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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분노와 욕망, 그리고 고통을 인정 할 수 없어, 아니 그 근원을 찾을 길 없어 우린 내내 방황합니다. 삶과 죽음의 부조리에 대해 어디에서도 그 해명을 구하지 못합니다. 청안스님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감정에도 변화가 생기는 일이 한꺼번에 닥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일어나는 것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린 이제 방향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지식일 뿐 행동하지 못합니다. <마음 거울>은 유럽 각국의 선원(禪院)에서 청안스님과 선원 학생들 간의 대화를 통해‘승산 선사’의 명상과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겪는 삶의 괴로움은 어디에 연원하는 것일까요? 생로병사(生老病死),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덜한 고통인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원하지 않는 것을 갖게 될 때, 싫어하는 이와 함께 할 때, 좋아하는 이와 함께하지 못할 때”에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찾고, 명상을 하지만 이 고뇌의 윤회를 끊어내지 못합니다. 명상을 하지만 온갖 생각으로 어지럽기만 합니다. 생각의 생각에 꼬리를 무는 내면의 목소리들이 번잡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의 목소리가 우리 자신이 아님을 현대의 지식을 가진 우린 알고 있습니다. 선불교의 깨달음은 무의식과 주체의 상실을 이야기하는 오늘의 철학과 닮아있죠. 나, 나의, 내 것 등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 할 때 집착하게 됩니다. 이 집착의 고리를 끊어내고 ‘내가 없다’, 즉 나는 ‘모른다’를 깨우쳐야“아무것도 깨달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비로소 절대적인 지식이란 깨달음에 이르게 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와 이 우주가 완벽하게 하나로 연결됩니다. 나와 너, 나와 사물, 나와 자연이 하나일 때 우린 삶과 죽음의 부조리에서 해방됩니다. 영혼의 평화와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삶이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청안스님의 가르침은 바로 이러한 깨달음의 길로 향하는 명상의 방향을 설법하고 있습니다. “명상은 몸을 움직이거나 말을 하거나 마음가짐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길이 없습니다. (중략) 반야심경에 따르면 길도, 인식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명상입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일들은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순간은 쉬이 오지 않습니다. 우린 깨달으려는 조급함이란 생각,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의식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행동과 자신이 별개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분별하는 마음이 발생하여,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에 이르고 맙니다. 이윽고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분노와 욕망, 무지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면 더 이상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면서 (탕!)바로 이 상태로 돌아옵니다.” 바로 깨달음의 그 상태! 인식의 대상이 되는 명색(名色;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결합된 상태)은 왔다가 사라집니다. “살아있는 일은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중략)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우리 것입니다. 매순간 우리는 어떤 쪽으로 가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받아 들여라’깨끗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보이는 것, 존재하는 그대로 따르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의 고통을 겪지 않게 됩니다. 청안스님의 이들 가르침에서 우리가 그토록 안달하는 삶의 실체를 보게 되고, 그 욕망과 무지의 사슬을 놓아버리는 길을 발견하게 하여줍니다. 책을 읽는 동안 어쭙잖은 지식의 오만이란 어리석음을 깨닫습니다. 잘난 사변적 사고가 부끄러워집니다.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있어 외면했던 선(禪)에 대한 무지(無知)를 파란눈의 서양인, 청안스님에게서 깨우칩니다. 고통을 깨우치고 진정한 지혜를 얻게 해주는 위대한 선택의 가르침에 겸허의 절을 올립니다. “사람들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붓다(여기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불멸의 진리)를 알고 싶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비추어 관할지니 일체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 되었느니라(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화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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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음 거울'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유럽의 여러 나라 에서 열렸던 법회에서 이루어진 법문을 모아 만든 책이다. 저자는 스승이 할일은 배우는 이의 마음을 거울에 비춰보는 것처럼 보여주는것이라 말한다. 의문이 발생하고 그에 맞는 답을 찾는 과정 속에서 의미가 있는 가르침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청안스님은 한국 불교 역사상 최초로 지도법사 자격을 가진 헝가리스님 으로 ‘한국의 달마’라 지칭되는 숭산 큰스님의 제자다. 지금은 조국 헝가리에 ‘원광사’란 사찰을 세우며 선(禪)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삶이 아름다운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원하는 삶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또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선(禪)은 인류문명사에 큰 자취를 남기고 있다. 지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목받고 있는데, 이 선을 처음 중국에 전 한 분이 달마선사다. 달마를 스승으로 깨달아 마음의 평안을 얻은 혜가, 뒤이어 승찬, 도신, 흥인이 선법을 전하여 6조 조계 혜능에 이르러 선종은 천하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나 하나의 마음이 깨끗해지면 세상이 하나가 된다’는 숭산 큰스님의 ‘세계일화(世界一花)’ 사상을 몸으로 펴가는 청안스님은 세상의 많은 의문 중에서 사는 것과 죽는 것, 오고 가는것, 좋은 것과 나쁜 것, 고통과 깨달음을 넘어선 인간의 진정한 본성을 찾는것이 그 목적이라고 강조하며 이 책안에 그가 생각하는 것들을 제자들의 의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 인생의 갈림길에 서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막막해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깨달음은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든 마음의 평화를 얻어 보려는 노력이다.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게 되는 어려운 질문들에 대하여 답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책으로 종교적인 색을 띠긴 하지만 자신이 가진 종교와 상관없이 읽어도 좋을책이란 생각이 든다.
간만에 한국을 찾은 그에게 ‘가슴에 꽂고 사는 딱 한 구절’을 물었다. 그는 영어로 “What are you?”라고 답했다. 당신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나는 무엇인가’란 화두였다. 당신은 무엇인가? (What are you?) (‘이뭣고’라는 선(禪)불교의 화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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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청안 스님이 근래에 유럽에서 강의하신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앞부분은 한글해석이 뒷부분은 영어 원문이 실려 있다. 전작인 '꽃과 벌'처럼 앞부분에는 강의가, 뒷부분에는 즉문즉답의 형식이 아니라 대부분의 내용이 즉문즉답이다. 이런 식의 강의는 때로는 두서가 없고 산만해 보이지만 때로는 정말로 마음에 와 닿는 답을 얻기도 한다.
종교서적을 읽는 방식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책 한권을 읽고 난 후 단 한줄의 문장만 내 머리 속에 남아도 그 책은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머리 속에 남는 문장은 그동안 살면서 가졌던 의문점에 대한 답이나 아니면 어렴풋이 느꼈던 것들이 책속에서 선명하게 드러 나는 문장이다. 물론 책을 읽을 때마다 나의 상황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이 달라 질 것이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질문은 '삶에서 기대하는 것'이다. 스님의 답은 '죽음'이다. 요즘 나 스스로 기대와 좌절 속에서 헤매고 있었기에 그 답은 정말 마음에 와 닿는다.
10년마다 일어나는 경제위기, 아이들의 성적- 내가 아무리 열심히 현실적으로 계획하고 노력해도 과연 이루어지는 것은 얼마나 될까? 결국 인간이 우리 삶에서 완벽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포기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 할 뿐.....
What do you expect from life?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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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엔 스님들께서 쓰신 수필집을 즐겨 보는 편이었는데 직장생활하면서는 경제,경영과 관련된 책이 아니면 자기계발과 관련된 책을 주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만에 스님께서 쓰신 법문집을 읽으면서 평소에 ’내가 왜 사는가?’등에 관한 의문도 없이 그냥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기억에 남는 구절, p.158]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받아 들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 앞에는 ’완전하게 수행하는 삶을 살고’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수행에 집중하면서 살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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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러가지로 환경이 바껴서인지 마음도 왠지 불안하고 쉽사리 안정이 되지 않던 차였다 이런 마음은 약간의 의욕저하와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 헌데 때마침 읽고 있던 책이 <마음거울>이었다 제목만 들어도 마음이 깨끗하고 정갈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마음거울>이라는 제목은 맘에 들었지만 내용까지 마음에 들런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실 난 숭산스님도 청안스님도 처음 들어봤다 그저 아는 스님이라고는 너무나도 유명하신 법정스님, 성철스님, 외국인으로 스님이 되신 현각스님 정도를 알 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숭산스님이나 청안스님에 대해서는 모를 수밖에...... 게다가 개인적으로 종교가 없는터라 기독교나 불교 같이 종교를 담고 있는 책은 조금 꺼려졌다 그래도 요며칠 심란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펴들었다
<마음거울>은 숭산스님께 가르침을 받고 출가한 청안스님이 유럽 각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선"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스님이 쓰신 책이라 불교적인 내용으로 가득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과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이 쓰여 있어 위로가 되었던 듯 하다 카르마나 다르마와 같은 특정 용어에 대해서는 책을 읽었음에도 완전하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내게 카르마와 다르마에 대해 설명해 달라 하면 우물쭈물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어렴풋이 이것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다기보다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마음거울>을 통해 청안스님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선수행"이다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수행"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안스님은 "수행"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수행을 하기 위해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필요하고, 나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어떻게 보면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실행하지는 못한다 그러기에 "나의 마음이 깨끗해지면 세상이 하나가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청안스님이 위대하신 것을 아닐까 그러나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청안스님은 누구나 수행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말씀하신 것을 말이다
<마음거울>은 특이하게 영문원고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불교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을 생각해서였을까? 그러고보니 서양인들 중 불교에 관심이 가진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점에서 헝가리에 유럽 최초의 한국식 사찰 "원광사"를 짓고 불교를 포교하는 청안스님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단번에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뭔가 해결되는 느낌이 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또 읽고 곱씹어 생각하다 보면 답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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