 신하들을 이용해 권력의 중심에 섰던 중종은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숨겼던 본심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냈다. 광해군은 자기 확신과 포용력 그리로 용인술이 부족한 왕이었다. 존명사대의 틈에서 실리를 찾으려 했던 인조는 소현세자의 죽음에 고개를 떨구었다. 국왕으로서 영조의 일생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일생이었다. ‘천재 임금’으로 성장한 정조의 뒤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태교와 최고의 교육환경이 있었다. 고종은 을미사변 이전까지는 항상 누군가에 의지해 살았다. [왕을 위한 변명]을 통해 살펴 볼 때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한 인물 특히 왕에 대한 고찰은 많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 심정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부분을 상상하고 억측하고, '인간 통찰'이라는 미명으로 채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역사의 주체는 역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넘어선 특별한 인간 이상의 왕은 아니였다. 절대권력 그 속에 담긴 무시무시한 비인간적 요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외교, 신하, 부모, 형제들과의 사이에서 고뇌하며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 왕들. 그런 왕들을 오히려 다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되어 따스한 미소가 머문다. 역사는 결국 사람의 삶에 대한 기록이며 그를 통해 미래의 희망을 마련하는 기틀이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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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만백성들의 어버이, 그들은 행복했을까? 이 책에서는 말한다. 그들도 임금이며 군주이기전에 한 인간으로 고뇌하고 불안에 떨며 무언가를 갈구하는 존재라는것을~ 모든것을 다 가졌기에 행복할듯 싶던 그들에게도 불행은 찾아오고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여 애증을 품고 있는것을 보며 많은 권력을 가졌다고, 물질을 가졌다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는것을 새삼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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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란 존재는 참 특별하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한 나라에도 하나의 왕만 존재할 뿐이다. 왕의 그림자는 함부로 밟아서도 안 된다. 그렇기에 왕은 높은 자리에 있는 존재,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로 왠지 막연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이들도 왕이기 전에 무수한 감정을 지닌 사람이다. 인간이기에 우리와 똑같은 고뇌를 가졌을 왕들의 모습. 『왕을 위한 변명』은 평소 알지 못했던 왕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상왕 이성계에 있어서 태종은 아들이 아니라 미움과 복수심의 대상이었다. 와병을 틈타 방석과 방번을 죽이고 권력을 빼앗겼으니 배신감이 컸으리라. 태종의 이야기에서는 아들에게 복수하려는 이성계와 아버지를 견제하면서도 애정과 신뢰를 확인하려 애쓰는 태종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편 세종의 이야기에선 오히려 세자 양녕에게 더 눈길이 갔다. 태종은 세종을 자신의 분신처럼 느끼며 다른 아들보다도 편애했다. 특히 세자 양녕은 학문이 뛰어났어도 늘 세종과 비교 당하였고 아버지, 선생님들까지도 세종만 칭찬하였기에 심한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도 문제지만 형제와의 비교는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황음무도한 왕으로 비판받는 연산군 편에서는 ‘흥청망청 논다.’ 또는 ‘흥청망청 쓴다.’는 표현의 유래를 알 수 있었다. 흥청은 공식적으로 기생이었는데 연산군은 특히 가무실력과 미모가 뛰어난 기생들을 좋아했다. 처용무를 광적으로 좋아해 직접 처용탈을 쓰고 춤을 추기도 하였는데 이는 단순히 즐기기 위한 예술이 아니라 어머니 폐비윤씨의 원혼이 빙의되는 원혼의 굿판이었다고 한다. 책의 저자는 연산군의 어른이었고 왕이었기에 비록 답답하고 힘들지라도 상황을 균형적으로 파악하고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참 안타깝고 씁쓸하다. 물론 연산군은 많은 사람을 죽였고 왕이면서도 그 책임감을 다하지 못했으니 좋은 평가를 받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왕이란 위치를 떠나 책의 제목처럼 왕을 위한 변명을 해보고 싶다. 어른이라는 것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발현되는 힘은 아닌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차곡차곡 여러 가지가 내재되고 축적되어야 비로소 어른이 되었을 때 다른 일을 하기 위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연산군은 어렸을 때부터 그 넓은 궁에서 폐비윤씨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형식적이고 냉정한 시선만을 받고 자랐다. 그런데다가 후에 자신의 어머니가 사사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연산군은 그냥 차라리 백성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인으로 살아갔다면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고 만다.
연산군 다음으로 왕이 된 중종은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다. 특히 반정 3대장 중에서도 박원종을 두려워했는데 그의 강압에 의해 강제이혼하고 강제혼인까지 하게 되니 왕이란 자리도 자신의 의견대로 마음대로 하는 자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기억에 남는 왕들의 이야기로는 광해군이나 정조를 들 수 있는데 광해군의 경우 저주를 혹신하였기에 복동이라는 사람을 단골무당으로 삼아 의심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물었다고 한다. 정조는 가족들의 무한한 애정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을 알 수 있었다. 사극에서도 접하기 힘들었던 조선시대 왕실 태교에 대한 내용이라든지 산실 설치의 과정, 해산 후의 뒤처리가 제법 자세하게 나와 있어 흥미 있게 읽었다. 무엇보다도 정조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한 영조의 모습에서 손자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덩달아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때로는 부자관계, 때로는 형제관계 등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여러 감정들을 보여주었던 조선 왕들의 모습.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저절로 주어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왕을 위한 변명』은 인간으로서의 모습에 좀 더 가깝게 다가서고 알게 해주는 다리 역할이 되어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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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변명 그동안 조선시대 왕들의 음성을 책을 통해 들어왔는데 [왕을 위한 변명]은 분명 다른 목소리였다. 저자는 그들이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얘기들을 낱낱이 들려주고 있었다. 몰랐던 부분들도 많았고 다소 충격적인 부분도 많았다. 저자가 얘기한 10명의 왕(태종,세종,세조, 연산군, 중종, 광해군, 인조, 영조, 정조, 고종)들 중 기억에 남는 임금은 태종, 세종, 인조, 영조였다. 태종을 생각하면 형제들을 무참히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내면에도 우리가 몰랐던 부분들이 많이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효를 중요한 가치관으로 생각할 줄도 알았고, 주자학의 대가였고, 왕들중 최초로 과거에 급제한 능력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왕자의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아버지가 적장자를 버리고 서자를 세자로 세웠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방석을 세자로 세웠을때 태종은 이성계에게 버림받았다는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 방석이 왕이 된다면 자신의 목숨은 어찌 될지에 대해서도 고민했을 것 같다. 결국 태종은 권력은 잡았으나 부모형제를 잃게 된 셈이었다. 이성계는 이런 태종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아버지에겐 인정받지 못한 왕이었다. 태종이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 행복했는지 묻고 싶다. 세종대왕 부분은 내가 알고 있던 세종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비춰지고 있다. 충녕은 노력 못지않게 하늘의 운도 따라 주었다. 충녕은 7개월 만에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끔찍하게 받았다. 그에 반해 양녕은 7살이 될 때까지 외가에서 따로 길러졌다. 그랬기에 양녕은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충녕은 많은 사랑 속에 완성된 인격으로 자라나지만, 양녕은 그러질 못했다. 부왕의 사랑은 늘 충녕이었고, 양녕은 아무리 노력해도 충녕을 따라가질 못했다. 동생과 늘 비교 당하는 양녕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래서 더 밖으로 돌지 않았나 싶다. 결국 방황 끝에 세자자리에서 쫓겨나게 되고 드디어 충녕이 그 자리에 앉게 된다.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보여주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부분이다.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인조. 인조하면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청나라에 치욕스러운 삼배구고두를 하였고, 아들 소현세자와 며느리까지도 죽음에 몰아넣은 왕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앞날을 보지 못하고 존명배청 사상만을 앞세워 나라를 망친 왕이었다. 그런데 그런 왕도 왕이 되기 전 능양군 시절에는 총명하고 용맹하다고 평판을 얻은 사람이었다. 동생이 역모 죄로 죽기 전에 살리려고 백방으로 노력도 하였고, 그 이후에 광해군에게 받을 탄압의 공포스런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우려 생각했다. 반정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뛰어난 통솔력으로 지도하며 드디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가 왕이 되어 잘못한 것은 '존명사대'가 현실적으로 전혀 도움이 안되었는데도 붙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결국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에 소현세자는 볼모로 청나라에 가게 되고, 아버지와 다른 사상을 갖게 된다. 그런 소현세자가 인조는 부담스러웠을지 모른다. 청나라에서 돌아온 직후 독살을 당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몸이 안 좋은 상태였다. 결국 소현세자는 병으로 죽게 되고 그 책임은 인조 자신에게도 있게 된다. 인조 존명사대만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소현세자 볼모로 잡혀가지 않아도 되었고, 우리 백성들도 호란을 겪지 않아도 될 터였다.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분명 조선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영조 연잉군(영조)이 누렸던 그 모든 것들은 경종의 몫이었다. 그러나 경종은 어머니 희빈 장 씨의 악행 때문에 숙종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양녕대군도 그랬지만 사랑받지 못한 자녀가 어떻게 되는지를 경종도 보여주고 있다. 경종이 감성이 예민한 청소년기를 암울하게 보내는 동안 연잉군은 부왕과 숙빈 최 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영조가 태어나기 전 받았던 그 깊은 사랑을 경종은 모두 뺏긴 셈이었다. 숙종 사후 결국 경종은 위태스럽게 왕이 되었지만 스스로 마음의 병에 걸린 것 같다. 경연도 열지 않았고, 숙종 초상때 곡도 안했고, 제사도 직접 지내지 않았다.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조차도 사랑을 받을 수 없어 세상 혼자 남겨진 채로, 조그맣게 마음 둘 자리도 내어주지 못한 숙종에 대한 원망 때문에 그랬으리라. 경종은 독살을 당하는데 그 배후에는 영조가 있었다. 그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생동안 그 자신은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결국 태평성대라 알고 있던 영조시대는 자신이 행한 일 때문에 일생 마음의 짐을 지고 좋은 정치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굳이 경종에게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영조의 마음이 조금은 급하지 않았나 싶다. 어차피 경종이 죽으면 왕의 자리는 영조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왕 누구나 왕이 되고 싶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리에 오르고자 애를 썼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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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변명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천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다. 지나가버린 역사에 대한 후대들의 해석은 좌가 될 것인가 우가 될 것인가? 한 시대를 풍미 했던 조선왕들에 대한 변명이 여기서 시작이 된다.
김영사에서 출간 신명호 박사님이 지으신 왕을 위한 변명. 한시대의 최고의 권력자로 자리를 차지하였던 조선의 왕들의 억울한 사연들을 왕의 입장에서 자기 합리화를 토로하는 책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왕들의 이미지를 벗어나 조금은 인간적인 조금은 사적인 견해가 들어간 역사의 다른 면모를 읽을 수 있다. 그들이 억울하다 말하는 그들만의 이유를 이 책을 통하여 알아 볼수 있다.
왕을 위한 변명에는 총 10인의 왕들이 출연한다. 조선왕조 시작의 정점이었던 태종부터 실질적인 마지막 왕 고종까지 그들의 변명을 들을 수 있다. 보통 역사책은 조선왕조실록만을 바탕으로 지어졌으나 왕을 위한 변명은 신명호 박사님의 넓은 지식과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구성이 되어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가 쉽게 지날 갈수 있는 작고 세세한 부분까지도 알려주고 있어서 더욱 이해력이 쉽고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10인의 왕중에 가장 눈에 띄는 왕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연산군이 아닐까?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연산군의 이미지는 방탕하고 왕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의 행위를 해본 조선 유일무이의 왕. 그리고 패륜까지 저질렀던 연산군에게는 어떠한 문제와 변명이 있었을까? 그냥 어머니의 죽음 모르고 살았더라면, 조금만 더 깊은 모성애를 느낄 수 있었더라면 연산군이 그렇게까지 되었을까? 연산군의 성적인 문제는 아마도 모성애에 대한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을 통하여 왕위에 등극한 인조의 삶은 어떠한가? 어릴 적부터 죽을지도 모르는 암울한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왕위에 올라서는 내부로는 반정공신에게 외부에서는 청나라에게 시달림을 당해야 했던 인조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그의 내면의 두려움이 결국 소현세자를 죽게 만들 것이 아닐까?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왕이 되고 싶었을까?
과거의 일들에 대해 후세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면 에서 해석을 더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흘러간 역사는 다시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왕권이 강화 되었을 때나 아니면 신하들의 권력이 강력해졌을 때나 권력의 최고 위치에 있었던 왕들의 변명에는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대통령들의 문제는 과거를 통해서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은 그들만 알겠지만, 평가는 후세들이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거를 통해 이 시대를 평가하고 싶다면 신명호 박사님의 왕을 위한 변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우리는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
![]() 매일밤 나를 역사속 왕들의 삶을 보여주며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사실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책중 흥미위주의 미스테리물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적인 왕들의 고뇌.그들의 아픔을 느낄수 있어서 손을 놓을수가 없었다. 책의 두께도 있는 편이라 언제 다 읽을꼬...하며 밤마나 조금씩 조금씩 읽었었다.
책은 조선시대 왕들의 연도순으로 나온다. 태조,태종... 이성계의 아들이자 태종 이방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의 고통이 참 많이 느껴졌었다. 판단력이 흐려진것 같은 아버지를 누르고 왕이 되어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고 아버지의 위신을 지켜낸 이방원은 이복동생들 또한 자신의 살고죽음에 해가 될것을 알고 죽일수 밖에없는 모진 면을 보인다. 이 모든것이 정치적 세=목숨과 연관되는 왕이라는 자리때문이었으려니....
숙종의 인정을 못받고 무시당하던 경종(장희빈의 아들)을 누르고 황이 된 영조가 경종의 제사에 와서 형에 대한 연민을 표현한 기록에서는 마음이 짠하고 영조의 진심과 그의 덕이 느껴졌었다. "아, 오늘이 어떤 날인가? 우리 형님의 제삿날이다. 아, 내가 이전에 지은 술편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형님의 지극한 우애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오늘까지 살았으랴'라고 . 이런때를 만나고 이런 처지를 당하고도 내가 오늘까지 살수 이었던 것은 누가 준 것인가? 모자란 덕으로 30년간 국왕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것은 형님이 주신 것이다. 60이 넘어 자식의 도리를 마칠수 있었던 것도 형님이 주신것이다. 아련히 오늘에 이르러 나라의 경사를 본 것도 형님이 주신 것이다. 형님이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으리요? 형님이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으리요."(영조지음 감회) p329 ![]() 영조가 그렇게 정성을 드리고 혜경궁 홍씨가 마음태료를 해서 얻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정조에 대한 일화를 읽으면서도 엄마의 덕, 가족의 정성이 사람을 곧게 만든다는것을 느낄수 있어서 좋았다.
왕들의 인간적인 모습...그리고 인간적으로 안됐다...하며 느끼며 책을 읽었었다. 책을 읽는동안 내내 조선시대를 둘러보는듯한 착각도 있었고 무척이나 즐거웠었다. 그들의 고뇌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존재나 했을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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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 장단점이 자신이 타고난 천성적인 여건으로 인한것이든 자라온 환경으로 인한 여건으로 인한것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은 극대화시키고 단점을 극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리라....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러한 삶의 이야기가 왕이라고 해서 다를까. 이 책은 '왕'으로 알려져있는, '인간'이기 전에 '왕'으로 살아야 했던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보면서 이들의 치세를 알아보고 있다.
왕자의 난을 거쳐 원하던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아버지인 태종과의 불화로 인해 끊임없이 속앓이를 해야만 했던 태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군으로 불리우는 세종대왕이지만 위로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을 제치고 왕이 되었던 세종의 형제애는, 그리고 대군들의 형제애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카인 단군을 폐하고 끝내 죽음까지 몰아넣으면서 왕이 된 세조가 유교의 나라인 조선에서 불교에 그리 집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시대 대표적인 폭군인 연산군을 그리 만든것은 진정 무엇이었으며 그가 폭정을 통해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까? 연산군으로 인해 항상 마음 조이며 살아야 했던 진성대군이 반정에 의해 중종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거쳐 그는 과연 어떤 심리상태에 있었으며 이러한 심리가 그의 인생에서, 그의 시대에 미친 영향은 어떠하였을까? 현 시점에서 실용주의 왕으로 재평가되는 광해군이긴 하지만 결국 저주와 같은 미신에 대한 믿음은 진정한 자기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결국 자신의 덫이 된 것은 아닐까? 대의명분으로 반정을 하고 왕의 자리에 앉은 인조는 그 대의명분때문에, 그 틀에 갇혀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자 했기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 자식까지 버린 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수리라는 천한 출신의 어미를 가지고 있다는 자격지심에, 형을 살해하고 왕이 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에 평생을 결백을 주장하며 살아왔던 영조는 과연 아무런 야망도 욕심도 없었던 것일까? 아비의 원통한 죽음과 수많은 도전을 받으며 자라야 했지만 결국은 왕의 자리에 올라 조선후기 르네상스시대를 이끌었다고 칭송받는 정조가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닐터...그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조선말, 일제 강압기 시절 왕이었으나 왕이 아니었던 고종...그 어느시대보다 왕으로써의 결단력과 실행력이 필요한 시기였지만 자기 한 몸을 책임지기에도 힘에 부쳐하던 고종이 꿈꾸던 개혁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렇게 모두 10명의 왕을 통해서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그들도 인간이며 가정이 평안해야 모든 것이 평안 할 수있다는 것이 아닐까싶다. 왕도 인간이기에 부모 자식간의 관계, 형제간의 관계뿐 아니라 가정분위기도 무시하지 못할 터... 하지만 결국 우리 인간 모두가 '결점'을 가지고있고 그 결점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가가 우리 인간에게 남겨진 숙제라는 관점에서 다시 그들을, '왕'들을 바라본다면 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의 모습도 뒤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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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같이 5백년 역사의 왕조가 유지된 나라도 매우 드물다고 한다. 중 고등학교 시절 국사시간에 배우고, 성인이 되어 TV속 역사드라마를 보면서 단편적으로 느끼는 점은 미리준비하지 못하고 우리나라는 왜 저렇게 다른 나라의 침략만 당하며 백성들을 고생시키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명분을 쌓기위해 각 계파간 갈등이 계속 되는 모습을 보아왔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이 너무 명분쌓기에만 열중하지 않았나라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사람이 살고있는 곳에 갈등과 분쟁이 있기 마련이고, 그 와중에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이땅을 지키고 기틀을 마련해준 지켜온 선조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책을 읽으며 자기자신,가정,국가에 대한 왕들의 해결방법과 27왕중 소개된 10분의 인간적인 고민과 생각을 엿보면서 ' 과연 내가 왕 또는 신하였다면 어찌했을까' 라는 생각으로 접근해보았다.
먼저 태종임금은 정식으로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당당하게 합격한 유일무이한 왕이었고, 1차, 2차 왕자의 난을 겪으며 운명이나 신비주의보다는 철저하게 현실을 중시하는 왕이었다. 아버지인 태조임금에게 진정으로 애정과 신뢰를 받기 원하여 중국 요순시대의 제왕학의 비결인 책문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였으며, 그 내용을 보면
'인심유위 (人心唯危) 도심유미(道心唯微) 유정유일 (唯精唯一) 윤집궐중 (允執厥中)의 16자인데 인심유의란 인심 즉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다 는 뜻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의 마음은 마치 갈대처럼 위태위태하다는 뜻이며, '도심유미'는 감정을 넘어 '도의 마음', 즉 '내안의 이성'을 찾으려해도 잘 찾아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위태로운 마음을 잘 살펴서 위태함에 빠지지 말고, 잘 찾아지지 않는 내 안의 이성을 찾아 꽉 붙잡아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정유일 윤집궐중'은 그렇게 하면 곧 자기스스로 중심이 세워져 세상 사람들의 기준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안의 이성을 찾아 중심을 잡고 세상의 기준까지도 제시할 수 있는 마음공부, 그것은 바로 중용의 가르침이었다. 내 안의 이성이 나 스스로 중심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기준까지 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이성을 부여했다. 그래서 내안의 이성은 나를 넘어 하늘로까지 확대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유한함의 허망함이나 두려움도 넘어설 수 있다는 뜻이다.(본문 32~33쪽) 아버지의 신뢰와 애정을 이복동생에게 빼앗겼고, 아버지께 버림받았다는 상황을 위 문장을 되새기며 이겨내지 않았나 싶다.
연산군은 친어머니가 아닌 정현왕후 윤씨는 물론 부왕인 성종과 할머니 인수대비 한씨에게 띠뜻한 정을 느끼지 못했고, 폐비 윤씨가 자신의 생모라는 사실과 어떻게 죽었다는 사연을 안 후 가족들이 자신에게 왜 냉정했는지 깨달았을 것인데, 이 충격으로 나중에 더욱 흉악한 폭군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역사적으로 폭군이 된 사실은 지울 수 없는 불행이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책임은 분명 혼자만의 짐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우리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청소년 문제만 보더라도 부모의 무관심과 폭력으로 인해 가난과 폭력이 되풀이되고 있지않은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후금을 무시하고 '존명사대'의 명분으로 현실적기반은 없는 상황에서 대의명분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는데, 광해군의 경고인 '적들이 말을 타고 들어와 마구 짓밟는 날에는 이들을 담론으로 막아낼수 있겠는가? 붓으로 무찌를 수 있겠는가? 라는 냉정한 현실감각이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잡은 지금의 상황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특히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에 대해 혹시 청나라가 인조를 폐위하고 소현세자를 왕으로 옹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과 조선을 배신하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품었는데 종묘사직을 지키려는 마음과, 전쟁을 통해 몸과 마음이 무척 지쳐있을 거란 생각에 참으로 힘겨운 왕정을 유지하지 않았나 싶다.
끝으로 정조임금은 어린시절 할아버지인 영조임금의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자랐으며 , 민우수,남유용 두 보양관들은 세살쯤 부터 바른말, 바른 행동, 그리고 바른 감정표현을 하도록 가르쳤으며, 어린 정조가 혹 밥을 먹으면서 흘리거나, 혹 말을 거칠게 하거나 또는 행동을 거칠게 하면 좋은 말로 타일 렀는데 어렸을때부터 노숙한 보양관들의 훈계를 듣고 고치기도 하고 또는 언행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좋은 면만 보고 바른게 동화되지 않았을까? 이외에도 훌률하신 세종대왕과 중종, 영조, 고종 등 거론되지 않은 임금들이 많이 있으나 그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한다고 해도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은 과정과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을까 라는 반문을 스스로 해본다. 나의 주장이 너무 강하지는 않는지 내 가족을 비록하여 주변사람에게 사랑을 듬뿍 전하고 있는지 말이다.
왕들의 어린시절을 보며 제대로 교육은 받았지만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과연 삶의 여유가 있었을까 라는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역시 우리 조상들의 역사를 보면 살아온 시대는 다르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좋다. 바로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