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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에는 왠지 모르게 순수하고 투명한, 그리고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 세심한 관찰력을 가진 작은 어린 여자아이의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네들의 삶과 세상이 그녀에게 모두 들켜버린 것 만 같은 그런 수치심 때문일까?
작품 어디에도 빈 수레들의 큰소리가 없다. 소란스럽지 않은 나지막한 소리에 거절과 두려움, 상처와 슬픔, 불안과 균형, 삶의 깨달음이 실려 있어 더 없이 그 이야기들의 진지함에 동화된다. 이렇듯 8편의 소설 모두에서 삶의 그 우연함과 몰염치함의 부조리에도 항상 평온이 깃들어 있고, 측은함과 연민이 애틋하게 배어있음을 본다.
![]() “크게 되는 것만은 나의 의지였으니까.”라는 엄마의 중얼거림에서 삶의 자유로운 평화를 보는 것처럼, 출생과 성장의 비애로만 비추어지는 불쾌한 세상의 이야기들로 뻣뻣해져오던 몸이 이미터 사십 센티가 되어버린 엄마처럼 시원한 기분을 맞이하게 된다. 나와 엄마에 퍼진 그 훈기의 편안함이 그 모녀만이 아닌 나에게까지 전해져 오듯이. <나를 위해 웃다>
세상을 제 정신만으로 바라보는 것이 힘겨운 사람들, 사랑과 상실의 외로움으로 정신의 결을 반대 방향으로 바꾸는 사람들, 거절당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뒤 서서히 소모되어온 사람들, 꿈꾸지 않기에 적당히 살아 갈 수 있는 사람들, 삶 어딘가 늘 텅 비어버린 듯한 체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먼 길을 돌아와 비로소 가야할 길을 깨닫는 이들의 모습에 보내주는 그 따뜻한 기대와 긍정의 기운이 우리네 마음에도 어느덧 깃들게 한다.
“남자들이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새벽. 죽고 싶을 때마다 대신 바라보려고 손목 아래 그려놓은 빨간 점선”을 내려다보는 세상 밖에선 그녀들의 두려움을 정말“선명한 정신으로 바라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손을 내밀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고 덥석 물어버리는 쪽에 언제나 마음이 더 끌”리는, 사람에 대한 그 이해와 관심이 너무 소중하고 탐나기까지 한다. <아프리카> 한편으로 론 “열두 평짜리 임대아파트와 미뉴에트 선율”의 어색한 조화, “보석을 손에 쥐어보면 그 속에 뜨거운 불길이 갇혀 있다”와 같은 일상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성찰이 어디에까지 이르는지 보는 것 또한 분명 기분 좋은 독서에 일조한다.
위태로워 보이던 가족의 그 평범함에서, “품위”를 되뇌는 아버지의 자전거. 그리고 매연이 이는 거리와, “그 뒤에 앉은 엄마를 떠올릴 때면, (중략) 그게 아주 균형 잡힌 춤처럼 느껴지는”주인공의 시선에서 소중한 그 무엇들이 행복한 슬픔으로 남겨진다.<댄스댄스> 젊은 작가의 시선이 그리 녹록치 않다. 세상을 깊고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 엄숙하다고까지 할 성찰에서 깨끗하고 고귀한 품격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번잡함도 없다. 정면을 마주하고 오늘을 귀 기울여 듣고, 지금의 모습을 헤쳐 가는 그런 성숙함이 있다. 감히 만족스럽다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 모나지 않은 조용한 숨결 속에 예리함을 넘어서는 탁월함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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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마치 비도 쏟아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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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 웃다>를 읽으면서 영화 똥파리가 생각난 것은,'용서'라는 그 모호함 때문이었으리라... 세상에 입장 바꿔 생각하면 용서 못 할 사람이 없다지만,나는 아직도 그것이 쉽지 않아 종종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엄마는 헤어짐을 받아들였다.그리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랐다.그것은 믿기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기분이었다.그리고 이어지는 말,꿈속에서 엄마는 자신의 몸이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중략) 그것은 살고 싶은 마음이 들때마다 엄마를 가득 채웠던 성장이었다." 정말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 볼까? 그렇게 하면 내 마음도 가볍게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까? 가만가만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타인을 용서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웃기 위해 그리 할 수 있는 것일테니까...
스무 살 시절 김승희님의 소설 <33세의 팡세>를 집어 들었었다.그리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접어두었었다.그리고 서른이 되어 갈 즈음 다시 집어 들었던 그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공감을 했었는지 모른다. 그런가하면 요즘 잘나가는 어떤 소설가의 글을 이십대들이 주로 좋아한다는 그 이유를 이해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다시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이십대시절 그 작가의 글에서 용기를 얻었던 기억이 난다.<나를 위해 웃다>라는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이 든 것은,딱 이십대시절의 고민들로 보이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어서였나 보다.그러니까 공감은 가나 무언가 가슴으로 같이 느낄 수 없는 묘한 괴리감이 함께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분명 무슨 고민을 하는 지 알 것은 같은데,사춘기앓이를 하는 것 같은 그런 감정 밖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저자의 글은 담백했고,그래서 잘 읽혔다. 더불어 당신과 내가 하는 삶의 고민이 같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저마다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리고 꿈꾼다. 주머니 속에 아프리카를 통해서 언젠가는 첼로가 연주되는 농장을 통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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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생 올해 서른의 정한아 작가가 20대에 쓴 소설.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책을 다 읽은 후 작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엠돌’의 작가 단편소설은 읽을 때 참 좋은데 정리가 안 된다. 간단히 적긴 아쉽고 적다 보니 책 내용이 다 나오고 결론을 안 내리고 적으려니 자꾸 의문부호만 생긴다. (나의 실패작, 외할머니와 나이 차이가 16살이고, 유리창 속 분홍 불빛 집에서 일하고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일하고, 맛난 차를 마시기 위해 요리하고, 예전의 익숙한 의자를 찾으러 다니고, 품위를 잃지 않으려 하고, 중국에서 방수포를 팔고, 가짜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보는 시간들이 조용히 시작된다. 기부로 멋진 책을 주신 우주자키님 감사합니다. ^^ (2월의 기부 선물)
16살 외할머니에게서 태어난 5키로 60센티미터의 엄마는 생애 내내 성장통을 느끼며 2미터가 넘는 키로 농구선수가 되어 사연 많은 혼자만의 인생을 살고, 그녀를 위로하던 실업팀 농구감독은 오히려 그녀에게서 위로 받지만 아내의 병으로 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동시에 편안함을 느낀다. 나빴던 일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는 헤어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것은 믿기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32페이지 아프리카 어릴 적에 집을 나간 엄마, 한 달에 한두 번 찾아오다 재혼한 아버지. 11살 때 아버지와의 완전히 헤어지고 거리를 떠돌다가 청소년보호소와 자립센터에 있다 다시 거리로 나오고, 지금은 잔디공원 건설을 위해 영업금지법령이 내려진 구역에서 일하는 나. 처음 만난 아프리카 책 그리고 내가 본 화면 속의 그 여자. “골목이 다 무너지기 전에는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계획이 생길 때까진, 여기 있을 거야. 지금은 달리 갈 데도 없잖아.” 58페이지 첼로농장 그와 헤어지고 언니와 함께 간 터키여행을 갔다가 홀로 이스라엘의 협동농장 키부츠에서 일하는 나. 룸메이트 리사 같이 일하는 에밀리오와 유진. 보드게임을 즐기고 사해여행을 다녀온 그들은 각자의 길로 떠나고 남는다. 유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밤이 깊도록 음악은 멈추지 않을 거야. 그리고 누구도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을 거야” 91페이지 마테의 맛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다 달러 파동으로 동생을 잃고 돌아온 가족. 오전과 낮엔 스포츠센터에서 저녁엔 학원을 오가고 꿈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그녀. 마테 차를 마시기 위해 요리를 하는 아버지. 집에 가까워질수록 그녀는 졸음을 느꼈다. 오늘은 충분히 먼 길을 달려 제자리에 돌아왔으니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120페이지 의자 딸을 가진 안과의사와 결혼식을 앞둔 앤티크숍에서 일하는 나. 어릴 적 아픈 할아버지를 돌보던 할머니와 내가 앉았던 편안함과 부드러움, 기쁨 그리고 조금의 슬픈 느낌을 떠올리는 그 의자를 찾아 나선다. 마치 파랑새 같은 의자. 누구든지 그 의자에 앉아보면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는, 눈에 띄지 않는 나무의자였다. 148페이지. 댄스댄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지만 품위를 잃지 말라는 아버지, 조산으로 아이를 낳고 한동안 의식불명이었다 전화통신판매를 하는 엄마, 평범한 나와 수재지만 따돌림을 당하는 동생. 아버지가 좋아하는 라틴재즈 밴드의 음악으로 춤을 추진 못하지만 아버지가 운전하는 자전거 뒤에 앉은 엄마의 균형 잡힌 춤처럼 느껴졌다. 174페이지 천막에서 방수포를 생산하는 회사의 중국본사에서 일하는 그. 미국 대형 마트가 가격을 이유로 재계약을 보류하는데 동남아국가에 싸이클론이 덮치자 회사는 생활용품보다 구호용품에 더 신경 쓰고 감원이 결정된다. 왜 나보다 먼저 잠들지 않는 거야? 잠든 네 모습을 보려고. 그때 네가 낯설어 보여서 좋아. 낯선 게 왜 좋은데? 그때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거든. 205페이지 휴일의 음악 리서치 회사의 전화설문 일을 하고 평일만 유부남과 동거하는 나. 결혼한 언니. 요양원에 계신 어린 시절 같이 산 가짜 할머니. 내 삶은 늘 어딘가 텅 비어 있었단다. 나는 항상 내가 절름발이처럼 느껴졌어. 그런데 기억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이해가 돼. 구겨져서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23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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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제목의 정한아의 첫 소설집은 제목만큼 웃어줄 수 있는 작품들이 없다. 여고생이었던 외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태어난 엄마는 한없이 성장통을 겪는다. 오직 자라는 것만이 세상의 모든 소외로 부터의 보상인 듯 그녀는 한없이 자라난다. 나보란 듯이.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자라나도 사람들의 비정상에 대한 관심을 제외하곤 곧 그녀는 다시 소외된다. 2미터 사십센티미터가 되어 자신의 몸 안에 또 하나의 생명을 품게 되어 이제 세상에 혼자가 아니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그녀의 성장은 멈춘다.(표제작<나를 위해 웃다>)
서로의 슬픔을 감추고 위태위태하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가정의 구성원들은 너무나 대견해서 역시 마음 한쪽이 쓸린 듯 아파온다. 선풍기 앞에서 펄럭거리는 늘어진 메리야스, 낡은 청바지로 자존심 상하지 않기 위해 사는 붉은 벨트 등은 작가의 비현실적인 상상력과는 다르게 너무나 섬세하게 현실적이어서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슬픔을 위장할 수도 없게 한다.
젊은 작가다운 무한한 상상력에 놀라고, 젊은 작가답지 않은 삶에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눈에 또 놀라게 된다. 관심을 가져도 좋을 작가라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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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의 작가 정한아의 첫 소설집이다. 한 작가의 첫 작품을 출간과 거의 동시에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상큼하고 설레는 일임을 예전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었다. 불현듯 아프리카의 한 부족 이야기가 떠올랐다. 새 생명이 탄생할 때가 되면 부족 사람들이 모두 모여 산모를 둘러싸고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축복의 말을 외쳐준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 모두는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환영해." "우리는 너를 무척 기다리고 있었단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된 것을 축하한다, 아가야." 정한아 작가의 첫 소설집을 품에 안고 나는 마치 저 탄생 축하 인파에 섞여서 '축 탄생' 인사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안은 기분이었다. "첫 소설집의 탄생을 축하해요. 우리 모두 무척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설렘과 떨림으로 만나게 된 이 책은 제목도 참 예쁘다. '나를 위해 웃다' 웃는다는 것도 좋고,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웃는다는 건 왠지 멋쩍고 어색하긴 하지만 행복하다. 띠지의 환하게 웃고 있는 작가의 미소에 감염되어, 나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책에는 표제작 '나를 위해 웃다'를 포함해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여덟 편 모두 예상 외로 조금쯤은 우울하고 묵직하며, 어떤 묘한 상실감을 담고 있었다. 배 속에서부터 무서운 속도로 자라더니 세상에 태어나서도 끊임없이 자라는, 쑥쑥 크는 키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엄마가 있고('나를 위해 웃다'), 아버지의 등에 유리조각을 찔러 넣고 집을 나와 사창가에 몸을 담은 '나'가 있으며('아프리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지독한 상실감에 방황하다 이스라엘에서 노동 봉사를 하는 '나'도 있다('첼로 농장'). 나에게 관심 있는 줄 알았던 시간강사는 사실 내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구분을 못했으며('마테의 맛'), 결혼을 앞둔 여인이 오래 전에 처분해 버린 할머니의 의자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의자'), 평온한 듯 하면서도 위태롭고, 다시 평온을 되찾는 듯 하는 가정의 모습도 보인다('댄스댄스'). 중국의 직장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결국 귀국길에 오르는 남자 이야기와('천막에서'), 뇌에 이상이 생겨 어느 순간 과거로 돌아가버리는, 그 순간엔 현실의 모든 걸 잊고 그저 허밍만 하고 있는 할머니 이야기('휴일의 음악')까지, 모두 인생의 한켠에서 맛 볼 수 있을 듯한 절망과 상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괜찮다. 끝없는 좌절과 나락이 아니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을 그 뒤에 드리워주고 있으니까. 결국은 다시 웃을 수 있으니까, 나를 위해.
이 책의 이야기 속에는 외국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눈에 띄었다. '아프리카'에는 제목처럼 '아프리카'가, '첼로 농장'에는 이스라엘이, '마테의 맛'에는 아르헨티나가, '댄스댄스'에는 스위스가, '천막에서'에는 중국이 등장한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중심 무대인 경우도 있고, 주 무대는 아니지만 이야기의 중요한 줄기를 이루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잠깐잠깐 외국 풍경을 그려보며, 혹은 내가 갔던 곳을 그리워하며 슬며시 '세계 여행'을 하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특히 '첼로 농장'을 읽을 때는 정말 그런 봉사 프로그램이 있는지, 있다면 나도 가고 싶은데 내가 간다면 한국 생활은 어떻게 정리하고 갈지(-_-;) 꽤나 구체적으로 그 생각에 골몰하기도.(아직 진행중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정한아 작가가 그 아름다운 미소로 슬며시 일러주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을 덮으며, 나를 위해, 정한아 작가를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환하게 웃고 싶어졌다.(하지만, 한 시간 넘게 쓴 서평이, '피슝~'하고 꺼져버린 컴퓨터와 함께 날아갔을 땐, 울고 싶었다...) '첼로 농장'에서 만난 귀가 들리지 않는 할머니처럼, 온몸으로 리듬과 진동을 느끼며 음악을 느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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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라는 작가분 책 마음에 듭니다^^
소녀 같은 어떤 두근거리는 마음들이 달의바다도 그렇고 이번 책도 그렇고 느껴지는 것 같네요
단숨에 읽어버리게 되는 책의 몰입도도 마음에 들고 예쁜 소설, 추천합니다^^
많지 않은 나이에 저런 상상력과 마음을 가진 것에 참 부럽네요^^ 어느덧 서른의 나이에 다가서는 제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예전과 같은 예쁜 추억과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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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을 읽고 나면 가만히 머릿속으로 순위를 매겨보곤 한다. 그럴 때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몇몇 작품이 떠오르고, 마음이 동하는 정도에 따라 순위가 정해진다. 그런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게 무의미했다. 전체적으로 참 좋다. 장편 '친밀한 이방인'이 좋아 찾아본 단편집인데, 장편과는 결이 다르게 좋다. 깔끔한 붓펜으로 쓰인 듯한 장편과 달리 서걱거리는 연필의 필기감이 남아있는 듯한 단편들로 엮어져 있는 이 책은 군데군데 연필심이 번지듯. 잔잔한 표현들로 날 멈짓하게 했다. 예컨대, 물속에 잠긴 듯 아득한 눈(目)이라거나, 실을 풀며 걸어가는 기분이었다거나, 한 장의 사진처럼 고요하기만 한 집 앞 골목길이라거나. 나를 위해 웃다"라는 제목은 기실 반어적이다. 각 작품들 속 인물들은 큰 고민이나 갈등 없이 상대를 안도하게 하거나 상대에게 위안을 준다. 좌측으로 돌리면 온수가, 우측으로 돌리면 냉수가 나오는 것처럼 응당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책 속에서]
"자신의 마음이 다했다고 그가 말했을 때 나의 표정이 어땠는지 나는 늘 그것이 궁금하다. 추억이 나쁜 것은 그것이 나를 비춰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나는 그저 상상해볼 뿐이다.... 돌이켜보면 더할 수 없이 선명한 것이, 그때는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밤은 이상해요. 불빛이 꺼지질 않아서, 기대를 버릴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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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문장들을 읽어내려가다보면 어떤 사연의 슬픔들도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버림받은 거인증의 아이, 몸파는 처녀, 실패한 이민 가족 등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어두운 환경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도 여전히 나아질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남루한 생활 속 어딘가에서 힘을 얻고는 합니다. 전작 달의 바다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정한아 작가는 슬픔과 비참함을 이겨내는 긍정을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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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 반대로 엉뚱한 사람에게 별안간 위로의 말을 듣고 싶을 때…. 그럴 때가 있다. 나름 타인을 이해하고 또한 상처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살지만, 번번이 실패할 때가 많고, 거꾸로 상대방은 생각도 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 서성거릴 때가 있다.
감동을 준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 무뚝뚝한 사람들, 인정머리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감동에 겨워 눈물 흘리는 모습은 얼마나 놀라운가. 아름다운 음악으로, 글로, 그림으로, 그리고 자신의 모습 그 자체만으로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녕 아름답고도 고마운 일이다.
어릴 적, 암만 생각해봐도 도통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모르던 나는 엉뚱하게도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따뜻한 이야기, 때론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해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 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느 순간 겁 없게도 글을 통해 타인에게 울림을 주리라 결심한 것이다. 물론 음악에 푹 빠지기 전에 일이다.
주제 넘는 일이었다. 될 법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꿈은 오래된 책장 속에 숨겨진 보물처럼 내 마음에 남아있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글만 쓰고, 그 마저도 온전히 제대로 쓰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나에겐 영원한 꿈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위로였다. 슬픔에 겨워 더 이상 갈 곳을 몰라 하는 이들을 조용히 안아주는 위로. 그 대상이 누구이든, 얼마나 가까운 사이든 상관이 없다. 다만 상처받고 눈물 흘리는 이들을 감싸 안는 위로가 느껴졌다. 그리고 글을 통해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는 저자를 바라보게 됐다.
“나는 세상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왠지 지고 싶지는 않아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책에 담겨있는 단편들은 모두 상실과 상처, 고독과 방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끝이 있으리라 믿고 걸어온 길이지만, 결국 그 끝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난처함, 그리고 슬픔. 하지만 저자는 그 슬픔과 난처함을 구차하지 않게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비록 너무 벅차고 거대해 차마 다가갈 수 없는 고통이라 하더라도, 그 길을 다시 걸어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똑같다. 하지만 그의 걸음걸이는 남루하지 않다.
황폐해진 지금의 삶, 더 이상 위로받지 못하는 이들. 어딘가 바쁘게 걸어가지만 그 어딘가를 찾지 못해 이리 저리 휩쓸리는 이들. 누구 앞에 엎드려 울어야 하는지, 그 누군가는 정작 어디에 있는지, 그 누군가는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저자는 비록 내일을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지금 간직하고 있는 상처를 온전히 내보인다. 만남이 없으면 이별도 없는 것처럼, 상처와의 조우는 결국 극복으로 연결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처연한 슬픔을 터뜨리지 않고, 가만히 쓰다듬는 저자의 위로가 울림으로 다가온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혹은 상실 후의 슬픔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저자의 작품 역시 언뜻 그 중 하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책을 읽으며 안심했다. 불편한 삶의 조각들이 마냥 그대로 떠내려가지 않고, 누군가 바라보고 있으며 누군가 소중히 감싸 안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게 내버려지지 않았다.
젊은 작가이기에 앞으로 더 많은, 하지만 잠잠히 소설을 써내려 가리라 믿는다. 그러는 와중에 내 허전함과 난처함도 어느 새 다독거려질 것이다. 주저함 없이 글을 읽어 내려갔고, 작은 한숨이 결코 허망하지 않았다. 덕분에 조금은 더 용기도 얻었다.
누구나 주머니 속에 위안을 넣고 산다. 문득 문득 참 난감하고 어려울 때 주머니속의 그것을 살며시 쥐게 된다. 아직은 내가 알고 있는 그 무엇이 있음을 느끼고, 그것이 무엇이든 잃지 않고 있음에 안도한다. “심장과 닮은”아프리카든, 색 바랜 단추든, 오래된 꿈이든. 든든함에 감사한다.
참 어려운 부탁이겠지만, 저자의 위안과 수줍은 용기. 꾸준히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