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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감옥의 벽면이 차례로 지나면서 두 남자의 대화가 들린다. 한 사람은 침대에서 벽을 향해 누워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열심히 쉬지 않고 조잘거리고 있다. 이들의 감옥은 우리나라의 감옥하고는 다른가 보다. 각자 침대가 따로 있고 각자 입은 옷도 다르고 몇가지 옷감들도 걸려있는것을 보면 말이다. 좌우지간 어딘가 아파서 웅쿠리고 누워 영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쪽은 진보주의 정치범으로 잡혀 들어온 발렌틴(라울 줄리아)이고 약간은 여성적인 말투와 몸짓으로 영화 이야기를 하는 쪽은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들어온 몰리나(윌리엄 허트)이다. 서로 다른 범죄를 저질렀고 성향도 다르며 한쪽은 게이였고 한쪽은 강한 투사였으므로 무료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영화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게 된다.
진보주의 적인 발렌틴이 보기에 몰리나는 그저 감상적이고 부로조아적인 그저 게이 일뿐이라고 무시한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몰리나. 그리고 어느날 심한 복통에 시달리던 발렌틴이 심한 설사와 구토로 온 몸이 지저분해졌지만 군소리 없이 치워주는 몰리나에게 감동하고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물론 그 전에 몰리나도 복통이 일어난적은 있었지만 이것은 서로 음식을 바구어 먹었기 때문이었다. 교도소장은 수시로 몰리나를 불러내어 발렌틴에 대한 정보를 캐내고 있었고 은근히 복통을 일어나게 하는 약을 음식에 섞어 먹이고 발렌틴을 고문하고 있었다. 몰리나는 양심에 걸리면서도 늘 교도소장을 만나지만 이렇다할 정보를 준적은 없고 오히려 어머니가 면회를 온것처럼 꾸미자며 늘 음식을 챙겨와 발렌틴을 먹인다.
몰리나는 옷가게 디스플레이어로 항상 남자다운 남자를 찾아 왔었고 금기야는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웨이터를 발견하여 한동안 그에 꽂혀살기도 했다. 그리고 늘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발렌틴은 늘 마르타라는 여인을 그리워하며 그녀에게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것 같기에 마지막으로 연락을 취하고 싶어한다.
원작소설에서는 무려 6편의 영화이야기가 등장 하지만 영화 에서는 두번째 영화인 독일 나치영화가 주된 이야기 거리로 나오고 말미에 6편의 영화도 아닌 또 다른 영화 이야기가 살짝 나온다. 영화 속의 영화인 나치영화에서는 카페의 일류가수인 레이(소나 브라가)가 등장하고 한 눈에도 눈에 번쩍 뜨일만한 금발의 나치 첩보대장이 등장한다. 카페에서 담배를 팔던 미셸이라는 아가씨가 본래 레지스탕스였고 그녀가 사랑하는 독일군 중위를 통해 지도를 빼내오라는 조직의 강요를 받고 있었다. 그의 아이를 임신한것을 눈치채고 조직은 미셸을 죽이고 대신에 레이로 하여금 첩보대장을 유혹해서 지도를 얻어 오게 시킨것이다.
몰리나와 발렌틴은 뜨거운 밤도 함께 하고 드디어 이별을 앞두게 된다. 발렌틴은 감옥을 벗어나기 힘들것 같기에 꼭 마르타에게 소식을 전해 줄것을 당부한다. 가석방후 한동안은 일저리 방황하는듯 하더니 자신의 뒤를 쫓는 무리들을 알면서도 마르타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약속한다. 빨간 마후라를 목에 걸고 그녀를 향해 가지만 뒤쫓아온 정보부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마르타의 총을 맞는다. 몰리나는 그렇게 숨이진다. 어머님을 위해 발렌틴을 위해... 감옥에서도 발렌틴에게 말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사람이 있는데 한사람은 어머니이고 다른 한사람은 발렌틴이라고...
좁은 감옥. 한정된 장소. 자유롭지 못하고 구속 당하고 있는 장소에서의 대화.성, 정치, 사회에 대한 관념, 어머님, 연인, 사랑... 기타등등... 책속에서 상상했던 모습들이 영화로 비추어지게 되면 색다른 맛이 있다. 내가 상상했던것과 다른점도 좋고 상상할수 없었던 것도 볼수 있고... 무엇보다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조금 달라졌다는것만 해도 지극히 다행스러운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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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안에 두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는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몰리나는 게이이다. 여장으로 분장한 그는 남자다운 남자를 원하면서도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 발렌틴은 진보적 정치범이다. 경찰은 그의 비밀을 캐내려 하고 있다. 발렌틴에게 수시로 고문을 가한다. 몰리나는 나치 독일군과 사랑에 빠진 레지스탕스 여인의 영화이야기를 하고 있다. 원수를 사랑한 여인이라, 담배팔이로 분장하고 독일군의 술자리에 낀 여성은 첩보를 하면서도 독일군의 아이를 가졌다. 결국에는 독일군의 차에 치어 사망하게 된다. 몰리나는 진정한 남자를 기다린다면서 영화 이야기에 빠져있다. 현실도피로 환상에 빠진 게이의 모습. 발렌틴은 그런 몰리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몰리나의 이야기는 계속 되는데, 노래를 부르는 레니에게 사람들이 굶주리는 이유를 보여줘 불합리한 상황을 깨닫게 하고는 지도를 가져오게 하는데 그녀를 겁탈하려 했다. 연인의 도움으로 도망쳤지만 끝내 총에 맞고 사망하고 말았다. 몰리나는 가슴아픈 사랑 영화를 주로 본 모양인데 정치적 상황에는 어두웠던 것 같다.
발렌틴이 고문으로 고통스러워 하면 몰리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환상으로 인한 기억력이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몰리나는 사실 정치쪽 보다는 로맨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발렌틴과 같이 지내면서 점점 바뀐 게 아닐까 싶었다. 발렌틴 또한 급진적인 모습이었는데 어느새 자신을 위해주는 그의 모습에서 우정을 느끼게 된다. 사실 몰리나는 경찰의 프락치였다. 미성년자법 위반으로 감옥에 들어온 그는 발렌틴의 비밀을 알아내는 임무를 명받았다. 몰리나는 엄마가 면회 온 것처럼 발렌틴을 속이고 교도관들과 만나 진행 사항을 알려준다. 이때 엄마가 가져온 것처럼 음식을 얻어내기도 하지만 발렌틴의 비밀은 알려주지 않는다. 발렌틴은 사랑하는 여자 마타가 있었다. 그리고 조직원 리디아의 편지를 가지고 있다.
몰리나는 발렌틴에게 거미여인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남국의 섬에 살았던 불가사의한 여인.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거미줄에 갇혀있다. 조난당했던 남자가 해변으로 밀려와 그녀의 눈물을 보았다. 거미여인은 몰리나를 말하는 것 같았다. 조난당한 남자는 당연히 발렌틴이었고. 발렌틴은 몰리나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걸 두고보기 힘들어 했다. 넌 아직 남자야, 라면서 잃어버린 그의 남성성을 깨우려는 시도를 한다.
사람들이 더 이상 널 모욕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해. 그게 네가 존중받는 길이야. 그리고 누구에게도 이용당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몰리나는 자신을 가석방시키면 발렌틴이 감정의 동요를 일으켜 나약해 질 것이라고 교도관에 주장하고 그의 말은 받아들여진다. 그는 가석방되어 발렌틴과 이별하는데, 두 사람은 작별 키스를 한다. 집으로 돌아온 몰리나는 그리웠던 엄마와 재회하고, 좋아했던 식당 남자와도 만나지만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 친구에게 주면서 엄마를 부탁한다. 몰리나는 경찰이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렌틴을 위해서 리디아와 전화 통화를 하고 그의 메세지를 전해주려 한다. 리디아와 만났을 때, 경찰이 나타나자 리디아는 몰리나를 총으로 쏘고 달아났다. 몰리나는 총에 맞아 죽어가는데, 경찰이 전화번호를 대면 병원에 대려다 주겠다고 회유한다. 몰리나는 끝까지 말하지 않고 사망한다. 발렌틴은 감옥에서 계속 고문당했다. 힘들어하는 그에게 의사가 몰핀을 놔준다. 마침내 발렌틴은 사랑하는 여인 마타와 만나 해변으로 달려간다.
몰리나가 찾았던 진정한 남자는 발렌틴이었다. 하지만, 발렌틴에게는 연인 마타가 있고 자신은 게이이기 때문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거미여인이 되어 눈물밖에 흘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용기가 부족했던 몰리나는 사랑하는 발렌틴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접선장소에 나갔다가 사망했다. 거미여인의 한계였던 걸까. 남자다운 발렌틴과는 우정이상으로 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거미여인이라고 해서 남자를 잡아먹는 건가 싶었는데, 오히려 거미줄(게이) 때문에 다가갈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한 것이었다. 정치적 상황과 죽음을 불사하는 로맨스, 동성애 같은 걸 표현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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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더 리더:책읽어주는 남자>를 읽으면서 한나를 떠올리면 그 모습은 '케이트 윈슬렛'이 아니었다. 표지에 그녀의 모습이 나와있는데도 말이다.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그랬다. 내가 책에서 본 모습은 다르다. 케이트 윈슬렛이 영화에서 분한 모습보다는 미모가 떨어지고, 보다 글래머이고, 더 나이들어보인다. 영화에서의 복잡하고 불안한 눈빛과는 다르게 불투명한 먹먹함이 있는 눈이다. 조금은 답답한 여자 나치당원 같다.
몰리나 역을 맡은 '윌리엄 허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난 당시(1986년) 그 영화제를 tv를 통해 시청했고 이 배우가 몹시 기뻐하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역시나 몰리나의 모습은 이 배우가 아니었다.
영화와 책에서의 주인공이 동일인물이었던 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의 '비비안 리'가 유일한 것 같다.
'윌리엄 허트'는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내가 감정이입된 것은 발렌틴 역을 맡은 '라울 줄리아'였다. 혁명가라고 하기엔 너무나 허우대가 멀쩡하고 잘생긴 모습. 눈빛은 전혀 날카롭지가 않다. 사슴같은 눈을 갖고 있다. 인생을 즐기는 싱거운 귀족이 어울린다. 화려하게 생긴 나약한 브루주아의 모습. 그는 바로 영화<아담스 패밀리>에서 아버지로 등장한 사람이다. 이 배우는 5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영화촬영장에서 갑작스런 뇌졸증으로 사망했다.
이 배우의 이런 외모가 뛰어난 연기와 더불어져 발렌틴의 불안, 분노, 공포, 자기모순..그리고 점차 변해가는 모습이 더 잘 드러난듯 보인다.
난 이 배우가 연기한 발렌틴에 마음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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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게이는 몇가지 종류가 있는듯 싶은데.. 윌리엄 허트가 연기한 몰리나는 1.남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라 2.남자의 몸으로 잘못태어난 여성이다. 크라잉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크라잉게임에서는 성기만 달려있을 뿐 모습도 여인이긴 하지..) 내게 보다 절실함을 느끼게 하는 동성간의 사랑은 남자인데 남자를 사랑하는 <브로크백마운틴>같은 경우다. 이런경우가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힘겨움이 분명 더 클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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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내들끼리 사랑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들이 많다. 영화 속에서는 이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 만들고 키아누 리브스와 리버 피닉스가 나오는 <아이다호>, 이안 감독이 만든 <브로크백 마운틴>, 닐 조단 감독이 만든 <크라잉 게임>, 우리나라 영화로는 이준익 감독의 작품인 <왕의 남자>도 있고...
브라질 사람인 헥터 바벤코 감독이 1985년에 만든 <거미 여인의 키스 Kiss of the Spider Woman>도 마뉴엘 푸익의 소설을 바탕으로 삼아, 좋은 사내를 만나 참사랑을 하고픈 사내의 이야기를 그렸다.
2. "당신들 게이는 현실을 외면해. 언제나 꿈속에서 살지...목소리가 계집애 같아..." "그게 어때서? 사내들이 우리와 같으면 저렇게 서로 싸우지 않을 걸..." 같은 감방에 갇힌 두 사람이 힘든 삶을 달래주기는커녕 서로에게 내뱉는 말이 사납다.
기자를 하면서 남아메리카의 독재 정권에 맞선 사람을 도운 탓으로 잡혀 온 발렌틴 아레기(라울 줄리아)는, 같은 감방에 있는 루이스 모리나(윌리엄 허트)를 보면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다.
사내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는 짓은 계집애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 게다가 어린 사내 아이와 몹쓸 짓을 한 탓에 잡혀 왔으니 혀를 찰 수밖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눈을 감고 오로지 멋있는 사내만을 찾는 모리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렇지만 같이 있으니 얼굴을 봐야 하고 이야기도 나눌 수밖에. 모리나가 심심풀이로 들려주는 옛날 영화 이야기를 들으며 아픈 몸과 마음을 추스린다.
정보국은 발렌틴이 알고 있는 것을 캐내려고 안달이고, 그렇지만 발렌틴은 얻어 맞으면서도 불지 않는다.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마저 들키지 않으려고 거짓으로 부른다. 리디아로 부르지만, 아팠을 때 저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이름은 마타(소니아 브래거)다.
3. 영화 속에 모리나가 들려주는 다른 영화가 나오는데, 헷갈리지 않도록 흑백으로 나온다. 파리의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프랑스 사람 레니와 도이칠란트 장교인 버너의 사랑을 다룬 것이다. 레니와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로 쳐들어온 도이칠란트 사람인 버너가 사랑을 이룰 수가 있을까?
레니와 버너의 사랑 사이에 레지스탕스가 끼어들므로, 모리나의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게 나아간다. 내 나라냐, 내 사랑이냐? 레니(소니아 브래거) 앞에 놓인 주사위를 어떻게 굴려야 할지...
발렌틴과 감방에서 같이 지낸 날들이 끝나고 모리나가 집으로 돌아갈 때, 다르게 살아왔고 다르게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갈 수 있을까? 모리나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와 이들의 삶이 남들이야 어떻게 보든 잘 풀려나가야 할 텐데.
4. 삶이 내게 준 것은 투쟁뿐이라며 독재 정권에 맞서 목숨을 거는 발렌틴과, 남이야 어떻게 보든 제 삶을 살려고 멋진 사내와 사랑을 꿈꾸며 사랑에 목숨을 거는 모리나.
발렌틴은 모리나를 볼 때 나긋나긋한 말투와 몸짓, 얄궂게 입은 옷 따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바보야, 다리 사이에 있는 게 뭐야? 네가 사내야?" 하며 나무란다. 모리나는 얻어온 달콤한 열매를 발렌틴이 뿌리치자, "삶이 주는 건 그냥 즐겨..." 하며 못마땅해 한다.
도무지 어울릴 게 없는 두 사람이다. 그런데 같은 감방 안에서 티격태격 하는 사이에 조금씩 서로 마음의 문을 연다.
고추 달린 사내답지 않게 산다고 소리치고 따지던 억센 발렌틴이 모리나의 눈에 사내다워 보이고, 약을 섞은 밥 탓에 옷에다 물똥을 쏴버린 발렌틴을 깨끗이 닦아주며 보살피는 모리나가 다르게 보인다.
5. 사내가 사내를 사랑하거나, 계집이 계집을 사랑하는 일은 아직도 좋은 눈으로 봐주지 않는다. 아마 세월이 오래 흘러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본다. 사람들의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수만년을 내려온 수컷과 암컷의 세계를 생각하면, 수컷과 암컷이 어우러져 사는 게 거의 다고,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을 때 한 몸으로 수컷과 암컷 노릇을 하거나 하기 때문에, 수컷끼리나 암컷끼리 사랑하는 낯선 모습에 좋은 느낌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살겠다는 이들한테 "왜 그렇게 생뚱맞게 사느냐"며 대놓고 나무랄 수도 없다. 몸과 마음이 가는대로 살겠다면 살게 내버려두는 게 오히려 저마다의 삶에 맞는 일이 아닐는지...
그런데 모리나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지만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니는 모리나? 내가 불알 달린 사내지만 그건 하느님이 잘못하여 생긴 거라고..." "니는 모리나? 내가 사내들을 싸우게 하는 정치니 투쟁이니 하는 말들을 싫어하는 걸..." "니는 모리나? 내가 끄나풀이 되기도 싫고, 짭새가 되기도 싫어하는 걸..."
6. 제 몸에서 나오는 거미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삶. 고달픈 그 삶에서 틀을 깨고 헤쳐나올 수 있는 날은 언제 찾아올까?
그런 날이 오면 모리나와 발렌틴은 스스럼없이 입맞춤을 할 수 있을까? 발렌틴은 사랑했던 마타와 입맞춤을 하고, 모리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쓴웃음을 짓기만 할까?
모리나를 맡은 윌리엄 허트의 연기는 눈이 부시다. 188센티미터의 큰 사내가 나긋나긋하게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은 타고난 솜씨꾼이다.
영화를 보면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1995년에 만든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가 생각났다. 조제가 풀어놓는 이야기와 모리나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입담이 너무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한쪽은 벽면에 붙어있는 안내판에 적힌 이름들을 이야기로 꾸몄고, 다른 한쪽은 제가 만나고 부대꼈던 사람들을 이야기로 꾸몄으니, 싱어 감독이 이 영화를 본땄을까?
영화 디브이디는 화면이나 소리가 괜찮다. 보너스는 예고편 밖에 없으므로 볼 게 없다. 감독과 나온 배우들을 불러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모아 들려주면 좋을 텐데 조금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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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작이라 보기힘든 점도 있었지만 워낙 원작이 뛰어나서 영화로 볼 수 있는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모리나가 자신이 미행당하는걸 알면서도 발렌틴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발렌틴의 연인을 만나러 가는장면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거미여인의 키스이야기가 제대로 안나와서 속상했다. 나의 바램이 있다면 현대에 다시 거미여인의 키스를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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