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호암! 호암(湖巖)! 호암은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주역이신 이병철님의 호다. 호암은 호수마냥 맑은 물을 잔잔하게 가득 채우고, 큰 바위마냥 흔들리지 않는 준엄함을 뜻한다고 해석되어 있다. 1955년 11월경 상공회의소 회장이신 전용순씨의 권유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다. 어릴 적에 “내가 돈병철이 아들이라도 되는 줄 아나”라고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돈병철은 이병철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가끔 드라마나 근대사를 통해 드러난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이나, 삼분사건 등을 통해 그동안 호암 이병철도 그렇고 그런 돈 욕심이 많은 재벌로 치부되었다. 마치 어쩌다 운 때가 맞아 돈을 많이 번 기업인이지만 기업인으로서 철학도 도덕도 없는 돈만 사랑하는 기업인으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은 사람이 얼마나 부러운가? 돈을 원 없이 써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라는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호암”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히 이름이나 호를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생각에 그 분이라고 표현한다. 그 분께서는 평생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을 던지신 거대한 분이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마음은 호수에 가득 찬 맑은 물과 같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꿈과 이상은 거대한 바위와 같아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은 삶을 사신 분이다. 『위기를 기회로』는 호암 이병철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칭찬본부에서 범국민 칭찬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었다. 지은이는 월간 칭찬메아리 김윤영 발행인이다. 이 책은 삼성경제연구소의 포럼인 “전략기획실무”에서 회원에게 실시한 도서 이벤트를 통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그 분의 출생 시점부터 운명하던 그 순간까지 전 생애를 시간적, 사건적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위인의 특징은 무엇보다 위인들은 모두 담대하고 영웅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어릴 전부터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표현을 써가며 마치 위인을 귀인처럼 얘기하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책을 쓴 저자는 이를 거부하고 그 분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임을 드러내고자 노력했다. 보통 사람과 똑같은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지 남과 좀 다르다면 호기심이 남다르고 전 생애를 통해서 자기완성을 위해 아니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끊임없이 기업을 일으키고 역동적으로 목표를 달성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그 분은 1910년 한일합방에서부터 3.1운동, 1945년 해방과 6ㆍ25전쟁, 4ㆍ19혁명, 12ㆍ12사태 등 사신 한 세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역경과 격동을 겪으셨다. 그 시대를 산 사람이라면 다 겪은 일이라고 치부한다면 그 분을 전혀 모른다는 얘기다. 사업을 너무 별나게 했기 때문인가.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으킨 지난 50여년간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던 반세기였다. 일제 때는 일제대로, 광복이 된 이후에도 그 분은 새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정의 대상이 되었고 부정축재를 했다고 하여 여러 차례 기업을 송두리째 빼앗기기도 했다. 재산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 분께서는 인내하면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는 것이고 나아가 인류의 번영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업을 해야한다는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몸소 실천하셨다. 그러한 가운데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으키셨으니 남다르다 할 수 밖에 없다. 『위기를 기회로』에서는 ‘기업가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은 그 분의 가치관과 행로에 중점을 두고 전 생애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제1장 위기는 곧 기회다”, “제2장 사업보국이 내 길이다”, “제3장 반도체, 새로운 신화창조”로 구성되어있다. 간략하게나마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제1부에서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부터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 책에서는 사카린 밀수 사건 뒤에는 삼성을 죽이기 위한 음모가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람이란 아무리 정상적이라 하더라도 선과 악, 합리와 불합리, 광기와 정성, 본능과 이성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이처럼 엇갈리는 두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심리의 야릇한 갈등을 경험하게 돈다. 또한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에 악에의 유혹이나 부정에의 충동을 느끼는가 하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선량하게 될 수 있는 것은 이런 때문이다”고 회고하였다. 외국차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하여 차관을 빌려 한국비료공장을 건설할 때다. 정부에서 가지고 있는 달러가 고작 3,000만 달러도 채 되지 않은 시기다. 그래서 1,000만 달러만 되면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야 쓸 수 있던 시기다. 한비를 건설하겠다고 4,000~ 5,000만 달러가 있어야 된다하니 대통령이 깜짝 놀라더라는 일화와 1961년 5월 국가재건회의 박정희 부의장과의 일화가 소개되어있다. 제2부에서는 그 분의 출생과 수학과정, 16세에 부모님께서 정해준 박두을 여사와 결혼을 하고 일본에서의 유학생활, 마산에서의 협동이라는 간판으로 정미소를 운영하신 일, 그리고 1938년 현재 삼성의 발원지가 된 대구에서 삼성상회와 조선 양조를 경영하신 일들이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궁금한 내용이 있다. 그 분이 대구를 사업의 최적지로 삼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편리한 교통이다. 그 분은 마산에서 정미소와 운수회사를 경영하다 망하고 바로 부산에서부터 서울, 평양, 신의주, 원산, 함흥, 중국의 베이징, 칭다오, 상하이로 여행을 다녔다. 여행이 목적은 무슨 사업을 어느 규모로 어디에서 하느냐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두 달여 여행을 끝내고 1938년 3월 1일 대구에 둥지를 틀었다. 대구의 사과와 포항의 건어물 등을 만주와 중국에 수출하기 위해서다. 대구가 지리적으로 청과물을 사들이기가 편했고, 철도가 인천이나 진남포의 배편보다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다. 그 분께서는 대구에서 기업을 하시면서 기업인으로 사업보국의 확고한 신념을 갖추게 된다. 대구의 기업인들이 만든 “을유회”에 들어가 기업인이 갖춰야 할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나라와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지, 의견을 주고받으며 나름대로의 기업관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조선민보”를 사들여 “대구민보” 이름을 바꾸고 언론사업도 시작했다. 이렇게 기업을 하나 둘 확장하는 과정에서 그 분께서는 “사업을 일으켜 나라에 보답하자”는 『사업보국』의 신념을 굳히신다. 삼성이 대구에 애착을 가지는 이유가 간단하다. 그 뒤 1947년 5월 좀 더 큰 무대에서 사업을 하시겠다고 결정하시면서 가족들과 함께 서울 혜화동으로 이사를 하신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대구가 이건희 회장님의 고향이다”는 얘기다. 대구에서 1938년 삼성상회를 하시다가 1947년에 서울로 이사를 하셨으니 이건희 회장님은 대구에서 태어나시고 다섯 살이 되도록 수창동 지역을 누비셨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7년뒤 그 분께서는 다시 대구에 대규모 공장을 지으신다. 모직공장이다. 당시만 해도 모직은 전량 수입을 했다. 1955년 1월4일 제일모직 건설을 위한 본격적인 공사는 시작한다. 1956년 5월 2일 제일모직은 시범 생산을 거쳐 발전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모직의 본고장인 영국으로 골덴텍스라는 이름으로 수출까지 하였다. 60여년 뒤 금싸라기로 변한 땅에 삼성은 오페라 하우스를 지어 대구시에 기증했다. 1954년 9월 15일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한 터인 대구 북구 칠성동 제일모직 공장부지에 440억여 원을 들여 지었다. 전문가들은 이 오페라 전용극장은 음향설비로 국내 최고라고 자신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일모직 공장의 아름다운 조경을 보고 대구사람들은 제일공원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제3부에서는 모든 일의 기본은 나라라고 생각하시고 나라가 잘되고 강해야 모든 것이 잘되기 때문에 기업인은 국부형성에 이바지하는 것이 참다운 기업정신이라 하시면서 새로운 기업을 만드신다. 텔레비전 공장과 라디오 공장, 1977년 베트남이 공산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위산업인 삼성정밀공업을, 그야말로 제철, 조선, 석유화학, 알루미늄, 시멘트 등 국가의 기둥이 되는 기간산업을 건설하셨다. 이후 1983년 반도체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1985년에 제3라인까지 완공하셨다. 1938년 28세부터 1985년 75세까지 거의 매년을 굵직굵직한 공장을 세우셨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을 일구는 과정은 눈물겹다. 평생을 사물을 꿰뚫어 보는 맑은 눈과 치밀한 판단력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흔들리지 않는 꿈과 이상으로 삼성이라는 대 그룹을 일구었다. ‘유능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모으고 키워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결정 된다’고 말했듯, ‘인재 제일’의 철학을 실천한 모습도 소개한다. 그리고 회사를 세울 때는 1. 국가적으로 필요한가? 2.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가? 3.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가?를 가장 먼저 생각했다고 한다. 불과 반세기 전 가난으로 굶주림의 고통을 겪던 우리가 이만큼 여유롭게 살게 된 원인을 어디에 있었던가?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그 분께서 기업을 일으키는 과정을 살펴보면 답은 명쾌하다고 말하고 싶다. 저자는 그분의 연보를 아주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잠시 그 연보를 통해 그 답을 살펴보자. 그 분은 1936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와 히노데 자동차를 인수해 운수사업과 1937년 토지확장사업을 하시다 실패를 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패가 그 분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사업을 할 지역을 물색하시다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창업하시고 1939년 조선양조 인수, 1945년 대구민보 운영 등으로 대구에서 사업영역을 확장하셨다. 대구에서 사업을 하신 이유가 앞에서 언급하였다시피 대구의 편리한 교통이다. 이후 1948년 삼성물산 공사를 설립하시면서 무역업을 하시면서 거의 매년 큰 기업을 하나씩 창업하시거나 인수하셨다. 기업창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연보를 보면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사업의 흐름이다. 그리고 입지 선정이다. 먼저 사업의 흐름을 살펴보면 초기 소비재 기업에서 출발하여 무역업, 교육문화사업, 경공업, 중화학공업, 전자 반도체 사업 등으로 이어진다. 흐름은 변화의 연속이다. 입지 선정도 남다르다. 대구에서 소비재 산업과 섬유 등 경공업을 시작하시다가 이후 서울에서 무역업과 교육문화기업을, 이후 울산 등지에서 중화학 조선기업을, 그리고 수원 등지에서 전자사업과 반도체 기업을 창업하셨다는 사실이다. 보라! 얼마나 기가 찬 창업인가? 책을 읽는 동안 어쩌면 그렇게도 미래를 준비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기업하기 가장 좋은 최적지에 입지를 선정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놀랄 따름이다. 초기에 섬유 등 경공업을 대구에서 창업한 이유는 편리한 교통과 풍부한 노동력, 울산 등지에서의 중화학 공업은 대규모 항만시설과 풍부한 공업용수원 등에 기초한 것이다. 반도체도 그렇다. 풍부한 교육기관과 뛰어난 인재가 많은 지역이다. 지난날 그 분께서 창업하신 기업이 소재한 지역이 오늘날 그 지역의 부의 기준이 되고있다. 내년은 그 분께서 태어나신지 100주년이다. 다시 한번 호암 탄신 100주년을 맞아 호암의 혼을 되살리고, 호암과 같은 투지로 새로운 일자리와 부(富)를, 그리고 국가의 번영을 창조해 내는 제2의 제3의 작은 영웅들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나는 그 영웅이 내 아들이고 내 동생이고 내 이웃이면 더 좋겠다. 지금 세계경제는 위기라 한다. 『위기를 기회로』는 세계적인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끈 호암의 뛰어난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그 분께서는 위기란 결코 피할 것이 아니라 기업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셨다. |